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젠더들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터섹스는 에르퀼린 바르뱅(HerculineBarbin)일 것이다. 그/그녀가 직접 회고록을 남긴 데다 에르퀼린의회고록은 1980년 미셸 푸코의 서문과 에르퀼린에 관한 각종 자료, 에르퀼린의 생애를 모델로 한 단편 소설을 모아 재출간되었다."
이후 인터섹스의 중요한 자료로 널리 참조되고 있다. 1838년 프랑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에르퀼린은 집에서 소녀 ‘알렉시나‘로 자랐다. 여자로 길러졌지만 10대 후반까지 초경이 없고 유방이 발달하지 않아 신체적 통증에 시달리다가 이후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법적, 의료적으로 남성 판결을 받고 이를 ‘수용‘한다. 그러나 ‘진정한 젊은 남성 정체성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매년 10월 26일은 세계 간성 인식의 날(intersex awareness day)이다. 에르퀼린의 생일을 기념해 1996년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소아과학회에서 간성 인권 활동가들이 벌인 시위가 계기가 되어 처음 제정되었다. 인터섹스로 태어난 에르퀼린 바르뱅의 존재는 성 정체성을 단순히 사회적으로만 이해하려 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생물학과 사회학에 대한 기존의 인식 모두를 - P205

바꿔야 하는 일이다. 성정체성을 비롯해 몸 연구에서 사회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 P206

성별 의제를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눈다면, 하나는 차별을 정상화하는 성별 분업이는 곧 여성의 이중 노동이다)을 극복하기 위한 평등권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양성 자체의 구분을 문제 제기하는것이다. 물론 이 두 의제는 상호 보족적이며 현장의 상황에 따라달라진다. 어느 쪽이 더 옳은 전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무엇이 의미 있는 차이이고 의미 없는 차이인지를 규정하기 때문에, 차이는 그 자체로 언제나 문제가 된다. 의미 없는 차이는 만들어지지 않게나 ‘다양성‘ 등으로 탈정치화된다. 차이는 선재(先在)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만들기 위한 전제다. 세상의 어떤 차이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 이것이 차이의 정치학이다. 그러므로 여성, 장애인, 성적소수자의 이해가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고 또 연대해야 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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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주는 없지만, 자유는 있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세 군데가 감상의 최적의 장소인데, 침사추이 홍콩문화센터 부근, 완자이 ‘금자형 광장紫荊廣場‘, 스타페리를 비롯한 각종배 등이다. 물론 조용히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멀리서 감상해도 될 일이다.
공감하는 것이 사랑의 충분조건이라면, 홍콩의 야경은사랑의 필요조건이다. 시각은 청각과 함께 두뇌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쉬운 수단인데, 사랑을 얻고 싶다면 상대를홍콩의 야경 속으로 데리고가라.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 P139

또한 홍콩의 야경은 홍콩의 자유를 연상시키는 매력이있다. 흔히 ‘민주는 없지만, 자유는 있다‘고 하는 홍콩의그 자유에 야경이 오버랩되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더 멀리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의 상징인 것 같다. 무엇이라도 상상할 수 있고, 무엇이라도 성취 - P140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무한한 자유로움 말이다. - P141

아니나 다를까 뒤쪽 서지를 보니 대륙과 홍콩에서 이미1백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그래서 번역을 결심했다. 그 결심은 몇 년 뒤 현실이 되어서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남아 있다. - P150

번화한 침사추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빈민굴인 동시에, 매일 밤 120개국 이상에서 온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서 작은 ‘UN’이라 불린다. 그래서 ‘홍콩특별행정구’ 중의‘특별행정구‘라고 한다. 청킹맨션 안에서 매일 4,000명이숙박한다고 하니,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인구가거주하는 곳이 아닐까?
또한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과 ‘<타락천사落天使〉에 의해서 다시 의미가 부여된 곳이다. 일찍이 미국의 타임지에 의해 ‘세계화의 가장 좋은 예‘로 선정된 빌딩이다. - P172

