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연휴가 끝나가던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그 애매한 시간대에 kbs에서 영화 [시]를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마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영화의 주연여배우 윤정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부모님은 김지미, 남정임 같은 여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던 것 같은데, 어린 내 눈에는 윤정희 만큼 고운 여배우는 없었다. 아마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 봤을 게 틀림없을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남자배우로는 신성일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엄앵란과 신성일이 부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럼 윤정희는 어떡하지?하고 내심 심각하게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맘 속에 한국판 오드리 햅번으로 남아있던 여배우 윤정희가 자글자글한 얼굴과 푸석한 머리결로 칸영화제며 대종상, 청룡영화상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 영화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책을 좀 읽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어 있었고, 다시 거실로 나와 공연히 서성대다가 4시를 한참 넘기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마음이 꼭 빗방울 자국이 패인 흙마당 같았다. 까끌한 모래알갱이들이 패인 자국 주변으로 드러나서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오늘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내내 이 영화 생각을 한다. 무엇이 날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지. 어릴 적 보았던 가장 고운 얼굴을 가진 여배우의 나이든 모습 때문일까. 하지만 윤정희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고왔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하고 바랄만큼.  

가장 불편했던 건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던 '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종욱할머니인 미자(윤정희)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명사가 자꾸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를테면 터미널, 지갑.. 그런 것들. 의사가 미자에게 처음에는 명사를 잊어먹고 그 다음엔 동사.. 그렇게 하나하나 점점 더 많은 기억을 잃게 될 거라고 설명한다. '아시겠어요?'하는 의사의 질문에 미자는 '네, 알아요. 명사가 제일 중요하잖아요.'하고 대답한다.   

가장 중요한 명사를 잊어가는 미자에게 손자 종욱과 친구들이 벌인 성폭행 사건이 드러난다. 피해 여학생은 그 사건의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그리고 가해 남학생의 부모가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며 사죄하기 위해서라거나 꽃다운 여학생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그 대책이라는 것이 한 집에서 500만원씩 갹출하여 3천만원으로 피해보상을 하고 빨리 덮어버리자는 것이다.  미자는 '명사'를 잊어간다. 그러면 그들이 잊은 건 뭘까?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건 뭘까.

알츠하이머로 명사를 잊어가는 미자는 죽은 여학생이 폭행을 당했던 과학실과 여학생이 다니던 성당, 여학생이 몸을 던진 다리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성당에서 여학생의 사진을 몰래 가방에 담아온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명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그 여학생이 겪었던 고통과 마주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손주 종욱 또한  밥 잘먹고 TV를 보며 자기가 상처를 준 여학생을, 자기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다. 식탁 위에 놓은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도 잠깐 움찔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미자다. 시창작 강의의 과제를 잊지않고  '시'를 남기는 것도 또한 미자 뿐이다.

또 하나 마음이 불편했던 건, 쓰레기 같은 말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욱과 미자 간의 대화 같은 것, 슈퍼 여주인에게 미자가 여학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의 그런 말 같은 것 말이다.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떨어져 뒹구는 말들.  전해지지 못하는 우리의 많은 말들 말이다. 상대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단절되는.  또는 사건을 빨리 조용히 덮어버리자고 작당하는 사람들의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대화들도 있다.  

그런데 미자는 '시'를 배운다. 배우고 쓴다. '시'는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언어의 보석들이다. 그래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말들 속에서 미자가 시를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물겨웠던 거다. 우리 모두의 말들이 쓰레기가 되지 않고 '시'가 될 수 있기를 바라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미자는 피해여학생의 집을 찾아갔다가 땅에 떨어진 살구를 보고 시상에 잠기다가 그만 피해여학생 엄마에게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보이고 만다. 순간, 자기가 왜 이 곳에 왔는지를 잊고 피해여학생 엄마에게 '행복' 운운하며 팔자 좋은 소리를 해대고 만 것이다. 미자까지 명사보다 중요한 것을 잊은 그 순간, 영화는 결말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난 어릴 때 본 윤정희 보다 이 영화 속 윤정희가 더 좋아졌다. 저렇게 공주스러운 옷을 입고  천진한 수다를 떨 줄 아는 할머니로 나타나 고되고 힘겨운 미자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어서 너무 고맙다.  

영화 속 미자가 쓴 <아녜스의 노래>라는 시다.  

그 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이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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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9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9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2-0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때문에 윤정희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는데 보통의 여배우 같지 않은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서 더 고와보였어요. 이 영화 참 좋았는데 지금 섬사이 님의 글도 영화만큼이나 좋아요. 명사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말씀해 주셨어요.
긴 연휴 끝, 아직은 유효한 인사를 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섬사이 2011-02-09 14:42   좋아요 0 | URL
늦은 밤에 하는 영화였는데 맘 잡고 앉아 보기를 참 잘 했구나, 싶어요.
놓쳤으면 정말 아까울 뻔 했어요.
마노아님도 새해 복 많이 많이 많이 받으세요~~

마녀고양이 2011-02-0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정희 님 여전히 곱네요...
저는 통영 다녀오느라 이 영화 놓쳤는데, 너무 보고 싶어요.

치매의 망각은 무서워하지만, 정작 우리가 중요한 것은 잊고 산다는 말씀
아침부터 곰곰히 되씹어봅니다. 즐거운 2월 되셔요.

