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년계획으로 꼭 헬스장에 등록한다고 결심했지만, 당연히 아직이다. 그 대신 많이 걷고, 산책길 여러 군데에 설치되어 있는 공원 기구 운동도 한 번씩 한다. 어차피 헬스장에 가도 이용하는 기구가 한정되어 있다. PT를 받지 않는 한, 헬스 중독자인 근육맨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에 선뜻 끼어들 수가 없다. 깨작깨작 기구 몇 개 들어 올리고, 러닝 머신이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면서 미리 지불한 1년 치 돈이 빠져나가는 안타까움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정신적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요즘은 집 근처 새로 조성되고 있는 호수 공원에 설치된 중량을 조절할 수 있는 운동 기구를 이용한다. 무게를 높일 수 있어 훨씬 운동하는 맛이 난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다. 공원 기구 운동은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 저녁 늦게 가면 학원 수업이 끝난 학생들도 많이 와서 운동을 한다. 저번에는 어떤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이 놓고 운동을 하길래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전에는 태권도 도복을 입은 3명의 남학생과 1명의 여학생이 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10시쯤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들린 듯 했다. 그들은 운동은 하지 않고 기구 옆의 벤치에 앉아 계속 떠들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거의 3명의 남학생이 1명의 여학생을 놀리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그 여학생을 놀렸는데, 여학생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여학생이 고통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친구들과 즐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20분 정도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가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왔지만 계속 그 광경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여학생이 약간의 장애를 가진 친구는 아닐까? 아님 요즘 청소년의 행태나 우정을 내가 몰라서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학생 3명과 여학생 1명의 조합은 어딘지 조금 공평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설사 그들이 친한 친구라 해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놀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지금은 괜찮아도 그것이 쌓이면 나중에 그 여학생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다음날까지 고민하다가 학생들이 입은 도복에 인쇄된 상호의 태권도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듣고 본 것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장님이 전화를 받아 어제의 일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내가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잘못 알 수도 있다. 아이들을 혼내라고 전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았으니 정확한 상황은 알아보시라고 했다. 관장님은 잘 알겠다고 하며 아이들과 얘기 나눠보겠다고 했다.

 

태권도 관장님은 그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해주셨다. 아이들과 얘기를 해보았지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고, 서로 장난친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따로 여학생에게 남학생들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물어봤지만, 아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고 했다. 관장님은 계속 아이들을 지켜볼 것이고,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라며,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우정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의 호기심으로,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심심해서 부당한 것을 참거나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금세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다. 지우, 소리, 채운은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고민이라는 표현은 가볍고 사실 불행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가족의 죽음과 폭력으로 야기된 것들로 인해 현재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는, 불행에 빠진 세 청소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불행은 뭔가 거창한 것을 바라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것이 아니다. ‘큰 사건 없이, 존재해야 할 누군가와 살 수 있다는 바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불행인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병이 찾아오고, 재수 없는 사고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하나라도 찾아오면 그냥 힘들어지는 것이다. 힘들기 시작하면 지우의 엄마인 지연처럼 피로와 허무에 젖어 살게된다. 그냥저냥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바라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지우, 소리, 채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그 연결을 거부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안주하거나 그것으로 타인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지금 아이들이 의지할 엄마는 없지만 그 대신 다른 어른이 그들을 보호해주려고 노력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더 글로리악연은 청소년 시기를 정말 나쁘게 보낸 어른들의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의 착한 이 소설과는 정반대다. 전자에 비해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이 너무 따뜻해 식상하고 재미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에는 진심이 있다. 가족이 아니어도 마음 놓고 안길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아이들은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그냥 이것이 진리다.


이 소설속 아이들과 산책길에서 만난 태권 소년 소녀가 무탈하게 어른으로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건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집에서 한 과제라 채운은 '미끄럼틀'이나 '추락' 같은 단어를 미리 찾아볼 수 있었다. 채운은 저 때가 자기 삶에서 최고의 날까지는 아니어도 꽤 좋은 날이었음을 인정했다. 작은 몸에서 기쁨과 신뢰가 분수처럼 터져나오던 때, 저 아래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마음놓고 내려와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어 그 사람에게 정말 마음껏 안겼던 그날이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데 와 있을까?’ 

채운은 접속사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여러 선택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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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능청스러운 진지함때문이다.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는 연극사 2‘ 강의를 같이 듣는 미도리를 대신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간병한다. 처음 만난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와타나베는 부담감과 서먹함을 없애려고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날씨 얘기로 시작해 연극사 2‘에서 배우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설명해준다.

 

[에우리피데스 아세요?

