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월부터 20253월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 고흐><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반 고흐전은 그동안 32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제법 감상했기에 이번에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러갔다.

 

카라바조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화가였다. 그의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이며 카라바조는 화가의 이름이 아니라 밀라노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베르가모 지역의 도시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름이 같아 그와 구별하기 위해 출신 지역인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이다.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성격이 별나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쳤다. 소아성애이자 술버릇이 나쁘고 다혈질인 그는 자주 폭행사건을 일으켰고, 1606년에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카라바조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 후에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곳을 전전했고 결국 로마 남쪽의 한 해변에서 객사하고 만다. 이런 이야기들이 정확하지 않거나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카라바조가 불한당이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17세기에서 18세기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아우르는 예술 양식인 바로크(포르투갈어로 비뚤어진 모양을 한 기묘한 진주라는 뜻)의 출발은 성소에서 그림과 조각을 몰아낸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에 맞선 트리엔트 공의회의 반종교개혁의 공표였다. 그들은 오히려 신심을 고양시키고 로마(가톨릭)의 우세를 위해 그림, 장식, 문양을 장려했다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는 것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한다.(나무위키)’ 그러한 특징의 바로크 미술은 카라바조에 의해 시작되었고, 루벤스와 램브란트가 그 뒤를 이었다.

 

[카라바조는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롭고 혁신적인 화가이다.

카라바조는 회화에서 뒷날 바로크 예술이라 이름 붙는 시기의 정점에 있었다.

그는 직설적인 언어와 극적 효과에 대한 탐구가 결합되어 빛과 어둠의 대조에서 오는 순간적인 긴박감을 그림에 부여했다.

- 카라바조 1571~1610, p.7, 47]



-“카라바조 그림에서 조명은, 위에 달린 단일 광원으로부터 반사광 없이 빛을 뿌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치 검정으로 도배된 방안으로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서 빛이 유입되는 것 같았다.”

-줄리오 만치니-

 

빛의 대가답게 카라바조의 그림은 대부분 배경을 어둡거나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사람이나 사물만이 채색되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한 줄기의 빛이 포인트가 되어 강조하고 싶은 곳에 머물렀다. 배경이 어두운 탓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아 엄청 집중이 잘 되었다. 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종교화가 많아 가톨릭교도인 내가 생각할 것이 많았고, 경건하고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미켈란젤로 메리시

 

곱슬머리 소년의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얼굴이 보인다. 귀 뒤에 꽂은 꽃은 두 개의 잎사귀가 달린 흰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상징한다. 소년의 오른쪽 눈꺼풀 아래 고통의 눈물이 보인다. 개인 소장인 이 작품 외에 다른 두 버전이 있다.

 

[도마뱀에게 손끝을 물린 순간, 소년의 놀란 표정은 영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과 결부된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제시하였다....초록색과 갈색으로 칠해진 과일들은 오직 빛의 반사를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바조, p.84]


-<성 토마스의 의심>-

 

예수는 스승이 부활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제자 토마스에게 창에 찔린 자국에 직접 손을 넣어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체포>-

 

배신자 유다는 그리스도에게 입맞춤으로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린다.

 

[카라바조는 그리스도, 유다, 성 요한의 다채로운 모습을 그리면서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옆모습을 보이며 도망가는 성 요한은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병사들의 검은색 갑옷을 번쩍거리게 하는 빛은 화면 전체에 역동성을 더해 주는 동시에, 인물이 왼쪽으로 치우친 구도에서 균형을 맞춰 준다.

- p.123]


-‘조토두초<유다의 입맞춤>,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p. 148

 

배신자 유다의 입맞춤은 워낙 유명해 같은 소재로 여러 화가가 작품을 남겼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살아있는 사람처럼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골리앗의 머리가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날에 적힌 글씨는 겸손함은 오만함을 죽인다라는 뜻이다.

-p.150]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프란체스코 바사노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는 삶의 기쁨에 전념하는 여인으로, 마리아는 관상하는 삶의 모범적인 예를 상징한다. 조르조네 화풍의 풍경에서 빛은 구름 낀 하늘을 환히 밝히며, 이 순간의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약간 울분을 토한 부분이 마르타와 마리아가 등장하는 구절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두 자매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르타는 하루 종일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시중만 든다. 이에 마르타는 불만을 느끼지만 도리어 예수님은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라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같이 성경 공부했던 멤버들은 거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이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물론 이 구절이 전하는 본래의 의미는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경청하라는 것인데, 다들 마르타에 빙의되어 마치 우리가 그런 일을 겪은 양 억울해하며 흥분했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마르타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니 여전히 마리아가 얄미워 보였다.



바로크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림에 허무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러 정물 작품에 해골이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살면서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끝은 죽음이니 그냥 제멋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 후의 세계를 의식해야 하는지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 카라바조는 현재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러다 매번 눈물과 회한으로 구원을 기도하며 성 프란체스코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황홀경을 그린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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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3-04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술의 전당에 카라바조 그림 보러 갔다가 카라바조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을 쳤는데 사람들이 숨겨줬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아니 그건 그 전에 읽었던 책에서 알게된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참 의문이더라고요.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숨겨줄까? 그게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가능했던 것인가? 이래서 그림을 보면서도 내내 ‘살인자였는데‘ 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숨겨주었다면 그 살인에 명분이 있었던걸까? 막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아 카라바조에 대한 평전을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요. 결국 책만 검색해보고 사지도 읽지도 않았지만. 그런데 소아성애라고요? 소아성애는 명분이 없으니 이해하기를 포기해야겠어요.

