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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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어 며칠 앓은 적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으로 바로 갔겠지만, 요즘은 열이 나면 병원 문턱에도 갈 수 없으니 일단 해열제로 버텨보기로 했다. 그런데 해열제를 먹어도 열은 내리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혹시 암에 걸린 건 아닌지, 몸에 다른 지병이 시작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많이 힘들고 두려웠다. 만약 내가 아프면 육체의 고통도 견뎌내기 힘들겠지만, 난 아직까지 죽는 것이 두렵다. 알려진 사후의 세계로 가는 것도 그렇고, 그런 세계가 없더라도 갑자기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이 허무하다. 시몬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 여사의 말처럼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섭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것이 인간에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나 겪어야 할 당연한 거지만, 죽음은 불안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에게 치명적인 것은 넘어지는 것이다. 특히 욕실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거동이 힘들어진다. 시몬의 어머니 역시 욕실에서 넘어져 2시간을 기어 겨우 전화기 있는 곳으로 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퇴골 골절인줄 알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암이 발견되었고, 수술한 후 고통스럽게 겨우 30일을 더 살고는 죽는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30일간의 엄마의 병상일지와 더불어 엄마와 자신간의 애증의 관계와 추억, 딸이 바라본 엄마의 삶,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치료의 불필요성 등이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인의 정서로 봤을 때, 이 담담함은 얼핏 냉정하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난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지금 나에겐-이 책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것이 사실인 두 분의 노모가 있고, 딸아이가 한 명 있어서인지 보부아르의 표현이나 생각에 많이 공감되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고 판단하는 엄마의 모습은 별로 일관적이지 못하다. 고집스럽다 싶을 만큼 낙천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신경질적이면서도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표현된 그녀의 엄마는 딸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딸에게 바랬다.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 당연히 그렇듯이 자식에게 집착한다. 두 딸이 친한 것도 싫어할 정도로 자신감도 없었다.

 

"내게는 권리가 있다"

이런 가혹한 말로 자식을 짜증나게 하고 얽어매었다(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부모로서 조금은 이러한 보상을 딸에게 원하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엄마와의 갈등으로 일찌감치 집에서 나온다. 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계속 나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했을 때, 시몬의 어머니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한 번씩, 나는 언니 두 명과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 각자가 표현하는 엄마는 다 다르다. 그리고 엄마의 단점과 그녀에 대한 원망의 내용도 다르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엄마의 모습으로만 각인되고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엄마를 본다. 여자로서의 엄마, 남편의 아내로서의 엄마는 잘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보부아르 역시 그럴 것이다. 엄마라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행동에 대한 느낌은 시몬의 자의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p146]

 

보부아르는 자신의 엄마를 장례미사에서 호명되는 이름으로 다시 주체적으로 생각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허해지고,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치르며 엄마와 화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보부아르가 원하는 여성의 삶으로 살아주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영위해나갈 삶이 있고,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부아르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그렇게 엄마와 화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와 더불어 시간 역시 소멸한다. 그리고 나이 들어 갈수록 나의 과거는 점점 쪼그라든다. 그 결과, 내 나이 열 살 때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억압하던 적대적인 그 여자와 더 이상 구별되지 않기에 이른다.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 때면 나는 두 여자 모두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P148]

 

친정엄마가 당신의 수의를 미리 맞추어 두신건 거의 30년 전이다. 작년에 친정집이 이사를 했는데, 치매를 앓으시는 엄마는 당신의 수의를 가져왔는지 계속 물으신다. 인간이 죽고 나면 곧 모든 것이 타고 없어지는데 잠시 입을 그 옷이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꼭 믿으시기에 그러실 것이다. 난 가톨릭교도이지만 영생이나 천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하는 건 알지만 그냥 난 그렇다. 죽음이 두렵지만 죽은 후엔 모든 것이 소멸되었음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프랑수아즈 여사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병상에 있을 때 병자성사를 거부한다. 마사 경본이나 십자고상, 묵주를 서랍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신앙에 대한 의심도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겐 종교가 삶의 버팀목이자 핵심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위한 신앙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기계적이고 마음에도 없는 기도를 거부한 것이다. 내가 아는 자매님은 묵주를 돌리며 남을 험담한다. 같은 신앙인이지만 난 그런 모습에 질겁한다. 병원에서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 뜻대로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솔직하지 못하다. 그냥 살려달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것이 기도의 형식에 맞지 않으니 그녀는 그 거짓된 기도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라고 말하며 병원에서도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하루를 충실히 보내려 한다. 죽음 앞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죽기 전 하루라도 더 성실하고 열심히 살려는 집념이며, 생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병원.

