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사 : 전근대편 쟁점 한국사
한명기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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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선생님들이 역사교에게 하는 말이 있다. '역사과목은 한번 교재연구하면 다시 교재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겠다.! 역사가 바뀔리 없으니 말이야'라는 말을 부러운듯 말한다. 그 선생님 주변에는 게으른 역사교사밖에 없던가, 아니면 역사도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는 우둔한 교사일 것이다. 역사도 바뀐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국사'라는 과목과 현직에 발령받고 가르치기 시작한 '국사'과목,그리고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한국사'과목의 내용이 다르다. 교과서가 바뀌었는데, 교재연구를 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면,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임용고사를 준비할때는 분명,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6천년경 부터 시작되었다고 공부했다. 그런데, 임용을 받고 난 후 받아든 교과서에서는 나의 지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교육과정이 바뀐 새 교과서에서는 기원전 8천년경으로 변경되어있었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연대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순식간에 2천년이나 수직상승했다. 쟁점한국사는 바로 그러한 책이었다. 


  송호정 교수의 '우리 고대사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와 강종훈 교수의 '신라의 여왕 출현, 어떻게 가능했나'라는 글의 내용은 이미 오래전서부터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채웅석 박사의 문벌 사회의 빛과 그림자'라는 글은 이번에 새로 바뀐 한국사 교과서를 접해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새 교과서에서는 고려시대의 지배층을 더 이상 '문벌 귀족'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고려 사회에 대해서는 '관료제설'과 '귀족제설'이 대립하고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없이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하며,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눈길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고 지적던 고려시대사 전공 교수님의 강의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고려시대의 치열한 쟁점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교과서에 '문벌 귀족'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문벌'이라는 단어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제가 엄존했던 고려시대를 '문벌 귀족' 사회로 보는 것은 분명한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고려시대를 관료제 사회로 보기에는 공음전과 음서제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다. 양극단의 시각을 제거하면 '문벌'이라는 단어가 합리적으로 다가온다. 앞세대의 치열한 논쟁이 사라지고 이제 후학들이 새로운 학설로 새롭게 교과서를 서술했다. 

  이러한 시각은 도현철 박사의 '원 간섭기를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글에서도 묻어난다. 최씨정권이 몽골과 항쟁하기 위해서 강화도로 천도했고, 수전에 약한 몽골군은 강화도 점령을 포기하고 내륙을 휩쓸고 돌아갔다. 라는 서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도현철은 그것이 허구임을 지적한다. 몽골군은 다국적군이기에 강화도를 점령하려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강화도로 답사를 갔을 때, 동양사 전공 교수님도 지적했었다. 교수님은 한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들의 시각이 너무도 협소하다고 일갈했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투영되다보니, 우리의 시각에서 역사를 논할 뿐, 몽골의 입장을 고려한 객관적인 연구가 되지 못했다. 도현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원 간섭기의 고려왕들은 유난히도 함량미달의 군주가 많았다. 아들과 권력투쟁을 하는가하면, 닥치는데로 성폭행을 하다가 원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은 왕까지.... 고려의 왕에게 유교를 통해서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려고 고려 유학자들은 노력했다. "국가 개조와 유교적 문명사회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고려의 유학자들은 몽골지배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반면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명제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면서 원 간섭기를 암흑의 시대로 보았다. 역사를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원간섭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그렇다고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글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임기환의 '연개소문과 김춘추, 국운을 바꾼 선택'과 이정철의 '조선 정치의 저력, 당쟁과 대동법'이 바로 그러한 글이다. 

  임기환은 '연개소문과 김춘추, 국운을 바꾼 선택'이라는 글에서 연개소문을 비판하고 당태종을 두둔한다. 우선 연개소문을 비판하면서 연개소문이 자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대당강경책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이는등 화평정책을 쓴 점을 지적하며, 연개소문이 자주적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부분은 읽는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쿠데타를 일으킨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바로 대외적인 강경책을 실시할 수는 없다. 내부의 체제정비를 끝낸 후에야 비로서 대외적인 강경책을 추진할 수 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전술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은 임기환의 논리가 너무도 초라해보인다. 

  임기환의 논리는 당태종을 두둔하는 부분에서 최고조의 웃음을 선사한다. 당태종은 스스로를 중원과 막북의 유일한 지배자인 황제 천가한이라고 칭했고, "그는 만백성 위에 중화적법과 질서를 구현하는 자신의 치세에 왕을 죽이고 권력을 독단하는 연개소문 같은 대역죄인이 있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라며 당태종의 입장을 변호한다. 순간, 임기환의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햇갈렸다.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황제자리를 빼앗은 인물이 아닌가! 패륜을 저지른자가 연개소문을 '대역죄인'이라고 말할 자격이있을까? 우리속담에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다. 당태종은 '똥묻은 개'가 아닌가! 그런데, 한국의 유명대학 교수인 임기환은 연개소문을 꾸짖고 당태종의 입장을 변호한다. 우리 학계에 국적이 의심스러운자가 있다는 이덕일의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철의 '조선 정치의 저력, 당쟁과 대동법'도 나를 실망시켰다. 이정철은 대동법 시행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면서,양반 지주의 저항 때문에  대동법 실시가 늦어진 것이 아니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사회적 발언권이 재산과 비례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당시 공동체의 공공선을 대표하는 이는 지주가 아니라 사림이었다. 대동법 성립의 가장 큰 반대세력 또한 그들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이정철은 양반 지주와 사림이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양반 지주와 사림이 별개인가? 조선시대에 글공부를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한다. 또한, 중소지주층이 자식을 공부시켜 과거에 합격시키면 그들은 출세하며, 조선후기에 그들은 사림이된다. 양반 지주와 사림은 완전히 동일체가 될수는 없어도, 상당부분이 중첩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이정철은 분리하기 힘든 양반 지주와 사림을 분리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밀려온다. 

  이번 대선을 떠올려보자. 보수당이 승리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집값때문이다. 내 주변에 어느 분은 자신은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집값이 올라 세금을 내야했다며, 여당 후보를 "양아치"라고 말했다. 또 어떤 집없는 사람은 자신도 내집을 마련해서 집값이 올라가길 바라는데, 이재명은 "안정 하향"을 시키겠다고 한다며 그를 싫어했다. 집값이 우상향하기를 바라는 가진자와 가진자의 마음을 가진 못가진자의 합작품이 바로 지금의 대선결과이다. 그렇다. 대동법은 대단한 개혁임에는 틀림없다. 사림의 도덕적인 담론도 그들의 경제적 욕구를 무시하고 말할 수 없다. 조선시대 근엄한 성리학이 자리잡은 시대로 알지만, 엄연히 춘화가 유행했던 사회이다. 근엄함 속에 숨겨진 욕망을 무시하고 역사를 바로 볼 수 없다. 이정철은 이를 놓쳐버렸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시 쓰여진다.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차를 느끼는 시대이다. 오늘 내가 바라본 역사가 내일도 같으리라 보장할 수 없듯이, 오늘 읽은 '쟁점 한국사-전근대편'이 절대적인 진리일 수 없다. 오늘을 바로 보기 위해서 어제의 역사를 바로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설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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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2-03-20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중간에 끊겼습니다..

강나루 2022-03-20 21:27   좋아요 0 | URL
중간에 날라가서 다시 썼어요.

singri 2022-03-20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찜하고 오니 리뷰가 있어서 깜짝 놀랐네요. 이런 자세한 설명을 듣는 역사시간. 👍 잘 읽고갑니다.


강나루 2022-03-21 04: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