섬사이 2011-02-09 14:43   좋아요 0 | URL
어쩌면 우리 전부가 변형된 알츠하이머에 감염된 거 아닐까요? ^^
잊어버리거나 잊은 척 하거나.
마녀고양이님도 2월 즐겁게 보내세요.
어느새 10일이 코앞이에요.
초순이 다 지나가 버렸어요. ㅠ.ㅠ

2011-02-09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lo초우ve 2011-02-0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안다니는곳 없으시군요 ㅋ
저도 "시" 영화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켠으로 공허한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구요 ㅡ,.ㅡ;;

섬사이 2011-02-11 09:33   좋아요 0 | URL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참 섬세하게 담긴 것 같아요.
그냥 '슬프다'라는 표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저도 느꼈어요.

감은빛 2011-02-12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꼭 빗방울 자국이 패인 흙마당 같았다.'는 표현이 참 멋져요!
나중에 영화를 보기 위해 자세한 내용은 일부러 읽지 않았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섬사이 2011-02-25 20:45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이 이렇게 늦어버렸어요.
제가 요즘 서재를 잘 들어오지 못해서 그만...
죄송해요.
암튼 멋지다고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시', 저는 무척 좋았는데, 감은빛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꿈꾸는섬 2011-02-1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영화리뷰를 이제야 봤네요.^^
'시' 참 좋더라구요.^^

섬사이 2011-02-25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기대 이상이었어요.
댓글을 너무 늦게 달아서 미안해요. ㅜ.ㅜ

세실 2011-02-2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 보면서 그냥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현실과 괴리되는 그 모습이 안타깝더라구요.
공주풍의 옷을 입고 시를 배우지만 현실은 너무 팍팍하잖아요.
그냥 현실에 적응하며 힘들면 힘들다, 못하면 못한다 표현하고 사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 영화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결국엔 자살로 가는 결말도요......
끝까지 현실도피적인 느낌이랄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2007년에 읽고 리뷰를 올렸던 책이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극히 드문 내가 이 책을 다시 들게 된 것은 순전히 도서관 책 읽기 모임에서 이 책을 읽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매일매일의 고통이,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장면으로 거듭해서 꿈으로 번역되는 걸까?'  

두 번째 읽는 이 책에서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으로 레비는 부나의 화학실험실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서경식 교수가 낸 책의 제목인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지금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진짜 이야기'로의 접근을 막는 방해도 공공연하게 진행되곤 한다. 때론 '진짜 이야기'를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워 스스로 귀를 막고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는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를 묻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갈망하며 매일 고통스러운 꿈을 꾸는지도.  

두 번째 책은 서경식 교수가 쓴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비극을 다뤘다면 이 책은 근대 제국주의의 결과로 생겨난 현대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세상 곳곳에서 디아스포라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들의 지난한 삶을 통찰한다.  

고통의 공감을 통해서만 연결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외부적인 충격-내가 계획하거나 의도한 바 없는-에 의해 내 삶이 전복될 정도로 일그러진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디아스포라들의 삶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것에 전적인 공감이 이루어지진 않는다. 역사의 커다란 굴곡이 없지 않았지만 그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내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부끄럽게도 내 삶을 평온하게 지켜왔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광주의 풍경 앞에서 '운이 좋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비겁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프리모 레비를 비롯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 누스바움, 장 아메리, 파울 첼란 등- 에게 집요하고 악랄하게 강요된 고립과 고통이 자기 삶을 짓눌러 파괴시키는 것을 견뎌내기란 상상이 불가능할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픈 삶과 죽음이 한동안 마음 속에 끈적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읽어가고 있는 <개념-뿌리들>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인간은 목적이라는 것을 떠나서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인간은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존재이고 인간의 존재 방식은 과거에서 그를 떠미는 원인들 못지 않게 미래에서 그를 끌어당기는 목적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죠.  
....... 중략 .........
시간을 앞당겨서 미래를 본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에요. 자기 뒤에서 떠미는 기계적인 인과의 결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시간을 앞당겨서 미래를 기대한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행동을 이끌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볼 수 있는 미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도 없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단순한 삶의 관성이라고 습관처럼 지껄이며 일상을 지루하다고 여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과거와 미래 뿐 아니라 현재의 일상까지도 모두 참혹했을 것이다. 뒤에서 떠미는 기계적인 인과의 고리가 현재를 절망스럽게 만들고, 미래조차도 절망스러운 현재를 개선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죽음이 삶보다 가볍다고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프리모 레비가 우리가 들어주기를 갈망했던 이야기들이 <디아스포라 기행> 속에도 있었다.  서경식 교수의 책들 중에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었는데, 그의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책들만 놓고 본다면 그의 시선은 음울하고 어둡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들어두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잘 듣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경제, 경영, 투자, 재테크... 그런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난 많이 둔하다. 국방부에서 이 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줬을 때, 내가 이 책을 덜컥 사 버린 데는 읽고 싶다기 보다 이 책에 대한 응원(?)의 의도가 컸다. 게다가 '부자되기'를 위한 안내서가 아니니까, 세상을 '경제'라는 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한 의도의 책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은 내내 책꽂이에 꽂혀있었는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또 덜컥 구입하면서, '순서'에 대한 쓸데없는 강박(?)에 밀려 펼치게 된 것이다. 어쩐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먼저 읽어버리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영영 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제국주의 식민 정책이 정말 끝난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치적 지배력은 사라졌다고 해도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는 자본주의라는 명목아래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무엇이 우리 눈을 흐리게 하는 걸까.

