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2026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웬만하면 에어컨 밑으로 가야만 했다. 평소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 지하철을 탈 땐 약냉방 칸으로, 버스를 탈 땐 좌석 위쪽에 달린 조절기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렸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뒤늦게 온 갱년기 증상도 뜨거움을 넘어 타버릴 것 같은 몸 상태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더웠지만 건강을 위해, 지병인 허리 통증의 완화를 위해 걷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햇볕이 강한 낮에는 엄두가 안나 주로 밤에 걸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반납할 때도 해가 지고 어둑할 때 집을 나서야만 했다. 밤에도 더위가 없어지는 건 아니어서 도서관에 도착할 즘이면 땀이 줄줄 흘렀다. 그 상태로 바로 집에 돌아가기가 싫어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편하게 땀을 식히고 싶어 열람실의 갖춰진 곳보다 소파석에 앉아 주로 한국소설을 읽었다.

 

문지혁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는 제목 때문에 읽고 싶었다. ‘한국어’가 들어 간 여러 제목의 소설을 연달아 출간하고 있기에 내용이 궁금했다. 에세이처럼 읽히는 이 소설은 땀을 식히는 나의 목적을 충족시켜 주었다. 읽는 자리에서 바로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애써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책을 다 읽고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작가가 힘들게 쓴 작품을 바로 평가하기 싫어 대출해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서 재독했지만 역시 나에겐 좋은 느낌을 주지 못했다. 이 소설은 내가 싫어하는 소설의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었다. 단편으로 압축시켰다면 더 좋았을 작품을 장편으로 만든 점, 다른 작가의 작품과 문장을 인용한 점, 소설의 의미를 독자가 애써 찾아야 한다는 점,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작가의 처지와 성장, 회고를 억지로 연결시킨 점, 오히려 작가 스스로 소설에 의미를 너무 많이 둔 점이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무조건 환영이다. 다만 거기에 ‘어떤 것’이 있어야만 한다.

 

본문 중, 예술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학기에 과 전체가 참여하는 창작 워크숍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p.148). 거기서 백일장을 했는데 지혁의 작품은 “너무 반듯한 게 탈이라”는 평을 듣는다.

 

[나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상을 못 받아서라기보다는 그 ‘반듯하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너는 결코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비아냥처럼 들렸다. 내 딴에는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말 그대로 ‘반듯하게’ 가다가 큰 일탈을 결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속이 뒤집어졌다. 그럼 어떡할까? 그냥 그만둘까? 죽을까? ‘순진하고 찌질하며 뻔하다’는 평가, 날 미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겹쳤다.

 

웃음이 잦아들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지혁 씨가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죠.”

소설가는 덧붙였다.

“반듯한 게 어때서요, 라고 해야지.” -p.149]

 

반듯한 게 어때서? 반듯한 게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소설에 반듯함만 있는 게 나쁠 뿐이다. 내가 헤밍웨이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소설이 ‘반듯하다’는 것이다. 물론 찌질함도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읽어갈수록, 머리 뒤쪽에서 시작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이 느껴진다. 반듯함이 보편적이고도 특별함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다음은 『중급 한국어』를 읽을 것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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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0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30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6-10-30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그런데도 중급 한국어 읽으실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마지막 반전입니다! ㅋㅋㅋ

페넬로페 2026-10-30 14:57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 5별도 많더라고요.
<중급 한국어>에 대한 감상이 더 좋아 궁금해졌어요.
이 소설보다 좋기를 기대해 봤어요 ㅎㅎ

자목련 2026-11-02 10:04   좋아요 1 | URL
저도 놀랐어요!
실은 문지혁의 소설을 읽었는데(초급, 중급) 그 이후로는 그만 읽는 쪽으로 이어졌거든요.

페넬로페 2026-11-02 10:34   좋아요 0 | URL
중급한국어 앞부분에서 저도 포기쪽으로 기울고 있어요.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라 다른 책 읽겠습니다 ㅎㅎ

서곡 2026-10-30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페넬로페님 환절기 건강 잘 돌보시길 바래요 전 이번 주에 컨디션이 계속 안 좋더라고요 다가올 겨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6-10-30 14:59   좋아요 1 | URL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요.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드네요.
서곡님,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겨울 나시길 바래요^^

coolcat329 2026-10-30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제가 문지혁이란 작가를 우연히 유투브에서 보고 관심이 갔던 이유가 ‘반듯한‘ 이미지 때문이었거든요. ㅋ 그래서 초급 중급한국어를 읽게 되었구요. 저는 중급이 좀 더 좋았답니다.

