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① 욜란데 무카가사나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21  최재봉 기자
 


» 욜란데 무카가사나 르완다 작가 투치족 학살 생존자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축제 전주서 내달 8일 개막


‘2007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은 국외 문인 80여명과 국내 문인 200여명이참가하는 초대형 문학 행사다.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이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초청한 바 있지만, 적어도 규모에서는 이번 대회에 미치지 못한다.

비록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이번에 초청된 문인들 역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중국 소설가 모옌과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시인 마무드 다르위시, 이집트 소설가 살와 바크르, 보츠와나 시인 바롤롱 세보니, 남아공 소설가 루이스 응코시, 세네갈 소설가 켄 부굴 등이 상대적으로 알려진 작가들이라면, 요르단·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레소토·베냉·토고·지부티 등 문학적으로는 생소하기만 한 나라의 문인들 역시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국내 문인들은 일일이 거명할 필요조차 없이 주요 문인들이 거의 다 포함되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8일 저녁 개막식과 리셉션에 이어 9~11일 전북대 진수당에서 분과별 기조발제와 집단토론을 벌인다. 디아스포라, 언어, 평화, 여성, 분쟁지역이라는 다섯 분야로 나누어 발표와 토론을 벌인 국내외 문인들은 11일 저녁 ‘전주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공식 행사를 마무리한다. 본대회말고도 ‘젊은 작가 맞장 토론’ ‘문학 카페’ ‘문학 장터’ ‘문학교실’ ‘문예백일장’ 등의 흥미로운 부대행사가 열려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게 된다.

〈한겨레〉는 대회에 참가하는 외국 문인들 중에서 르완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글을 받아 싣는다. 첫회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종족 갈등을 겪고 있는 르완다의 작가 욜란데 무카가사나의 글을 싣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종족 학살을 피해 떠나 있던 중이었다
죽임을 당하기 전에 당시 일어난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인종 학살이 자행되었다. 대상은 투치족이었다. 그 결과 3개월 동안 무려 100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로 살해되었다. 정치 및 군사 집권세력은 투치족 학살에 후투족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이들은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과 어린 소녀들에게는 강간을 인종 말살 무기로 사용했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동일한 언어, 문화, 영토를 공유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르완다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이전에 모든 르완다인들은 ‘이마나’라는 이름의 같은 신을 섬기고 있었다. 즉 이마나는 모든 르완다인들의 유일신이었다. 모든 이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이마나를 숭배하였다. 그런 가운데 투치족이 별개의 종족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죽이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식민통치의 산물인 종족을 신분증에 명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식민통치로 르완다 역사가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식민통치 시절 처음으로 르완다인들의 종족을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종족별 신분증이 도입되었다.

르완다가 독립한 1962년 이후 후투족으로 구성된 과격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13년간 르완다를 통치했다. 이때부터 투치족은 모든 분야에서 배제되었다. 그 후 또다른 반(反)투치 정당이 정권을 이어받아 르완다를 21년 동안 지배했다. 그때부터 투치족 아이들은 기껏해야 초등교육까지만 받았으며 투치족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공직에 몸담을 권리도 없었다. 또한 군에 입대할 수도 없었다.

투치족을 대상으로 학살이 자행될 때마다 생존자 중 일부는 나라를 떠났다. 투치족은 목숨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추방되었던 것이다. 1990년 당시 인접 국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피신한 난민의 수는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은 르완다로 귀국을 시도하다가 투옥, 살해되곤 했다.

1990년 10월1일 난민의 자녀들이 르완다를 공격하고 국내에 남아 있던 투치족들을 볼모로 잡았다. 전쟁에서 패색이 짙던 집권세력은 국내 거주 투치족을 학살할 계획을 세웠는데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 사건은 유엔이 확인한 20세기 마지막 대량 학살이었다. 3개월 만에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살인을 저지른 이들은 바로 군 당국에 협력한 우리의 형제, 부모, 이웃들이었다. 전세계는 이러한 학살 사태를 목도하면서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은 언론을 통제하였으며 종족 학살을 위한 자체 언론사들을 설립하였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RTLM(Radio Television Libre des Mille Collines) 방송과 캉구라(Kangura: ‘깨어나라’라는 뜻) 신문을 들 수 있다. 두 언론매체는 후투족을 살인자로, 투치족을 무기력한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개조하고 증오를 심는 역할을 담당했다.

1959년 이래 르완다에서 문화는 설 자리를 잃었다. 예술가들은 공연이나 작품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 분쟁 중인 국가에서, 게다가 그것도 표현의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는 그 어떤 것도 생산해낼 수 없다. 독재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의 생산력이 고갈되고 만 것이다.

스무 살 시절 나는 책을 한 권 썼다. 그러나 이내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 책을 행여 출판이라도 하면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아버지가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종족 학살을 피해 떠나 있던 중이었다. 죽임을 당하기 전에 당시 일어난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록을 밑바탕 삼아 르완다에서 발생한 투치족 학살을 다룬 나의 첫 번째 책을 발간할 수 있었다. 제목은 〈죽음은 나를 원하지 않는다〉였다.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이는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인간애를 파괴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파괴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모든 이에게 상처를 남긴다. 살아남은 피해자든 살인자든 간에 말이다. 나의 아이들을 죽인 자는 나보다 더 큰 파멸을 경험했으리라. 나는 이야기라도 할 수 있지만 그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늘 침묵을 지켜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용서가 없이는 인간애도 없고 정의가 없이는 용서도 없으며 아울러 인간애가 없다면 정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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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매혹적인 ‘여전사’들 할리우드 평정하다

할리우드 영화 속 ‘강한 여성’ 의 진화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19


 
»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지던트 이블3>의 앨리스, <레지던트 이블3>의 클리어,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킬 빌>의 더 브라이드 등 영화 속 여전사들.
 