페넬로페 2025-03-04 13:4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전시를 통해 카라바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어요. 카라바조에 관련된 책은 그의 연대기에 따라 행적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었어요.
이 화가에 대해서는 부풀려진 얘기도 많고 확실하게 검증된 것도 아니어서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그 시대는 수업도 도제식이고 예술가가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살인을 해도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에 대한 도덕적 평가보다 지금은 거의 그림에 대한 평가만 있는 것 같아요^^

hnine 2025-03-04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카라바조에 대한 영화를 두편이나 상영하고 있어서 보러갈까 하고 있던 참이랍니다. 그중 한편은 말씀하신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더군요.
양정무님의 미술이야기 5권에 카라바조 이야기도 나오나요? 저도 가지고 있는 책인데 못찾았어요.

페넬로페 2025-03-04 13:50   좋아요 0 | URL
카라바조 전시가 고흐전에 비해 엄청 한산해서 쾌적하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어요.
저는 그림들이 대체로 마음에 들었어요.

양정무의 책에는 카라바조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저는 예수에게 입맞추는 유다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비교하기 위해 이 책을 가져왔습니다.

그레이스 2025-03-0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로크 예술에 끌리더라구요^^
처음 카라바조를 알게 되었을 때 아마도 분노조절 장애가 아니었나 했습니다.
그의 재주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게 인상깊었던 카라바조의 작품은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은 작품이예요.
제가 갔을 때는 관람객이 많았었는데...

페넬로페 2025-03-04 14:51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카라바조라는 화가가 궁금해 갔었는데
저도 완전 바로크 미술에 빠져 버렸어요. 한 작품마다 오래 멈춰 서 있었어요.
카라바조의 작품 모두 좋더라고요.
느낌인진 몰라도 다른 화가보다 카라바조가 좀 더 낫다는 편견도 가졌습니다 ㅎㅎ
그림 보면서 같이 간 언니에게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고요 ㅎㅎ
미술관 전시는 복불복인 것 같아요.
비엔나 1900도 제가 갔을땐 한산했거든요^^

바람돌이 2025-03-0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낙에 강렬한 그림을 그리고 재주가 출중해 교황이 그를 많이 아꼈어요. 그래서 온갖 사고를 쳐도 다 넘어갔다죠. 살인도 아마 제 기억에는 술먹고 싸우다가 그런걸로 들어던듯.... 결국 도망을 갔는데 그 후에도 계속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간절하게 보내고 하다가 결국 객사했다는 기억이 나네요. 그 죽음에 얽힌 이야기가 츠바이크의 책에서 읽었던거 같은데 또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페넬로페 2025-03-04 23:15   좋아요 1 | URL
테니스를 치다가 상대방이 속임수를 썼다고 욱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를 돕던 실력자들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몰타 섬의 감옥에서 탈출했어요.
츠바이크의 어느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림만 본다면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확실히 눈에 띄어요^^

희선 2025-03-05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라바조가 램브란트보다 먼저였군요 빛의 화가라는 말 램브란트 이름 앞에서 본 듯도 합니다 성격이 별났군요 카라바조는 예전에 이름만 조금 들어봤네요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은 별로 안 봐서... 본래 이름이 미켈란젤로였다니, 미켈란젤로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이름으로 했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5-03-05 08:26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름 정도만 아는 화가였는데 전시회가 있어 다녀왔어요. 램브란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이 좋았어요^^
 














딸아이가 어렸을 때(4살이나 5살 즈음) 구립 도서관에서 무료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해 종이로 뭔가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소란스런 분위기에서 작품이 하나씩 완성되어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강사는 우리들에게 탁자에 남아있는 자투리 종이를 찢어서 소리 지르며 위로 날리라고 했다. 강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깜짝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갑자기 들어온 강사의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기쁘게 소리 지르며 종이를 찢고 흩날렸지만 난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감각을 느끼거나 즐겁지도 않았던 그 날의 내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딸아이는 아마 내 옆에서 종이를 날렸을 것이다. 난 딸아이가 종이를 찢고 날리는 것을 도와주며 막막하게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한강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는 내내 그 날이 생각났다. 이 소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껍데기와 그 속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라 그런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그 날의 느낌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로 내가 왜 그랬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껍데기가 너무 억세고 굵어 그것을 제거하고 내 속을 볼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나에게 종이를 찢고 흩날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남들이 보기에 동정을 느낄만한 지독한 상처가 별로 없는, 그저 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이 세상은 만만치 않다. 나를 다독거리며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더 많은 껍데기를 쌓아 올리며 버티고 나를 구슬리며 괜찮다고 자족하며 산다. 이러다 우리는 영영 속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예술 작품으로 시작된다. 조각가인 장운형은 사람의 신체에 석고를 입혀 그것을 떼어내는(라이프캐스팅) 작업을 한다. 글을 읽으며 그가 하는 작업을 상상해본다. 석고를 개어, 뜨고 싶은 신체에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석고는 굳으면서 피부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로 점점 뜨거워진다. 뜨겁게 느껴지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다. 석고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끌로 신체의 선을 따라 절개해 떼어낸다. 몸의 껍데기는 주름과 터럭의 자국까지 남길 정도로 정교하지만 속은 시커멓게비어있다.

 

[결국 그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건 누더기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의 컴컴한 공동(空洞)이었는지도 모른다. -p12]

 

어떤 형식이든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장운형은 큰 상처가 있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의 몸을 집요하게 석고로 라이프캐스팅하기 원한다. 속을 보고 드러내기 위해 먼저 자신의 껍데기를 직시하게 한다. 겹겹이 쌓아 단단해졌다고 여겨진 껍데기는 사실 자신이 붙들고 있는 허울이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조용히 뒷모습을 보이는 순간(p.270)’ 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껍데기를 깨부수며 안을 보기를 원했던 장운형은 E에 의해 자신의 몸이 라이프캐스팅 될 때 견디기 힘들어 한다. 공포와 노여움을 느낀다. 끈질기게 타인의 몸을 뜨기를 원했던 그는 정작 자신의 껍데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사람의 것 같다(p.312)’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몸이 고스란히 프린팅된 것의 이물감과 난처함으로 LE, 장운형은 껍데기를 깨부순다. 여태껏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몸에 감싼 채 살아온 집착은 허탈함만을 남긴다. 동시에 뭔가로 부터 꺼내어진 그들은 자유를 얻는다.

