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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다락방님이 이 책을 읽고 이승우 작가(나는 아직 1권 밖에 읽지 않아 잘 모르겠다, 아니 1권 밖에 안읽은 거 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이후 두 번째로 다음 책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한국 남성 작가라고 해서 궁금해하던 차에 몇 주 전 밀린 책읽아웃 팟캐스트를 듣다가(요즘 정희진의 <공부>와 영어원서 팟캐/유투브 듣느라 밀렸네) 문지혁 작가 편을 들었다. 4월에 <중급 한국어> 출간에 맞추어 나온 것이다.
일단 목소리가 반듯하다. 말투도, 태도도, 말하는 문장도 반듯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얼굴도, 옷차림도 반듯하다. '나 모범생’이라고 써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모범생으로 알 수 있는 이미지다. 학벌까지(!) 반듯하다.
이 책엔 이런 모범생 기질과 반듯함에 대한 주인공(이자 작가) 문지혁의 절망과 분노가 나온다. 나름 반듯한 길을 벗어나 소설이라는 일탈을, 소설가라는 험한 길을 가고 있으나, 여전히 자신을 반듯하게 만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
몇몇은 나 개인의 성향을 문제 삼기도 했다. 술 담배 안 하고 주말에 교회 가는 너 같은 애가 무슨 소설을 쓰냐? 좀 더 우아한 빈정거림도 있었다. 네 글은 《좋은생각》 같은 잡지에 실리면 딱일 것 같아. 《좋은생각》은 물론 좋은 잡지지만 그 시절 나에게 그 말은 모욕적으로 들렸다. 세상에는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너는 절대 아니야. 나를 모범생이라고, 착하다고, 선비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혀 아래에는 그런 말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노력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벗어나려고, 탈피하려고, ‘진짜’ 예술가가 되려고 발버둥 쳤다. 그때부터 소설에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고 ‘진짜’ 소설을 읽고 삐딱한 마음을 품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술자리에 억지로 참석했다. 끝까지 버텼다. 그러면 어디선가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던 상처성애자들이 나타났다. 네 상처는 뭐야? 너한테 무슨 결핍이 있어? 너 같은 애가 소설 쓸 자격이 있나?
절망적이었다. – P104~105
“지혁 씨 글은, 너무 반듯한 게 탈이에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상을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상을 못 받아서라기보다는 그 ‘반듯하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너는 결코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비아냥처럼 들렸다. 내 딴에는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말 그대로 ‘반듯하게’ 가다가 큰 일탈을 결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속이 뒤집어졌다. 그럼 어떡할까? 그냥 그만둘까? 죽을까? ‘순진하고 찌질하며 뻔하다’는 평가, 날 미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겹쳤다.
말대답하는 성격은 못 되지만, 그날 나는 분노를 담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비뚤어지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들도 웃었다. 두 사람만 웃지 않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음이 분명한 나와, 그 소설가 선생님.
웃음이 잦아들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지혁 씨가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죠.”
소설가는 덧붙였다.
“반듯한 게 어때서요,라고 해야지.”
말문이 막혔다. – P148~149
문지혁은 그의 반듯함을 벗어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건 그의 성정이다. 받아들이며 살 수 밖에. 그에겐 다소 썰렁한 농담과 함께하는 다정한 문학의 길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