‘레지던트 이블3’의 여전사들, 강하고 정의로우며 성적 매력도 넘쳐
가부장적 권력에 도전하고 자립 존중하는 현대여성 욕망의 투영


좀비들의 창궐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몰린 <레지던트 이블3>(18일 개봉)에는 두 명의 여전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앨리스는 아무리 많은 좀비가 몰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탁월한 전투력을 가진 전사이고 클레어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도자다. 남성들은 두 여전사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인 존재이거나, 인류의 생존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악당들로 나온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정의롭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여전사의 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여전사의 대두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제를 고수했던 남성의 권력은 흔들리고, 반대로 여성은 남성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연하의 꽃미남이 인기인 반면 ‘능력 있고 씩씩하며 의지력이 강한 여자’가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인한 여성은 여성 자신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성들의 은밀한 요구이기도 하다. 약해진 남성을 보살피고 도와줄 여전사, 혹은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강한 여성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나 필름 누아르에 등장한 팜므 파탈은 남성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남자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도 하는 강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강한 여성들은,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 남성 개인을 사로잡은 여성일 뿐이다. 이들은 남성을 이용하지만, 완벽하게 남성 사회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오하라는 남성에게 의존하고, 팜므 파탈은 남성의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그 체제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소 상업적 취향이긴 하지만, 70년대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에서 강인한 흑인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재키 브라운>에서 정갈하게 부활시킨 후, <데스 프루프>에서 신나게 폭주한다.

80년대는 남성적인 마초 영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한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조네스 타입의 여전사들도 마초 영웅 틈에서 탄생했다. <코난2>의 흑인 여전사 그레이스 존스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두려운 야수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와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전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오로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생존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요즘의 여전사들에 비해, 이들은 여성적인 면이 부족하다.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근육질로 무장한 채 괴물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모성애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을 구하려고 헌신한다. 여전사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원형인 것이다.

반면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들,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언더월드>의 케이트 베킨세일, <킬 빌>의 우마 서먼 등이 대표적인 여전사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는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남성과의 관계 역시 자신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끌어간다. 과거 남성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선취한 것이다. 요즘의 여전사들에게는 남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남성은 단지 선택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다.

그런데 묘하게도 21세기의 여전사들은 더욱 주체적이면서 강력해진 동시에 더욱 섹시하고 고혹적이기도 하다. 액션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매, 패션까지 여전사들의 모든 것이 남성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대전격투 게임 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나오는 비치 발리볼 게임까지 만들어졌다. 여전사일지라도, 그들을 하나의 성적 판타지로 바라보는 경향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여전사의 섹시함은, 여성다움을 버리고 남성적인 근육질의 전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면을 가지면서도 남성과 대등하게 싸운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남성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섹시함’을 키우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섹시함 자체가 여성의 무기이기도 하고.

할리우드의 여전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트렌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조폭 마누라> <형사> 정도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의 독창적인 여전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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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점에는 그녀의 책이 없었다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21  
 


»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노벨문학상 발표가 나고 일주일 후에 아이오와에서 문학도서가 가장 많다는 서점에 갔다. 이맘때 한국의 경우를 떠올리며 으레 도리스 레싱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노벨문학상 코너가 없을 뿐 아니라 그녀의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대답에 놀랐다. 서점 직원은 보유하고 있던 다섯 권 정도의 책은 이미 팔리고 새로 주문을 넣긴 했지만 책이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점 컴퓨터를 통해서 보니 미국 전체에서 <황금 노트북>을 주문한 총 부수는 2000부 정도였다. 본격문학 시장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미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적은 수요는 아니지만 해마다 노벨상 특수를 누리는 한국 출판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엔 미국이 노벨문학상 결과에 냉담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영국 문학에 대한 묘한 열등감의 표현이거나 유력 후보였던 필립 로스가 수상하지 못한 서운함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그런데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태프나 세계 각국의 작가들도 대체로 노벨문학상에 별 관심이 없거나 비판적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 기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았고,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아랍계 작가들은 가오싱젠, 존 쿳시, 오르한 파묵 등 기존 수상자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지닌 그들보다 뛰어난 작가들이 자국에는 적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노벨문학상이 절대적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노벨문학상 열풍은 다소 기이하기까지 하다. 물론 노벨상을 빌미로라도 문학이 얼마간 사회적 흥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문학의 위기다 어쩌다 해도 실제로 한국만큼 국내 문학시장이 남아 있는 나라도 드물다. 소설이 아닌 시집이 소수이긴 하지만 일이만 부, 때로는 수십만 부씩 팔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생산력, 작품의 다양성에 있어서도 정체기에 들어선 서구 작가들보다 오히려 현재적 활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작가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부의 관심과 활력을 어떻게 국제화하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는 요행을 바라기보다 한국문학을 국제화하기 위한 기반을 지금이라도 차분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 한국문학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뛰어난 번역자를 양성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외국문학을 국내에 소개할 때에도 베스트셀러 위주의 번역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에 지적 자극을 줄 만한 선진적인 문학을 동시대적으로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양방향적인 교류가 없이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몇 명의 국제적 스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문학의 전체적인 흐름과 독자성이 무엇인가를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아이오와 창작프로그램이 40주년을 맞는 해라서 세계문학을 조명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다. 아프리카 문학, 아랍 문학, 중국 문학, 일본 문학, 러시아 문학 등의 섹션이 마련되었지만, 한국 문학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로 이것이 세계화로 나아가려는 한국 문학의 현주소다. 국적이 다른 시인들이 모여 일본의 중세 시가양식인 ‘렌가’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응용해 영어로 공동창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문학에서 과연 세계와 공유할 만한 보편적인 양식이 무엇일까 반문해 보았다. 이제는 노벨문학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런 질문과 성찰을 해나가야 할 때다. 미국 서점에 노벨상 수상자의 책이 없었던 것보다 내가 이곳에 와서 더 뼈아프게 확인한 것은 세계문학 속에 한국 문학의 독자적인 자리가 거의 없다는 현실이었다.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변질된 명예’의 과잉!
자부심을 잃어버린 ‘상’… 빗나간 과시욕망에 목을 매는 한국사회의 풍경

출처:<한겨레21> 제354호


살아오는 동안 당신이 이곳저곳으로부터 탄 상장은 몇개나 되는가. 집안에 걸린 친목단체에서 받은 상장이며 책장에 놓여진 상패들, 혹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어릴 적 빛바랜 우등상과 개근상들까지 다 꺼내 세봐야 할 정도인가. 아니면 나에게 상은 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고 잘라말할 것인가. 물론 보란 듯이 걸어둔 상패가 없다고, 변변한 상 하나 받은 게 없다고 해서 크게 낙담할 일은 아니다. 수상경력이 꼭 훌륭한 삶을 말해주는 건 아니므로.

