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1>
독서가 폭염을 잊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여름은 <페스트>, <레 미제라블 1>, <스토너> 등 세 권의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지냈다. <페스트>는 재독한 것인데 오래전에 읽었던 것이라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마치 처음 읽는 듯했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 읽어서인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요즘 리뷰를 쓰고 싶은 소설은 <레 미제라블 1>과 <스토너>다.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은 소설을 만난 것이 좋았다. 그런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을 쓰는 일로 진이 빠져서 리뷰를 쓰고 나면 또 진이 빠질 것 같아 리뷰를 쓰지 않고 백자평으로 간략하게 써서 3일 전에 올렸다.(칼럼을 한 편 썼으나 맘에 들지 않아 새로 쓰고 있으니 진이 빠질 수밖에.)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 독서하면서 틈틈이 필사해 놓는다. 필사는 창작을 하지 않고 베끼어 쓰기만 하는 단순한 작업이어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어 좋다.
오늘은 <레 미제라블 1>에서 글을 뽑아 필사해 놓은 것을 올리기로 한다.
처음에 팡틴은 하도 부끄러워서 감히 밖에도 못 나갔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뒤에서 돌아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모두들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아무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쌀쌀하고 신랄한 경멸은 삭풍처럼 그녀의 살을 뚫고 마음을 찔렀다.
작은 도시들에서 불행한 여인은 모두의 조소와 호기심 아래에 벌거벗겨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모르고,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몸을 가려 주는 옷이 된다. 오! 그녀는 얼마나 파리에 오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빈궁에 익숙해졌듯이 그녀는 멸시에도 썩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점점 그것을 체념해 갔다. 두세 달 후에는 수치심을 떨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나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러면 어때.”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쓴웃음을 띤 채 왔다 갔다 하면서 스스로 뻔뻔스러워졌다 싶었다.(325~326쪽)
⇨ 인간은 힘든 환경에도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빅튀르니앵 부인은 이따금 창에서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자기 덕분에 ‘될 대로 된 그 계집’의 궁상을 알아보고는 기뻐했다. 심술꾸러기들은 시커먼 행복을 갖는다.(326쪽)
⇨ 빅튀르니앵 부인은 왜 팡틴이 불행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을까? 빅튀르니앵 부인은 추녀이므로 시기와 질투로 미모의 팡틴이 불행한 것이 기쁠 수도 있고, 그저 남의 불행을 보면 자신의 불행이 상쇄되는 것처럼 느껴져 기쁠 수도 있겠다.
과도한 노동은 팡틴에게 피로를 주었고, 평소의 가벼운 밭은기침은 더 심해졌다. 그녀는 가끔 이웃의 마르그리트에게 말했다. “제 손이 이렇게 뜨거워요, 글쎄. 좀 만져 보세요.”
그렇지만 아침에 부러진 헌 빗으로 부드러운 명주실처럼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머리를 빗을 때면 한때의 행복한 교태도 부려 보는 것이었다.(326쪽)
⇨ 밭은기침이 심해졌다는 것은 그녀가 병자가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위로가 되는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팡틴에게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훗날 그 머리카락을 잘라 10프랑의 돈을 받고 팔게 된다.
그는 잠시 미래를 생각했다. 오오, 자수를 하고 자백을 한다! 그는 버려야 할 모든 것을, 다시 취해야 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막심한 절망을 느꼈다. 그래, 이처럼 훌륭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생활에도, 이 만인의 존경에도, 명예에도, 자유에도 고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들에 산책도 못 가리라. 이제는 5월의 지저귀는 새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이제는 어린아이들에게 적선도 못 하리라! 이제는 자기를 바라보는 감사와 애정의 정다운 눈길도 느끼지 못하리라! 자기가 지은 이 집도, 이 방도, 이 작은 방도 떠나야 하리라! 이 순간 모든 것이 그에게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는 이 책들도 읽지 못하리라. 이제는 이 아담한 흰 나무 책상에서 글도 쓰지 못하리라! 그가 부리는 유일한 하녀인 그의 늙은 문지기 여자도 이제 아침에 커피를 올려다 주지 않으리라. 아아, 슬프다! 그 대신에 죄수들, 목의 쇠고리, 붉은 옷, 발의 쇠사슬, 피로, 감방, 야외용 침대. 그밖에 가지가지의 지긋지긋한 것들! 이런 나이에, 자기 같은 과거를 지내 온 사람에게! 아직 젊기라도 하면 또 몰라! 그렇지만 늙은 몸이 아무한테나 반말을 듣고, 간수한테 몸수색을 당하고, 간수의 몽둥이찜질을 받고, 양말도 없이 징 박힌 구두를 신고, 족쇄를 검사하는 간수의 쇠망치에 아침저녁으로 다리를 내밀고, 구경꾼들한테는 “저기 저 사람이 몽트뢰유쉬르메르의 시장이었던 그 유명한 장 발장이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414~415쪽)
그런데 그는 아무리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의 명상 밑바닥에 있는 그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줄곧 빠져드는 것이었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415쪽)
⇨ 장 발장은 ‘샹마티외’라는 사람이 자신과 닮아 장 발장이라고 오해를 받아 억울한 누명을 쓴 일로 괴로워한다. 자기가 장 발장이라고 자수를 해야 샹마티외가 장 발장이 아님이 밝혀진다. 그러나 장 발장이 자수를 하면 그동안 마들렌 시장으로서 누렸던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과거의 감옥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샹마티외는 이웃 과수원의 사과나무에서 익은 사과가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서 가져간 것이 문제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사실은 사과가 달린 가지 하나가 꺾여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집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샹마티외는 죄지은 것이 없다.