도서관 책 읽기 모임 때문에 읽게 된 이 책에서는 세계사 속에서 커피가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하며 어떤 단면들을 보여주는 지를 설명한다. 그 날 책 읽기 모임을 열면서 도무지 그냥 커피를 마시면 안될 것 같아서 모임 전날 나가 공정무역 커피를 샀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  
'하지만 커피에는 차나 술과는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지금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서 혼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저 먼 중남미나 아프리카 어딘가의 세상에서 커피를 생산해야 하고(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닌) 그 커피콩을 무사히 우리에게 보내주는 일련의 산업구조(수출업자,중개인,선박회사,창고회사,가공업자,소매점,커피점 등등)가 트럭 한 대, 사람 한 명에 이르기까지 성실하게 기능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차나 술을 마시는 것과는 달리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공적이고 문명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유럽열강의 식민지 지배라는 오랜 과거와 원활한 세계교역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행위이다.'
나는 위선적인 얼굴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자유주의무역과 제국주의 쪽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부자연스러운' 커피를 잊지 못해 난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언젠가는 끊고 말거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며칠 전 선물받은 이 책도 읽었다. 작고 두껍지 않은 책인데 글이 주는 중량감은 꽤 묵직했다. 맨처음의 폭력은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된 걸까, 하는 생각의 꼬리가 길게 남았다. 어린 바르트와 거친 베트예만은 어쩐지 서로 닮았다. 둘 다 너무 외롭고, 지독히도 운이 없고, 미숙하고, 어둡고, 슬프고, 춥다. 행복한 결말을 빌어주고 싶지만 차갑게 굳어버린 감정은 그렇게 쉽게 따뜻하게 데워지거나 풀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용서와 상처는 그렇게 쉽게 덮어지거나 지워지거나 말끔히 없었던 듯이 아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위로 터지는 폭죽이라니... 아마도 그들은 계속 슬프고 외로울 것만 같다. 1월 0일은 계속 될 것이고 그들은 계속 맨손일 것이다. 무력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악을 품고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안쓰럽고 슬픈가.

1월에 내가 본 영화 다섯 편이다. 한 달 동안 이렇게 영화를 많이 보기는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한 번 보기 시작하니까 줄줄이 연이어 보고싶은 영화들이 마구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한동안은 영화를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새미의 어드벤처>는 꼬맹이딸과 함께 가서 봤다. 3D로 예매해서 봤는데  3D영화가 어린아이들에게는 사시가 될 위험이 있다며 남편이 질색을 했다. 이번 딱 한 번만 3D로 보겠다고 하고서 본 영화다. 그런데 꼬맹이딸이 보고 싶어하는 <라푼첼>이 또 3D다. 이건 어쩐담??? 
<조선명탐정>은 동네 엄마들이 보러가자고 해서 아침 일찍 씨네시티에서 봤다. 진지한 무게감을 덜고 코믹의 가벼움을 더한 김명민이 낯설면서도 "역시 김명민"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김명민의 콤비인 오달수 보는 것 또한 즐겁다. 영화는 큰 웃음이나 큰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식상한 웃음코드와 코믹을 의식해서인지 지나치게 과장했다 싶은 설정들도 종종 눈에 띈다. 코믹물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봐줘야 했다. 김명민과 오달수, 퓨전사극의 독특한 소품과 장치들을 가볍게 즐겨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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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30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은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독서회에서 이런 책들을 선정하지 못했어요. 2011년엔 섬사이님 페이퍼를 참고하며 우리도 이런 책도 봐야겠어요.^^
조선명탐정은 방금 심야로 보고 왔어요~ 가볍게 웃으며 보기 좋은 영화였어요.

섬사이 2011-02-04 18:19   좋아요 0 | URL
책 읽기 모임에서 다음 책은 어떤 책을 고를까가 어렵더라구요. 서로 관심분야도 다르고 하니까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도 해요. 순오기님 덕분에 책읽기 모임을 계속 이어갈 힘을 얻었더랬어요. 3월부터는 신동호 선생님을 다시 모실 수 있도록 계획을 추진하고 있긴 한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

마녀고양이 2011-01-3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좋은 책을 많이, 이렇게 많은 영화를 보시다니...
너무 부러워여. 요즘은 여기저기서 제 게으름을 반성 중인데,
계속 게으르기만 하고 있어요. ㅎㅎ

섬사이님, 즐거운 설 연휴 되셔염!

섬사이 2011-02-04 18:24   좋아요 0 | URL
가끔 어쩌다 한 번씩은 게으름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잖아요. 사람이 늘 한결같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구요. 저는 1월 한 달 영화보러 다니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집안일에 게으름을 떨었거든요. ^^

치유 2011-02-0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부지런하게 삶을 즐기시는 멋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가조 모두 건강하시길~!

섬사이 2011-02-04 18:33   좋아요 0 | URL
아~~ 배꽃님~!! 너무너무 반가워요.
설 잘 보내셨나요?
배꽃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새해엔 자주 뵈어요~~ ^^
 

 

  

원래는 큰딸과 '샤갈전'과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딸이 자기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다. 열아홉살, 그렇게 많이 자랐다. 이제 혼자서 미술전을 즐길 수 있을만큼. 엄마와 떨어져 혼자 다녀오고 싶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에게도 열아홉살의 시간들이 있었으니까. 큰딸은 내가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될만큼 자란 것이다. 하나하나 일일이 다 챙겨주고, 가고 싶다는 장소를 동행해줘야 했던 시절이 지났다.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완전히 독립해서 내 슬하를 떠날 나이가 될 것이다.  잘 보고 오라고 기꺼이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 엠 러브'    

여주인공 엠마는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여자다. 우아하면서도 단정한 미모를 갖추고 이탈리아 상류층 레키 가문의 화려한 안주인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파티 중간에 방으로 돌아와 혼자 있는 모습이라든가 레키가문의 후계자를 지정하는 자리에서의 불편함을 바라볼 때면 잘 구워졌지만 깨지기 쉬운 예술 도자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러시아의 예술품 복원전문가의 딸이었던 엠마가 남편과 결혼해서 이탈리아에 와서 살게 되면서 그녀는 "이탈리아 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상류층의 안주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녀는 러시아 인으로서의 본래의 자기 모습들을 지워가야 했을 것이다. 그건 엠마에게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억압이었을 것이다.  

