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_박혜영 어느 사업이나 사업주가 노동조건을 정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최저 기준은 있게 마련인데, 아직 영상 제작, 편집 분야는 최저 기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장이 착하고 나빠서 노동조건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고용하더라도 법에서 정하는 최저 기준 이상은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P27
우리가 전통 방식의 노동만 보호하고 이를 계속 고집한다면, 점차 늘어나게 될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의 미래는, 노동법이 만들어지기 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저 기준조차도 마련하지 못한 사회로 되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라이더유니온 같은 플랫폼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2023년 7월부터는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몇몇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이전보다 폭넓게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라이더들이 자기들의 노동 환경을 사회에 알리면서 제도를 조금씩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현실을 이야기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더 많아지길 기다립니다. 내가 일하는 환경을 사회에 알리면서,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열리길 기대합니다. - P37
젠더_천선영 자, 다시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지퍼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성 - 몸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코르셋‘이나 ‘전족‘은 쉽게 떠올릴수 있겠죠. 그런데 이것들처럼 우리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지는 않지만, 여성복에만 있으며 남성복에는 없는 아주 사소한‘ 부속물이면서 몸을 성적으로 이해한다는 사회적 시선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뒷지퍼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열 명 가운데 여덟아홉은 속으로 ‘앗‘ 하는 작은 탄성을 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올리기도 내리기도 어려운 뒷지퍼 때문에 가끔 고생을 한적이 있지만, 그것이 여성복에만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더랬습니다. 그러니 뒷지퍼가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수조차없었던 거지요. 의식 속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 일을 생각할 수는없으니까요. 여성복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이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없는 경우가 남성복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을 아주 특징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그런 시선이 스며들어 있는지조차 잘 인식되지 않는 예로 뒷지퍼를 들 수 있겠습니다. - P45
모든 사회적 공간처럼 집 또한 성/젠더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성평등한 공간으로 가꾸어 갈 수 있는지 우리 모두가 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의 기초단위라 할 수 있는 가정-집이 성평등하지 않은데 사회가 성평등한 공간이 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 P51
지하철 노약자석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노약자석‘을 ‘교통 약자석‘이라고 바꾸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건강한젊은이라도 사고로 다친다거나 몸이 갑자기 아프면 언제든지 ‘일시적 교통 약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독일의 지하철에서처럼 원칙으로는 그 공간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되, 그공간이 필요한 사람의 요청이 있으면 양보하자는 제도도 제안했습니다. ‘비워 둡시다‘가 아니고 ‘요청이 있다면 비웁시다‘로 바꾸는 거지요. 여기에는 배려받는 사람도 일방적으로 어떤 수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정중하게 양보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양보하겠냐고요? 그런 생각에 매몰되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규제, 통제와 처벌‘이라는 구조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객관식 질문에 꼭 맞은 정답을 고르는 선다형 시험만 공정하다고 믿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어디선가는 시작해야 하고, 어느 정도 진통이 있더라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 깨끗하고 안전한 지하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P55
‘아직은‘ 장애인이 아니면서도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젠더 문제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사는 데 불편하지도 않지만, 나와 달리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라고생각합니다. 자기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아직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를살펴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강남역 사건과 신당역 사건을 어느 정도까지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젊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여성의 문제로, 그리고 그 여성들과 함께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지 아닌지는 사회 건강성 측정에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 P64
인종 차별_김희교 ‘짱깨‘라는 용어는 식민지 조선에서 탄생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자 "호탕하고, 선의가 있으며, 부유한 사람"으로 생각되던 중국인이 "더럽고 시끄럽고 악착같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때부터 중국인을 짱깨라고 부르는 조선인이 나타났지요. 그 중심에는 친일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떠오르는 일본에 대한 선망,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공포감, 한국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중국인 상인에 대한 경계심을 이용하여 중국 혐오를 조장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인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문명국인 일본의 편에 서서 중국을 몰아내자는 적대감을키웠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만들어진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엄청나게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1931년 만보산사건은 우리의 식민주의적 인종주의가 낳은 인종 학살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만주 지역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공격한다"는 오보를 내자, 조선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에게 조선인들이 몰려가 200여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 P82