어린이집 우등상 수상식의 우스꽝스런 풍경

하지만 상을 둘러싼 현재 한국사회의 몇 가지 풍경들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외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사는 직장인 이아무개(38)씨는 지난 2월 말 아들이 다니던 ㅇ유치원의 졸업식에 갔다가 황망한 일을 당했다. 우등상을 타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까지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는데 같이 상을 받는 다섯명의 아이들 가운데 3명만 상패를 타고 아들과 다른 한명의 아이는 상패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씨는 “왜 우리 아이에게는 상패를 주지 않느냐”며 원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곧바로 돌아온 원장의 대답은 이랬다. “상패가 있는 아이들은 유치원쪽에서 마련한 게 아니라 부모들이 미리 돈을 내고 주문한 것입니다.” 다른 아이의 상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들을 보며 이씨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본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의 동상’.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 기숙사 앞에는 미래에 노벨상을 받게 될 주인공을 위해 15개의 얼굴 없는 동상좌대가 놓여 있다. 자신의 얼굴을 동상에 얹히겠다는 ‘위대한 비전’을 갖고 공부하라는 뜻에서다. 이 학교 박하식 교감은 “내 얼굴이 저기 동상에 올라가는 꿈을 갖고 학교에 다니도록 노벨상 동상을 세워둔 것”이라며 “적어도 15명을 금세기 안에 노벨상 수상자로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원대한 구상을 밝혔다. 박 교감은 실제로 이 학교 졸업생 중 미국 MIT공대에 진학한 한 학생은 얼굴 없는 노벨상 좌대를 떠올리며 노벨상을 향한 꿈을 불태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집착은 강하며, 각 분야에서 주는 상 또한 숱하게 많다. 가히 상의 홍수시대라 일컬어도 크게 잘못은 아닐 정도다. 문인 또는 문인지망생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문학상만 한해 줄잡아 270여개에 이르고, 미술분야는 공모전과 기성작가에게 주는 미술상을 합쳐 얼추 140여개에 달한다. 한햇동안 전국에서 개최되는 국악·민속경연대회도 무려 85개에 이른다. 특히 국악·민속경연대회 가운데 대통령상을 주는 대회가 25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주는 대회도 82개나 된다. 그래서 국악계 안에서는 “왕중왕 경연대회를 신설해 진짜 고수를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조섞인 말도 나오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전통지역문화과는 “왜 상이 그리 많으냐고 하는데 침체된 국악의 붐을 일으키고 신인들에게 등용 기회를 열어주려면 상은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작가들과 공모전의 공생관계

사진/미래의 노벨상 주인공을 기다리는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얼굴없는 노벨상 좌대’.

각종 상이 확대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상이 내거는 취지가 그렇듯, 실제로 수상제도를 통해 그 분야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인가. 이에 대해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교육의 대중화가 상의 과잉생산을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 소수만이 가졌던 교육기회가 늘어나면서 다른 사람보다 뭔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됐고 이런 점이 수많은 상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용인정신병원 김수동 박사도 경쟁을 그 요인으로 꼽는다. 그는 “예전에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남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가 인정받아야 살아남는 사회구조가 되었고, 자기를 알리려는 노력이 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서보다는 타이틀을 따기 위한 과시욕망이 상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숱한 상이 제정되는 배경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수요 공급 논리가 그대로 관철된다. 상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의 ‘욕구’에 따라 상이 제정되고, 상 자체가 결국 하나의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분야에서 새로운 상들이 잇따라 제정되어온 과정이 그대로 보여준다. 과학분야에서 가장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상은 올해 34회째인 대한민국과학기술상이다. 그러나 현재 나름대로 권위를 내세우는 상은 9개에 이른다. 5공 시절 한국과학상이 생긴 이래 공학자들은 “왜 순수과학분야만을 시상 대상으로 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한국공학상이 제정됐다. 그러나 곧바로 젊은 과학자들은 “과학분야의 상들이 누적된 공적에 대해서만 시상한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결국 젊은 과학자상과 이달의 과학자상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소기업부설연구소쪽이 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왜 대기업이나 대학연구소 등에만 상을 주느냐는 논리였다. 그래서 생긴 게 중소기업쪽을 주 상으로 하는 장영실상이다. 나아가 벤처쪽에서도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벤처기업상이 제정됐고 지난해에는 대중매체를 통해 과학기술문화 창달에 기여한 사람을 발굴, 포상하는 과학문화상까지 제정됐다. 이에 따라 한해 과학분야 대통령 표창은 4개 분야 20여명에게, 과학기술부 장관 표창은 무려 6천여명에게 주어진다.

미술계에서 신인발굴을 내걸고 열리는 공모전도 몇개나 되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난무한다. 심사절차를 둘러싸고 잡음과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공모전 무용론이 제기되지만 공모전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공모전이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일정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나아트 김달진 자료실장은 “권위있는 공모전보다 수준이 낮은 하위 공모전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이나 수상경력 한줄을 추가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을 위해 공모전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이는 문학분야에서 출판사의 상업주의적 ‘기획’과 작가의 상에 대한 ‘욕망’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숱한 문학상이 나오는 양상과 닮아 있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제정하는 쪽에서도 거기에 맞춰 각종 상을 공급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한국인은 어떤 상을 받더라도 개인의 명예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이런 한국인의 심성과 상을 줌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시장논리가 만나서 상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은 받기도 어렵지만 주는 것도 쉽지 않다. 수상자 발표 때마다 공정성과 심의절차에 대한 잡음이 일기 일쑤인 것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9월 ㄱ신문사는 에너지절약에 기여한 기업체를 선정해 시상하면서 장려상(산업자원부 장관상)으로 ㅊ에너지를 선정했다. 초절전 진공 온수관 난방장치 개발로 보일러 연소로 인한 환경오염과 소음공해를 없애고 에너지 낭비를 개선했다는 점이 수상 이유였다. 그러나 이 수상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시공했던 박아무개씨 등 5명은 ㅊ에너지의 기술이 부실한 탓에 보일러 장판바닥이 까많게 타들어가곤 했다며 수상 기술을 문제삼았다.