육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병원에 들어서면, 우리는 더 이상 주체적 인간이 될 수가 없다. 본의 아니게 성기를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지 못해 침대에서 배변을 해결할 수도 있다. 고통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상관없어지고 그저 지금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랄뿐이다. 인간적인 최소한의 체면조차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보부아르는 불필요한 생명연장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그것에 대한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이 책에는 무수히 많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난 슬펐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는 것에 대한 신산함도 느꼈다. 어찌 그 가혹하고 모진 고통들이 몇 자의 글로 다 표현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의 두 노모는 예전에는 잘 하지 않으시던 말씀을 요즘 많이 하신다. 내가 전화를 걸 때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렸을 때, 항상, ‘전화해주어 고맙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고맙다’.....그렇게 나의 두 어머니는 나와 화해하고, 순수해지시고, 너무나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저 그 분들에게 아주 편안한 죽음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던 셈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이 일을 각기 혼자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엄마는 회복기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임종에 이르는 과정에 해당했던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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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2 01: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늙으신 어머님들이 고맙다라는 말을 더 자주 하시게 되는게 일반적인건가봐요. 저희 시어머님께서도 요즘 부쩍 그러시던데..... 친정어머니야 원래 그러셧던 분이지만요.
얼마전에 친정 어머니가 혹시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를 안하고 싶다며 저에게 어떻게 그거 신청하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친정아버지까지 같이 가서 해드렸어요. 하는김에 저도 하구요. 그날 기분이 참 야릇하더군요. 보부아르가 살던 시대의 어머니나 지금 여기 우리 세대의 어머니나 다들 비슷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었을듯 해서 아마 이 책이 공감이 많이 갈 거 같아요. 저도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페넬로페 2021-07-22 10:00   좋아요 4 | URL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 어머니들의 옆모습을 뵈면 아이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저도 연명치료를 반대하는데 이 책에는 그 부분이 많이 나와 있어 공감했어요. 죽음이라는 것과 그와 연관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듯 해요^^

새파랑 2021-07-22 09:06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아프신건 다 나은건가요?
전 종교가 없긴 하지만, 사후에 천국이 있다고 확신이 들더라도 그래도 사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이런 편안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왠지 그럴때마다 슬퍼지더라구요 ㅜㅜ
그래서 오늘도 즐겁게 보내기로 😊

페넬로페 2021-07-22 10:05   좋아요 7 | URL
네, 새파랑님 말씀이 맞아요.
지금 현재 잘 사는게 정답인것 같아요. 누구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이 더 많아 슬퍼요 ㅠㅠ
그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로 해요.
날씨가 덥네요
새파랑님.
건강 유의하세요^^

미미 2021-07-22 10: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죽음은 사실 삶을 에워싸고 있는데 일상에서 대부분 그 점을 망각하고 살아가죠. 또 그래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한 번씩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하니 인생은 참 놀랍습니다. 이 책 요즘 인기네요~♡ 저도 준비되어 있는데 저에겐 또 어떨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1-07-22 11:34   좋아요 5 | URL
죽음에 대한 미미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잊고 사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곁에 지금 어떤 탄생보다는 죽음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것 같은데 그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암담해요~~이 책 읽고난 후의 미미님의 느낌 정말 궁금합니다^^

2021-07-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7-23 05: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철 없을 때는 양육의 핑계로 나를 컨츄럴하는 존재로 엄마를 인식했었는데 말이죠 ㅠㅠ 엄마가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엄마와의 대화가 더 편해지고 관계가 좋아졌어요. 이제는 엄마의 삶과 인생이 잘 가꾸어지길 소망하게 되더라고요.

페넬로페 2021-07-23 09:55   좋아요 3 | URL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게 참 그렇죠. 저는 너무 늦게 엄마의 삶을 생각해본것이 후회가 되요. 그래서 더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데 사는게 바빠 잘 안되고 있어 아쉬워요^^

페크(pek0501) 2021-07-27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요를 이미 눌렀었지만 좋아요 수가 49라니...
제가 도달해 보지 못한 숫자이옵니다. ^^**

페넬로페 2021-07-27 17:43   좋아요 0 | URL
아마 이 책이 죽음에 관한것이고 누구나 부모님 생각이 나서 공감했던것 같아요 ㅎㅎ
페크님, 좋아요 눌러 주셔서 감사해요^^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Cartas de amor a Stalin>

