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사계절 아동문고 85
윤혜숙 글, 오윤화 그림 / 사계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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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여러가지 벽을 만나게 된다. 사람마다 다 나름의 역경과 고난이 있듯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저마다 부딪치게 되는 벽이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나는 그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으쌰으쌰 응원하기도 하고, 답답함에 열불이 나서 냉수를 들이키기도 한다. 어린이책을 읽으면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안타까움도 응원도 열불도 배가 되곤 한다.

 

'김수로'는 12살 남자 아이다. 아빠는 '김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로 귀화한 인도인이다. 아, 써놓고 보니 이 말도 틀린 말이다. 수로와 김하산씨가 듣는다면 펄쩍 뛸 일이다. 제대로 고쳐 말하자면  김수로의 아버지 김하산 씨는 인도인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로 귀화한 우리나라 사람이다. 아들인 수로가 보아도 '크고 깊은 눈, 두툼한 입술, 숯검댕처럼 굵은 눈썹, 까무잡잡한 피부만 아니면 나도 가끔 우리 아빠가 인도 사람 맞나 헷갈릴'(p.17)정도로 김하산 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완벽 적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로에게는 아빠가 원래는 인도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되는 고민이 있다.

 

수로네 세 식구는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깐깐하고 엄격한 대목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한다는 게 수로의 고민이다. 수로 생각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빠가 인도 사람이기 때문인데 책에 또다른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로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서류상 절차상 '한국인'으로 인정은 받았다고 해도 사람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한국인'으로의 대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우리 나라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다문화 가족의 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온 다른 국적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붙이고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니 할아버지가 외출하신 틈을 타서 할아버지의 목공방에 숨어들어 목공작업에 열심인 아버지를 보며 '내 소원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른 집들처럼 서로 친해지는 거'(p.10)라고 하는 수로의 소원이 이해된다. 어느 날 인도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냐는 수로의 질문에 김하산 씨는 '순례자'였다고 말한다. 히말라야를 아마 스무 번도 넘게 오르셨을 거라면서.

 

"인도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아. 무엇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배우는 거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인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떠돌이 병을 앓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았다. 대목인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평생 한뎃잠을 주무셨다. (p.89)

 

온정성을 다해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아갈 집을 짓는 대목 할아버지로서는 머무는 데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순례하는 인도인들의 관습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록 똑같이 '떠돌이병'을 앓았다고 해도 병의 증상과 원인이 다른 병인 셈이다. 그러니까 김하산 씨가 인도 사람이어서 싫은 이유에는 이런 충돌과 갈등들이 함께 들어있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보듬어 앉는 '집'이라는 공간을, 그것도 나름의 완고한 철학과 고집을 갖고 짓는 대목이라는 것은 인도인 사위 김하산을 결국엔 보듬어 안을 것이고 수로의 소원은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큰 고민은 얄미운 외사촌 종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수로와 한 반인 종수는 교실에서 '패밀리가 떴다'라는 게임을 벌인다. 김씨와 이씨 성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 조상이 더 잘났는가를 따지는 건데, 수로가 은근슬쩍 김씨 패밀리 쪽으로 다가가자 종수는 수로에게 '우리 나라 사람이긴 한데 토종이 아니'(p.44)라고 하며 수로를 혼란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집까지 가는 길에 시장골목을 걸으며 '저 상추는 토종일까, 외래종일까? 뽀바이가 좋아했으니까 시금치는 토종이 아닐지도 몰라.'(p46)라며 혼자 고민에 빠질 정도로.  이 고민의 해결은 12살 남자아이 같지 않게 의젓하고 생각 깊은 같은 반 친구 태석과 멋진 담임 선생님에 의해 해결된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기 성의 시조에 대해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 화산 이씨인 태석이는 자기 시조는 베트남의 가장 오래된 리 왕조의 왕자였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야국의 김수로 왕과 결혼한 인도의 공주 허황옥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로와 선생님의 몸에는 똑같이 한국인과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인도 김씨도 한국인의 성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어느 김씨세요?"

"네, 저는 인도 김씨입니다."해도 아무도

"네? 인도 김씨요? 그럼 인도에서 오셨어요?"하는 바보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될 거다.

지금 베트남에서 온 리 왕조의 왕자나 인도에서 온 허황옥 공주의 후손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듯이.