그 사람 연극의 특징은 이것저것 마구 뒤엉켜 꼼짝도 못 하게 돼 버린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이런저런 사람이 나오는데 그 모두에게 각각 사정과 이유가 있고, 모두가 나름대로 정의와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 탓에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요.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카오스 상태에 빠지고 말죠.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게 정말 간단합니다. 신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죠.배후 조정자 같은 거라고 할까요.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돼요. 이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합니다.

-p.323,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길지만 이 문장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이렇게 쉬우면서도 간결하게, 머리에 쏙 들어오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이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 소설의 어떤 다른 부분보다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구절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처음 만난 사람, 그것도 친구의 아버지에게 지금 배우고 있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진지하게 말한다. 그런 와타나베를 멍하니 쳐다보는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그는 피스라고 말하며 어색함을 모면한다.

 

둘은 오이도 나눠먹는다. 오이를 먹으며 와타나베는 생명의 향기를 운운하며 엉뚱하게 오이예찬도 한다. 결국 미도리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인정한다. 와타나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 진지한 의미를 두어 지금 생을 찬란하고도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미도리의 아버지는 5일 후에 세상을 떠난다.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세상은 신의 개입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오이의 아삭거림으로 삶은 가볍고 경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와타나베 덕분에.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하루키에 의해 진하게 각인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19편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2에서는 이온’, ‘오레스테스의 결말에 전형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사용된다. 여러 가지 갈등이 연속되다가 거의 마지막에 신이 등장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이 장치가 단지 연극적 기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인력(人力)으로 할 수 없어, 운명이라 받아들이는 일들도 허다하다. 어쩌면 신이라도 나타나 뭔가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인간의 염원이 이 속에 들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비극의 상당 부분에 신이 등장한다. 절대자인 신에 복종하고 신탁에 따르는 행위는 그만큼 고대인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험난하고 위험했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이기심이나 욕망을 실현시킬 도구로 무수히 신의 이름을 도용하기도 한다. 여러 신전의 사제들이 정확하지 않은, 우물거리는 말로 신탁을 전하면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적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방향으로 그것을 해석했다.

 

에우리피데스는 헬레네를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서술한다.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으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트로이아를 데려갔고 그리스 연합군은 헬레네를 데려오기 위해 트로이아로 출정한다. 에우리피데스는 트로이아로 간 헬레네는 환영이고 실제 헬레네는 이집트로 갔고, 헬레네의 기지로 남편 메넬라오스와 무사히 그리스로 돌아온다는 다른 버전을 가져온다.

 

그리스 연합군의 수장인 아가멤논 가()의 비극과 복수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복수 3부작'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에우리피데스 역시 이 소재로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아가멤논 가의 비극은 사실 선조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결정적 원인은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가 그리스 연합군의 출정을 위해 아르테미스 신전에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설정이다.

 

아가멤논은 정치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딜레마에 빠지고 결국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캇산드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아가멤논을 죽인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 부부의 아들과 딸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엄마인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죽이는 복수가 되풀이된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오레스테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등이 아가멤논 가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이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것이어서 결국 이 소재와 연결된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비극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의 여러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는 것도 많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그런 의도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을 것이다. 이 기법이 현대의 막장 드라마 결론처럼 황당하거나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비극적 고리와 인간의 광기를 끊는 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러한 장치가 없다면 인간들은 끊임없이 연결된 악연에 의한 폭력에 시달릴 것이다. 과감하게 끊고 매듭지어 새롭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당위성은 지금 현재에도 절실하다.

 

[아폴론이 헬레네와 함께 기계장치를 타고 무대 뒤편의 높은 곳에 나타난다.

 

아폴론; 메넬라오스여, 그대는 날이 선 분노를 무디게 하라.그리고 손에 칼을 빼 들고 여기 이 소녀를 위협하고 있는 오레스테스도 내가 전하러 온 말을 명심해 들어라.

 

오레스테스; 오오, 예언의 신 록시아스이시여,

하지만 결론이 좋으니, 그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오레스테스’, 1625~1670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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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 인생 전반에는 격변하는 프랑스 역사가 들어있다. 발자크는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사회를 그대로 담아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땐 처음에 힘이 든다. 발자크는 매번 소설 첫 부분에서 세부적이고도 자세히 배경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지루하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굳이 19세기 프랑스에 대해 이렇게까지 알아야 되는가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읽어나가면 촘촘하게 짜여 진 발자크 소설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된다.