 

있는 힘을 다해서, 내가 증오하는 대상이 나의 앞날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한다. 불가코프는 자신이 쓴 희곡이 상연 금지되고, 책의 출판도 금지되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작가로서의 자유를 돌려주던지, 아니면 소련을 떠나게 해달라고 스탈린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들이 계속 묵살되던 어느 날,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스탈린은 그와 직접 대화를 하고 싶다며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하자고 했는데, 그 순간 전화는 끊겨버리고 만다. 그때부터 불가코프는 전화기 옆을 떠나지 않고 스탈린의 전화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불가코프는 스탈린이 자신에게 말한 내용을 계속 곱씹으며 처음엔 희망을 가진다. 그러다 점점 스탈린이란 지독한 허상을 붙잡기 시작하고, 그에게 지배당하고 만다. 반면 그의 아내 불가코바는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을 떠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지만 불가코프는 그것을 무시한다, 불가코바는 스탈린의 바램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고, 불가코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혼자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불가코바 뭐가 옳은 길이예요? 스탈린한테 수백만 통의 편지를 쓰는 거요?

 

(불가코프는 글을 쓴다. 스탈린은 불가코프와 불가코바 사이에 위치한다.)-p54]

 

허상의 스탈린은 불가코프에게, 모스크바에서 동상을 세워주어야 할 작가의 명단 중 13번째에 불가코프를 적겠다고 그를 설득한다. 예술가로서 어떤 신념을 가져야할지 고민되는 순간이다. 명예와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에 남기 위해 명확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자신이 쓰고자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해야할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어쩌면 불가코프의 앞날을 막는 건 스탈린이 아닐지도 모른다. 권력의 하수인들인 언론이나 연극을 통제하는 기관들이 스탈린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합당하지 않는 것들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아버지 친구의 따님이 정부의 한 기관에 낙하산으로 취업을 한 적이 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새로 출판될 책을 미리 읽고, 그 책의 어떤 문장들에 빨간 밑줄을 긋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어떤 기준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빨간 밑줄을 그으라는 지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 기준이란 독재자가 아무 의미 없이, 툭 내뱉는 한마디 말에도 어이없이 정해질 수 있다. 그 단어들과 표정을 미루어 짐작해 거기에서부터 무수한 설정과 상상으로 마음을 읽으며, 충성을 다해 그 기준이 정해지는 것이다.

 

소련의 실존인물인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와 정치가 스탈린을 등장시킨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인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의 주제는 겉으로는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지는 예술가에 대한 탄압과 거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한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법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다. 내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허상들에 의해 난 무엇을 좇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나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 희곡엔 휴지’(休止)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 <하던 것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인데, 그 수많은 휴지를 지나며 우리는 그 다음에 오는 삶을 위한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생의 방향과 모습들은 달라진다. 불가코프와 불가코바의 모습과 끝도 달랐다. 나에게 주어진 그 휴지의 시간만큼 나도 옳고 좋은 생각을 해내어야만 한다.

 

[앞으로 5년간 얼마나 많은 전화선을 우리가 설치할 건지 자네가 아나?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이제 곧 내가 자네한테 전화를 걸겠네,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해 우리가 대화를 나눠 보자고. 자네를 거기, 크렘린에 두고, 나도 정말이지 거기에 진정한 친구를 두고 싶네. 독을 넣었을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는 난 한입도 먹어 볼 수가 없어. 공기에 독을 퍼트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는 난 입을 벌릴 수가 없어. 이제 곧 자네는 나를 만나러 올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준비되는 대로, 조금만 참게.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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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17 20: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같은 작품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읽어내는게 흥미진진해요!
(그맛에 북플이 더 재밌음~♡)빨간밑줄을 긋던 그 분의 심정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페넬로페 2021-07-17 23:27   좋아요 3 | URL
네, 저도 그런 이유로 이 북플이 너무 좋아요. 제가 모르는 책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고 또 거기에 따른 감상도 서로 다르니 정말 흥미로워요^^
빨간밑줄을 그으며 괴로웠거나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요**

scott 2021-07-17 21: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스탈린에게 보낸 연애편지 리뷰가 이렇게 입체적일 수 있네요!