 

장편인데도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치밀하다. 한강 작가가 지금도 계속 붙들고 있는 폭력과 상처, 그럼에도 희망과 사랑으로 가는 여정이 여기에도 있다. 여러 에피소드로 연결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좋았다. 읽는 재미도 있었다. 다만 마지막 E 부분이 약간 평범하고 신파적이기도 해서 아쉬웠다.

 

이 소설에는 채식주의자의 전편 정도로 여겨질 만큼 불편한 방식도 들어있다. 한강 작가 특유의 그 방식 말이다. 작가의 그 방식에 불편을 느끼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을 질책하거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술에서의 소재와 방식은 예술가의 권한이자 독창성이기 때문이다. 작가마다의 고유한 방식을 존중하고 싶다.

 

[저항하는 그녀의 손을 끌어다 내 무릎 위에 놓았다. 그 왼주먹은 몇 시간 전에 석고를 바르려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 쥐어져 있었다.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내 인생을 관통해온 그 쓸쓸한 미식거림을, 시큼한 침이 고여오는 혀뿌리 아래로 눌렀다.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p.312~313]



 

 











그대의 차가운 손L은 어릴 때의 상처로 인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음식으로 살이 찌고 그것으로 성폭력은 벗어났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갇히게 된다. L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살을 빼려고 한다. 강박은 L을 피폐하게 하고 그녀를 폭식증 환자로 만든다. 10분 동안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고 목구멍에 주먹을 넣어 토한다. 거기다 하제까지 사용한다.

 

언젠가 지인과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살집이 있는 어떤 여자가 단팥빵을 먹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인은 저렇게 뚱뚱하면서도 어떻게 단팥빵이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난 그 말에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침묵은 아마 긍정 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계속해서 먹어대는 먹방을 싫어하고 살이 찌면 당연히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나도 하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아니타 존스턴의 달빛 아래서의 만찬을 통해 중독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양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이 아니라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폭식은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중독이다. 배고파서, 맛있어서,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심리적 허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심리적 허기는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이 없다. 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음식은 들어온다. 몸이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몸의 한 부분은 중독되어 있고 한 부분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대개는 이 싸움에서 패배를 선택한다. 상실은 너무 아프고 위로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그립지만 괴로운 대상들은 사막을 지나가다 잠시 스친 풍경들이다. 조우했을 뿐 오아시스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인생에 오아시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것들의 막강한 존재감이 다소 상대화된다. 중독보다는 생존의 힘이 세다고 믿는다.]

 

이러한 말들이 L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한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 맥락들과 이어져 있는 것 같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공부와 나의 각성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인터미션을 포함해 230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굳이 이렇게도 긴 러닝 타임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의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국 라즐로 토스라는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려면 그가 거쳐 온 생의 여정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잘 설명하고 알려주기 위해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라즐로 토스>의 삶엔 여러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내는 개인이 존재한다. 유대인, 예술가, 건축가, 홀로코스트, 이민자, 미국 자본주의와 백인 권위주의에 의한 폭력, 시오니즘, 마약 중독자 등이다. 이 모든 것이 그를 형성한다. 두꺼운 껍데기 속에 들어있는 라즐로 토스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통째의 삶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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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25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점점 타인을 이해하는게 어려워져요. 타인을 이해한다는건 정말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알지 않으면 함부로 이해한다 말할 수 없는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5-02-26 00:0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이건 관심이나 측은지심의 문제와는 좀 다른건데, 그냥 섣불리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5-02-25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한강 작가님 좋아하는데 노벨상 수상 이후 약간 멀어진 느낌입니다 ㅜㅜ 노벨상 타시기 전에 많이 읽었어야 하는데 ㅡㅡ <그대의 차가운 손> 줄거리가 흥미롭네요. 조각=껍데기 라는 소재라니~!!

제가 요즘 심리적 허기가 생겨서 뭔가를 많이 먹나 봅니다...

페넬로페 2025-02-26 00:08   좋아요 3 | URL
한강 작가님 노벨상 수상 기념으로 읽은 책은 재독하고, 읽지 않은 책은 읽어 보려고 해요. 내용을 떠나서 문장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모국어로 읽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넘 좋아요.

저도 오늘 10시 넘어 라면을 먹었어요. 조금씩 먹는 것 같으면서도 모아보면 엄청 많은 것 같아 고민입니다^^

2025-02-26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2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5-02-28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편은 이 책 하나 남았어요^^

페넬로페 2025-02-28 10:3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올해 천천히 하나씩 읽어 보려고 해요^^

서니데이 2025-02-28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230분이면 재미있다고 해도 길어서 부담될 것 같아요. 시간이 길면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내일은 삼일절이라 연휴가 되겠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3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5-02-28 18:42   좋아요 1 | URL
영화가 괜찮았고 재미도 있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었어요.