인간 해방의 시작과 끝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가아닐까? 홍콩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정치에 의해서 강요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되었다.
즉 홍콩은 우리 편이나 너희 편에 속하지 않는 ‘제3의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사상이나 이념은 물론 국가나 민족까지도 강요받지 않을 자유, 그것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권 반환 이후 홍콩사회가 나날이 삭막해지고 있다. 이제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국가주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제 홍콩 사람들은 ‘중국 편‘인지 ‘홍콩 편‘이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밝히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사회가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청킹맨션의 정신과 가치가 새삼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청킹맨션은 우리에게 ‘편가르기‘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 P174

북경어를 하는 북경 사람은 홍콩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광동어를 못 알아듣는다. 적어도 6개월 정도 지나야 광동어를 알아듣고, 홍콩에서 1년은 살아야 광동어를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 이 정도면 광동어는 다른 지방에 사는 중국인들에게는 거의 외국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광동어가 한국어와 사촌 간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지금의 광동어 독음을 들어보면, 우리가 한자를 읽을 때의 독음과 비슷하다. 적어도 보통화에 비해서는 그렇다. 과거 한국 유학생들이 농담으로 광동어를 정의할 때 ‘한국어도 아니면서, 보통화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음운학적으로 볼 때, 광동어와 복건어, 베트남어 그리고 한국어는 시기적으로 중고음에 해당한다. 즉 당나라 음인 ‘당으로서, 학술적으로는 ‘중고음‘이라고 한다. - P179

매번 방학을 맞이하면 홍콩에 간다. 그것이 내게는 휴가이자 공부다. 서점을 다니고, 도서관도 가보고, 저녁에는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숙소 등 모든 예약을 다 해놓고있었는데, 내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홍콩 친구와의 약속을 연기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친구는 건강이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내게 더 이상의 위로가 없을 말을 해주었다.
‘작은 병은 복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공감이 되면서 이것이 홍콩 나름의 다름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홍콩의 친구들로부터 인생의 핵심이랄까, 정수랄까, 철리랄까, 그런 말을자주 듣게 된다. 나는 그것이 홍콩문화의 정신이라고 보는데, 중국 전통에 서구의 사상이 합쳐서 만들어낸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 P198

홍콩의 신유학을 대표하는 이천명의 정신을 볼 수 있는 문장 몇 개를 그의 책에서 옮겨본다.

조리 있게 보면 손오공은 물론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 - P202

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오줌을 눈 것은 바로 부처님 손바닥의 경계를 초월한 것이다.

자신의 다리 하나를 잃은 것에 비통해하는 것이 하나의 관점이다. 반대로 자신에게 아직도 다리 하나가 있고, 두 다리 모두를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하나의 관점이다. 이것이 바로 관점의 전환이다.

사고할 줄 모르는 사람은 번뇌가 없으나 쾌락도 없다고 할수 있다. 번뇌가 없다면 높은 차원의 쾌락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신병을 앓아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신과 의사를 할 수 있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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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홍콩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과물이다. 풀어보면 홍콩 사람들 속에 중국도 있고 영국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홍콩은 중국도 아니고 영국도 아닌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학자는 홍콩의 그 특수한 의미에 대해 ‘제3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사실 어떤 것보다도이런 분위기 때문에 홍콩을 좋아한다. 누구의 편도 아무의편도 아닌, 또 어느 편인지도 밝힐 필요도 없는 자유 말이다. 그래서 홍콩은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강요되지 않는 자유가 그나마 보장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1997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150년 만에 홍콩의 주권이 원래 소유주였던 중국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의 정통성을 지닌 중화민국(대만)의 항의도 있었지만, 영국은 대륙과 정식 수교를 맺고 있는 우선권을 인정하여 홍콩의 주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반환했다. - P13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이자 중국의 피란지였기에, 주인의식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웠다.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시민역량이라고 본다면, 홍콩의 시민역량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주권 반환 이후 홍콩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사춘기의 청소년 같다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고민하는 사춘기 말이다. 학계에서는 ‘소년 홍콩’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인생으로 볼 때 홍콩은 ‘소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해볼 수 있다.
‘홍콩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홍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 P14

