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동물을 좋아한다.  꼭 반드시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은 일요일 아침에 하는 '동물농장'과 EBS에서 방송하는 '동물일기'이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누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면 그 강아지를 좇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얼마 전에는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갔는데 노란 구렁이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는 체험이 있었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울먹울먹하며 아쉬워했고, 그걸 본  관계자 분께서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만져보게 해주겠다'고 하셔서 체험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어이 구렁이를 쓰다듬어주고 왔다. 

그런 막내가 강아지를 키우자, 고양이를 키우자 졸라대는 것은 당연지사.  두 달쯤 전에 냉면을 먹으러 충무로 근처를 지나다가 길가에 주욱 늘어선 애견동물 가게를 보고는 강아지를 사달라고 얼마나 떼쓰고 졸라대던지.  네가 똥오줌 다 치워줘야 한다고 윽박질러도 그러겠단다, 자기가 똥오줌 다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시키고 밥도 주고 다 할 테니까 사달란다.  오마이갓~!!! 난 세 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닷~!!!  강아지를 키우려면 장난감도 다 치워야 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멈칫, 잠시 곰곰 생각에 잠기더니 그럼 자기가 17살이 되면 그 때는 꼭 사달란다. 그렇게까지 물러서는데 나도 그러마 했다. 

얼마 전 같이 이마트에 나갔다.  내가 장을 보는 사이에 오빠랑 애완동물 코너에 가있던 막내가 햄스터를 사달란다.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물고기를 한 마리만 사달란다.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들여놓아야 할 장비며 소품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는 모르니까. 잠깐 실갱이를 하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   우리, 길냥이 밥 사다가 줄까?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앗싸, 성공이다!!!   그래서 사온 고양이 밥.  

 

생전 처음 사본 고양이밥이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웠었지만 집에서 가족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을 줬지 돈 주고 사료 사다 먹이진 않았었다. 세 개 묶어서 2850원이었는데 씨푸드칵테일과  연어+참치로 총 6파우치를 사왔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한 봉지 뜯어서 에어컨실외기와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통하는 나무 계단 사이에 물과 함께 놓아 두었더니 한동안 파리들이 날아와 잔치를 벌였다.  막내가 파리들이 와서 먹는다고 잔뜩 실망했었는데 해가 지고 7시쯤 나가보니가 어느 새 몰래 와서 소리도 없이 싹싹 다 먹고 갔다.  마치 설거지를 한 듯 접시가 반짝였다.  막내가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솔직히 나도 좀 신기했다.  뿌듯했고.   

오늘로 그 때 사온 파우치형 사료는 다 먹었다.  그래서 그저께 인터넷으로 고양이 사료를 주문했다.  고양이 사료도 가격이 천차만별.  그 중 싸고 양이 많은 것으로 주문했다.  날이 추워지면 습식 사료는 얼어버릴 걸 같기도 해서 건식 사료가 필요할 것 같았다.  길냥이가 건식사료에 익숙해질 때까지 섞어서 줄 캔형 습식사료도 같이 주문.  오늘 도착한 사료가  이거다.  

  

 

 

 

 

 

 

 

 

 

 

 

 

 

 

왼쪽 사료가 7.5kg에 16990원.  생각보다 양이 엄청 많구나.  저 캔사료는 24개 한 박스에 12900원.  오늘 건식사료를 섞어서 처음 줘봤는데 또 싹싹 다 먹었다.   

길냥이 밥을 챙겨주면서 길냥이와 마주친 건 딱 세 번.  처음엔 밥을 주고나서 베란다에서 다 먹었나 보려고 내다 보았는데 길냥이가 아직 식사중이었던 것.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식사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얼른 거실로 들어왔는데 다행히도 나중에 다시 와서 마저 식사를 다 했다.  또 한 번은 다 먹었겠지, 하고 밥그릇을 회수하려고 나갔는데 그 날따라 늦게 와서 식사 중이었나 보다. 또 본의 아니게 식사를 방해.  "어, 미안미안.. 그냥 맛있게 먹어. 나 들어갈게"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세번째 마주친 건 오늘.  밥을 주려고 막내랑 같이 나갔더니 이런,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우리를 보고 또 화단 나무 뒤로 숨길레 그냥 밥과 물을 놔주고 돌아왔다.   

