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와가 여기 있었다 한림 고학년문고 11
닐 슈스터만 지음, 고수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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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발음기호가 따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ə]는 가장 흔한 모음이지만 음가가 거의 없는데 슈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리거나 젊은 시절에 영어사전을 자주 들춰보며 발음기호를 확인하던 나는 발음기호에 적힌 그대로 정직하게 [ə]를 발음하려고 애를 썼는데 말이다. ‘의 중간 어디쯤의 정확한 소리를 내보려고 간혹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내 어린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슈와라는 성을 가진 한 아이, 친구들에게 슈와라고 불리던 아이는 정말 [ə]랑 닮아서 눈에도 잘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기억 속에서 자꾸 지워지고 마음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또 다른 한 아이, 앤치 보나노는 가운데 아이 증후군’(40)이 있다. 앤치에게는 프랭크라는 잘난 형이 있고 크리스티나라는 주목받는 여동생이 있다. 앤치는 그냥 거기있는 애일뿐이다. 그래서 앤치는 슈와의 기분이 어떨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자꾸 신경이 쓰인다.

십대의 아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의 시간만큼 똑같은 크기의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도하게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희미한 존재감은 십대인 슈와와 앤치에게 꽤나 신경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

 

하지만 그게 꼭 앤치와 슈와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삶이 우울해지거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같이 점심을 먹거나 영화를 볼 사람이 없을 , 하루종일 어느 누구도 내게 카톡도 문자도 보내지 않을 때, 그럴 때마다 나의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쓴맛을 맛보게 되지 않나? 그러다보면 첫사랑의 기억 속에 내가 얼만큼의 흔적으로 남아있을지, 혹은 직장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쓸모있는 존재감 확실한 부품인지,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소중한 친구로 인정받고 있는지, 가족들에게 나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앤치의 엄마가 주방을 자신의 영역으로 고수하고 싶어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앤치의 엄마가 고백처럼 내뱉던 말이 기억난다.

“......하지만 가끔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문득 삶이 의미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 가족과 함께 집에 있으면서도 문득 자기 인생은 어디에도 없고,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어느 쪽이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바구니는 무거워져. 달걀이 깨질 수도 있고.” (216)

 

결국 우리는 세상에 자기의미를 심으며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앤치도 슈와도 괴팍한 크롤리 영감과 앤치의 부모님, 슈와의 사라진 엄마, 그리고 우등생 프랭크 형과 동생 크리스티나까지도.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한 가지. 자기의미는, 혹은 존재감은 누가 부여해주는 거지?

슈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네가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는 그 사람을 어떻게 아니? 나무를 생각해 봐, 앤치. 숲에서 쓰러지는 나무 말이야.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날 때 거기에 아무도 없다면, 나무는 정말로 소리를 내지 않는 거고,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면 너는 정말로 거기에 없었던 거야.” (202)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기억력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 그건 어쩐지 자존심 상한다. 나 스스로를 그리 썩 대단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기억력에 의지해서 내 존재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걸 흔쾌히 인정하기는 찜찜하다. 저 위의 문장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슈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먼저 나무 스스로 크게 자라야 해.”

 

우리는 항상 누군가가 날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지만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야무진 렉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괜찮아. 느껴지는데 굳이 보일 필요는 없잖아?” (153)

누군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잘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클립처럼 존재감 희미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미의 영역을 찾아가는 것은 무지무지 용감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책 속에서 슈와가 보여준 클립들은 하나하나가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우리가 미처 마음을 기울여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뿐.)

 

