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적은 시집 2.


김선우 시인의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모두 옮겨 적었다.  4월 20일에 첫 시 '대관령 옛길'을 적었고, 5월 17일에 끝 시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적었다. 나란히 펼쳐놓고 보니 첫 시에도 끝 시에도 겨울과 자작나무가 나온다. 첫 시에선 '겨울 자작나무', 끝 시에선 '겨울산으로  돌아가는 자작나무'.  끝 시의 자작나무가 첫 시의 겨울 자작나무로 돌아와 서 있는 모습이다.  되돌이표 같은 순환. 


김선우 시인의 시들 속에서 에로틱한 여성의 몸이 자연과 생명, 순환의 주체로 깊어져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읽고 쓰다가 나 혼자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다가 그런 내가 한심하고 우스워 다시 부끄러워지곤 했다.  부끄러움의 되돌이표 순환. 




아들이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늘 맛있는 과식 뒤에 밀려오는 걱정과 후회들. 하지만 이런 게 바로 지극히 평범한 내가 맛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인데!  아들이 만들어주는 파스타를 거부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게 도대체 뭔데!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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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18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만들어주는 봉골레 파스타라니! 섬사이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런 기쁨이 여기 있건만, 뭣이 중허단 말입니까!! >.<

섬사이 2018-05-18 20:20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불어나는 체중 따위, 아들이 만들어준 봉골레 보다 중허겠어요?
체중 때문에 아들의 요리를 누리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어요.
(그러나... 어느날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 울지도 몰라요.ㅋ)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영산홍이 붉은 바다처럼 일어나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파르르 떠는 붉은 물결 같다. 영산홍 양쪽에는 겹벚꽃나무 두그루가 화사하게 구름같은 분홍꽃을 피우고 있다. 그 위로 비스듬히 눈 시린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즐겁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 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큰숨을 내뱉게 된다. 미세먼지도 없고 햇빛도 좋은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딸아이 침대에서 이불과 패드를 거둬 빨아 널었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로 화분을 옮겨 놓았다. 빨래도 식물들도 행복해 보였다.

 

얼마 전에 다락방 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알게 돼서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에서 출간한 세계문학시리즈 중 베스트 e-book 30권을 아주 싼 값에 샀다. 마침 조지 오웰에 관심이 생기고 있는 중이었는데, 30권 안에 <동물농장><1984>가 들어있었고, 그 외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동물농장>은 민음사에서 나온 걸로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1984>는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1984>보다 <동물농장>이 문학성 면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1984>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의 조지 오웰에게는 1984년이 미래였겠지만 나에겐 오래 전 과거라는 시간적 오차(?)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84>를 읽으며 내가 조지 오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확실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다. 위대한 작가를 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조지 오웰의 작가적 업적과 문학적 성과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거다. 그는 정직하게 말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행동하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조지 오웰도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두려워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1984>에서는 분명 두려움이 느껴진다. 빅브라더라는 거대권력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무력함을 두려움 없이 쓰는 일이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조지 오웰이 나와 다른 건,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용기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를 증명할 수 없다. 나는 두려우면 숨는다. 그는 두려우면 썼다.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총을 들었다.

 

앞에서 말했던 시간적 오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동물농장>보다 문학성 면에서 부족한 것 같고, 메세지의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1984>를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것은 보다 많은 물음들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조지 오웰이 염려했던 전체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1984>에서 보여주는 여러 정치사회적 술수들에 대해서만은 어쩌면 부분적으로라도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할지 모른다는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의미있게 읽을 책인 것은 분명하다.

 

<1984>를 읽고 어제부터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담은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지 오웰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의 필사를 마쳤다. 324일에 첫시 '풍경의 깊이'를 옮겨적기 시작해서 419일에 끝시 '강으로 가서 꽃이여'를 적었다. 25일간 매일매일 시를 옮겨적는 동안 나는 시와 가까워진 걸까. 넓은 광장 이 끝과 저 끝 마주보는 벤치에 앉아 살짝 눈은 마주친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저 끝 벤치에 앉아있던 시가 ', 매일 이 광장을 찾아와서 맞은 편 끝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네.'하고 알아봐주지 않았을까. 계속 옮겨적고 읽다보면 언젠가는 시와 한 벤치에 앉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지금은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옮겨 적고 있다. 오늘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까지 옮겨 적었다.



