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 근대 거장전시리즈 중, 첫 번째인 유영국-산은 내 안에 있다전시회를 다녀왔다. 며칠 간 계속 무더웠지만, 오늘은 해가 구름에 싸여있고 바람도 조금 불어 미술관 가는 길이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전 날(14) 비가 와, 미술관 앞 나무들이 물기를 머금은 선명한 초록이어서 운치 있었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진행된다.

 

내가 화가 유영국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에서였다. 거기에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정말 많이 전시되었는데 유독 유영국의 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그때 유영국 이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 같이 간 언니는 어릴 때, 은행에서 근무하신 아버지가 가져 온 달력에서 유영국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화가 유영국은 1916년 강원도 울진(지금은 경북으로 편입)에서 44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장욱진, 김환기, 이중섭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우리나라 1세대 추상 화가이다. 특히 김환기와 가까웠으며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비교된다. 유영국은 1947년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구성한다.

 

[김환기와 유영국은 동시대의 작가로 비교적 같은 조건 속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김환기가 비록 파란만장한 삶은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변화로 점철되어 있는 반면, 유영국은 비교적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삶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다.

김환기가 이상주의적 성향을 띤다면 유영국은 보다 현실적인 성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p.13]

 

1935년 유영국은 동경문화학원 미술과로 유학한다. 그 당시 한국 미술은 후기 인상파에서 입체, 야수, 표현, 미래, 구성을 받아들이고 추상미술을 수용할 즈음이었는데, 유영국은 과감히 추상미술을 선택한다. 1940년경 일본이 군국주의의 절정으로 치달아 전위적 예술 활동을 금지 시켰을 때, 유영국은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배우고, 주로 불상, 왕릉, 사찰, 탑 등을 찍으러 다니기도 한다.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그의 경주 시리즈는 기하학적 형태가 부각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혼란의 시기를 지날 때, 그는 고향 울진 죽변에서 양조장을 운영한다. 사업수완이 좋아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서울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는 사업과 교수직을 과감히 그만 두고 전업 작가(1957년 전후)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 그의 추상미술의 소재는 주로 산과 바다였다. 고향 울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 거의 유화로 그려 내었다.

 

죽변과 울진은 나에게 추억이 많은 장소다. 조카가 갓 난 아이였을때 서울에서 근무하던 형부는 울진 원자력 발전소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사택에 들어가기 전에 죽변에서 잠시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형부가 몇 년간 근무하는 동안 나는 자주 둘째 언니와 큰 언니네로 놀러갔다. 서울에서 가려면 일단 삼척이나 동해(묵호)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죽변으로 가야하는데, 가는 길이 멀었지만 7번 국도의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울진은 산,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진 곳이라 그곳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 구경을 많이 다녔다. 사택의 다른 가족들과도 교류가 활발해 우리가 가면 초대해 밥을 먹여주기도 했고, 다같이 캠핑이나 덕구 온천을 가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의 인정 많고 사람 냄새나는 것들이 그립다. 화가의 고향이 울진이라 반가웠다. 대부분 울진과 서울을 오가며 그려낸 유영국의 산과 바다가 그런 의미로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번 전시는 유영국 예술 세계의 정점이었던 1964년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화가는 1964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게다가 작품의 크기가 100호가 넘는 대작이 많았다. 작품의 제목은 주로 산, 바다, 작품, 무제이다. 그만큼 그에게 산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화가에게 산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처음에 그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후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독특한 추상의 길을 간다. 그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지병으로 많은 수술과 입 퇴원을 거듭 했을때도 이 시간은 계속 지켜졌다.


-Work(1971)(부제; 랄랄라 시리즈)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경쾌하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Work(1977)

심장 수술을 마친 작가가 아내와 부석사를 여행하고 온 후 그린 그림이다. “산 속에 굽이굽이 길이 있고 그것이 인생인 것 같았다는 화가의 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다른 그림에 비해 이 그림은 크기가 아주 작은데 나름 좋았다.


-두 그림 중 오른쪽은 BTSRM이 소장한 것을 대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대단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인증샷을 남기기에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나도 한 장 찍었다.