그러니까 이 책은,  결국 우리는 다같이 섞여 살게 되어 있으니 '가짜'니 '토종'이니 '다문화'니 하는 말들이 다 쓸데없고 부질없고 무의미한 말이고 편견이라고, 그런 옹졸한 마음에 잡혀있지 말고 빨리 사이좋게 섞여 살아갈 궁리를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김수로나 김하산 씨보다 더 힘든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 곁에 '이태석'같이 똑똑하고 줏대있고 의젓한 친구가 있을까?  수로네 담임 선생님처럼 센스있고 멋진 분이 계실까?  특히나 '이태석'이라는 아이는 너무 멋지고 이상적이라 좀 현실감이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진짜로 그런 아이, 그런 선생님이 계실까 하는 의문을 접고 '이런 친구, 이런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하는 작가의 착한 바람이 깃든 거라고 이해하자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무거우니까.

 

문득 나의 시조가 궁금해져서 찾아 봤다. 놀랍게도 나의 시조는 기원전 117년 신라 건국 이전 부족국가 시대의 촌장이다. 2,100년도 전의 까마득한 이야기가 내 안에 있었구나. 그 까마득하게 오랜 시간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엔 수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얼룩져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다문화'라는 말로는 모자랄 세계 문화의 응집체이자 인류 모든 혈족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걸까?) 사정이 이렇다면 시조를 따져서 우리끼리는 같은 핏줄이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의 성씨의 기원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혼인으로 섞인 피만 따진다 쳐도 내 안에는 온갖 성씨, 온갖 민족들의 피가 다 흐르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2천년 전의 시조의 끈을 잇고 있는 우리가 참 독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핏줄에 대한 집착이 무시무시하다는 뜻일 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어린 김수로와 김하산 씨들의 고단함을 손톱만큼 알 것도 같다. (소심하게나마 으랏차차, 힘내세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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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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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의 새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망설임없이 읽기 시작한 책. 이야기의 첫 머리에는 일수의 엄마 아빠의 만남과 결혼, 결혼을 한 후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서로에게 심드렁해지기까지의 과정이 나오는데 그걸 읽으면서부터 나는 즐거웠다. 여자의 잘록한 허리와 수줍은 웃음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날마다 저 모습을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결혼했지만 아내의 수줍음은 사라지고 결혼한 지 오 년 만에 잘록한 허리가 완벽한 항아리 형으로 변신해서 바라보면 한숨이 나오더라는 이야기,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기분좋은 비누 냄새와 유머감각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날마다 재밌는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결혼했지만 남자가 남편이 되고부터는 점점 게을러지고 지저분해져서 코를 쥐고 괴로워했다는 이야기. 그래도 그냥 그럭저럭,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부부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첫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걸쳐서 짤막하게 쓰여있었지만 팔딱팔딱 살아있는 생생한 문장들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부의 결혼 이야기는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일이 없더라, 라는 켸켸묵은 진리를 꺼내들고 앞으로 태어날 일수의 인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 생각했더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생각해볼 때 사실 일수 엄마, 아빠의 결혼 스토리는 없어도 무방하니까, 굳이 이 이야기가 책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건 앞으로 일수의 앞날이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복선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일수는 이 부부가 결혼한지 15년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게다가 행운의 숫자 7이 겹친 7월 7일에 태어났고, 로또 당첨의 길몽이라는 황금똥의 태몽을 꾸고 잉태된 아이다. 그러니 부모, 특히나 엄마의 극진한 사랑과 관심과 기대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철 넘쳐난다. 엄마는 일수가 출세하고 성공해서 자신을 돈방석에 앉혀줄 거라는 부푼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일수가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일 년 내내 상장 한 번 못 탄 일수를 위해 잠시 고민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일수에겐 착한 구석이 없었어요.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고 착한 건 아니니까요. 일수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칭찬할 것도 야단칠 것도 없는 아이였죠. 2학년, 3학년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일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게 못하는 거도 없는 아이였죠. 선생님들은 가끔 일수가 자기 반 아이라는 걸 잊어버렸어요. (29쪽)

 