이들은 “당시 응모한 60여개 기업의 제출 서류를 고작 6명의 전문가가 하루 만에 다 심사하면서 기술적인 심사가 제대로 안 된 채 졸속으로 수상업체가 선정됐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로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심사위원 1명이 분야별로 서류 10편 정도를 다 봐야 했다”며 “무리하게 심사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출한 증빙서류를 100%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장관상을 준 산업자원부 전력산업과도 “ㄱ신문사에서 심사한 뒤 통보하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 장관상을 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신바람나는 효과를 위하여

사진/상은 신뢰와 공정성이 전제돼야 그 권위가 빛난다. 한 상패 제작업소에 진열된 상패들.(강창광 기자)

무릇 상은 신뢰와 공정성이 전제돼야 그 가치와 권위가 빛나게 마련이다. 넘쳐나는 상의 이면에는 상에 기대어 인정받고자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이용해 상을 제정하고 또 그 상을 통해 권위나 권력을 꾀하려는 ‘또다른 욕망’이 교차한다. 과시나 포장을 위한 변질된 상의 홍수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상을 타지 않고도 자신의 진정한 실력이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된다면 상에 목매다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덜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없기 때문에 상이라든가 타이틀을 따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상의 본질은 주고받아 더욱 독려하고 분발하는 동기부여다. 그런 만큼 상을 주는데 꼭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함인희 교수는 “한국인은 나보다는 상대적인 것들, 예컨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중시하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며 “상을 통해 남이 나의 능력과 업적을 인정해주면 더 신바람나게 노력하는 효과를 빚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의 남발은 권위와 자격을 갖춘 다른 수상자들의 품격을 한꺼번에 떨어뜨린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상의 권위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이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친뒤라야 ‘아름다운 수상거부’도 나올수 있고 편가르기와 줄세기우식 수상 다툼도 사라질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내오랜꿈 -------------------------------------------------------------

작년이었던가, 재작년이었던가? 노벨상 발표 시즌에 즈음하여 고은씨가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국내 모든 언론이 호들갑을 뜬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호들갑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뒷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고은씨와 더불어 후보로 유력하게 오르내렸던 사람이 바로 황석영씨였는데, 그들이 노벨상을 두고 경쟁적으로 대응하면서 두 개 진영으로 나뉘어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접했던 것이다.

글쎄,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두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감이 싸~악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과연 '노벨상'이 가지는 여러 가지 논란과 이데올로기적 효용을 전혀 모르고있는 것일까? 아마도 전혀 모른다기보다는 노벨상이 가져다주는 '명예'에 혹해서 제정신들이 아니었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요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보면 정말이지 무슨무슨 상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잘한다'는 칭찬을 앞세워 애들 기를 세워줘야 한다는 열망에다, 그것이 애들 교육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신종 교육이론'도 한 몫 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칭찬? 글쎄, 난 요즘 애들 쳐다보고 있으면 칭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무라야할 때 제대로 나무라지 못해서 더 문제인 것 같은데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아이 조용히 시키기는커녕 그걸 나무라는 사람한테 자기 새끼 왜 나무라느냐며 큰소리치는 싸가지 없는 부모들이 주류를 이루는 게 오늘의 세태인 것 같은데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라는 책이었던가?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이런 책들이 한 권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다음에는 직장내에서 칭찬이 끼치는 영향이 어떠니, 기업발전에 칭찬이 어떤 영향을 미치니 '생난리브루스'를 치는 책들이 양산된다. 내가 보기엔 거의 다 종이값이 아까운 쓰레기들이다. 대부분의 책이 결국은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야 기업이 발전하고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 거의 대부분이 외국의 번역서들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유아발전단계가 어떠니, 몇 세 때는 무슨 발전단계이니 무엇을 키워줘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했나? 환경이 다르면 개인의 발달 정도는 다 다르게 마련인 것 아닌가? 무슨 놈의 외국이론 번역하고 베낀 책들이 우리나라 유아교육부터 기업문화교육까지 좌지우지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무조건 애들 칭찬하고 기 세워서 어떤 인간으로 키워낼 것인가? 결국은 공부 잘 하고, 남을 밟고서라도 1등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목표인가? 그래서 울산과학대학 학생들처럼 자기들 밥해주고 청소해주는 식당의 비정규직 아주머니들(밥하고 반찬만들고 설겆이하고 청소하는) 정규직화를 위한 집회를 자기 학교에서 연다고 총학생회 차원에서 애들 끌고 나와 인간방패를 만들어 비정규직 아주머니를 몰아내기나 하는 인간들 만드는 게 목표인가? 이명박 찍으면 취직 잘 될 거 같으니까 대선에서 이명박 찍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대학생 만들어내는 게 목표인가?

칭찬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칭찬 이전에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부터 돌아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 약자를 위한 타인을 위한 배려를 가르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맘대로 하는 애새끼들 야단부터 쳐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에 무슨 넘의 유아발전단계가 어떠니, 무슨 교육을 시켜야 하느니 하는 헛소리가 필요한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벨상 논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괜히 욱~ 하는 성질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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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노래] 컨트리 음악, ‘백인의 블루스’로 등극하다
③지미 로저스의 〈티 포 텍사스〉(1927년)
출처:<한겨레신문> 2007/10/15


» 지미 로저스의 〈티 포 텍사스〉(1927년)
교통수단의 발달이 초창기 미국 대중음악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소통 수단이 음악의 유통 방식을 변화시킨 것에 비할 만큼 지대했다. 레코드와 라디오의 발명 이전에는 교통수단이 곧 통신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악보에 채록된 적도 없는 국지적 민속음악이 지역 경계선을 넘어서는 길은 사람의 이동과 함께 전파하는 방법뿐이었다.

재즈의 발상지 뉴올리언스와 블루스의 본고장 미시시피 유역이 수로교통의 오랜 요지였다는 점은 그 명백한 증거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새로운 음악 형식들은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상호교류 속에서 발견되고 발전된 것이었다. 그래서, 컨트리 음악사상 최초의 스타인 지미 로저스(사진)가 기관차 제동수 출신이라는 사실에는 필연성마저 내포된 것처럼 보인다. 로저스에게 기관차는, 마크 트웨인에게 증기선이 그러했듯, 창작의 세계와 소통하는 전위였다.