독일 통일 후 동독에 불법으로 설치된 감청 전화선들이 낡은 집을 부술때 마다 나왔다고 해서 대대적으로 자신들이 사는 벽을 조사 한 적이 있어요.
감시,감청
심지어 스탈린은 전화선 감청도 못믿어서 유리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 감청 했다고,,,,

허상의 스탈린은 여전히 세상 곳곳에 빅브라더스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1-07-17 23:29   좋아요 4 | URL
이 책에서도 스탈린이 소련 전체에 전화선을 설치한다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 시대의 모습이 이 전화선으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정말요. 이 빅브라더는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죠 ㅠㅠ

mini74 2021-07-17 21: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찜하고 있어서 실눈 뜨며 읽는 중입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07-17 23:34   좋아요 5 | URL
저는 미니님께서 리뷰 올리시면 눈 크게 뜨고 볼 수 있어요 ㅎㅎ

새파랑 2021-07-17 2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불가코프가 처음에는 아닌 척, 강한 척 하다가 스탈린의 전화를 받고 나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왠지 나도 그랬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구요. 내가 싫어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잘해주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바뀌게 되는 것과 같은? 전 그래서 왠지 이 작품 공감이 되더라구요. 페넬로페님의 ‘휴지‘에 대한 생각 너무 좋아요 ^^

페넬로페 2021-07-17 23:33   좋아요 5 | URL
전 불가코프가 전화를 받고 너무 빨리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한 단면을 본것 같았어요. 우리 모두 그럴수 있을것 같아요. 처음엔 휴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계속 그 단어가 나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페크(pek0501) 2021-07-18 1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스탈린...
역쉬~~ 책 정보는 알라딘이 최고입니다. 구매할 책이 많아지는 건 문제지만 말이죠.^^

페넬로페 2021-07-18 14:03   좋아요 1 | URL
저도 똑같은 고민입니다.
읽어야할 책이 많은데 다 읽을수는 없으니 서재친구분들의 리뷰를 감사히 잘 참조하고 있어요.
 

(긴 침묵, 불가코프는 답을 하지 않는다.)

정말 당신은,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못 살아요. 우리 하늘이잖아요, 우리말, 우리 사람들….
- P9

불가코바 난 있는 힘을 다해서, 그렇게 그 사람을 증오해요.
하지만 가장 증오스러운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죠. 미하일, 당신은 그 이유를 알아낼 필요가 있어요.  - P13

불가코프 소련에서 풍자는 죄로 몰립니다.. (후회하며 쓴것을 지운다. 중대한 범죄로…. (후회하며 쓴 것을지운다.) … 폭력적인 행위로, 하지만 나는 절대로 풍자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풍자를 한다는 건 금지구역을 침범하는 겁니다. 진정한 예술가에게 금지구역이란 없습니다.
- P17

"외국에서 사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걸 압니다. 편한 주제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저의 
나쁜 습관 때문에 내 나라에서 저는 반동주의자로 몰리지요. 하지만 바로 똑같은 이유로 외국에서는 저를 공산주의자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는 제가 침묵한다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요. ㅡ자먀틴의 편지 - P41

어쩌면 제 신청서는 다른 이유들로 채워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독일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거나이탈리아 무대에서 작품을 올리겠다는 이유로….. 하지만 제가 탄원서를 쓴 진짜 이유는 소련이 작가인 저를 적대하며 제게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로서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조국을 포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서명: 에우게니 이바노비치 자마틴, 모스크바, 1931년 6월. "
- P42

불가코프 친구든 적이든 나한테 피부색을 바꾸라고 충고해줍니다. 하지만 늑대를 아무리 염색해도 양과 비슷해지지는 않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늑대를 몰아세우듯 나를 몰아세우는 겁니다. 난 늑대, 맹수이기 때문에 절대로 침묵하지 않을 겁니다. 침묵하는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닌 거죠.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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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생각나네요. 풍자가 극치인 소설이죠.
조지오엘은 침묵하지 않은 진정한 예술가인 거죠.
(쓰고 나니 엉뚱한 댓글을 썼다는 생각이...)ㅋ

페넬로페 2021-07-18 14:05   좋아요 1 | URL
올해 조지오웰의 산문들을 읽으려고 책을 몇 권 구입해놨는데 아직 펼쳐보지 못했어요. 동물농장과 함께 어서 시작해야겠어요.
 

내가 살아 온 세월 중에 일상’(日常)-{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실감날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바람에 사람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그나마 잠깐씩 가서 책을 읽던 카페마저 가기가 두려워진다. 맞벌이를 하는 딸과 사위를 위해 손녀 두 명을 돌봐주고 있는 큰언니가 점심으로 콩국수를 했다고 올린 카톡의 사진에서도 일상이 보인다. 어느 순간 내 눈에는 더운 여름철의 별미인 콩국수가 시원하고 먹음직스러우며, 침이 고이게 하는 맛있는 음식이 아닌, 불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의 결과와 고단함으로 보인다.