막내는 언제쯤 길냥이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겨울엔 길냥이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상자로 집을 만들어줘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담요에 핫팩까지 넣어줄거란다.   

난?  길냥이 밥주기가 일상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나 할까?  길냥이가 언젠가 나를 알아봐주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이제 길냥이가 왔다가 밥이 없으면 서운해할까봐, 혹은 "뭐야? 오늘 밥 없는 거야?"하며 짜증을 낼까봐 걱정되어서 오후 5시30분에서 40분 사이라는 식사시간을 꼭 지켜주려고 애쓰고 있다.  게다가 밥만 챙겨주면 되는 동물친구라... 아이 셋을 돌봐야 하는 나로서도 나쁘지 않고, 막내는 길냥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니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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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11-0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말로 담요에 핫팩까지 넣어주시는 분들이 봤습니다. ㅎ 박스 만들어주면 좋지요. 안 입는 옷이나 못쓰는 방석 같은거 깔아서요. 지난 겨울엔 길냥이들 때문에 걱정이었어요. 사료도 당연히 좋고요, 길냥이들에게는 물이 더 중요해요. 길냥이의 수명이 1-2년인 것은 (집고양이의 수명이 15-6년 이상인걸 생각하면...) 고양이들이 신장이 약한데, 더러운 물을 먹거나 물을 먹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해요. 집에 있는 고양이도 물 신경 많이 쓰고, 물 많이 안 먹는 애들도 많아서 습식사료 먹이곤 하거든요. 무튼, 길냥이들은 특히 겨울에 물구하기가 힘들어지니, 사료와 함께 물을 주면 아주 좋습니다.

사람이 길냥이랑 너무 친해지는 건 좋지 않아요(그런 경우 없지만). 그냥 데면데면한 정도도 감지덕지지요. 길에는 아직도 고양이에게 못된짓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길냥이는 사람에게 경계심을 가지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더라도 분명 조만간 밥내노라고 밥그릇 앞에 앉아서 시위할꺼에요. ㅎㅎ 고양이니깐요.


섬사이 2011-11-05 06:59   좋아요 0 | URL
그저께는 두 마리가 왔지 뭐예요! 사료를 깨끗이 먹어치우고서는
나무계단에 누워서 한껏 여유를 즐기더라구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관심없는 척 곁눈질로만 살짝살짝 보았습니다. ^^
사료를 좀 더 넉넉히 줘야겠구나 했어요.

무스탕 2011-11-0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 정성이도 동물을 무지 좋아합니다. 강아지건 고양이건 새건 물고기건 뱀이건 모조리 좋아해요.
어려선 키우자는 말을 안하더니 조금 커선 키우자 그러길래 네가 똥치우면 키우겠다니 그것만 엄마가 하래요. 먹이주고 씻겨주는건 자기가 한다고요. ㅋㅋ

울 동네 길냥이들은 제 목소리를 알아요. 제가 먹을걸 모아서 갖고 나가면서 야옹~ 하고 부르면 근처 고양이들이 집합을 하죠.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허튼소리로 고양이를 부르지 못하겠더라구요. 괜히 불렀다가 먹을게 없으면 실망할테니까요. 근데, 그 냥이들 중에 정말정말 이쁜 냥이가 있어서 만져보고 싶은데 그건 꿈도 못꾸게 해요 ㅠㅠ

섬사이 2011-11-05 07:0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은 길냥이들의 대모시구나~~!!
대모님도 만져보는 걸 꿈도 못꾼다니, 저도 일찌감치 포기해야겠네요. ^^
위에 하이드님 말씀대로 길냥이들과는 '데면데면'한 관계가 더 좋겠다 싶어요.
어제는 길냥이가 겨울에 와서 따뜻하게 몸이라도 녹이라고
상자로 집을 좀 만들었어요.
그런데 길냥이에게 이런 집을 놔주는 게 좋을까, 고민이 되요.

노이에자이트 2011-11-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고양이나 개와 노는 모습은 정말 귀여워요.사진 찍어서 한 번 올려주세요.

섬사이 2011-11-05 07:09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노이에자이트님^^
사진찍는 건 아직 엄두도 못내요.
밥 먹고 있는 모습이라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직은 그것도 쉽지 않아요.
언젠가는 아이랑 고양이가 같이 노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길냥이 모습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긴 해요.