 

사라진은 비슷하게 전개되는 인간극의 시작과는 다르다. 엘리제 부르봉궁의 화려한 연회에 참석한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저녁나절 창밖 나무의 모습에서 죽은 자들의 춤(죽음의 무도)’의 이미지를 본다. 죽음을 망각한 채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출신이 의심스러운 랑티 씨의 저택에서 벌이는 바쿠스 축제와는 대조적인 느낌을 갖는다. 화자는 이질적인 두 그림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 예술과 사랑에 대한 허무를 본다.

 

5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인 사라진에서 발자크는 압축적이고도 깊이 있게 인간에 대해 말한다. 권력, 탐욕, 화려함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예술에게도 칼을 댄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 위해 어린이에게 물리적 거세를 가해 남성 성악가인 카스트라토를 만들어낸다. 조각가 사라진과 카스트라토인 잠비넬라의 스토리는 예술과 사랑조차도 인간 내면의 순수성이 아닌 조작되고 왜곡된 이미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비평서 S/Z에서 사라진을 분석한다. 바르트의 해석이 어려워 그 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읽더라도 그의 비평에 모두 공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소설 사라진은 짧지만 여러 번 읽어도 발자크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내기 쉽지 않다. 어떤 결론을 내기 모호하게 뭉뚱그려져 있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현실에 묻혀 버둥거린 발자크 스스로 소설가로 사는 자신에 대한 무수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샤베르 대령은 전형적인 인간극 소설이다. 인간극의 주요 소재는 돈과 법이다. 작가가 되기 전 발자크는 3년간 법학 공부를 했고 소송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실에서 2년 동안 서기생활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이후 발자크 소설을 거의 형성한다.

 

샤베르 대령은 나폴레옹제국의 전쟁 영웅이다. 1807년 아일라우 전투에서 공을 세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샤베르 대령은 실종자로 처리되어 법적으로 부재자가 된다. 부재자는 그의 배우자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돌아온 샤베르는 신원을 회복하려 하지만 이미 재혼해 새 남편과 아이까지 낳고 페로 백작부인이 된 그의 부인은 샤베르 대령을 부정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법적인 문제들이 얽혀있다. 발자크의 인간극에 자주 등장하는 소송대리인 데르빌은 샤베르 대령 편에서 도와주려 했지만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낸 샤베르의 분노로 합의에 실패하고 샤베르는 비참하게 노년을 보낸다.

 

발자크의 인간극이 현실을 대변해 읽는 내내 뒷목이 뻣뻣할 정도로 추잡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 건조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잔인하고 경쟁적 세상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어디엔가 꼭 있기 때문이다. 샤베르 대령도 자신의 하마르티아로 다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만, 그의 이면에는 전 부인을 지켜주려는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샤베르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경의와 측은지심도 느껴진다.




1891년 프랑스문인협회는 로댕에게 발자크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한다. 7년 동안 고심한 끝에 만들어낸 로댕의 발자크는 사람들이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다. 발자크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섬세한 표현이 없는, 그저 망토 자락으로 둘러싸인 3m 정도 높이의 거대한 덩어리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했고 문인단체는 인수를 거부했다. 로댕은 석고 모형을 집에 보관했고 그가 죽고 22년이 지나서야 청동상으로 다시 주조했다. “로댕의 조각은 근대와 현대의 경계를 형성한다. 로댕은 발자크의 내면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모란미술관의 발자크 상은 몰드로 뜬 석회상 10점 가운데 하나이다. 루브르미술관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마지막 에디션이다.

 

작년 한 해 동안 클래식 독서동아리에서 발자크 소설을 읽던 중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에 있는 모란미술관에 로댕의 발자크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막연히 그곳이 멀다고 생각해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워 초록이 싱싱하고 여러 색의 철쭉과 연산홍이 만발한 봄날에 그레이스 님, 카리나 님과 함께 모란미술관에 다녀왔다.

 

잠실역 환승센터 6번 게이트에서 8002번을 타고 모란공원에 하차하면 바로 모란미술관이 있다. 2층 버스가 있어 버스 2층에 탑승했는데 색다른 재미가 있어 좋았다. 올림픽 대로를 지나 모란미술관까지는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2010년 반청자 여사가 기증한 발자크 조각상이 모란미술관의 모란탑 내부에 전시되어 있었다. 모란탑은 자연 채광이 되는 아주 높은 탑인데 그곳에 발자크가 우뚝 서 있었다. 두근두근 기대하며 직접 본 발자크 상은 그야말로 위엄이 넘쳤다. 100년도 전에 살았던 프랑스 작가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자신의 소설을 읽고 찾아 온 이 세 여자에게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왜 그리 발자크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가?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발자크의 삶을 안다면 로댕이 만들어낸 발자크 조각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진><샤베르 대령>처럼 정반대의 소설을 만들어 낸 작가, 평생 돈을 좇으며 살았지만 돈의 감옥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인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청소년 시기를 보낸 사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남자, 뒤늦게 결혼했지만 곧 병으로 죽어버린 발자크....