이 책은 한림 고학년문고 시리즈 중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청소년 책으로 분류해 둔다. 내용과 그 내용이 품은 의미들이 청소년들에게 더 적합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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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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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우리집 두 아이는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환절기 날씨에 짜증을 낸다.  아직 동복을 입기엔 이른 날씨. 그렇다고 조끼나 가디건만 걸치고 집을 나서기엔 아침 7시 무렵의 기온이 너무 낮다.  하지만 마음대로 위에 뭐 하나 걸치지도 못 한다. 춥다고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걸쳐 입었다간 교문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감기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지만, 학교는 추워도 꾹 참고 썰렁해보이는 춘추복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착하고 모범적'이라고 여긴다. 내 생각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고 바보같은 짓이다.  겨울철 교복위에 입는 파카와 운동화까지도 검정색과 짙은 회색만 허락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정해놓고는 그것마저도 추운 날 마음대로 입지 못하게 하다니!!!  그래서 결국 우리집 두 고딩들은 교복 위에 짚업후드티라도 하나 더 입고 나갔다가 교문 앞에서 벗는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아들녀석이 중학생이 되어 교복도 아직 몸과 따로 놀던 해의 초여름.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던 아들이 아파트 단지 놀이터 의자에 잠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갑자기 경비아저씨가 오시더니 "니들은 놀이터에서 이렇게 놀면 안돼! 니들 정도되면 정신적으로 놀아야지, 정신적으로!! 놀이터에 나와 앉아있으면 돼?"냐고 꾸짖으시며 놀이터에서 아들과 친구들을 쫓아내셨단다. 분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털어놓는데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갑자기 갈 곳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난 이 책 속 아이들이 해방구를 만들어 그 갑갑한 현실로부터 탈출했던 7일이라는 시간에 공감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다.  해방구라는 요새를 만들어 위선적이고 권위적이고 비리에 익숙한 기성세대를 공격한 아이들의 7일 이후가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까. 그 이후로 학교와 어른들은 좀 바뀌었을까. 세상은 단단해서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을 텐데, 세상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되는 것은 해방구 안에서 아이들을 도왔던 세가와 할아버지나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던 니시와키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응원하는 준코어머니 같은 기성세대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한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 욕하지 마라. 아이들이 잘못 된 것은 무조건 다 어른들 탓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건 어른들 욕심이다.  아이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모두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죄인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먼저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그런 분들이 희망이다.

난 요즘 대학입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큰딸에게 '배움은 학교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센 척을 하고 있다.  너에게 대학이라는 문이 닫히면 다른 가능성의 문이 동시에 열릴 거라고, 어쩌면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위선을 떨고 있다. 하지만 자주 내 자신에게 묻곤 한다.  꼭, 기필코, 반드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걸까, 하고.  굳이 나같은 서민까지 나서서 보태지 않아도 나날이 부를 쌓아가고 있는 대학들에게 본의 아니게 '기부천사'가 되고 있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배도 아프다.  입시전형료는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7만원에서 10만원 정도.  성적만으로 학생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파악하지 않겠다는 기특한(?) 사고의 전환으로 갖가지 전형이 만들어져서 한 대학에 서너 전형을 지원할 수도 있게 길을 열어주었지만 그 말은 결국 한 대학에 20만원이 넘는 전형료를 기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 입시는 8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의 과정이 되었다.  아이도 지치고 부모인 나도 지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 더 힘든 현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살인적인 등록금, 보장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힘들게 들어가서 받은 대학졸업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청년실업의 시대, 88만원의 세대.....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내가 나서서 아이들의 해방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1985년에 출간된(공교롭게도 1985년은 내가 고3일 때다)  이 책 속 아이들의 현실과 2011년을 살아가는, 아니 견뎌가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책을 읽으며 어른들을 향한 가차없는 비판이자 아이들에 대한 응원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디 책 속 아이들의 7일 전쟁 이후가 무탈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런 나에게 책 속에서 아이들은 대견스럽게 말한다.  

"져도 좋잖아.  하고 싶은 걸 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저 말은 왜 이렇게 마음 짠하게 들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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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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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반듯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신설학교인 우리 새빛중학교. 하지만 '새롭다'라는 것은 단지 이름과 시설뿐이다. 군내 나는 교칙들과 꽉 막힌 선생님들, 더불어 칙칙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교복까지. 그야말로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다. (p.8) 

학교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사물함과, 정수시설, 깨끗한 도서관, 아이들 체격에 맞춰 제작된 좀 더 크고 넓은 책상과 의자, 교실마다 갖춰진 컴퓨터와 TV... 그래서 어쩌다 아이들 학교에 가면 외관과 시설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다.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일제시대와 군부정치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군대식 학교문화가 아직도 군림하고 있는 듯한.