추상으로 표현된 유영국의 산과 바다는 일단 색이 압도적이었다. 추상미술이라 당연히 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색에서 받는 느낌이 훨씬 더 강렬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큰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이 많아 더 웅장했다. 얼핏 원색으로 보여지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색깔이 너무 다양했고 붓 터치의 강약이 조화로웠다. 산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렸는지, 또한 직접 보는 것과 상상으로 확대되는 산의 모습이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했다. 같은 소재로 매번 다르게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세히, 깊이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넓어진 지평의 사고가 그림에 고스란히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화가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마침 전시회를 보러 간 날이 초복이라 점심은 서울시립미술관 근처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언젠가부터 식당에서 삼계탕을 먹지 않는다.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영계로 만든 삼계탕을 먹는것이 싫어서인데 이 날은 어쩔 수 없이 먹게 되었다. 역시나 닭은 너무 작았고, 닭다리는 뜯을 것이 없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인데 아마 맛이 깔끔해서 그런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 뒤쪽에 서울시청 서소문청사가 있다. 그곳 13층에 올라가면 정동 전망대와 카페 다락이 있다. 그곳에서 덕수궁 전체와 정동 일대를 볼 수 있다. 광화문에 자주 나가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번쯤은 가볼 만한데 역시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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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7-18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주 서울 나들이를 좀 했었거든요. 제가 그래서 간 김에 저기 유영국 화가님 전시회도 다녀왔었어요.^^
그날은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도 하던 날이어서 신발이 다 젖고..ㅜ.ㅜ
근데 그래도 전시회 참 좋았었어요.
페넬로페 님 올려주신 사진들을 보니 기억이 새록합니다. 저는 굿즈관 지나칠 수 없어 엽서랑 몇 가지 사가지고도 왔어요.ㅋㅋ
도슨트 없이 그냥 휘휘 걸어다니며 대충 봤는데 페넬로페 님의 자세한 설명을 읽고 있으니 내가 넘 대충 보고 왔나 보다.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이곳에서 다녀온 전시회 기록을 읽고 있으니 더욱 반갑네요.🥰

페넬로페 2026-07-19 00:45   좋아요 1 | URL
아, 책나무님, 서울 다녀 가셨군요. 같은 전시회 감상해서 반가워요. 저도 그림 너무 좋았어요. 캔버스가 워낙 큰 것이 많아 멀찍이 서서 감상하면 더 좋더라고요. 저는 요즘 웬만하면 굿즈는 잘 안 사려고 해요 ㅎㅎ
집에 와서 쌓아두기만 해서~~책나무님 요즘 그림 그리시나요? 저는 손재주가 워낙 꽝인 사람이라 그냥 감상만 하고 있어요. 한 번씩 습작 소식 알려주세요^^

책읽는나무 2026-07-19 08:50   좋아요 1 | URL
그림 손 놓은 지는 한참 되었어요. 요즘은 뜨개방 다니고 있어요.^^
저도 손재주가 좀 그닥인 편이라 뭘해도 실력이 팍팍 늘지가 않아 좀 의기소침인 상태로 그냥 배우고만 있는 중입니다.ㅋㅋㅋ
근데 그림 전시회를 구경 다녀오니 그림 공방 다시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여러 개를 하기엔 실력과 체력과 시간과 수강료등 모든 게 걸려 그저 어떡하지? 생각만 하고 있어요.^^
페넬로페 님이야말로 전시회를 많이 다니셔서 무궁무진하게 그림이 나올 듯한데 말입니다. 한 번 배워보시면 어떠세요?^^
 
전쟁과 평화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6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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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은 계속되고, 그 그늘에 놓인 인간들의 고뇌는 다양하다. 사랑과 출세, 믿음, 선의 실천은 피예르의 말처럼 ‘악과 허위, 혼란’일 뿐이다. 인생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으며 무기력은 삶을 잠식한다. 그 와중에 선택되는 찰나의 인연은 갇혀있는 강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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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라 에르모사 아카테낭고 마마 카타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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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 뒤에 남는 산미와 쓴 맛의 어우러짐이 좋다. 중약배전이라 가볍고 산뜻한 과일향이 느껴지지만 무게감이 조금 애매하다. 무더위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라 좀 더 무거워도 좋았을 것 같다. 힘들고 지치는 한여름에 시원한 과테말라 마마 카타 커피 한 잔으로 견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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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 가려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젊은 여자가 탔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고, 3층에서 탄 여자가 내리면서 그 남자에게 아저씨에게 얘기했어?”라고 물었다. 둘은 부부사이인 듯 했다. 그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여자는 마침 경비실 밖에 나와 있던 관리인 아저씨께(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경비원이 아니라 관리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3층 소화전 앞에 바퀴벌레가 있어 저희가 집에서 약을 가지고 나와 뿌려 죽여 놨어요. 지금 가서 그것 좀 치워주세요.”