 

어떻게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로댕은 그의 삶 전체를 한 덩어리 속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오른편으로는 어둡고 소리 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내 왼편으로는 삶의 격조 높은 바쿠스 축제가 펼쳐졌다. 이편에는 차갑고 음침하고 애도에 잠긴 자연이, 저편에는 흥에 취한 사람들이 있었다. 별의별 방식으로 수없이 되풀이되며 파리를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도 가장 철학적인 도시로 만드는 두 이질적인 그림의 경계에서 나는 반은 경쾌하고 반은 을씨년스러운 정신의 혼합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왼발은 장단을 맞추는데 다른 한 발은 관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몸의 절반을 얼어붙게 만드는 외풍에 내 한쪽 다리는 얼음장 같고 반대쪽 다리는 무도회가 열릴 때면 흔히 그렇듯 살롱의 끈적끈적한 열기를 맛보았다.

-p.12~13]

 

발자크가 쓴 사라진의 이 문장이 발자크 조각상을 바라볼 때의 내 느낌과 똑같았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의 모란미술관 야외조각장은 너무 좋았다. 대부분 1990년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약간 시대에 뒤쳐졌지만 레트로한 분위기가 정감 있었다. 정원의 수목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그곳의 조각들은 나무와 싸워야 할 정도였다. 가을에 가도 좋을 것 같았다. 미술관 내부에는 사물로부터라는 제목의 기획전이 열렸다. 관람객이 별로 없어 도슨트 님이 자세하고 친절하게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작품 하나마다 작가가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의미를 두는지에 대해 새삼스레 느낄 정도로 도슨트 님의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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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4-25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마니아 페넬로페님~! 발자크 조각상까지 보러 가셨군요 ㅋ 발자크랑 에밀 졸라의 작품세계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발자크가 귀족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에밀 졸라는 서민적인 이야기? ㅋ

페넬로페 2025-04-25 17:19   좋아요 2 | URL
이 조각상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다녀왔어요. 발자크와 에밀 졸라가 뭔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요즘 졸라의 ‘루공가의 행운‘을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stella.K 2025-04-25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은 많고 점점 읽어지진 않고.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ㅠ 그래도 모란 미술관은 좋네요. 근데 반청자 여사님이 기증을 하셨다니 대단하신 분이신가 봅니다. 전 그냥 프랑스에서 공수해 한정 전시하나 했더니...

페넬로페 2025-04-25 20:26   좋아요 2 | URL
반청자 여사님의 아들이 사업가인데 컬렉터라고 합니다. 이 두 분이 기증했다고 보면 되는데 아마 어머니의 이름으로 기증된 듯 합니다.
미술관에 가서 힐링하고 왔습니다. 앉아 있을곳도 많아 커피 들고 가서 산책해도 좋을 듯 한데 입장료가 만원이더라고요^^

희선 2025-04-26 0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사라진’을 사라지다인가 했는데, 읽다 보니 이름이었군요 이건 한국말이 아닌 프랑스말 Sarrasine사라진이군요 찾아보니 조각가라고 나오네요 한국 미술관에 발자크 조각상이 있다니, 발자크 소설을 많이 보셔서 그걸 본 느낌이 남달랐겠습니다 로댕이 조각한 거였군요 그때 사람들은 안 좋아했다니... 그래도 남아 있었네요

숲속에 조각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겠습니다 나무가 좋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5-04-26 09:54   좋아요 1 | URL
네, 사라진은 사람 이름입니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다보니 아무래도 이 조각상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정원을 산책하면서 작품을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또한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희선님,
주말 잘 보내십시요^^

책읽는나무 2025-04-26 0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란 미술관이 모란역 근처에 있나 보군요?
모란역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모란이란 명칭이 눈에 들어옵니다.
암튼 그 유명한 발자크 동상이 한국 미술관에 있었다니 놀랍네요. 어디선가 로댕의 발자크 동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 추한 얼굴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외면 당했었다는 그 말에 얼마나 못생기게 조각했으면? 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직접 보니 음…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로댕이 생각하는 발자크의 이미지가 섬세하게 잘 드러난 듯도 합니다.
좀 엄숙하네요.
여성 혐오 작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 시절,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이런 구절을 읽으니 그래서 작가가 그랬었나? 싶은 마음도 들구요.
암튼 그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느끼려면 소설을 읽어봐야 하는데 제대로 완독한 책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소설부터 읽어봐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합니다.^^

페넬로페 2025-04-26 09:53   좋아요 2 | URL
이름은 모란인데 위치는 마석에 있어 마석역과 가까워요.
책나무님 모란역에 대한 추억이 뭔지 엄청 궁금합니다.