페넬로페 2026-10-30 16:02   좋아요 2 | URL
저도 뮨지혁 작가 유튜브를 시청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헤밍웨이와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비교해, 이 글에 헤밍웨이를 살짝 언급했어요.
작가의 유튜브는 작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아닐수도 있을 것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6-10-31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듯하군요 ㅎㅎㅎ 싫어하는 소설의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음에도 다음 작품을 읽어볼 마음이 드시는 건.. 그래도 뭔가 매력이 있나 봅니다. 중급은 더 재미나게 읽으시기를..!

페넬로페 2026-10-31 17:26   좋아요 1 | URL
매력이라기보다 뭔가 약간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책을 대출해 와서입니다 ㅎㅎ
중급도 초급과 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아요.
 
인간의 굴레에서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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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의 소설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독자는 사건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선택을 지켜본다. 그것은 바로 또는 끝에서야 겨우 이해 될 수도, 아님 전혀 이해와 용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자가 인물을 지켜보는 방법도 다양하다. 각 사건에 나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보거나, 냉정한 관찰자로 계속 바깥에 머무는 경우다.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에피소드는 모자관계인 옥동(김혜자 분)과 동석(이병헌 분)의 화해 과정을 담고 있다. 결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동석은 말기 암 환자로 곧 죽을 옥동과 여행하며 “도대체 그때 왜 그랬냐?”고 묻는다. 남편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석의 친구 아버지 첩살이로 들어가는 옥동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옥동은 그때 미쳤었다며, 자신은 개 같은 년이니 장례도 치러주지 말라고 동석에게 대답한다. 글도 못 깨친, 어릴 때부터 박복하고 가난했던 옥동은 그저 동석에게 먹고 자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되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짧은 옥동의 말과 수몰되어 찾아갈 고향도 없는, 제주에 살면서 여태 한라산에도 못 가본 옥동을 동석과 나는 한 번에 이해하고 말았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먹고 사는 일만 생각해야 했던 옥동의 선택은 그렇게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우리를 설득시키고 있다. 시청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서머싯 몸은 자신의 분신인 필립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희경 작가와는 달리 지나치게 세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글과 영상의 차이를 차치하고도 읽는 내내 지루한 부분이 많았다. 각 인물의 생김새나 성격에 대한 묘사도 장황했다. 조실부모와 신체적 불구라는, 인간의 조건 중 가장 최악의 것을 둘 다 갖춘 필립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 어린 시절부터 힘든 과정을 지나온다. 부모가 아닌 큰아버지와 큰 어머니 아래에서 컸고, 학교에서도 온갖 수모와 놀림을 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콤플렉스와 어느 정도의 성격적 결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이해하고 그를 동정하지만 매 순간 필립이 내린 선택과 결정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필립은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매번 일기, 또는 긴 독백같이 자신을 되돌아본다. 변덕스러울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빠른 필립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복기한다. 그가 느낀 감정들과 후회, 회한이 쏟아진다. 서툴고 설익은 선택과 행동은 그만큼의 후회를 가져오지만, 필립은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견고한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에서 내가 겪어온 많은 혼란과 패배도 볼 수 있었다. 특별한 것 같은 필립에게서 인간적이며 보편적인 정서도 발견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허술하며, 후회되는 행동을 수없이 반복한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자신과 사회에 대해 형이상학적 고찰을 한다. 철학을 탐구하며 이성을 확립시키지만 결정적일 때 본능과 감정이 앞서며 앞의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때가 많다. 필립은 특히 밀드레드와 얽히면 열정과 감정의 격정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린다. “사색 끝에 확립한 적절한 작은 준칙”이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린다. 밀드레드와 관련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답답했다. 밀드레드가 필립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사라졌을 때는 숨이 멎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밀드레드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멈추지 않는 필립을 보며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굴레가 존재하며,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매번 인생 전체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느냐의 고민을 한 필립은 크론쇼가 그에게 준 페르시아 양탄자에 들어있는 의미를 깨닫고, 자유를 느끼며 굴레를 내려놓는다. 인생에는 별다른 뜻이 없으며,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페르시아 양탄자의 무늬를 직조하면 된다는 것이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산다(p,366).“ 주식 투자로 가진 돈을 모두 잃고 가난에 허덕이는 어려운 시기에 필립은 이러한 에피파니(Epiphany)를 느낀다.

 

만약 젊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필립의 깨달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내려놓음과 회색적 삶의 경계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회피나 나약함, 자기 합리화를 용납하지 못했기도 했다. 나이 들어 뒤늦게 이 책을 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약간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이 무엇인지, 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성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필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니지만.....