내일부터 3월이네요.
오늘 하루종일 봄기운을 느꼈습니다.
3월도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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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하지만, 신랄하고도 세심한 저자의 통찰은 책을 잊게 만든다. 지나간 시대를 나타낸 말들이 지금도 뼈를 때리는 건, 아직도 세상이 온전하고 경건하게 정진하지 못한 탓이리라. 지속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사회적 거대 담론의 필요성을 이 책이 말해준다. 내게 독서인의 자세를 각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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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3-01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감탄했어요. 사고 영역이 확대되는 느낌이 들었죠.^^

페넬로페 2025-03-01 17:29   좋아요 1 | URL
네, 독서에 대한 감상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데 저는 늘
겉핥기식이어서 많이 각성했어요^^
 














역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어떤 내용이든 역사엔 지나간 것들에 대한 결과만이 존재한다. 완벽한 진실을 알 수 없는,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그것을 후대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낸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은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서로를 죽이고, 빼앗고, 배반하고 배반당한다. 차가운 한 뼘 땅에 묻히고 말 그들은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처연한 이야기다. 주어진 처지대로 먹고 마시며 육체를 보전해 하루를 살아내야 되는 한 그 부질없음의 루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허무하고 모순되며 쓸모없음에도 를 보전하기 위해 지금의 현상에 매몰되어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앞을 내다보기가 힘든 것이다.

 

 

[기원전 500년경, 페르시아의 영토는 동쪽의 파키스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북쪽의 마케도니아까지,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이르렀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 인을 야만인이라고 불렀지만, 페르시아 인은 매우 진보적인 문명을 이룩한 대제국이었다.

-‘전쟁 연대기’, 조셉 커먼스, 니케북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중에서.]

 

이미 거대한 제국을 이룬 페르시아의 왕 다레이오스는 바뵐론을 함락한 뒤 스퀴타이족을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인도에서 승리를 거둔 후였다. 이스트로스(지금의 도나우)강을 지나 우크라이나 지역과 흑해 지방의 남부 러시아로 전진한다. 헤로도토스는 스퀴타이족에 속하는 여러 민족의 풍속, 관습, , 그들이 생겨난 경위와 스퀴티스 땅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볼일을 보기 위해 일곱 가지 언어를 위한 일곱 명의 통역이 필요할 정도이다. 이 부분은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알고 있는 대로 이 지역의 추위는 워낙 극심해 다레이오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넓은 초원을 넘나드는 스퀴티스 지역의 사람들은 유목 생활을 하며 활쏘기에 유능했고 잔인하면서도 용감했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p.389)’ 정도였다.

 

스퀴타이족은 다레이오스의 힘이 무서워 정면 대결을 하지 못하고 페르시아인보다 하루 행군 거리만큼 앞서 퇴각한다. 퇴각하면서 도중의 우물과 샘을 메우고 풀을 망가뜨린다. 페르시아인은 스퀴타이족의 나라를 지나며 파괴할 것이 없었다. 그들이 도망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다레이오스에게 스퀴타이족 왕인 이단튀르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로 말하면 여태껏 어떤 인간도 두려워 도망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대가 두려워 도망치는 것이 아니오....우리 스퀴타이족에게는 도시와 경작지도 없소이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함락되거나 황폐화될까 두려워 서둘러 그대들과 맞서 싸우겠지요....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한 우리는 그대들과 싸우지 않을 것이오..그리고 그대가 내 주인이라고 말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 주겠소.

-p.427]

 

결국 다레이오스는 스퀴타이족의 기습 공격과 물자 보급의 문제로 그들을 정복하는데 실패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그 전철을 밟은 것 같다

다레이오스는 리뷔에도 정복하지 못한다.

 

페르시아의 식민지인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킨다. 밀레토스의 참주인 아리스타고라스가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반란을 부추긴다. 역사 5권은 여러 그리스 민족의 관계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하고 있다. 읽기가 쉽지 않고, 읽고 나서도 내용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는 참주의 지배를 받는 곳이 많았다. 사람들은 참주정체(독재정)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이런 지배자에게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페르시아와 전쟁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아테네는 참주를 쫓아내고 민주정을 시작한 시기였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을 설득하지 못했지만 아테나이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아테나이인은 이오니아를 돕기 위해 출정한다. 기원전 500년경이다. 페르시아는 6년에 걸쳐 이 반란을 제압시킨다. 이것이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다레이오스는 이오니아 지역의 반란과 그것을 도운 아테나이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기원전 492년 다시 출정한다. 다레이오스의 조카이자 사위인 마르도니우스를 내세워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한다. 기원전 490, 다레이오스의 조카인 다티스는 이오니아인과 아이올리스인도 포함된 군대를 이끌고 에레트리아로 출정한다. 에레트리아인은 아테나이에 구원을 요청하고 아테나이는 이에 응한다.

 

페르시아는 에레트리아를 수중에 넣고 드디어 앗티케 땅의 마라톤에 상륙한다. 아테나이의 지휘자는 밀티아데스 장군이었다. 아테나이의 장군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직업적 장거리 주자(먼 곳에 심부름 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필립피데스를 스파르테에 전령으로 보낸 것이었다. 필립피데스는 240KM쯤 되는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한다.

 

[필립피데스는 아테나이를 떠난 지 이틀 만에 스파르테에 도착해 당국자들에게 말했다. “라케다이몬인이여, 아테나이인은 여러분이 와서 도와주고 헬라스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가 이민족에 의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p.507]

 

라케다이몬은 아테나이를 도와주기로 결의했지만 만월이 되기 전에는 출동할 수 없다고 했다. 페르시아에 비해 열세였던 아테나이인은 훌륭한 전술을 이용해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다. 페르시아는 약 6400명이 전사했지만 아테나이 측은 192명만이 전사했다. 이것이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라케다이몬인은 만월이 되자 2000명의 전사를 이끌고 출정했으나 이미 마라톤 전투는 끝난 뒤였다.

 

역사를 읽으며 매번 저자인 헤로도토스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가 활동한 약 3000년 전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열악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헤로도토스를 상상해본다. 엄청난 양의 사실들을 수집해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수록된 내용 중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다할지라도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 허용이 가능할 것이다.