로댕의 발자크상은 생각보다 키가 커서 얼굴쪽을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웠어요.
아래에서 위로 쳐다봐야했어요.

남성 작가의 여성 혐오가 뭐 발자크뿐이겠습니까? ㅎㅎ

날씨가 너무 좋네요.
책나무님, 잘 지내시지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그레이스 2025-05-04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랑 카리나님도 등장하네요 ^^
잠깐동안의 외출이었는데,,, 굉장히 오래전 일인듯요^^
한강변 풍경도,, 미술관 뜰의 야외조각도,,, 너무 좋았어요.
가을에 다시 가봐요.^^~♡

페넬로페 2025-05-05 09:03   좋아요 2 | URL
당연히 두 분 등장하셔야합니다.
네, 모든것이 좋았어요.
가을에도 좋을듯 해요.
그때 꼭 다시 가요♡♡♡

독서괭 2025-05-0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로댕이 발자크 조각상을 만들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남양주에 이런 미술관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구요. 페넬로페님 덕에 공부하고 가네요. 발자크 작품은 서재글 읽을 때마다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는 게 몇년째지만..ㅎㅎㅎ

페넬로페 2025-05-08 19:41   좋아요 1 | URL
네, 로댕의 발자크상이 있어요.
모란 미술관은 야외에 조각상이 많아 날씨 좋을 때 아이들 데리고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정원도 좋더라고요.

저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입문도 못한 작가가 수두룩합니다 ㅎㅎ
 












202411월부터 20253월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 고흐><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반 고흐전은 그동안 32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제법 감상했기에 이번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러갔다.

 

카라바조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화가였다. 그의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이며 카라바조는 화가의 이름이 아니라 밀라노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가모 지역의 도시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름이 같아 그와 구별하기 위해 출신 지역인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이다.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성격이 별나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쳤다. 소아성애이자 술버릇이 나쁘고 다혈질인 그는 자주 폭행사건을 일으켰고, 1606년에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카라바조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 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곳을 전전했고 결국 로마 남쪽의 한 해변에서 객사하고 만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확하지 않거나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카라바조가 불한당이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17세기에서 18세기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아우르는 예술 양식인 바로크(포르투갈어로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의 출발은 성소에서 그림과 조각을 몰아낸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에 맞선 트리엔트 공의회의 반종교개혁의 공표였다. 그들은 오히려 신심을 고양시키고 로마(가톨릭)의 우세를 위해 그림, 장식, 문양을 장려했다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는 것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한다.(나무위키)’ 그러한 특징의 바로크 미술은 카라바조에 의해 시작되었고, 루벤스와 램브란트가 그 뒤를 이었다.

 

[카라바조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롭고 혁신적인 화가이다.

카라바조는 회화에서 뒷날 바로크 예술이라 이름 붙는 시기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직설적인 언어와 극적 효과에 대한 탐구가 결합되어 빛과 어둠의 대조에서 오는 순간적인 긴박감을 그림에 부여했다.

- 카라바조 1571~1610, p.7, 47]



-“카라바조 그림에서 조명은, 위에 달린 단일 광원으로부터 반사광 없이 빛을 뿌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치 검정으로 도배된 방안으로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서 빛이 유입되는 것 같았다.”

-줄리오 만치니-

 

빛의 대가답게 카라바조의 그림은 대부분 배경을 어둡거나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사람이나 사물만이 채색되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한 줄기의 빛이 포인트가 되어 강조하고 싶은 곳에 머물렀다. 배경이 어두운 탓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아 엄청 집중이 잘 되었다. 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종교화가 많아 가톨릭교도인 내가 생각할 것이 많았고, 경건하고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미켈란젤로 메리시

 

곱슬머리 소년의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얼굴이 보인다. 귀 뒤에 꽂은 꽃은 두 개의 잎사귀가 달린 흰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한다. 소년의 오른쪽 눈꺼풀 아래 고통의 눈물이 보인다. 개인 소장인 이 작품 외에 다른 두 버전이 있다.

 

[도마뱀에게 손끝을 물린 순간, 소년의 놀란 표정은 영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과 결부된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제시하였다....초록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과일들은 오직 빛의 반사를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바조, p.84]


-<성 토마스의 의심>-

 

예수는 스승이 부활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제자 토마스에게 창에 찔린 자국에 직접 손을 넣어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체포>-

 

배신자 유다는 그리스도에게 입맞춤으로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린다.

