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연휴가 끝나가던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그 애매한 시간대에 kbs에서 영화 [시]를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마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영화의 주연여배우 윤정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부모님은 김지미, 남정임 같은 여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던 것 같은데, 어린 내 눈에는 윤정희 만큼 고운 여배우는 없었다. 아마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 봤을 게 틀림없을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남자배우로는 신성일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엄앵란과 신성일이 부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럼 윤정희는 어떡하지?하고 내심 심각하게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맘 속에 한국판 오드리 햅번으로 남아있던 여배우 윤정희가 자글자글한 얼굴과 푸석한 머리결로 칸영화제며 대종상, 청룡영화상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 영화를 통해서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책을 좀 읽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어 있었고, 다시 거실로 나와 공연히 서성대다가 4시를 한참 넘기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마음이 꼭 빗방울 자국이 패인 흙마당 같았다. 까끌한 모래알갱이들이 패인 자국 주변으로 드러나서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오늘 점심 먹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내내 이 영화 생각을 한다. 무엇이 날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지. 어릴 적 보았던 가장 고운 얼굴을 가진 여배우의 나이든 모습 때문일까. 하지만 윤정희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고왔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하고 바랄만큼.
가장 불편했던 건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던 '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종욱할머니인 미자(윤정희)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명사가 자꾸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를테면 터미널, 지갑.. 그런 것들. 의사가 미자에게 처음에는 명사를 잊어먹고 그 다음엔 동사.. 그렇게 하나하나 점점 더 많은 기억을 잃게 될 거라고 설명한다. '아시겠어요?'하는 의사의 질문에 미자는 '네, 알아요. 명사가 제일 중요하잖아요.'하고 대답한다.
가장 중요한 명사를 잊어가는 미자에게 손자 종욱과 친구들이 벌인 성폭행 사건이 드러난다. 피해 여학생은 그 사건의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그리고 가해 남학생의 부모가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며 사죄하기 위해서라거나 꽃다운 여학생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그 대책이라는 것이 한 집에서 500만원씩 갹출하여 3천만원으로 피해보상을 하고 빨리 덮어버리자는 것이다. 미자는 '명사'를 잊어간다. 그러면 그들이 잊은 건 뭘까?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건 뭘까.
알츠하이머로 명사를 잊어가는 미자는 죽은 여학생이 폭행을 당했던 과학실과 여학생이 다니던 성당, 여학생이 몸을 던진 다리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성당에서 여학생의 사진을 몰래 가방에 담아온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명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그 여학생이 겪었던 고통과 마주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손주 종욱 또한 밥 잘먹고 TV를 보며 자기가 상처를 준 여학생을, 자기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다. 식탁 위에 놓은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도 잠깐 움찔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미자다. 시창작 강의의 과제를 잊지않고 '시'를 남기는 것도 또한 미자 뿐이다.
또 하나 마음이 불편했던 건, 쓰레기 같은 말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욱과 미자 간의 대화 같은 것, 슈퍼 여주인에게 미자가 여학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의 그런 말 같은 것 말이다.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떨어져 뒹구는 말들. 전해지지 못하는 우리의 많은 말들 말이다. 상대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단절되는. 또는 사건을 빨리 조용히 덮어버리자고 작당하는 사람들의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대화들도 있다.
그런데 미자는 '시'를 배운다. 배우고 쓴다. '시'는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언어의 보석들이다. 그래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말들 속에서 미자가 시를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물겨웠던 거다. 우리 모두의 말들이 쓰레기가 되지 않고 '시'가 될 수 있기를 바라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미자는 피해여학생의 집을 찾아갔다가 땅에 떨어진 살구를 보고 시상에 잠기다가 그만 피해여학생 엄마에게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보이고 만다. 순간, 자기가 왜 이 곳에 왔는지를 잊고 피해여학생 엄마에게 '행복' 운운하며 팔자 좋은 소리를 해대고 만 것이다. 미자까지 명사보다 중요한 것을 잊은 그 순간, 영화는 결말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난 어릴 때 본 윤정희 보다 이 영화 속 윤정희가 더 좋아졌다. 저렇게 공주스러운 옷을 입고 천진한 수다를 떨 줄 아는 할머니로 나타나 고되고 힘겨운 미자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어서 너무 고맙다.
영화 속 미자가 쓴 <아녜스의 노래>라는 시다.
그 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이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