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내전의 땅에 ‘구릿빛’ 재생 숨결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③ 거듭나는 자원대국-콩고
 
 

 2007/09/19

권혁철 기자 김태형 기자



풍부한 자원 노린 제국 수탈에 ‘신음’…물가 세계 2위
정국 안정 뒤 외국 투자 몰려 광업 호황 ‘탈빈곤’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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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말 찾은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의 수도 킨샤사.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던 외국인들은 얼굴을 붉혔다. 짐 분실이 잦은데다, 출입국 관리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처럼 달려들어 온갖 트집을 잡아 돈을 뜯기 때문이다. 공항을 나서니 황량한 거리가 펼쳐졌다. 도로는 곳곳이 패여 달 표면처럼 울퉁불퉁했다. 도로 옆에는 칠이 벗겨지고 부서진 1~2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800만명이 사는 킨샤사에 대중교통 수단은 거의 없었다. 4인용 승용차에 6~8명씩 타고, 트럭이나 승합차 지붕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치안 불안으로 호텔·외국 공관·부잣집은 두꺼운 철제 대문과 3m 높이의 전기철조망을 친 담, 무장한 사설경비원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 콩고민주공화국

 

나라는 가난한데도 물가는 턱없이 비쌌다. 킨샤사 주민인 은쿠무 프레이 룽굴라 박사(47)는 “생필품 값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더 비싸다”며 한숨을 지었다. 지난해 12월 국제연합(UN) 파견 직원이 소비지출을 반영해 작성한 ‘소매물가지수’에는, 콩고가 세계 173개국 가운데 2위로 나타났다. 인구의 71%가 기아로 영양실조 상태다. 킨샤사 주민의 5%만이 규칙적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갖고 있다. 6천만명에 가까운 인구 가운데 3700만명이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30%만 안전한 식수를 구할 수 있다.

콩고를 절대적 가난으로 몰아넣은 게 바로 내전이다. 지난 3월말 총성이 멎기 직전까지 킨샤사에선 대포까지 동원된 무력충돌이 빚어졌다. 그 상흔은 짙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평화는 황량한 땅에 재생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으로 콩고 정국이 안정을 찾아가자 외국인 투자가 몰리고 시작했다. ‘천연자원의 보고’로 불리는 콩고의 광업은 말 그대로 초호황을 맞고 있다.

8월초 찾아간 콩고 동남쪽 카탕기주 리카시 콜로웨이지 광산에선 활기가 넘쳐났다. 국영광산업체인 제카민 소유인 이 광산은 세계 최대의 구리 매장량으로 유명한 잠비아·콩고 국경의 ‘구리 띠’(커퍼벨트) 가운데 있다. 노천광의 백두산 천지 크기 물웅덩이 주변에 남루한 옷차림의 인부들이 개미처럼 붙어서 곡갱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또다른 인부들은 캐낸 구리·코발트 등을 들것으로 나르고 물로 씻느라 분주했다. 탄광의 단순 노무자 월급은 100달러 수준으로, 콩고에서는 꽤 많은 축에 든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광산업체 케이엔엘(KNL)메탈의 권성기 사장은 “좀 과장하면, 콜로웨이지 지역은 어느 곳을 파더라도 상업적으로 쓸 만한 구리가 나온다”며 “구리·코발트 같은 원자재는 대체 불가능하므로, 자원전쟁 시대에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콩고 킨샤사의 다이아몬드 검사소 직원이 품질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킨샤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계 거대 기업들도 콩고의 정치 상황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구리·금업체인 프리포트맥모건이 6억5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광산회사 비에이치피(BHP) 빌리턴과 세계 3위 금 채광업체인 남아공의 앵글로골드 아샨티는 투자를 계획 중이다. 콩고 제2의 도시이자 광업중심지인 루붐바시에서 만난 오스트레일리아 광산기술자 마이크는 “미국과 유럽 기술자, 기업인들이 출장을 많이 오는 광산 지역은 1년 전에 호텔 예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킨샤사에서 호텔 방 구하기는 서울에서 명절 귀성 열차표 구하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콩고의 대표적 광물로는 다이아몬드(매장량 세계 3위), 금(10위), 구리(20위), 코발트(5위) 등이 있다. 또 수력발전 잠재력(4위), 산림자원(2위)도 세계적 수준이다. 매듀 야마바 라프파 콩고국립광물검사평가소 국장은 “자원은 콩고의 자존심이자, 발전전략의 원동력”이라며 “콩고는 아프리카 개발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콩고가 발전하면 아프리카 전체로 파급효과가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전이 격화되기 전인 1960년대 남아공 못지 않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콩고가 이제 막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 콩고 내전 중 부상을 입은 주민들이 수도 킨샤사의 상업지역인 곰베 인근 뒷골목에 모여 있다. 킨샤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콩고내전이란

