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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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40여 권이나 되는 저작을 남긴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필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데, 나는 몇 주 전에 이 책으로 처음 러셀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보고 참 전투적이라고 생각했다. 미리보기로 살짝 들춰 읽어보니 과격하거나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책날개에 인쇄된 저자소개를 보면 노년으로 갈수록 정치적이 되어서 수소폭탄 실험 반대, 핵무장 반대운동 등을 펼쳤고, 쿠바 위기와 베트남 전쟁에도 적극 개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년의 소박한 안락함이나 유유자적 한가하게 개인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을 행복이라고 보는 성향도 아닌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행복의 정복>이라는 과격한(?) 제목을 붙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행복은 신이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어렵게 쟁취해야만 하는 대상이고,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250)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몰연대와 그가 이 책을 쓴 시기를 고려하고 읽으면 좋겠다.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망했고 이 책은 1930년에 출판되었다. 1928년에 영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가 태어나 자란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이 책을 쓸 때 사회적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대충 그려볼 수 있다. 뭔가 급진적인 진보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 보수적인 기득권 계층과 충돌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 사상의 변혁이 꿈틀거리는 시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당시 중상류층 백인 남자의 시각과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는 등의 진보적 시각이 동시에 느껴져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보인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이 책이 일용할 양식과 몸을 누일 곳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소득, 일상적인 육체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16)을 대상으로 했으며, ‘문명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16) 다룬다고 밝히고 사회제도의 변혁에 대해선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가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발끈할만한 부분을 만나게 되더라도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저자의 집필의도를 떠올리고 그냥 쓰윽 넘어가면 좋겠다.

 

이를테면, 204쪽에서 러셀은 당시 결혼을 하는 여성이 이전 세대의 여성들에 비해 새롭고 엄청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면서, ‘그것이 바로 가사 노동 대행 서비스의 양적, 질적 저하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가정에 묶인 채 능력과 교육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수없이 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감당하게 되며, 직접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게으름을 부리는 가정부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느라 마음의 평정을 잃게된다는 것이다. 이건 상류층 백인 여성을 대변하는 입장이다.’게으름을 부리는 가정부여성의 삶의 질을 고려한다거나 상류층 여성의 갑질 횡포에 대한 비판 같은 건 없다. 그에게 가정부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은 그저 노동 대행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가난하고 무식한 계층의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글에는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어머니)에게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디서도 가사나 자녀양육에 있어서의 남성(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이 나오지 않는다. 잘해야 뭉뚱그려서 부모라고 지칭할 뿐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그것은 교육의 혜택을 받은 상류 백인여성들만이 가능한 이야기다. 백인여성이 운 좋게 사회진출에 성공했다고 해서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부담이 저절로 알아서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게으름을 부리는 가정부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남성이 그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 외에도 민주주의의 보편적 확산으로 인해 주인과 노예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서 양쪽 다 불행해졌다’(207),라거나 가난하고 무식한 계층의 사람들은 자녀를 많이 출산하는 데 비해 서구문명인들은 자녀출산을 적게 한다면서 백인종의 대를 끊지 않으려면 부모 노릇이 부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211)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적은 아량을 베풀어 몇 군데의 이런 불편한 부분들을 그냥 쓰윽 넘어갈 수 있다면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보다 편안하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저자가 사람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주제에 다각적으로 깊이 있게 접근하려고 애쓴 노력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질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질투라는 감정이 경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은 쉽게 수긍할 수 있고 그다지 새롭고 특별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불필요한 겸손이 질투와 관계가 깊다는 주장은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 사람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행운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현대의 사회적 지위의 불안정성,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이론이 질투의 영역을 넓혀놓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질투가 계급과 민족, 다른 성 간의 정의를 이룩하는 주요한 원동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고 경고한다. 물론 여기서도 앞에서 얘기한 이 책을 읽을 때의 고려해야 할 사항을 떠올려야 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이란 말에서 그 행복한 사람들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새겨 들을만한 아포리즘 같은 글귀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미래만 주시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결과에 따라 현재의 의미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위험하다. 각각의 부분이 가치가 없다면 그 부분들이 모여 이루어진 전체 역시 가치가 없는 것이다.’ (35)


성공한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배워두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후에 권태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 (58)