 

음식을 뚝딱 해낸다는 말이 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 때 뚝딱이라는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내가 한 번도 만들지 않은 콩국수만 해도 그렇다. 음식 재료를 사와 콩을 불리고 삶아 그것을 믹서에 갈아야한다. 국수를 삶아 헹구고, 그 사이에 고명으로 얹을 계란을 삶고, 오이를 채 썰고, 방울토마토를 씻어 반을 가른다.(언니가 보내준 사진의 콩국수위에 방울토마토가 얹혀져 있었다) 그리고 먹는 건 잠시이고, 음식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해야 한다. 설거지는 다음 끼니를 또 해 먹기 위한 준비이니 언제하든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김훈 작가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그 자전거에 이름도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를 타고는 집에 돌아와 아내가 끓여준 냉이 된장국을 먹으며 그 맛과 느낌을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 구절뿐 아니라 자전거 여행에서 서술된 다른 문장들도 좋아 난 이 책을 좋아했지만 왜 요즘 들어서 냉이가 들어간 된장국을 끓여내는 그의 아내의 고달픔이 보이는지 이상하다. 가족이나 타인을 위해 해주는 사랑과 따뜻함이 이 시국으로 인해 달라져 보이고 변색되어 씁쓸하다. 내가 지금 해주고 있는 음식들도 이렇게 변색되어 내 식구들의 속에서 끓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오늘은 내가 한번도 뵙지 못한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어머니는 매년 이 날이 되면 더운 여름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원망하지만 제사를 그만 지내자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으로 이번 제사에는 참석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에게 전을 부치는 노동이 면제되었다. 솔직히 너무 기쁘지만(코로나가 딱 한 번 고마운 순간이다) 그 대신 큰형님과 딸아이의 고모님들이 수고를 하셔야 하는 생각에 맘이 조금 무겁다. 그래도 좋다. 결론은 아주 좋다.

이 기쁨에 보태어 나에게 주어진 서프라이즈 선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선물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사실 나에게도 절친인 알라딘 서재 친구가 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철없는 나를 이끌어주고 알라딘 서재의 AI답게 책에 있어서는 나의 스승이시다. 그 친구가 날도 덥고 코로나도 끝이 없으니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라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나에게 보내준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책을 선물받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내가 받은 책은 교보와 민음사에서 콜라보하는 거라 알라딘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판매했다면 내 친구는 분명 알라딘에서 이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더운 여름에, 일상에 지친 나에게 좋은 선물을 보내준 친구가 너무 고맙다. 헤밍웨이작가의 작품은 영화로만 접하고 책으로는 읽어보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다른 헤밍웨이의 책과 함께, 이 책을 가을쯤 읽으려고 한다. 지금은 읽기로 한 책이 쌓여 있고, 왠지 헤밍웨이의 작품은 가을에 어울릴 것 같아서이다. 세상에 책이 엄청나게 많고 난 죽을 때가지 그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책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은 나의 일상을 이기는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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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4 16: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가을 이군요~!! 페넬로페님 좋은 선물 받으셨군요. 완전 부럽네요 😊 킬리만자로의 눈 완전 좋아요 ~!!

페넬로페 2021-07-14 17:57   좋아요 5 | URL
네, 왠지 가을에 읽고 싶네요~~
날씨 더운데 바다 색깔과 깔맞춤해준 친구의 재치있는 책선물이 기쁘네요~~

2021-07-1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4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07-14 17: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페넬로페님 일상에 관한 이 글 너무 좋네요! 저도 콩국수를 참 좋아하지만 아직 콩을 직접 삶고 갈아보진 않았어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갈수록 고단함과 연결되네요. 저희 엄마는 뚝딱뚝딱일 수 없는 음식을 저를 위해 뚝딱뚝딱 만드시곤 했거든요. 제사면제도 책 선물도 축하드려요ㅋㅋㅋ😉 AI라면 혹시 스콧님??!

