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반격의 결과물
12장 그건 모두 당신 마음속에 있어요

페미니즘을 저지하려는 반격의 움직임은 대중 심리학을 통해 가장 내밀한 전선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는 치유서와 상담에서 도움을 찾으려는 수백만 여성들, 이미 고립된 개인의 밀실에 숨어 있는, 이미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비관적인 도덕군자의 메시지를 주입했다.
조언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기 계발서 여성 독자층에게 2연타를 날렸다. 먼저 이들은 해방된 여성이 ‘과도한‘ 독립에 매달리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그 결과 탐욕스러운 자아도취증 환자, 아이도 없는 멍청이가 되었다며 일격을 날렸다. 그다음으로 페미니즘의 ‘피해자’를 다소곳하게 무릎 꿇린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반격의 희생자들을 어르고 달래서 단물을 빼먹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 조언 전문가들은 여성들에게 당신들이 힘든건 부풀려진 자아와 ‘친밀함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후반기가 되자 이제는 위축된 자아와 ‘상호 의존’이 문제라고 했다. 여성을 상대로 한 1980년대의 전쟁에서 이런 대중 심리학자들은전쟁의 포문을 여는 데 일조하고 난 뒤 전쟁터로 달려 나가 많은 부상자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었다. - P505

조언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반격에 아랑곳하지 않게 도와주기보다는 그 모든 반격의 압력을 그야말로 여성들의 문제라고 몰아세움으로써 여성의 정신과 감정을 반격에 종속시키는 데 일조했다. - P506

1989년의 한 조언서는 제목을 통해 사이비 페미니즘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낮춰서 결혼한 여자는 결국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Women Who Marry Down and End Up HavingIt All.
반격 성향의 이런 치료서들은 페미니즘의 표현을 들먹이며 그뒤에 숨고자 하지만 결국 페미니즘 요법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성장과 개인적 성장 모두가 중요하고 필요하며 이 둘은 서로 강화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 P507

1980년대 반격의 심리 치료사들이 단호하게 거부한 근본적인 페미니즘 원칙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남성 역시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 P508

하지만 직장 생활이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가 된다면 어째서 직장 여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사실상 모든 정신 건강 척도에서 꾸준히 1등을 하는 걸까? 프라이스 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 P510

하지만 여성들을 어둠침침하고 카페인도 없는 회의실에 문까지잠근 채 가둬 놓고 이들에게 열정도 없고 소극적이며 미숙한 평정과성숙한 자기주장을 맞바꾸라고 훈계하는 노우드의 처방은 1970년대초 페미니스트 토론 모임보다는 19세기 말의 ‘휴양 요법 rest cure‘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역시 어두운 방에 감금시키고, 자극적이지 않은음식을 먹게 하고, 자기표현을 부정했던 100년 전의 이 치료법은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상태를 더 악화시키곤 했다. 페미니스트 작가 - P524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이 1887년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휴양 요법에 대해 남긴 가장 유명한 글에 따르면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라"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려다가 "정신을 놓치기 직전쯤 되는 위험한 상태까지 갔다." - P525

소위 ‘자연스러운‘ 여성 마조히즘은 많은 여성들이 순종적인 태도를 채택하게 유도하는 성차별주의적인 사회의 상벌 시스템이 낳은 부자연스러운 산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 P531

무엇보다 최악은 이런 진단이 구타당하는 여성들을 가정폭력을 자초하는 마조히스트로 취급하는 현상을 다시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 P533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여성 환자들에게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치료의 길이 열리고, 폭력 남편과 법원은 배우자의 폭력을 아내의 잘못으로 돌리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P536

오후에 회의장에 돌아와 패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본 여성 심리치료사들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패널 구성원들은 마조히즘 정의 방식을 놓고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면서 그 어떤 조사나 임상 연구도 참고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새로운 ‘특성들’을 툭툭 던지듯 제시했고, 타이피스트는 그걸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학회 직원 러네이 가핑클Renee Garfinkel은 나중에 "지적인 노력이 충격적일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치어떤 식당에 갈지를 정할 때처럼 다수결로 진단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켰어요. 넌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구나, 난 중국 음식이 먹고 싶은데. 그럼 우리 푸드코트에 가자 하는 식이었죠." 페미니스트상담연구소의 소장 린 로즈워터Lynne Rosewater는 이렇게 회상했다.91) "그들은[마조히즘 성격장애에 대한] 기준을 토론하던 중이었는데, 로버트 - P537

스피처의 아내[재닛 윌리엄스 Janet Williams ]가 ‘나도 가끔 그래요‘ 하니까 스피처가 ‘좋아, 그건 빼‘ 하는 거예요. 그걸 보다 보니 ‘이게 과학이라서 우리한테 그들을 비판할 권리가 없다는 거야?‘ 하는 소리가절로 나오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런식이라면 난 그들이 내리는 진단은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 P538

13장 직장 여성에게 타격을 입히다

사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는 5퍼센트포인트미만으로 개선되는 데 그쳤다.4) 그리고 이 개선의 무려 절반이 여성의 임금이 개선되어서가 아니라 남성의 임금이 하락해서 나타난 효과였다.5) 남성 임금의 하락이라는 요인을 제외하면 임금 격차는 겨우 3퍼센트포인트 좁혀졌다. - P542