 

조지 오웰은 이 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1984>를 읽다가 문득 영산홍 붉게 화려하고 햇빛 찬란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책의 내용과 풍경이 너무나 어긋나 있어서 현실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음산한 계절에 <1984>를 읽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했을 것 같다.그러니 차라리 봄에 읽는 편이 더 낫다. 한동안 조지 오웰의 책을 몇 권 더 읽게 될 것 같다. 조지 오웰을 이해하려면 스페인 내전에 대한 상식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읽어야 할 박지리 작가의 책도 한 권 더 남아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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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책을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합체>에 이어 <맨홀>을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한 번 더 읽고 난 다음이었다. 1948년에 발표된 일본 작가의 소설 <인간 실격>2012년에 출간된 한국작가의 소설 <맨홀>은 그 주제가 비슷하게 닿아있다. (<맨홀>은 2012년에 책이 나왔고, 2017년에 표지를 갈아입고 새로 나왔다.) 인간의 난해함, 삶의 부조리,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세상, 주인공은 세상과 겉돌고, 괴로워하고, 안간힘을 쓴다.

 

다른 게 있다면 <인간 실격> 요조의 방황의 원인이 타고난 예민한 감각 혹은 천재성과 같은 선천적인 것이라면 <맨홀>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주인공 ''의 방황은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학대라는 분명한 원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악마같은 아버지를 세상 사람들은 16명의 생명을 구한 자랑스런 소방관이라며 경의를 표할 때나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누나와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말할 때 주인공 ''가 느껴야 하는 역겨움과 분노가 너무 실감나게 다가온다. <맨홀>의 주인공,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의 불행과 비교하면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불행은 가볍게 느껴진다. 내가 천재성의 비극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인간관계란 것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틀어져 버리면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관계랄 수도 없는 학대를 당하면서 밖에서는 완전하고 순결무구한 것만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속마음을 눈치 빠른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으면, 나는 바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하며 그 녀석과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그러고는 역시 혼자가 편하다고 자위했다. <맨홀> 201

 

<인간 실격>의 요조는 학교 따위 우습게 여기고 스스로 그만두다시피 하지만 <맨홀>''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자랐고,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구제 불능 낙오자가 될까봐 겁을 먹었고, 학교에 못 가게 될까봐 두려워서 지옥 같은 집을 뛰쳐나오지도 못한다. 누군가 자기의 불행을 알아차릴까봐 친구들 사이로 스며들지도 못한다. 마음 속에 타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거세어질수록 ''를 삼켜버릴 깊고 어두운 구멍도 더 짙고 선명해진다.

 

이제는 내 정체를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으려는 참에 저는 실로 불의에 등 뒤에서 칼을 맞았습니다. ...... (중략)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 하여 왁 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핵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그때부터 계속된 나날의 불안과 공포.

<인간 실격>, 31~32

 

그에 비해 <인간 실격>의 요조는 '익살'이라는 나름의 비법을 연마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호감을 얻는다고 해서 요조가 느끼는 삶의 비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다케이치에게 자신의 '익살'이 거짓이라는 걸 들키고는 내면에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탄로날까봐 노심초사한다.

 

<인간 실격>은 누구나 갖고 있는 내면의 고민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맨홀>처럼 가정폭력이나 학대 같은 분명하고 심각한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떠안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고민들.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이라든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맑게 드러나지 않는 세상, 오리무중 뿌연 안개로 가려진 것 같은 애매모호한 진실 같은 것들, 나이를 먹고 오래 살아도 풀 수 없는 삶의 난해함과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들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두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인간 실격>은 좀 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고, <맨홀>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스토리를 통해 주제에 접근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박지리 작가의 책들 중에서 <맨홀>이 가장 무겁고 어두웠다. 가정폭력의 깊은 상처를 가졌다 하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 고등학생의 이야기니까 마지막 어디쯤에 작가가 주인공 ''가 이 지독한 상처를 이겨낸다는 희망의 암시라도 마련해 두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인간 실격>도 그렇고 <맨홀>도 그렇고, 현실은 가혹하고 차디차고 광폭하고 허위와 허세에 가득 차있고, 역겹다고 말할 뿐이다.

 

연이어 어둡고 쓸쓸하고 아픈 책을 읽었더니 우울해진다. 더구나 <문라이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 이 영화도 마음이 힘들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아픈 이야기들이 많은 걸까.




 

게다가 세월호 4주기다. 문학동네에서는 <눈먼 자들의 국가> e-book을 무료로 대여 중이다. 오늘 낮에 태블릿에 다운받아서 맨 첫 글, 김애란 작가가 쓴 꼭지를 읽었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글을 잘 쓴 거야, 이씨, 너무 잘 써서 그날 느꼈던 감정들이 다 결을 세우고 일어나잖아. 했다. 더 이상 읽기가 어려워서, 그 다음 글로 차마 넘어가지 못했다. 아침에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시 읽어야겠다.