 

그런 엠마가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를 만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토니오의 요리를 먼저 만난다. 안토니오가 만든 새우요리는 엠마에게는 '틈'의 발견 같은 게 아니었을까. 엠마는 새우요리를 황홀하게 탐식한다. 레키 가가 자본, 경쟁, 문명, 형식 등을 의미한다면 안토니오와 그의 요리는 자연, 감각, 욕망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엠마는 안토니오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억압을 자각했고, 안토니오는 억압을 빠져나갈  '틈'을 열어 보여주는 것이다. '틈'을 통해 엠마는 새로운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엠마가 안토니오를 만나면서 점점 더 그 틈으로 빠져들고 자기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안토니오의 트럭을 타고 그의 집을 향해 가는 초록 숲 사이의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긴 장면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엠마가 사는 밀라노라는 도시의 건물들을 훑어지나가며 보여주는 장면과 안토니오의 집을 향해 갈 때 보여주는 길 가의 초록빛 숲의 풍경은 대조적이다. 도시의 건물은 인공적이며 계산적이고 잘 길들여져 있으며 공간과 공간이 단절되어 있다. 마치 이탈리아 상류층 안주인으로서의 엠마의 모습과 비슷하다. 안토니오의 집은, 엠마와 안토니오가 정사를 벌이는 장소이고 그 곳은 아무렇게나 놓여진 메트리스 위이거나 날벌레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고 풀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 속이다. 그만큼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토니오의 소박한 외모도 - 여주인공 엠마(틸다 스윈튼)와 별로 어울리지 않고  남주인공치고 별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의 존재인식은 왜 꼭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고 여자가 자기 존재를 찾아 떠난 곳이 결국 또 다른 남자의 품이라는 데서 오는 불쾌감도 상쇄되었다. 안토니오는 단순히 남자가 아니라 자연과 감각과 욕망을 찾아가는 틈이었으니까.  안토니오가 엠마를 본래의 이름 '키티쉬' 라고 불러주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엠마는 사랑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키티쉬로서의 '자연인'이기를 선택한 것 뿐이다.

 

엠마가 레키 가를 떠나기 전 남편에게 "당신이 알던 나는 이제 없다"고 말하고 남편은 엠마에게 "당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하는 장면은 레키 가의 우아한 안주인으로서의 엠마의 존재무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안토니오를 따라가다 보게 되는 러시아의 성 바실리 성당을 닮은 사원을 발견하는 것은 그를 통해 자기를 찾게 되리라는 암시였을 것이다.  엠마가 가진 고향 러시아에 대한 향수는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갈망과 같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영화 속 엠마의 딸은 엠마에게 안토니오와 더불어 또다른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기가 바라는 것에 대해,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유약한 듯 하면서도 확실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딸은 그림을 선호하는 집안 분위기를 알면서도 사진을 하겠다고 선택했고, 자기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자기 의견을 내보이는 데 부드럽지만 약했던 엠마에게 딸이 보여주는 의외의 단호함은 자극적이지 않았을까.

처음엔 이 영화의 제목 'I AM LOVE'에서 'I'가 주인공 엠마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I'는 '사랑'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 존재를 이토록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나'는 바로 '사랑'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그 사랑은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이며 존중일 것이다.

'틈'에 대한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영화 속 레키 가에서는 창을 가족과 다름없는 가정부 이다가 엠마가 있는 방의 창문을 열고 닫아 준다. 안토니오와 첫 정사를 벌이던 방의 창문은 활짝 열린 채였고. 그렇게 엠마의 삶에서 안토니오는 틈이 되어주고 그 틈을 통해 엠마는 안과 밖이 바뀌는 것 만큼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내 삶의 창문과 틈은 내가 열고 닫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OO으로서 살아가는 법' 또는 'OO가 되기 위한 법'을 익히기 위해 애쓰기 보다 그냥 '나'를 제대로 보고 느끼며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가 내 그저 그런 일상의 틈을 벌려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는 것도 행복할 것이다. 최근에 내가 받은 뜻밖의 선물은 내게 그런 '틈'이 되어주었다. 그 선물을 받은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할 일들이 빡빡하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서 난 좀 지치고 한숨이 나왔다.  선물은 그 날, 따뜻하고 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커다란 틈이었다. 그 행복을 주신 님께 이 페이퍼의 마지막에 고맙다는,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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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풍경때문에라도 이 영화 보고 싶어요. 멋진 리뷰에요, 섬사이님. 그러나 요즘에는 삶의 틈을 꼭꼭 닫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섬사이 2011-02-04 18:35   좋아요 0 | URL
삶의 틈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닫히는 게 아니라면 꼭꼭 닫고 산다고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열고 싶을 때 열면 되겠죠. ^^

세실 2011-01-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군요. 님 리뷰는 영화를 꼭 봐야할것같은 의무감마저 들게 합니다.
참 위험한 '틈'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자신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겠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섬사이 2011-02-04 18: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엠마처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훌쩍 떠나는 용기가... 저에게는..
하하하^^;;

다락방 2011-01-30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저는 이 영화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대사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좀 난해하기도 했어요. 영화를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해주지 싶었달까요.

