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대체로 사람이라면 ~~~~ 해야 한다고 규정된 것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척박한 곳에서 척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기본적인 것조차 지킬 여력이 없다. 불행이 거듭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출구가 없는 삶의 여러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 읽은 뒤라스의 문장은 불행을 열거한 내용에 비해 담담하고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매력적이기도 해서 책을 읽는 순간부터 몰입해서소설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나라의 모든 것을 긁어모아 수탈해가는 제국주의자들은, 그곳에서 유토피아적인 삶을 살고자 희망하는 자국의 사람들에게까지 강제로 빼앗은 남의 나라 땅을 불하하며 뒷돈을 요구한다. 그래야 좋은 땅을 내어준다.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던 쉬잔과 조제프의 순진했던 어머니는 그동안 고생하며 모든 돈을 다 투자하여 인도차이나 캄보디아 해안 지역의 땅을 불하받는다. 그러나 불하받은 땅은 경작이 불가능했다. 매해 7월에 바닷물이 밀려와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그 물에 잠겨 버린다.(p23) 어머니는 그곳의 농민들과 함께 태평양 남중국해의 바다에 맹그로브 통나무로 방조 제방을 쌓아 밀려오는 바닷물을 막고자 한다. 어머니는 땅을 저당 잡히고 대출받은 돈으로 담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광적인 희망으로 마침내 오랜 마비 상태에서 깨어난 평야의 농부 수백 명이 온 힘을 쏟아 부어 제방을 쌓았는데, 그 제방이 태평양 파도의 단순하고 가차 없는 공격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마치 카드로 쌓은 성처럼 그대로 무너져 버린 광경을 어느 누가 비탄과 분노 없이 떠올릴 수 있겠는가? 또 어느 누가 도대체 그런 어처구니없는 희망이 왜 생겨났는지 밝히기보다는 그냥 모든 것을, 그 평야를 지배해 온 비참한 가난부터 어머니의 발작까지 모든 것을 운명적인 그날 밤의 사건 하나로 설명하고 싶은, 천재지변이라는 간략한, 하지만 매력적인 설명으로 만족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낼 수 있겠는가? -p28]

 

크지 않지만 태평양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있는 바다에 그저 통나무로 방조 제방을 쌓는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무모하다. 그 무모함은 이성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의 출구와 대안이 없는 사람들은 무모함이라는 것에 가진 것 전부와 심지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는 병이 들어 발작을 하고 자식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기만 한다. 한 번씩 그 분을 삭이지 못해 딸 쉬잔을 계속 때리기도 한다. 희망을 잃은 조제프와 쉬잔 역시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가 비포장도로에서 나타나 도시로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린다. 얼굴이 예쁜 쉬잔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남자들에게 몇 번 키스를 받기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조 씨라는 식민지에서 일확천금에 성공한 전형적인 투기꾼의 외아들(p64)이 나타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예전에 보았던 영화, ‘연인이 연상되었다.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에 나오는 모습들과 이 소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도 소녀가 중국인을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제방을 쌓았던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연인과 마찬가지로 <태평양을 막는 제방>뒤라스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책의 표지는 십대의 뒤라스의 실제 모습이다. 작가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겪었던 것을 쉬잔의 가족들을 통해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비겁하고 철면피이며 뻔뻔하기까지 하다. 남이 사주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떠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으로 숙성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모습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결국 조제프를 떠나보낸다. 쉬잔은 그를 따라간다. 그들의 떠남이 불행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희망으로 비치는 이유는 그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친근하지는 않지만 측은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진정성이 있다.

 

작가는 자신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더 열악하고 고통만을 안고 사는 그곳 식민지 농부의 삶을 자세히 여러 부분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의 여과 없는 표현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사실 아이들은 죽어야 했다. 평야는 좁았고, 여전한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바다는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물러나지 않을 터였다....그런데 바닷물이 어디까지 올라오든 아이들은 악착같이 태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어야 했다. 만일 몇 년 동안 죽지 않으면 들판은 아이들로 가득 찰 테고, 다 먹일 수 없는 그 아이들을 개에게 주어 버리거나 숲 어귀에 데려다 놓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호랑이들마저 아이들을 먹는 게 신물이 나서 더는 잡아먹지 않으리라. -p120~121]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채 웃을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웃음에 더 크게 웃게 되고, 헛헛하게 변한 웃음이 결국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을 불러낸다.

마치 영화 애정만세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 소설이 딱 그 느낌이다.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봐요. 다가오는 해에 만일 내가 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면, 다시 한번 실패할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없으면 당신들을 죽이라고 시키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남겠습니까? -p301]


댓글(51)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하나의책장 2022-01-10 0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2-01-10 13:46   좋아요 0 | URL
하나의책장님!
감사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머싯 몸의 소설, ‘케이크와 맥주를 읽으며 능수능란하고 용의주도한 글쓰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를 생각했다. 칭찬인 듯 하면서 야유와 조롱이 가득하고, 위트 있고 산뜻하면서도 거기엔 무거움이 있다. 일정한 스토리가 있지만 중간 중간 펼쳐지는 몸의 소설론을 비롯해 작가들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가히 압도적이다. 꼬박 2번을 읽은 이 소설은 톡 쏘는 시원함과 목울대를 넘어가는 보리맛의 묵직함, 기분 좋으면서도 약간 슬프고 씁쓰레한 취기를 주는 맥주를 마신 후의 느낌 같았다.