 

그 다음엔 좀 따뜻하고 희망적인 책을 읽어야겠다. 안 그러면 무기력해져서 우울로 빠져버릴 것만 같다. 박지리 작가의 다른 책 <양춘단 대학 탐방기>가 테이블 위에 대기 중인데, 표지 분위기도 밝고 (코믹하고), 앞에 몇 쪽을 읽어본 바로는 묵직하고 어두운 느낌은 아니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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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4-1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페이퍼를 보니 저도 맨홀을 읽고 싶은데 꼭같은 크기로 ‘읽지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눈먼자들의 국가는 다운 받으러 가야겠어요.

섬사이 2018-04-18 00:03   좋아요 0 | URL
너무 아픈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거짓말 같은 비극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걸 수차례 목도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봐요.
<눈먼 자들의 국가>는 조금씩 읽고 있는데,
세상에 넘쳐나는 아픈 이야기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그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미친 봄이다.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댄다. 어제는 시조부님 기일이라 산소에 가는데 도로 화단에 심어놓은 팬지 꽃들이 세찬 바람에 꽃잎을 떨어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꽃이 늦어진다 했더니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다 만개해버린 것도 올봄이 유별나다는 증거다. 매년 노란 산수유 꽃이 피고 나면 가녀린 매화가 짧게 피었다 져버리고, 그 다음에 개나리와 벚꽃이 핀 다음 목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나무가지 위에 툭툭 피어나곤 했다. 그런데 올봄엔 산수유와 매화와 개나리, 벚꽃, 목련이 다 한꺼번에 피었다. 신기하게도 민들레 꽃은 참 드물게 보인다. 작년에 첫 민들레를 3월 14일에 보았고, 재작년에는 3월 21일에 보았는데, 올해는 3월 30일에서야 민들레를 보았다. 그것도 거의 찾아다니다시피 해서 너무나 작고 약해 보이는 민들레를 만날 수 있었다. 
올봄은 지금까지 내가 맞이했던 봄들 중에서 제일 못됐다. 



미세먼지에 날씨도 요동을 쳐서 가뜩이나 나다니기 싫어하는 나는 거의 매일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책을 읽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고 호감을 느꼈던 작가 박지리의 첫 소설책이다. 이 작품으로 2010년에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던 것 같다. 오합, 오체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데,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비해 문체가 밝고 경쾌했다. 다음엔 <맨홀>을 읽어볼 작정이다. 



오래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얼마전 가수 요조가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는 걸 읽었다. '요조'라는 이름도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딴 거라고 했다. 더욱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이 책이 내 인생을 뒤흔들만큼 인상깊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래, 맞아.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하는 마음으로 자꾸 곱씹게 된다. 물론 이 작가와 나는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여건도 다 다르고, 나는 무엇보다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삶이 고통스럽다거나 세상에 환멸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소설 속 주인공 요조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 공포, 인간 삶의 난해함 같은 것들이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읽고 나서 불편해지는 책은 대부분 좋은 책이다.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매일매일 가만가만히 작은 공책에 옮겨 적고 있다. 지금까지 63쪽 '나비'라는 시까지 옮겼다. 옮겨 적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다. 눈으로 쓰윽 읽었을 땐 그냥 스치듯 지나갔던 행들이 갑자기 돋을새김을 한 듯 눈에 띈다. 그럴 땐 잠시 펜을 멈추고 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다 옮겨 적고나면 집에 있는 시집들을 한 권씩 꺼내어 옮겨 적는 일을 계속 해보려고 한다. 


책을 샀다.
며칠 전에 마음책방 '서가는'에 가서 책을 두 권 사왔다.


내가 요즘 내 오래된 기억들을(예를 들면 내가 기억하는 첫 집, 어릴 때 엄마가 사줬던 목걸이, 어릴 적 동네의 풍경 같은 것들) 확인하려 든다고 했더니 책방 쥔장이 추천해준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지 알 수없지만 정신분석학자인 저자가 자기의 여러 기억들을 돌아보는 내용인 것 같다. 나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 나와 나의 기억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의 기억'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신분석학자는 자기의 기억으로 책을 한 권 써냈다. 정신분석학자가 생각하는 '기억'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나'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감을 일으킬만한 것일까. 나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을 다룬 심리 그림책인데,  그림책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지는 책이다.  그림책이지만 그림책 같지 않은 책.  뭐랄까,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약하다는 게 아쉽다. 일러스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글작가가 정신의학과 교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명문 같은 글들이 부자연스럽다. 굳이 따지자면 그림책이라기보다 글이 적고 그림이 예쁜 짧은 교양심리에세이? 