페넬로페 2021-07-14 18:59   좋아요 6 | URL
미미님은 외동딸이라 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라셨을것 같아요. 제사면제와 책선물 덕분에 간만에 기분이 좋아요~~
제가 생각하는 알라딘 Ai는 재야에 계신분까지 10 분정도인데 그 중의 한분이십니다. scott님께는기회되면 꼭 책선물을 하고 싶어요 ㅎㅎ

coolcat329 2021-07-14 18:0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더운 날 제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네요. 어이구...생각만해도 😢
제사 면제에 친구 선물까지 기분좋은 하루네요~

페넬로페 2021-07-14 19:12   좋아요 5 | URL
그나마 요즘은 에어컨이라도 있는데 예전에 어떻게 이 더운날 제사를 치렀을지 참 생각만해도 아득합니다. 네, 기분좋아 남은 하루도 잘 보낼수 있을것 같아요^^

mini74 2021-07-14 18: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표지도 예쁘고 친구맘도 예쁘고. 감사하며 신나하는 페넬로페님도 예쁘고 ㅎㅎㅎ 저는 뚝딱이 아니라 뚜~~~~~~~~우 ~~~~~~딱 하고도 맛보장도 안되는 저녁하러 갑니다 ㅎㅎ 맛난 저녁 드세요 *^^*

페넬로페 2021-07-14 19:15   좋아요 6 | URL
그렇게 좋게 봐주시는 미니님이 참으로 예뻐요♡♡ 저도 손이 빠른편이 아니라 음식준비가 느리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맛있게 만든 음식으로 미니님 가족도 건강하고 행복한 저녁 보내시길 바래요^^

붕붕툐툐 2021-07-14 21: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야~ 가족 사랑과 우정이 함께 느껴지는 글이에요~ 좋다좋다~ 책선물을 고르신 안목을 보니.. 알라딘 AI 인정입니다~
그러니까 콩국수는 사먹어요, 우리~^^

페넬로페 2021-07-14 22:02   좋아요 4 | URL
네, 사람간의 정이 이렇게 좋아요~~저도 콩국수는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전에 종로에 유명한 콩국수 맛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겠죠^^

han22598 2021-07-15 05: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책. 한국에 두고 온 정다운 친구들에게 생각날때마다 한권씩 보내요. 책을 주고 받는일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

페넬로페 2021-07-15 09:28   좋아요 3 | URL
멀리서 보내준 친구의 책선물은 더 기쁠것 같아요. 책을 매번 사는데 또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 우리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같아요. 여기는 지금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었어요 텍사스도 무척 더운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han님, 건강 유의하세요^^

하나의책장 2021-07-16 0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선물은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도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인 것 같아요. 책선물 받으신 것도 축하드리고 아, 제사에 면제되신 것도 축하드려요ㅎ 페넬로페님의 선함과 따뜻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글에서 잘 느껴져요! 굿밤되세요🌠

페넬로페 2021-07-16 09:18   좋아요 0 | URL
정말 다른것에 비해 책선물을 받으면 더 기분좋고 행복한 것 같아 두배로 기쁩니다 제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하나의책장님,
요즘 병원 다니신다고 하셨는데 얼른 건강 찾으시길 바래요^^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전집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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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중 세 번째로 읽은 올랜도등대로’, ‘댈러웨이 부인과는 달리 의식의 흐름이 아닌 전기문의 형식이어서 처음엔 읽기 쉬웠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부터, 울프가 올랜도의 집필을 끝낼 때까지의 여러 시대에 걸친 배경과 판타지적인 요소, 풍자와 해학까지 있어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읽는 내내 여러 번 돌아가 읽은 곳을 다시 읽어야 한다) 울프 문장 해석의 어려움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읽을수록 빠져드는 문장의 풍미와 그 적절한 비유로 작가가 글 하나는 참 잘 쓴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매번 드는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쓰고,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문장 하나하나에 저런 엄청난 비유와 은유를 동원해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인지 늘 감탄한다. 울프의 글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난 그런 이유로 울프의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올랜도를 신나게 읽어 갔다. 그러다 악명 높다는 말은 그저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울프여사의 글답게 점점 이 소설은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결국 마지막 10분의 1정도의 내용은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27~1928년의 울프 일기’(솔출판사, 박희진 옮김-에서 발췌)의 여러 곳에서 울프는 올랜도의 집필 과정을 서술한다. 울프는 재미삼아 장난스런 문체로, 반은 농담조로 반은 심각하게 이 소설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마음먹고 과장된 부분을 뿌려놓을 것이라고 계획한다. 올랜도는 매우 활발하고, 재기 넘치고,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한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장난삼아 시작했던 것이 길어지고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은 격이라고 했다. 마지막 장에서 고전하고 있고 지루해져 있으며, 뒤에 가서 진지해져 통일성이 부족해졌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이해 못한 것이 내 탓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울프는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고, 이 책 전체가 농담이니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울프 여사님!