 

역사는 훌륭한 지혜서이기도 하다. 만약 이 책에 역사적 사건만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토록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람들의 대화나 각 나라의 풍속, 장례 관습에 대한 서술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역사라는 사실보다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시켜 준다.

 

[대제국이 되어 드넓은 땅을 얻었음에도 다레이오스 왕은 아무것도 없는 스퀴타이족의 나라를 정복하기를 원한다. 다레이오스 왕을 피해 말들이 먹을 풀을 없애고 우물을 메워버린 스퀴타이족은 정작 후퇴하는 페르시아인을 쫓아갈 때, 그 길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 지금은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p.434)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트라케의 트라우소이족의 관습은 이러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친척이 둘러앉아 아이가 일단 태어난 이상 고통을 참고 견디지 않을 수 없다고 비통해하며 인간의 온갖 고통을 열거한다. 반면 사람이 죽으면 이제 온갖 고통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희희낙락 떠들며 묻어준다.

p.470]

 

4, 5, 6권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삶은 척박하다.

아마조네스족의 후예인 사우로마타이족의 처녀는 적군의 남자 한 명을 죽이기 전에는 결혼할 수 없다. 그래서 결혼을 못하고 늙어 죽는 여자도 있다. 리뷔에의 나사모네스족 남자가 결혼할 때, 신부는 첫날밤에 모든 하객과 차례차례 교합해야 한다. 아우세에스족은 아테나 축제 때 처녀들을 두 패로 나뉘어 싸우게 한다. 그들은 돌과 막대기를 들고 서로 싸우는데 부상당해 죽는 처녀들을 가짜 처녀들이라고 부른다. 트라케의 크레스토니아 북쪽에 사는 부족은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거느리는데, 남자가 죽으면 그가 어느 아내를 가장 사랑했는지 아내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고 남편의 친구들도 논의한다. 거기서 뽑힌 아내는 가장 가까운 친족의 손에 의해 남편의 무덤 위에서 살해되어 남편 곁에 묻힌다.



-'손기정 기념관'에서

 

얼마 전, 서울역 근처에 사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 바로 뒤는 옛 양정고등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양정고는 손기정 옹이 다닌 학교다. 지금 양정고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고, 옛 양정고 자리는 건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손기정 옹을 기념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손기정 체육공원,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문화도서관 등이 있다.

 

지인을 따라 그곳을 둘러보다 손기정 기념관에서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의 <필립피데스>였다. 마침 역사를 읽고 있어 반가웠다. 여태껏 나는 필립피데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후, 먼 길을 달려 아테나이에 승전보를 전한 후 장렬하게 사망했다는 사람이 필립피데스라고 알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도 필립피데스가 그렇게 설명되어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페르시아가 앗티케에 상륙하자 라케다이몬의 원정을 요청하기 위한 전령으로 필립피데스가 달린 것이었다.

 

필립피데스와 손기정은 달리는 사람이다. 필립피데스는 직업인으로, 어린 손기정은 가난했기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 두 사람에게 달리기라는 공통점과 영광이 있지만, 왠지 난 그들에게 슬픔을 느꼈다. 이틀 동안 240KM를 달려야하는 인간의 육체적 고통과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음에도 다른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아야했던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알 것 같았다. ‘역사는 이렇게 여러 모양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월계수 나무는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기념으로 받은 것인데, 한국에 가져 온 어린 묘목이 저렇게 잘 자랐다고 한다.



 

 









전쟁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 연대기 순으로 세계사의 주요 전쟁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 미국 독립 전쟁까지 간략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책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서대로 서술되지 않아 다소 산만하고 어려운 헤로도토스 역사와 함께 읽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요한 부분만 콕 집어 잘 설명하는 역사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고대의 전쟁은 수없이 잦았으나, 당대의 기록으로 믿을 만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전쟁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최초라 할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작가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덕분이다....젊은 시절에 그는 바빌로니아부터 우크라이나, 이집트부터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숨은 진실을 탐구했다.]



-헤로도토스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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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2-20 0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요새 역사책을 읽으시는군요~!! 이런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 완전 대단한거 같습니다. 내용이 흥미진진 하네요~!!

페넬로페 2025-02-20 08:09   좋아요 4 | URL
독서동아리에서 읽고 있어요. 내용이 많아 3개월에 걸쳐 읽고 있습니다. 워낙 내용이 방대해 읽기 쉽지 않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재미있어요. 헤로도토스는 완전 대단합니다^^

그레이스 2025-02-24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남았네요!^^

페넬로페 2025-02-24 23:30   좋아요 1 | URL
테르모필레와 살라미스를 어떻게 서술해 놓았을지 엄청 기대됩니다^^

페크pek0501 2025-03-01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백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군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도 긴 분량의 책을 두 권까지만 읽다 만 게 있어 찔리네요. 5권까지 있는데 남은 세 권을 읽어야 한다는 과제를 달고 삽니다.^^

페넬로페 2025-03-01 17:26   좋아요 1 | URL
벽돌책 읽기는 항상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역사>는 방대하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 있는 부분도 많아 그나마 잘 읽히는 편이예요.
저도 읽다 만 책이 많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중인 BC 485년경 태어난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많은 곳을 여행하며 직접 체험하고 자료를 모아 역사를 집필했다. 중국 사마천의 방법과 비슷하다. ‘역사를 읽으며 든 기시감의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였다. 헤로도토스는 헬라스(그리스연합)인과 비헬라스인이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찾고, 그것이 망각되는 것을 막고자 역사를 집필했다고 서언에서 밝힌다.