이진 2011-11-0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는 새벽에 추울까봐 담요를 깔아주었는데 다음날 보니 누가 담요를 가져갔더라구요..어찌나 황당했던지 말입니다.

섬사이 2011-11-05 07:11   좋아요 0 | URL
허걱~!!! 누가 그랬을까요.
길냥이 만큼이나 추운 누군가였을까요?


암튼 반가워요, 소이진님.^^

2012-01-01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10월 19일에 있었던 색깔아이는 내가 아이들과 꾸려가야 할 차례였다.  우리집 세 아이들이 모두 재미있게 읽었던, 너무나 유명한 그림책 사토 와키코의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읽고 뭔가 해보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한 달 전쯤 동대문시장에 가서 광목천을 두 마정도 사다가 도깨비 인형 본을 떠서 엄마들에게 나누어 주고 인형을 만들어 오라고 숙제를 내줬었다.  호피무늬 천은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샘플로 내놓은 천을 몇가지 집어왔다. 가게 사장님들께는 죄송하지만 호피무늬 천이 광목천에 비해 너무 비싸서...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는 아이들 대부분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책.  그래서 수업 들어가기 전에 읽어주려고 했더니 반응들이 영~~~  "에이~~ 그거 나 벌써 다 아는데.."다.  

살살 달래서 좀 더 오버하는 기분으로 읽어줬더니 다 안다고 시시해하던 녀석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읽고 나서 아이들이 도깨비의 얼굴을 그려주는 작업 풍경.   

 

아이들은 얼굴 뿐 아니라 도깨비 팬티에 배꼽, 찌찌(?)까지 세심하게 그려줬다.  목걸이와 팔찌 등의 악세사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 아이들보다는 여자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도깨비 5형제.  

 

아이들이 그린 도깨비 얼굴도 제각각이지만 엄마들이 만든 도깨비 옷의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우리 막내가 만든 것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집에 돌아와서는 도깨비 얼굴을 또 그려주고 싶단다.  도깨비 인형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하고 있다가 둘째 볼거리 때문에 혼비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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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0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저런 도깨비 인형 만드는 것도 손많이 가셨겠는걸요.
아이들이 정말 잼나게 했겠네요, 이뻐요. 그리고 넘넘 좋네요.
다들 신발도 신기고, 웃는 상으로 만들었네.... ^^

섬사이 2011-11-05 07:14   좋아요 0 | URL
도서관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에 가진 모임이었더래서
엄마들이 더 정신이 없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즐거워했어요.
저 도깨비 인형들, 지금은 도서관 관장님 방 창문에 걸어놓은 빨래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요.

조선인 2011-11-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볼거리라니 얼마나 아플까요. 아이도 엄마도 힘들겠어요. 잘 먹지도 못할텐데, 가여워서 어째요.

섬사이 2011-11-05 07:15   좋아요 0 | URL
심한 아이는 묽게 쓴 죽은 빨대로 빨아먹는대요.
둘째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계속 먹어서 그런지 밥도 그냥저냥 먹는 편이었지요.
지금은 다 나았어요.
지난 목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출석중입니다.^^

무스탕 2011-11-0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깨비 사진을 보면서 오른쪽 두번째 도깨비는 목걸이에 팔찌까지 하고 활짝 웃고있네 했는데 막둥이표 도깨비였군요 ^^
애들이 그리기 좋도록 도깨비 크기도 커서 더 좋았어요 :)

섬사이 2011-11-05 07:18   좋아요 0 | URL
다들 열심히 그렸죠. 도깨비 팬티까지 그려주는데 어릴 적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던데요.
"도깨비 빤스는 튼튼해요~ 질기고도 튼튼해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하는..

