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퍼시벌 에버렛 작가의 소설 제임스를 읽기 위해 먼저 이 두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동화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은 너무 재미있어 계속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TV에서 방영된 만화도 여러 번 봤다. 특히 톰 소여가 폴리 이모의 명령으로 높이가 3미터나 되는 30m 판자 담장을 회반죽으로 칠해야 할 때, 그의 기지로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담장을 칠하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읽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이 부분은 책의 처음에 속하는데 그동안 내 기억은 딱 여기에서 멈추었던 것 같다.

 

그 뒤의 내용은 이제껏 한 번도 읽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웠다. 개구쟁이 톰,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황당하고도 게걸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머리 회전이 빠르고(조금 나쁜 쪽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깨우친 톰은 꼬마 갱단의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꾀바르고 능청스럽기도 한, 밥 먹듯이 하는 속임수나 거짓이 장난이나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톰은 소년이었고 성장하고 있었다. 마음에 사랑이 피어나고, 가족을 생각하며, 결정적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낼 줄 알았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허클베리 핀은 동네에서 이름난 주정뱅이의 아들이자 부랑 소년으로 서술된다. 동네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제멋대로인 데다 상스럽고 질이 좋지 않은 아이로 소개된다. 심지어 담배도 피운다. 만약 이번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헉을 그렇게만 생각했을 거고 영원히 톰에 붙은 곁가지라고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 톰의 모험은 딱히 별 거 아닌 게 된다. 톰은 그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헉은 여러 지역을 오가며 모험을 벌인다. 거기엔 흑인 노예 짐이 함께 있다. 헉은 아버지의 폭력과 더글라스 부인과 왓츤 부인의 양육, 학교, 사회의 구속과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짐은 주인인 왓츤 부인이 그를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말을 듣고 도망친다. 이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같다. 둘 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다.

 

자유를 찾으려는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백인이지만 어리다는 것과 도망자의 신분인 흑인 노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의심과 탐욕의 대상이 된다. 특히 흑인 노예에 대한 그 당시의 가혹한 폭력은 지금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다. 소설 전반에 있는 거짓과 속임은 헉과 짐이 자신들 앞에 놓인 힘들고 어려운 길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힘들고 지루했다. 하지만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마지막에 황당하지만 톰이 등장했던 것도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그 당시 사회의 폭력과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리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선한 방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인인 헉은 짐이 도망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도와준다. 백인은 누군가 다른 백인이 도망자인 흑인 노예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깔봐도 되는 시절이었다. 헉은 평등주의자도 아니고 거창한 인류애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헉은 짐을 고발하지 않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거두고 교육시켜준 왓츤 아줌마에게 지독한 짓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비열하고 비참해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그럼에도 헉은 자유를 갈망하는 짐을, 자신을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짐을 고발하지 못한다. 자신을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짐을 도와주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요즘 아이들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잘 모른다. ‘흔한 남매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톰과 헉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로 그 시대를 살렸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여러 실제 인물이 녹아 있어 우리가 그 시대로 들어가 이 글을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이 두개의 소설 내용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과연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짐이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살다 살다 이런 검둥이는 난생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헉과 짐이 솔로몬 왕의 재판에 대해 얘기할 때, 짐은 솔로몬이 아이를 반쪽으로 나눠 두 여자에게 준다는 판결에 분노한다. 그것은 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반쪽짜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재판은 반쪽이 아닌 완전한 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짐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웃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의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헉이 짐에게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자 짐은 요점 같은 소리 하지 말랑게 그러네! 내사 알고 있는 건 알고 있다고 생각헝게. 정말이지, 요점이라는 건 좀 더 멀리, 좀 더 깊은 데 있는 거제. 그건 솔로몬이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당께. 솔로몬에게는 애새끼 하나둘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랑께라고 말한다.