우리가 남들에게 유익할 거라고 믿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권력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126)


훌륭한 인생이라면, 여러 가지 활동들 간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 가지 활동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180)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일 뿐인데, 그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긴다면 만족을 얻기 어렵고, 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는 욕심 많은 부모가 되기 쉽다. (222)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지금의 나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 속에서 마음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글귀 몇 개쯤은 너끈히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러셀이라는 사람의 다른 저작들을 읽어보지도 못했고,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그의 사유의 배경과 깊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시대적 어긋남으로 인한 20%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80%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가 더 좋았다. 처음 읽었을 땐 이 사람이 행복에 대해 무슨 소리를 어떻게 했는지 보자.’하는 마음으로 읽었다면 두 번째 읽을 땐 불편한 부분을 더 쉽게 넘겨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풀어놓고 읽어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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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3-1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섬사이 님 오랜만에 좋은 리뷰 반갑습니다.

섬사이 2018-03-18 23:52   좋아요 0 | URL
우와, 프레이야님. 너무나 반갑고 반가워요.
조금 전에 프레이야님 서재에 들어갔다가 어쩐지 부끄러워서 좋아요만 살짝 누르고 나왔는데,
이렇게 찾아와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요.
오랫동안 서재를 내팽개치다시피 했는데,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괜찮으신거죠?

프레이야 2018-03-1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리뷰가 아니군요. 제가 뜸했어요. 그동안 좋은 일 많으셨나요. 그랬으면 해요.

섬사이 2018-03-18 23:54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에고라는 적 - 인생의 전환점에서 버려야 할 한 가지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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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책인 줄 알았지

자기 계발서 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책 한 권 읽는다고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뜻하는 바를 이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그 사람과 나의 삶의 지점이 다르고 채워가는 삶의 내용과 의미가 다른데 그 사람의 경험과 사례가 나에게 똑같이 적용될 리 없지 않겠냐고, 내가 책한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겠냐고 고개를 돌렸다. 이 책도 심리학 책으로 오해하지 않았다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 뒤에 인쇄된 추천글처럼 이 책이 '완벽한 길잡이'라거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전의 당신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대함은 겸손한 시작에서 비롯되며 힘들고 귀찮은 일에서 비롯된다.(p.90)'나 '에우테미아 euthymia (p.163. '마음의 평정'을 뜻하는 그리스어)'처럼 내 지난날의 어느 한 부분을 돌아보게 하거나 지금의 나를 점검하게 하는 문장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에고'가 뭔데?

제목에서부터 에고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이 책에서 에고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에고와는 다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 
'거만함', 
'자기중심적 야망', 
'어떤 것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시하는 특성', 
'합리적인 효용을 훌쩍 뛰어넘어 그 누구(무엇)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자신감이나 재능의 범주를 초월하는 우월감'

으로 정의된다.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열정, 성공, 실패라는 인생의 세 단계 중 하나에 속해 있는데, 에고는 이 세 단계,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가 설명하고 예시를 통해 드러내는 에고의 모습은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유아적이며 겁쟁이에다 제멋대로인 고집불통이고, 거만하다. 그런 에고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버티고 있으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방해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분노와 증오는 에고를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에고를 잘 통제하는 사람은 '열망하지만 겸손'하고, '성공을 해도 자비'로우며 '실패를 해도 끈기'가 있다.

저자는 말콤 X, 독일 메르켈 총리, 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 해밋,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미식축구 감독 빌 월시, 조지 마셜 장군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에고를 잘 통제한 예와 통제에 실패한 예들을 열거한다. 너무 많은 예시가 산만하게 느껴지고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많은 예시를 통해서 '성공'과 '실패'를 단지 부와 명예, 권력을 얻거나 잃는 것으로 이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벨리사리우스와 말콤 X의 경우

동로마 제국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에고를 통제하는 능력으로만 보자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세운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버림을 받고 급기야는 두 눈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까지 추락한다. 에고를 잘 통제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게 부와 명예와 권력을 불러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에고를 통제하며 자기 길을 성실히 걸어온 사람이 에고를 통제할 줄 모르는, 아예 통제할 마음조차 없는 누군가(여기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중세 동로마 제국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황제로부터 업적에 대한 보상은커녕 누명을 쓴 채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기면서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임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옳은 일을 했으며 '그것으로 족했다'라고 만족하는 것이 에고를 잘 통제했다고 칭찬받을 일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벨리사리우스가 자기가 믿는 바대로 에고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일에 성실했고, 우직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하였고, 황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자기 안의 에고에 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공한 삶이라는 걸까. 