 

1922년 울프는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시인을 만났고, 두 사람은 로맨틱한 관계를 맺었고, 그 후에도 평생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이택광 지음, 휴머니스트-에서 발췌). 올랜도는 울프가 비타를 모델로 해서 썼고, 그녀에게 헌정된 소설이다. 울프 일기에서는 올랜도가 비타, 바이올렛 트레퓨시스, 라셀라스 경, , 러시아 공주 사샤, 그리고 해리엇 공주에서 소재를 구하고 근거를 두었다고 한다. 36세가 될 때까지 삼백사십이 년을 살아온 올랜도를 서술한 이 책의 서사는 무척 흥미롭다. 전기문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의 특징으로 수많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영국 켄트 주의 이라는 곳의 거대한 성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사랑, 시대의 변화와 요구, 귀족과 서민, 명성과 무명, 결혼 등을 말하고 있다. 남성으로 태어난 올랜도가 중간에 여성으로 바뀌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포인트다.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신화, 비극작품,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곳의 지역이 나오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은 올랜도의 성장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은 것들이 이 책에 등장하지만 난 페미니즘과 여성으로서의 삶, ‘올랜도가 계속해서 가슴에 품고 다니는 참나무, 한 수의 시-The Oak Tree, a Poem'로 나타내는 글쓰기, 인간 안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공존추구로 이 소설을 받아들였다. 비타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전기 작가와 주인공인 올랜도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고 그녀가 추구하고 바라는 삶의 방법들이다.

 

남성으로 살아가는 올랜도의 삶은 거침이 없다. 여왕의 총애와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만이 받는 가터훈장을 무릎에 달고 있으며, 원하면 언제라도 대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로 바뀐 올랜도는 그 순간부터 <순결, 정절, 겸손>(열린책들판 올랜도에는 <청순, 정절, 정숙>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여사의 방문을 받는다. 사교계에 진출해 남자들의 끝없이 쏟아지는 따분한 말들을 듣고 있어야 한다. 결혼이 강요되는 시대에 결혼 안 한 여성의 불이익과 남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염려되어 추한 반지를 하나사서 남들처럼 끼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여성을 옭아매는 시대정신에 여자, 올랜도도 비껴갈 수 없다.

 

[나팔 소리가 잠잠해지고, 올랜도는 완전히 벗은 채로 서 있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인간도 그보다 더 매혹적일 수는 없었다. 그의 모습은 남자의 힘과 여자의 우아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성의 변화가 비로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p123

두 성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섞여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성은 유동적이며,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옷뿐이고, 그 속의 성은 겉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흔히 있다.-p167]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싫어했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한 사람이다. 그러나 울프는 극단적인 여성과 남성의 대결로써 여성의 권리를 찾기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여성과 남성을 발견하고 그것의 조화를 이루어내자고 항상 주장했다. 올랜도가 그 후에 저술된 자기만의 방과도 이런 이유로 연결된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다라고 말한 콜리지의 말을 인용하면서, <양성적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 있고 공명하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자기만의 방, 민음사, 이미애 옮김-에서 발췌)

 

장난삼아 시작한 이 소설에서 올랜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시킨 이유도 울프의 양성 공존적 의미가 담겨있다. 본문에 나와 있듯이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자신이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탄식한다.

 

[왜냐하면 여자들은(여성으로서의 나의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p139]

 

결국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삶을 다 경험해봐야만 이성간의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지금은 없는, 고정관념으로 꽉차있는 이 현실에서 서로간의 소통을 어떻게 이루어낼지 암담하다. 울프는 그러한 울분을 글로 표현해냈고 후세의 여성들에게 그 해결책을 숙제로 남겼다. 요리는 전혀 못하지만 바느질은 너무 꼼꼼히 잘해내는 남편과, 불의를 참지 못해 큰소리를 내고, 바느질과 뜨개질은 잘 하지 못하는 나 역시 남성과 여성이란 정체성으로 양분되지 않고, 그 역할을 바꿔 잘 수행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사회적 편의를 위해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남성으로서의 올랜도가 계속 가슴속에서만 참나무를 간직하고 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28,322일 울프 일기에서, 울프는 농담치고는 너무 길고, 진지한 책치고는 너무 경박한 이 책을 끝내고 더 이상 어떤 것들을 생각하기도 싫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이 어렵고 난해한 소설을 독자인 나에게 던져주고 본인은 태양과 포도주의 나라로 훌쩍 떠나버린다. 코로나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곳에 있는 난 한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만 한다. 좀 시원해지면 산책을 가고, 돌아올 때 시원한 맥주라도 하나 사와야겠다. 여행은커녕 알코올의 힘을 빌려 이해하지 못한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겐 파도라는 기념비적인 울프의 어려운 책이 또 구비되어 있다. 여전히 난 버지니아 울프가 두렵고, 그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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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13 15: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분의 1이라니 저보다 훨 나으신걸요! 저는 아직도 ‘의식의 흐름‘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를 못하겠어요. ‘관념의 흐름‘과 차이가 있다는 말 듣고는 더 혼란ㅋㅋ그래도 울프는 분명 매력적인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고 생각해요.😉