 

솔로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요점은 좀 더 깊이 있는 것이고 사람은 자라난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결국 헉과 짐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운명을 거부하고 모험을 시작하지만 그 둘의 끝은 다르다. 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의 소유주인 왓츤 부인의 유언으로 자유를 찾는다. 반면 헉은 교양 있는 세계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인디언이 사는 지역으로 떠난다. 장난꾸러기 톰이 신사의 세계를 선택했다면 헉은 톰과는 정반대의 길로 간다. 문명과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야생에서 영원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결국 자유를 찾은 헉과 짐의 여정은 헛되지 않았지만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엄청나다. 짐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자유는 불안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수록된 삽화,

전자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다운로드 함






 

 







2024 전미도서상커커스 프라이즈, 2025년 퓰리처상브리티시북어워드를 수상한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해석한 소설이다. ’허클베리 핀이 백인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제임스는 철저히 흑인 노예 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제임스는 짐의 완전한 이름이다. 짐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에는 마크 트웨인의 글보다 훨씬 더 많은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이 들어있다. 그들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대하는데 거침없는 백인들의 생각과 행동도 그대로 전달된다.

 

소설 제임스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과정이 거의 그대로 진행된다. 이 두 소설이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그 두 소설에 등장하는 똑같은 사람인 흑인 노예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제임스는 헉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구속하는 잘못된 법과 볼테르, 루소, 로크의 자유론과 관용론을 비교할 수도 있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제임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계급 사회의 모순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합리적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흑인의 말을 사용해야 하며, 무조건 백인에게 순종해야 한다.

 

영화 노예 12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악랄한 백인 주인이 일요일에 목사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흑인 노예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진행하며 천국에 대해 설교한다. 참고 견디면 끝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노예들에게 심어준다. 제임스는 그런 종교를 비판한다. 백인 주인은 언젠가 하느님이 줄 보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받을 처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그저 그들이 편리할 때만 신봉하며 사용하는 통제 수단일 뿐이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헉과 제임스는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제임스가 헉을 떠나지 않는다. 오로지 절체절명의 생존 자체가 목표인 제임스를 위해 헉은 여기서도 계속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한다. 가장 좋은 친구 사이인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백인과 유색 인종의 경계적 인물인 헉은 보다 더 성숙한 노예해방론자가 되어 있다.

 

이 책은 가독성이 좋다. 원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재해석도 성공적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억지스러움과 황당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퍼시벌 에버렛 작가는 그런 모험적인 시도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평등은 잘못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사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엔 수만 가지의 법과 철학, 사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다만 떠나고 투쟁하며 쟁취하기 위한 기본이 읽고 쓰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한 노예의 죽음으로 얻은 몽당연필과 훔친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중인물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다름 아닌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이다(p.650, 작품 해설 중에서)‘ 이러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미국 정신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여전히 유효한가?

 

[믿음은 진실과 아무 관련도 없어. 좋을 대로 믿으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 백인 소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어도, 어쨌든 백인 소년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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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26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니 빠진 허크 씩씩한 소년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 저 멀리 증기선이 부웅~ 붕........
허클베리 핀 만화영화 주제곡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제임스는 영화의 스핀오프를 떠올리게 하네요. 독립적이지 않은, 시점 전환된 스핀오프 느낌이랄까요. 흥미로운 소설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6-02-26 21:00   좋아요 0 | URL
제가 위의 글에도 썼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어요.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소설 제임스 덕분이었어요.
이 작품이 스핀오프 맞는데, 심하게 전환된 면도 있어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 진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6-02-26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심장이 쫄깃할 때도 제법 있었구요. 제임스가 말 똑바로 할 때 좀 통쾌했어요. 근데 진짜 그 백인들은 흑인들이 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페넬로페 2026-02-26 23:1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좋았어요.
마크 트웨인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세밀하게 잘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아유, 그럼요.
백인들이 흑인에게 가했던 폭력은 정말 우리가 상상도 못할 것들이 수두룩 할거예요.

감은빛 2026-02-27 0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핀오프 라는 개념은 주로 미국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봤었는데, 문학 작품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고, 또 상을 받고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이 책을 읽기 위해 마크 트웨인의 두 소설을 먼저 읽으신 페넬로페님 대단하세요. 덕분에 제가 읽었던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에 대해 한참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어릴 때여서 별로 생각나는 장면이 없네요.