2차 세계대전뒤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지역 분쟁은 베트남 전쟁이나 한국 전쟁이 아니라 콩고 내전이다. 1998~2003년 내전기간 인종청소, 고문, 학살, 질병 등으로 4백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난민 2500만명이 발생했다.

콩고 내전은 1965년부터 32년 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해 온 모부투 정권과 이에 대항한 로랑 카빌라 반군 세력의 정권 쟁탈전에서 비롯했다. 카빌라는 1997년 5월 승리한 이후 나라 이름을 자이르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꾸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8년 카빌라 반대 세력이 대통령 축출을 꾀하면서 내전이 본격화했다. 아프리카 8개 나라가 5년 동안 콩고 땅에서 전쟁을 치렀다. 짐바브웨·앙골라·나미비아·수단·잠비아가 정부군, 르완다·우간다·부룬디가 반군 쪽에 섰다. 때문에 콩고 내전은 ‘아프리카판 1차 세계대전’으로 불린다. 내전에는 △종족간 정권 다툼 △금·다이아몬드 등 자원을 둘러싼 외세의 이해관계와 외국 기업의 개입이 뒤엉켜 극렬 양상을 보였다. 2003년 유엔의 중재로 총성이 멎었다.

 

글 마딤바·킨샤사/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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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처음 듣는데…에티오피아선 커피 한잔에 3원


원두값 쥐락펴락 대기업만 ‘뱃살’
‘양심 커피’ 한잔이 공정무역 희망

 
 

 2007/09/19

서수민 기자

 


» 에티오피아 남부 고원지대 야부나 마을의 어린이들이 바구니에 주워 담은 커피 열매를 보여주고 있다. 뒤로 보이는 나무들이 커피나무다. 지마/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스타벅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농부 아토모코릴(50)은 호기심에 눈을 깜빡였다. “스타벅스는 가장 유명한 커피 체인점이며, 거기선 커피 한잔을 4~5달러에 판다”고 설명하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걸 마시는 사람들이 가엾군. 여기서는 커피 한잔에 3에티오피아 센트(약 3원)면 되는데…”

아토모코릴을 만난 곳은 커피나무가 울창한 에티오피아 지마 지역 야부나 마을의 숲속 과수원이었다. 이곳은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의 수도’로 꼽힌다. 고급 커피로도 유명한 ‘시다모’와 ‘이르가체페’의 부근이다. 에티오피아인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토모코릴도 예외는 아니었다. “커피는 우리에게 삶 그 자체다. 우리가 커피를 사랑하는 만큼 커피도 우리를 돌봐준다고 믿는다.” 옆에서는 10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 딸들이 바람에 떨어진 열매를 줍고 있었다. 그는 과수원 가장자리로 가더니 “이 나무는 100살이 넘었지만 매년 열매가 열린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커피가 그의 사랑에 항상 보답한 것은 아니었다. 불과 7~8년전, 이 마을의 나무에는 잘 익은 커피 열매 대신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재앙같은 커피값 폭락 때문이었다. 1㎏에 3비르(약 300원)하던 커피값이 0.5비르(50원)으로 떨어졌다. 한주에도 몇 집씩 야반도주를 했고, 아이들은 학교는커녕 병원도 가보지 못하고 죽었다.