저는요 섬사이님, 이 영화에서 큰아들이 너무 좋았어요. 큰아들 때문에 페이퍼 한번 쓰고 싶어질만큼 말이지요. 제일 처음 장면, 큰아들이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집에 돌아와서는 양복 단추를 채우며 계단을 내려가잖아요. 와, 그장면이 정말 너무 근사해서, 반드시 나도 아들을 낳겠다고 막 생각했어요. 어휴.

섬사이 2011-02-04 18:52   좋아요 0 | URL
예, 대사가 참 건조했어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구요. 전, 저런게 상류층의 대화법인가보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큰아들이 가정부아줌마 이다에게 기대어 울었을 때 더 마음이 짠했어요.
이 영화에 나온 남자 배우들 중에 큰아들의 인물이 출중했죠? 레키 가의 사람들 속에서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가졌구요. 아마도 그래서 죽어야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레키 가에서 견딜 수 없는 성품을 가진 것 같거든요.
그런 아들 말고, 그런 남친 어때요? 다락방님은 아직 '아들'을 꿈꾸기엔 너무 젊은 나인데... ^^
 

 

영화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사랑? 어떤 사랑?  

영화의 첫 시작은 소피아가 계단을 내려와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 톨스토이 침대에 올라가 곁에 눕는 장면이었다. 소피아는 잠든 톨스토이의 뺨에 키스를 하고 남편의 팔로 자기 어깨를 감싼다. 하지만 금방 툭, 떨어지는 남편의 손. 몇 차례 남편의 손이 자기를 감싸주지 않고 떨어지자 소피아는 남편의 손을 끌어 자기 어깨 위에 놓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손으로 꼭 붙잡는다. 톨스토이는 그것도 모르고 코를 골며 계속 잠에 빠져 있다.  

참 신기하게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이 첫 장면이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른다. 비저항주의, 사유재산포기 등을 주장한 이른바 톨스토이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아내 소피아와의 갈등의 원인과 소피아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 무엇인가를 이 첫 장면이 암시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상에 취해 있는 톨스토이와 그 고귀한 이상에게 남편을 뺏긴 듯한 소피아. 게다가 톨스토이가 품었던 순수한 이상은 그 실현을 위해 조직화되면서 누군가의 의도와 목적에 맞추어 변질되고 조작되어 가는 분위기를 풍긴다.  하긴 세상의 종교와 이념들이 모두 그러했으니 톨스토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소피아는 남편 톨스토이에게 자주 묻는다. "나를 사랑해요?"하고. 소피아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톨스토이의 사유재산 포기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소피아가 걱정하는 것은 톨스토이의 사후 자식과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의 상실이 아니라, 46년 동안 삶을 함께 나누어 온 남편이 '이상의 실현'을 이유로 점점 멀어지면서 자기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상실감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시작되면서 스크린에 보였던 문장,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그 문장은 소피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소피아의 다소 과장되고 과잉된 감정과 행동은 오직 톨스토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건지도. '성인'으로 추앙받는 남편이 아니라 침대에서 수탉 소리를 내는 남편이 그녀를 행복하게 했으니 애초부터 톨스토이의 이상은 소피아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소피아가 톨스토이의 이상에 뜻을 함께 한 블라디미르를 증오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라디미르는 끊임없이 톨스토이에게서 소피아를 떼어놓고 싶어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블라디미르가 앞장 서서 추진한 '톨스토이 이상 실현 사업'(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으나)의 하나인 공동체 농장은 뭔가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감시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상'과 '공동체'는 있으나 사람의 '삶'의 알맹이가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톨스토이의 공동체 농장의 불안은 톨스토이가 농장을 방문했을 때 찍은 단체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찍기에 익숙치 않았던 당시 사람들의 카메라 앞에서의 긴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라는 제목을 붙이기엔 그들의 표정과 시선과 거리가 심상치 않다. 

이 영화에서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는 인물은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는 블라디미르가 아니다. 오히려 톨스토이를 숭배하며 톨스토이의 비서가 된 순진한 청년 발렌틴과 그의 연인인 의지가 강하고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을 갖고 있는 용감한 여인 마샤다. 마샤는 원칙을 지키느라 (그것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형식으로서의 자잘한 원칙들) 본질을 잃고 있는 공동체를 직시한다. 그녀는 톨스토이주의의 본질은 '자유'와 '사랑'이라고 말하고는 공동체를 버리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어떤 의미에서 이상은 때때로 '허구'에 가깝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각각 생생한 빛깔과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랑이 '이상' 속에서는 질식하고 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발렌틴은 그토록 숭배했던 톨스토이와 소피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오히려 안타까움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 인간에게 더 소중한 걸까. 인류애를 실현하는 이상일까, 아니면 '불완전한 남자와 불완전한 여자'가 나누는 리얼리티한 사랑일까.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나 '사랑'이란 것 자체가 너무 불명확하고 변덕스럽고 불가해할 뿐이니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자기의 신념을 위해 소피아를 떠나 쓸쓸한 기차역에서 죽음을 맞이한 톨스토이는 마지막 순간에 그 해답을 찾았을까. 톨스토이는 자기의 삶은 블라디미르가 계획했던 톨스토이의 우상화 작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작품의 초고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13명의 아이를 낳은 소피아와 동거동락하며 나누었던 사랑의 의미 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의미였는지, 죽음이 침대 머리까지 다가왔을 때 톨스토이는 소피아를 찾는다.  