페넬로페 2026-02-27 08:12   좋아요 0 | URL
어릴 때 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이 소설들에 제가 기억하지 못한 다른 내용들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몰랐어요. 그 시대 미국 남부의 모습이 저랬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제임스 읽으면서 백인이 가한 흑인 노예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yamoo 2026-02-27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합니다~~^^

페넬로페 2026-02-27 11: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6-02-27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소여의 모험 만화 영화 엄청 좋아했었는데 저도 떠올려보면 톰이 벌을 받아서인가? 담장에 페인트 칠을 하던 장면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리고 허클베리 핀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라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핀을 싫어해서 나도 어린 맘에 세뇌를 당했던 듯도 하고…부랑자같은 모양새도 좀 그랬었고..ㅋㅋ
근데 책을 읽어보면 그동안의 편견을 확 깨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안그래도 며칠 전 아기공룡 둘리 이야기를 우연찮케 유튜브로 보다가 고길동 아저씨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어요. 어릴 땐 고길동 아저씨 엄청 못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봤었거든요. 근데 둘리 일당들이 엄청난 말썽꾸러기들이더라는…
암튼 이 책은 인종 차별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겠군요.

페넬로페 2026-02-27 19:03   좋아요 1 | URL
그때는 어린 마음에 폴리 이모가 톰을 구박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모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ㅎㅎ
허클베리는 이번에 제대로 읽었는데 이 소설에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어요.
둘리 이야기도 새롭게 들려요. 저도 고길동 아저씨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임스 읽어보니 그 시절 흑인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보이체크><홈파티>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인 보이체크를 알게 된 것은 김애란의 단편소설 <홈 파티>에서였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건 그 작품에 들어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오고 싶어서일 것이다. <보이체크>의 본문에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내용을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확실한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1836년경에 쓰인 <보이체크>는 미완성 희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카를 에밀 프란초스가 다시 정리해 1879년 뷔히너 전집에 넣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희곡의 주인공인 보이체크는 실존 인물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1821년 어떤 과부를 살해하고, 1824년 라이프치히 시청 앞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보이체크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삶을 살아갔고 용병으로 군대를 전전한다. 군 생활을 마감하고 1818년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과부 우스트와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자 보이체크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동안 보이체크는 실직해 일이 없는 상태에서 구걸과 노숙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였다.

 

[뷔히너는 이 사건에다 여러 다른 소재를 버무려 한 인간의 개인적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서 비극은 목적론적인 운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존재 목적이 다른 어떤 존재에 있다면 개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뷔히너는 그런 목적론에 반기를 든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다.

 

사회사적으로 보면 보이체크는 가장 비천한 계층 출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 최초의 비극이다....이 작품에서 그는 주체적 인간이 아닌 타인의 도구이자 사회적 상황으로 파탄 난 개체로 그려진다.

-p.373~374, 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역자해설 중에서]

 

 

이렇게 보이체크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졌다. 왜 보이체크에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일 정도로 내내 불안해하며, 정신없이 쫓기듯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체크는 이발사로 대위의 시중을 들고, 완두콩만 먹으며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된다. 아내 마리와 아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리는 남자들의 유혹 대상이 되고 결국 군악대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보이체크는 본래 가지고 있던 불안과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랑에 대한 질투로 아내 마리를 살해한다.

 

김애란 작가는 홈 파티에서 배우인 이연의 입을 통해 왜 보이체크는 자신의 진짜 적인 대위나 군악대장, 하다못해 의사도 아닌 마리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한다.(p.31)" 이연의 말처럼 보이체크는 자신에게 착하지만 덕이 없다고 말하는 대위에게도, 자신을 짐승처럼 대하는 의사에게도, 아내에게 추근대는 군악대장에게도 아무 반발을 하지 못한다.