 

나는 맥주를 좋아해 즐겨 마신다. 그런데 한 번도 케이크와 맥주를 같이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에서 한참 머물렀던 것은 맥주와 케이크에 들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허름한 펍에서 흑맥주 마시기를 좋아하고 그곳에서 여급인 로지를 만나 결혼한다. 영국인의 습성을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맥주는 서민적이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솔직한 세계인데 반해 케이크는 그 반대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도 잠시 생각했다.

 

소설가인 에드워드가 글로 세밀하게 나타낸 맥주의 세계는 그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명성을 얻고 소설이 팔리기 위해서는 우아한 환경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달과 6펜스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주변의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열정만으로 예술가의 삶을 산 사람도 있고, 이 소설의 앨로이 키어처럼 가식적이며 이기적인 세계에서만 머물러도 동시대 작가들 중 로이만큼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확고한 위치를’(p16) 거머쥘 수도 있는 것이다. 서머싯 몸은 이 소설에서 작가들의 세계를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것을 읽으며 독자인 우리들의 책의 선택이 얼마나 편협해질 수 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류 경과 토비 경에게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말하자 토비 경은 묻는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p300, 해설에서]

 

물질적 쾌락삶의 유희를 좇는 사람은 이 소설에서 로지 갠인데, 로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전히 그녀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권위와 관습적인 시각으로의 그녀에 대한 비판은 반대하고, 글 쓰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것에 대한 외로움도 이해하지만, 삶의 유희가 꼭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인 보상이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서머싯 몸 자신인 듯한 윌리 어셴든은 로지의 행동은 그녀의 타고난 성품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앨로이 키어에이미 드리필드라는 경직되고 특별한 것들만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척점으로 로지의 역할이 필요할지 몰라도 여성의 입장에서 로지처럼 행동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에드워드를 떠나기 전 에드워드는 자신의 작가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써낸다. 그런 그에게 로지는 뮤즈의 역할만은 톡톡히 한 것 같다.

 

[그녀는 아주 단순한 여자였어요. 건강하고 천진한 본능을 가진 여자 말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죠. 사랑을 사랑했어요....

 

그럼 그냥 사랑의 행위라고 해 두죠. 천성이 정이 많은 여자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 -p274~275]

 

로지에 대한 평가와 생각은 독자 개인의 몫인 것 같다.

 

작고 정체되어 있는 곳, 여전히 계급사회의 벽이 있고 근엄하고 폐쇄적인 블랙스터블에서 이루어지는 드리필드 부부와 어쎈든의 우정은 금기를 깨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답답하고 고루한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세계는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다.

 

블랙스터블의 한 영지의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 난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젊었을 때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보헤미안으로 산다. 그가 어떻게 작가가 되기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며 살아간다. 에드워드가 죽고 그의 집을 방문한 어셴든은 그의 사진을 보며 남들에게 보이는 에드워드의 얼굴은 가면이라고 한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라 여기는 두 꼭두각시에게 냉소적이고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 유령, -p272]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항상 궁금하다. 끊임없는 창작 속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생명의 잔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내용이 너무 적나라해 사람들은 그것이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지는 나중에 어셴든을 다시 만나 그 내용은 실제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의 비극을 글로 쓸 수 있는 작가들에 진절머리를 낸다. 어셴든은 작가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재가 되어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4~295]

 

, 이놈의 유일한 자유인이여, 빌어먹을 작가들이여!

서머싯 몸은 가차없이 케이크와 맥주에 자신의 자유를 실천한 것 같다.

그것이 또한 여지없이 시원하고 재미있다.



댓글(67) 먼댓글(0) 좋아요(6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mini74 2021-12-09 16: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는 중만 한달째 ㅎㅎ ㅠㅠ

페넬로페 2021-12-09 18:1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읽고 계시는 책이 워낙 많아 그러실 것 같아요.
저도 많은 책이 심지어 여러 달에 걸쳐져 있어요**

미미 2021-12-09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북플의 소중한 별 페넬로페님 당선축하드려요! 항상 빛나는 글 감사해요^0^*

페넬로페 2021-12-09 18:12   좋아요 4 | URL
미미님, 감사드려요**
제가 여기 북플에서 이렇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있으니 어찌 이곳을 사랑하지 않으리오**
우리 모두 별이라서 좋아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12-09 18:43   좋아요 2 | URL
쎄인트님, 정말 감사드려요**

독서괭 2021-12-09 1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12-09 18:43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12-09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12-09 23:24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항상 감사드려요♡♡

초란공 2021-12-09 2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도 알라딘 서재 메일에서 페넬로페님의 글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12-09 23:25   좋아요 3 | URL
초란공님, 감사드려요.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초란공님의 좋은 글, 기대합니다^^

러블리땡 2021-12-10 0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1-12-10 02:58   좋아요 2 | URL
러블리땡님,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요즘 책 많이 읽으시던데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희선 2021-12-11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축하합니다 2021년 마지막 달 십이월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밖에 나가기는 좀 안 좋겠지만,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1-12-11 10:43   좋아요 2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밖에 잘 나가지 못하니 책으로 위로 받아 행복합니다**

leepapggot 2022-02-2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이크와 맥주를 읽고 독서토론에서 발제를 해야하는데 책이 넘어가지 않아 한달 이상 끙끙거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제가 무건운 건지, 문장이 무거운 건지, 저의 독해력이 가벼운 건지. 리뷰를 쓰시는 분들이 대단합니다.