 

[카라바조는 그리스도, 유다, 성 요한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면서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옆모습을 보이며 도망가는 성 요한은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병사들의 검은색 갑옷을 번쩍거리게 하는 빛은 화면 전체에 역동성을 더해 주는 동시에, 인물이 왼쪽으로 치우친 구도에서 균형을 맞춰 준다.

- p.123]


-‘조토두초<유다의 입맞춤>,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p. 148

 

배신자 유다의 입맞춤은 워낙 유명해 같은 소재로 여러 화가가 작품을 남겼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골리앗의 머리가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날에 적힌 글씨는 겸손함은 오만함을 죽인다라는 뜻이다.

-p.150]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프란체스코 바사노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삶의 기쁨에 전념하는 여인으로, 마리아는 관상하는 삶의 모범적인 예를 상징한다. 조르조네 화풍의 풍경에서 빛은 구름 낀 하늘을 환히 밝히며, 이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약간 울분을 토한 부분이 마르타와 마리아가 등장하는 구절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두 자매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르타는 하루 종일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시중만 든다. 이에 마르타는 불만을 느끼지만 도리어 예수님은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라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같이 성경 공부했던 멤버들은 거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이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 구절이 전하는 본래의 의미는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경청하라는 것인데, 다들 마르타에 빙의되어 마치 우리가 그런 일을 겪은 양 억울해하며 흥분했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마르타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니 여전히 마리아가 얄미워 보였다.



바로크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림에 허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러 정물 작품에 해골이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살면서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끝은 죽음이니 그냥 제멋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 후의 세계를 의식해야 하는지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 카라바조는 현재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러다 매번 눈물과 회한으로 구원을 기도하며 성 프란체스코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황홀경을 그린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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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3-04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술의 전당에 카라바조 그림 보러 갔다가 카라바조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을 쳤는데 사람들이 숨겨줬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아니 그건 그 전에 읽었던 책에서 알게된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참 의문이더라고요.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숨겨줄까? 그게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가능했던 것인가? 이래서 그림을 보면서도 내내 ‘살인자였는데‘ 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숨겨주었다면 그 살인에 명분이 있었던걸까? 막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아 카라바조에 대한 평전을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요. 결국 책만 검색해보고 사지도 읽지도 않았지만. 그런데 소아성애라고요? 소아성애는 명분이 없으니 이해하기를 포기해야겠어요.

페넬로페 2025-03-04 13:4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전시를 통해 카라바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어요. 카라바조에 관련된 책은 그의 연대기에 따라 행적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었어요.
이 화가에 대해서는 부풀려진 얘기도 많고 확실하게 검증된 것도 아니어서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그 시대는 수업도 도제식이고 예술가가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살인을 해도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에 대한 도덕적 평가보다 지금은 거의 그림에 대한 평가만 있는 것 같아요^^

hnine 2025-03-04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카라바조에 대한 영화를 두편이나 상영하고 있어서 보러갈까 하고 있던 참이랍니다. 그중 한편은 말씀하신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더군요.
양정무님의 미술이야기 5권에 카라바조 이야기도 나오나요? 저도 가지고 있는 책인데 못찾았어요.

페넬로페 2025-03-04 13:50   좋아요 0 | URL
카라바조 전시가 고흐전에 비해 엄청 한산해서 쾌적하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어요.
저는 그림들이 대체로 마음에 들었어요.

양정무의 책에는 카라바조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저는 예수에게 입맞추는 유다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비교하기 위해 이 책을 가져왔습니다.

그레이스 2025-03-0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로크 예술에 끌리더라구요^^
처음 카라바조를 알게 되었을 때 아마도 분노조절 장애가 아니었나 했습니다.
그의 재주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게 인상깊었던 카라바조의 작품은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작품이예요.
제가 갔을 때는 관람객이 많았었는데...