말콤 X의 경우는 또 어떤가. 뉴욕 빈민굴인 할렘가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마약과 도박, 매춘, 강도 등 범죄를 저질러 오던 말콤이 10년 형을 언도받고 5년간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는 책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인종차별 문제에 눈을 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시간을 죽이지 않고, '살아 있는 시간'을 선택해서 자기 안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썼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콤은 감옥에서 나온 후 과격한 흑인 해방운동을 벌였다. "백인은 악마다, 그 악마가 우리의 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시기에 흑인 민권운동을 벌였던 킹 목사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말콤 X는 에고를 잘 통제해서 교도소에 있는 동안 자신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킨 사람인가, 아니면 에고를 통제하지 못하고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결국은 살해당하고야 마는 실패자인가. 

저자는 '에고를 버리고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p.278)고 말한다. '증오와 분노 대신 당신을 향한 모든 시선과 모든 말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당신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p.278)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죽어라 안 될 때가 있다. 남들한테 '수고했다'라는 말 한 마디 듣지도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비난받는 거지 같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남들이 별생각 없이 던지는 칭찬이나 비난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저자는 그럴 때 우리가 무기력에 빠져 지금까지 애써 견디며 해온 일들을 포기해버리거나 아니면 남들이 던져주는 인정을 듣지 않고는 일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거나 작은 성공에 우쭐해져서 거만을 떨다가 고꾸라지는 일이 벌어질까 봐 경계하는 것이다. 


잠자코 일이나 해!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 줄기차게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또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분노나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모는 행위로 이어질 뿐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일을 잘 해라. 그런 다음 흘러가게 두고 신의 뜻을 기다려라.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p.243)

이런 글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잘못 이해하면 우리가 누려야 마땅한 기본적이고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더라도 군말 말고 일이나 하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어느 평화 활동가는 말했다. '분노의 영성'을 가진 사람만이 '평화'를 위해 움직일 수 있다고.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의 온갖 불평등과 폭력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저항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나는 그 평화 활동가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는 위의 인용글처럼 말콤이 세상을 향해 흑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을 외치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말콤의 삶은 죽음으로까지 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도소에서 쌓은 지식으로 좀더 편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콤은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고 그의 바람대로 흑인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우리의 필요를 요구해선 안 된다는 저자의 조언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과 고대 그리스 로마 사상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20세기 철학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필가이기도 한 버트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스토아 철학이 '자기 자신의 의지만으로, 또는 다른 인간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인간의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사람들이 모인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가 아니라 각기 개별적인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선이 실현될 수 있다'고 여겼다고 설명하면서 '고독의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의 조언이 어째서 이렇게 개인의 노력, 성실, 의지 등을 중요시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타인의 인정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가고자 한 방향을 향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삶을 채워갈 것, 성공의 자리에서도 겸손하게 배움의 자세를 유지할 것, 실패를 인생 순환의 한 과정이라 여기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할 것. 이런 이야기들을 적당한 인물 예시를 통해 반복하고 있다. 일찍부터 성공적인 인생을 달리다가 사업에 실패로 추락의 경험을 맛보고 방황했던 저자의 경험을 통해 나오는 글이라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진로를 준비하는 이들, 확신할 수 없는 꿈에 흔들리고 있는 이들의 결심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에고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내 삶의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이를테면 나는 내 안에 오만한 겁쟁이 같은 에고가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최근 풀리지 않던 일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모두 에고라고 여기고 귀를 막는다면 그것도 위험할 것이다. 그게 못된 망아지 같은 에고인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인지, 내 안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구조 신호인지 듣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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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영원한 삐삐 롱스타킹 여유당 인물산책 1
마렌 고트샬크 지음, 이명아 옮김 / 여유당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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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그녀에 대한 내가 몰랐던 이야기.

작가로서의 그녀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여성으로서의 그녀,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삶은 아프다.