 

»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거리에 붙어 있는 커피 조합 포스터. “공정한 커피 무역으로 빈곤의 순환을 깨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디스아바바/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가격폭락 ‘재앙’에 공동체 붕괴 아픈 경험
다국적기업 맞서 유기농·직수출 조합 결성


국제 커피값은 1989년 미국이 국제커피조합(ICA)에서 탈퇴한 뒤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선, 냉전 붕괴 뒤 가난한 커피 생산국들의 수입을 보장해 이들의 사회주의화를 방지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구호단체 옥스팜은 현재 전세계 커피 수요에 견줘 공급이 8% 정도 웃도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마의 농부들이 목숨을 끊던 그 무렵,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커피산업 담당 공무원 타데세 메스켈라는 국외 커피시장 동향을 살펴보고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커피값은 몇 년째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커피를 가공해 내다파는 다국적 기업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 농부의 아들인 그는 이런 부조리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많게는 150번이나 손이 바뀌는 커피의 유통과정과,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커피시장을 장악한 다국적 대기업들이 얻는 이익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메스켈라는 99년 6월, 35개 지역 커피조합을 모아 ‘오로미아 커피농업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최초로 외국에 커피를 직접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 ‘유기농 재배’와 ‘공정무역’의 국제 인증을 받아 브랜드 파워를 과시했다. 이 조합은 조합원 10만명, 연매출 150억원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조합원들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가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이 추진해 온 ‘공정무역’은 생산자가 제값을 받는 것 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다운 노동조건, 직거래, 민주적이고 투명한 조직 운영 등을 포괄한 개념이다. 아토코모릴이 사는 야부나 마을에선 오로미아 조합 배당금으로 수도펌프를 샀다. 어린이들도 대부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뿌리 깊은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을의 원로인 메코넨은 “여전히 커피만으로 먹고살긴 힘들다”며 “커피밭 옆에 유럽 등에서 금지된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차트나무를 심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는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부피 기준으로 석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상품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 서구인들이 재배를 강요한 ‘식민지의 작물’이었던 커피는 현대인들의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데 쓰이는 ‘착취의 열매’이기도 하다. 이런 유래는 공정무역 운동에서 커피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한가지 이유다. 오늘날 주요국에서 커피 없는 하루란 상상하기 어렵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라떼 혁명’ 뒤 테이크아웃 커피 시장은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 생산 농민들은 그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메스켈라는 ‘착한 커피’ 사업의 중요한 목표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접하는 음료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됐고 정당한 대가가 지불된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런 관심을 갖는 이가 더 양심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메스켈라 커피 조합 대표 “진보와 연대해 전세계 체인점 만들것”

유기농 인증이 경쟁력 강화
“한국도 농민 살리는 커피를”


 

메스켈라 커피조합 대표

 

타데세 메스켈라(사진) 오로미아 커피농업인 협동조합 대표는 에티오피아 커피의 ‘얼굴’이다. 1999년 이후 전세계 20여국을 누비며 공정무역·유기농 커피를 홍보하는 그의 열정에 반한 젊은 영화인들이 다큐멘터리 <블랙골드>를 만들기도 했다. 메스켈라는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작물이 아니라 공정무역의 희망”이라며 “농민을 죽이는 커피가 아니라 살리는 커피, 제3세계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커피를 사달라”고 호소했다.

-왜 커피인가?

=다른 게 없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티오피아는 다른 커피 생산국과 달리 자국 생산 커피의 35%를 국내에서 소비할 정도로 커피가 사회에서 핵심적이다.

-조합 설립 배경은?

=농민들이 죽어가던 1999년에 설립됐다. 90년대 이후 신생 커피 생산국들의 생산량이 폭증하며 국제 커피값이 급락했다. 특히 커피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중간 상인과 다국적 기업들에게 이익의 대부분을 빼앗겨 왔다. 다국적 기업들은 커피의 로스팅(커피 콩을 볶는) 과정 등에서도 우리를 철저히 소외시켰다.

-조합은 어떤 일에 주력해 왔나?