페넬로페 2022-02-23 08:42   좋아요 0 | URL
독서토론에서 발제를 하시려면 아무래도 부담이 클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할수록 더 무겁고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독서동아리를 하는데 리더분께서 매번 논제를 만드시는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leepapggot님!
2월인데도 날씨가 추워요~~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힘든 이유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복잡성도 무시할 수 없다. 나와 타인 사이의 연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기가 쉽다. 부모는 부모로서, 은혜를 베푼 자는 그것을 받는 자를 소유하고 지배하려 한다. ‘자신만만한 현재의 위치(P157)’는 누군가를 조종하고 파괴시킨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 우유부단, 미련, 아무것도 아닌, 중요하지 않은, 무시해도 좋은 것에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거는 인간의 나약함과 아이러니 역시 관계를 극단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미완의 소설인 명암은 인간의 관계에서 오는 미묘함과 복잡성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어떤 배경이나 서사의 구조보다 사람의 말(대화)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나타낸다. 거기엔 온통 허위와 위선 뿐이다. 동정과 이해는 찾아볼 수 없다. 소세키가 여러 작품을 통해 추구해온 것들이 명암에서 절정을 이룬다. 적나라한 모습보다 숨겨지고 음흉하게 인간의 이기심과 질투가 그려지는 이 소설을 소세키는 어떤 모습으로 끝을 맺으려 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완의 이 소설이 오히려 열린 결말로 읽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명암에는 끊임없이 두 세계가 펼쳐진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올케와 시누이, 여유와 가난, 과거와 현재, 과거를 공유하는 자와 거기서 소외된 자등이 서로를 견제하고 눈치를 보며 쓸데없고 가치 없는 경주를 한다. 숨겨지지 않는 경멸과 혐오를 드러낸다.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싫어해서 외로움을 선택하고, 그 무엇보다 합리적인 것을 원하는 내가 이 소설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번역자 송태욱의 말처럼 인물들 사이의 긴장 관계에 나 역시 숨이 막혔다.

 

[그렇다면 명암은 대체 어떤 소설일까? 단적으로 말해 이면서 동시에 타자를 그 타자성에서 받아들이고, 게다가 각자가 자신을 개아(個我)’로서 확립하면서 자신을, 타자를 살려나가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실험적인 시도야말로 명암의 라이트모티프(주제적 동기). -P590, 강상중의 해설에서]

 

타고난 자존심이 있고 상황판단이 빠르고 영리한 오노부는 자기가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꼭 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게(p232)’ 만들고 싶어 하는 여자이다. 그녀에게는 다른 여자와는 달리 과감한 면이 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는 날에도 가부키를 보러 간다. 남편이 은혜를 입고 있는 오시카와 부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런 오노부에게 사람들은 우호적이지 않다. 남편인 쓰다에게조차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

 

허세가 심하고 서른 살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도움을 받는 쓰다는 우유부단하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아내인 오노부를 대하는 태도도 미적지근하다. 아내보다는 오시카와 부인의 말을 더 잘 듣는다. 쓰다의 이런 태도가 세상 사람들이라는 타인의 부류에게 오노부를 더 위태롭게 한다. 그는 아직 완전한 성인이 되지 못한 듯 하다. 쓰다와 오노부는 사랑의 전쟁(p454)’이라는 가시밭길의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정복하는 데서만 만족을 느낄 뿐이다.

 

명암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오시카와 부인이다. 관계의 어둠을 만드는 핵심 인물이며 타인을 지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의적인 여자이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오노부의 개성과 내면까지 개조시키려 한다.

 

[내가 오노부 씨를 반드시 좀 더 부인다운 부인으로 만들어놓을 테니까요. -p427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적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행히 스스로 그것을 인정해야 할 정도로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자신으로부터도 반성을 강요받지 않는 처지에 있는 그녀는 마음 편한 사람이었다. 오노부의 교육. 이 말이 넉살 좋게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p428]

 

가난하고 직업이 없이 팔리지도 않은 잡지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쓰다의 친구 고바야시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가 연상되는 인물이다. 일본에서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한 그는 조선으로 가고자 한다. 쓰다에게 헌 외투를 얻고 조선으로 갈 여비를 갈취하다시피 하는 고바야시는 소세키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인 모순의 부산물이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만족하는 사람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며(p291)’, 특히 쓰다를 못마땅해 한다.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쓰다와 오노부의 관계에 비겁하게 개입하며 그들 사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굴곡진 인생에서 진부하게만 살고 또 다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소세키는 항상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피폐해지고 모순된 행동을 하는 정신쇠약증에 걸린 사람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옛 연인, ‘기요코를 만나러 쓰다는 온천장으로 떠나고 거기에서 그가 그녀를 만나는데서 이 소설은 끝난다. 해설에서 강상중은 이 소설을 이니시에이션 소설로 분류시킨다. 유년이나 사춘기에서 성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주인공이 고통스런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인데, 쓰다에게 그 뒤에 어떤 고통이 따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를 확립하면서도 타자타자성을 존중하는 좋은 관계로 끝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쓰다의 행동을 통해 난 희망보다는 더 암울한 결말이 예상된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설사 변한다고 해도 그 변화로 기인된 모든 우연과 결말이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밝고 어둠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정도로 그 경계가 얇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운명을 나누고, 죽음으로까지 치닫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미완의 소설, ‘명암은 이때까지 읽었던 소세키의 소설 중 가장 읽기가 어려웠다. 분량이 많은 탓도 있지만 어떤 특별한 사건보다는 계속되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인간의 심리와 거기에서 오는 변화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이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조금 맞지 않았는데 소세키의 소설을 계속 읽어왔기 때문에 그나마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죽기 전에 집요하고도 깊게 생각한 인간성에 대해 지금의 나 역시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것에 부딪힐 것도 확실하다. 다만 명암이라는 뚜렷한 경계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푸앵카레의 주장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이네. -p19]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1-03 11: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 없을 뿐,,,,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납득하지 않는 것이 인생사 인것 같습니다. 명암은 소세키가 말년에 대작으로 구상했다가 미완성 하게 된 인간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허상에 관한 종합적인 소설이 아닐지,,, 페넬로페님이 읽으신 명암의 해석도 탁월 합니다 ^^