지미 로저스(1897~1933)는 흔히 ‘컨트리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각지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하여 독자적 스타일로 뿌리를 내린 그는 무엇보다, ‘백인의 블루스’로서 컨트리 음악의 전범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존재다. 낡은 구전가요나 스탠더드 넘버를 반복해 녹음하던 당시 가수들의 관행과 달리, 로저스는 자작곡을 통해 개인적 경험과 독자적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의 연주 패턴과 노랫말과 창법이 고스란히 컨트리 음악의 교본으로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근거다. 그래서 1961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은 지미 로저스를 그 첫 번째 헌액자로 선정하며 “모든 것을 시작한 인물”이라는 찬사를 바쳤던 것이다.

1927년 11월, 로저스의 생애 두 번째 녹음 세션에서 탄생한 〈티 포 텍사스〉는 그 ‘모든 것을 시작한 노래’였다. 50만 장이 팔려나간 이 곡은 로저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요들 테크닉과 흑인의 팔세토 발성을 결합시킨 그 특유의 창법을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다른 제목인 〈블루 요들 넘버 원〉은 로저스의 독특한 창법을 가리키는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총 13편의 ‘블루 요들’ 연작을 발표하여 컨트리 음악의 고전적 스타일을 완성시켰고 전례가 없는 대중적 성공을 누렸다. 시리즈의 아홉 번째 노래 〈스탠딩 온 더 코너〉(1930년)에서는 당대 최고의 재즈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과 역사적인 협연을 펼치기도 했다. 비평가 피터 구랠닉이 “당대의 신화적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영향력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베이브 루스 그리고 뒷날의 엘비스 프레슬리밖에 없다”고 단언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지미 로저스가 ‘가난의 질병’이라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인 인생의 아이러니다. 기관차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전진시킨 원동인 동시에 비극적 최후를 촉진시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홍키통크 맨〉(1982년)은, 느슨하게나마, 그의 죽음을 모티프로 각색한 영화다. 컨트리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뮤지션 이스트우드’는 극중에서 직접 노래도 불렀지만, 현명하게도, 지미 로저스의 요들 창법을 흉내내는 따위의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박은석/음악평론가


Today - Jimmie Rodgers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to the vine
I'll taste your strawberries
I'll drink your sweet wine
A million tomorrows shall all pass away
Ere I forget all the joy that is mine, today
I'll be a dandy and I'll be a rover
You'll know who I am
by the songs that I sing
I'll feast at your table
I'll sleep in your clover
Who cares what tomorrow shall bring Today
I can't be contented with yesterday's glory
I can't live on promises winter to spring
Today is my moment and now is my story
I'll laugh and I'll cry and I'll sing Today...
꽃들이 줄기에 매달려 있는 오늘
그대의 딸기맛을 즐길래요
그대의 달콤한 포도주를 마실래요
오늘, 내 모든 이 즐거움을 잊기도 전에
수많은 내일은 모두 다 지나가겠지요.
난 멋쟁이가 될래요, 난 유랑자가 될래요
내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면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알 거예요
난 그대의 식탁 위에 진수성찬이 될래요,
난 그대의 좋은 잠자리에서 잠잘래요
누가 오늘 같은 내일을 갖다 줄까요...
어제의 영광만으로 난 만족할 수 없어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약속을 난 믿지 않을래요
오늘이 나의 순간이며, 지금이 내 이야기예요
오늘 난 웃고, 울고, 또 노래할 거예요.

본명은 제임스 찰스 로저스(James Charles Rodgers). 미시시피주(州)의 머리디언(Meridian)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메르디안 바로 북쪽 미스시피의 파인 스프링스에 있는 조부모 댁에서 보냈다. 14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기차를 정지시키는 일을 하는 철도공이 되었다. 에어 브레이크가 생기기 전 기계적으로 기차를 정지시키던 시대였다. 달리는 열차 위에서 일하는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철도 노동자로 일하면서 기타와 밴조를 익혔으며, 블루스·노동·방랑생활·카우보이의 노래 등을 결합한 독특한 음향을 만들어 '노래하는 브레이크맨(Singing Brakeman)'으로도 불린다.

1924년경 결핵에 걸려 중간에 해고 되었고, 안 해본 일없이 온갖 고생을 했다. 남부를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하던 중 한 축음기회사의 기사 눈에 띄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1927년 테네시에서 RCA 빅터 리코딩회사(RCA Victor recording company)에 의해 발굴되어 음반을 발표하게 된 것.

대표곡에는 《블루 요들 제1번 Blue Yodel No. 1》 《브레이크맨의 블루스 Brakeman's Blues》 《미시시피 리버 블루스 Mississippi River Blues》 《마이 타임 에인트 롱 My Time Ain't Long》이 있으며, 컨트리 앤드 웨스턴(country and western) 장르의 성립에 기여했다.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자(early influence)' 부문에 올랐다.


내오랜꿈 -----------------------------------------------------------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빌려본 비디오 가운데 의외의 수작을 만나는 즐거움은 잔뜩 벼르고 기다리다 개봉관에서 본 영화의 실망감에 견주어 비교한다면 거의 로또를 맞은 기쁨에 비견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홍키통크맨(Honkytonk Man, 1982)>이 나에겐 그런 영화에 속한다. 감독 스스로 영화의 주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실제 재즈 베이스 연주자인 아들 카일 이스트우드도 출연하는 영화다.

영화를 본 지 꽤 오래되어 세세한 장면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대공황 이후 황폐해진 미국 중서부 농촌 지역을 배경으로 한 떠돌이 컨트리 가수의 삶을 다룬 영화라 기억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하는 떠돌이 가수가 선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하는 모습 속에 그 지역의 문화와 주민의 생활상을 잔잔하고 감동스럽게 담아낸 영화였기에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노래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하지만 이 영화가 지미 로저스의 삶을 다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떠돌이 가수의 모습이 조금은 주정뱅이에 알콜중독자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100% 확신은 못하겠다), 실제 지미 로저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다시 한 번 비디오를 빌려봐야겠다.