이 책을 읽어서

그녀의 책들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세 살 적 여름이 기억나요.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더 이상은 안 됐어요. 너무나 당혹스럽고 슬펐어요." (36쪽)

그렇다면 그녀는 출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출판되려면 그 책이 좋은 책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외하고는 어떤 요구 사항도 없었다. "미래의 어린이책 작가에게"라는 글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밝혔다. 언어를 아이들에게 맞게 잘 가려 쓰고 다듬어야 한다는 점과,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삼가야 하지만, 아이들 마음에 쏙 드는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흘러넘쳐도 좋다. (108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직감에 몸을 내맡긴다. "머리를 너무 많이 굴리지 말라! 그것이 최선이다. 솔직히 터놓고 마음 가는 대로 써라. 난 모든 어린이책 작가들이 어른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당연히 허용되는 자유, 곧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쓸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109쪽)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교욱하려는지 끝도 없이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모든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그 아이에 관해서만 생각한다고 되풀이해서 대답한다." (115쪽)

"엄마는 자신의 십대 시절을 조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그 시절을 텅 비어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우리 관계는 무척 돈독했어요." (126쪽)

스투레가 세상을 뜨자 아스트리드는 일과를 필요에 맞게 조정했다. 새벽 5시나 6시에 일어나 차를 끓인다. 그리고 빵 두 조각에 잼을 발라 재빨리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장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원고를 쓰는 습관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스톡홀름의 집에서든, 여름을 보내는 푸루순드에서든 침대에 누워서 속기를 했다. 속기를 마치고 나면 바사 공원이 내다보이는 책상 앞이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푸루순드 베란다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마음에 들 때까지 손질한다. (132쪽)

"한 문장을 열 번 넘게 고쳐 쓰는 일이 잦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문장들을 내 귀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 귀에 최고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때까지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썼다. 어느 한 곳도 뚝 끊어지는 일 없이 문장들이 선율을 타고 흐를 때까지..... 난 독특한 언어의 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도 이야기도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울림이다." (132쪽)

글을 쓰면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글쓰기. 그것은 고된 노동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근사한 일이다. 아침이면 글을 쓰고 밤이 되면 생각한다. 아! 내일 아침이 밝아 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겠지!" (134쪽)

마르가레타 스트룀스테트는 말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 세계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여자애를 한 명이라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외로운 남자아이들에게는 라르스를 바라보는 아스트리드의 감정이 조금은 녹아 있다. (151쪽)

"꿈의 세계를 꽃피우는 자양분으로 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만 있다면,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영혼의 방에 은밀히 들어앉아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 낼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그림들이 꼭 필요하다." (159쪽)

작가는 아이들에게 승리를 안겨 줌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62쪽)

책을 쓰기 시작하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일을 중단하는 것도 관심을 흩뜨리는 것도 참지 못했다. (165쪽)

'더 간단히 말할 수 없을까? 더 소박하게.'(171쪽)

그녀의 작품 활동은 완전히 끝이 났다. 아직도 매일같이 새로운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말이다. 1987년 9월 어느 날, 집 앞 바사 공원 위로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아스트리드는 친구 마르가레타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머릿속에 온갖 상황들을 생생하게 그려 놓고 말도 안 되게 아이들 같은 이야기를 계속 떠올려. 그러곤 이야기 속의 일들을 다 겪어 봐. 내가 직접 주인공 노릇을 하면서 말이야. 사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털어놓지 못했어. 아직까지도 이렇게 어린아이 같다는 게 조금 창피하잖아."(207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자기 안에서 가장 강렬하게 꿈틀거리는 본능은 '돌보기 본능'이라고 말하곤 했다. 외로운, 겁먹은 아이를 돕는 꿈은 한결같이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 아이는 때로는 꼬마 칼, 때로는 미오나 베르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변함없이 라르스이기도 할 것이다. (208쪽)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꼭꼭 숨어 버리려고요.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날 거예요. 저를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 약속할게요.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게 되겠지요."
-중략-
2002년 1월 28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눈을 감은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녀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한 달 내내 고생하다 마침내 삶을 마감했다. (220쪽)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농부의 딸로 산, 스몰란드 출신의 아스트리드이다."
1996년 저 높은 하늘에서 발견된 유성 3204번이 우주 곳곳을 날고 있다. 러시아 학술원은 그 유성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름을 따 붙였다. 아스트리드가 날고 있는 우주 어딘가에 진실이 놓여 있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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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갈색 마룻바닥 위에 책들을 가지런히 주욱 펼쳐놓고 앞치마를 두루고 앉아있는,  저 머리카락도 하얗고 수염도 하얀 할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다.  여백이 많은, 군더더기 없는 공간 속에서 무릎까지 꿇고 바닥에 펼쳐놓은 소년문고 책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전부를 다 본 것도 아니고, 본 것들을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고 하면 막연히 무조건 '보고 싶다'고 느끼는 편이다.