페넬로페 2021-11-03 13:20   좋아요 5 | URL
scott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정확해요. 인간내면의 잠재된 불안과 허상~~다만 그것을 풀어 나가는데에 약간 미흡함을 느꼈어요. 아마 미완성이라 더 아쉬운 것 같더라고요^^

미미 2021-11-03 1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완의 철학이네요~♡ 끝맺지 못했으나 나름대로 길을 열어준 아이러니라...소세키 옹도 페넬로페님의 의견에 ✋ 들어줄것 같아요. 600페이지가 넘어 두렵지만 어쩐지 제 스타일같기도해서 저도 읽어보고 싶은 소설입니다 찜!

페넬로페 2021-11-03 13:23   좋아요 5 | URL
이 소설이 긴 편이고 계속 사람간의 대화가 많아 읽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 대화들을 통해 느낀것이 많은데 다 쓰지는 못했어요. 직접 읽어보시고 감상 같이 나누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11-03 11: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이제 소세키 작품 거의 다 읽으셨겠네요. 인간 본성에 대한 결정판이라고 하니 어떤 느낌일지 알거 같아요~!!
인간의 심리는 언제나 미스테리 한거 같아요 ㅋ 어려운 책 완독을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11-03 13:25   좋아요 5 | URL
소세키의 책을 이제 8권 읽었어요.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한것도 있는데 11월까지 계속 읽을 생각이예요.
그의 작품을 다 읽지 않아도 괜찮을듯 해서 다음으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이예요^^

mini74 2021-11-04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소설들을 충분히 읽고 마무리하는 책 느낌이네요 푸앙카레 이야기에서 이미 어려울 것 같은 ㅠㅠ 근데 페넬로페님 글 읽으면 이 책 또 참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ㅠ

페넬로페 2021-11-04 14:1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매력적인것 같으면서도 약간의 막장 드라마같은 분위기가 풍겨요. 작가가 어떻게 끝을 맺었을지가 궁금하고 미완이기 때문에 약간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서니데이 2021-11-07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요즘 완간된 나쓰메 소세키 전집과는 표지 디자인이 다른 책이네요.
현암사에서 소세키 책이 많이 번역된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1-11-08 15:31   좋아요 2 | URL
저도 다른 책과 달라 이상했는데 자세히 보니 같은 디자인인데 색깔이 비슷해서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현암사 소세키 전집은 디자인도 좋고 송태욱 번역가의 번역도 좋은 것 같아요.
오늘 늦게 산책하고 왔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더군요. 약간 아쉽기도 해요.
서니데이님,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요. 새로운 한 주도 건강 챙기시고 우리 같이 행복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11-08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 리뷰 참 좋아요. 소세키를 읽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은 독자로서 님이 올려주는 리뷰들 읽으며 소세키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플친들은 훔쳐 읽고 아는 척하기 딱 좋은 리뷰들을 왜케들 잘 쓰시는지. 미완성이 600페이지라면 완성본이면 1000페이지 정도 되었겠어요. 저는 이 소설이 아주 흥미롭네요. 말씀대로 인간 마음에 천착해온 소세키의 결정판처럼 느껴지네요. 저는 찜찜!!^^

페넬로페 2021-11-08 17:47   좋아요 2 | URL
정말 이 곳 북플은 책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고 그 느낌들도 다양해 책을 더 읽고 싶어지게 하는 곳인것 같아요~~책읽기님 말씀처럼 이 책이 완성본이었다면 1000페이지는 되었을 것 같아요~~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았는지 몰랐는지 소세키작가는 이때껏 추구한 것들에 어떤 방점을 찍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신경쇠약이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이 신경쇠약에 걸리는 원인이 많이 있지만 소세키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타고난 기질로 인해 괴로움과 고독을 겪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행복추구와 편안함과 단순함이 우선시되는 세계보다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며 남들보다 몇 배로 더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순수하고 연약하지만 지나친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힘들고 특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는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마음을 읽어야만 하는데, 그 집요하고도 모순된 몰두를 이해하기가 어렵고, 곧 지치게 된다.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p139]

 

 