페넬로페 2025-03-04 14:51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카라바조라는 화가가 궁금해 갔었는데
저도 완전 바로크 미술에 빠져 버렸어요. 한 작품마다 오래 멈춰 서 있었어요.
카라바조의 작품 모두 좋더라고요.
느낌인진 몰라도 다른 화가보다 카라바조가 좀 더 낫다는 편견도 가졌습니다 ㅎㅎ
그림 보면서 같이 간 언니에게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고요 ㅎㅎ
미술관 전시는 복불복인 것 같아요.
비엔나 1900도 제가 갔을땐 한산했거든요^^

바람돌이 2025-03-0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낙에 강렬한 그림을 그리고 재주가 출중해 교황이 그를 많이 아꼈어요. 그래서 온갖 사고를 쳐도 다 넘어갔다죠. 살인도 아마 제 기억에는 술먹고 싸우다가 그런걸로 들어던듯.... 결국 도망을 갔는데 그 후에도 계속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간절하게 보내고 하다가 결국 객사했다는 기억이 나네요. 그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츠바이크의 책에서 읽었던거 같은데 또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페넬로페 2025-03-04 23:15   좋아요 1 | URL
테니스를 치다가 상대방이 속임수를 썼다고 욱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를 돕던 실력자들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몰타 섬의 감옥에서 탈출했어요.
츠바이크의 어느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림만 본다면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확실히 눈에 띄어요^^

희선 2025-03-05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라바조가 램브란트보다 먼저였군요 빛의 화가라는 말 램브란트 이름 앞에서 본 듯도 합니다 성격이 별났군요 카라바조는 예전에 이름만 조금 들어봤네요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은 별로 안 봐서... 본래 이름이 미켈란젤로였다니, 미켈란젤로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이름으로 했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5-03-05 08:26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름 정도만 아는 화가였는데 전시회가 있어 다녀왔어요. 램브란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이 좋았어요^^
 














딸아이가 어렸을 때(4살이나 5살 즈음) 구립 도서관에서 무료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해 종이로 뭔가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소란스런 분위기에서 작품이 하나씩 완성되어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강사는 우리들에게 탁자에 남아있는 자투리 종이를 찢어서 소리 지르며 위로 날리라고 했다. 강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갑자기 들어온 강사의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기쁘게 소리 지르며 종이를 찢고 흩날렸지만 난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감각을 느끼거나 즐겁지도 않았던 그 날의 내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딸아이는 아마 내 옆에서 종이를 날렸을 것이다. 난 딸아이가 종이를 찢고 날리는 것을 도와주며 막막하게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한강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는 내내 그 날이 생각났다. 이 소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껍데기와 그 속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라 그런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그 날의 느낌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로 내가 왜 그랬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껍데기가 너무 억세고 굵어 그것을 제거하고 내 속을 볼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나에게 종이를 찢고 흩날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남들이 보기에 동정을 느낄만한 지독한 상처가 별로 없는, 그저 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이 세상은 만만치 않다. 나를 다독거리며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더 많은 껍데기를 쌓아 올리며 버티고 나를 구슬리며 괜찮다고 자족하며 산다. 이러다 우리는 영영 속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예술 작품으로 시작된다. 조각가인 장운형은 사람의 신체에 석고를 입혀 그것을 떼어내는(라이프캐스팅) 작업을 한다. 글을 읽으며 그가 하는 작업을 상상해본다. 석고를 개어, 뜨고 싶은 신체에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석고는 굳으면서 피부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로 점점 뜨거워진다. 뜨겁게 느껴지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다. 석고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끌로 신체의 선을 따라 절개해 떼어낸다. 몸의 껍데기는 주름과 터럭의 자국까지 남길 정도로 정교하지만 속은 시커멓게비어있다.

 

[결국 그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건 누더기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의 컴컴한 공동(空洞)이었는지도 모른다. -p12]

 

어떤 형식이든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장운형은 큰 상처가 있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의 몸을 집요하게 석고로 라이프캐스팅하기 원한다. 속을 보고 드러내기 위해 먼저 자신의 껍데기를 직시하게 한다. 겹겹이 쌓아 단단해졌다고 여겨진 껍데기는 사실 자신이 붙들고 있는 허울이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조용히 뒷모습을 보이는 순간(p.270)’ 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껍데기를 깨부수며 안을 보기를 원했던 장운형은 E에 의해 자신의 몸이 라이프캐스팅 될 때 견디기 힘들어 한다. 공포와 노여움을 느낀다. 끈질기게 타인의 몸을 뜨기를 원했던 그는 정작 자신의 껍데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사람의 것 같다(p.312)’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몸이 고스란히 프린팅된 것의 이물감과 난처함으로 LE, 장운형은 껍데기를 깨부순다. 여태껏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몸에 감싼 채 살아온 집착은 허탈함만을 남긴다. 동시에 뭔가로 부터 꺼내어진 그들은 자유를 얻는다.

 

장편인데도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치밀하다. 한강 작가가 지금도 계속 붙들고 있는 폭력과 상처, 그럼에도 희망과 사랑으로 가는 여정이 여기에도 있다. 여러 에피소드로 연결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좋았다. 읽는 재미도 있었다. 다만 마지막 E 부분이 약간 평범하고 신파적이기도 해서 아쉬웠다.