TV로 봤던 <빨강 머리 앤>이나 <하이디>, <미래소년 코난>, <플란더스의 개> 같은 작품들과 영화로 봤던 <이웃집의 도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것은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았다. <마루 밑 아리에티>, <천공의 성 라퓨타>, <원령공주>,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은 늘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챙겨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아있고. <벼랑 위의 포뇨>나 <붉은 돼지>는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애니메이션 분야의 '대가'라고 인정하고 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야 나같은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여기겠지만.

 

이 책은 내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이책에 대해서 쓴 책이다. 정말 멋지다. 앞부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고른 50권의 책들이 짤막한 추천의 글과 함께 소개되고 있고, 뒷부분에는 어린이책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들이 편안하고 솔직하게 적혀있다. 그 솔직하고 편안한 글이 참 반갑고 신선했다. 어린이 독서지도에 대한 책들을 읽다보면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다'거나 '책을 많이 읽으면 아이에게 이러저러한 능력이 향상되어 학업성적이 좋아진다'는 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난 그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정말 그럴까는 의문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리 막내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을 훨씬 웃돌게 책을 읽는 엄마가 있지만 책읽기보다 밖에 나가 뛰어놀기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하고, 책은 잠자리에서 내가 읽어주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성적이 높다는 것도 아이마다 다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깊고도 많아서 오히려 학교 공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시시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가끔 책읽기가 아이에게 장차 성공과 눈부신 영광을 가져다 줄 것처럼 써놓은 책들을 만날 때면 씁쓸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읽으면 아이가 읽지 않는다거나 오빠가 열심히 읽으면 여동생이 읽지 않거나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른들이, 특히나 부모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기대치가 너무 무겁고 아득해 보이곤 했다. 학문을 중요시했던 전통 때문인지 우리는 책읽기를 자꾸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점이 오히려 책을 읽고 즐거워할 기회를 아이들 뿐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서도 빼앗고 있는 것 같다.

 

놀랍게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대학시절 어린이문학연구회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처음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간 신입 시절에는 회사 책장에 있는 어린이책(소년문고)들을 마구마구 읽었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 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어린이책을 읽은 것이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지만 그가 그런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작정하고 소년문고 책들을 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효과를 기대했더라도 재미있고 즐겁지 않았다면 그렇게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유익함을 위해서는 조금 움직이지만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는 많이 움직이는 법이니까. (나만 그런건가?)

 

예를 들어 가도노 에이코의 마녀 배달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 ‘주인공 여자아이를 어떤 식으로 그릴까? 아하, 이거라면 교과서가 잔뜩 있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지요. 어떤 책이 모델인지 알 수 없고 제목을 콕 집어 말할 수도 없지만, 어린이책에 많이 등장하는 시절의 아이가 저절로 떠오르는 겁니다.

뭐랄까 내 안에 서랍 같은 게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105)

 

책을 읽는다는 건 그의 말대로 내 안에 서랍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말끔하고 반듯반듯하게 각을 맞춰 정리가 되어 있는 서랍이 아니다. 뒤죽박죽 흐트러지고 어질러져 있어서 뭐가 어디에 들어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엉망진창의 여러 칸의 서랍.  하지만 뭔가 반짝 떠오르면 마법처럼 서랍 하나가 스르륵 열리고 반짝 떠오른 생각과 상상들을 좀 더 자세히, 길게 이어가도록 신비한 힘을 보태어 주는 거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서랍을 만들어 준다 생각하고 책을 읽어준다면 고르는 책부터 좀 달라지지 않을까?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책들을 보면 지식정보책의 출판 비중이 참 많이 증가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건 어른들이 아이에게 문학보다는 지식과 정보 전달의 도구로 책을 이용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내가 읽고 뜨끔했던 문장도 있다.