그러니까 일수의 문제는 '문제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일수의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아, 어쩌면 일수가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수가 '생일잔치를 회갑처럼 하는 것 말고 특별할 게 없는 백일수 어린이'(31쪽)가 되어버린 것도, 말끝에 늘 '같아요'를 붙여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숨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탄생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커다란 걸 기대하고 있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혹은 정말 자신이 없다는 아주 극소심한 의지표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부응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일수의 고민이 드러난 것일 수도.  일수의 아빠는 그런 일수를 측은히 여기며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일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대단해지지 않았을 때, 엄마에게 죄지은 느낌으로 계속 살게 될지도 몰라." (51쪽)

물론 아들에 대한 기대로 눈이 먼 엄마에게 남편의 충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헛소리 취급을 받지만.

 

어떤 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일수가 4학년이 되어 서예반에 들어가면서 약간의 반전을 맞는다. 일수의 '하면 된다' 서예작품이 '새마을초등학교 개교 30주년 기념 전시회'에 서예부 대표로 전시된 것이다.  이 일로 일수가 한석봉 뺨치는 유명한 서예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꿈을 꾸게 된 일수 엄마는 일수의 손목을 잡아끌고 급기야 동네 최고의 명필을 찾아가 제대로 서예를 배우게 한다. 한석봉의 꿈을 꾸는 엄마와 달리 겹받침을 틀리지 않고 잘 쓰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졌던 일수가 6학년이 되어 겹받침이 헛갈리지 않게 되자 명필은 일수의 어머니를 불러앉히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수는 자기 글씨체가 없습니다. 그날 그날 교본에 있는 걸 따라할 뿐이에요. 당연하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인데."

명필은 조금도 떨지 않고 대답했어요.

"뭐라고? 우리 일수가 뭘 모른다고?"

어머니 목소리가 커졌어요.

"당신 아들은 자기 감정을 몰라. 자기 마음을 담는 게 서옌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해. 더 이상 하면 독이 될 뿐이야!"

명필의 목소리도 커졌어요. 어머니보다 더 크게, 더 세게 반말을 했죠. (65쪽)

 

 

일수는 서예학원에서 잘렸다. 언젠가 명필은 일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었다. "일수야, 너는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너는 누구니?"라고.  그렇게 물어봐주는 사람은 명필, 딱 한 사람이었는데, 야속하게도 그 명필이 일수를 잘라버렸다. 이렇게 난데없이 불쌍할 수가. 명필만은 주눅들고 위축된 일수에게 언젠가 벼락같은 깨달음을 내려주어 일수가 자기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하기는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거다.  120쪽 정도의 이 얇은 책 속에 주인공의 30 여년의 세월을 조금도 허술하지 않게 짜임 좋게 담아놓은 것 말이다.  일수가 서른이 넘는 어른이 될 때까지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살면서 깨달음은 그렇게 쉽게 오지도 않고, 꼬인 인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고, 일수 아빠의 말처럼 인생은 별 것 아닐 수 있다라고. 하지만 스펙터클하지도 버라이어티하지도 않고, 력셔리나 판타스틱 같은 단어와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혀 되는대로 끌려다니며 살아서는 안된다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작가는 일수의 탄생부터 서른을 넘긴 나이까지, 그 별 볼일 없는 삶의 여정을 모두 이야기해야 했던 건가 보다. 대부분의 어린이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드문 경우다.

 

일수 씨는 천천히 가훈을 읽기 시작했죠. 짧아서 쓰기 좋은 가훈과 길어서 쓰기 힘든 가훈, 웃기지 않는 가훈과 웃긴 가훈, 많이 써 본 가훈과 처음 써 보는 가훈, 아이가 썼다고 치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썼다고 치는 가훈의 구별은 사라졌어요. 오직 하나 '나의 가훈'으로 삼고 싶은 것과 '나의 가훈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만이 있었죠. 그리고 동네 최고의 명필이 했던 질문이, 질문하던 눈빛이 떠올랐어요. 일수 씨는 거울 앞에 섰어요. 그리고 오래전 받았던 질문을 따라했어요.

"일수야,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네 쓸모는 누가 정하지?"

다리가 저릴 때까지, 일수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 보았어요. 국민, 시민, 예비군,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 가훈업자, 일석 반점 단골, 문구점 아저씨인 일수 씨는 분명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일수 씨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죠.