<행인>에서의 이치로역시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식견이 높은 학자이고 시인다운 순수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미남(p104)'이지만 평범한 것들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의식이 깨어있고 주어진 사회의 도덕이나 관습을 그대로 수용하기 싫어하며 자연적인 것을 좋아한다. 반면 그의 동생 지로는 성격이 급한 구석은 있지만 분위기 파악을 잘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잘 맞추어 주는 호감형 인물이다. 부모님도 지로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 이치로를 부담스럽게 여기며 그저 눈치를 볼 뿐이다. 그러면서 애교스럽게 형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 형수,’나오를 원망하기도 하며, 위태로운 그들 부부사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된 <행인>은 지로가 화자가 되어 신경쇠약증에 걸린 형 이치로와 그들 가족들간의 관계를 서술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이해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와 그 책임의 한계까지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생각에 점점 더 빠져드는 이치로는 동생 지로와 아내인 나오 사이를 의심한다. 그는 동생에게 형수와 단둘이 어딘가로 가서 그녀의 정조를 시험해 달라고 부탁한다. <산시로>에서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는 문장에서 느낀 놀라움을 여기서도 똑같이 느꼈다. 아무리 의심이 간다 해도 동생에게 자신의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달라는 부탁을 쉽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말에서 이치로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소세키 작가의 기지와 어떤 실험적인 모습도 엿보인다. 형의 강요로 지로와 형수가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태풍으로 그들은 같이 하룻밤을 보낸다. 물론 그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계기가 그들을 이성적으로 느낄 빌미를 제공한 것일 수도 있다. 불순하고 잘못된 의도는 나쁜 결과를 불러 온다. 집착과 의심은 관계의 복잡함을 만들고 감정을 상하게 해서 사람과의 벽을 만든다.

 

소세키 작가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이중적이다. 오카다가 자신의 부부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할 때, 지로는 오카다는 단지 자신의 아내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를 원하는 것이었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가 생기는 게 두려워서 좀 더 뒤로 미루려는 힘든 세상이라네.(p23~24)’고 생각한다. 이치로는 결혼한 여동생 오사다를 지금의 오사다는 이제 남편 때문에 스포일(spoil)되고 말았다네. 어떤 사람한테 시집을 가든 여자는 남자 때문에 부정해지는 거네. 그런 내가 이미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르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한테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일 아니겠나?(p411)’ 라고 친구 H에게 말한다. 이런 문장에서 소세키가 여성을 보는 시각은 굉장히 선구적이다.

 

그러나 형수 나오를 묘사할 때는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애교가 없다, 의뭉을 떤다, 교태롭다, 요염하다, 냉담하다, 냉소적이다 등 남자나 시어머니의 시각으로 겉으로 관찰된 모습만으로 나오는 표현된다. 나오의 입장을 얘기하지 않고, 나오의 마음으로 작가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며 체념된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이치로가 그녀의 머리를 세 번이나 때렸어도 그녀는 대들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이치로는 자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자신에게 대들고 반항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마음을 가장 피폐하고 하고 외롭게 만든 장본인이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이치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를 동정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모습을 통해서이다.

 

이치로의 가족들이 더 이상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결국 그들은 그의 친구인 H에게 이치로와 같이 여행을 가줄 것을 부탁한다. H는 지로에게 그동안 여행한 경과를 쓴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같이 사는 가족이 아닌 한 발짝 떨어져 이치로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친구는 이치로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그에 대한 관심과 희망을 잃지 말기를 가족들에게 당부한다. 태생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 행한 행동과 생각의 모순으로 인해 나온 결과는 결코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매번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가족들은 지쳐가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문제는 더 이상의 진척이 없을 정도로 모두를 심각하고 어렵게 만든다.

 

소세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인 허무와 고독을 사회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서양이 300년의 활동으로 이루어낸 것들을 일본은 고작 40년에 되풀이하는 사회의 변화를 두고 절대적이고 자기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착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들은 섬처럼 고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치로와 가족 간의 상황이 많이 묘사되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 가족의 어두움과 그림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p375)'는 독일 속담이 너무 허무하고 틀리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떤 것이라도 일방적이거나 한 방향으로 만의 이해만이 요구된다면 그 다리는 튼튼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지로와 형수 사이의 묘한 감정의 흔들림에 혹했다. 그렇게 읽고 이 작품을 사랑했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읽어야 하는 번역을 하면서는 소세키 자신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을 아프게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소세키 자신이 보여 눈물겨웠다. -p436]

 

번역자 송태욱의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일을 쉬고 있을 때 시간이 많이 남아 문화센터에 소설 창작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으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우리들을 지도한 선생님은 그 당시 상당히 유명한 남자 소설가였다. 말이 소설 창작이지 사실 가뭄에 콩 나듯이 누군가가 써 온 소설을 읽고 그것에 대한 평을 하고는 그냥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선생님은 술을 마시며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자신들처럼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연애를 좀 허용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어서 그런지 그때 그런 말을 들으며 어떤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번역자, 송태욱의 말을 읽으며 불현듯 그 때 그 소설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치로가 소세키의 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세키의 후기 에고’ 3부작의 하나인 <행인>을 통해 이제 작가의 마음에 들어와 있다.