 

전염병의 영향으로 모든 바깥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이연은 대학 동기인 성민의 초대로 오대표의 홈 파티에 가게 된다. 모 대학의 반년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마음 맞는 몇 명이 집에서 만나는데 특별손님으로 끼이게 된 것이다. 계산이 정확한, 상류사회에 속한 그들은 처음에는 이연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결국 돈에 대한 얘기에 집중한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그들 안의 생각으로만 정리한다. 그들에게 보이체크는 고유명사에 불과한, 아는 체하기 알맞은, 한때의 추억일 뿐이다. 보이체크와 같은 부류의 타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부담 없이 가볍게 간 이연은 평소 술을 좋아하면서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물만 마신다. 자신과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러다 점점 그들의 생각과 말에 불편해진다.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급기야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면서 오대표의 80년 된 영국산 빈티지 커피 잔을 와장창 깨뜨리고 만다.

 

이연은 흔들렸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이연이 보이체크에게 품었던 의문을 이연 스스로 답해주고 있다. 보이체크의 분노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했듯이 이연 역시 자신이 흔들리고 실수하고 만다. 왜 항상 그들은 성처럼 굳건하고 완고한데 그 나머지사람은 실수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물론 이연과 보이체크를 그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불안과 허무, 소외를 느끼는 쪽은 항상 그 나머지사람 쪽이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는이연과 보이체크는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하고도 허무하게 홈 파티와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 해도 이연은 이 연극을 이대로 마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연은 무대에서 중요한 대사를 치기 전 순간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거실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미세먼지 탓인지 달이 비현실적으로 붉었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p.42, ‘홈 파티중에서]

 

 

<당통의 죽음>

 

혁명이란 단어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이 있을까! 고통의 과부하에 짓눌리다 필연적으로 뭔가를 전복시키지만, 분명 혁명의 목적은 민중의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과 죽음은 어쩔 수없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만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은 에베르파가 처형된 후 당통마저 사형당할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p.239, 작품해설 중에서)’ 여기에는 국민공회 대의원과 공안위원회 위원 등 여러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실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당통파에 대한 숙청을 계획한다. 당통은 맞서든지, 도망을 가든지 해야 하지만, 이미 혁명에 대해 전의를 상실하고 피로감에 젖은 당통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열렬히 원하고 실행시킨 혁명의 결과가 그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에 대해 당통은 허무함을 느낀다. 당통이 죽고 얼마 뒤 단두대에 올라 갈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혁명을 계속 진행한다.

 

프랑스 혁명이 남긴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이 희곡도 복잡하다. 일단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면 좋고,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사이의 의견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차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은 모든 권력이 가진 속성이자 민중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폭력과 공포가 따른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당통: ()안에 있지. 어디 한번 무의 세계보다 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에 빠져 보게나. 최고의 안식을 주는 것이 신이라면 무가 곧 신이 아닌가? 하지만 난 무신론자야. ‘그 무언가는 무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지긋지긋해. 그런데 나는 그 무엇이야. 비통한 노릇이지! 창조가 자리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무의 자리는 텅 비어있어. 어딜 가나 창조가 득시글거려. 무는 자살했고, 창조는 무의 상처야. 우리는 무의 핏방울이고, 세계는 무가 썩어 가는 무덤이야.

-p.188]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당통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발자크,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의 여러 소설에서도 이 시기가 다뤄지기에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노명식 선생이 쓴 이 책은 프랑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한국 대학생들과 일반 독자들이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인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에 전개된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이 책은 쉽게 읽히며 연대기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여러 각도에서 다채롭게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다만 내용이 워낙 많아 요즘처럼 돌아서면 까먹는 내 뇌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할지 걱정된다. 역사는 암기가 필수인가보다.



 

 

 

 

 

 






<레옹스와 레나>

 

