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책은 읽지 않아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이 그런 책 중 하나다. 무려 1492쪽이다. 33장의 서양 철학과 33장의 동양 철학으로 나누어 총 6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으로 나눠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들어야 하는데 무거운 게 단점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모두 공부할 수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반부만 읽어 봐도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강신주, <철학 VS 철학>

  

저자의 철학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시청했는데 참 재미있다. 그래서 구매하게 된 책이다. 


편의상 한자를 빼고 옮긴다.


중국 송나라의 도원이 편찬한 《경덕전등록》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단하(739~824) 스님이 목불을 불태운 이야기로 흔히 ‘단하소불’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혜림사라는 사찰에 들른 단하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무로 만든 불상을 태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혜림사의 주지는 어떻게 부처를 나타내는 불상을 태울 수 있느냐고 힐난한다. 그러자 단하는 사리를 찾으려고 이 불상을 태우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에 혜림사 주지는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고 반문하다가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혜림사 주지는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목불에도 부처처럼 숭배받아야 하는 본질이 있다고 맹신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기 입으로 목불이 나무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그에게는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즉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40쪽)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목불은 부처가 아니라 나무라는 자명한 사실을 그는 자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목불을 포함한 모든 조형물을 땔감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집착일 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문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다. 사찰에 하루 잠자리를 빌려야 한다면 목불에 기꺼이 절을 하고, 얼어 죽을 지경이 되면 목불을 땔나무로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본질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창조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어쨌든 ‘단하소불’ 에피소드에서 혜림사 주지의 깨달음은, 그가 목불의 본질이라고 가정한 해묵은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40쪽)


⇨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이다. 쉽게 말해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고정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즘 유모차에 의지해 걷기 위하여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는데, 유모차에 꼭 어린아이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남으로써 유모차의 새 기능을 발견한 셈이다. 만약 유모차에는 반드시 어린아이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버리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상하기 어렵다. "본질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창조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유는 가치가 있는 법이다." 





2.

며칠 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흰 눈이 나무에 소복소복 쌓여 있었다. 마치 나뭇잎마다 고봉밥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고봉밥으로 표현한 다음 시가 떠올랐다.



조찬 

                        나희덕


깃인가 꽃인가 밥인가

저 희디흰 눈은

누구의 허기를 채우려고

내리고 또 내리나


뱃속에 들기도 전에 스러져버릴

양식을, 그러나 손을 펴서

오늘은 받으라 한다


흰 밥을 받고 있는 언 손들


목튤립 마른 열매들도

꽃봉오리 같은 제 속을 다 비워서

송이송이 고봉밥을 받고 있다


박새들이 사흘은 쪼아먹고 가겠다(18쪽)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은수원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10~11쪽)















시요일 엮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소설은 제목을 모르고 읽어도 무방하나 시는 다르다. 시의 제목을 알고 읽어야 한다. 시의 제목과 연관시켜야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어두워진다는 것’이란 시를 시의 제목과 연관시켜 읽으면 다음과 같이 된다. 


....................

어두워진다는 것은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멀리서 은수원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은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

 

이 시는 시의 제목을 모르고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의 발상이 기발하고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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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게우스 2024-02-25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 vs 철학>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반갑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2-25 15:01   좋아요 2 | URL
깪!!! 벌써 다 읽으셨다니 깜놀, 입니다. 하긴 출간된 지 십 년도 넘은 책이니 읽으신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이처럼 좋은 책을 만나니 저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어떤 철학 강좌보다 유익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이 책의 오디오북도 갖고 있어요. 윌라 회원인데 이 책도 있더군요. 오디오북으로 먼저 접하고 반해 버렸어요.
좋은 글 발견하면 가끔씩 올리겠습니다.^^