 

[구름이 하늘을 어둑하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리는 일도 있을 거고 또 비가 내리지 않는 일도 있을 거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네. 자네나 어르신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며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행복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네.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 하고 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인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 -p413] 


댓글(37)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10-20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0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10-20 16: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2의 성>읽다가 결혼한 남성들의 이중성에 관해 읽었는데 페넬로페님의 감상과 소세키의 통찰에 깜짝ㅋㅋ 자신의 이중성을 아는 것과 모르는것은 큰 차이가 있겠죠. 이치로가 소세키의 분신같다에 저도 한표👆(n˘v˘•)¬

페넬로페 2021-10-20 21:11   좋아요 5 | URL
소세키작가는 현대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선구적인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소설이 지금 읽어도 별로 낯설지 않은가봐요.
그래도 남자 작가이다보니 아무래도 이중성이 있더라구요**

mini74 2021-10-20 18: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는 이들은 결국 외로울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이해할 수도 이해받기도 힘든 ㅠㅠ 소세키를 읽는 가을 , 무지 어울리는 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10-20 21:13   좋아요 6 | URL
외롭고 고독할지언정 절대적이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삶이 힘들 수 밖에 없을것 같아요.
매번 끝에 이 작가에게 굴복하고 말아요 ㅎㅎ

새파랑 2021-10-20 18: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인> 곧 읽어봐야 겠어요. 스포를 안당하려고 살짝 읽으려고 했는데 페넬로페님 글을 자세히 읽어버렸네요 ㅜㅜ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건 정말 어렵고,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잠자냥 2021-10-20 18:39   좋아요 6 | URL
스포 알고 읽어도 재미난(?) 작품입니다!

페넬로페 2021-10-20 21:39   좋아요 5 | URL
저도 다른 분들 리뷰 다 읽어도 금방 까먹더라고요. 이 작품을 동생 지로의 시각으로도 쓰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길어질것 같았어요^^

막시무스 2021-10-20 18:1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사람사이에 일방적으로 놓인 다리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말씀이 정말 공감가는군요! 내가 건너갈 뿐 다른 사람이 건널수 없거나 다리위에서 만나 소통할 수 없는 다리를 저도 많이 놓고 있다는 생각이드네요!ㅠ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페넬로페 2021-10-20 21:42   좋아요 7 | URL
저는 이렇게 끝까지 조금 제 주장을 했는데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게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일방적이더라도 이해하고 봐주라는 것 일수도 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결론도 모호하고 어려웠어요**

coolcat329 2021-10-20 19: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동생에게 자기 부인의 정조를 시험해달니...이치로 참 특이하네요. 신경쇠약의 원인이 사회에도 있지만 가족간에도 어떤 문제가 있나보군요.
이 작품은 찜해둔거긴 한데 점점 더 좋아지네요.

페넬로페 2021-10-20 21:43   좋아요 7 | URL
저 문장이 저에게 많이 쇼킹하더군요. 겉으로 보기에 이 가족은 큰 문제는 많이 없어 보였어요.
쿨캣님 어서 읽으시고 느낌 남겨주세요^^

붕붕툐툐 2021-10-20 22: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남자 소설가 누굴지 궁금하네요~ㅎㅎ
제가 좋아하는 분들은 다 소세키를 읽으시더라구요?ㅎㅎ 저도 제2의 성 다 읽으면 도전해볼게용!ㅎㅎ

페넬로페 2021-10-20 23:48   좋아요 5 | URL
소세키작가의 소설이 현대적인 면도 많지만 옛날 저의 아버지 시대의 얘기 같기도 해서 친근해요~~
툐툐님, 제 2의 성 완독, 응원합니다**

scott 2021-10-22 00: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인다운 순수한 기질을 갖고 태어난 미남]인 이치로가 바로 작가 소세키의 분신 입니다
행인 재독 할때 이치로의 행동과 사고를 따라 가다보면 소세키의 본연의 모습이 !

페넬로페 2021-10-22 06:57   좋아요 4 | URL
scott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나오와 이치로 사이도 작가와 그의 아내가 연상되더라구요~~
후기작이 점점 더 흥미롭습니다^^

scott 2021-11-05 16: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바뀐 프로필 사진 넘 ㅎ 멋집니다!
주말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페넬로페 2021-11-05 18: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산책길에서 찰칵했습니다.^^

mini74 2021-11-05 16: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행인 좋았던 리뷰!!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1-11-05 18: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그레이스 2021-11-05 16: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11-05 18:29   좋아요 2 | URL
감싸합니당**

독서괭 2021-11-05 16: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놓쳤던 글인가봐요.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잘 읽어볼게요^^

페넬로페 2021-11-05 18:30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감사드려요**

미미 2021-11-05 17: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당선 축하드려요! 덕분에 소세키 다시 도전할꺼예욤^^*♥

페넬로페 2021-11-05 18:31   좋아요 4 | URL
미미님, 감사합니다.
소세키를 읽다보니 내용들이 독서토론용으로 참 좋더라고요.
감상 기다리겠습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11-05 18:31   좋아요 5 | URL
서니데이님, 감사드려요**
좋은 저녁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파랑 2021-11-05 18: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책인데 이 책이 당선되었군요~!!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11-05 18:32   좋아요 4 | URL
아, 지금 새파랑님께서 읽고 계시는군요!
넘 기대되는데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용**

초딩 2021-11-07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앙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1-11-08 00:50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1-07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1-11-08 00:51   좋아요 0 | URL
thkang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열심히 책 읽고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러블리땡 2021-11-07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제가 좋아하는 글이라서 항상 열심히 정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려요~ 좋은 밤되세요

페넬로페 2021-11-08 00:54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부족한 저의 글을 정독해주셔서 감사드려요. 11월의 둘째주가 시작되었어요.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비판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사람을 일상에서 마주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거나 그 사람에게 굴레를 씌워 객관적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소설에서 만나면, 잘 설명되어진 사연과 생각, 느낌, 이미지로 그때의 상황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소설의 힘일 것이다.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모르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준다. 이것은 지금, 현실에서의 나를 성숙하게 만들며 사람과의 소통에 도움을 준다. 소설은 또한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하여 희미하고도 흐릿하게 사람을 볼 수 있게도 한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할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넘겨 버린다. 책을 읽어나가며 정확하게 내가 받아들이고 비판해야 할 것을 구분해야겠지만 쉽지 않다.