 

이 소설에는 채식주의자의 전편 정도로 여겨질 만큼 불편한 방식도 들어있다. 한강 작가 특유의 그 방식 말이다. 작가의 그 방식에 불편을 느끼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을 질책하거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술에서의 소재와 방식은 예술가의 권한이자 독창성이기 때문이다. 작가마다의 고유한 방식을 존중하고 싶다.

 

[저항하는 그녀의 손을 끌어다 내 무릎 위에 놓았다. 그 왼주먹은 몇 시간 전에 석고를 바르려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내 인생을 관통해온 그 쓸쓸한 미식거림을, 시큼한 침이 고여오는 혀뿌리 아래로 눌렀다.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p.312~313]



 

 











그대의 차가운 손L은 어릴 때의 상처로 인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살이 찌고 그것으로 성폭력은 벗어났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갇히게 된다. L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살을 빼려고 한다. 강박은 L을 피폐하게 하고 그녀를 폭식증 환자로 만든다. 10분 동안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고 목구멍에 주먹을 넣어 토한다. 거기다 하제까지 사용한다.

 

언젠가 지인과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살집이 있는 어떤 여자가 단팥빵을 먹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인은 저렇게 뚱뚱하면서도 어떻게 단팥빵이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난 그 말에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침묵은 아마 긍정 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계속해서 먹어대는 먹방을 싫어하고 살이 찌면 당연히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나도 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아니타 존스턴의 달빛 아래서의 만찬을 통해 중독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양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이 아니라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폭식은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배고파서, 맛있어서,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심리적 허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심리적 허기는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없다. 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음식은 들어온다. 몸이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몸의 한 부분은 중독되어 있고 한 부분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대개는 이 싸움에서 패배를 선택한다. 상실은 너무 아프고 위로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그립지만 괴로운 대상들은 사막을 지나가다 잠시 스친 풍경들이다. 조우했을 뿐 오아시스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인생에 오아시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것들의 막강한 존재감이 다소 상대화된다. 중독보다는 생존의 힘이 세다고 믿는다.]

 

이러한 말들이 L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한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 맥락들과 이어져 있는 것 같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공부와 나의 각성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인터미션을 포함해 230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굳이 이렇게도 긴 러닝 타임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국 라즐로 토스라는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려면 그가 거쳐 온 생의 여정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잘 설명하고 알려주기 위해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라즐로 토스>의 삶엔 여러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내는 개인이 존재한다. 유대인, 예술가, 건축가, 홀로코스트, 이민자, 미국 자본주의와 백인 권위주의에 의한 폭력, 시오니즘, 마약 중독자 등이다. 이 모든 것이 그를 형성한다. 두꺼운 껍데기 속에 들어있는 라즐로 토스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통째의 삶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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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25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점점 타인을 이해하는게 어려워져요. 타인을 이해한다는건 정말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알지 않으면 함부로 이해한다 말할 수 없는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5-02-26 00:0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이건 관심이나 측은지심의 문제와는 좀 다른건데, 그냥 섣불리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5-02-25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한강 작가님 좋아하는데 노벨상 수상 이후 약간 멀어진 느낌입니다 ㅜㅜ 노벨상 타시기 전에 많이 읽었어야 하는데 ㅡㅡ <그대의 차가운 손> 줄거리가 흥미롭네요. 조각=껍데기 라는 소재라니~!!

제가 요즘 심리적 허기가 생겨서 뭔가를 많이 먹나 봅니다...

페넬로페 2025-02-26 00:08   좋아요 3 | URL
한강 작가님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읽은 책은 재독하고, 읽지 않은 책은 읽어 보려고 해요. 내용을 떠나서 문장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모국어로 읽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넘 좋아요.

저도 오늘 10시 넘어 라면을 먹었어요. 조금씩 먹는 것 같으면서도 모아보면 엄청 많은 것 같아 고민입니다^^

2025-02-26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2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5-02-28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편은 이 책 하나 남았어요^^

페넬로페 2025-02-28 10:3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올해 천천히 하나씩 읽어 보려고 해요^^

서니데이 2025-02-28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230분이면 재미있다고 해도 길어서 부담될 것 같아요. 시간이 길면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내일은 삼일절이라 연휴가 되겠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3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5-02-28 18:42   좋아요 1 | URL
영화가 괜찮았고 재미도 있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었어요.

내일부터 3월이네요.
오늘 하루종일 봄기운을 느꼈습니다.
3월도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