물감 2024-02-25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은 잘 모르지만 고르라면 서양철학 쪽입니다. 동양은 어딘가 빙빙 돌려서 말하는 듯해서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4-02-25 19:45   좋아요 1 | URL
ㅋㅋ 이 책의 구성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서로 반대로 주장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대립시켜 설명해 놓은 부분이에요. 저자가 얼마나 애썼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독서괭 2024-02-25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왓 목침으로도 못 쓸 두께네요! 제본만 좋다면 소장용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나희덕님 시가 참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4-02-25 19:4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베개로는 사용 못해요. 소장용으론 멋지지요.
요즘 밴드에 시 한 편 골라 필사해 올리고 있다 보니 시집을 들출 기회가 많네요.^^

댄스는 맨홀 2024-02-25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두께가 사전입니다. 우와 저 수준의 벽돌책은 감당하기 어려운데 잘 읽으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세요. 요즘 오디오북이 좋긴 하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4-02-25 19:51   좋아요 1 | URL
책 뒤에 인명사전, 개념어 사전, 참고문헌 등 많이 수록돼 있어요. 이런 것 빼고 나면 본문은 1300쪽이 넘는 정도예요. 13쪽씩 석 달을 읽으면 될 거예요. 드디어 저도 벽돌책을 샀네요. 벽돌책이 막 팔릴 때마다 저는 그 유혹에 안 넘어갔거든요. 읽을 자신이 없어서요. 그런데 이 책은 철학 강좌를 철학자마다 다 수강하려면 수 억이 드는데 이 책 하나로 해결되니 저렴하구나, 이러면서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오디오북 애용자예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2-25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음 시집 제목은 제가 좋아하는 황인찬 시 무화과 숲 구절이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4-02-25 19:53   좋아요 0 | URL
예, 이 시집의 17쪽에 황인찬 시인의 시가 나와 있어요.
이 시집에 웬만한 시인들은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 2024-02-25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뿌듯할 것 같은 책이네요! 저도 작년에 사둔 <신곡>이 한 권짜리 1086쪽인데 사고 나서 보니 세 권짜리 <신곡>을 발견하고는 아차 싶었지요. 읽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두꺼운 양장본도 모양이 흐트러지니까요. 읽기 마치고 나면 책거리라도 하셔야겠네요.ㅎ 인용한 글도 좋고 시도 좋군요.
며칠 전 눈 오는 날 멀리 외출했는데 눈 풍경 구경하며 신났었지요.ㅎ
따뜻한 저녁 시간 되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4-02-25 19:55   좋아요 2 | URL
그랬군요. 저도 이걸 두 권으로 판매하는 게 있다면 그걸 사고 싶더라고요.
책을 사고 뿌듯한 것이 이 책이 최고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의외로 책이 술술 읽히고 재밌어요.
모나리자 님도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의 방문이시라 더 반갑군요.^^

서니데이 2024-02-25 2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작가 책은 두꺼운 책이기도 하지만, 페이지가 적은 시집 옆에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더 커보이네요.
강신주 저작은 좋은 책도 많이 있지만, 저 책은 너무 두꺼워 보여서 포기해야겠어요.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2-28 20:45   좋아요 2 | URL
저도 읽고 싶은 책 중에서 두꺼워서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도 천 쪽이 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으니 으쌰, 하고 힘을 내야겠어요. 강신주 저자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을 한 것 같아요.
어제와 오늘, 외출로 바빴네요. 일을 많이 벌려 놓으니 바쁘게 살게 되네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Dora 2024-02-25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대철학 ~ 목침 ㅋㅋㅋ두껍긴 해도 소장가치가 있고 내용도 알차서 한 챕터씩 나눠 혼자 스터디 했던 기억이 있네요~ 포기하지 마시고 소장과 정독의 기쁨을 꼭 맛보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4-02-28 20:47   좋아요 1 | URL
저도 꼭 완독하고 싶습니다. 두껍긴 해도 흥미로운 내용이라 말이죠. 그런데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해서 한꺼번에 많이 읽진 못하겠더라고요. 혼자 스터디 하셨군요.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책이 두꺼워 같이 스터디를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할 듯해요. 완독하게 되면 완독했다는 내용으로 페이퍼 올리겠습니다. 올해 상반기 안에 끝내야 할 텐데 말이죠. 추천, 감사히 접수합니다.^^

stella.K 2024-02-25 2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벽돌책! 참 이상하지요? 이젠 벽돌책 못 볼 것 같아도 여전히 관심가는 걸 보면.
전 저 책 볼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말해 놓고 어느 날 살지도 모르죠. ㅎㅎ
요즘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있는데 진도가 참 안 나가더군요.
작년에 부활을 읽은 것으로 봐서 어느 지점만 가면 냅다 읽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도
아직 그 지점을 못 만나고 있어요. 안니와 브론스끼가 뜨거운 사랑을 하게되면 가독성이 붙을까요?
이 책 넘 두꺼워요.ㅠ

