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전환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6」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는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다음 글을 읽으면 공감하게 되리라. 


인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스스로 부정과 긍정 사이의 균형을 찾는 능력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우리가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만드는 중요한 감정이다. 분노는 부당함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불안은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생존 신호다.(185쪽)


가령 지인이 전세 사기를 당해서 많은 재산을 날렸다고 치자. 이런 사람에게 “좋은 교훈을 준 일로 여기고 잊어라.”라고 말한다면 위로가 되겠는가. 남의 불행한 일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그의 쓰라린 고통에 공감하기 어렵다. 고통에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공감해 주고 나서 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 회복을 위해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알려 주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몰도덕성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이가 한 명도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어느 경우에나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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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성소수자와 이주자에 대한 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처리 절차에 대한 신뢰 부족, 관련 정보 부족, 보복 우려 등으로 문제 제기조차 힘든 상황이라 신고되지 않은 ‘숨은 차별’이 많다고 할 수 있으며, 국가 차원의 대응도 매우 부실하다.(54쪽)

 

성소수자와 이주자에 대한 차별만 있는 게 아니다. 성별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도 있다. 차별하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차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속으로 차별하는 부류다. 또 하나는 차별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부류다. 


백화점 8층에 있는 문화 센터에서 문우와 함께 야간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다. 강좌가 끝나 강의실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다 오니 우리 말고는 수강생 모두 집에 가고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 일층으로 내려오니 점원도 손님도 없고 우리 둘뿐이고 조용했다. 백화점의 영업시간이 끝난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향해 텅 비어 있는 매장을 걸으며 우리 두 사람이 있는 걸 모르고 누군가가 백화점 문을 잠그지 않을까 하고 나는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만약 이때 우리 둘이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건장해 보이는 흑인 두 명이 걸어온다고 가정해 보자.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우리 두 여성을 구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텅 빈 백화점이라면 공포가 극에 달할지 모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흑인과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공포를 느낀다면 이것도 인종 차별이 되는 것일까? 흑인에게서 왜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뉴스나 영화를 통해 흑인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 수 있다. 만약 반대로 뉴스나 영화를 통해 흑인이 선행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흑인에 대한 선입견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백인에 비하면 흑인이 받는 불이익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흑인에 대해 배려하려는 마음보다 공포감을 먼저 갖는 이들이 있다면 이것은 편견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70~80년대만 해도 ‘용모 단정한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 급구’라는 채용 광고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결혼이나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도 수두룩했다. 두말할 것도 없는 직접 차별이다.(68쪽)


배우 조진웅의 사례.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 씨는 아예 은퇴를 선언했다. 30여 년 전 청소년 때 강력범죄 이력이 있다는 의혹 제기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정치계로도 옮겨 붙은 이번 논란은, 범죄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 소년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줬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동아일보, 2025년 12월 31일)


배우 조진웅에 대한 논란은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일단락된 듯하다. 나로선 그의 은퇴 선언이 옳은 일인지 억울한 일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홍성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전과자에 대한 낙인이나 전과자에게 무분별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는 데다 전과자의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취업도 못 하고 교육도 못 받는다면 사회 복귀는 더욱 요원해진다. 전과자가 사회 복귀를 못 하고 사회에서 배제된다면 그 사회는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전과를 차별금지 사유로 두고 있다.(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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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샤비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흑인은 이유 없이 체포될 가능성이 백인보다 다섯 배 높고 구금당하는 비율도 백인의 다섯 배에 달한다. 실험에 따르면 경찰과 민간인 모두 무기를 소지한 백인보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흑인에게 총을 쏠 확률이 높게 나타난다. 실제 데이터를 보더라도 경찰에게 총격당한 흑인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던 경우가 백인의 두 배다.(131~132쪽) 


반흑인 인종차별을 다스리려는 노력이 지나친 나머지 증거가 없는데도 백인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143쪽)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백인과 흑인 중 어느 인종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설마 이 물음에, 백인이 역차별을 당해서 흑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답변할 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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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러츠, 「더블스피크」 


암스트롱은 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읽는 학자들은 글이 명료할 때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 저자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보고한다. 또한 다른 연구들에서는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글을 모호하게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다른 많은 전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계에서도 이중화법이 이득이 된다.(90쪽)  


학자들이 글이 명료할 때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 저자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다니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쉽게 읽히면서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면 좋은 글이라고 본다. 어렵게 읽히면서 깊지 않은 뜻이 담겨 있으면 나쁜 글이라고 본다. 


<미국 가정의학 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벼룩을 ‘흡혈성 절지동물 매개체’라고 지칭했다.(103쪽)


오늘날 의학적 이중화법에서는 노화를 ‘세포 탈락’이나 ‘세포 복제 성향의 감소’라고 부른다.(103쪽)


1981년 3월 30일 레이건 대통령이 총격을 당한 뒤 수술을 집도한 벤저민 애런 박사는 “대단히 집중된 촉각의 식별력”으로 대통령의 폐에 박힌 총탄을 찾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찾았다는 것이다.(105쪽)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대통령의 폐에 박힌 총탄을 찾았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대단히 집중된 촉각의 식별력”으로 대통령의 폐에 박힌 총탄을 찾았다고 말해야 할까? 유식해 보이기 위해서겠다. 한자말을 많이 쓰면 유식해 보이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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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시를 쓰는 소년」


시라는 것이 그의 행복을 보증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가 태어나기 때문에 그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행복은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다거나, 부모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행복과는 확실히 달라서, 아마 누구에게나 있는 행복이 아니라, 그만이 알고 있는 것임은 분명했다.(47쪽)


시에 빠져 있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책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책으로 인해 갖게 된 행복은 선물이나 여행 따위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과 확실히 다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게 행운이 주어진 것만 같았으니까.  


책에 진심인 나의 삶이 시작된 것은 삼십 대 초반이었다. 내가 그 전까지는 독서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때부터는 독서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사고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품은 사람이 되었다. 하루에 한 권을 완독한 적도 있고 한 달에 열 권씩 읽은 적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빠른 속도로 읽었던 것은 아니고 책을 들고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찬찬히 정독을 했다. 하루에 열 시간쯤 책을 읽으면 한 권을 완독하곤 했다. ‘하루 종일 책을 들고 살았다’라는 말로 그 시절을 표현할 수 있다. 어떤 날은 밤 열 두시 부터 새벽 네 시까지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지금 그렇게 독서를 하면 병인 나고 말 것이지만 그때는 젊었기에 가능했다. 독서의 목표는 하나. 글을 잘 쓰게 되는 것.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독서는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시작했던 독서였는데 이젠 그저 책을 읽는 게 좋아서 읽는다.


독서 시간을 갖고 살지 않는다면 지루한 삶이 될 뻔했다. 내가 가진 것 중 으뜸은 ‘책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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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책 5권에 대해 썼다. 새해에도 독서가 이어질 책들이다. 


Goodbye 2025


2026년 새해에는 좀 더 부지런히 달려 볼 계획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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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12-31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많네요. 페크 님 정말 책을 손에 들고 사셨군요. 그래서 글을 잘 쓰시나 봅니다. ㅎㅎㅎ
‘대단히 집중된 촉각의 식별력‘은 정말 웃긴 표현이네요. 하지만 당시에는 있어보이는 표현이었겠죠...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생각할 거리가 무척이나 많군요. 반성해야겠어요ㅠㅠ
페크 님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곡 2026-01-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해피 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