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책장 보리 만화밥 13
류승희 지음 / 보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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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도피처로, 휴식처로, 위안처로 책이, 책장이, 서점이, 도서관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녀들이 읽고 서로 교환하는 책의 내용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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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 30일이라니..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어김없이 아침 출근길에 현관문에서 발견한 알라딘 택배 봉지. 뜯어서 얼른 사진만 찍고. 12월에는 아직 읽지 않은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5권을 읽으려고 하였으나, 이 책에 밀릴 것 같다.












민음사 패밀리 데이에서 구매한 책.


<면역>. 첫째가 올 봄인가 유명한 과학 유튜버라고 한 번 보라고 '쿠르츠게작트'를 알려 줬는데, 과학 1도 관심 없어 한번도 보지 않았다. 하이드님이 이 책 엄청 좋아하길래, 궁금해서 샀다. 첫째랑 둘째 읽으라고 샀다(과연 읽을 것인가). 나도 한 번 읽어봐야지(과연 읽을 것인가).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이것은 남편 책. 그러므로 패스.













<세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예전에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읽고, 호기롭게 <문학이론입문>을 샀으나 서문만 읽고 나가 떨어졌다. 이 책은 얇아서 읽을 수 있겠지.











쏜살문고 <모든 열정이 다하고>. 울프와 연인이자 친구이자 문학적 동지였다니, 궁금할 수 밖에.
















<독신남의 죽음>. 5만원 이상 결제시 제공하는 북클럽 에디션 책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독신남의 죽음>으로 골랐다. 그런데 이 책은 민음사로 안뜨는구나. 아직 민음사에서 안나온 책인데 북클럽 에디션에만 있는 것인지...



* 목차를 보니 단편 [독신남의 죽음]과 [꿈의 노벨레] 2편이 실려 있고, [독신남의 죽음]은 슈니츨러 명작 단편선 <어떤 이별>에 실린 [총각의 죽음]인 것 같다. [꿈의 노벨레]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이구나. 뜨악했던 영화. 몽롱했던 영화.




보리 책



<뗏목>. <압록강 아이들>의 조천현 작가의 압록강 두번째 사진 에세이. 한가지 주제에 천착한다는 것은.











<자매의 책장>. <그녀들의 방>에 이은 류승희 작가의 두 번째 자매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인권 수업>. 보리 출판사를 포함한 7개 출판사가 인권연대와 함께 기획한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 중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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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1-30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희진 선생님 책도 읽어야 하고. 바쁜 12월이 되겠어요! ^^

햇살과함께 2023-11-30 15:41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게요. 아무래도 시스터는 1월까지로...

하이드 2023-11-30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면역>은 챕터 5-6부터 재미있습니다! 재미 없어도 거기까지는 읽어보세요. 읽고 나서 영상 보면 영상 더 잘 이해됩니다. immune system 1,2 보면 되고요.

햇살과함께 2023-11-30 15:44   좋아요 0 | URL
오~ 2부부터 재밌다는 거네요!
챕터가 세분화되어 있어 조금씩 읽기 좋을 것 같아요. 영상도 찾아볼게요!

은오 2023-12-01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 사진은 역시 언제봐도 아름답네요...🥹
저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먼저 읽으려고요!! 어제 받고서 바로 읽고 싶었지만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 못읽었고.... 끝냈으니 이제 다른책들 미뤄두고 시작!! >_<

햇살과함께 2023-12-01 09:14   좋아요 1 | URL
저도 잠시 짦은 소설 좀 읽고 가겠습니다 ㅎㅎ 소설 읽고 싶어집니다!!
 

4장. 대영제국, 지구 끝까지 팽창하다
대영제국이라고 말하였는데, 제국이라면 보통 한 명의군주 또는 지배 집단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거나 문화적배경이 다양한 다민족을 다스리는 국가다. 제국의 맨 꼭대기에는 흔히 ‘황제‘가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대영제국은 황제 국가를 자칭한 적이 없었다. 대영제국은 ‘모국’인영국과 그 통치를 받는 여러 식민지로 구성되었고, 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지구적 차원의 제국으로 부상한 것은1783년부터였다. 그때부터 영국은 서인도 제도를 포함해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 P171