전과자인 장 발장은 출옥한 후 ‘프티제르베’라는 소년의 40수짜리 은전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죗값을 자신이 치르든지 아니면 샹마티외가 치러야 한다. 만약 장 발장이라는 오해가 풀리지 않으면 샹마티외는 전과자에다가 사과가 달린 가지를 훔친 죄뿐만 아니라 40수짜리 은전을 훔친 죄도 뒤집어쓰게 되어 중범자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 다시 말해 자수하지 않고 마들렌 시장으로서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사는 악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죄수로 돌아가 감옥 생활을 하는 선인이 될 것인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장 발장은 고민에 빠졌다. 본인만 침묵한다면 마들렌 시장이 장 발장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그는 아라스로 가고 있었는가?
그는 스코플레르의 이륜마차를 예약하면서 이미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마음속에서 되풀이하고 있었다. 즉 결과가 어찌 될지라도, 사건을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건 조금도 나쁠 것이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신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한다. 잘 지켜보고 잘 살펴보지 않고서는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다. 멀리서는 모든 것을 과장해서 생각한다. 요컨대 그 샹마티외라는 위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본다면 나 대신 그자를 형무소로 보내도 내 양심이 아마 훨씬 덜 아플 것이다. (424쪽)
⇨ 장 발장이 샹마티외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재판소에 가려고 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심리에 빠진 듯하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심원님 여러분, 피고를 석방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를 포박해 주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저입니다. 제가 장 발장입니다.”(485쪽)
이 불행한 사나이는 미소를 띠고 방청객들과 판사들 쪽으로 돌아섰는데, 그 미소를 본 사람들은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애처로운 생각을 금하지 못한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인 동시에 절망의 미소였다.(488쪽)
“저는 더 이상 법정을 교란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 발장은 말을 이었다. “체포하지 않으니 저는 가겠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용무가 있습니다. 차장 검사님은 제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시니, 언제고 원할 때 저를 체포하게 하실 수 있겠지요.”
그는 나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고, 그를 막기 위한 팔 하나 뻗쳐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비켜섰다. 그 순간에 군중으로 하여금 한 사람 앞에서 물러나게 하고 길을 비켜 주게 하는 뭔지 알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는 유유히 군중 사이를 걸어 나아갔다. 누가 문을 열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거기에 이르렀을 때 틀림없이 문은 열려 있었다.(489~490쪽)
⇨ 장 발장 덕분에 죄가 없는 샹마티외는 석방된다. 장 발장은 팡틴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체포되는 것을 미루고 법정을 떠난다. 팡틴에게 그녀의 딸 코제트를 데려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팡틴이 돈을 버느라 두 모녀는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숨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을 절반쯤 일으키고 있었는데, 야윈 어깨는 내의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조금 전까지도 빛나던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방 저쪽 끝, 자기 앞에 있는 무슨 무서운 것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으로 휘둥그레져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오, 팡틴?” 마들렌 씨는 외쳤다.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보고 있는 듯한 어떤 대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 손으로는 그의 팔을 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뒤를 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몸을 돌렸고 자베르를 보았다.(501쪽)
⇨ 병자인 팡틴이 자베르가 온 것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떤다. 팡틴은 자베르가 자신 때문에 온 걸로 아는데 사실은 장 발장을 체포하러 온 것이다.
마들렌의 시선과 자베르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자베르는 꼼짝 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다가오지도 않았으나, 무시무시해졌다. 어떠한 인간의 감정도 기쁨처럼 무시무시해질 수는 없다.
그것은 지옥에 떨어진 자를 막 찾아낸 악마의 얼굴이었다.
드디어 장 발장을 잡았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외모에 나타나게 했다.(5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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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레 미제라블 2>를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