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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구판절판


게달레 대장이 책을 다시 펼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늘 슬픈 것들만 떠올리면 독이 되고,강한 빨치산이 되기 어렵네. 그리고 난 세 가지만 믿네. 총알,보드카,여자...예전엔 이론을 믿어 한때 경도되었지만, 이제 아니네."
"왜요?"
"그건 삶이 아니니까."
"그럼 삶은 뭐죠?"
"앞으로는 살아야 하고 뒤로는 수긍해야 하는, 뭐 그런 것쯤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자네가 나한테 이렇게 꼬치꼬치 묻지 않는 것. 하하."
"...."
"난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 총알이 날아가다가 방향을 바꿔버렸으면 좋겠다고."
"어디로요?"
"나에게로."
"아니, 왜요?"
"그래야 진실한 세상으로 바뀔 테니까."
"..."-233쪽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없고 두 번 깥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하물며 사랑이라고 해서 어찌 변하지 않겠는가. (중략) 그렇지만 그는 사랑이란 관계가 모든 걸 떠나 그냥 계절과 비슷한 거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운 겨울엔 서로 꼭 붙어있고, 더운 여름엔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선선한 봄가을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서로 마주보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관계 말이다. -261쪽

이같은 썩은 소비에트 현실이 과연 그게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문제네. 맑스?엥겔스?플레히노프?레닌?트로츠키?스탈린?예수?여호와?무하마드...?
아무도 아니네! 나, 바로 나라는 존재일세. 나를 비롯한 그런 수많은 존재들이 책을 덮지 않고 책속에서 바로 길을 찾았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네. 앞서 책을 읽고 반드시 덮으라는 것도 바로 그런 뜻이었네. 물론 좋은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 뜻이었고...독서의 완성은 책을 덮는 거네. 책을 다 읽는다는 게 아니라 덮어야 할 때를 알고 덮을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네. 거기서부터 길이 시작되지.-268쪽

물론 난 개인적으로도 스탈린이라는 한 인간을 불신한지 오래 되었네. 그가 히틀러와의 협정서에 서명을 해서가 아니라 한 번도 인간을 사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사랑을 모르는 자가 통치자가 된다는 건 강도한테 칼을 쥐어주는 거나 똑같다고 보네. -339쪽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만큼 기억의 고집을 남기고 간다. 그 기억의 고집을 그는 꺾을 수가 없었다. 멘델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털어버리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최근의 기억들마저도 희미해져버렸다. 그림을 그리다가 절반쯤 지우고 절반쯤 다시 그리는 것처럼 모든 게 흐릿한 형체로 중첩되었다. 기억이란 게 과일바구니와도 같은 것이어서 정적량 이상을 담으면 과일 몇 개가 아니라 전부 다 상처받게 된다.-369쪽

"여자들 거의가 나보다 더 많이 먹으면서 스스로에게 체념하고 굴복하더니 마침내 죽어갔어요. 자포자기는 자살 이상의 죄악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난 이를 악물고 버텨냈어요.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요. 글쎄요, 내가 그들보다 특별히 삶을 더 사랑했다거나, 더 집착했을까요? 아마 그건 아닐 거예요."-391쪽

그런데 간사한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다. 충족되고 만족되어도 또 더 원한다. 물론 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동시에 원하는 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434쪽

평화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복수를 불렀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탐욕이 탐욕을 부른 것이었다. 과연 이런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멘델은 현기증이 일어나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436쪽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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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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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힘으로 계곡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의 얼빠진 얼굴을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여관 주인의 물음에 멋진 소풍을 갔다왔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위엄을 갖춘 채 그곳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곰고기 맛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을 더 많이 먹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삶이 내게 선사한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긴 해도 그 고기 맛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 그래서 나는 산드로가 의식적으로 나를 고생과 여행 속으로, 겉보기만 어리석어 보이는 여러 모험 속으로 인도해준 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74쪽

내가 어떤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수를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엄격해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 열매를 누리고 싶은 사람은 너무 오래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도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되었다. -273쪽

하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상담직원의 그물망에 얽혀 있고, 사회와 회사에 대한 의무, 또 그와 유사한 의무의 망에 갇혀 있다. 하지만 그는 장벽을 허물고 과거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자기 마음에 맞게 세워놓고 그 주위에서 영웅의 옷을 꿰매고 수퍼맨처럼 과거를, 자오선을, 위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의 자유,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웠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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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구판절판