 

소스케오요네에게도 그렇게 사로잡혀 버렸다. 소설의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로 인해,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희망의 그림자가 거의 비치지 않는 듯한이 부부에게 뒤늦게 객관성을 부여하기는 늦어버렸다. ‘나쓰메 소세키작가의 글의 힘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몰입해 읽어 나가며, 소설 <()>을 통해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가 정한 도덕적이고 관습적인 잣대를 들이밀기엔 인간의 성정은 너무나 복잡하며, 운명이라는 괴물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을 점령해 버린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도쿄의 상당한 자산가의 아들이며 당대에 걸맞은 재인의 풍모를 갖추고 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낙천가였던 소스케에게 지금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분명 과거라는 것에 많은 지배를 받고 있는 소스케와 오요네부부는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이 살아간다. 그들 스스로 동굴에 들어 않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귀찮아하며 용기를 내지 못한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고 활기 없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쓸쓸하고 의좋은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좋은 일을 기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 아닐까?” 하는 말을 과감히 내뱉는다. 아내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묵묵히 마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자신들은 스스로 만든 과거라는 어둡고 커다란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p51]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을 배경으로 메이지 시대의 화려한 변화를 거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소스케부부가 동굴 속에 갇혀 가난하고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 소스케의 사촌인 야스노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다랑어 잡이 배에 석유 발동기를 장착하고, 잉크 없이 인쇄를 할 수 있는 기술 등에 자금을 투자해 사업을 하고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사무라이의 후예인 집주인 사카이역시 여유 있게 잘 살고 있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 주눅들어있는 소스케는 당당히 나서서 숙부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낙인찍힌 사람의 소극적인 행동은 자신도 비참하게 하지만 동생인 고로쿠에게도 학업을 중단하게 만든다. 또한 그런 일에 편승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이용해먹는 숙모같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과 행동만을 보며 왜 그렇게 사냐고 비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인이 처한 상황과 생각에 온전히 들어가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쉽게 그렇게 행동한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신경쇠약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담담히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모습도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독, 가난이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그들의 과거를 소설 중반부의 끝 즈음에 밝힌다. 그 사실을 밝히기 전에 오요네가 세 번의 유산을 겪는 과정을 서술한다. 남자 작가인 소세키가 오요네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은 탄복할 만큼 절절해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엄숙한 지배 아래에서 서 있던 몇 달 며칠의 자신이 신기하게도 똑같은 불행을 되풀이하도록 만들어진 어미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귓가에서 때아닌 저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이불 속에서 삼칠일 동안의 안정을 탐할 수밖에 없도록 생리적으로 강요당하는 사이 그 저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그녀의 고막을 울렸다. 오요네가 삼칠일 동안 편안히 누워 지낸 시간은 정말 비할 데 없는 인내의 3주일이었다. -p164]

 

소스케와 오요네의 과거의 사건은 생각보다 짧게 서술되어 있다. 난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한 사람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몹쓸 짓을 하고, 그 모든 것과의 관계도 끊을 만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 밑에서 봄이 머리를 쳐들 무렵에 시작되어 벚꽃이 다 지고 어린잎으로 색을 바꿀 무렵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일은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적절히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럴 수 있었다면 그 운명의 장난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에 부도덕한 남녀로서 부끄럽게 비치기 이전에 이미 불합리한 남녀로서 불가사의하게 비쳤던 것이다.....

그들은 창백한 이마를 순순히 앞으로 내밀고 거기에 불꽃과도 같은 낙인을 받았다. 그리고 무형의 쇠사슬에 묶인 채 손을 잡고 어디까지나 함께 보조를 같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89~190]

 

소스케는 둘이서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그들의 그림자가 구부려져 절반쯤 토담에 비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문 앞에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그들 스스로 문 안에 갇혀 있게 했고 세상의 문 밖이라는 유형지에서 평범한 파란의 시기를 보내게 만들었다. 그 경계에서 탈피하고자 소스케는 종교의 힘을 빌린다. 그러나 10일 동안의 선사에서의 소스케에게 주어진 공안은 허무하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결국 그는 현실로 돌아가 정면으로 돌파해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신 스스로 문을 열 수 밖에 없다.

 

절벽 바로 아래에 있는 소스케의 집은 햇빛도 잘 들지 않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염려가 있다. 하지만 원래 대숲이었던 곳을 개간할 때 뿌리를 파내지 않고 그대로 묻어두어 땅은 의외로 단단하다고 한다. 소스케와 오요네가 용기를 내서 문을 연 그 곳이 금방 겨울이 올 정도로 그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굳건한 사랑이 위태로워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땅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뿌리처럼 견고하기만 하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무척이나 견고하다.

 

하이쿠를 사랑하고 많이 쓴 작가답게 이 책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푸른 하늘에 바람 불어 구름 사라지니, 수많은 보석을 모아놓은 듯한 달이 동쪽 산에 떠오르네.