뷔히너의 유일한 희극인 레옹스와 레나는 희극작품답게 언어유희와 풍자가 가득한 극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보이는 왁자지껄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오히려 비극적 인물인 햄릿을 닮은 레옹스 왕자의 내면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세상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지루함을 느끼는 우울한 왕자 레옹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가 단짝인 발레리오(희극의 광대와 비슷한 역할)와 주고받는 대사는 그 어떤 것에 대비시켜도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발레리오는 레옹스를 글자 없는 책(왕자가 자신의 삶을 빈 종이에 비유한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하며 현실적 이기보다 이상주의자인 왕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포포 왕국의 왕자인 레옹스와 피피 왕국의 공주 레나는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 페터 왕은 그들의 결혼식 날에 레옹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다. 레옹스와 레나는 둘 다 그런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해 각자 이탈리아로 도망간다. 여행도중 우연히 한 여관에서 만난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이 희극에는 정치적 풍자가 많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경직된 관료사회의 모습을 웃기게보여준다. 신랑과 신부가 없음에도 왕은 체면이 깎이지 않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거리에 농부들을 동원시키고, 발레리오가 레옹스와 레나에게 가면을 씌워 자동기계라고 속여 그것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자고 해도 왕은 받아들인다. 실체가 없어도 형식만 갖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가면이 벗겨지고,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까지 진행되며 막을 내린다. 이 극은 행복한 결말을 맞아 전형적인 희극처럼 보이지만, 다른 희극에 비해 훨씬 더 진행과정이 치밀하고 연결과정이 매끄럽다. 대사에 들어있는 여러 비유도 의미가 깊어 생각할 것이 많다. 물론 이 극에 들어있는 유머도 좋다.

 

[왕자님, 제가 인간 삶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좀 씨불여 볼 테니까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상처 난 발로 추위와 뙤약볕을 뚫고 이 짐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에라도 깨끗한 셔츠를 한번 입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면 이놈의 이마에는 주름이 파이고, 뺨은 움푹 들어가고, 눈은 침침해집니다. 그래도 이제 셔츠를 갈아입나 했더니 그게 수의인 거죠.....왕자님, 이제 여기서 응용과 실천이 나옵니다. 우리는 순전히 수치심 때문에 내면의 인간에게도 저고리와 바지를 입히고, 그 안에 속옷을 입히려고 합니다.

-p.216, 발레리오의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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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1-2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이체크!
이연의 대화에 있었군요. 시간이 지났다고 기억이 가물하네요.ㅜ.ㅜ
페넬로페 님 덕분에 프랑스 역사 일부분도 주워 읽고 갑니다. 큰공부가 되었어요. 나중에 희곡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주인공 이연의 어떤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느냐면요. 상류층 계급에 속한 듯한 그 무리들 속에서 겉도는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으려 곧은 매무새로 잘 유지하다가 빈티지 커피잔을 깨뜨려 어떡해야 할지 난감할 때 이연은 상대가 원하는 하나를 내줘야 이긴다?(맞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이 떠올라 오늘 어땠냐는 오대표의 질문에 굉장히 즐거웠다고 오대표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 그 장면이 참 인상깊었어요.
오대표는 빈티지 잔이 깨졌을 때보다 이연의 그 대답에 순간 표정이 살짝 굳어졌었다고 하여 오대표는 처음부터 이연에게 계급의 속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위선을 가진 자처럼 보였었고 그리고 오대표가 원한 그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연도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글을 읽으면서 본인이 차가워지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이었던 건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읽고 나서 좀 씁쓸했었던 단편이었어요.

페넬로페 2026-01-24 18:13   좋아요 0 | URL
이 소설집에서 저는 <홈 파티>가 제일 인상적이었고 좋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이연이 오히려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하나를 내주는 거요.
근데 그 부분이 또 너무 씁쓸한거예요 ㅠㅠ
저도 이연처럼 그런 자리에서 괜히 주눅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신형철 평론가가 김애란 작가를 사회학자라고 표현한 게 이해가 돼요.
이 책이 좋았지만 너무 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서 4별 줬어요.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경찰청 보안국 소속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그곳에 무고한 많은 사람이 끌려갔고 일단 들어가면 목숨만 붙은 채 만신창이가 되어 나왔다. 드러내지 않고 숨은 채, 조작하고 부풀려 인권을 파괴하고 인간의 육체를 훼손시켰다. 통행금지가 있고 오후 여섯시가 되면 온 국민이 태극기를 향해 멈춰 서 있어야 했던 시절, ‘불온이란 낙인이 모든 것에 붙을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남영동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경험하지 않아도 치가 떨리는 끔찍함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변했다.(그 와중에 마주한 계엄이라는 황당함은 생각하기도 싫다) 온통 AI 얘기뿐이다. AI 시대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잊혀진지 오래다. MZ세대는 그런 곳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그 와중에 만난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에 수록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놀라웠다. 1994년생 작가가 그런 소재를 가져온 것도 그렇지만, 사람을 고문하기 위한 장소를 설계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반 유신운동이 거세지자 정부는 1974년 긴급조치를 시행한다. 정부가 불온세력으로 간주한 이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자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포화상태가 된 그들을 수용할 새로운 시설이 필요했고 내무부 장관의 지시로 갈월동 부지 사업의 건축가로 여재화 교수가 위임된다. 건물의 사용 목적을 알았기에 위임보다는 여재화의 수용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여재화는 재능은 있는데 야망은 없는, 주무르기 쉽다고(p.162)’ 생각한 제자 구보승에게 조수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구보승은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p.176)’을 설계하기 위한 일을 받아들인다. 구보승은 그때부터 여재화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치밀하게 설계해 나간다. 건물의 존재이유와 목적에만 충실한 채, 사람을 고문해 거짓이라도 실토하게 만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공간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