페넬로페 2021-07-13 17:58   좋아요 3 | URL
저도 당연히 의식의 흐름을 잘 몰라요. 관념의 흐름이란 것은 말만 들어도 어렵네요. 울프는 읽기 어렵지만 그 문장에 매력이 있고 내용도 지금 제가 여성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어 좋은것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7-13 15: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이 리뷰 넘 좋아요. 올랜도와 울프의 다른 작품들을 엮어 쓴 것에 감탄했건만 소설 던져 놓고 프랑스로 떠난 울프와 그 난해한 소설 얼떨결에 받아들고 방콕서 맥주 홀짝이는 페넬로페. 이 대비 느~~~무 멋져요. 울프 바다는 페넬로페님 전용수영장~~~~^^

페넬로페 2021-07-13 18:00   좋아요 3 | URL
이 조화롭고 재미있는 댓글이라니요. 거의 백년후에 살고 있는 한 여자가 자신의 작품읽고 과로워서 맥주 홀짝이는 것을 울프는 영원히 모르겠죠 ㅎㅎ

Falstaff 2021-07-13 15:5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크크크크크... 다음에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아이고, 더운데 고생하세요. 뭐라 드릴 말씀이 읎습네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3 18:01   좋아요 3 | URL
ㅋㅋ~~그냥 듣기만 해도 기가차서 웃음이 나오시죠? 파도는 등대로와 댈라웨이부인 리뷰쓰고나서 읽기로 했어요^^

mini74 2021-07-13 15: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덮어둔 책입니다 ㅠㅠ 딴 이야기지만 남녀로 살아 본 테이레시아스가 생각나네요 여자가 남자의 9배는 더 즐겁다고 한 *^^* 울프의 바다에서 맥주가 구명조끼가 되어 주지 않을까요. 파이팅입니다 ~

Falstaff 2021-07-13 16:23   좋아요 4 | URL
오, 깜짝! 테이레시아스라뉘요. 다음 주 화요일에 올릴 독후감이 바로 테이레시아스, 티레시아스의 유방, 지금 독후감 쓰고 두 시간 밖에 안 지나서 즉각 반응을 하게 되네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7-13 18:04   좋아요 4 | URL
테이레시아스는 테베의 눈 먼 예언자 맞죠? 구명조끼가 된 맥주를 벗삼아 머리를 식히겠습니당^^

페넬로페 2021-07-13 18:05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
담주 화욜에 올리실 리뷰 기대합니다^^

2021-07-1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3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7-13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도 읽으려고 준비중 인데 ^^ 저도 울프님의 책은 네귄만 읽었는데 그중에 올랜도가 제일 어렵더라구요.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여름엔 <파도> 아니겠습니까 ^^

페넬로페 2021-07-13 18:34   좋아요 3 | URL
소문에 파도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여기서 더 어려우면 어떡하죠!!!근데 새파랑님은 잃.사.찾도 읽어내시니 거뜬히 읽으실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7-13 20: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은 ‘이 책은 배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어‘라고 하더라구요!
어떤 맥락인지 알겠어서...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 문장으로 하면 참 뛰어난 배설이죠!^^

Falstaff 2021-07-13 20:35   좋아요 3 | URL
지금은 은퇴한 한양대 모 교수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전형적인 배설 예술이라 했다고 하는데, <올랜도>를 보고 배설이라는 건 와우, 혁명인데요?
사실 모든 예술 행위는 배설 아닌가 합니다. 어차피 오르가슴 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치닫고 있잖아요. 그 분 ㅎㅎㅎ 기회가 되면 북어탕에 쐬주 한 잔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7-13 22:10   좋아요 1 | URL
그런 의미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런 방향으로도 생각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