(117쪽)

 

작가는 스스로가 명필이 되어 독자에게 묻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라고 하고 있는 거다.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찌리릿했다. 이 험하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는 성공한 위인의 이야기나 일류대 입학을 위한 학습전략 따위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아이들이 우리들의 말에 귀를 닫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기껏해야 일수의 엄마처럼 아이들의 출세와 성공과 돈방석을 바라면서 마치 인생의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그냥 그저 물끄러미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너의 쓸모는 누가 정하지?"하고 물어보는 걸로 충분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생생한 볼륨과 질감을 가진 책 속 인물들과의 만남이 무척 신 나고 즐겁다. 역시, 유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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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법서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6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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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이런 제목을 가진 책에 끌릴 수 있구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어린이 책들 중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 책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렇지. 바다 마법서라니. 제목부터가 신비감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반감되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차라리 다른 책을 빌려올걸, 하고.

 

낯선 중국작가의 이름과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이라는 시리즈 제목에 기대서 조금 시큰둥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7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이 들어있는데 모두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돌고래 그림자>, <유리 고래>, <바다 상상화>, <환초 요정>, <바다로 보낸 편지>, <떠 있는 배>, <밀림의 신기한 배>, <바다 마법서>.  제목들이 적혀진 목차에서부터 비릿한 바다냄새가 날 것 같았다. 이 작가는 바다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판타지 동화 세계>(이재복 지음, 사계절>라는 책을 보면 '판타지 동화는 대개 주인공이 고립된 목숨이다.'(87쪽)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도 외롭고 상처입은 인물들이다. 당연히 애틋하고 아련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이야기에 감돌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신이 쏙 빠지도록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한 판타지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은 늘 약간의 우수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유명한 해리 포터마저도 얼마나 외롭고 끔찍한 유년기와 아동기를 지나왔던가! 그러니 이 책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외롭다한들 다른 판타지 책의 주인공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인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다 마법서>를 제외하고는 판타지의 주인공들치고 무력한 것 같다. 대부분의 판타지 동화에서 주인공은 판타지 공간 안에서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고 구원을 실현하는 데 비해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인 현실 극복보다는 현실 도피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면 판타지 세계에서 또 다른 혼란에 빠져버리거나.

 

그래서 난 주인공보다는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 속 시공간에 더 매력을 느꼈다. <판타지 동화 세계>에서 저자는 판타지 동화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목숨은 두 가지 시간을 산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흐르는 시간이 있다. 자연의 시간이다. 일정한 규칙 없이 목숨의 내면에 들어 있는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가에 따라 제 맘대로 흐르는 시간이 또 하나 있다. 이 시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 마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상상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판타지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간절한 바람의 시간이라 해도 좋고. 이렇게 목숨은 자연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을 함께 산다.' (<판타지의 동화 세계>,175쪽)

물론 내가 매력을 느낀 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마음의 시간이며 판타지의 공간이다.  하지만 '마음의 시간'이라든가 '판타지의 공간'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하더라도 안개에 싸인 듯 그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그마저도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것이 마음의 시간이자 판타지의 공간이 아닐까. 게다가 그 시공간은 개인적이고 중의적이며 해석이 모호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 작가는 그런 모호함을 참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이 환상으로, 환상이 현실로 변하는 그 경계에서 긴장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 책에서 고집하고 있는 '바다'라는 배경도 마음이 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지'라는 것,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의미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바다는 위안을 얻는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지이기도 하고, 끝없는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며, 불확실한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굉장히 큰 힘이 느껴진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를 읽었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물음표 하나를 남기는 미스테리 환상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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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연필 일공일삼 71
신수현 지음, 김성희 그림 / 비룡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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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 민호가 같은 반 친구인 수아의 유리천사를 실수로 떨어뜨려 날개를 깨뜨린 사건, 다른 하나는 홀연히 나타난 빨강 연필의 마력으로 민호가 갑자기 글쓰기를 잘 하는 아이로 주목받는 사건. 그 두 사건 밑으로는 우울한 민호네 집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수아의 유리천사의 날개를 부러뜨린 이야기는 맨 처음 읽었을 때엔 좀 뜬금없이 끼어든 사건이었다. 아니 끼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야기 첫머리에서 만나는 사건이니까. 뜬금없었다는 건, 없어도 이야기 진행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리뷰가 늦어지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더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처음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빨강 연필의 등장을 알리는 복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날개가 깨져버린 유리천사는 바로 민호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민호가 유리천사의 날개를 깨뜨리는 사건이 빨강 연필이 등장하기 전에 터지면서 불길한 분위기를 안개처럼 깔아놓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건조하다 못해 서걱거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문체는 긴장감을 더 고조시킨다.