=에티오피아 커피는 모두 유기농 커피다. 기계 수확을 위해 숙성제를 치는 일부 나라와 달리 비료나 농약을 쓸 여유조차 없다. 이런 점 때문에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독일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커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정의는?

=생산자가 적어도 생산원가 이상의 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알리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영국 등 유럽 전역과 일본, 미국 등을 돌아다녔다.

-그동안의 성과는?

=우리의 커피는 공정무역, 유기농 프리미엄으로 다른 커피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린다. 전세계에서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 가운데 20%만 공정무역 가격에 팔리고 있다. 수요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팔고 얻은 조합의 수익은 배당금 형식으로 다시 농민들에게 간다.

-커피 값이 낮아도 이익을 남기는 경쟁자가 있는데.

=커피 값은 내려갔지만, 커피의 소매가는 변동이 없거나 오르지 않았나. 생산국 가운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은 커피가 주된 수출품이 아니어서 싸게 받아도 생존과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다국적 기업들을 겨냥하는 이유는?

=이들은 당신이 마시는 커피 값의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맥스웰을 갖고 있는 크래프트와 폴저스를 갖고 있는 피엔지, 네슬레의 세 회사는 전 세계 커피의 60% 이상을 가공해 팔고 있다. 그 커피의 대부분은 농약을 치고 기계로 수확한 싸구려 커피다. 이들은 한두가지 단순한 조합으로 블렌딩한 뒤 비싼 값에 판매한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는 커피 산업이 단순히 원두를 생산해 파는 데서 ‘분위기를 파는’ 서비스 산업의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전세계의 진보 세력과 연대해 세계적 규모의 커피 체인점을 만들고 싶다. 일단 2~3년 안에 로스팅부터 직접 시작하겠다는 계획으로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에서 가게를 열 사람은 없을까?

지마·아디스아바바/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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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겐 '대중들의 공포'를 느끼기 전에 책 두께 자체가 공포다. 그런데 목차를 쭈욱~ 훑어봤을 때, 예전에 나온 책들에서 다룬 논문들이 상당수 중복되어 있는 것 같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2부의 "스피노자, 반오웰:대중들의 공포", "피히테와 내적 경계 :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하여", "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 "부록1 - 푸코와 맑스 : 유명론이라는 쟁점", "부록2 -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알튀세르, 발리바르의 이전의 책이나, 90년대 발간되던 계간지 <이론>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들이다. 특히, "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은 루이 알튀세르가 죽은 직후 윤소영 교수가 엮은 <루이 알튀세르>에 실려 있는 논문이다.

그렇다면 발표된 지 25년이 지난 논문("스피노자, 반오웰:대중들의 공포")을 비롯하여 20년 가까이 된 논문("맑스라는 이름의 쟈코뱅"-1989, "푸코와 맑스:유명론이라는 쟁점"-1988)들도 들어있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이미 번역되어 출간된 논문이.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전의 글들은 대부분 윤소영 선생의 번역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의 주번역자는 서관모/최원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새롭게 엮어져 나오면서 재번역된 게 아닌가 싶다. 책 제목은 조금은 '선정적'인 것 같다. 스피노자 정치학의 문제만을 따로 다루는 게 아니라면, 부제로 붙은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이 실질적 제목이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아래 서평은 경향신문에 실린 걸 옮겨 놓는다.



[책@세상. 깊이읽기]폭력을 넘어서는 법 ‘시민인륜’

출처 : 경향신문(www.khan.co.kr) 2007년 09월 21일 14:47:57

▲ 대중들의 공포…에티엔 발리바르|도서출판 b



아포리아(aporia)는 논리적 궁지를 뜻한다. ‘대중들의 공포’를 읽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용어들 가운데 하나가 아포리아이다. 발리바르의 친구이자 스피노자 전문가인 마트롱은 언젠가 발리바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매년 새로운 아포리아를 발견하려 한다. 스피노자의 대중들 개념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그건 미친 짓이다.” 이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발리바르의 철학하는 핵심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적인 통일성과 정합성을 전제하거나 새롭게 구축하려 하지 않고, 통일적인 체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아포리아를 찾아낸다.