 

매일 정오, 십분만 빛이 들어오는 폭이 좁은 수직 창,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오르는 사람에게 안정성을 빼앗고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60센티미터 너비의 급경사 나선형 계단, 취조실마다 출입문을 엇갈리게 해 피조사자들이 내통하는 것을 방지함, 벽면은 유공흡음관으로 마감해 비명 소리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 대신 복도 천장을 높여 취조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다른 방에서 듣게 해 공포를 유발시킴, 전등갓에 철제 덮개를 씌워 자살이나 인질극에 대비함, 물고문을 위해 바닥은 방수 모르타르로 처리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목적의 외시경을 반대로 바깥에서 안을 감시할 수 있도록 바꿈.......

 

건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공간에서 생활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친 여재화는 구보승의 설계에 경악하며 그에게 지독하다고 말한다. 야심에 차 이 건물의 설계를 수락했지만 여재화는 설계하는 도중 회의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는 건물의 용도에 맞는 설계를 하면서도 피조사자의 한 줌도 안 될 인간다움(p.181)’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구보승은 철저히 건물의 목적과 건물 안에 들어갈 인간의 합리성만을 고려한다. 그것이 완벽하지 않다면 애초 그 건물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인간적이라 여재화는 구보승보다 나은 인물일까? 사람의 관점과 지향점에 따라 희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비록 대공분실에 끌려왔지만 버티고 고초를 견뎌 그곳에서 나갈 수 있는 것에 여재화는 희망을 뒀다.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구보승은 철저히 건물의 목적에 부합한 희망만을 보았다. 물론 두 사람이 말한 희망엔 희망이 없다. 희망이 필요한 인간에게 대공분실이라는 건물은 시작부터 희망을 삭제한다.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p.192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p.192~193]


2025610남영동 대공분실부지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개관되었다.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소식이 알려져 19876.10 항쟁으로 이어졌고 6.29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건물에서 이루어진 무수한 폭력은 인간(약자)에게 가해진 권력의 횡포였다.

 

소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고 이곳을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친구 카리나님과 갈월동에 다녀왔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M1구역과 M2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M1구역은 신축한 건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담은 상설전시관이다. M2구역은 옛 대공분실 건물을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을 거쳐 그때의 상황과 피조사들이 겪은 고초를 보여주는 곳이다. 대체적으로 성해나 작가는 이 소설에 대공분실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대공분실 정문은 높고 굵은 철문으로 되어있다. 철문 밑에 작은 바퀴가 달려 문을 옆으로 열고 닫는다. 눈을 가리고, 머리를 깊숙이 숙인 채 끌려오는 피조사들은 이미 처음부터 이 철문 열리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다.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소설에는 3층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취조실이 5층에 위치하고 있다. 5층에만 있는 폭이 좁은 수직 창은 이 건물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소설에는 정오에 단 십분만 빛이 들어온다고 했지만, 남향에 위치한 이 건물의 특성상 더 많은 시간동안 빛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나선형 계단은 1층부터 5층까지 층의 구분이 없이 이어져있다. 생각보다 더 폭이 좁고 가파르다. 어떤 피조사자는 눈이 가린 채 이 계단을 올라가며 지하로 내려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방향감각이 무뎌진데다가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 안정성마저 상실된다면,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극대화될 것(p.188)’이라는 설계자의 의도대로이다.