거침없는 유려한 솜씨로 글을 지어내는 빨강 연필은 민호에게 축복처럼 다가왔다. 사교육으로 글짓기 실력을 갈고 닦은, 자존심 강하고 잘난 친구 재규를 재치고 빨강 연필의 솜씨를 빌려 쓴 자기 글이 '이달의 글'로 뽑혀서 교실 뒷편 게시판에 붙는 것도 짜릿했고, 반 친구들이 베푸는 따뜻한 친절의 맛도 감미로웠다. 하지만 민호는 곧 빨강 연필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깨닫는다.  

빨간 연필은 여전히 새것처럼 보였다. 막상 없애려니 빨간 연필 없이도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비밀을 낳고 비밀은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지니 점점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빨간 연필은 자신에게도 주위 사람에게도 독이 될 터였다. 결심이 바뀌기 전에 없애야 한다.

 빨간 연필의 마력을 빌려서 쓴 '우리 집'이라는 거짓 글이 민호의 양심을 찌르고 엄마를 슬프게 하자 민호는 괴로워한다. 하지만 아빠와 야구를 하고 엄마가 쿠키를 구워주고 주말에 온가족이 함께 주말농장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는 내용의 글이 정말 100퍼센트 거짓일까.  빨간 연필이 쓴 민호의 '우리 집'은 민호의 간절한 바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집'이었으니 누구라도 감히 거짓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집'이라는 글 속에 담겨있는 민호의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은 민호의 엄마.   

"너무 미안해서 그래. 우리 아들 진짜로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아서." 

민호는 빨간 연필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실력을 키워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들리는 세상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송지아 작가의 까페를 찾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빨간 연필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지만 민호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겨주기도 했던 것이다. 민호에게는 비밀일기장이 있었는데, 어느새 민호는 일기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  비밀일기를 쓸 때에는 빨강 연필을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꿈을 헤아려 살펴볼 줄도 알게된다.  심지어 재규의 마음까지.  민호가 엄마나 선생님 같은 주위 어른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이런 노력들을 해나간다는 것이 무척 대견했다.  

수아의 유리천사의 날개를 깨뜨린 사건이나 빨강 연필의 등장이나 모두 긴장감이 감도는 불길한 사건이지만 민호가 내적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두 사건을 통해 민호에게도 접착제로 붙인 유리천사의 날개처럼 희미한 상처의 자국이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민호의 앞으로의 삶에 예방주사 같은 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민호는 올바르고 당당한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세상의 유혹들을 이기고 아픔을 견디고 용기를 내게 하는, 진실과 진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지만... 빨강 연필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유혹에 넘어가버릴 것 같다.  어디 빨강 연필 뿐이랴.. 난 시시때때로 마구 솟아나는 아이스커피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힘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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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1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빨간 연필은 고사하고 아이스커피의 유혹도요~^^