무스탕님도 알고 계시려나...?? ^^

무스탕 2011-11-06 19:13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 노래를 전 조금 늦게 알았어요. 어려서는 몰랐고 정성이 자랄때 알았어요.
"도깨비 빤쓰는 더러워요. 냄새나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이천 년 동안도 끄떡 없어요" 전 이렇게 알고 있어요. ㅎㅎㅎ
 

 

둘째가 볼거리에 걸렸다.  17살짜리가 볼거리에 걸리나... 의심스러웠지만 의사선생님 말씀이 어린애들보다 둘째 또래의 청소년 아이들이 볼거리에 더 많이 걸리고 있단다.  지난 월요일에 증상이 시작되어 이번 주 내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격리조치되고 있다. (오늘이 양식실기시험 보는 날인데 그것도 포기..아까운 접수비 ㅠ.ㅠ)  우리집 꼬마는 오빠가 볼거리에 걸린 덕에 덩달아 어린이집에 못가는 실정.  어린이집에서 볼거리 보균자일지 모를 막내가 등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뭐, 나도 찝찝한 건 싫다.   

의사 말로는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상관없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잠복기가 1주~3주라니, 병균이 퍼지자면 벌써 다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다른 엄마들이 알게 된다면 무지 신경이 쓰일 것이고, 어린이집  쪽에서도 불편한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공연히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어린이집 아이 한 명이라도 볼거리에 걸린다면 죄인이 될 테니, 차라리 둘째 볼거리가 다 나을 때까지 집에 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첫째는 세 군데 대학에서 연달아 퍼퍼퍽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워낙 의젓한 성격이라 내색은 하지 않지만 기분은 매우 더러울 듯.  게다가 첫째보다 등급이 낮은 같은 반친구는 줄줄이 합격을 했다는 소식이다.  비결은..  4년간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가 유창하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고.  음...  국내에서 성실하게 공교육과정을 밟는 거보다 외국 나가서 몇 년 살다 오는 게 더 유리하구나.  돈만 많으면..!!!!   말로는 그 아이도 4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고생 많이 했을 거라며 큰아이 마음을 달래지만 어쩐지 나도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첫째와 같은 반 친구인 인기 아이돌 걸그룹 멤버 중 하나인 아이는 여기저기 대학에서 와달라고 매달리고 있단다.  "학교 홍보에 쓰려고 그러는 거겠지."했더니 우리 딸 격분한 목소리로 "엄마, 그 대학은 홍보 안해도 서로 가려고 난리를 치는 학교거든~!! 연영과에 들어간다면 또 몰라. 왜 엄한 인문학부에서 오라고 난리냐구, 난리가.."  그건 또 그러네..  

이래저래 첫째 아이는 세상의 쓴맛을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   

투표는 물론 했다.  좀 바뀔까... 기대해도 좋을까...  희망을 품어보려 하고 있지만 선거기간동안 흠집과 상처로 뒤범벅이 된 모습을 보면 좀 마음이 무겁다.  시장직을 수행해가는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흠집을 내려하고 끌어내리려 하고 상처를 주고 일을 방해하려들까 싶어서.  아이들이 세상의 쓴 맛을 배우기 보다 세상의 공정함과 희망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함'을 외치는 건 바보일까?)

평범한 전업주부인 나의 일상도 크고 작은 파도에 떠밀리고 휩쓸리고 .. 그리고 견뎌간다.  밀린 설거지를 처리하듯이 모든 일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보며 하루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개는 느긋함으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둘째 볼거리도 빨리 낫고, 첫째의 20대의 시작도 잘 준비되고, 막내의 일상도 얼른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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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예인들 공부도 안 하면서 대학에서 와달라하고, 본인들도 어디갔다하는 꼴, 정말 보기 싫습니다.
김연아 선수 아무리 국위 선양하면 뭐합니까, 저는 학교 출석도 안 하고 그러는거 보면 진짜 우습다 생각합니다.
차라리 유승호처럼 지금은 대학가지 않겠다고 말해주는 편이 이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나저나 큰 따님은 속상하겠네요.

네, 꼭 공정함과 희망이 우선인 사회였으면 한다는 점, 깊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소망들, 꼭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섬사이 2011-10-28 20:13   좋아요 0 | URL
유승호는 연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오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정치외교학과라는 말에 그 과에서 유승호를 왜? 하고 제 귀를 의심했었죠.
제 딸도 유승호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답니다.
사실 연예인이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우리딸이 들아가진 못할 거예요. 하지만 공부하는 아이들 기운빠지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 해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좋게 봐주는 것도 그래요. 우리나라는 우리의 교육제도를 그렇게 믿을 수 없는 걸까요. 대학도 우리의 공교육제도를 묵묵히 성실하게 따라온 학생들을 못믿어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답답해하고, 부모들은 학교의 교육내용이 충실치 않다며 사교육에 의존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마음이 심난해집니다.
우리는 대학을 통해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주려 하는 걸까요.