아무리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어도 겨울은 겨울인가 봐요.
봄 다 되서 눈이라니 했는데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눈이 오는 서울이지만
겨울이 안쓰럽게도 느껴지더군요. 암튼 겨울은 언제부턴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오늘도 의외로 쌀쌀하던데 3월이 코 앞이어도 2월은 엄연한 겨울이다 싶네요.

페크pek0501 2024-02-28 20:51   좋아요 2 | URL
벽돌책을 분할해 생각하면 좀 쉬어집니다. 5백쪽짜리 세 권이다, 뭐 이렇게요.ㅋㅋ
안나~ 가 세권이죠? 이름이 길어서 그럴 거예요. 러시아 문학은 이름이 길어서 불편해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참 안타까운 결말로 끝나죠.

아직 봄 옷을 입기엔 이른 듯합니다. 저녁이 되면 추워요. 곧 꽃샘 추위도 올 것이니 봄이 따뜻하다는 건 어쩌면 우리의 환상일지도... 4월은 되어야 따뜻할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페넬로페 2024-02-26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내린 눈은 습기가 많아서 너무 예뻤어요. 올해 내린 눈 중에 제일 예뻤던 것 같아요.
철학이 어려워 접근하기는 힘들어도 관심은 늘 있는데 이 책이 일고 싶어 지네요.
근데 책이 넘 두꺼워 불편하면 조금 화가 나기도 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4-02-28 20:54   좋아요 2 | URL
저도 이번에 눈을 실컷 봤네요. 눈이 오면 거의 녹곤 했는데 이번에 쌓여 있었죠.
철학은 꼭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사 보곤 했는데 이 책은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이것부터 읽고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철학자의 저작을 찾아 읽으면 될 듯합니다.
책 두꺼우면 무거워요.ㅋ 저도 팔 힘이 약해서 불편해요. 그래도 완독하고 나면 기쁨이 두 배, 될 것 같아요.
좋은 날들 보내세요.^^
 



24개월간의 칼럼 연재를 끝내고 나면 뿌듯할 줄 알았다. 연재를 해 봤다는 것이 보람으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상이 실제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 글이 써지지 않았고 계속 써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덜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지난 1월부터 ‘철학과 문학’ 오프라인 강좌를 주 1회 수강하고 있다. 한 달에 책 두 권을 읽고 두 번 모이는 독서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이달에는 하루에 시 한 편을 필사해 올리는 네이버 밴드 모임에도 가입했다. 매일 시 한 편을 골라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이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은 자신을 모른다. 나도 나 자신을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 온라인 강좌나 오디오 북을 듣는 것도 즐기지만, 오프라인 강좌의 수강자가 되고 독서 동아리에 들고 나니 이점이 있었다.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많이 걷게 된다는 점이다. 밖에 나간 김에 일부러 많이 걸으려고 노력한다.


독서 동아리에서 함께 읽기로 선정한 책 두 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서 서둘러 완독했다. 이 와중에 또 완독한 책이 있으니 위화의 <인생>이다. 둘 다 재미있게 읽은 장편 소설이다. 

















“대장님.”

대장은 눈꺼풀을 치켜들어 우리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곧장 자기 집으로 돌아가 내리 이틀을 잠만 잤다네. 사흘째 되던 날 호미를 들고 밭에 나왔기에 가서 보니 얼굴의 부은 기는 많이 가셨더라구.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몸이 아프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

“아픈 데는 없었는데 잠을 못 자게 하니 제기랄,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렵더군.”

대장은 그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네.