취조실의 각 방은 서로 내통하지 못하도록 출입문이 엇갈려 있다.


각 방의 벽은 유공흡음관으로 마감해 비명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대공분실은 남영역과 붙어있어 전철이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로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 당시에 이미 대공분실은 취조실에 cctv와 마이크를 설치해 피조사자의 모든 것을 감시가능하게 했다.


고 박종철 열사가 갇혀서 물고문을 받던 9호실.

이 방은 중요한 역사 현장이기에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고 박종철 열사의 사망진단서.

여기에 용기 낸 사람들의 결단이 담겨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늦게까지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건물 앞 잔디밭은 그 당시에 테니스장이 있던 곳이다. 취조실에 고통에 빠진 사람이 죽어나가도 형사들은 체력 단련을 위해 테니스를 쳤다. 그들이 치고받는 테니스공 소리와 웃음소리를 듣는 피조사자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대한 여러 포스터이다. 그 중 이 포스터가 마음에 와 닿았다.

페미니즘이 없다면 데모크라시가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가 아닌 후대에 평가받는다. 이 사실을 몰랐을까? 이 건물에 꼭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었던 사람은 세월이 흐른다는 것과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며 신념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을 것이다. 구보승처럼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p.201)'고 지하에서 자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 끌려갔고, 계속 눈을 가린 채 취조를 받는다.(이 장면은 보여 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의족을 찬 사람(경찰)의 엇갈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삐걱삐걱.... 사회에 복귀한 바히드는 그런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곳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청각으로 남은 상처와 억울함은 평생 바히드를 따라다닐 것이다.

 

폭력을 위한 건물의 모든 것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 피조사자들의 트라우마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건강을 회복하고, 법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할지라도 계속 남아있는 트라우마에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폭력은 없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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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1-0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해나 작가의 구의집 갈월동98번지가 그런 내용이군요.
박종철 열사와 같은 시대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사진만 봐도 마음이 저며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왔고 또 어떤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페넬로페 2026-01-08 20:46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세대라 이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많이 갔고, 꼭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가보고 싶었어요. 박종철열사의 9호실 방 앞에서 묵념을 할 때 뭉클하더라고요.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생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의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려졌어요. 지금 우리의 세상은 그래도 많이 달라졌다고 믿고 싶어요.

잉크냄새 2026-01-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군요. 12.3 계엄 세력이 꿈 꾼 세상이 바로 소설 속의 그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페넬로페 2026-01-08 20:48   좋아요 1 | URL
12.3 계엄 세력이 아마 이 때의 권력을 꿈꾼 것 같아요. 황당하고도 어이 없었지만 언제라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페크pek0501 2026-01-0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스럽고 슬프네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헤아렸다면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딴 세상이 되었으나 두 세상의 시간이 그리 멀지 않으니 변화무쌍한 세태로 느껴지네요.
다른 책으로 혼모노, 만 읽었는데 다른 단편들도 혼모노 만큼 좋던가요? 이 책을 살까 안녕이라 그랬어, 를 살까 고민 중입니다.^^

페넬로페 2026-01-09 13:59   좋아요 1 | URL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불시에 뒷통수 맞은 기억때문에 세상은 언제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안녕이라 그랬어 보다는 혼모노가 더 좋았어요. 굉장히 참신한 글쓰기라 신선했어요.