아포리아를 찾는 과정은 사유가 어디까지 근본적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도정이다. 먼저 어떤 사유가 닦아놓은 논리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고, 그 논리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의 정체를 확인해야 하며, 또한 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된 근본 전제와 가설을 복기해야 한다. 여기에 이를 때 비로소 아포리아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사유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대중들의 공포’는 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근본적인 사유의 도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성과물이다.

이 책의 문제 틀은 ‘대중들의 공포’라는 말 속에 녹아 있다. 발리바르가 고민하는 철학의 대상은 계급이 아니라 대중들이다. 이는 경제주의적 계급론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대중들이 역사를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언급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대중들은 과학적인 적합한 인식이 아니라 진리와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실의 갈등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 틀은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탐구를 함축한다. 여기서 ‘대중(mass)’이 아니라 ‘대중들(masses)’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는 대중들이 단일한 주체(단수)가 아니라 복합적인 양면성(복수)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들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말이 ‘대중들의 공포’이다. 스피노자에서 유래하는 이 용어는 대중들이 느끼는, 그리고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가리킨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민중의 능동성과 진보성을 신화화했던 과거 민중론이 지닌 한계와 유사하게 대중들의 일면적인 봉기성만을 특권화하는 논의에 대한 비판이다. 대중들은 능동적인 만큼 수동적이고, 진보적인 만큼 보수적인 양면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함의는 대중들의 역량이 갖는 잠재적 폭력성에 관한 것이다. 대중들의 힘은 때로 폭력과 구별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공포에 느끼고 이를 제거하려는 대중들은 오히려 대항폭력을 통해 대중들에 대한 가공할 공포를 초래하여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나아갈 수도 있다.

발리바르가 이런 양면적인 긴장을 전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반폭력 정치이다. 반폭력 정치에 대한 사고는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민인륜(civilite) 개념으로 정교해진다.

시민인륜은 ‘시민권’과 ‘사적이고 공적인 윤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결합한 신조어이다. 이 개념은 대중들의 폭력이 동일성(identity)과 결부되어 있으며, 따라서 공동체(국가) 내부에서 증오와 잔혹으로 나아가는 동일성들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에서 해방의 정치나 변혁의 정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물론 이상의 간략한 정리는 전체적인 문제 틀에 불과하며, 이 책에는 훨씬 풍부한 논의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근본적인 사유가 갖는 전복적인 힘을 예증한다. ‘대중들의 공포’는 구태의연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네그리, 푸코, 들뢰즈 등의 철학과 쟁점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며, 무엇보다 빈곤과 잔혹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정세를 돌파하려는 이론적 실천이다. 이 두툼한 책이 옮긴 이들(최원·서관모)의 오랜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김정한|서강정치철학연구회 회원


용어 번역에 대하여: '시민인륜'과 '의념'/서관모
저자 서문
수록 논문 출전

1부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인륜
정치의 자율성: 해방
정치의 타율성: 변혁
타율성의 타율성: 시민인륜의 문제

2부 근대성들: 인민, 국가, 혁명
스피노자, 반(反)오웰: 대중들의 공포
인민이 인민이 되게 하는 것 : 루소와 칸트
피히테와 내적 경계 :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 관하여
맑스라는 이름의 자코뱅?

3부 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
1 관념론의 교대군
2 세계관들
3 붙잡을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4 정치와 진리

부록1 - 푸코와 맑스 : 유명론이라는 쟁점
부록2 - 파시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맑스주의

4부 또 다른 장면 : 폭력, 경계, 보편성
유럽적 인종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인종주의 : 여전히 보편주의인가?
모호한 동일성들
경계란 무엇인가?
유럽의 경계들
폭력: 이상성과 잔혹

5부 보편적인 것들
보편적인 것들
[역자해제]이론의 전화, 정치의 전화 : 알튀세르에게서 발리바르로/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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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참회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①-1 학살에서 화해로 - 르완다

 
 

한겨레2007/09/18

서수민 기자 김경호 기자

 


 

