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경솔했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덮고 난 어제 저녁 나는 나의 단순함과 경솔함을 떠올리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밝혔던 것처럼 이 책의 다윈도 악의 기원을 밝혀줄 게 분명하다고 흥분하며 떠들었던 내 자신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알 수 있었다. 누가 감히 악의 기원을 밝힐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증명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너는 왜 그때 후드를 네온 강에 버리지 못했지? 왜 그 후드를 다시 집으로 갖고 와 원래 있던 지하실 상자 속에 그대로 넣어 두었지?

퇴근길에 후드를 몰래 숨기듯 집으로 가져와 서재 책장 뒤에 밀어 놓는 순간에도 그는 비아냥거리며 계속 물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거기다 처박아 놓는 거야, ? 말해봐, 도대체 왜 그렇게 겁먹은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117쪽)

 

악은 이 책에 나오는 후드 같은 거다.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는 거. 남들이 찾을 수 없는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숨겨둘지언정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왜 버릴 수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악을 버릴 수 있다는 건 우리의 착각일 뿐 악은 우리의 의지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가 아닐까. 이 세상 속에, 그리고 내 안에도(나도 이 세상의 일부니까) 선이 있는 것처럼 악도 그냥 있는 거라서 우리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조차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 단 한 번이라도 그게 진정한 선택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606쪽)

 

이 문장 앞에서 또 한참 머뭇거렸다. 그러게, 진정한 선택이었을까.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했던 방향이 정말 나의 진정한 선택이었을까. 상황에 밀려서, 어쩔 수 없어서, 내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걸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이쪽 길이 더 안전해보여서.... 이런 저런 이유로 선택했던 것들이 진정한 나의 선택이었던 게 맞나. 오히려 타협에 더 가깝지 않았나. 지금에 와서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좀 더 용기를 내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어리석었지.’하며 회한에 젖을 때가 있다. 그것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지만 선택하지 못하고 타협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다.



 

어젯밤의 판결은 아버지가 이뤄 놓은 세계를 자신이 그대로 승계하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흠결이 있는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보장하는 안정과 미래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776쪽)

 

안정과 미래를 보장받는 길이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그 유혹 앞에서 흠결을 트집 잡아, 흠결은 없지만 안정과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악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속삭이는 걸까. ‘이봐, 이런 정도의 흠결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 너 혼자 고결한 척 유난 떨지 마. 이 정도의 흠결을 트집 잡아 힘든 길로 간다면 그건 너만 손해라고.’ 현실에서는 이런 속삭임에 무릎을 꿇는 것이 비난거리가 되기는커녕 현명하다는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그런 세상이고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내가 선택했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세상도 아니니까.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선택이 아니니까, 갈림길 앞에서 나는 진정한 선택보다 쉬운 타협을 더 많이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별로 좋지도 않은 머리로 선택에 따른 나의 손익계산을 따져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고 봐주고 납득할 수 있는 악의 경계는 어디까지이며 그 경계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 경계에 대해 어떻게 합의한 걸까. 내 짧은 생각을 아무리 뻗어본다고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심오한 문제라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니스의 아버지이자 다윈의 할아버지인 러너가 내 편이 되어준다.

그건 나쁜 게 아니야.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뿐이지. 카멜레온이 제 몸 색깔을 바꾼다고 누가 비난하더냐? 이 혼탁한 세상에서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아버지가 된다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냔 말이야.’ (636)

이 말이 왜 이다지도 고마우면서 슬플까.



 

누구도 기원을 끝까지 밝혀 가며 살 수는 없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살인하지 않은 조상을 가진 핏줄이 과연 단 하나라도 있을까? (770)

 

악은 우리 뼈와 핏줄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본성일 것이다. 저 글을 읽으며 루쉰의 <광인일기>가 생각났다. 루쉰의 <광인일기>에서는 사천 년간 사람을 먹은 이력을 가진 나. 처음엔 몰랐지만 이젠 알겠다.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기 어려움을!’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책에도 할아버지 DNA가 아버지랑 저에게 공유돼서 그런 거 아닐까요?”(738)라거나 말은 DNA가 중요한 동물이거든 인간처럼 조상과 후손을 엄격하게 따지지.”(764)같은 문장들이 보인다. 악의 DNA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을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뼈와 핏줄 안에 깊이 새겨진 악을 지워낼 수 있을까 고민해 왔지만 실패했다. 문명이라는 화려한 이름 아래 세련되게 숨겨두는 건 가능했을지 몰라도 우리 안에 있는 악을 부정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운명인가 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루미는 이 진화한 다윈이 자기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을 느꼈다. 루미는 자기도 모르게 돌발적으로 다윈에게 입을 맞추었다. (851)