무스탕 2011-10-2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부터 볼거리 판정을 받고 집에 격리조치^^; 상황이었으면 접수비 환불조치 하시지 그러셨어요. 지난주에 신청하면 절반은 되돌려 받으셨을텐데.. 정말 아까워라. 준비 더 많이 하셔서 다음에 한방에 콱- 붙어 버리세요 :)

볼거리가 예방주사를 맞았을텐데도 걸렸네요. 아플텐데 잘 견디고 잘 낫길 바래요. 막내한테도 누나한테도 옮기지 않고 무사히 잘..
큰따님이 속 많이 상하겠어요. 주변에서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도 속상하지만 본인이 제일 힘들겠지요.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라는 신의 계시라 생각하세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섬사이 2011-10-29 08:53   좋아요 0 | URL
볼거리가 빠르면 3,4일 안에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잘하면 양식실기시험을 볼 수 있겠구나, 했죠. 예방주사는 성실하게 다 접종했는데 그래도 걸리나봐요. ㅠ.ㅠ
큰딸은 거의 매일 뒤숭숭해하고 있어요. 어제는 영어는 원어민급으로 하는데 수학이 7등급인 아이가 대학서열(?) 10위권 안에 있는 대학의 공대에 붙었대요. 영어만 잘 하면 수학이 엉망이라도 공대에 들어갈 수 있다며 어이없어 하더군요. 아마 배도 아프고 기운도 빠지겠지요. 저에게 막내를 외국으로 일찍 유학보내라는 말을 하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영어열풍이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이런 원인들이 있었더군요. 그동안 내가 너무 순진하게 살았나, 하고 제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니까요.
이번 주 도서관 책읽기 모임에서 토론할 책이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입니다. ^^ 하지만 무스탕님의 긍정의 힘을 더 따르고 싶은 날이예요.
 

아이와 자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다른 5명의 엄마들과 함께 7명의 아이들이 '색깔아이'라는 미술품앗이 모임을 하고 있다.   거의 1년 반정도의 시간을 함께 한 것 같은데 엄마들이 일주일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책을 읽고 미술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꾸려간다.  그 도서관에서는 가을마다 '나랑 같이 놀자'라는 제목으로 지역행사를 벌인다.  몇 가지 부스를 만들어 지역 아이들과 체험활동도 벌이고 1년 동안 도서관에서 벌인 각종 프로그램의 결과를 전시하기도 하고.... 지난 10월 15일에 열린 '나랑 같이 놀자'는 도서관 10주년 행사로 좀 준비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 날 가을비가 내려서 준비했던 것에 비해 활력이 넘치는 행사가 되지 못했다.  

암튼, 그 행사에 색깔아이는 무엇으로 참여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그린 <고 녀석 맛있겠다>로 큰 그림책을 만들어 전시를 하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들을 이 곳에 전시해 보관하려고 한다.  

 

 

 

 

 

 

 

 

 

 

 

이 그림들이 90*180의 크기로 확대되어 기다란 병풍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원래 행사장 밖에 전시될 계획이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아이들과 엄마들의 노래 잔치가 열리는 (김용택 시인, 백창우 시인,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김현성 씨 등이 함께 준비하고 참여해주신) 공연장 앞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엄마들이 먹지를 대고 밑그림을 그려줄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능력은 놀라워서 엄마들이 먹지로 뜬 밑그림보다 훨씬 더 예쁘고 귀엽게 스케치를 해냈다. 아이들다움이 드러나는 그림들을 보고 엄마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 그림들로 엽서를 만들어 미야니시 타츠야에게 보내주면 좋겠다고 꿈꾸고 희망하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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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0-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들이 그냥 그린게 아니라 정말 잘 그렷네요. 아 진짜 멋져요

섬사이 2011-10-27 12:28   좋아요 0 | URL
기대했더 것 보다 아이들이 잘 그려줘서 정말 신이 났더랬어요. ㅎㅎ

마노아 2011-10-2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대단한 작품이에요. 아이들도 엄청 뿌듯할 거예요. 작가님께 보내주면 정말 기뻐할 것 같아요.^^
활자는 붙인 건가요? 대단, 대단해요!!!