“내 이번에 알아봤네. 평소에 나는 내 아들 돌보듯 당신들을 보호했는데, 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는 구해주는 사람 하나 없더군.”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감히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지. 대장은 그래도 운이 좋은 셈이었어. 성안으로 끌려가 사흘 동안 얻어터지는 걸로 끝났으니 말일세. 하지만 춘성은 성안에 살았으니 지독하게 당한 모양이야.

위화, <인생>, 243쪽.


⇨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치사상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모모야, 그 사람들은 나를 억지로 살게 할 거다.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한단다. 병원에는 그런 원칙이 세워져 있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단다. 그들은 날 죽지 않게 하려고 온갖 학대를 다할 거다. 고의적으로 의학적 처방이라는 것을 쓸 거다. 그리고 거품을 뿜어댈 때까지 못살게 굴며 죽을 권리도 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특권이 되는 거니까 말이다. 내 친구가 있었는데, 유대인도 아니면서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다 달아나버렸지. 그런데 병원에서는 혈액 순환을 조사한다고 그 친구를 10년 이상이나 고생을 시켰단다. 모모야, 나는 단지 의학이란 것을 위해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정신이 나가곤 하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렇지만 혼수 상태로 의학에 공헌하기 위해 몇 년 더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만일 오를레앙에서 온 사람들이 나를 병원에 데려갈 거라는 소문을 들으면 네 친구에게 가서 나한테 주사 한 대를 놔주라고 해라. 그리고 내 시체는 시골에 갖다버려라.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숲 속에다가 버려라.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열흘 동안 시골에 가 있었지. 그렇게 공기가 좋을 수가 없었단다. 그곳은 도시보다 내 천식에 더 좋단다. 나는 내 엉덩이를 35년 동안이나 손님들한테 주었는데, 지금에 와서 또 의사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단다. 약속해주겠니?”

“약속해요, 로자 아줌마.”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185~186쪽.


⇨ 안락사가 불법이라 비밀리에 안락사를 시켜 달라는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안락사가 낫다고 여긴다. 안락사의 입법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 둘은 같은 사람이다.)




..............................


* 오늘 뽑은 시



방을 얻다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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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2-15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이 달 나머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4-02-15 19:19   좋아요 1 | URL
앞으로 시 자주 올리겠습니다. 올 한 해는 시 많이 읽은 해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은오 2024-02-15 1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년동안 칼럼을 연재한다는게....부담감도 있을 테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페크님~💕
오프라인 강좌에 독서동아리에 필사모임까지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왠지 게으른 저도 좀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넘 멋지세요...🥹

페크pek0501 2024-02-17 11:07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게으르게 살았어요. 그 결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어요.ㅋㅋ
은오 님은 책 많이 읽으시니 게으른 게 아니지요. 저도 분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멋진 분은 은오 님!!

stella.K 2024-02-15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네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안하면 되게 편할 줄 알았는데 자꾸 쳐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근데 넘 바쁘신 거 아니예요? ㅎㅎ

근데 사진은 어딘가요?

페크pek0501 2024-02-17 11:12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은 그 느낌을 아시는군요.
만약 제가 돈 받고 가르치는 일이라면 당연히 부담스러울 텐데, 제가 돈을 내고 수강하는거라 결석해도 되고 부담없어요. 독서 모임도 한 달에 두 번만 가면 되는 거라서... 그동안 게으르게 살았던 것 같아요.
사진은 명동에 있는 레스토랑이에요. 이름은 생각 안 남. 맨 뒤 산 위의 불빛 탑이 남산이에요. 족욕하는 시설도 갖춰 있어서 족욕도 했어요.(이건 무료) 음식도 맛있고 가격은 그리 비싸도 않았어요. 딸이 데려가서 가 봤답니다.^^

coolcat329 2024-02-16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연재 시작하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나 됐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원섭섭하시지요?
독서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신 페크님이 봄의 기운을 저에게 전해주시네요. 앞으로 독서모임에서 읽게 될 책들이 저도 기대됩니다. 화이팅하세요!