» 이웃앞에 선 가해자와 피해자 르완다 수도 키갈리로부터 40㎞ 떨어진 한 마을에서 전통 방식의 마을재판인 ‘가차차 법정’이 열리고 있다. 한 여인(왼쪽 손 든 이)이 가해자(오른쪽 선 이)에게 1994년 인종청소 당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연유를 묻고 있다. 키갈리/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기아와 에이즈, 내전, 학살로 얼룩진 검은 대륙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은 무서운 속도로 통합돼가는 세계의 바깥에 섬처럼 방치돼 있다. 그러나 불모의 땅에서도 소중한 희망의 싹은 움트고 있다. 검은 대륙에서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아프리카 민중들의 몸부림을 아홉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바로가기



마을법정 통해 고백과 용서…인종청소 아픔 다독여

지난 7월 찾은 르완다의 자바나 마을. ‘천의 언덕 나라’라는 이 나라의 애칭이 무색하지 않게 두 시간 동안 산과 언덕들을 넘자 숲속의 조그마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 키갈리에서 40㎞ 떨어진 이곳의 마을회관에선 르완다 전통 방식의 마을 재판인 ‘가차차 법정’이 열리고 있었다.

여느 법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판사는 푸른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30대 청년이었다. 검사와 변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전 10시반께, 분홍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 앙투안 루고로로카가 들어섰다. 후투족인 앙투안은 13년 전 같은마을에 살던 12살 투치족 소년 장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장이 없어진 정황과 그날 앙투안의 행적을 잇달아 증언했다.

1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던 장의 어머니, 발레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 아들의 대부였어요. 당신을 좋아하던 그 아이를 왜 죽였나요?”

“나도 그때 무서웠어요. 믿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투치족 아내를 뒀던 저도 위협했어요.” 앙투안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가 부인을 잃고 마음고생이 컸다.” “그는 인종청소 초기부터 마을의 투치족들을 공격했다.” 증언이 엇갈렸다.

1시간 뒤, 판결을 앞두고 발레리가 다시 발언을 요청했다.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저주했어요. 그러다가 깨달았어요. 내 아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당신은 여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은 한때 나의 좋은 이웃이었다는 것을. 당신을 용서합니다.” 발레리의 표정은 담담했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석 달 동안 97만명이 희생됐다. 아프리카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이 나라에서 학살은 다름아닌 이웃의 손으로 자행됐기에, 나라의 미래는 극도로 암울해 보였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2007년, 르완다는 아프리카 인종 화합과 번영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1년 르완다 정부는 당시 사법제도로는 10만명에 이르는 피의자 가운데 3분의 1도 재판을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숨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2001년 가차차(잔디가 깔린 마당이라는 뜻)가 부활됐다.

가차차에서 죄를 자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받은 가해자는 파격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이날 앙투안은 그동안 감옥에서 보낸 12년을 고려해, 6개월 사회봉사형에 처해졌다. 사회봉사형을 받은 이들은 피해자들의 집을 지어주거나 도로를 보수하게 된다. 며칠 동안 인종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캠프에도 참여해야 한다.

가차차의 힘은 지역사회에 있다. 참여자들은 증인, 가해자, 피해자 구분없이 함께 당시 상황을 논의하며 집단적 기억을 유도한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통합화해위원회의 파투마 은당기자 위원장은 “서구식 법정에서는 가해자가 결코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며 “가차차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로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용서와 자비를 베풀게 된다”고 말했다.

투치족 정부는 이 밖에도 △후투족의 국방장관 등 주요 관직 기용 △노인과 젊은이에 대한 대대적 사면 △감옥내 외국어 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투-투치 화합을 유도하고 있다. 집중적인 역사 토론은 후투족과 투치족 분리정책 자체가 식민지 세력에서 강요한 일이며, 르완다의 전통과 무관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르완다의 뿌리깊은 인종 갈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귀향을 꺼리는 난민들이 인근 콩고와 부룬디·우간다에 남아 있다. 가차차의 결과를 둘러싼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론인 제임스 무니아네자는 “지난 세기 잔혹한 식민통치를 경험한 아프리카에서 인종 갈등은 대륙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이뤄낸 작은 성과는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키갈리/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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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화합으로 재건 박차…‘아프리카의 두바이’ 꿈꿔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① 학살에서 화해로 - 르완다