‘문무묘‘가 이렇게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이런 ‘홍콩‘적인 특징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또한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있는데, ‘문무묘‘는 ‘동화삼원東華‘이라는 홍콩 최대의 자선 기구가 소유하고 있다. 동화삼원은 1870년 중국인 부호들과 시민들의 헌금 그리고 정부의 도움으로 출범하였다. 현재 산하에 12개의 사원을 소유하고 있다. 전통 종교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면서 얻은 수익으로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는데,홍콩인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기구이다.
나는 문무묘가 ‘동서고금이 만나는‘ 홍콩이라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중체서용‘의 구현이기도 한데, 서양적인 근대인 ‘쓰임‘이 지배적인 홍콩에서 중국적인 ‘중심‘을 보여주고 있기때문이다. - P37

타보니까 ‘상환‘의 ‘웨스턴 마켓西港城‘에서 종점인 ‘소기만筲‘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궤도를 따라 운행하기에 느리지만, 교통정체가 없어 결코 느리다고 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교통수단이다.
뒷문을 통해 전차에 오르면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는것이 좋다. 그리고 이층의 제일 앞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 빈자리가 없다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빈자리가 나면바로 뛰어가서 잡자. 전차의 이층맨앞자리에 앉아서 앞을 내다보고 있으면, 말을 타고 도시를 천천히 산책하는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차가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다. - P81

이층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두 곳을 추천하고 싶은데,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탠리柱‘ 마켓과 홍콩섬의 꼭대기 ‘정상‘이다.
먼저 스탠리 마켓으로 가볼까?
센트럴中環의 ‘종합버스터미널巴士站‘로 가서 6, 6A, 6X, 260번 등의 버스를 타면 된다. 가는 코스는 비슷하고 특히260번은 직행인데, 나는 가급적 6번을 타라고 권한다. 다른 버스는 홍콩섬의 동서를 관통하는 ‘터널‘로 지나가는데비해, 6번 버스는 빅토리아산을 넘어서 가기 때문이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P85

홍콩섬에서 제일 높은 552미터 정상에는 유명한 식당이있다. 당시 산 정상에 사는 영국고관들은 가마꾼들의 가마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이 식당은 1901년에 가마꾼들의휴식처로 세워졌다고 한다.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고풍스러운 식당 ‘더 피크 룩아웃 식당太平山餐廳‘에서 맛있는 볶음밥에 시원한 아이스 레몬티 한 잔 하고 트레킹에 나서기를바란다.
정상의 트레킹 코스는 홍콩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코스 중에서도 ‘폭풀람 교외 공원薄扶林郊野公園‘, ‘산정 화원山頂花園’, ‘루가드 로드‘로의 트레킹을 권한다. 빌딩숲으로 기억된 홍콩과는 완전히 다른 홍콩을 볼 수 있다. 땀 흘리며 걷다 보면 공원이나 숲이 나타나고, 산으로 오르는 전차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홍콩을 천 가지 표정을 지닌 도시라고 하는가 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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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님이랑 같은 세트

다이어리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힘들 듯. 필요한 사람 줘야겠다. 작년에 받은 다이어리 중 미니 다이어리는 잘 들고 다니다가 그것도 무거워서 요즘은 잘 안들고 다님…

알라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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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13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한 곳에 두고 쓰려구요 ^^ 축하드려요!!

햇살과함께 2023-12-14 17: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미 다 넘기고 달력 하나 남았어요 ㅎㅎ

다락방 2023-12-14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위에 스누피 다이어리 예쁘네요!! 전 밑에 심플한 검정 다이어리 왔는데..

햇살과함께 2023-12-14 17:12   좋아요 0 | URL
귀여운 맛과 중후한 맛 ㅋㅋㅋ

독서괭 2023-12-14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거워서 들고 다니진 못할 듯요 ㅎㅎ 햇살님 축하드려요 2관왕!!