섬사이 2011-10-27 12:27   좋아요 0 | URL
예,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뿌듯했던 것 같아요.
저 큰 병풍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몇 단계를 거쳤는데요,
아이들은 8절지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를 했어요.
그걸 스캔해서 4절지 크기의 매트지로 출력해서 포스터 물감으로 색칠했지요.
다시 그걸 스캔해서 컴으로 글을 앉히고 저 큰 사이즈로 뽑은 거예요.
아이들 그림 한 장 당 용량이 400메가였어요. ^^

blanca 2011-10-2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정말 놀라워요. 작가에게 보내주면 감동일 것 같아요....

섬사이 2011-10-27 12:24   좋아요 0 | URL
미야니시 타츠야가 정말 감동해줄까요?
문제는 엽서 제작 비용인데...
차차 엄마들끼리 의논을 해봐야될 것 같아요.

잘잘라 2011-10-2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우웅" 정지우,가 그린 '울부짖는 법을 가르치는 아빠 공룡' 그림, 멋져요! 자세 좋고~ ^^

섬사이 2011-10-27 12:23   좋아요 0 | URL
지우는 색깔아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2학년 여자아이예요. 그림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 정돈된 느낌이 들죠?
 

밤새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하얀 가로등 불빛으로 빗줄기가 그리는 촘촘한 금들이 보였다. 비는 단단히 화가 난듯 사납고, 참 지랄맞게도 내렸다. 그날 이후로 혼자 있을 땐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날도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차 밖으로 빗줄기가 촘촘했다.

난 아버지때문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끈덕진 딸타령이 없었다면 엄마는 날 낳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아들만 둘이었던 우리집에 늦둥이딸로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예쁜 딸을 낳으라며 달력에서 예쁜 일본여자 사진을 오려서 엄마가 누워서 볼 수 있게 천정에 붙여놓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달력에 일본여자 사진이 많이 실렸었다고 한다. 딸이 태어나면 책가방도 들리지 않고 곱게 키울 거라고 큰소리를 치셨다는데 난 씩씩하게 책가방 매고 학교에 잘 다녔다.  

어릴 때 우리집은 식당을 했다.  2층 건물에 넓은 홀을 가진 제법 큰 식당이었고 손님도 늘 많았다. 아버지는 가끔 가게에 앉아있곤 하셨는데 난 그 때마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쪼르르 달려가 아버지 목에 매달려 10원만 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아버지는 늘 뽀뽀를 해야 준다고 하셨고, 난 아버지의 뺨이나 입에 뽀뽀를 하고는 10원을 손에 쥐고 과자를 사먹으러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밥을 드실 때 김치를 입에 넣으시면 얼른 아버지 등에 붙어서 아버지 관자놀이 근처에 귀를 대고 서걱서걱 김치 씹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귀찮으셨을 텐데 어린 딸이 등에 붙어 있게 가만 두셨다. 내가 '김치, 김치.'하고 조르면 아버지는 커다란 김치조각으로 골라서 입에 넣고 더 세게 씹으셨다.  

아버지는 자기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딸타령을 하셨다는 게 이제 생각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난 그런 딸인 것이다.  말없는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딸.  하지만 나는 정말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그런 딸이었을까?   

그날 밤 전화는 불길하게 울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잘못 걸려온 전화이기를 바랐다. 언젠가 새벽 3시에 잘못 울렸던 초인종처럼. 전날 회식이 있었던 남편은 만취해서 들어와 자고 있었다.  

누워있는 아버진 마치 산신령이나 도사님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옷을 걸치셨는데도 참 잘 어울렸다. 아버지와 뺨을 맞댔다. 너무 차갑다.  싸늘한 냉기가 느껴지던 중환자실에서  만졌던 아버지의 발보다 더.  중환자실에서 얇은 홑이불 아래로 비죽 나와있던 아버지의 발을 난 무심한듯 주물렀었다. 아버지에게 온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워서 온기를 나눠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견디실 거라 생각했다. 8년 전 더 큰 심장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아버지는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그러니까 이까짓 시술따위,  연세가 많아 좀 더딜지는 몰라도 회복하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때 숨결이 사라진 채 누워있는 아버지의 뺨은 내가 가진 체온이 결코 스며들 수 없는, 견고한 차가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기다리셨어야 했다. 적어도 떠나시는 동안 손이라도 잡고 있을 수 있게 우리에게 시간을 주셔야 했다. 이미 시퍼렇게 변한  아버지의 귀에 대고 사랑한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게, 미안하다는 말만 토해놓게 하시면 안되는 거였다. 자꾸 싸늘한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꽂고 혼미하게 누워 계시던 모습만 떠오르게 하면 안되는 거였다.  