"난 저애를 오늘 처음 만났다, 유정아. 저애랑 난 오늘 처음 만난 거야. 그게 다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너는 누구를 처음 만나서, 이제껏 무슨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날 만나게 되었습니까?하고 묻지는 않잖니. 자기 입으로 그 얘길 하면 그냥 듣는 거지. 나에게는 오늘 본 저 애가 처음인 거다. 오늘의 저 아이가 내게는 저 아이의 전부야."-58쪽

"유정아.....고모는... 위선자들 싫어하지 않아."
뜻밖의 말이었다.
"목사나 신부나 수녀나 스님이나 선생이나 아무튼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 참 많아. 어쩌면 내가 그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르지....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158쪽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 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159쪽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248쪽

그때 뜨거웠던 그의 손이... 왜 그때 웃으면서 그의 손을 마주 잡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윤수의 말대로 너무나 간단했는데, 그냥 사랑했으면 됐는데.... 이제 그 온기가 사라져버렸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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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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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니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42쪽

완전한 해방이란 사적인 쾌감과 관계된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56쪽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우주가 무한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뭐래도 상관없어. 다만 내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누군인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우주가 무한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면 나는 무한한 우주에서 살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너무 추울 것 같아. -68쪽

"내 말이 그 말이야. 운우지정이라는 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냐? 그 동안 마이산에는 한 서너 번 가본 것 같구나. 그런데 거기 가서 그 돌탑들을 볼 때마다 사랑이라는 걸 생각하게 돼. 누군가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많은 돌탑을 쌓을 수 있다면 그건 오직 사랑 때문이겠지.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그 돌탑들을 쌓은 사람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을 갈망했다고 하더구나. 그런 갈망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다 그런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76쪽

마르코니는 변압기에 우리가 가지 않도록 짧게 세 번 '톡톡톡' 두들기면 되는 모스부호 'S'로 실험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이야기(Story), 또한 그러하므로 이 세상에 그만큼 많은 '나(Self)'가 존재한다는 애절한 신호(Signal). 정민의 눈에는 옆으로 누운, 짧게는 삼 밀리미터에서 길게는 삼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많은 외로운 'S'들이 누군가 들어줄 사람을 찾아 날개를 달고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82쪽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94쪽

이처럼 지금의 사람들이 핸드폰, 블로그, 검색, 이메일 같은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총격, 수류탄, 폭격, 사살 등의 단어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102쪽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 아래에서 폭력이 빈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 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 것으로 권력 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 그 대리 감시자들의 불안한 권력은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104쪽

우리는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과 연결되는 거야.-110쪽

그녀가 이를 악물며 참았으나,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건 득의만만한 표정, 가족 누구와도 공유해본 적이 없는 자신감이었을 거야. 자기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자의 표정 말이야. 그 장면은 항상 나를 위로해줘. 들어봐, 그건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적이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작은 단서만 하나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찾아올 거란 얘기잖아. -111쪽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너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을 짐을 꾸려 떠나보내라.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123쪽

그러니까 새로운 삶을, 새로운 현실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야. 그래서 나는 망명이란 이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잔인한 현실을 꿈으로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첫번째 단계는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는 일이야. -164쪽

"(전략)거기에 희망이 무엇이라고 나와 있었지? <투란도트>에 말이야."
베르크 씨의 말에 정교수는 답했다.
"밤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장난감 같은 거야. 그래서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희망과 함께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을."-167쪽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의 세계란? 패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 운명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꿈처럼 지나가는 비극의 삶에서 살아남겠다면 먼저 웃으라는, 쓸쓸한 목관과 유머러스한 현악의 전언. 그 순간 베르크 씨는 차이코프스키가 그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인류가 그 곡을 어떤 식으로 들었건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므로 다음에 올 인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곡을 새롭게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폐허가 됐고 베를린에는 물도, 가스도, 전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었다. 왜냐하면 삶이 본질적으로 역설이니까. -220쪽

"허영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군."
"젊은 여자에게 허영이란 거울과 같은 것이라 늘 들고 다니면서 살펴봐야 하는 거니까, 그걸 탓할 수는 없지."
-224쪽

바닷바람이 얼굴로 와 부딪혔다. 파도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우주 저편에서 별빛들이 해변으로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이 세상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레이도 알 것 같았다. -244쪽