 

『인간의 굴레에서』의 철학은 현실주의적 관점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p.518). 서머싯 몸에게서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 즉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사건과 인물, 작가의 부연 설명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서머싯 몸의 생각이 담긴 철학과 예술, 삶에 대한 좋은 문장도 많다. 교양소설이라 끝이 약간 싱겁고 클리셰가 많아 아쉽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힘들이지 않고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가진 굴레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모퉁이 저편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라. -1권, p.429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2권,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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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22 0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간의 굴레는 그렇게 많이 좋지는 않던데요. 작가하고 뭔가 안 맞나 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뭐. ㅎㅎㅎ

페넬로페 2026-10-22 08:05   좋아요 1 | URL
뒤로 갈수록 괜찮아졌는데
인생 뭐 있어? 그냥 각자 나름 살아가면 되지 뭐~~이런 메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6-10-2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몸 대표작인데 전 안 읽었나봅니다. 내용이 생소하네요 🥲 너무 세세해서 지루하군요..ㅎㅎㅎ

페넬로페 2026-10-22 12:44   좋아요 1 | URL
저도 뒤늦게 읽게 되었어요.
전형적 성장 소설이예요.
제인 에어나 수레바퀴 아래에서와 약간 비슷해요.
근데 여기에 등장하는 밀드레드라는 여자는 정말 그 어디에도 잘 볼 수 없는 캐릭터예요.ㅠㅠ
 
인간의 굴레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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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진정한 ‘성장’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많은 것을 경험해 자신만의 것을 쌓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이 소설의 많은 클리셰와 필립의 변화무쌍한 성격이 성장의 특징을 말해준다. 자전적 소설이지만, 여기에 들어있는 종교, 예술,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굴레’는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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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가 기담(奇談)을 집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기담(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이라는 특성 때문에 너무 비틀거나 멀리 가, 개연성이 부족하고 황당해지면 곤란할 것 같았다. 그의 단편집인 『혼모노』의 내용과 문장에 반해 팬이 되었는데 혹시 실망하게 될까봐 이 책을 읽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읽기 시작한 작가의 기담집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작가의 문장은 여기서도 돋보였다. 감정이 절제되고 건조하기까지 한 문장은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로 올리게 해주었다. 딱히 비유나 상징을 내세우지 않아도, 애써 깊이 들어가려하지 않아도 사실과 의미가 잘 이해되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점점 고조되는 감정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서늘함, 여운, 찝찝함도 기담다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보다 더 좋았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세 개의 주제에, 각 3개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기담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진다. 이미 지나갔지만 역사로 남아 유령처럼 계속 우리 삶에 스며있는 ‘어제’는 지금도 번성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로 부를 쌓은 인간들은 대를 이어 부자로 살며 애써 감추려하지도 않는다.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미 지나간 조상의 치부로만 단정하며 자손들은 죄가 없다고 읍소한다. 여태껏 편히 살았으니 자손들도 그대로 살아가길 바란다. 일본의 만행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는 그대로이다. 문중과 가문만을 중시하며 내것만을 지키고자 한 조상의 얼에는 타자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늘의 세계는 온전히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는 물론이고 내일마저 반영해야 한다. 거기에 인간 각자가 짊어져야 할 무게도 만만치 않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 차리고 살아내야 할 하루라는 것에 질려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허울뿐인 것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다른 이의 인생을 사기도 한다. 말이 안 되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말도 안 되는 것에 중독된다. 아닌 줄 알면서도,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는 폭의 강을 건너자마자 그것이 진짜라고 믿어버린다. 보편적 관념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믿어버리는 것이 정의와 진리가 되어버린다.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 종이 남아 있기나 할 것인지? 온통 AI얘기뿐이다. 자율주행자동차를 3일만 타고 다니면 그동안 인간의 운전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실감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사람의 기능을 가진 휴머노이드의 역할도 당연시 되고 있다. 고도의 기능성과 편리함을 갖춘 사회가 눈앞에 와있지만, 거기에 따른 인간의 소외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는 잘 모른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어떻게든 인간은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 가진다. 어쨌든 낙관보다 음산한 디스토피아적 느낌이 더 강하다.