난 아버지가 그토록 갖기를 바랐던 그런 딸이 되어드리지 못한 채로 아버지와 이별했다.  

언제나 주인을 잃은 방의 풍경은 눈물겹다.  아버지가 주무시던 침대, 외출하실 때마다 쓰시던 모자들, 집에 돌아오시면 갈아입던 편한 반바지..  엄마가 주인 잃은 빈 방을 보며 쓸쓸해 하실까봐 서둘러 유품정리를 했다. 가구도 옮기고 박스에다 아버지의 옷가지며 모자, 장갑, 넥타이, 시계 등을 담았다. 삶은 참 모질고 야박하다. 아버지라고 해도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위해 그 자리가 말끔히 치워진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병원 계단에서 엄마는 넘어지셨다.  그다지 금슬좋은 부부가 아니었는데도 엄마는 슬프고 황망해하셨다. 넘어지면서 다친 왼쪽 발이 부어올랐다. 유품을 정리하고나서 엄마를 모시고 친정 집 앞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는데 엄마가 정형외과 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러더니 불쑥 "의사 양반이 참 젊네. 인물도 좋고."하신다. "엄마는 왜 갑자기 의사선생님 인물평을 하고 그래."하면서 웃었더니 의사와 간호사도 웃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오는데 또 멈칫하시더니 "나 요 앞 아파트에 살아요."하신다. "엄마, 의사 선생님한테 집까지 가르쳐주시고,  엄마 이상하다."했더니 뭐가 이상하냐고 핀잔을 주신다.  

안다. 의사가 너무 젊어보여 연륜이 없는 것 같아 미덥지 않고, 병원 바로 앞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잘 치료해주면 소문도 내주고 일이 있을 때 자주 이용하겠다는 의미라는 거. 하지만 난 엄마 앞에서 너스레를 떤다. "엄마, 아버지 돌아가신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젊은 남자한테 한눈 팔고 집까지 가르쳐주고.. 엄마 안되겠네. 그렇게 안 봤는데 우리 엄마 선수네, 선수."  엄마가 쿡쿡대며 웃는다.  내가 엄마를 웃게 했다. 아버지도 웃고 계실까?

우린 아직 아버지와의 이별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열흘을 좀 넘겼을 뿐이니까.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아버지와 뒷모습이 많이 닮은 분을 볼 때, 누군가 날 위로한다며 안아줄 때, TV에서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하신 분들이 나올 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간장게장을 볼 때... 그럴 때만 마음이 덜컹한다. 그런데도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한동안은 계속 자고 먹고 자고 먹고 졸고 먹고 졸고 먹고..만 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여기에 쓰는 건, 이렇게라도 해야 밀린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 아버지 없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아버지에게 물어봤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왜 그토록 딸을 갖고 싶으셨는지, 태어난 딸이 마음에 드셨는지, 왜 이른 아침 어린 딸을 데리고 송지다방에 가서 계란과 우유를 먹이셨는지, 어느 날 나를 며느리라고 부르며 귤을 한 봉지 가득 사오셨던 아버지의 친구는 누구였는지, 어릴 적 내가 신던 빨간 피겨스케이트는 누가 골라줬던 건지, 왜 나는 한 번도 낚시에 데려가지 않으셨는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에게 뽀뽀하기를 거부하는 딸이 밉지는 않았는지, 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 기분은 어떠셨는지, 왜 그렇게 무뚝뚝하게 지내셨는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딸이 제일 예뻐보였을 때가 언제였는지, 한국전쟁 때 무섭지는 않았는지, 사는 게 제일 힘들 때가 언제였는지, 힘들 때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딸 낳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신 적은 있는지, 나 때문에 제일 속상하고 서운하셨던 적은 언제였는지... 