다음 세기에는 백년전쟁(1337~1453)이 일어나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장기간 대치했다. 에드워드 3세와 헨리 5세는 프랑스로 건너가 상당히 넓은 영토를 점령하였으나, 지루한 그 전쟁이 끝났을 때는 겨우 칼레 하나만 잉글랜드령으로 유지되었다. 1558년에는 그마저도 프랑스 소유가 되었다. 1500년경의 영국은 그리 대단한 나라가 아니어서, 나라 밖 영토라고는 아일랜드의 해안과더블린 교외뿐이었다. - P175

미국독립전쟁은 영국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최초의 식민지로 그들의 독립은 근대적 공화국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백하였으니, 흑인 노예와 원주민은 아무런 자유를 얻지 못하였고백인 시민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도 못했다. 2020년에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사건과 같은 일이여전히 계속해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이 독립하였다고 해서 대영제국의 성장이 멎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멀리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호주와 뉴질랜드 등 새로운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영국은 미국이라는식민지를 잃은 대신 새로운 식민지 건설에 국력을 쏟았고, 그 성과도 컸다. - P179

대영제국의 전성기는 어떻게 왔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영국의 물리적인 힘이다. 이것은 정치 및 군사 제도와 직결된 것으로, 그 중심에 의회와 해군이있었다. 특히 군사력이 약하면 제국의 위력은 아예 성립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강력한 해군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을 세계 대제국으로 이끈 또 다른 힘은 무형의 자산에서 비롯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혁신 및 산업혁명이 결정적으로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 P191

영국에서 의회가 정치적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증명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양원제를 선택하였는데, 고대 로마의전통을 따른 것이었다. 상원은 성직자와 귀족으로 충원하였고, 하원만 시민들 가운데서 뽑았다. 훗날 이 제도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미국으로 전파되어 민주주의의 전형이 되었다. - P194

긴 흐름에서 볼 때 자유주의는 영국 역사에 크게 이바지한 사상이었다. 만약 자유주의가 아니었더라면, 영국의 의회주의는 제대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세계 여러 나라 간의 무역 활동에서 역시 자유주의가 있었기에 보호주의를 차단하거나 지연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는 산업화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 P498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를, 여기서는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① 농업 생산력의 향상, ②인구의 증가, ③ 기술상의 진보, ④ 지리적 이점, ⑤ 사회간접자본의 발달, ⑥ 영국의 세계 지배, ⑦ 정치적 안정이 그 이유로, 각각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 P204

영국의 쇠락을 과학기술과 국가 정책의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과학기술의 부진이었다. 영국은 강철과 전기를 위주로 전개된 제2차 산업혁명 때부터 경쟁국인 미국과 독일 등에 크게 뒤처졌다. 제2차 산업혁명의 총아는 자동차와 전신전화 등이었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신기술이 폭발적으로 등장해전기, 통신, 자동차 산업 등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큰 변화를 일으켰다. 미국의 포드와 독일의 폭스바겐 등 거대 기업이 세계경제의 판도를 재편하며, 숨 가쁜 기술혁신으로 경쟁을벌였다. 영국은 이러한 산업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핵발전소 건설을 주축으로 일어난 제3차 산업혁명과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제4차 산업혁명에서도, 영국은 별로 인상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영국의 국가적 위상이 점점 추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는 정책의 실패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영국은 이미 중등교육에 실패하였다. 세계의 주요국 중에서도 학생들의 중도 포기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영국이었다. 국가의 통합도 온전하지 못해 조금만 틈이 생겨도스코틀랜드는 분리독립을 꿈꾸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제2차 세 - P218

계대전 이후 영국은 정치적으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많았다. 심지어 영국을 부흥시킨 정치가라고 일반이 호평하는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노선조차 공적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많았다. 지난수년 동안 세계인의 걱정거리였던 브렉시트 사건도 그와 같은 장기 침체의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은 유럽연합의 통합을 반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인데, 유럽 사회에서는 영국을 비판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들은 영국이 자국의 미래를 스스로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염려한다. 영국은 어떤 이유로 유럽 통합을 끝끝내 반대하고 고립을 선택한 것일까. 역사적 맥락에 답이 있는 듯하다. - P219

