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이 책의 부제처럼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은 사회 이야기'다.
영미는 입을 다물었다. 고기를 먹는 자는 동물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황당한 분위기를 깰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억지로 수학여행을 갔다. 눈으로 직접 본 동물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돌고래는 일반적인 수영장 크기의 작은 공간을 힘겹게 오가며 조련사의 신호에 맞춰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손뼉 치며 환호를 보냈다. 체험 활동은 잔인했다. 줄을 서서 수심 1미터 정도의 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앞에 돌고래가 배를 보이며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배를 만져 주자 돌고래는 강아지 울음소리를 냈다. 분명 괴로워하는 소리였는데 조련사는 소통하는 중이라 했다. 수십여 명의 손길을 참아 내는 돌고래에게 작은 물고기가 보상으로 주어졌다.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은 자연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만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사가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생태 설명회’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코끼리 서커스도 경악스러웠다. 거대한 짐승이 한 발을 반복해서 들며 바나나를 얻어먹었다. 심지어 코로 농구를 했다. 이를 자연스럽게 익히기까지 ‘조련’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가해졌을지 불 보듯 뻔했다. ‘새들의 낙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조류 체험장은 어땠을까? 묶여 있는 새들에게 자유 따위는 없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를 했다는데, 어이없는 건 태어날 때부터 이 상태였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된다는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사람들의 구경할 욕심으로 동물이 본성마저 잃고 있으니 안심이라도 해야 할까?(79~80쪽)
동물의 서식지를 지키고 동물을 보호하는 게 인류의 당면 과제라면, 동물을 관람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동물을 직접 눈으로 관람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돌고래 배를 만지지 않는다고 해서, 또 코끼리의 재롱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수학여행이 엉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물원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상상해 보면 별문제가 없다. 그저 살아생전 기린을 눈앞에서 못 보고, 사자가 잠만 자는 광경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정도다. 그런 걸 직접 보는 게 인간의 존엄한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85쪽)
⇨ 동물이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동물원을 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낯설게 보기’가 필요한 이유다.
동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동물의 왕국’이란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