우리집 근처 자사고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집에서는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섬뜩했던 건 그 말 속에는 학교와 학부모간의 모의가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의견은 쏙 빠진 채, 부모는 잠만 재워서 학교에 보내면 학교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겠다는 뜻이니까 일종의 거래라고 해야하나.  요즘 듣는 인문학 강의에서 푸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학교의 훈육권력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자사고의 이야기와 이 책에서 훈육권력의 실상을 확실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학교가 싫고, 공부가 지겹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교 밖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간 아이들의 처지가 어떤지는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암담하다. 대안학교니 홈스쿨링이니 유학이니,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외고에 가고, 그럴싸한 대학에 가고...... 그 후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목표가 가장 선명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p.24)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라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의 허우적거림을 작가는 이렇게 정리했다. 학교를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자니 너무 막막한 뜬구름이라 아이들은 자기가 가는 길이 그저 최선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부모들도.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인 진숙경. 새빛중학교 2학년 5반에  온 서른 살 늦깎이 교생이자 미혼모이며 일주일에 두 번 클럽 무대에 서는 무명가수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마약이나 도박을 한 것도 아니니 사실 교생으로서의 결격사유가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부모의 거센 항의와 함께 학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에 가장 나쁜 예가 되어주는 두 인물, 2학년 5반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일제강점기의 일본 순사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말도 안되는 자백을 강요하고 고문을 일삼고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이쯤되면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교생 진숙경과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사이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톡톡 튀는 아이들은 인터넷에 비밀카페를 만들어 익명으로 즐길 수 있는 자기들만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이 카페를 통해 교생 진숙경의 낱낱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던 것. 게다가 담임과 학생주임의 모략과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의 증명할 수 없는 잘못에 대한 내부고발에 말려들고 만다. 그 결과 '스톰'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죄로 송은하라는 아이가 지목당하고 결국 가출과 무기정학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도 돌아버릴 것 같다. 화가 나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대체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인지 모르겠다. 뭔가를 향해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대체 무엇을 겨냥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p.141)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 비뚤어진 교사,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안에서 뒤틀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비혼모 늦깎이 무명의 클럽가수 교생 진숙경은 이 부당한 현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싫어. 그렇게는 못 해. 두고 봐. 내가 가만있나. 뒤에서 애들 패고, 애들 협박해서 고자질이나 시키고....... 그래놓고 내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임용고시 본다며? 그럼 졸업을 해야 할  거 아냐."
"됐어. 이따위 학교, 오래도 안 와. 이게 학교냐? 이게 교육이야?"
"그럼 대체 어쩌겠다는 건데?"
(중략)
"너한테도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 나한테는 이게 그런 일이야. 이런 상황에서 알았다고 무릎 꿇는 일, 그냥 도망치는 일..... 그럴 순 없어. 그러니까 이해해줘." (p.115)

진숙경이 교생으로 온 2학년 5반에 다니는 이보라와의 대화다. 사실 이 책은 진숙경의 조카인 보라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고 있다. 보라는 저항하겠다는 이모 진숙경의 모습을 보며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p.6)던 자기만의 학교생활백서 1조를 포기하고 진숙경이 자기 이모라는 것을 밝히고 저항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담임이 같은 반 친구를 패는 동영상을 검색 순위창에 뜨게 하기 위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소심한 클릭질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임의 협박에 맞서는 용기까지, 중학생 2학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을 보여준다.  

이모 덕분에 3학년들에게도 나는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여간이 아닌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그런 범생이었던 이보라의 처지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런 시선들이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p.210) 

오래 전에 읽었던 <초콜릿 전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도 학교 안의 권력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처절하게 진다.  이 책에서는 담임이 사표를 쓰고 학교를 떠난다. 진숙경과 이보라, 아이들의 저항은 성공한 걸까?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를 바꿔놓았을까? 그 견고하고 완강한 틀의 한 쪽 귀퉁이라도 찌그려트린 걸까?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난 아이들이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면 그것도 큰 성과라고 믿는다.  

그래도 난 믿고 싶다. 나쁜 선생님들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다고.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셋째는 이제 겨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지만) 그렇게 파렴치하고 못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의 틀 안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도 그 자질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도 더욱 힘겨워질 게 뻔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현 작가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글의 얼개를 참 잘 엮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신음소리를 잘 듣고 그런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작가의 마음도 느껴진다. 이제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는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고맙다. 이현이라는 작가가 어른들을 위한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않고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가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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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는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라니.. 정말 섬뜩합니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학교 이야기라니 대체.. 어이구. 무슨 말을 못하겠네요.