유태인 학살처럼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결코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 P83
그러나 인종주의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마음속에 자기만의 지도를 가지고 사람과 사람을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라 구분하고 차별합니다. 이를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심상지리‘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 마음속에 지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인종주의적 심상지리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 공간에 대한 구획입니다. 미국의 반인종주의 운동가 이브람 X. 켄디는 이를 ‘공간 인종주의‘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이 가장오래 집착했던 것이 식당에 흑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 P84
장애_강제숙 A 모녀가 생활하는 집을 둘러보고 장애인들의 공간과 복지 용구에 자극을 받았던 것처럼, 2001년 한벗재단은 일본에서 자립 생활 운동을 했던 오사나이 미치코 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이야기를들었습니다. 오사나이 미치코 씨가 쓴 책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수 있나요?》를 번역 출판해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복지 업무를담당하는 이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장애인 자립 생활 공간 견학과 교류를 통해 장애인과 장애인 이동 서비스 활동가, 더불어 정책을 수립하는 이들은 장애인이 홀로 지역에서 자립해 생활하기 위해 무엇이 보완되어야 할지좀 더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P107
앞서 소개한 오사나이 미치코 씨가 외출이나 여행을 떠나기전에 심정을 표현한 글은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살아가는 한 무슨 일이든 겪기 마련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래서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무슨 일이 나면"이라는 말은 손발을 묶고 마음까지 묶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 P113
시간을 멈추게 하고, 역사나 문화조차 멈추게 하는 위험성을갖고 있다. (줄임) 장애가 없는 사람이 여행을 떠날 때도, "무슨 일이 나면 어떻게 하려구"라며 여행을 막을까. 장애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졸라도 소용없다며 한숨을 쉬고 용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으면 설득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설득하기 어려워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무슨 일이 나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케어를 받는 쪽의 매너로써, 여행을 떠날 때는 미리보험을 들고 무엇이 위험한지 케어하는 이에게 주지시켜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해두어야 한다. (줄임) 나는 항상, "내가 상처를 입거나 죽더라도 내 책임입니다" 라고 쓴 종이를 주머니에 넣어 두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 P114
국가폭력_김성환 첫째, 국가정보원은 1970년대와 80년대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시기)에 서울 남산에 조사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제6국인 대공수사국 건물에서 국가폭력을 동반한 조사가 주로 이루어졌지요. 그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남산에 간다"는 말은 곧 ‘중정 고문실‘로 간다는 뜻으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에 이 건물은 철거되었고, 흔적만 남은 빈터에 ‘기억‘이라는 빨간색 우체통을 닮은 작은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중앙정보부 시절 이곳에서 벌어졌던 국가폭력의 배경과 실상들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하에는 그 시절 조사실 한 칸을 그대로 보존하여 둘러볼 수 있도록해 놓았습니다. 둘째, 경찰도 국가정보원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대공분실을 만들었는데, 서울에 만든 대표적인 시설이 ‘치안본부 남영동대공분실‘이었습니다. 이곳은 1976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김치열이 - P131
우리나라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김수근은 의뢰한 사람의 요구에 충실하게 설계했고, 국가폭력에 아주적합한 시설을 지었습니다. - P133
남산의 대공수사국, 남영동대공분실, 보안사 서빙고분실.. 국가폭력이 자행되던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서 보존된 곳은 남영동대공분실입니다. 남영동대공분실은 1987년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군이 끌려가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우리나라는 비로소 일인독재자 장기 집권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찰은 부끄러운 과거인 5층 조사실을없애려고 했지요. 그러나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온몸으로막아 겨우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조사실의 구조를 리모델링해서 국가폭력의 흔적을 지워 보려고 했지요. 이때도박정기 씨는 아들이 죽은 509호실만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며 끝까지 버텼고, 509호실만은 1987년 당시의 모습대로 보존되었습니다. 2018년, 6월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남영동대공분실에서 경찰을 철수시키고,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 - P135
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남영동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역사를 전시해 다시는 그러한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을 되새기는 기념관을 짓고 있습니다. 기념관은 2024년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 맞추어 문을 열 예정입니다. - P136
민주주의는 나무와 같아서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기형으로 자랄 수도 있고, 말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나무가 병들면 그 자리에 국가폭력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납니다. 남영동대공분실이 보존된 그 장소에 마련될 기념관이 ‘기억문화’의 중심이 되어,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이 없는 곳, 어두움이 아닌밝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소중한 장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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