오늘, 아니다. 이미 어제가 되어버렸다. 어제 우리동네 세 책방(카모메 그림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서실리)이 모여 '호호서가'라는 이름의 플리마켓을 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다. 집에서 늑장을 부리다 3시 반이 지나서야 집을 나섰다. 가면서 속으로 '날씨도 구질구질한데 벌써 철수한 거 아닐까. 다 철수해서 없으면 걷기 운동했다 치고, 아직 마켓을 하고 있으면 책 구경을 하면 되고.'하는 마음이었다.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뿌리는 날씨였지만 플리마켓은 진행 중이었고 책 3권을 데려올 수 있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파헤친 시간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혹시 자기계발서인 건 아닐까 슬쩍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저자가 '철학과 물리학, 심리학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게다가 이 책은 중고책이라 단돈 3천원에 내 품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꺼내놓으니 큰딸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응,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


난 임경선이라는 작가를 모른다. 그리고 '예담'이라는 출판사도 나와 성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예담'의 책들은 거의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고른 건 제목때문이었을 거다. 자유라잖아. 자유로워지라잖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만큼 대담할 수 있는지 가르쳐줘, 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아마 이 책이 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거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책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메모지에 '화분에 물줄 것'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는 기분이다. '자유로울 것'이라니...... 이 작가는 어떤 생각일까. 그 생각이 궁금해진다. 



김선우의 시집이다. 사실 난 김선우의 글은 시집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아까 적었듯이 나는 매일 시를 옮겨적는 사람. 그러니 기념으로 시집 한 권을 더했다. 집에 있는 시집을 다 필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지만 거기에 이 시집을 한 권 더하는 건 꽤 걸리는 시간에 아주 조금을 보태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김선우의 시와는 좀 친해져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집에 있는 김선우의 다른 시집들과 한꺼번에 이어서 필사하면 좋겠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는 날씨가 풀린다고 했다. 이제 미친 봄은 그만하고 화사하고 청명한 봄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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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혜화동 <마음책방 서가는>에 다녀왔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심리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심리독서모임이라니,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쯤 일찍 도착했다. 책방 분위기는 깔끔하고, 세련됐다. 주인장이 우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를 테면 저 엔틱(?)한 느낌의 책꽂이와 작은 책상, 촛대와 촛불모양의 전등.


           입구 왼편에 놓여있던 저 테이블 셋팅 같은 거. 
           책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책방의 분위기가 어떨지 느낌이 왔다.


'마음책방 서가는'은  몸, 마음, 삶을 주제로 한 책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책방이다. '생각속의집'이라는 출판사가 만든 책방이기도 하다. 심리와 관련한 그림책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우울을 다룬 <굿바이 블랙독>과 불안을 다룬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가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것들이라고.






책방 안. 여기저기 레이스 테이블보. 역시 여성스럽고 우아한 취향. 난 그런 취향이 아니라서, 가끔 이런 분위기 속에 있으면 기분이 새롭고 좋다. 맨 아래 사진은 커다랗고 두터운 나무 테이블이 있었던 방의 한쪽 구석이다. 그 커다랗고 두꺼운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모임을 했다. 남양주에서 오신 분, 안산에서 오신 분, 그리고 나. 3명이었다. 

고백하자면 난 독서모임 같은 걸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도서관 책고르미로 활동하고, 도서관 상근자의 입장에서 책낭독 모임을 해본 적은 있다. 아, 신동호 시인과 함께 잠깐 책모임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그것도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순수자발적으로 참여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책 읽기는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경험이라고 믿는 편이었고, 굳이 그걸 다른 누군가와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남들 앞에 꺼내놓을 만큼 그럴듯한 느낌이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가끔씩 읽은 책에 대해서 블로그 같은 데에 감상을 적긴 하지만 그것도 기억하기 위한 개인적인 기록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자리였다. 하지만 모임 내용의 충실 여부를 떠나서 나와 삶의 내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아, 이래서 독서모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독서모임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야 다양한 관점들이 나올 것 같았다. 엄마들만 모인다거나, 20대 청년들만 모인다거나, 여자만 혹은 남자만 모인다거나 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다양한 나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고 듣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고, 나를 확장시키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모인 사람들 모두 다른 관점을 수용하는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에고라는 적>이다. 얼마 전에 이 책을 읽었던 건 다 이 모임 때문이었다. 사실 난 <에고라는 적>이 별로였다. 심리독서모임이라고 했는데, 왜 자기계발서를 읽으라고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책방쥔장의 해명에 따르면 3월에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을 가지고 모임을 했기 때문에 '에고'라는 주제에 더 깊이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선정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책선정에 미스가 있었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오직 '성공'만을 지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특히 모임에 참석한 사업경영자 분의 입장에선 공감가는 부분이 꽤 많아서 평가가 높아졌던 것 같다.  

4월엔 불안을 다룬 그림책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로 모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4월에도 또 참석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독서모임이 신선하기는 했지만 "누군가가 정해주는 책 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테닷" 하는 제멋대로 책읽기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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