직장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이 얼마 되지도 않는 경우에 여성들이 인정을 받은 건싸울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회학자 바버라 레스킨Barbara Reskin의 직업 통합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의 직종에 가장 많이 진출한 10여 개의 직종(조판, 보험 청구 사정, 제약업 등)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일의 보수와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18) 가령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식자공들은 타이피스트로 좌천되었고, 드럭스토어 소매 체인점이 등장하면 - P544

서 독립적인 약사들이 저소득 점원으로 전락했다. 은행 경영에서 여성의 ‘진보‘에 대한 다른 연구들은 남성 일색이던 지점 경영자직이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 건 대체로 그 일의 임금과 권력, 지위가 크게하락해서 남성들이 그 일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임을 밝히기도 했다.19) 그리고 직업 변화에 대한 또 다른 분석에서는 교통 부문에서늘어난 여성 고용의 3분의 1과,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늘어난 여성 고용의 절반이, 그저 이 두 직종에서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지위가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P545

우리가 1980년대에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소식을 더 적게 접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연방 정부가 고용 평등 감독관의 입에 재갈을물리거나 이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로 밀려든 성차별 고소가 넘쳐나고 있을 때 레이건 정부는 이 부처의 예산을 절반으로 감축하고 담당 건수를 폐기해 버렸다.39) 레이건이 취임하던해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는 25건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불과 1년 뒤 진행 중인 집단소송은 하나도 없었다. 이 부처는 추적하는소송 건수를 300퍼센트까지 단계적으로 축소시켰다. 의회 교육노동위원회의 한 보고서에서는 1980년대 전반에 보상을 받은 차별 피해자의 수가 3분의 2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1987년이 되자 회계감사원의 한 연구는 평등고용기회위원회의 지구 사무실과 주의 평등고용처들이 적절한 혹은 그 어떤 조사도 없이 사건의 40퍼센트에서 80퍼센트를 종결짓고 있다고 밝혔다. - P548

언론계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거의 모든 측면에서 하락하고 있는 바로 그때 ‘여자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뉴스룸과 방송국 직원들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NBC의 음향 기사리 세리Lee Serrie의 회상에 따르면 1982년 근무 중에 한 남성 카메라맨이 "지난 10년간 남성들이 잃어버린 모든 기반"에 대한 불만을 비통하게 쏟아 내기 시작했다.63) 하지만 그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건 방송국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여성 카메라우먼을 일찌감치 해고하고 그에게 그 자리를 맡겼기 때문이었다(반면 세리는 소송에 돌입한 뒤에야 겨우 임시 카메라직 대상자 목록에 오를 수있었다). ‘여성화‘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미디어의 인사 담당자들이 백인 남성 지원자들을 돌려보낼 때 전천후 알리바이로 차별 철폐 조치를 들먹이는 경향 때문에 강화된 것인지도 몰랐다.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실태를 직접 목격한 한 편집자는 "나는 해당 남성을 고용하지 않은 실제 이유가 자격이 부족한 것일 때도 ‘죄송합니다. 우린 흑인이나 여성을 고용해야 합니다‘라는 탈락 편지를 이들에게 보냈다"고 말한다.
미디어계 남성들의 진짜 문제는 ‘여자가 너무 많다‘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 P555

시어스의 채용 절차에는 가장 남자다운 사람만이 수수료를 받을수 있는 판매직의 ‘야단법석‘을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시어스에서 판매 수수료가 있는 자리에서 일하고자 하는 모든 지원자는 "목소리가 저음인가요?", "풋볼 팀에 속해 본적이 있나요?", "사냥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땀을 잘 흘리나요?" 같은 질문이 들어간 ‘정력‘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시어스는 법원에서 1970년대에는 더 이상 테스트 결과에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 회사는 꾸준히 이 테스트를 운영해 왔다. 내부 연구를 통해 사실 ‘정력‘ 점수가 높을 경우 오히려 판매 실적이 낮다는 사실이밝혀진 뒤에도 말이다. - P562

조이스의 경험은 블루칼라 노동력 내에서 벌어지는 솔직 담백하면서도 종종 폭력적인 반격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런 공격은 여성의 ‘차이‘에 대한 예의 바른 찬가라는 형식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가령 안전모를 쓴 여성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뉴욕의 한 건설현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은 한 여성의 작업용 부츠를 가져 가서 갈갈이 찢어 놓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남성 동료가 각목으로 머리를 때려서 상해를 입었다. 조이스가 일했던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경우 기회균등청 사무실에 배척, 괴롭힘, 성희롱, 위협, 언어적, 육체적 학대 신고가 넘쳐났다. 당시 산타클라라 카운티 기회균등청에서 일했던 존 롱가보 John Longabaugh는 "일부 작업장에선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연장을 엉망으로 헝클어 놓고, 책상에 보란 듯이 포르노를 얹어 놔요. 안전 장비를 찾기 어렵게 하거나 아예 못 쓰게 하기도하죠." 어떤 정비 노동자는 자기 부서에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돈만 주면 네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릴 사람을 알고 있다"는 말로 맞이 - P576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신참 여성은 감독관이 시내버스를 청소하라고 해서 버스에 올랐다가 남성들이 그녀를 위해 남겨 놓은 작은 선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좌석에 처덕처덕 발라 놓은 분변이었다. - P577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수학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여자는 그렇다고 말을 하니까요. 그런데 내 뇌의 한쪽에서 그러는 거예요. 잠깐만, 저 사람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있어. 내가 특정한 방식으로 길러졌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로 뭉개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닌 거죠." -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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