 

기담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문제들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서술한 성해나의 『인비인(人非人)』은 생각할 것이 많다. 작가는 여러 방향으로 접근하고 서로 고민을 나누어야 할 사회적 문제를 기발하고도 재미있게, 씁쓸하고도 서늘하게 서술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한 작가의 재치도 좋았다. 각 단편의 소재도 특이했고, 무엇보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보편성이 오히려 기담의 형식을 파괴한 역설인 것도 같아 신선했다.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홈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그리고 언제까지고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p.22,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중에서

다들 제가 무려 1800명을 학살하고 생체 실험한 전범이라던데, 선생, 난 아직도 그 말이 이해 가지 않습니다. 전범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요시무라 교수의 조수이자 하수인이었을 뿐입니다. 제 손으로 죽인 건 가타마리 하나뿐이고,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해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고 비웃을 뿐입니다.

-p.46, '인비인’ 중에서

 

얼굴만 남은 로봇과 눈이 마주친다. 그것은 뚝뚝 끊기는 합성음을 내며 더듬더듬 말한다. 당신은..... 무사할 거야, 아미고. 야키마 H1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옮겨지고, 감독은 그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조급히 다음 촬영을 준비한다.........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던 촬영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오토 모드로 작동하는 카메라로 대체된다. 주위를 둘러 보다 나는 생각한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p.228~229, ‘아미고’ 중에서

 

서둘러 문을 열려는 이익의 어깨를 그것이 지그시 잡았다. 손이 따뜻했고, 둔중한 맥까지 느껴졌다. 산 자의 것도, 망자의 것도 아닌 맥이. 긴장이 풀릴 만큼 나직하고 부드러운 투로 그것은 이익에게 말했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잖아. 나는 네 편이니까. 그것이 이익과 눈을 맞추었다. 그것의 일그러진 한 쪽 눈에 이익이 비쳤다. 그것이 되물었다. 그래, 내가 다시 필요해진 거지?

P.305~306, '고(蠱)‘ 중에서]

 

 

기담집 『인비인』의 어제, 오늘, 내일 카테고리에는 각 5곡씩 작가가 선정한 플레이리스트가 들어있다. QR코드로 접속하면 들을 수 있다. 각 단편 끝에는 두 페이지 분량의 작가 코멘트도 있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의도, 약간의 해설이 들어있다. 이 부분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없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가 나름 상상하며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작가의 해석이 필요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코멘트로 여러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유익했다.

 

단편 <인비인(인간 아닌 인간)> 코멘트에서 작가는 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조각을 노트북 화면에 띄워둔 채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비인간의 형태를 담아내면서도 결국 인간으로 귀결되는 그녀의 연작이 소설 속 ‘가타마리’와 닮아서일까(p.50)‘라고 쓰여 있다.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작품의 어떤 점에서 가타마리가 연상되는지 성해나 작가가 언급한 조각이 보고 싶었다. 검색해보니 마침 수원시립미술관에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인비인>은 하얼빈의 731부대가 자행한 생체실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1943년 히라누마 가즈오로 창씨개명을 하고 교토대로 유학간 나는 요시무라 히사토 교수를 오야지로 부르며 충성을 맹세한다. 나를 신뢰한 교수는 나를 생체실험의 현장인 하얼빈 핑팡구로 데려간다. 나는 120동안 그곳에 머물며 끔찍한 생체실험에 가담한다. 일급 실험체인 조선인 임산부에게는 온갖 균이 주입된다. 심한 고통에도 그 여자는 오래 버텼고, 결국 해산하고 죽는다.

 

그녀가 낳은 생명체는 치댄 밀가루를 얼기설기 뭉쳐놓은 형태에, 눈도 귀도 없이 코와 입만 겨우 붙어 있었다. 팔다리는 물론 생식기도 없는 환형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 덩어리란 뜻의 ‘가타마리’라고 불린다. 요시무라 교수가 떠나는 날, 동경으로 데려가 논문의 실험체로 쓸 목적의 가타마리는 그동안 내가 돌보게 된다. 짐승이기도, 사람이기도 한 가타마리를 돌보며 나는 피폐해지기 시작하지만 가타마리는 집요하게 나에게 따라붙는다. 견딜 수 없게 된 나는 결국 땅을 파고 산채로 가타마리를 묻어버린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던 나는 최근 하얼빈 근린공원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거기에 가타마리로 추정되는 뼈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경기도 광역버스를 갈아 타 도착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 위치해 있었다. 호주 멜버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트리샤 피치니니는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등을 이용해 살아있는 듯한 극사실적 조각을 작업한다. 극사실적 초현실주의 작가로서,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은 독창적이다.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한 피치니니는 인류의 과학적 발전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혜택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과학의 발달으로 인한 진보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더불어 상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 제목은 ’킨쉽(Kinship)'이다. 친족, 혈연, 가족 관계의 뜻으로 해석되는 킨쉽이 피치니니에서는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관계 개념에만 머무르지 않고 낯선 생명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거리감과 불편함을 넘어, 익숙하지 않은 존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로까지 확대되는 개념이다. 전시회장에서 본 피치니니 조각의 모습은 새로운 생명체였고 그것은 인비인의 가타마리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인간에게서 태어난 가타마리가 인간 아닌 인간이라면, 피치니니의 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새로운 생명체가 출현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대할 것인가가 피치니니 조각의 주제이다. 이것은 AI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인간 아닌 인간에 대한 우리의 대처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 꼭 인간과 모습이 다른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종교, 인종, 국가, 정치 이념의 차이로 인해 생각과 행동을 달리하는 수많은 타자들을 만났을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여지를 준다.