햇살과함께 2023-12-14 17: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못들고 다녀서 안쓸 것 같아서 이미 다 보내버림요~

페크pek0501 2023-12-14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햇살과함께 2023-12-14 22: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
 

노동_박혜영
어느 사업이나 사업주가 노동조건을 정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최저 기준은 있게 마련인데, 아직 영상 제작, 편집 분야는 최저 기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장이 착하고 나빠서 노동조건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고용하더라도 법에서 정하는 최저 기준 이상은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P27

우리가 전통 방식의 노동만 보호하고 이를 계속 고집한다면, 점차 늘어나게 될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의 미래는, 노동법이 만들어지기 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저 기준조차도 마련하지 못한 사회로 되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라이더유니온 같은 플랫폼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2023년 7월부터는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몇몇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이전보다 폭넓게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라이더들이 자기들의 노동 환경을 사회에 알리면서 제도를 조금씩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현실을 이야기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더 많아지길 기다립니다. 내가 일하는 환경을 사회에 알리면서,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열리길 기대합니다. - P37

젠더_천선영
자, 다시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지퍼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성 - 몸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코르셋‘이나 ‘전족‘은 쉽게 떠올릴수 있겠죠. 그런데 이것들처럼 우리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지는 않지만, 여성복에만 있으며 남성복에는 없는 아주 사소한‘ 부속물이면서 몸을 성적으로 이해한다는 사회적 시선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뒷지퍼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열 명 가운데 여덟아홉은 속으로 ‘앗‘ 하는 작은 탄성을 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뒷지퍼 때문에 가끔 고생을 한적이 있지만, 그것이 여성복에만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더랬습니다. 그러니 뒷지퍼가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수조차없었던 거지요. 의식 속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 일을 생각할 수는없으니까요.
여성복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없는 경우가 남성복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을 아주 특징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그런 시선이 스며들어 있는지조차 잘 인식되지 않는 예로 뒷지퍼를 들 수 있겠습니다. - P45

모든 사회적 공간처럼 집 또한 성/젠더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성평등한 공간으로 가꾸어 갈 수 있는지 우리 모두가 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의 기초단위라 할 수 있는 가정-집이 성평등하지 않은데 사회가 성평등한 공간이 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 P51

지하철 노약자석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노약자석‘을 ‘교통 약자석‘이라고 바꾸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건강한젊은이라도 사고로 다친다거나 몸이 갑자기 아프면 언제든지 ‘일시적 교통 약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독일의 지하철에서처럼 원칙으로는 그 공간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되, 그공간이 필요한 사람의 요청이 있으면 양보하자는 제도도 제안했습니다.
‘비워 둡시다‘가 아니고 ‘요청이 있다면 비웁시다‘로 바꾸는 거지요. 여기에는 배려받는 사람도 일방적으로 어떤 수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정중하게 양보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양보하겠냐고요? 그런 생각에 매몰되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규제, 통제와 처벌‘이라는 구조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객관식 질문에 꼭 맞은 정답을 고르는 선다형 시험만 공정하다고 믿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어디선가는 시작해야 하고, 어느 정도 진통이 있더라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 깨끗하고 안전한 지하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P55

‘아직은‘ 장애인이 아니면서도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젠더 문제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사는 데 불편하지도 않지만, 나와 달리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생각합니다.
자기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아직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를살펴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강남역 사건과 신당역 사건을 어느 정도까지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젊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여성의 문제로, 그리고 그 여성들과 함께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지 아닌지는 사회 건강성 측정에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 P64

인종 차별_김희교
‘짱깨‘라는 용어는 식민지 조선에서 탄생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자 "호탕하고, 선의가 있으며, 부유한 사람"으로 생각되던 중국인이 "더럽고 시끄럽고 악착같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때부터 중국인을 짱깨라고 부르는 조선인이 나타났지요. 그 중심에는 친일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떠오르는 일본에 대한 선망,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공포감, 한국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중국인 상인에 대한 경계심을 이용하여 중국 혐오를 조장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인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문명국인 일본의 편에 서서 중국을 몰아내자는 적대감을키웠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만들어진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엄청나게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1931년 만보산사건은 우리의 식민주의적 인종주의가 낳은 인종 학살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만주 지역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공격한다"는 오보를 내자, 조선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에게 조선인들이 몰려가 200여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 P82

유태인 학살처럼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결코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 P83

그러나 인종주의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마음속에 자기만의 지도를 가지고 사람과 사람을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라 구분하고 차별합니다. 이를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심상지리‘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 마음속에 지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인종주의적 심상지리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 공간에 대한 구획입니다. 미국의 반인종주의 운동가 이브람 X. 켄디는 이를 ‘공간 인종주의‘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이 가장오래 집착했던 것이 식당에 흑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 P84