 

그 말을 듣고 나와 관리인 아저씨 둘 다 동시에 큰 한숨을 쉬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 관리인은 아저씨라기보다 할아버지였다. 아니 나이를 떠나 아파트 관리인의 업무가 바퀴벌레 한 마리의 시체까지도 치워주어야만 하는 것인가이다. 부끄러움도 모른채 저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젊은 부부의 뻔뻔스러움에 기가 찼다. 저 건장하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는 도대체 바퀴벌레 한 마리도 감당할 수 없단 말인가? 그래, 그러니까 저들이 올림픽 공원에서 선관위를 규탄하며 한미공조를 외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해결해야지 왜 한미공조를 외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처리하지 못하는 모지리 들이라 그런 것이리라.

 

관리인 아저씨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바퀴벌레를 치우러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목까지 치미는 말()을 삼키며 씁쓸하게 마트로 향했다. 걸어가며 오베라는 남자를 생각했다. 오베는 분명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하며 소설에서 늘 그래왔듯 컴퓨터만 믿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요즘의 허우대만 멀쩡한 어른을 비난했을 것이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370~371]

 

뒤늦게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이라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강의 목록에 오베라는 남자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다. 단순히 영화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통해 어떤 강의를 할지 궁금했다. 첫 날의 영화는 어바웃 타임이었는데 강사가 생각하는 영화의 중요한 두 부분을 각 15분씩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우리에게 설명하며 주입시켰다. 심지어 영화 대사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몇 문장으로 적어 우리에게 복창시키기까지 했다. 영화처럼 자유로운 예술을 완전 자기계발서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게다가 재미도 없는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왜 강사들은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는 강의보다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스펙이 조금 좋은 강사는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 고통의 극복담을 늘어놓는다. 작년에 참여한 천선란 작가의 북 토크 역시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책보다 AI와 미래에 대한 것을 계속 얘기해 지루했었다. 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여자는 자기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AI시대를 대비해 어떤 공부를 하며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입시전문가가 아닌 소설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은 그 뒤로 참가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오베라는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것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베는 융통성이 없고 까칠하며 사람들에게 싹싹하지 않다. 오베는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닌 건 아닌 것이고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철저하며 성실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오베는 자칫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불평 하지만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오베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만인에게 친절하며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결정적일 때 자신만 챙기고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기에 오베는 사실 특별한 사람이다.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의 차이를 오베는 명백히 보여준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재미없는 삶의 다른 말일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경쟁과 강박 속에 사는 현대인은 오베를 꼰대로 보기 쉽다. 정말 그럴까?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는 오베처럼 사는 것이 더 절실할 것 같은데....

 

오베는 진정한 사랑꾼이다. ‘사랑이란 단어의 뜻을 완벽히 아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것을 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베와 그의 아내 소냐는 낮과 밤처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 수학처럼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 직선,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소냐는 책과 음악 같은 추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오베는 전혀 책을 읽지 않지만, 소냐의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책장을 뚝딱 만들어준다. 교통사고 후 소냐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게 되자 오베는 집의 구조를 모두 소냐에게 맞추기 위해 고친다. 장애인이 되어서도 학생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소냐의 의지를 존중하고 도와준다. 오베와 소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사랑을 완성해 나간다.

 

노화는 거침없는 오베에게도 어쩔 수 없는 복병이다. 예기치 않게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아내의 죽음 후 오베는 하루하루 견딜 수 없는 잉여의 삶을 느끼며 살아야한다. 여지껏 오베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잉여야말로 오베에게 가장 힘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매번 오베의 자살 시도는 실패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누군가 원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고, 이웃인 파르바네가 도움을 청하러 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오베는 자살을 늦추고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오베는 소냐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느끼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오베가 자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예요.”

-p.410~411]


원작에 충실했지만 오베라는 남자영화에 오베의 매력을 다 담기는 역부족이었다. 오베의 나이는 59세인데 너무 나이 든 배우가 주인공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베가 전형적인 심술쟁이 늙은이로 비춰지는 것도 별로였다.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도 마찬가지다. 오베와 올리브를 너무 심술긏게 부각시킨 것 같았다. 사실 두 사람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살다보면 오베와 올리브처럼 용기 있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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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12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만한 바퀴벌레 한쌍과 마주하셨군요.
관리인께 홈키파 하나 선물해야 겠어요.

페넬로페 2026-07-12 13:10   좋아요 0 | URL
네, 많이 황당했어요.
벌레를 무서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 뜨악했어요 ㅠㅠ

독서괭 2026-07-13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 이 책 좋아합니다!! 읽을수록 오베라는 남자가 좋아지는 책.. ㅎㅎ

페넬로페 2026-07-13 15:4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인간미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요.
까칠하지만 남에게 피해도 끼치지 않은 것도 좋았어요.
 
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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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살고 있는가?’라는 레빈의 물음은 안나의 절규이기도 하다. 삶의 여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은 막다른 골목에 선 인간의 숙명이다. 거기에 행복과 불행은 없으며 그저 각자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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