2007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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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로 토해낸 흑인여성의 운명
세상을 바꾼 노래 ②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1925년)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0 07


»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방대한 단일 재발매 프로젝 트”라 불렸던 베시 스미스 박스세트 시리즈.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검둥이고, 더블린 사람은 아일랜드의 검둥이니까.”

더블린의 후락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커미트먼트〉(1991, 앨런 파커 감독)에서 레코드 제작자를 꿈꾸는 주인공은 자신들이 흑인음악을 ‘연주해야만 하는’ 이유를 그렇게 풀이했다. 그 표현을 빌리면 1920년대 블루스 초창기의 유명한 가수들이 죄다 여성이었던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흑인여성은 검둥이 중의 검둥이였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인종차별로 억압받은 미국 흑인역사의 산물이었고, 흑인여성은 거기에 성차별의 중압까지 부과받은 열등한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1920년대 최고의 가수였고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하나로 꼽히는 베시 스미스(1894~1937)는 인생을 통해 블루스를 살았던 인물이다. 1923년 80만장이 팔려나간 싱글 〈다운하티드 블루스〉로 파산 직전의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기사회생시키며 극적으로 데뷔한 스미스는 당대 가장 성공한 흑인 예술가였다. 후대의 영향력도 거대하다. 빌리 홀리데이, 마할리아 잭슨, 아레사 프랭클린, 재니스 조플린- 각각 재즈, 가스펠, 솔,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하나같이 그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을 정도다. 풍부한 성량과 세밀한 표현력을 동시에 갖춘 스미스의 보컬은 블루스의 미묘한 본질, 즐거운 노래에도 눈물이 담겨 있고 슬픈 노래에도 낙관이 실려 있는 운명적 아이러니를 감동적으로 설득한 궁극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베시 스미스 최고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재즈의 〈햄릿〉”이라 불리는, 더블유시 핸디 원작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해석이다.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는 아직 블루스와 재즈가 개별적인 장르로 완전히 분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스미스의 존재가 그 경계를 나눴다. 그래서 프로듀서 존 해먼드는 그의 노래가 “오늘날 블루스의 바로 그것”이라고 평했다. 스미스의 노래는 구전으로만 남은 영가, 블루스, 재즈 사이의 근원적 동질성과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로제타스톤이다. 또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에게 발탁된 스미스가 ‘블루스의 아버지’ 핸디의 곡을 통해 ‘블루스의 여왕’에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고전 블루스’ 가계도의 꼭짓점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컬러 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는 여성 블루스 가수, 특히 베시 스미스에게서 창조적 자극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작품에는 스미스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은 소설과 다르다. 스미스의 말년은 초라하고 비참했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그는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었다는 자가 장례식 기금을 챙겨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무덤이 묘석도 없이 30년 이상 버려져 있었다는 대목에는 말문조차 막힌다.

베시 스미스는 흑인이었고 여성이었다. 그것은 그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원죄의 굴레였다. 그가 동명의 단편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노래와 연기로 새겨 넣은 장면은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던 것이다.(영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는 외국의 유명 유시시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은석/음악평론가



ST. LOUIS BLUES - PETER CINCOTTI


내오랜꿈 ------------------------------------------------------------------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NHL 웨스턴컨퍼런스 중부지구에 소속된 아이스하키팀 "ST. LOUIS  BLUES" 일 것이다. 팀명인 블루스(Blues)는 팀 창단시 구단주가 오늘 소개되는 곡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따왔다고 하니 꽤나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었나 보다.

블루스란 음악장르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힘든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블루스의 정의는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서아프리카의 해안 지역으로부터 백인들에게 포획되어 유입된 흑인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애환을 노래한 노동요(Work Song)를 시초로 하고 있는, 12마디의 화음조성 구조를 가진 음악'(신현준,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문학과 지성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블루스는 하나의 음악 장르 명칭에만 머물지는 않는데, 이른바 '블루지'한 상태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향점이자 인생관, 삶의 태도를 일컫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흔히들 재즈는 뉴올리언즈에서부터, 블루스는 미시시피에서부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뉴올리언즈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드럼 사용이 선동용 기구라는 미명 아래 금지되었기 때문에 흑인 밀집지역 중 하나였던 미시시피에서는 주로 보컬과 현악기 위주였기에 벤조나 급조한 형태의 악기, 가령 워시보드, 하모니카 또는 휘파람 등이 사용되어 블루스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뉴올리언즈의 경우 어느 정도 드럼이나 관악기의 사용이 가능했기에 후에 퍼레이드 음악의 유행과 함께 재즈가 발전된 것이라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블루스라고 하면 흔히들 '리듬앤블루스' 계열의 감미로운 곡으로만 오해되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블루스는 그리 만만한 음악장르가 아니다. 블루스는 과연 어떤 음악인가. 앞에서 인용한 『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에 따르면 블루스의 원형은 19세기 중엽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대중가곡 및 그 형식을 출발점으로 한다. 곧 노예시대 흑인들의 노동가나 영가 등 주로 집단적으로 불리던 소박한 민요의 형식이 블루스의 모태가 된 것. 이 집단적 노동요가 개인이 부르는 노래로 바뀌면서 블루스가 탄생하게 된다.

음악평론가 성기완은 블루스의 기원을 집단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노예해방 이후 명목상의 해방을 누리지만 노예해방 첫 세대는 그때까지 노예상태로 살던 흑인들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블루스의 ‘블루’, 즉 우울하고 슬픈 측면은 바로 그런 흑인들의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블루스 음악 깊숙한 곳에는 흑인들의 고난의 역사와 비참한 생활이 묻어 있는 것이고,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 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블루스의 음악적 특징과 형식은 20세기에 들어와 재즈의 음악적 바탕이 되었고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로큰롤, 재즈, 리듬앤블루스, 힙합 등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사운드들의 뿌리는 블루스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블루스 음악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추적해 나가는 영화가 시리즈로 제작되어 소개되기도 했었다.