 

 
 

2007/09/18

서수민 기자 김경호 기자

 


 

» ⑴ 학살에서 화해로-르완다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⑴ 학살에서 화해로-르완다
⑵ 공정무역의 씨앗-에티오피아
⑶ 거듭나는 자원대국-콩고
⑷ 지속 가능한 관광-탄자니아·케냐
⑸ 억압의 사슬을 끊고-에티오피아
⑹ 또하나의 전쟁-보츠와나·남아공
⑺ 중국, 적인가 동지인가
⑻ 축복과 저주의 두 얼굴-나이지리아
⑼ 월드컵으로 뛴다-남아공


 

» 상흔처럼 박힌… 1994년 르완다 인종청소 당시 수도 키갈리에 주둔했던 벨기에 평화유지군의 본부. 10명의 군인이 사살된 이 건물의 벽에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키갈리/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주검 널렸던 거리 새삶 활기…여성 ‘주역’ 부상
국제투자 밀물…성장률 ‘쑥쑥’ 에이즈감염은 ‘뚝’


2007년 여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의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한때 주검이 쌓였던 골목에는 휴대전화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13년 전 ‘투치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를 박멸하자’고 선동했던 텔레비전에서는 군인들이 힙합춤을 추고 있었다. 도시의 겉모습에선 대량학살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르완다는 오늘날 모잠비크, 우간다와 함께 ‘아프리카의 세마리 사자새끼’로 불린다. 학살이 끝난 뒤 엄청난 속도로 재건에 몰두해 견실한 경제성장을 일궜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1994~2004년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10%를 웃돌아, 아프리카 대륙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종청소 이후 들어선 투치족 정권은 농업을 고부가가치형으로 전환하고, 공산품과 서비스 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심각한 불황은 인종청소를 낳은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그 결과 홍차와 커피 등 환금작물의 생산이 급증했고, 제품 또한 고급화됐다. 정부가 앞장서 부패를 척결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외국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르완다의 경제학자 앙드레 루시미샤는 “경제성장과 동시에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종화합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재건 과정에서 여성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르완다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48.8%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투치족 정권은 정부 핵심 각료직에 여성들을 최우선적으로 기용하고, 여성의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여성우대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도 컸다고 르완다인들은 설명한다. 인종청소 당시 10가구 가운데 4가구 꼴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르완다를 더욱 청렴하고 안전하며, 국민들의 복지에 신경 쓰는 나라로 만들었다. 르완다 정부는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교육과 보건에 쓴다. 초등학교 진학율이 94%에 이르고, 한때 6%대였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은 3%대로 떨어졌다.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밤에도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안전한 수도로 꼽힌다.

르완다는 우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탄자니아 4개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키갈리를 ‘아프리카의 두바이’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인적·물적 교역을 대폭 늘려 아프리카의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완다는 여전히 가난하다. 빈곤층 비율은 1994년 70%에서 2006년 57%로 떨어졌을 따름이다. 말라리아 등으로 인한 영아 사망률도 높다. 최근에는 빈부 격차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최근 보고서에서 “르완다 상위 20%의 소득이 최근 10년간 갑절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 등 양극화가 심화돼 앞으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 르완다 지역별 ‘인종청소’ 희생자 현황

 
 


☞ 르완다 사태란

르완다는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후 소수족인 투치족이 주도권을 잡는다. 1973년 다수족인 후투족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쫓겨난 투치족은 반군을 결성하고 1990년부터 후투족 정권에 본격 도전해, 내전에 빠져 들고, 94년 내전이 재연된다. 후투족 강경파가 정부군을 동원해 투치족에 대한 학살에 나서, 불과 100여일 만에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 97만명이 살해되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투치족도 반격에 나서, 곧 정권을 장악했다. 이번에는 보복을 두려워한 후투족 200만명이 이웃나라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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