 

메리 셸리의 괴물, 휴머노이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에서 저절로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있다. 그러한 사실을 당연히 인식하지만, 지금 우리 역시 프랑켄슈타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영화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타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치니니의 조각에서 인간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인간을 특징짓는 흰 색과 검은 색으로 구분된 눈, 말 할 수 있는 입을 가진 생명체의 눈은 모두 슬프게 표현되어 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자신들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다. 영화 호프가 연상되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도 그렇지만 이번 전시 역시 특이했다. 현대미술 특징 중 하나가 독창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무거웠다. 러닝 타임 내내 거의 모든 관객이 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몰입도가 최고인 영화였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걸려 내가 타박할 정도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스토리지만 스크린을 통해 너무 현실적인 모습을 봐서인지 서늘하고도 착잡한 감정만 남아 있다.

 

영화 ‘가능한 사랑’에는 여러 관점과 층위, 다양한 욕망과 메시지가 들어있지만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에 의한 계급의 극단적 양분화가 가장 중요한 소재였다. 그것으로 인해 끄떡도 없거나 또는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절대 깨지지 않고 역전되지 않을, 신처럼 군림할 수 있는 진리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암울함도 남겨준다. ‘가능’의 여지가 없는 단단한 불가능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전시회가 생각났다. 피치니니의 가능성의 세계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인해 멀게만 느껴졌다. 현실에 직면한 우리가 아직 오지도 않을 가능성에 대해 과연 생각할 여지가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타자에 대한 태도는 저절로가 아닌 노력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의 팍팍함에 직면한 우리가 과연 시선을 돌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숲속에서의 호석(설경구)이 울부짖는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성해나 기담집의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은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다. 향이 좋고 견고한 벚나무로 짠 책상은 계속 대물림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죄되지 못한 괴물은 점점 자라 최고의 빌런으로 진화한다.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일제강점기에 경찰로 근무한 조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상우(조인성)는 어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며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로 성장한 이 땅의 상우는 벚나무 책상처럼 여전히 건재하다.

 

‘가능함’의 역설은 불가능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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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11-02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대단한 리뷰입니다~~읽으며 감탄!

페넬로페 2026-11-02 10: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쟁과 평화 4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8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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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쏟아 부은 러시아-프랑스 전쟁의 끝은 허무하고, 나폴레옹의 망령은 여전하다. 톨스토이의 전쟁론과 역사관은 장황하지만, 그러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으로 이 대작은 완성되었다. 평화를 찾은 사람들의 삶은 다시 일상적일 뿐이고, 니콜라이와 피예르가 가는 정반대의 길은 새로운 역사와 투쟁으로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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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12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명작. 그러나 전례가 없는 가장 지루하고 장황한 (그리고 뻔한) 에필로그.....라고 생각합니다만.

페넬로페 2026-09-12 20:52   좋아요 1 | URL
3권까지는 좋았는데
4권은 너무 장황하고
일상의 귀족적 삶이 전개되고 있어 역시나 출신은 어디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어쩜 그렇게 잘 섞어놨는지 그것만은 대가더라고요.

서니데이 2026-09-20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전쟁과평화가 4권이나 되는군요. 예전에 읽었던 전집도 무척 두꺼웠는데, 3권이라서 다른 책보다 분량이 많은 편이긴 했습니다. 오래되어서 대충 기억하긴 하는데 다시 읽으면 아마 새로울거예요.
9월이 되니 아침 저녁은 많이 차가워졌어요.
일교차 큰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6-09-20 19:17   좋아요 2 | URL
워낙 내용이 방대해 그런 것 같아요. 톨스토이가 글을 잘 써 4권이라도 쉽게 읽은 듯 해요.
요즘은 일교차가 심하더라고요.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