장애_강제숙
A 모녀가 생활하는 집을 둘러보고 장애인들의 공간과 복지 용구에 자극을 받았던 것처럼, 2001년 한벗재단은 일본에서 자립 생활 운동을 했던 오사나이 미치코 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이야기를들었습니다. 오사나이 미치코 씨가 쓴 책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수 있나요?》를 번역 출판해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복지 업무를담당하는 이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장애인 자립 생활 공간 견학과 교류를 통해 장애인과 장애인 이동 서비스 활동가, 더불어 정책을 수립하는 이들은 장애인이 홀로 지역에서 자립해 생활하기 위해 무엇이 보완되어야 할지좀 더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P107

앞서 소개한 오사나이 미치코 씨가 외출이나 여행을 떠나기전에 심정을 표현한 글은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살아가는 한 무슨 일이든 겪기 마련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래서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무슨 일이 나면"이라는 말은 손발을 묶고 마음까지 묶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 P113

시간을 멈추게 하고, 역사나 문화조차 멈추게 하는 위험성을갖고 있다. (줄임)
장애가 없는 사람이 여행을 떠날 때도, "무슨 일이 나면 어떻게 하려구"라며 여행을 막을까. 장애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졸라도 소용없다며 한숨을 쉬고 용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으면 설득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설득하기 어려워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무슨 일이 나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케어를 받는 쪽의 매너로써, 여행을 떠날 때는 미리보험을 들고 무엇이 위험한지 케어하는 이에게 주지시켜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해두어야 한다. (줄임)
나는 항상, "내가 상처를 입거나 죽더라도 내 책임입니다" 라고 쓴 종이를 주머니에 넣어 두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 P114

국가폭력_김성환
첫째, 국가정보원은 1970년대와 80년대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시기)에 서울 남산에 조사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제6국인 대공수사국 건물에서 국가폭력을 동반한 조사가 주로 이루어졌지요. 그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남산에 간다"는 말은 곧 ‘중정 고문실‘로 간다는 뜻으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에 이 건물은 철거되었고, 흔적만 남은 빈터에 ‘기억‘이라는 빨간색 우체통을 닮은 작은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중앙정보부 시절 이곳에서 벌어졌던 국가폭력의 배경과 실상들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하에는 그 시절 조사실 한 칸을 그대로 보존하여 둘러볼 수 있도록해 놓았습니다.
둘째, 경찰도 국가정보원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대공분실을 만들었는데, 서울에 만든 대표적인 시설이 ‘치안본부 남영동대공분실‘이었습니다. 이곳은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김치열이 - P131

우리나라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김수근은 의뢰한 사람의 요구에 충실하게 설계했고, 국가폭력에 아주적합한 시설을 지었습니다. - P133

남산의 대공수사국, 남영동대공분실, 보안사 서빙고분실.. 국가폭력이 자행되던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서 보존된 곳은 남영동대공분실입니다. 남영동대공분실은 1987년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군이 끌려가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우리나라는 비로소 일인독재자 장기 집권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찰은 부끄러운 과거인 5층 조사실을없애려고 했지요. 그러나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온몸으로막아 겨우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조사실의 구조를 리모델링해서 국가폭력의 흔적을 지워 보려고 했지요. 이때도박정기 씨는 아들이 죽은 509호실만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며 끝까지 버텼고, 509호실만은 1987년 당시의 모습대로 보존되었습니다.
2018년, 6월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남영동대공분실에서 경찰을 철수시키고,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 - P135

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남영동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역사를 전시해 다시는 그러한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을 되새기는 기념관을 짓고 있습니다. 기념관은 2024년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 맞추어 문을 열 예정입니다. - P136

민주주의는 나무와 같아서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기형으로 자랄 수도 있고, 말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나무가 병들면 그 자리에 국가폭력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납니다. 남영동대공분실이 보존된 그 장소에 마련될 기념관이 ‘기억문화’의 중심이 되어,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이 없는 곳, 어두움이 아닌밝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소중한 장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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