페크pek0501 2024-02-17 11:14   좋아요 2 | URL
2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짧답니다. 시원섭섭, 맞습니다.
제가 독서 편식을 하는 편이라 이 기회에 남들이 정한 리스트대로 책을 읽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리뷰는 못 쓰더라도 독서 모임으로 읽은 책은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coolcat329 님도 파이팅!!!

2024-02-17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20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 축하드립니다. 페크님....후련하시면서 섭섭...저도 그러시겠다 생각했는데 coolcat님의 말씀 댓글로 같은 심경을 서주셨네요^^

페크pek0501 2024-02-20 12:22   좋아요 1 | URL
끝남은 다른 일의 시작이이라고 여기고 새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고 싶군요.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는 법.
공기가 맑아 좋은 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4-02-18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정도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지만... 스케줄 너무 빡빡한거 아니세요?ㅋㅋㅋ
2년간의 연재도 성공하셨으니 뭐든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로맹 가리는 한 권도 안 읽었어요. 다들 재밌다 재밌다 그러는데 왜 저는 손이 안가는건지 원...

페크pek0501 2024-02-20 12:27   좋아요 1 | URL
저로선 스케줄 빡빡한 편이지만, 다른 알라디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꾸준히 책 읽고 리뷰 올리시는 물감 님 같은 분들이 많잖아요. 연재 성공이라 말씀하시니(말이 안 돼서) 웃음이 나지만 감사히 접수하겠습니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니 당연히 읽은 적 없는 작가가 있을 수밖에요. 저도 로맹 가리의 책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집에 책이 있었는데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독서 모임 때문에 이번에 읽었습니다.
책이 있어 늘 행복하시길... 더불어 저도...^^
 
인생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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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을 수 있는 장편 소설을 만났다. 처음엔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가 재밌어서 종이책을 사고 말았다. 위화 작가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 긴말이 필요 없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 놓치면 억울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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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2-07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소설!

페크pek0501 2024-02-07 23:5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렇게 재밌는 소설은 처음 본 기분이었어요. 재밌으면서도 소설 안에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모두 담아낸 것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전화위복, 새옹지마. 나쁜 일을 꼭 나쁘다고 볼 수 없고, 좋은 일을 꼭 좋다고 볼 수 없음을 문학 속에 녹여 내다니 존경스러웠습니다. 강력한 흡인력은 책을 손에서 안 놓게 만들더군요. 구름모모 님도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coolcat329 2024-02-07 1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며칠 전 우연히 국회방송에서 위화 인터뷰를 봤는데 말하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트레드밀에서 계속 웃었네요. 지저분하게 웃긴 소설<형제>가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졌죠.
문화대혁명 때 중고등을 보내 한자를 잘 몰라 자신의 문장이 간결한 거라고. 근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문장이 힘있고 간결하다며 서양에서는 자신의 문체를 헤밍웨이와 비교한다고 농을 하는데 ㅋㅋ 얼마나 재미있게 봤는지 모릅니다.

Falstaff 2024-02-07 20:30   좋아요 1 | URL
<형제> 왜 웃으셨는데요? ㅎㅎㅎㅎ 아버지와 아들, 대를 이어서 공중변소 변기통에 머리통 밀어 넣고 고개 휙 돌려 올려다 보는 장면이요? ㅋㅋ 기어이 빠져서 기도 폐색으로 죽어 자빠지는 광경도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저도 난감했습니다. 하여간 골 때리는 작가예요.

coolcat329 2024-02-07 22:11   좋아요 2 | URL
아 ㅋㅋㅋㅋ 변소에서 변태짓하다 똥통에 빠져죽은 인간의 아들 이광두! 이 인간의 동물적 욕망이 어찌나 해괴하고 더럽던지요.
이광두 때문에 위화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바뀌었어요. 😂😂
근데 그런 위화가 나와서 중국말로 자기 얘기를 하는데 못 알아 듣지만 말투도 넘 웃기더라구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2-07 23:56   좋아요 1 | URL
coolcat329 님이 말씀하신 <형제>는 어떠할지 궁금하군요.
한자를 몰라 간결체를 쓰는 건데 헤밍웨이와 비교하다, 정말 재밌습니다!!!