섬사이 2011-08-21 22:12   좋아요 0 | URL
에구구, 댓글달기가 너무 늦어버렸어요.
양철나무꾼님도 아이스커피 좋아하세요?
입추도 말복도 지났다고 바람끝이 서늘해졌어요.
그래도 한낮의 햇볕은 참 따가워서
오늘 저는 아이스커피를 세 잔은 마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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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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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그 다음 날로 다 읽었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니 막막했던 책이다.  결국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 작정하고 앉았는데도 여전히 막막하다.  어려운 책이냐고?  아니다. 살림하고 아이 쫓아 다니고 이것 저것 볼 일을 봐가면서도 책을 펼치고 얼마 걸리지 않아 다 읽을 정도로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수월하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왜?  곰곰 생각해보니 특별히 너무 친절한 책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이 책에는 건널목 씨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빨강, 초록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공사장에서 쓰는 노란 안전모에 펼치면 횡단보도가 되는 카펫을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면서 무단횡단이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위험한 도로에 즉석 횡단보도를 만들어서 아이들의 등하교길을 안전하게 돕는 인물이다. 건널목 씨는 아리랑 아파트 후문 앞 도로에서 위험하게 길을 거너는 쌍둥이 형제와 만나고 나서는 매일 그 곳에 카펫 횡단보도를 펼치고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리랑 아파트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 사작한다. 어느 날 우연히 쌍둥이 형제가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도와주고 나서는 105동 주민들의 배려로 빈 경비실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아빠의 불화를 견디지 못할 때마다 집을 나와 외롭게 앉아 있는 도희, 집을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태석이와 태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 특히 물질적인 부와 풍요가 삶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칫 돌아보기 어려운 가치들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너무 친절이 과했다고나 할까.  책 속에는 등단한지 7년이 되도록 이렇다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지내는 작가 오명랑이 등장하는데 건널목 씨에 대한 이야기는 오명랑 작가가 가족들의 눈치를 못이기고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열어 그 교실을 찾아온 세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오명랑 작가는 건널목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면서 이런 결심을 한다.  

 독자들에게 가슴을 열지 않은 작가라니.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새로 만날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마음으로 대한다면......  안된다. 진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마음을 닫아 놓고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 그러면 안 된다. (14쪽)

이 때만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펼쳐질 진심어린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쌍둥이 형제를 돕다가 건널목 씨가 불량배들에게 몰매를 맞는 부분에서 작가 오명랑은 흥분해서 이야기 한다.

"아무리 아이들이라지만 그러면 안 되잖아. 어른이잖아!"
-중략-
"내 말은, 어른은 때리면 안 되고 아이들은 때려도 된다는 게 아니야. 누구든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는 거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때려?" 
-중략-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폭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다는 거야."  (50쪽)

이 부분부터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옳은 말이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거듭 설명을 해줘서야 내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나.  나는 마치 작가의 웅변을 듣는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은 감명을 받으려나?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건널목 씨 한 사람 더 와서 사는 건데 아리랑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다니까. 이웃끼리 인사도 더 자연스럽게 했고 더 상냥해졌지.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 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나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7쪽) 

건널목 씨에 대한 인물평까지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부분이다.  이야기가 현재 시제의 작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과 과거의 건널목 씨 이야기가 번갈아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저런 친절한 설명과 정리가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는 걸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뒷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읽고 난 독자의 느낌까지도 찾아낼 수 있었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175쪽) 

책을 읽은 내가 치밀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이 책을 읽어냈다면 작가가 보태어준 친절을 넘어서 더 많은 느낌과 생각을 발견하고 따라갈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유감스럽게도 난 그러질 못했고 작가의 친절을 핑계삼아 '난 그냥 작가의 친절에 기대서 아무 생각없이 읽었어요.'라고 고백하고 있는 흉한 꼴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책이 별로라고 오해는 마시길.  책은 재미있고 앞에 얘기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때론 가슴 찡하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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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6-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리한 리뷰였습니다.

섬사이 2011-06-30 07: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라는 댓글을 분명히 달았었던 것 같은데,
왜 사라졌을까요..ㅠ.ㅠ
아무튼, 다시 한 번 더 고맙습니다. 꾸벅

마녀고양이 2011-06-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수긍이 무척 가는 리뷰예요.
설명을 한다는 것, 정리를 해줘버리는 것은
선입견이나 주장을 내세우는 것, 따로 판단할 여지를 빼앗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친절한지 모르겠다는 생각두요.. 오눌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을 읽고 나니 더욱 그래요.

섬사이 2011-06-27 15:28   좋아요 0 | URL
틀림없이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도 독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가끔 아이들에게서 나보다 강한 면을 발견할 때도 있어요.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라니.. 어쩐지 시큼한 맛이 혀끝에 맴돌아요. ^^

순오기 2011-06-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날새면 이 책이 우리집에 도착할 거 같은데...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지나치게 들려주면 역효과가 있지요~ ^&^

섬사이 2011-06-27 15:29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해요.
제가 서재에 발길이 뜸한 사이에 벌써 읽으시고 리뷰를 올리신 건 아닐지..
빨리 확인을 해보고 싶은데, 지금도 잠시 들어온 거라.. ㅠ.ㅠ

2011-06-29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30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