-밖은 굵은 비로 갇혀 있다.

-이 쓸쓸한 하늘 아래로 젖으러 나가는 소스케에게...

-겨울 해는 짧은 하늘을 적나라하게 가로질러 서쪽으로 얌전히 떨어졌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악착같이 붙어있는 여름을 떼 내고자 비를 많이 불러오기도 한다. 촉촉하게 비 내린 다음날, 그만큼 햇빛의 색은 희미하고 바래져 있다. 그리고 또 비를 불러온다. 연거푸 가늘게 가을비가 내리던 날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의 문장과 '소스케와 오요네는가을비와 함께 오는 차가운 안개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고 젖어 들었다.

 

[그들은 자연이 자신들에게 초래한 가공할 만한 복수 앞에 부들부들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그 복수를 감수하고 얻은 서로의 행복에 대해 사랑의 신에게 향을 피워 올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채찍질을 당하면서 죽음을 향해가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 채찍 끝에 모든 것을 치유해주는 달콤한 꿀이 발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170]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10-12 15:3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문장은 정말 시처럼 아름다운거 같아요. 그래서 문장이 더 그림처럼 느껴지는것 같아요. 저도 둘의 과거의 일이 자세한 설명없이 간략히 묘사한 게 좋은거 같아요. 이미 지난 일을 들춰서 설명하면 오히려 작품의 흐름에 안맞을거 같다는 ㅎㅎ 많이 여운이 남는 작품인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10-12 17:03   좋아요 3 | URL
특히 문의 문장이 참 좋더라고요.
내용도 그렇고 인물들의 분위기가 애잔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방금 새파랑님 서재에 가서 문 리뷰 자세히 읽었는데 저와 느낌이 같은 부분이 있어 반가웠어요^^

새파랑 2021-10-12 17:56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니 영광입니다~!!
제목을 <문>으로 지은건 정확한거 같아요 ^^

레삭매냐 2021-10-12 16: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고저 믓지십니다 -

꾸준한 소스키상 읽기!
존경하옵니다.

저도 닐거야 하는데...

페넬로페 2021-10-12 17:05   좋아요 4 | URL
소세키의 전작은 읽기가 힘들듯 해요. 몇 권만 더 읽고 다른 곳으로 넘어 갈 예정입니다^^

미미 2021-10-12 16: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넬로페님이 써 주신 첫 문단때문에 소설 읽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소설에는 도덕의 경계가 없다고 표현하는것도 같고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문단 (가을은 아름답지만...)시적이예요~♡♡

페넬로페 2021-10-12 17:07   좋아요 4 | URL
네, 그렇죠!
소설의 그런 장점으로 계속 읽어내는 것 같아요^^
소세키 작가의 분위기를 조금 흉내내어 봤는데 영 꽝입니다 ㅎㅎ

mini74 2021-10-12 16: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앗 새파랑님에 이어 페넬로페님까지 소세키 장작을 태우시는겁니까 ㅎㅎㅎ 저도 소설의 힘에 동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10-12 17:09   좋아요 6 | URL
장작 열심히 태우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내는 분들이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새파랑 2021-10-12 17:56   좋아요 6 | URL
전 페넬로페님 따라 읽은것 뿐입니다~!!

scott 2021-10-12 18: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소스케와 요오네의 삶을 하이쿠 시처럼 압축 시켜 놓은 것 같습니다
아내가 연달아 아이를 유산 한 후에 새 생명이 태어 났던 당시에 써서 인지
소세키 작품 중에 가장 애잔하고 따스한 느낌이 가득~

페넬로페 2021-10-12 20:18   좋아요 6 | URL
아무래도 작가의 그런 경험이 있어 더 애잔하게 쓰인것 같아요.
한번씩 책을 읽을 때 작품의 내용보다 문장에 더 끌릴 때가 있더라고요^^

붕붕툐툐 2021-10-12 23: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 진짜 너무 좋아요. 소설의 힘에 공감합니다. 현암사 소세키 책이 올라올 때마다 언젠간 만나겠지 하고 있어요~ 문이라는 작품에 또 맘이 가네요~ㅎㅎ

페넬로페 2021-10-13 00:02   좋아요 2 | URL
소설의 힘과 매력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이 나오고 우리는 흡입하듯 또 소설을 읽는 것 같아요.
토툐님의 ‘문‘을 읽고 난 후의 느낌, 넘 궁금합니다^^

바람돌이 2021-10-13 0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의 쓸쓸하고 의좋은 생활이란 표현이 훅 들어오네요. 소설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에요.

페넬로페 2021-10-13 09:25   좋아요 2 | URL
‘쓸쓸하고 의좋은‘은 소세키 작가의 표현입니다.
이번 책은 모든 곳에서 작가의 문장과 표현이 돋보였어요.
제가 특히 이 책에 몰입해서 저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들이 참 좋더라구요!

서니데이 2021-10-13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한 세기 전 사람들은 지금과 많이 다른 생활이었을거예요. 그렇지만 그 때 사람도 지금 사람도 각자 자기 시간을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님 잘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페넬로페 2021-10-14 01:33   좋아요 1 | URL
네, 그 어디서나 어려움은 존재하고 그러한 것을 겪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추운 겨울 한복판에 있는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오늘은 일교차가 심하네요.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목요일이 된 오늘도 행복하시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