Falstaff 2024-02-07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화, 지가 작가면 작가지 자기가 만들어 놓은 등장인물한테 정말 이럴 수 있는 거야? 책을 읽으면서 열을 풀풀 냈던 기억이 나는군요.

coolcat329 2024-02-07 22: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좀 그렇죠?

페크pek0501 2024-02-07 23:59   좋아요 2 | URL
Falstaff 님도 위화 작가의 책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같은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의 댓글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페크pek0501 2024-02-08 00:01   좋아요 1 | URL
<허삼관매혈기>는 어떤 작품일지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놨습니다. 댓글, 모두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02-08 0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삼관매혈기만 읽었는데 재밌었어요. 이 책 담아놔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4-02-13 15:30   좋아요 0 | URL
저는 허삼관매혈기를 읽고 싶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레이스 2024-02-08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있지요

페크pek0501 2024-02-13 15:31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보다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소설의 맛을 영화로는 도저히 살려 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레이스 2024-02-16 08:06   좋아요 1 | URL
<살아간다는 것>으로 읽었어요^^
원제가<활착>이라는걸 알고 아아!
했어요.
의미가 확 와닿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4-02-17 11:27   좋아요 1 | URL
원제가 그렇군요. 인생, 이란 제목이 너무 흔하다 싶었어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님,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24-02-08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것도 같고 안 읽은 것도 같고 기억이 안 나네요.ㅠ

페크pek0501 2024-02-13 15:32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처럼 독서 노트를 마련해 놔야 합니다. 번호 매겨 작가와 책 제목을 적어야 해요. 전 제 기억력을 믿지 못한 지 오래됐어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4-02-12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3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3-04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오디오북도 있꾼요. 페크님의 추천이라면 믿고 보겠습니다ㅎ

페크pek0501 2024-03-05 12:05   좋아요 1 | URL
종이책보다 오디오북이 더 나을 수 있어요. 성우가 소설을 잘 살려서 읽어 주거든요. 영화 같습니다.^^
 
저 불빛들을 기억해 - 개정증보판
나희덕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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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문장이 나무랄 데 없고 글의 메시지 또한 나무랄 데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배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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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은 나의 애독서 중 하나다. 애독서인 만큼 인상 깊은 구절마다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 구절들을 발췌하여 단상을 쓰고자 한다. 

 



















위대한 일은 모두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일어난다. 옛날부터 새로운 가치의 창안자들은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살아왔다.

아나라,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87쪽)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과 ‘이름난 잔치 배고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두 개의 속담은 떠들썩한 소문이나 큰 기대에 비하여 실속이 없거나 소문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은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실속 없는 사람이 요란하게 치장하는 법. 겉이 요란하면 알맹이가 없는 법. 고독 속에서 인내하며 몰두할 때 위대한 탄생을 기대할 수 있는 법.



남자여, 여자가 사랑을 할 때면 두려워하라. 사랑하는 여자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녀에게 다른 모든 것은 무가치해지기 때문이다.(114쪽)


⇨ 다른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오직 사랑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연애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는 상대편을 독차지하려는 소유욕이 강할 수밖에 없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도 정도를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이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그렇다고 본다. 



남자의 행복은 ‘나는 원한다’는 데 있다. 여자의 행복은 ‘그가 원한다’는 데 있다.(114쪽)


⇨ 남성은 본인이 좋아하는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본인을 좋아하는 남성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란 말인가?


두 가지를 알게 한다. 첫째, 서양이나 동양이나 여성에 비해 남성이 프러포즈를 많이 한다는 것. 둘째, 니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을 했다는 것. 


요즘은 연애에 대해 적극적인 여성들이 많아졌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를 갖는 여성들이 많아질 때, 프러포즈는 남성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보는 낡은 견해의 벽을 허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 “자! 기운을 내자! 변함없는 마음이여! 그대는 한 가지 불행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이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누려라!”(254쪽) 


⇨ “한 가지 불행에서 벗어났다.” 이 문장을 읽고 깨달았다. 인간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고, 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는다는 것을. 