 

헤로도토스는 이 책을 사건 중심의 역사적 사실만을 내용으로 한 것이 아닌 여담 형식으로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을 다양하게 서술한다. 개별 민족과 나라의 특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한다. 자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언급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더 이상 서술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도 인정한다.

 

역사1권에서 3권은 페르시아가 점점 제국으로 발전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의 역사는 결국 침략과 전쟁으로 끊임없이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페르시아는 뤼디아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이오니아 지역의 여러 그리스 민족이 세운 폴리스를 속국으로 만든다. 그 뒤 지금의 이집트인 아이귑토스를 정벌한다. 퀴로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왕으로 이어지는 통치의 특징과 그것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도 이 부분에 들어있다.

 

9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각 권은 9명의 무사 여신이 하나씩 배정되어 있다. 1권은 역사를 관장하는 클레이오, 2권은 피리 및 피리가 반주하는 서정시를 관장하는 에우테르페, 3권은 희극 및 목가를 관장하는 탈레이아에게 헌정된다. 고대 시인들이 희곡의 시작을 무사 여신에게 기원하는 형식을 비슷하게 사용한다이 구분은 헤로도토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문헌학자인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코스에게서 비롯된 관행으로 보인다(p.6)

 

고전을 읽다보면 지금의 세태와 많이 달라 한 번씩 당황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된 시대를 지금 시대와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 보통은 감안하고 읽는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에서 표현된 여성관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그 시대 여성은 모두 창녀와 똑같은 존재였다.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여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칸다올레스는 귀게스에게 자기 아내의 알몸을 보라고 한다.(p.30)

뤼디아 하층민의 딸들은 결혼할 때까지 창녀 노릇을 하여 지참금을 빌며, 남편을 스스로 선택한다. (p.84~85)]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이 소집되어 전부 한곳에 모이면, 남자들이 그들을 둘러선다. 그러면 전령이 처녀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인다. 경매는 가장 예쁜 처녀부터 시작되는데, 그 처녀가 높은 값에 팔리면 그다음으로 예쁜 처녀를 경매에 붙이곤 했다. 부자들은 젊고 예쁜 여인을 사려고 서로 더 높은 값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가들기를 원하는 하층민은 미색은 따지지 않고, 못생긴 처녀를 아내로 얻고 돈까지 덤으로 받았다. 가장 잘생긴 처녀들을 다 팔고 나면 가장 못생긴 또는 불구인 처녀를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이되, 가장 돈은 적게 받고 그 처녀에게 장가들겠다는 남자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잘생긴 처녀들이 못생기고 불구인 처녀들을 시집보내는 셈이었다.(p.145)

왕은 자기 딸을 유곽으로 보내며 모든 남자에게 가리지 않고 몸을 맡기되, 교합하기 전에 반드시 그들이 평생 동안 저지른 짓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가장 사악한 짓을 말하게 하라고 명령했다.(p.231)]

 

가장 슬픈 내용은 이것이다. 어쩌면 아프로디테 여신은 창녀의 역할을 기본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 그 당시 여성들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 더 중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자라는 말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바뵐론인의 관습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가장 수치스럽다. 이 나라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서 그곳에 앉아 있다가 낯선 남자와 교합해야 한다. 여자가 일단 그곳에 자리잡고 있으면, 낯선 남자 가운데 한 명이 그녀의 무릎에 은화 한 닢을 던진다. 여자는 자신에게 돈을 던진 첫 번째 남자를 따라가야 하며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일단 교합하고 나면 여신에 대한 의무를 이행한 것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잘 생기고 키가 큰 여자들은 금세 돌아가지만, 못생긴 여자들은 의무를 다할 수 없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실제로 3,4년을 기다리는 여자도 더러 있다.

- p.146~147]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과연 끝까지 잘 읽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내용이 방대해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지만 1권에서 3권까지는 생각보다 쉽게 읽혔다. 구성과 배치가 지루하지 않았고, 헤로도토스의 뛰어난 필력으로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다. 힘들지만 그동안 그리스 고전을 계속 읽어온 보람이 있었다.

 

어느 시대든, 어떤 국가에 대한 내용이든,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위대한 고전을 읽다보면 매번 느껴지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이 지금의 현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언제나 인간은 어리석다는 사실이다. 특히 3권 마지막 부분인 독재자인 캄뷔세스의 행태가 더욱 그렇다. 거기에 마침표를 찍는, 일갈하는 듯한 헤로도토스의 멘트에 소름이 돋는다.

 

역사의 세계관은 인간사는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서 헤로도토스는 국가와 인간의 부침을 노래한다. 이 책을 계속 읽으면 과연 역사는 무엇일지, 거기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무조건 어떤 지혜는 터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발밑의 세계사페르시아 전쟁을 지정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다. 페르시아는 왜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진출해 그리스와 충돌했는지를 지리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 페르시아는 주변의 국가와 이집트까지 정복하고 다시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했다. 페르시아는 파르사에서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나톨리아반도의 사르디스까지 서쪽으로 뻗어나갔다. 페르시아의 동부는 자그로스 산맥, 힌두쿠시산맥, 카라코람 산맥이 자리 잡고 있어 험난했고, 용맹하고 무자비한 유목민족인 스키타이 족에 참패해 더 이상 동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반도로 진출하기 전부터 에게해에 연한 발칸반도 남부와 이오니아(아나톨리아반도 서부 해안 지대)에 그리스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스인, 도리스인, 아카이아인 등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있었고 정체성과 풍습, 정치, 경제 체제가 달랐다. 이오니아인의 아테네, 도리스인의 스파르타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BC 499년 이오니아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고, 아테네가 도왔지만 페르시아군대에 의해 패하게 된다. 반란을 지원했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는 페르시아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로인해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은 단합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원정을 하고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북부를 손에 넣는다.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손을 잡고 그리스 연합군의 토대를 마련한다. BC 490년 다리우스 1세가 다시 그리스 원정을 도모함으로써 제1차 페르시아전쟁이 시작된다. 낙소스와 에레트리아를 신속하게 함락시키고 아티케 반도 서부의 아테네로 향하지만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인 아테네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페르시아 장수인 아르타페르네스와 다티스는 마라톤 평원에 병력을 상륙시켜 주둔시킨다.