부럽기도 했다. 과연 톨스토이와 소피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렇게 백발이 성성해지고 주름투성이 얼굴이 되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나를 사랑해요?'라고 물어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이 궁금하기나 할까? 나는 지금 가슴 속에 어떤 사랑을 품고 있는 걸까.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야 겠다.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고 무척 끌렸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읽지 않으면 찝찝함에 시달릴 것만 같은 예감까지 보태졌다.  어떤 <안나 카레니나>를 고를까도 고민이다.   

민음사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구절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문학동네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구절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어느 쪽의 번역이 마음에 드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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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1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문학동네의 앞 구절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민음사의 뒷 구절이 마음에 드네요. 하핫.

저는 민음사 판으로 읽고 싶었었어요.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는 민음사 전집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본의 아니게 문학동네 판으로 읽었거든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어보지 않아 비교는 어렵지만, 문학동네의 안나 카레니나는 참 마음에 들었어요, 섬사이님.

그런데 섬사이님, 영화 보셨다!!!!!!! 히죽 ^________^

섬사이 2011-01-20 10:23   좋아요 0 | URL
번역된 걸 보면 양쪽이 다 조금씩 끌려요.
민음사 본은 정갈하지만 다소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이고
문학동네 본은 번역한 사람이 꽤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하는데 한편으로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해요. ^^
아무튼 2월부터는 안나 카레니나를 꽉 붙잡을 거예요.

hnine 2011-01-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오전에 TV를 종종 보았는데 지난 주였나? 고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톨스토이에 대한 특강을 며칠에 걸쳐서 해주더군요. 톨스토이라는 거장에 대해 다각도로 파헤치고 해석하여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첫장면이 인상적인데요? 톨스토이가 죽음을 맞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가요?
마지막에 써주신 구절은, 전 민음사 번역이 더 익숙하네요.

섬사이 2011-01-20 10:26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좋은 강의를 놓쳤네요. 재방송 해주면 좋은데..
톨스토이가 쓸쓸한 기차역 역장의 집에서 죽음을 맞는 게 마지막 장면이에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아무튼 참 좋았어요. ^^

프레이야 2011-01-1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제가 보고싶었던 영화에 이렇게 좋은 글 주셔서 넘 좋아요.^^
여긴 상영을 너무 짧게 하고 지나가 못 보고말았어요.
다음 기회가 있겠지요.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톨스토이의 정신세계 이해를 돕더군요.
그의 사생활은 어땠을까요. 나는 지금 어떤 사랑을 품고 있을까, 저도 생각해요.

민음사 번역이 익숙한데, 문학동네 번역이 끌리네요.
나름나름의 불행이라... 표지도 문학동네 것이 끌립니다.^^

섬사이 2011-01-20 10:2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외에 '영화'를 가지고 저를 자극하신 분이 바로 프레이야님이에요.
그런데 한 번 보기 시작하니까 보고 싶은 영화들이 줄줄이 따라올라와서 큰일이에요. 지금도 '아이 엠 러브'를 예매할까 말까 고민 중이라는..그 다음에 '환상의 그대',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고슴도치와 여우> 얼른 보관함에 넣어둘래요. 제목이 무척 재미있네요.
번역은, 그쵸? 자꾸자꾸 읽어보면 문학동네 번역에서 맛이 느껴져요.

순오기 2011-01-20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놓쳤어요~~~~~ 리뷰가 좋아 꼭 보고 싶은데요.
안나 카레니나~ 민음사 문학동네, 고민하게 만드네요~ ^^

섬사이 2011-01-20 10:31   좋아요 0 | URL
저 큰일났어요. 극장이랑 너무 친해지려고 해서요.^^ 저 영화는 저 혼자 보러갔었는데요, 제 앞이랑 제가 앉은 줄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뒤에만 몇 명 앉아 있더라구요. 극장 안을 저혼자 통째로 빌린 듯한 착각 속에서 영화에 빠져드는 기분, 정말 좋았어요. ^^
어쩌면 올해는 책보다는 영화에 대한 리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무스탕 2011-01-20 11:38   좋아요 0 | URL
혼자 영화보는거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 같이 다니기 어려워지지요.
제가 그렇거든요. 같이 보는것도 재미있지만 혼자 보면서 옴팡 영화에 빠져드는것도 끝내주게 좋아요.
올해 섬사이님의 영화 리뷰, 잔뜩 기대에요 :)

섬사이 2011-01-21 10:30   좋아요 0 | URL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보는 거, 처음이었는데 훨씬 자유롭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순오기 2011-01-22 00:33   좋아요 0 | URL
제가 영화 혼자 잘보는 아줌마에요.
극장을 통째로 빌려보는 기분도 나쁘지 않지요.ㅋㅋ
영화 리뷰, 책 리뷰~ 요즘은 게으름 부리는 중...
다른 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 그런 게 어렵더군요.
좀 전에 확인하니 우리동네 극장에 '울지마 톤즈'가 걸려서 올해 첫 영화로 볼거에요.

섬사이 2011-01-24 17:43   좋아요 0 | URL
일이 많으신가 봐요.
울지마, 톤즈.
그 영화를 보면 슬프고 미안하고, 반성하고, 뿌듯하고..
아주 복잡한 마음이 될 것같아요.
순오기님의 영화소개, 기다릴게요.
보고싶은 영화들이 너무너무 많아졌어요. ^^

순오기 2011-01-2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이 울지마 톤즈를 안 본다 하고, 심야상영도 없어서 다른 걸 봤어요.
심장이 뛴다~~~~~~~~~ 를 봤는데 좀 별로였어요.ㅜㅜ
절박한 상황인데도 관객이 공감하기 어려운 설정, 긴박감이 떨어지는 연출이 문제인지, 편집이 문제인지...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어요.