님의 말씀처럼, 문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시스템이니, 우선 시스템을 확 쳐부술 방법부터 모색해야..?? -.-;;

섬사이 2011-05-13 19:50   좋아요 0 | URL
가끔요, 그 단단한 벽을 한 번에 확 부숴버리긴 불가능할 것 같으니까
야금야금 살살 금이 가게 만들면 언젠가 와그르르르 허물어져 버리지 않을까, 상상하곤 해요.
상상만으로도 유쾌 상쾌 통쾌해서 혼자 씨익 웃곤 하지요.^^

무스탕 2011-05-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말로 뭣하러 집엔 보낸답니까? 잠자러 갔다 올 시간 아까워서 어떻게 집엔 보낸답니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앞서야 하는지 제대로된 판단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게 정말 섬찟하도록 무서워요. 아이들이 배운대로 행할텐데 지금같은 미래가 이어진다는게 무서워요.

정성이가 이제 내년엔 중학생이 되는데 전 그게 무지 슬퍼요. 이제 이 녀석도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서야 하는구나.. 하고요.
우리 애들이 좋은, 바람직한 선생님과 체계 아래서 공부할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요?

섬사이 2011-05-13 19: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유치원에 보낼 땐 그저 대견했고,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땐 좀 불안한 정도였지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할 땐 무지 심난하고 한숨나고 그러더라구요.
둘째 녀석 일반 인문계 남고에 보내면서 무척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힘들어하면서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운가봐요.
성적과 경쟁, 강요된 타의에 의한 공부, 그런 것만 아니라면
더 즐겁게 다닐 것 같아요. ^^

마녀고양이 2011-05-1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저랑 비슷한 느낌이셨나봐요.
저두 페이퍼의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에서 섬찟했거든요. ㅠ

제 친구가요, 대안 학교에 보낼 계획을 세우더라구요.
그런데 몇천인가를 미리 내야하고, 대신 기숙사제이고 1년인가는 외국에서 지내고
머 이런 시스템이더라구요. 음, 대안 학교를 저는 자연주의적 학교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틀렸나봐요. 무엇을 위한 대안인지 궁금했어요, 대안도 여러 대안이 있겠죠?

섬사이 2011-05-14 09:40   좋아요 0 | URL
둘째녀석 때문에 저도 대안학교를 알아봤었는데요,
대안학교도 천차만별이더라구요.
저는 강화도에 있는 산마을학교를 보내려고 했었는데
그곳도 생각보다 경쟁률이 너무 높았어요.
워낙 신입생을 적게 뽑아서요. (남학생은 겨우 9명...)
가장 좋은 건 공교육이 제대로 바람직하게 정상화되어서
평범한 많은 아이들, 그리고 상처가 있는 아이들까지
되도록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칫 대안학교도 귀족학교의 하나가 될 위험이 있기도 하구요.

네꼬 2011-05-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샘, 참 잘 쓰시죠! 저는 <짜장면 불어요!>도 <로봇의 별>도 다 좋아요. 이 책도 좋아요. 섬사이님도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느끼.)

섬사이 2011-05-19 11:37   좋아요 0 | URL
오마나~!!! 네꼬님~!!!!
저야말로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네꼬님에게 보고싶었다는 말을 들으니 온몸이 짜릿해요.
제 입꼬리가 귀랑 만나려고 마구 달려가요.
정말정말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곱하기 천만번쯤이예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렇게 무사하다는 생사확인(?)을 해줘서.
오늘 하루종일 싱글벙글하고 다닐 거예요.
사람들이 뭐 좋은 일 있냐고 하면 비밀이라고 해야지. ^^
<로봇의 별>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오늘의 날씨는>을 읽고 있는데요,
그거 다 읽고 나면 <로봇의 별>을 읽으려구요.
요즘 이현이라는 작가에게 홀딱 반해있어요.
그리고 저도 네꼬님이 좋아요. (말하고 나니까 쑥쓰럽다~~*^^*)
 
