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제30회 한국 출판 평론상 출판평론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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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지어준 이름대로 불리는 자를 식민지 백성이라한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말이다. Library와 Librarian을 일본은 도서관과 사서로 번역했다. 우리는 서적원과 검서관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일본인이 번역한 도서관과 사서라는 말을 선택했다. 자신을 부르는 말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도서관역사는 현대 도서관의 역사가 식민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그대로 증명한다.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기도한 도서관이었지만, 그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의 민주화 운동에서의 역할을 너무도 미미하다.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으며, 굴절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대학도서관을 갖지 못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백창민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시대의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인 우리를 책한다. 이땅의 유림들은 3.1 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유림도 많다. 존경각의 책이 흩어져 사라진 것 처럼, 유림은 우리시대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기존질서를 근본부터 부수고 변화를 선도하는 창조적 파괴를 단행하지 못했다.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는 자는 새생명을 얻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서 알에서 깨어난자는 계란 후라이가 된다.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댓가는 참혹하다. 유학이 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되며, 찬란한 과거의 문화는 단절되었다. 

  총독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던 사람들이 광복이 되고 나서 대한민국의 사서가 되었다. 친일의혹이 있거나, 버젖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수많은 사서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민족의 독립보다는 제국의 신민으로서 제국의 통치 이념을 담은 책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읽히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땅의 사서들은 과거 선배 사서들의 친일행위를 무어라 평가할까? 조국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소시민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할까?

  물론, 친일과 소시민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범승! 그는 '편지로 조선 총독부를 움직여 2년 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경성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를 연구자들은 편지한장으로 조선 총독부를 움직여 시민의 대학을 설립했다며 높게 평가한다. 반면, 백창민 작가 그에게 친일의 의혹을 제기한다. 일제와 모종의 끈이 있지 않다면 어찌 그리도 쉽게 편지 한장으로 시민의 대학인 도서관을 세울 수 있는가? 

  그런데, 백창민 작가는 이범승이 친일파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만약 도서관 소장자료에서 친일적 서적들의 비중이 높고, 도서관 행사에서 친일행위를 했다면 이범승을 친일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를 친일파로 단언할 수 있을까? 물론, 일본제국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서글픈 도서관과 사서의 역사에서 한명이라도 조국을 위하는 인물을 만나고 싶은 나의 소망이 이범승에 대한 평가를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머스 제퍼슨은 "시민을 계몽하라., 그러면 폭정과 억압은 사라질 것이다."(345쪽)라고 말했다. 시민의 대학, 도서관은 시민의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시민은 도서관을 시민의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345쪽)는 조제프 드메스트르의 말처럼, 시민의 대학으로서의 도서관을 갖고 싶다면, 우리가 도서관을 시민의 학습장으로 삼아야한다. 앞으로의 역사는 우리의 행동 여하에 달렸다.

  씁쓸한 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기 위해서 진정한 도서관과 사서는 어떠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대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를 원래 설계대로 짓기 위해서 건축가 김원은 영국 버밍엄도서관에 갔다. 사서에게 60년전 아서 딕슨의 남긴 설계도면을 문의했다. 사서는 아서 딕슨의 설계도면을 찾아주었다. 건축가 김원은 설계도면의 복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꽁지머리 사서는 "왜 안되겠어요. 동양의 먼 나라에서 우리 도서관을 찾아 준 것이 더 고맙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도서관은 존재합니다."(251쪽)라는 말을 했다. 결국, 아서 딕슨의 설계 도면 덕분에 성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일화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도서관과 사서는 시대 정신에 호응하기 위해서 어떠한 비젼을 가지고 나아가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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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12-0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실 수도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역사적’도 일제강점기 말씨이고, ‘-의’도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말씨입니다. ‘용어·번역·선택·현대·잔재·현실·증명·민주화·역할·미미·굴절·운영·저자·도전·정면·비겁·책하다·구현·대표적·질서·선도·창조적·단행……’ 같은 말씨도 우리말씨이지 않습니다. ‘불리는·만들다·-지는·-되는·것·가지다’도 마찬가지이고요. 잘 쓰고 못 쓰고라는 대목이 아닌, ‘도서관·사서’뿐 아니라 ‘서가·수서·납본·대출·반납’다 하나같이 ‘그들말씨’입니다. 우리한테 ‘펴다·펴내다’라는 낱말이 있으나, 이 책을 펴낸 곳조차 ‘한겨레출판’처럼 ‘출판’을 그냥 씁니다. 몇 가지 이름이 안타까운 대목은 이미 짚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몇 가지 이름부터 어떻게 우리말씨로 풀고 살려서 새롭게 가꾸느냐 하는 이야기를 담아낼 때에라야, 하나씩 바꿀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