미국의 EBS쯤 되는 PBS가 재즈 시리즈를 만들고 난 이후 재즈의 기층에 있는, 어쩌면 미국 팝의 모든 장르의 기층에 있는 토대인 ‘블루스’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면서 그 제작 총지휘를 마틴 스코시즈에게 맡긴다. 스코시즈는 다시 이 기획을 자신을 포함한 7명의 감독에게 나누어 각자 스타일대로 블루스에 접근하는 영화를 만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블루스 음악의 발자취를 뒤좇아보는 시리즈가 탄생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 무게가 느껴지는 7명의 감독이 만든 블루스 시리즈물은 <고향에 가고 싶다>(마틴 스코시즈), <소울 오브 맨>(빔 벤더스), <피아노 블루스>(클린트 이스트우드), <레드, 화이트 그리고 블루스>(마이크 피기스), <아버지와 아들>(마크 레빈), <악마의 불꽃에 휩싸여>(찰스 버넷), <멤피스로 가는 길>(리처드 피어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빔 벤더스의 <소울 오브 맨> 1편만 극장 개봉되었다(다른 시리즈물은 <서울아트시네마>나 <시네마테크부산> 등에서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지난 2004년에 DVD 박스세트로 발매되었으나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재발매된다. 당시에는 1편당 10,000원이 넘는 가격이었는데, 이번엔 7편 박스세트를 32,8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마니아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아래는 [The Blues] 시리즈 7편의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소울 오브 맨>에 대한 간략한 평이다. 빔 벤더스의 전작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과 비교하면서 다루고 있기에 옮겨 놓는다(<씨네21>에 네티즌 리뷰로 실린 글이다).

2007 10 08



[The Blues] 시리즈

1. The Blues 1 -

- 감독 : 마틴 스콜세이지
- 시간 : 1시간 19분
- 내용 : 초기 블루스의 역사를 다루는 전형적인 블루스 다큐멘터리물. 존 & 앨런 로맥스 부자의 '의회 레코딩', 블루스의 형성과 발전(20세기 초기에서 중반까지), 그것과 서아프리카 음악과의 관계 등에 대한 고찰. 후반부는 아프리카 말리로 직접 날아가서 진행. [라스트 왈츠] 등을 찍어봤던 감독답게 음악다큐에 접근하는 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 호스트 : 코리 해리스
- 주대상 : 레드벨리(리드벨리), 머디 워터스, 선 하우스, 타지 마할, 찰리 패튼, 쟈니 샤인즈, 로버트 존슨, 캡 모, 존 리 후커, 살리프 케이타(이하, 아프리카), 하비브 코이테, 알리 파카 투르.(과거의 기록영상 중심. 물론 아프리카 부분은 모두 새 것.)


2. The Blues 2 - The Soul of a Man

- 감독 : 빔 벤더스
- 시간 : 1시간 39분
- 내용 : 스킵 제임스와 J.B. 르누아, 두 사람에게 집중 포커스를 맞춘 영화. 둘에 대해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 설명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와 연출이 묘하게 섞인 작품.(사실 존슨은 앞의 둘보다 훨씬 빨리 죽었음. 존슨의 목소리 역은 로렌스 피쉬번.) 젊은 시절의 스킵 제임스와 블라인드 윌리 존슨에 관한 영상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출이며, 후년의 그들에 관한 영상 등 나머지는 다큐멘터리가 맞음.
- 주대상 : 스킵 제임스, J.B. 르누아, 그리고 블라인드 윌리 존슨
- 찬조출연 : 루 리드, 보니 레이트, 벡, 닉 케이브, 이글 아이 체리, 존 스펜서 익스플로젼, 셰메키아 코플랜드, 로스 로보스, 루신다 윌리암스, 카산드라 윌슨.(이들이 두 사람의 곡을 각자 리메이크하는 스튜디오 영상.)


3. The Blues 3 - The Road to Memphis

- 감독 : 리차드 피어스
- 시간 : 1시간 28분
- 내용 : 멤피스 블루스에 대해. 2002년 W.C. 핸디 어워즈를 위해 멤피스에 모여든 블루스맨들의 회상을 중심으로 멤피스 블루스와 빌 스트리트의 흑인문화를 조명. 40~50년대 전성기, 락앤롤 등장 이후의 쇠퇴, 60년대 이후의 쇠락과 다른 지역으로의 중심이동 등. TV물과 음악영상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답게 다큐적으로 잘 만들어졌음.
- 주대상 : B.B. 킹, 루퍼스 토마스, 아이크 터너, 리틀 밀튼, 로스코 고든, 바비 러쉬, 샘 필립스(프로듀서).(주로 새로 찍은 영상.)


4. The Blues 4 - Warming by the Devil's Fire

- 감독 : 찰스 버넷
- 시간 : 1시간 28분
- 내용 : 1956년의 어느날, 11세 소년이 남부의 삼촌을 찾아가 미시시피와 뉴 올리언즈의 문화를 체험하며 블루스의 뿌리를 더듬어간다는 구성. 극영화와 기록영상이 뒤섞여있음.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허술. 상대적으로 블루스우먼들을 많이 다룸.
- 기록영상 : 빅 빌 브룬지, 선 하우스, 메이미 스미스, 아이다 콕스, 다이나 워싱턴, 소니 보이 윌리암슨 2세, W.C. 핸디(음성), 리버랜드 게리 데이비스, 미시시피 존 허트, 머디 워터스, T-본 워커, 라이트닝 홉킨스, 베시 스미스, 윌리 딕슨, 브라우니 맥기 & 소니 테리, 존 리 후커.(모두 과거의 짧은 기록영상.)


5. The Blues 5 - Godfathers and Sons

- 감독 : 마크 레빈
- 시간 : 1시간 35분
- 내용 : 시카고 블루스에 대해. 체스 레코드의 설립자 레너드 체스(폴란드계 유태인)의 아들인 마샬 체스와 전설적인 랩그룹 퍼블릭 에네미의 리더 척 D.가 의기투합하여 블루스와 힙합을 결합한 새 레코딩을 성사시켜가는 과정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샬 체스와 그 주변인물들이 시카고 블루스, 체스 레코드, 맥스웰 스트리트의 문화에 대해 회상하고 논한다. 최근에 열렸던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도 다룬다. 시종일관 떠들썩하게 들뜬 분위기.
- 호스트 : 마샬 체스, 척 D.
- 주대상 : 코코 테일러, 머디 워터스, 오티스 러쉬, 매직 슬림, 하울링 울프, 소니 보이 윌리암슨 2세, 보 디들리, 브라우니 맥기, 윌리 딕슨, 파인탑 퍼킨스, 아이크 터너, 코몬(래퍼), 샘 레이(드러머), 폴 버터필드, 일렉트릭 머드 밴드(머디 워터스의 68년 앨범 [일렉트릭 머드]의 세션진).(과거와 현재의 기록영상들이 섞여있음.)