<못된 장난>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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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갑자기 청소년 소설에서 '밝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청소년 소설에서 '밝음'이 사라지고 있는 건 무척 우울한 현상이다.  내가 최근에 읽은 청소년 소설들 - <카본 다이어리 2015>, <이름없는 너에게>, 그리고 <못된 장난>까지- 는 각각 환경재앙, 십대미혼모의 불안, 사이버 스토킹에 의한 왕따 문제를 다룬 것들이다.  내가 십대였던 시절에 읽었던 <얄개전>이나 신지식 씨의 <감이 익을 무렵>, <하얀 길> 등과 비교하면 그 변화가 더욱 실감이 난다.  어쩌면 그 시절엔 현실을 두껍게 가리고 치장하려는 가식과 십대를 순수의 시대로 포장하고자 하는 불순의 의도가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참 가혹하구나,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무리 그 끝에 '희망'을 살짝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 그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도 섬뜩하기는 마찬가지다.   

작년이었던가.  중1이었던 아들녀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모였다.  시험을 끝낸 홀가분한 마음에 친구들과 만나 놀고 싶다는 이유였던 것 같다.  중1이면 아직 초등학생의 아동성을 채 다 벗지않았을 때니까.  놀이터 의자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 오더란다.  다짜고짜
"여~ 너희들, 어디 사는 애들이야?"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저희들 다 이 아파트에 사는데요.."했단다.
그랬더니 경비아저씨 하시는 말씀이
"너희같은 청소년들은 놀이터에서 놀면 안되지.  정신적으로 놀아야지, 정신적으로! 다들 집에 가!"했다는 것. 
집에 들어와 투덜대는 아들에게 난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말에 푸훗, 웃음이 났지만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성성하게 자란 중고등학생들이 놀이터에 등장하는 걸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오직 학교와 집, 학원을 배경으로 서있는 중고등학생들만을 경계를 풀고 바라보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모이질 않는다.  차라리 PC방에 모여서 정신적(?)으로 노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걸 알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버스토킹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주인공 스베트라나와 그녀의 가정, 그리고 스베트라나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그 가정의 배경이 되는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범적이고 우수한 학생이었던 스베트라나가 '못된 장난'의 희생자가 된 것은 단순히 가해학생들의 성품이 나빠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그 배경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편견과 멸시'라는 사회적 통념이 깔려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다.   

실업학교를 다니던 스베트라나는 그 우수함을 인정받아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p.32)를 가진 에를렌호프 김나지움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부유층 아이들의 기숙학교인 그 곳에 장학금을 받는 통학생으로 들어가게 된 스베트라나가 직면하게 되는 벽은 무엇일까.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섞일 수 없다는 소외감이 아니었을까.  그 소외감이 점차 열등감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그 열등감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아이들로 인해서 스베트라나는 점차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베트라나를 괴롭힌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 아이들이 만든 카페에 쓰인 글들은 그 아이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불안을 엿보게 한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에를렌호프 김나지움에 갖다 버렸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알겠어. 내가 더 나은 교육을 받는다거나 대학 입학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저 핑곗거리에 불과했어.  사실은 빌어먹을 부부 싸움에 증인이 있는 게 싫었던 거야."(p.167)라거나 '차라리 훌륭한 부모님이 없는 게 나아. 쑥대밭 같은 집안이 더 낫다고. 왜 그런지 알아? 스스로 강해지기 때문이야!'(p.167)같은 글들은 그들의 '못된 장난'의 근원을 설명해준다고나 할까. 
특히 마르시아가 스베트라나에게 한 말은 어른인 '나'를 더 슬프게 한다.

   
  "나 예전에는 다른 기숙 학교에 다녔어. 아이펠에 있는 학교였는데 거기도 똑같았어. 언제나 통학생들이 왕따를 당했지. 왜 그런지 알아?"
나는 휴지로 콧믈을 닦고 고개를 저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모두 절망에 빠져 있거든.  그래서 그러는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정말일까?
"다른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잘 살펴봐. 우린 모두 깨진 가정에서 왔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버려지는 거야. 알겠어? 이곳 아이들은 누구의 부모님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지, 누가 편지나 소포를 얼마나 자주 받는지, 그 소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다 알아. 여기서는 비밀을 간직할 수 없어. 아주 단시간 내에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지니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해.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야. 이런 생활이 싫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집으로는 못 가. 여기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해. 그게 문제야. 우리는 마치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것처럼 살아. 쇼는 금방 끝나지만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훨씬 더 끔찍하지."(p.118)
 