창고에서 오래된 앨범을 꺼내서 아버지와 찍은 사진 하나를 꺼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  사진 속 풍경을 보니 외할머니댁 마당이다.  지금은 시청이 들어서고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린 곳이지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는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시골이었다.   같은 날 찍은 사진들이 몇 장 더 있다. 엄마와도 따로 찍은 사진이 있고, 이모와 찍은 사진도 있고, 이모, 외삼촌, 엄마, 아버지와  다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나랑 엄마가 한복을 입고있고  아버지가 양복을 입고 계신 걸 보니 무슨 날이었던 모양이다. 외할머니 생신이었을까? 모르겠다.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내 막내딸보다도  어릴 때였던 것 같다. 사진 속 아버지는 젊다. 아마 지금의 나보다도 젊으셨을 때인 것 같다. 이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늘 이별을 예정하며 흘렀고,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다. 손 한 번 잡아드릴 겨를도 없이, 인사 한 마디 나눌 시간도 없이.  가끔씩 사진만 속절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별을 하고서야 소중했던 걸 안다.  오늘 밤에도 비가 내리는데, 아버지는 편안하실까.  내 앞에는 몇 개의 이별이 더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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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8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쩜 좋아요...
글을 읽는 저도 눈물이 떨어지는데, 섬사이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마음 많이 상하셨을텐데 건강마저 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꿈꾸는섬 2011-07-28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아버님과의 이별 이야기에 저도 눈물이 나네요.
이별을 하고서야 소중했던 걸 안다는 말씀 공감해요. 아직 살아계실때 좀 더 살뜰하게 대해 드려야겠단 생각을 하게 도네요.

아버님이 편안한 곳에서 안식하고 계실거라 믿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nine 2011-07-28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알면서도 우리는 늘 부모님이 옆에 계셔주실 것 처럼 대하게 되지요.
섬사이님에 대한 아버님의 그 보살핌과 애정이 지금도 계속 섬사이님을 지켜봐주시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슬퍼하는 대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별을 하고서야 소중했던 걸 아는 건 우리 인간을 어리석게도 하고 철 들게도 하고 겸손하게도 하고...그런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7-28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그간 안보이셔서 무슨일이 있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이별을 앓고 계셨군요. 비가 쏟아지는 아침에 이 글을 읽노라니 지금 한창 일하고 계신 저의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어떤말을 덧붙여야 할지 몰라, 다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1-07-28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7-2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딸을 마지막에 눈에 담지도 못하고 가셔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섬사이님의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어요.
저도 앨범을 찾아보면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은 겨우 두 어장, 아빠 독사진 한 장 정도 뿐이어서 볼 때마다 참 가슴이 아파요.
엄마와는 더 자주 사진도 찍고 좋은 시간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도, 섬사이님도 모두 몸 상하지 않고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랄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스탕 2011-07-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난히 아버님들과의 이별 소식이 많이 들리네요.
우리의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자식들과 살갑게 지내지 못하셨는지 참 섭섭해요. 언제 손 놓을지 모르는게 사람살이인데 있는동안 더 끌어안고 더 사랑을 표현하고 그랬다면 좋았을텐데요.
저희 아버지도 섬사이님 아버님처럼 무뚝뚝하셔서 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프레이야 2011-07-2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버진 살아계시지만 저도 생각해보니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네요.
어른이 되어선 더 없구요.
소중한 걸 모르고 저도 참 무심하다 싶어요.
우리는 부모와 그외 가신 분들을 경험하며 늙음과 고통과 죽음, 이별을 경험하고 내면화한다고 들었어요.
섬사이님 마음에 아버님과 함께 평강이 깃들길 바랍니다.

순오기 2011-07-2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친정아버님이 떠나셨군요.ㅜㅜ
작별을 준비해도 헤어짐은 많이 힘들어요~ 앞으로도 많이 많이 힘들고 그립고 눈물날 거에요.
그래도 함께 했던 추억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자꾸자꾸 되새김하며 꿋꿋하게 잘 견뎌낼거에요.
떠나신 아버님도 늘 기켜보실 거라 생각해요~~~ 힘내셔요!!

섬사이 2011-08-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해주고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한평생 그러셨던 것처럼 떠나실 때도 무심하게 가버리신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다정한 부녀사이가 아니었던 걸 억울해하면서 지냈어요.
이별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서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덕분에 이제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