검열관이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검열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너'가 '사랑해'라는 동사로 연결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너'는 증오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사랑은 수없이 많으나, 증오는 하나일 뿐이었으므로. 그는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통해 그들이 캠프에 있는 죄수들을 모두 죽이고야말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통해 그는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262쪽

어느 날, 막사 앞에서 그는 기타리스트와 마주쳤다.
"난 너를 이해해. 넌 미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거지. 너는 미친 거야. 나는 너를 이해해."
"난 미치지 않았어. 다만 궁금했을 뿐이야. 절망이 뭐지, 웃음이 뭔지."
"나치에게 아내를 빼앗긴 사람은 너뿐만이 아니야. 하지만 누구도 너처럼 행동하지 않아.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너를 위해 네 피아노 연주가 그친 뒤에도 기타를 연주했어.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죄수들 앞에서 춤곡을 연주하는 거야. 동족의 목숨을 팔아서 연명해보려는 비열한 짓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다만 묻고 있을 뿐이야. 나만의 방식으로 모두에게 묻는 거야. 우리의 삶은 과연 다른 인류에게 기억될 만한 값어치가 있었는가......"
"그게 그 얘기야. 살아남기 위해 늘어놓는 그 음악소리를 철학자의 목소리인 양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미친 짓이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265쪽

"집시들과 나는 죄수들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린 채 죽어갈 수 있게 할 거야.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 까닭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죽고 나면 우리가 왜 이런 세상에 존재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열리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문제야. 모든 죄수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면서 죽어야만 해."
"애당초 존재가 없었다면 고통도 없었던 거야. 너는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죄수들의 영혼을 노예로 삼고 있는, 죽음의 나팔수일 뿐이야."
"존재가 없다면 다만 고통만 사라질 뿐인가? 그들의 부모는? 아내는? 아이들은? 그렇다면 캠프에서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쓰레기이기 때문이지."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야."-266쪽

그의 다리는 지상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땅바닥을 디디고 서 있었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리칼은 구름 속에 있었다. 수많은 구름들이 그 머리칼을 스쳐 지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구름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우리가 더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니, 복되도다. 애당초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없었다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268쪽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니 네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써야만 하는 거야."-283쪽

갑자기 누군가의 삶이 바뀐다면, 갑자기 누군가 죽는다면, 갑자기 누군가 자살한다면 우리는 그만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때부터 나는 당혹스러운 일 앞에서 당혹스러워 하지 않는 자들을 불신하게 됐다. -361쪽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을 무척 좋아해. '커다랗고 하얗고 넓은 침대로.' 캠프에서 나온 뒤로 다시는 커다랗고 하얗고 넓은 침대로 가본 일이 없었어. 왜냐하면 내게는 이해해줘야 할 안나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랬군요. 물어봐서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 그건 미안한 게 아니고 후회가 되는 일이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안나와 더 많이 사랑할 거야. 더 많이 키스하고 더 많이 포옹하고 더 많이 섹스할 거야. 아직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금언은 이것뿐이야."-371쪽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374쪽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저녁이에요. 동쪽 하늘은 파랗고 거기로 별이 떠올라요. 하지만 서쪽을 보면, 아직 빛이 남아 있는 거죠. 요즘 베를린의 밤처럼 말이에요. 밤이 깊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빛. 모든 게 끝이 난다고 해도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그런 느낌."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 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377쪽

. 그러고 보면 나를 보덴 호수까지 가게 한 문장도 'If all else fail, myself have power to die.'였다. Myself. 나 자신. 마르코니가 대서양 너머로 보낸 거대한 'S'처럼 수신될 사람을 찾아서 나아가는 삶. 우주 먼 저편에 있을 칼 세이건에게 보내기 위해 지구의 칼 세이건이 보낸 우주선 보이저 호처럼 태양계를 벗어난 뒤에도 항해를 계속하는 삶. 단 하나뿐인 동시에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삶. 우리 모두의 일생. -382쪽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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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절판


어떤 조직에 맞서는 개인의 저항은 조직에 순응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개인적 용기는 모든 것이 조직화되고 기계화된 우리 시대엔 이미 소멸되고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번 전쟁 때 군중의 용기라는 것이 기껏 일렬종대 내에서의 용기임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람은 아주 희귀한 요소들을 발견할 겁니다. 수많은 허영심과 경솔함, 심지어 지루함과 두려움까지도.... 그래요,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조소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다른 무리들과 반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전투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을 심히 의심스러운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13쪽