순오기 2011-01-26 18:55   좋아요 0 | URL
오늘 지나면 톤즈 내릴거 같아서 8시 25분 마지막 프로 보러 갑니다~

섬사이 2011-01-28 16: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심야를, 저는 조조를~~ ^^
전 오늘 동네 엄마들이랑 같이 '조선명탐정'보고 왔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어요.
울지마 톤즈는 어떠셨는지...
'울지마요, 순오기님..'할만큼 슬프고 감동적이고 막 그러셨나요?^^

순오기 2011-01-28 20:22   좋아요 0 | URL
좀 울었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니 밥벌이 할만한 전문직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나를 반성하며 부끄러웠어요.ㅜㅜ

섬사이 2011-01-29 14:47   좋아요 0 | URL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겠지요.
순오기님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시는 분이 부끄럽다면
저 같은 사람은 쥐구멍을 찾아야겠군요. ^^

세실 2011-01-26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요 번역이 심플하니 좋은데요. 님 리뷰 읽고나니 영화 보고 싶네요.
안나 카레니나 읽는 것으로 대신할까요? 그나저나 언제....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슬퍼요.

섬사이 2011-01-28 16: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한 일주일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방해도 없고, 어떤 스케줄도 없는 그냥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전 전업주부인데도 그런데 세실님은 더 하시겠지요?
영화는 참 좋았어요. 그런데 하도 오랜만에 극장나들이를 다니니까,
보는 영화마다 다 좋아요. ^^
 

다른 분들 서재에 놀러갔다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나도 영화를 꼭 한 편 봐야지!'하고 생각했다가 늘 흐지부지되곤 했다. 내 하루의 일상 중 한 켠의 시간을 - 그것도 나 편한대로의 아무 때나가 아니라 영화상영시간과 극장까지의 거리를 고려한 - 잘 떼어내어 마련해 두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보러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이 아직 어색한 나는 누군가와 영화 취향과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도 꽤 번거롭고 귀찮았다.

얼마 전 순오기 님 서재에 놀러갔다가 영화 관련 이벤트 페이퍼와 맞닥뜨렸다. 오~ 이런, 순오기님은 작년 한 해동안 자그마치 29편의 영화를 보셨던 것이다. 한 달에 약 2.4편의 영화를 보셨다는 건데 나와는 너무 대조적인 숫자였다. 나는, 글쎄 제대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기억이 가물가물...  극장에 가서 제대로 자리잡고 앉아 누구에게도 방해받는 일 없이 온전히 스크린에 몰두하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늘 마음 뿐, 한심하게도 늘 어영부영 흐지부지 움직이지 않고 지냈던 거라는 반성이 밀려들었다.  

이럴 땐 '일은 저지르고 보자!'라는 게 명언일 수 있는 경우다. 그래서 충동적으로(이렇게 오랫동안 묵힌 충동도 흔치 않겠지만) 씨네 큐브에서 상영중인 '시리어스 맨'을 예매했다. 도서관에서 같이 모임을 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문자를 돌리니까 두 명이 같이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가지고 그동안 내가 뭐한 거지?)

아침 일찍부터 잔눈이 흩뿌리던 1월 11일, 아이들을 각자 가야할 곳으로 보내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로 나와 잠시 방향을 잃고 헤매었으나(내가 길치,방향치라는 증거상황은 자주 나타난다) 무사히 그 작고 조용한 극장에 도착, 상영 시작 5분 전 쯤 2관 43번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왜 '시리어스 맨'을 골랐어? 하고 묻는다면 영화 포스터 속 "좀 더 심플하게 살 순 없을까?"라는 질문이 나 자신에게 자주 묻던 것이라서 혹시 영화를 보며 그 대답에 대한 힌트라도 반짝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고, 또 왜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명하다는 코엔 형제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터라 이 영화를 통해 코엔형제와 인사를 나누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이 즐겨보는 영화정보프로그램을 같이 보다가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자의 표정이 일상 속 사람들의 것과 많이 닮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비장하지도 비통하지도 않게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짜증은 나지만 견딜 수밖에 없는 그런 거.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블랙코미디의 정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 냉소적이며 음울하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유머 감각에 기초하고 있다.'고 나온다. 그러니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빵! 터지는 일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도무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예측불가능한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신날 일이 뭐람. 주인공 래리가 칠판 한가득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수학적 증명까지 풀어놓는데 감히 반박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못한다. 수학이라면 머리에 쥐가 나는 사람이라.)   

이런 메시지는 영화의 맨처음에 프롤로그처럼 붙은 에피소드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눈 내리는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차 바퀴가 빠져버려 쩔쩔매던 한 남자가 마침 지나가던 오래 전 알던 늙은 랍비를 우연히 만나 그 랍비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실을 아내에게 얘기하자 아내는 그 랍비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며 이는 '신의 저주'라고 단정짓는다. 남자의 초대로 랍비는 그 눈 내리는 밤에 남자의 집에 들르지만 남자의 아내가 얼음송곳으로 랍비의 가슴을 찌른다. '선행을 하면 복을 받는다'거나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거나 하는 법칙이 산산조각나는 것이다.  늙은 랍비는 그 부부에게 분노하고 저주를 퍼부었을까?  랍비는 "정말 대단한 아내를 두었군." 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가슴에 얼음송곳이 박힌채로 눈 내리는 밤 속으로 걸어나갈 뿐이다. 도움을 받았던 남자의 아내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을까? 아니다. 악령을 물리쳤다면서 문을 쾅 닫아버릴 뿐이다.  영화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 전체에 대한 요약적 암시였다.