 

홋타 요시에가 젊어서 특별고등경찰을 피해 친구의 산속 오두막집에 숨어 지낼 때의 이야기를 읽어도, 하루 세 끼 밥을 직접 지었더니 그것만으로 하루가 끝나버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며 산을 내려옵니다. 그럴 때 밥 짓는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사람과 밥이나 짓고 있으면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렇구나, 홋타 요시에는 뭔가를 생각하기 위해 살았구나하면서 저는 몰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 뭔가를 생각해주니까 됐어하고 마는 거죠.  

 

홋타 요시에가 누군지, 뭐하던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루 세 끼 밥을 직접 지었더니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끝나버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에 난 '나도 그런데!;하고 생각했다 . 아마도 하루 세 끼 밥을 직접 지어야 하는 전업주부들은 거의 다 그의 생각과 비슷할 것 같다.  나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읽은 책을 음미하면서 몇 자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책을 읽고 있으면 5분마다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책을 읽다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지는 않았나,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된 건 아닌가 불안해서 자꾸 시계를 봐야 하는 이 어수선한 일상은, 읽고 있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가와 비례해서 짜증스럽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저 문장들을 만나고나니까 내가 '밥 짓는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밥이나 짓고 있으면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창피했다. 하지만 나는 홋타 요시에라는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밥 짓는 일뿐 아니라 아이들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나 자신이 끝도 없이 소비되고, 그렇게 야금야금 조금씩 조금씩 닳아서 없어져버릴 것민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곤 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것을 헤아리고 이해하기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밥을 짓고, 국과 찌개를 끓이고, 파를 다듬고, 두부를 썰고, 콩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는 일에 열중도 하고 생각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은 나도 산을 내려가서 밥 짓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이책에 대한 생각이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로버트 웨스톨(Robert Westall) 같은 작가는 다시 해볼 수 없는 이야기를 썼지요. 하지만 작품 속 아버지, 즉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 것을 보면 그이도 이 세상은 끔찍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83)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55)

그래, 이게 바로 어린이문학의 가치이고, 우리가 어린이문학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고, 아이들에게 어린이문학을 읽어줘야 하는 까닭이다.  앞으로 아이가 승승장구해서 일류대에 가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다가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금부터 좋은 어린이책을 골라 정성껏 읽어주며 미리미리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만큼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이들에게 좋은 어린이책을 더 읽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는 이 시대를 '바람이 부는 시대'라고 말한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일본에서는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마치 터질 만큼 물이 가득 찬 풍선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과 게임과 소비에 빠져들면서, 개를 키우고 건강과 연금 걱정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결국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불안만큼은 착착 부풀어 올라 스무 살 젊은이와 예순 살 늙은이가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돌연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파국은 세계적 규모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145쪽)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이들에게 '책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내게 된 것 아닐까.  거기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서 앞으로의 인생을 무사히 잘 살아달라고, 할 수만 있다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난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막연한 신뢰를 보내던 사람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부터는 왜 이 사람이 믿을만한지 이유가 분명해졌다.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어린이책에 대한 가치를 이만큼 분명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신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바람대로 '책으로 가는 문'을 향해서 모든 아이들이 달려와준다면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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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12-0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좋다~~~ 깔끔하면서 깊이있는 서평입니다^^
어린이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참 멋지죠.
마녀 배달부 키키 재미있게 봤어요~~

섬사이 2013-12-11 05: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아이처럼 으쓱해져요. ^^
마녀배달부 키키는 책으로도 읽고 싶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보고 싶어요.
책으로도 무척 재미있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거든요.

푸른희망 2014-02-0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정말 좋네요.. 제가 생각은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책읽기에 대한 생각을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있었네요, 저도 외로운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고 믿거든요... 그의 작품중에 마녀 배달부 키키 정말 좋아요.. 꼭 보셔요. 전 이책 꼭 봐야겠네요..

섬사이 2014-02-10 12:4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푸른희망님.
마녀배달부 키키,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꼭 보고야 말겠습니다. ^^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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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이토록 다정하게 쓰다듬고 헤아리며 읽은 흔적들. 그녀가 성실함을 재능으로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10년이나 20년쯤 후에도 그녀의 따뜻한 책 이야기를 읽으며 미소지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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