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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난 이 이야기를 떠올리기로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은 대목을 말함이다. 주인공은 친구인 즈베르꼬프와 격투를 벌여서 이긴다. 그런데 주인공은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이는 상대 웃음 때문에 자신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대편은 그 웃음 때문에 완전한 패배자가 될 뻔한 걸 면한 것이다. 그 웃음은 바로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즈베르꼬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다고 인정해 주지. 그런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라고.
혹시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면서 창피를 준 상대에게 분노를 느껴 화를 벌컥 낼 것인가?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럴 땐 화를 내는 대신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기억해 두자. 시치미 떼고 웃어 버리는 것이다. 오히려 그게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즈베르꼬프처럼 말이다.
또 화가 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흥분한 탓에 화나게 만든 상대방에게 막말을 쏟아붓고 나서 후회하기 십상이다. “다음에 얘기하자.”라고 말해서 시간 간격을 두고 흥분이 가라앉은 뒤에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간 간격을 두는 것 또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꿈을 갖고 살고 있고 나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냥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더 나은 성과를 낳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의연히 견뎌 내고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다. 즉 꿈에 대해 조급해 하지 말고 여유 있는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 꿈이 없는 자에 비하면 꿈이 있는 자는 열정을 갖고 사는 행운이 있음을 놓치지 말자.
학교 성적을 비관하는 학생,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인생이 끝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 이들은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서다. 패배감이나 그와 비슷한 감정이 생기면 오히려 웃음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어떠한 좌절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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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과 관련한 책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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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늘 과묵한 내가 갑자기 즈베르꼬프하고 격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미래의 정부(情婦)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처럼 들뜨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영지 마을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그냥 놔두지는 않겠다, 그건―귀족의 권리(droit de seigneur)이므로 만약에 농부들이 건방지게 반항한다면 그 따위 텁석부리 악당들은 모조리 곤장을 먹인 후에 인두세를 곱절로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얼빠진 동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나는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을 계집애들과 그 아버지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풋내기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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