지루하다 못해 지겨운 일상을 견디는, 아니 그런 일상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래리는 적어도 자기의 삶을 이해해보려고 애를 쓴다.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고, 지혜롭다는 랍비를 찾아가고, 자기 아내와 사랑에 빠진 친구를 만나고, 하다못해 묘한 성적 매력을 내뿜는 이웃집 여자를 찾아가 위안을 받으려고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방법들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그는 뼛 속까지 '시리어스 맨'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말하는 우리 인생의 해법은 뭘까.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지루하고 제멋대로인 삶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힘들지 않게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래리가 칠판 가득 풀어놓는 숫자와 공식들처럼 삶이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는 - 비록 그것이 불확실성의 법칙이라고 할지라도 불확실성까지도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게 - '시리어스 맨'들인데 인생은 도무지 '시리어스'하지 못하게 우리를 농락하려 드니 말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 스크린 위에 뜬 자막은 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삶을 이해할 수 없다면 연민하라', '그냥 받아들여라', 뭐 그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말 만나기 힘든 가장 지혜롭다는 랍비 마르샥이 성인식을 마친 래리의 아들에게 들려준 말은 'Somebody to Love'라는 제목의 팝송가사.  

인생이 그래도 덜 힘들게 흘러가도록 하려면 그냥 받아들이며 연민하고 사랑하라는 뜻일까. 담배를 권하는 의사와 커피에 대고 가래가 잔뜩 낀 기침을 하는 비서와, 이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토네이도까지도. (코엔형제는 결코 그 토네이도를 피할 수 있도록 지하대피소의 문을 따주지 않고 아내와의 불화, 아들의 성인식, 교수로서의 평생재직권까지도 해결되어 한숨 돌리고 있는 주인공 래리를 밖으로 불러내기까지 한다. 물론 불안의 요소가 곳곳에 아직 남아있지만 간신히 제자리를 찾은 듯한 래리의 삶은 마구 뒤엉켜질 운명인 것이다.) 

동행했던 두 엄마는 옆자리에서 연거푸 하품을 했다. 전날 세 시간밖에 못 잤는데도 난 신기하게도 하품이 나진 않았다.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흥미롭긴 했으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뭐, 저런 영화가 다 있나"했다는 사람에게 웃으며 "코엔 형제가 대단하긴 하네. 삶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지겹다는 것에 대해 온몸으로 반응하게 했잖아."했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따라 웃는다. 같이 간 두 사람이 너무 지루해한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했던 게 미안해졌다.  

코엔형제, 은근 매력이 느껴진다.  

일행과 헤어지고나서 도서관에 볼 일이 있어 왕십리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눈이다. 아침부터 잔눈이 뿌리다 말다 하더니 이제 꽤 굵은 눈발이 촘촘하게 내리고 있었다. 겨울, 눈이 내리는 날엔 요한 파헬벨의 캐논을 듣고 싶어진다. 가방에서 MP3를 꺼내 파헬벨의 캐논만 반복되게 해놓고 도서관까지 걸었다. 춥지만 그래도 바람이 조금 더 불어서 눈송이들이 춤을 추듯 휘날리며 떨어져야 캐논의 분위기랑 더 잘 어울리겠지만 아쉬운대로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을 즐겼다.   

예측불가능한 삶은 곳곳에 이런 작은 행운을 숨겨놓기도 하나보다.  도서관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이 그대로 눈 내리는 풍경을 담은 커다란 액자가 되어 눈을 홀렸다.   

아직 '토네이도'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볼 수 없는 건지도 모르고. 아마 닥치고 나서야 "으악~!내 인생을 토네이도가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지나가 버렸어!"하고 깨닫게 될 확률이 99.99%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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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도 올해는 영화를 많이 보시겠군요.^^
저도 아이 키우는 10년은 영화관 출입 꿈도 못 꿨어요.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을 이제야 보상받는 거죠.ㅋㅋ
우리 집에서 걸어다닐 거리에 영화관이 생긴 2007년엔 45편을 보고 25편의 리뷰를 썼었죠. 우리동네 영화관 홈페이지에요.
누군가와 시간 맞추는 게 번거로워서 맘 내키고 시간되면 심야도 잘 갑니다.^^

순오기 2011-01-12 21:12   좋아요 0 | URL
아~ 제목이 저장된 시간으로 돼 있어요.^^

섬사이 2011-01-13 07:33   좋아요 0 | URL
아이쿠,제가 임시저장하기를 누른다고 하고는,
페이퍼 쓰다가 급하게 나가느라고 턱 하니 글을 올려놓았네요.
ㅠ.ㅠ

hnine 2011-01-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소개하는 것을 저도 보면서 관심 영화로 찍어놓았었어요. 저도 나름 시리어스맨 (우먼?) 인지라...ㅋㅋ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상영하는 것을 못봤네요.
캐논이란 말 자체가 반복한다는 뜻이라지요? 그 캐논을 계속 반복해서 들으시며 걸으셨군요. 저도 그럼 지금 리뷰 쓰면서 오랜만에 캐논을 반복해서 들어봐야겠어요.

섬사이 2011-01-14 08:06   좋아요 0 | URL
눈이 내리고 있으면 그 곡을 찾아 듣고 싶어지더라구요.
때마침 가방 안에 mp3를 챙겨 넣고 나와서 다행이었지요.
이 영화, 씨네큐브에서만 상영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것도 오전 11시에 딱 한 번.
씨네큐브에서도 어젠가로 상영종료되었을 것 같은데...

2011-01-13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