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김형경의 심리여행에세이 <사람풍경>을 구입했다. 처음엔 구입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책장을 뒤적거리다가 첫페이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는 구입을 결심했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의 상반신 그림이다. 무척 예쁘고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다.
남자는 왼팔로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고 오른손에는 꽃을 한송이 들고 있다. 여자는 기도하듯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두 사람 다 얇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행복한 표정이다. 그림 밑에는 “내 아내에게”라는 문구와 함께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2012.04.25. 아마도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로 준 책인 것 같은데, 이렇게 정성스럽고 예쁜 그림이 그려져있는 책이 왜 중고서점이 나와 있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오갱끼데스까?
한때는 여류들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요즘은 여류라는 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어쨌든 한때 즐겨 보았던 여류의 면면은 이렇다. 신일숙, 김형경, 은희경. 읽었던 소설로는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세월>, 은희경 <새의 선물>, 신경숙의 <깊은 슬픔>, <외딴방> 등이 기억난다.
김형경의 <세월>은 자전적 소설로 가슴아픈 한 세월을 버텨낸 이야기인데,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하재봉이라고 하여 화제가 되었었다. 일방의 관점에서 소설화한 자전적 소설이 당연히 모두 사실일리는 없겠지만 김형경과 하재봉이 경희대 국문과 선후배로 파란곡절의 사연많은 관계였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아시다시피 하재봉은 시, 소설, 연극, 영화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 예전에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왔다. 요즘은 탱고에 심취하여 아트탱고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왜 탱고인지 궁금하다.
남녀사이의 일은 당자 둘 밖에 모른다는 말로 누군가의 악행을 덮을 수는 없겠지만 역시 남녀사이에는 당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오묘한 그 무엇이 있긴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남녀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족집게로 흰터럭을 뽑아내듯이 선악을 딱딱 꼬집어 낼 수 없는 그런 복잡미묘하고 이상야릇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의 화제에도 나와 있다.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얼마전에 서영은이 자전적 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를 발간했다. 서영은은 그야말로 꽃다운 20대에 50대의 김동리를 만나 숨겨진 여인으로 30년을 살았고(말하자면 불륜관계로) 김동리의 두 번째 부인이 죽고나서 44세에 74세의 김동리와 결혼했다. 공식적인 부부생활은 8년 정도. 그 대부분도 김동리의 병수발. 김동리 사후에는 전처 아들들과의 재산 소송. 서영은은 김동리에게 주먹으로 얻어 맞아 코피가 터진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꽃들은...> 출간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몸이 잘 맞았어요” 라고 말하고 있다. 70대 여류 소설가의 솔직한 이야기에 조금 놀랐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소설가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한과 상처에 대해서 글로 써서 어떻게 한풀이라고 할까 정리라고 할까 치유라고 할까 뭐 그런 비슷한 것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이해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전적 소설에 엮인 다른 일방은 무엇으로 자기를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세하고 구구절절한 사정은 당자들만이 알수 있고 그 당자들의 주장도 서로 다를 것이 분명하니 역시 소설은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