5장. 불가사의한 독일제국의 역사
독일의 정치적 비운은 1945년 히틀러가 패망할 때까지 100년가량 이어졌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가까스로 독일 통일을 이루었으나, 빌헬름 2세는 유능한 비스마르크를 몰아내고 전쟁 준비에 매달렸다. 그 결과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처절한 패배를 떠안았다.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을 거쳐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자 독일은 또다시 전쟁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를 다시 위험에 빠뜨렸고, 유대인 게토를 만들어 무고한 사람을 수백만 명이나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이렇듯 독일의 정치사는 총체적인 파탄을 방불케 하였고, 자국은 물론이고 이웃 나라에, 아니 인류사회에 크나큰 해악을끼쳤다. - P241

루터가 주도한 독일의 종교개혁은 성서 중심의 신앙 운동이었다. 그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복음에 절대적인권위를 부여하였다. 여기서 루터의 종교적 주장을 자세히 소개할필요는 없지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끝내는 ‘30년 전쟁‘(1618~1648)이라는 국제적인 종교전쟁을불러와 유럽 사회가 양분되었다는 사실이다. 루터는 교회 개혁을부르짖은 자신의 주장이 그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전쟁까지 치르고 나서 개신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대등한지위를 얻었다. 이에 성경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독점적인 해석도권위를 잃었다. 깊은 충격에 빠진 로마 가톨릭교회는 내부 개혁을 서두르는 한편, 신대륙과 아시아를 상대로 선교 사업에 박차를 가하였다. 중국을 거쳐 조선에까지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먼저들어온 역사적 배경이 그것이다. - P243

프랑스혁명은 1789년에 시작하여 1799년까지 10년 동안이나계속되었다. 이로써 절대주의 국가가 폐지되었고, 계몽사상가들이 강조한 인간의 기본 가치가 실천에 옮겨졌다. 또 그 사상이 국경을 넘어 유럽 각국에 전파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혁명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1789~1791)는 시민의 자유를 인정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시기였다. 2단계(1792~1794)는 급진적인 민주공화국이 출범한 시기였다. 반혁명세력을 과감히 제거하는 과정에서 공포정치가 시행되었다. 3단계(1795~1799)는 부르주아의 이익을 반영하면서 혁명이 보수화되는시기였다. 이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해 유럽 각국에서 혁명전쟁을 수행하였다.
프랑스혁명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후세는 이 혁명을 두고 다양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수정주의적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틀림없는 사실은, 이 혁명을 계기로 민주 공화제가 역사의 대세로차츰 굳어졌다는 점이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현대 세계의 모든 국가는 프랑스혁명의 계승자라 하여도 무방할 정도다. 이처럼 정치이념이란 인류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있다. - P252

우리는 빌리 브란트라는 독일 총리를 기억한다. 그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유명한데, 1970년 12월 7일 초겨울에 찍은 것이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는 차가운 날씨였고, 브란트는 폴란드를방문 중이었다. 그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앞에서 양 무릎을꿇고 사죄하였다. 본래는 화환을 바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 P280

몇 년 전만 하여도 상황은 달랐다. 대공황(1929~1930)이 시작되기 전, 나치당은 이름 없는 극우 정당이었다. 1928년 5월 20일당시 나치당의 득표율은 고작 2.6퍼센트였다. 그보다 4년 전에는3퍼센트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도무지 인기 있는 정당이라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가 찾아오자 사회는극도로 불안해졌고, 정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1930년 독일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대공황으로 수백만 명이실직하자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이 겪은 수모와굴욕을 떠올리며, 바이마르 정부의 우유부단한 통치를 비판하고나섰다. 시민들은 자국의 경제 상황을 비관한 나머지 곳곳에서분노가 폭발하였다. - P288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아는 대로 히틀러는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어 총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의회 정치를 포기한 보수 정치 - P290

가들의 야합 덕분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보수파는 군주제의 회복을 내심 바랐으나, 집권한 지 2년 만에 히틀러와 나치당은 보수파를 모조리 몰아냈다. 히틀러는 전권을 장악하고 나치당 일당독재를 강화하였다. 이것은 비단 독일만의 비극이 아니라, 유럽과 전지구가 파국을 맞는 출발점이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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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blend in
when you were born to stand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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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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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부터 20대까지의 발랄한 시기에 매주 글을 쓰고 합평을 주고 받다니. 그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이미 작가가 될 욕망과 능력과 노력에 각자의 개성을 가진 그녀들 (그리고 소수의 그들) 이기에 멋진 작가가 될 수밖에 없음을. 물론 어딘이라는 멋진 스승과 함께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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