약을 타기 위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이 많다. 며칠 전엔 시어머니 생신을 맞아 대구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딸 노릇과 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바쁘다. 한가롭게 살고 싶은데 그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불행에서 벗어났다. 큰 병을 앓는 불행에서 벗어났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불행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열거해 보면 우리는 수백 가지가 넘는 불행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긍지에 찬 자들보다는 허영심 강한 자들을 아끼는 것. 이것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나의 또다른 지혜다.(254쪽)


⇨ 긍지에 찬 자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자들이다. 반면에 허영심 강한 자들은 자신감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감이 없어 자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허영심에 빠진 자들을 아낀다는 걸로 읽힌다.  



상처받은 허영심은 모든 비극 작품의 모태가 아닌가?(255쪽)


⇨ 여주인공의 허영심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가 떠오른다. 이 여주인공을 누가 미워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그 누가 허영심 강한 자들이 가진 겸손의 깊이를 제대로 잴 수 있는가! 나는 그들의 겸손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고 동정한다.(255쪽)


⇨ 허영심 강한 자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서 겸손한 자들이다. 자신만만한 자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허영심 강한 자는 그대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배우려 한다. 그는 그대들의 눈길을 먹고살며 그대들의 두 손으로부터 게걸스럽게 칭찬을 먹어치운다.(255쪽)


그대들이 거짓말로 그를 칭찬한다면, 그는 그대들의 거짓말조차도 믿는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무엇인가?”라고 탄식하고 있기 때문이다.(255쪽)


⇨ 허영심 강한 자는 자신감이 없기에 남의 칭찬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남에게 보여 줄, 필요 이상의 겉치레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대들 중 최고의 현자들도 내게는 그다지 현명하게 보이지 않듯이, 인간의 악의도 실제로는 그 소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256쪽)


진실로 말하노니, 악에도 아직은 미래가 있다!(256쪽)


⇨ 악인은 어쩌면 소문만큼 악하지 않을지 모르다. 그저 그가 좋지 못한 ‘부모의 디엔에이(DNA)’를 그대로 물려받아 악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의 나쁜 환경이 악인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알고 보면 악인에게도 ‘선’이 있어 미래엔 달라질 수 있다.  



만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가 누구인지를 그대는 모르는가? 그는 위대한 일을 명령하는 자다. 

위대한 일을 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은 위대한 일을 명령하는 것이다.(262쪽)


⇨ 위대한 일을 고안해 내고 실천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때 누군가가 다시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몰고 오며,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움직인다.(262쪽)


⇨ 떠들썩한 곳에서 위대한 사상이 나오지 않는다. 위대한 사상은 비둘기 걸음처럼 남모르게 조용히 전해지는 것.


사람들이 처음에 지지하지 않았던 사상이 나중에 세계를 움직인 적이 많지 않던가. 

 


그리고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차라투스트라여, 그대의 과일은 익었으나 그대는 그대의 과일에 어울릴 만큼 익지 못했구나!

그러므로 그대는 다시 고독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 더 무르익어야 한다.“(263쪽)


⇨ 우리는 익지 않은 과일 같은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고 사는가. 생각이 익도록 깊은 사색에 침잠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마지막은 내게 강한 인상을 준 문장을 뽑아 옮긴다.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110쪽)


⇨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자가 아닌가. 도박에 빠지는 것도, 범죄나 패륜을 저지르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게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만 한할 뿐, 대체로 스스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은 자신이다. 


자기 인생만 망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부모가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자식의 인생을 망치게 된 예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부모 자신의 적은 ‘자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지나친 교육열’이었다는 말이다.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이다. 이 문장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나섰다면 자신이 어떤 이득을 얻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쿠데타나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나라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추악한 권력욕과 탐욕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간다. 최악의 적은 니체가 말한 대로 자신일 수 있으니.... 



....................