우리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사명감을 느낀다. -63쪽

일종의 구속이라는 형식이 영혼의 본래적 힘들을 묶어준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도량은 자유로울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진심어린 이야기와 장난을 나눴다.-64쪽

새로운 것을 인식할 때마다 흥분하고, 일단 어떤 감정으로 뒤흔들리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청춘의 특징이다. -68쪽

희생하면 할수록 성장하고, 모든 사람의 운명에 형제애를 느끼고 모든 고통에 연민을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는 내 가슴은, 나도 모르게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통해 창조적인 연민의 마법을 내게 가르쳐준 그 환자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69쪽

열정적인 불륜에 빠진 것처럼 이 미묘한 쾌락에 빠져있는 나를 이해할 수 이단 말인가!-76쪽

진정한 관심을 전류처럼 켰다껐다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남의 운명에 참여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을 처음으로 예감했다. -78쪽

가장 기이한 우연이 언제나 운명을 정하고, 가장 사소한 외모가 용기를 주거나 빼앗기도 한다. -118쪽

그러나 아십니까? 불안이 만성이 되고 나면 인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119 쪽

왜냐하면 비극적이고 위험한 일은 오직 젊은 사람에게만 특별한 매력을 주거든요.-122쪽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근원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123쪽

열등감보다 더 천한 것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하찮은 일을 하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천사처럼 날개짓하자 신분이 상승되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시기질투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같은 멍에를 짊어진 운명의 동지보다는 귀족이 엄청난 부를 차지하는 걸 더 편안해 하거든요. -152쪽

당신은 웃을지 모르지만, 광기는 열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172쪽

어떤 병이든 병은 그 자체로 무정부주의적인 행위이고 자연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에 대항하여 모든 수단을, 정말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됩니다만 환자에게 연민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환자는 스스로를 '치외법권'으로 만듭니다. 그리고는 법과 질서를 거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자 주위에 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그 어떤 항거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선과 진리가 한 명의 인간도 구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83쪽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행복한 상태에도 언제나 마취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다. 집중해서 순간을 즐기면 과거를 잊어버릴 수 있다. -196쪽

당신이 연민 때문에, 그러니까 아주 고상하고 아주 좋은 의도에서 마음이 약해져버렸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내가 이미 당신에게 한번 경고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빌어먹을 연민은 양면이 모두 날카로운 칼입니다. 그걸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연민에서 손을, 아니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만 환자를 위한 위로이고 치료제이며 약이 되지요.
그러나 이걸 정확하게 조제할 줄 모르고, 적당한 시기에 멈출 줄 모르면 독약이 되고 맙니다. (중략) 우리는 연민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보다도 더 나쁜 해를 끼치게 됩니다. 우리 의사들을 그것을 알고 있고, 판사와 경찰과 전당포 주인까지도 그걸 압니다. 위험한 것이지요. 연민은 위험한 것입니다! -222쪽

연민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남의 불행을 보고 느낀 괴로운 충격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려는 조급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남의 고통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려는 본능적 욕망일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연민이기도 합니다만-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 연민은 인내하며 참으면서 자기의 힘이 한계에 부딪칠 때까지, 아니 그 이상까지 견디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자기의 임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최악의 비참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갈 수 있을 때에만 지치지 않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 때에먄 사람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까지 희생할 수 있을 때에먄 가능한 것입니다!-223쪽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악이나 야만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우유부단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233쪽

이 순간 우리가 서투른 연민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그리고 뼈저리게 경험했다. 처음으로, 그리고 너무 늦게. -291쪽

우리의 행동에서 허영심은 가장 강력한 추진력 중의 하나이고, 성격이 유약한 사람들은 용기와 결단력처럼 보이는 무엇인가 하자는 유혹에 특히 잘 넘어간다.-310쪽

사랑은 가장 은밀한 본성에 따라 항상 무한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적당한 것이나 절제된 것을 다 역겹게 여길 수밖에 없고, 참을 수도 없다. 사랑은 상대방의 주저함이나 어색함에서 저항을 느끼고, '자기를 완전히 내주기를 꺼려하는 것'을 보면 당연히 저항감을 숨겼다는 것을 안다.-346쪽

예측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반대로 모든 제한적인 것과 확정적인 것은 시험을 요구하고 우리의 힘의 잣대가 된다.-351쪽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거나 숨겨야 하는 사람은 열리고 자유로운 시선을 잃어버린다.-364쪽

양심이 알고 있는 한 그 어떤 죄도 결코 망각되지 않는다.-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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