 

진실을 집요하게 좇던 루미는 진화한 다윈에게 돌발적으로 입을 맞추며 다윈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늘 바라 온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856)이라고 생각한다. 루미는 내내 자신의 이름처럼 빛을 좇아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했으나 루미가 이라고 확신했던 제이삼촌도 실상은 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책의 그 누구도 빛이 아니고, 이 세상 그 누구도 빛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루미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다윈도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드디어 악을 삼킨 다윈이기에 이상적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라면 무릇 악의 DNA까지 발현되어야 완전한 인간인 건가. 악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인간이 오히려 불완전한 걸까. 하긴 인간이 선한 빛으로만 가득하다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반납하고 하늘로 올라가 천사가 되어 천국을 누리며 살고 있겠지. 루미가 진화한 다윈에게 이끌리듯 우리는 본능적으로 악을 향해 몸을 기울이게 되는 운명인가 보다.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에 자기만의 후드를 감춰두고 살아가고 세상 곳곳에서 악은 음흉한 꼬리를 흔들며 유혹한다. 누구였더라... 악은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인간주제에 그렇게 정교하고 치밀한 악의 계략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운명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삶을 사는 것뿐이라는 거야.” 651

모두 각자의 죽음이 납득되는 삶을 살아야 해.” 845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것, 아니 그냥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악을 자각해야 가능한 걸까. 내 안의 악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세상 앞에 죄인의 마음을 갖는 것. 내가 이 세상의 오점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조심하고 겸손해지는 것.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죽음이 납득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빛과 어둠을 다 끌어안고서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존재하는 악의 문제는 풀 수 없고 제어조차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경솔했던 점 하나를 더 반성한다. 이 책은 청소년 책이 아니다. 물론 청소년들이 읽겠다는 걸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주인공들의 나이가 열여섯이니까 그 정도 나이의 청소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청소년읽을 책은 아니라는 거다. ‘청소년 책이라고 독자의 한계를 규정할 수 없는 책이라는 뜻이다. 성인들도 널리 두루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다윈을 비롯한 열여섯 아이들의 아버지는 40대이고, 그 조부모는 70대이다. 그러니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모두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소설이라고 해도 좋겠다. 악의 기원에 대한 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정도는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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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3-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니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생각나네요.

섬사이 2018-03-26 11:57   좋아요 0 | URL
정유정의 <종의 기원>도 이런 주제를 다뤘나 봐요.
예전에 <7년의 밤>을 읽었는데, 저와는 잘 안 맞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정유정의 책은 찾아 읽지 않았는데,
<종의 기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해지긴 하네요.

다락방 2018-03-25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대로 보기 마련이잖아요. 마지막에 루미가 다윈에게 이끌리고 이상적인 남자로 생각하게 됐을 때, 되게 복잡한 마음이 되더라고요. 니가 보는 게 다가 아니다, 너는 그토록 진실을 좇는 아이였잖니, 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어디 루미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바로 제게도 해당되는 일일텐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도 어른들에게 일독할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섬사이 2018-03-26 12: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죠. 루미는,,,, 뭐랄까. 영악하고 야무지고 맹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어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 루미 외에 다른 여성들은 수동적인 여성이거나 성녀처럼 이상적인 여성으로 그려져 있더라구요. 러너의 양어머니와 부인, 해리의 부인이자 제이의 엄마, 또 조이헌터의 부인까지도요. 그래서 나중엔 루미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나무 아래 서 있는 다윈에게 다가가면서 다윈이 자기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해서 루미처럼 영악하고 야무져도 결국 악이 끌어당기는 힘을 거부하기 힘들구나, 했죠.

다락방님과 이렇게 책 이야기 나누는 거 너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