 

페르시아 정예부대가 아테네를 습격하기 위해 함선을 타고 마라톤평원을 빠져나가자 아테네의 장군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 군대를 각개 전투로 격파한다. 페르시아군은 마라톤평원의 습지로 밀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전멸한다. 알려진 대로, 마라톤전투 후 한 병사가 아테네로 쉬지 않고 달려가 승전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장렬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1차 페르시아전쟁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를 거둔 아테네를 보며, 전체 그리스 세계는 강력한 외부의 적을 상대로도 독립과 영광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기원전 478년 에게해 일대에서 페르시아를 완전히 몰아내고자 아테네를 중심으로 결성된 델로스 동맹, 기원전 337년 아예 페르시아를 원정하고자 마케도니아가 주도한 코린토스 동맹이 등장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진정한 그리스가 탄생했다.

- p.40]

 

BC 480년 다리우스 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시 그리스 원정에 나선다.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대규모 함대 건설을 추진한다.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에게해가 있다는 지리적 특징을 간과하지 않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다른 폴리스에 지원 요청을 하고 그리스 세계의 연합이란 뜻의 헬라스 동맹(p.42)’을 체결한다.

 

페르시아군은 승리하기 위해 테르모필레를 먼저 장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리스군은 그들을 막기 위해 테르모필레를 지키려고 한다. 1만 명 정도의 그리스군은 엄청난 수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해야했다. 길이 워낙 좁은 지형이라 페르시아는 병력을 빨리 이동시키지 못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우회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돌아가 그리스군의 배후를 치라고 명한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는 300명의 근위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그리스군은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고 페르시아의 불사부대에 의해 그리스군은 패한다. 크세르크세스의 군대가 2만 명의 목숨을 잃었지만 그리스군 사망자는 2000명 정도였다. 테르모필레전투 역시 유명한 전설로 남아있다.

 

페르시아군은 계속 남하했고 BC 4809월 아테네가 함락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피란민들을 데리고 살라미스 섬으로 피신한다. 그는 함대를 배치하고 크세르크세스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 함대를 섬멸하고자 한다. 결전이 다가오자 크세르크세스는 전장을 한눈에 보고자 아이갈레오스 산에 자리를 잡는다. 왕은 그곳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하는 순간을 직접 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 함대의 계략으로 페르시아 함대는 비좁은 해협에서 불리한 전투를 해야 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는 패배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뒤 마르도니우스가 그리스 원정을 했지만, 플라타이아전투에서 패한다.

 

[페르시아전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페르시아로 상징되는 오리엔트 세계(동양)의 등장 앞에 지중해 세계(서양)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곧이어 문명의 주도권을 쥔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 p.53]


- p.37

 

*위의 내용은 발밑의 세계사23페이지에서 54페이지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았지만, 지리를 바탕으로 한 내용에 비해 지도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약간 아쉽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 비극 33편중 신화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인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PERSAI)패배자의 시각으로 본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의 의미(p.196)’를 주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이 희곡은 철저히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극이다. 이 극의 작가인 아이스퀼로스(BC 456년 사망)는 페르시아전쟁 당시 생존해 있었던 사람이다. 시인은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생생하고 극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도시인 수사의 궁전 앞에 있는 다레이오스의 무덤가에서 원로로 구성된 코로스는 먼저 다레이오스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왕이 전쟁에 출정하는 과정을 노래한다. 수많은 군사와 함선을 이끌고 떠났지만 운명과 신의 교묘한 기만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코로스는 걱정과 한탄을 쏟아낸다.

 

다레이오스의 아내이자 크세르크세스의 노모인 아톳사 역시 아들의 출정에 불안해한다. 불길한 꿈에서 불행한 미래를 예상한다. 소식을 가져 온 사자는 살라미스 해안에서 페르시아 군대가 전멸했다고 전한다. 여러 페르시아 장수들이 죽는 모습과 전투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다행히 크세르크세스는 살아있다고 말해준다. 압도적 군사적 우위에도 그리스에 패배한 원인을 복수의 정령이나 악령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페르시아의 수치를 통탄한다.

 

아톳사는 죽은 남편에게 헌주를 바치며 그의 혼백을 불러낸다. 무덤에서 일어선 다레이오스는 페르시아군대의 패전 소식을 전해 듣고 아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며 선조들이 이룬 제국의 위업을 아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한다. 지혜롭지 못했던 전략에 대해 지적한다. 이 모두가 교만과 불경한 마음가짐에 대한 응징이라고 한다.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자 준엄한 판관이기 때문이오.

p.232]

 

다레이오스의 혼백은 퇴장하고 코로스와 아톳사는 그들의 찬란했던 과거에 대해 회상한다. 소수의 호위병을 데리고 등장한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불운과 죽은 자를 뒤로 한 채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것을 괴로워한다. 그들 모두는 비탄과 곡성으로, 가슴을 치는 만가로 극은 끝맺어진다.

 

이 비극에서 아이스퀼로스는 페르시아가 패배한 원인을 분수를 모르는 오만을 나타내는 히브리스(hybris)(p.440)’를 바탕으로 둔다.