6. The Blues 6 - Red, White & Blues

- 감독 : 마이크 피기스
- 시간 : 1시간 32분
- 내용 : 영국 블루스에 대해. 블루스의 영국 유입, 확산, 미국으로의 역수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인터뷰 위주로 정리. 60년대 영국 블루스의 주역들이 대거 등장하는 인터뷰, 2002년 3월 11~13일 애이비 로드 스튜디오에서의 합동세션 장면, 그리고 과거 기록영상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있음.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교재같이 빽빽한 느낌.
- 출연 (1) 연주와 인터뷰 : 제프 벡, 탐 존스, 밴 모리슨, 로니 도네건, 크리스 펠로우, 앨버트 리
- 출연 (2) 인터뷰 : 에릭 클랩튼, 존 메이올, 에릭 버든, 스티브 윈우드, 믹 플리트우드, 피터 그린, B.B. 킹
- 출연 (3) 기록영상 : 빅 빌 브룬지, 시스터 로제타 타페, 머디 워터스, 부커 T. & 더 M.G.s, 알렉시스 코너, 존 레논, 롤링 스톤즈, 크림


7. The Blues 7 - Piano Blues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 시간: 1시간 31분
- 내용: 피아노 블루스에 대해. 단, 이 분야가 희소한 까닭에 블루스만이 아니라 부기우기, 재즈, 소울, R&B 뮤지션도 대거 다룸. 이를테면 흑인 피아노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는 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마치 TV 심야 토크쇼같이 차분하고 정적인 연출. 노감독과 노음악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하며 연주를 들려주는 분위기다. 다소 심심하지만 일곱 편 중 가장 희소성 높은 기록물.
- 호스트 : 클린트 이스트우드
- 출연 : 레이 찰스, 데이브 브루벡, 닥터 존, 파인탑 퍼킨스,
- 기록영상 : 레이 찰스, 앨버트 애몬즈, 피트 존슨, 듀크 앨링턴, 빅 조 터너, 찰스 브라운, 아트 테이텀, 오스카 피터슨, 냇 킹 콜, 프로페서 롱헤어, 팻츠 도미노, 오티스 스팬, 카운트 베이시, 셀로니어스 몽크, 앙드레 프레빈


흑인영혼 부르는 재즈 찬가 -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영화평론가 심영섭>

테리 즈위고프 감독의 `환타스틱 소녀 백서` 란 영화에는 평생 오래된 45회전 LP판만 모으는 음반 마니아인 시모어와 당돌한 소녀 이니드가 나온다. 머리를 온통 녹색과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여자친구를 찾는 남자들의 광고에 전화를 걸어 잔뜩 들뜨게 한 뒤 바람을 맞추는 일이 삶의 전부인 소녀. 피곤함에 지쳐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세계에 푹 파묻혀 있고 싶을 때, 이니드는 블루스를 듣는다.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저 여자의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악마가 되겠네` 라고 읊조리는 블루스 가수 스킵 제임스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상에 대한 들끓는 조롱으로 가슴을 움켜쥔 소녀도 어느덧 잠이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블루스 소울 오브 맨` . 빔 벤더스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는 삶의 진물을 증류해 흑인의 눈물과 함께 섞어 만든 블루스 음악에 대한 헌사이다. 영화는 엉뚱하게도 1977년 여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쏘아올린 우주선, 보이저호와 함께 우주를 이리저리 떠도는 블루스 음악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주의 공간에서 유영하며 메아리 치는 블루스의 음들을 따라 가다보면 이윽고 블루스의 역사를 소개하게 되는 로렌스 피시번의 목소리와 조우하는 지점에 이른다. 거기 흑인들의 역사가 블루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에서 쿠바 노인들의 `현재` 를 통해 라틴음악의 싱싱한 낙관주의를 가장 첨단의 영상, 디지털 화면에 담은 바 있는 벤더스. 그는 이번에는 재즈 음악에 들어가 있는 `과거` , 가장 오래된 영화기법들에 천착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블루스 가수들-블라인드 윌리 조, 스킵 제임스, J.B. 르누아르의 삶을 무성영화의 방식으로 재현하려 든다. 흑인들의 삶을 담은 역사 다큐멘터리와 뒤섞이는 가짜 다큐멘터리는, 아이리스와 자막을 써서 만든 화면들은, 영락없이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묘한 감흥을 준다. 즉,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현실과 재현, 혹은 음악과 역사의 경계를 허물며, 블루스의 심장이 흘리는 눈물이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조용히 말해준다. 우주를 유영하며 외계인도 감동시킬 만한 목소리를 지닌 이들의 노래는 길거리로 내몰린 흑인들의 찢어지는 가슴 한 조각에서 하느님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위안도 기쁨도 없던 흑인들의 맨발에서 흘러나온다. 블루스는 다시 솟아난다. 1900년대 새 어머니가 양잿물을 뿌려 눈이 멀어버린 한 블루스 가수의 개인사로부터 시작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흑인들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그것은 이제 다시 백인들의 음악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컬러로 채색된 보니 레이트의 쉰 목소리 사이로, 신들리는 듯 기타를 뜯는 닉 케이브의 손가락에서 블루스는 부활한다. 영화는 블루스와 그것들을 리메이크한 현재의 음악들을 번갈아 유영하며, 말해준다. 블루스는 영혼이며, 영혼의 승화이며, 블루스 가수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위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콘크리트를 뚫는 양지식물의 햇살에 환해진다면,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고통과 초월의 샘에서 솟아나는 쥐어짜는 눈물 한 모금의 짠맛이 가슴을 친다. 그 시원한 물에 발을 한번 담가보시길. `블루스 소울 오브 맨` 은 과거, 현재, 역사, 백인, 흑인을 오가며 흑인 영혼을 초혼하는 벤더스의 진심 어린 재즈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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