   

 난 사람들이 "요즘 애들 문제야.."라고 말하는 걸 싫어한다.  문제가 일어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너희들이 문제야."하고 비난하는 건 비겁한 짓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판을 그렇게 꾸며놓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십대들을 위한 기도>라는 노래다. 부르다가 울컥해서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바람, 이런 기도의 노래들이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는 우리 청소년 소설이 눈부신 '밝음'으로 조금쯤은 돌아서게 되지 않을까, 하고 바라게 된다. 

http://lifepeace.org/bbs/zboard.php?id=free&no=13411 

<십대들을 위한 기도>  

우리의 십대들이 우울의 늪에 빠지지 말고
햇살같은 웃음으로 (언제나) 살게해 주십시오
그들의 웃음 속에 담긴 희망과 기쁨으로
우리의 삶도 밝아 질 것을 믿습니다.  

하늘의 별 땅의 꽃 자기 마음 돌아 볼 여유없이
피곤하고 숨 가쁘게 (정신없이) 살아 가는 아이들
우리 늘 미안하고 할 말 없는 어른 들이지만
항상 그들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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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0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9-12-1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애들이 놀이터에 모여 있으면 괜히 불안해했는데 아이들은 그저 단순히 모여있는 건데 어른의 잘못된 선입견 일수도 있겠군요. 아이들 쉴곳이 없지요.
공선옥님의 '나는 죽지않겠다'는 밝음이 보입니다. ㅎㅎ

섬사이 2009-12-24 06:35   좋아요 0 | URL
<나는 죽지 않겠다>, 꼭 읽어야겠네요. 서평단 책들 때문에 자꾸 읽고 싶은 책들이 뒤로 밀려요. 문제예요, 문제...-_-
 
<10대, 세상을 설득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10대, 세상을 설득하라 - 가슴속 열정과 의지로 세계를 사로잡는 기술
이정숙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만족하고 애써 나를 고쳐보거나 다듬으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인가 보다.  자기계발을 하려는 건 뭔가 목표가 있기 때문일 텐데, 내겐 그 목표라는 것마저 사라지고 없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뭐하러 굳이 이런 책을?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이 책은 설득의 방법으로써의 '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의 중요성은 옛부터 강조되어 왔다.  "'아' 다르고 '어'다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  조심하고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 '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속담들이다.   '예의', '경계', '조심' 이  기성세대들이 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이라면 요즘은 적극적으로 '말'을 활용하여 상대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시 되고 있는 것 같다.  '침묵은 금'이라는 예전의 가치관이 약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이 책은 '말'을 잘 하면 실력을 인정받고,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을 잘 한다'는 건 뭘까?  저자는 '말은 나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소통의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잘생긴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호감을 유도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으로 치자면 아마 사기꾼들이 최고의 고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서 윈스턴 처칠,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안철수, 강인선 기자를 예로 들었지만 말이다.

이 책이 '미래의 글로벌 리더를 위한 말하기 비법 공개'라거나 '말하기 실력이 인생의 무대를 확 바꾼다!'식의 문구를 달지 않고 그냥 소박하게 서로 더 잘 소통하기 위한 말의 예의 쯤으로 다루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에서도 말을 잘하려면 상식이 풍부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등등의 설명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성공과 출세와 인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건 좀 씁쓸했다.    

'말'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러나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성공과 출세, 인기몰이와는 또 다른 차원이 아닐까.  지은이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한경쟁의 시기를 살아내야 하는 아이들에게 '말'조차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삼으라는 것 같아서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순진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이 통하는 '말'을 위해 쓰인 책이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떻게 말할까'와 함께 '무엇을 말할까'를 고민하라고 하고 싶다.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방법은 스스로 찾아내지 않을까.  '세상을 설득하라'는 이 제목이 요즘 10대들이 가져야 할 목표라면 어떻게 설득할까에 앞서 설득할 그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설득하고 싶은 그 무엇이 10대들에게 있는지, 그것부터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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