니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이 책을 아낀다. 나의 고정 관념을 깨게 하는 글이 있고, 표현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사색에 잠기게 하는 글이 있어서다. 이런 글들을 만나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시’를 읽는 것 같다. 이 책을 내 맘대로 해석하며 읽었다는 점을 밝혀 둔다. 다시 말해 내가 니체의 글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건 니체의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써 보는 일이었다. 나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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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1-31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연애에 대해 적극적인 여성들이 많아졌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한국의 대표 초식남으로서 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끄덕.

페크pek0501 2024-02-01 12:53   좋아요 1 | URL
초식남이시군요. 마초보단 훨 낫죠.
요즘 적극적인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좋은 현상 같습니다.^^

서니데이 2024-01-31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이 내려서 하얗게 된 아파트 건물이 참 예뻐요. 눈이 오면 불편한 점이 많지만, 사진은 참 좋네요.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더 좋지 않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적정한 선을 잘 맞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예요. 라면 물 끓이기도 대충 눈으로 보고 맞추거나 하면 잘 맞지 않는걸요. ^^;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1월 마지막 날이예요. 페크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2-01 12:55   좋아요 2 | URL
이번 겨울에 찍은 사진인데 건물 뒤를 보면 눈이 내리고 있어 나무들 위에 앉습니다.
적정한 선을 찾기의 어려움은 모든 것에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벌써 2월 1일입니다. 이번 해에도 시간에 바퀴가 달릴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호시우행 2024-02-01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이 도서를 대학시절 읽으면서 인상적인 귀절을 여학생에게 편지 보낼 때 이용하곤 했지요. 페크님의 리뷰를 읽다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ㅠㅠ

페크pek0501 2024-02-01 12:58   좋아요 0 | URL
부끄러워지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니체의 글을 제 맘대로 해석한 것이에요.
대학시절에 이런 책을 읽으신 호시우행 님이 멋지십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놀기 바빴거든요.
그땐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었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독서만큼 즐거운 일이 없네요. 진작 책을 좋하했더라면 제 인생도 지금과 다를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노는 것도 즐거웠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 걸로...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cyrus 2024-02-01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 스스로 사랑하는 일이 제일 중요해요. 연애를 못 하든 하지 않든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거든요. ^^

페크pek0501 2024-02-01 12:59   좋아요 0 | URL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자신과 사이가 좋아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ㅋ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24-02-01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사춘기 시절에 겉멋에 읽었는데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근데 언니가 애독하시는 책이라니 다시 보게되네요. 저도 마지막 구절 찔리네요.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4-02-01 13:03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의 춤추는 이미지 사진은 참 걸작입니다. 오래 사용하십시오.
사춘기 시절에 이런 책을 보는 분은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마지막에 넣은 구절, 어찌나 신선하든지 책을 읽다가 멈춰 버렸다니까요. 니체의 글을 읽다 보면 그런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재미로 이 책을 읽는 거지요. 2월도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4-02-05 11:09   좋아요 2 | URL
이 이미지 좋아하시는 분이 많네요. 전 이번 설만지나면 내릴려고 했는데. 그렇담 좀 더 걸어보죠.^^
저예요. 저. 아시면서. ㅎㅎ 그 무렵 이 책 선전 많이 했던거 같은데. 그냥 까만 건 글이고 하얀 건 종이구나 하는거죠. ㅋ 싫으면 안 읽으면되는데 왜 그렇게 꾸역꾸역 읽었는지... 그리고 깨달은 게 그거라니 한심하잖아요. ㅋ 전 오히려 언니가 더 대단한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2-04 17:30   좋아요 2 | URL
춤추는 이미지, 참 좋습니다. 애용하십시오.
스텔라 님이 어릴 적 책과 가까이 지냈다는 글을 읽을 적마다 부럽습니다. 제가 그렇지 못해서요.ㅋㅋ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니까 뭐 대단할 건 없지요. 오독의 즐거움도 있답니다.
며칠 전 굴을 먹어 토했고 설사까지 했어요. 하필 남편이 굴을 사와서 자꾸 먹으라고 해서 먹었더니... 그 후유증이 며칠 가네요. 이삼 키로 빠진 듯합니다. 이제 좀 나은 것 같아요. 굴은 익혀 먹는 게 안전하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