 

[히스리스 못지않게 이 작품의 앞부분에 나오는 아테(Ate) 역시 아이스퀼로스 비극에서 세계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아테는 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운명이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에는 상냥하게 다가와 마음을 호린 다음 종국에는 파멸로 인도하는 미망이다. 그러므로 아테의 엄습을 받은 인간은 크세르크세스처럼 히브리스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다가 결국은 자신의 미망의 제물이 되고 만다.

- p.440~441]

 

그리스인을 관객으로 한 공연에서, 그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철저히 패배자의 입장만을 견지한 페르시아인의 회한과 애탄만을 보여준다. 마라톤전투에 같이 참여한 형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읽힐 정도다.

 

이런 시인의 일방적 시선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을 떠나 그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한 주제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살아있는 동안 히브리스아테를 언제나, 매번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2025115>인 오늘처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314장은 신형철 작가가, 아니 발터 벤야민이 소환하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내용이다.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더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구절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14장의 내용은 단순하다.

 

페르시아의 캄뷔세스가 멤피스성을 함락하고 아이귑토스(지금의 이집트)의 왕인 프삼메니토스를 모욕함으로써 정신력을 시험해 보고자 그의 딸인 공주에게 노예 옷을 입히고 물을 길어오는 것을 보게 한다. 목에 밧줄을 매고 입에 재갈이 물린 자신의 아들이 끌려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 광경에 다른 아이귑토스인들은 울고불고 했지만 프삼메니토스는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행렬이 모두 지나가고 왕의 술친구 중 한 명인 중늙은이가 재산을 모두 잃고 알거지가 되어 병사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본 왕은 울음을 터트리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머리를 친다.(역사, p.278) 가족의 불행을 볼 때는 의연했던 왕이 친구의 불행에 격한 반응을 보인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캄뷔세스는 왕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왕은 자신의 집안의 불행은 울고불고 하기에는 너무 큰 일 이고, 차라리 친구의 고통은 울어줄만하다는 대답을 한다.

 

캄뷔세스 만큼이나 이 사실을 이해 못한 발터 벤야민은 친구들과 토론을 한다. 여러 의견이 나왔고 벤야민 자신은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31)’라고 해석한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책에서 머무는 장소는 다르다. 이 내용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이 모두 흥미로웠고 탁월했다. 슬픔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감정은 습관이나 관습대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엉뚱한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기에 신형철의 말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슬픔뿐이겠는가?

 

신형철 작가가 서술한 이 구절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제야 시작했다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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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1-1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평론가의 이 글 저도 잘 읽어서 페이퍼해두었지요 필력 뿐만 아니라 잘 정리한 실력에 감탄했었고요

페넬로페 2025-01-15 21:01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내용도 모두 좋았고 책을 통해 또 많이 배웠어요.
어쨌든 많이 읽어야 겠더라고요.
신형철 작가의 필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필리아 2025-01-1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제 인내력 실험의 독서였어요. 화이팅이요, 페넬로페님~ :)

페넬로페 2025-01-15 21:02   좋아요 0 | URL
응원에 힘 입어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필리아님, 감사합니다^^

Falstaff 2025-01-1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로도토스의 결론.
˝역사는 이긴 자의 기억이 아니라, 기록한 자의 기억이다.˝
ㅎㅎㅎ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페넬로페 2025-01-15 21:04   좋아요 1 | URL
지극히 맞는 말씀입니다.
기록한 자의 역사를 읽으며 제 식으로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희선 2025-01-16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말해서 이 책을 보시게 됐군요 거기에서 본 게 마음에 많이 남았나 봅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5-01-16 08:40   좋아요 0 | URL
언젠가 읽고 싶었는데, 마침 동아리에서 읽게 되어 천천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워낙 임팩트가 있었어요^^

전야제 2025-01-16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반드시 읽어야겠어요. 깜짝 놀랐네요ㅠㅠ
그 시대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존재였는지 가늠은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여졌다니!
지금 철학 공부를 해야되서 철학책 부지런히 읽고 있었거든요.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 경에 태어났고,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85년에 태어나서 저술한 책이니, 플라톤의 시대에서도 분명 이런 문화가 이어졌을건데.
플라톤은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라고 하고 이데아 어쩌구 저쩌구 찬양하면서 여성, 노예, 하층민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포용하는 사상을 만들어내진 못했으니
플라톤에 대한 반감마저 드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역사와 철학에 대한 공부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알아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주장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니깐요.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하는지 페넬로페님께서 너무 잘 짚어주셔서, 나머지 소개해주신 책들도 언제고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7 13:04   좋아요 1 | URL
전야제님, 철학 공부하고 계시다니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철학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내용도 잘 모르겠고, 헷갈리고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위의 인용문 말고도 좋고 감동적인 부분이 많은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 당시 여성의 삶이 눈에 들어 왔어요.
저자도 약간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보면 안되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여성의 역할이나 삶이 참 힘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니데이 2025-01-18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원전에 쓰여진 고서들이 지금도 번역이 되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네요.
시간이 지나면 시대별로 달라지는 것들이 많은 만큼, 이전 사람들의 관습이나 문화가 지금과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1-19 08:5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말씀처럼 관습과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지금과 비슷한 게 많다는게 너무 놀라워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5-01-20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로마-페르시아 7백년
대결을 다룬 책이 나온 것 같은데...

비슷한 결의 책을 역시나 읽다
말았네요 ㅠㅠ

오키덴트와 오리엔트의 첫 대결
을 기록한 ˝역사˝를 21세기에도
여전히 읽을 수 있다는 게 놀라
울 따름입니다.

저는 도전도 못할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5-01-20 10:36   좋아요 1 | URL
페르시아 전쟁의 의미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래서 ‘역사‘가 그만큼 중요하게 평가 되는가 봐요.

저도 처음에는 레삭매냐님처럼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읽기 쉽고 각 부족의 문화나 관습도 많이 들어 있어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