책읽는나무 2026-01-10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을 보니 절로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를 했다니 좀 충격이네요.
그리고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에서 이것을 다루었다니? 놀랍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이력이 궁금하네요. 지난 번 위픽시리즈 중 성해나 작가의 중편을 읽었는데 경주에 있는 옛가옥을 리모델링을 할지? 그냥 그대로 놔둘지?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적였어요. 참 재미나게 읽으면서 성해나 작가가 다루는 주제가 이 책도 그렇고 <소설 보다>에서의 <스무드>도 인상깊어 작가가 다루는 주제들이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혼모노가 역시네요.^^

페넬로페 2026-01-11 10:4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 당시 굵직한 건물의 설계를 여러 건 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집 <혼모노>에도 단편 <스무드>가 들어 있었는데 저는 그 작품도 좋았어요. 그 중 이 단편인 <구의 집>이 좋아 아무래도 관심이 더 가더라고요. 이 소설을 읽고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해설사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레이스 2026-01-11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모노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건축이 계급을 상징하거나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이끌어낼수 있다고 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그 책에서 반대하는 지점이거든요.
언뜻 보면 수긍할만한 내용이지만, 그 뒤에 있는 생각은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성공한 건축가도 단지 국정원이 클라이언트라 생각하고 용도에 맞게 설계했을지 몰라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네요.
하긴 그 시대 성공한 건죽가가 되는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다는 생각입니다.ㅠㅠ

페넬로페 2026-01-12 10:44   좋아요 1 | URL
네, 이 짧은 소설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더라고요. 여지껏 건축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속에 있을 인간에 대해서도요. 혼모노에서 젊은 작가의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구름모모 2026-02-0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매하고 읽지 않았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정보도 도움되었어요. 2월은 책탑 쌓아옿고 읽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6-02-07 08:21   좋아요 0 | URL
저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듣고 허걱 했습니다 ㅠㅠ성해나 작가의 이 책은 갈월동 98번지 말고도 다른 단편들도 좋았습니다. 작가의 시각이 새로웠어요.
 













식구가 세 명인 우리 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나머지 두 명은 나의 책읽기를 응원해 주는 편이다. 불편할건데도 두 사람은 내가 여기저기 흩어놓은 책에 별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별 관심이 없지만, 벽돌책을 읽고 있으면 슬며시 앞표지의 제목을 보기도 한다.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삼 개월째 읽고 있는 중이라 두 사람은 저절로 제목을 외우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작정하고 잔소리를 좀 하려고 하면, “엄마, ‘특성 없는 남자‘, 읽어야지! 독서 동아리 얼마 안 남았잖아하며 딸아이는 자리를 피한다. 어제는 갑자기 남편이 특성 없는 남자가 누구야? 왜 특성이 없는데?”라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살짝 당황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 얼마 전 어떤 분이 나에게 기습적으로 한 질문이 생각났다.

 

그날도 대화중간에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어요?” 또는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였을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 마들렌?”이라고 답했다. 내 대답에, 질문을 한 그 분은 순간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지만, 책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확신 있게 잘 대답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든가, 어떤 책이 좋으냐, 또는 그 책은 왜 좋은가에 대한 대답 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겐 감동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잃시찾이나 특성 없는 남자는 몇 번씩 읽어야 조금 이해되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질 책이다. 한 책을 여러 번 읽으며 파고드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다 읽지 못하겠지만, 재미있고 좋은 새로운 책을 더 많이 읽기를 원하기에 매번 나의 책읽기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생각을 멈추고 남편을 바라본다. 이 사람은 내가 한 대답에 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가능성도 거의 0%에 가깝다. 당연히 내가 틀리게 말해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특성 없는 남자의 이름은 울리히야. 나이는 32세고 능력도 뛰어나고 잘 생겼어. 이 사람은 처음에 군사학교를 졸업해 장교가 되었지만 그만두고 공학을 공부하지만 또 그만두고 수학을 전공해 수학자가 되었어. 지금은 1년 정도 자신에게 인생의 휴가를 주고 있어. 울리히는 사람마다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나, 사고, 개념이 가진 고정적 특성을 거부해. 이것들을 해체시키기를 원하지. 그래서 특성 없는 남자야. 현실보다는 가능성의 영역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매사에 이론적이야. 항상 뒤에서 앞에서 한 말을 뒤집고 있어. 울리히의 말은 언제나 모호해. 울리히는 좋게 말하면 자기식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기부정과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야.”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자는 특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울리히같은 가능성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런저런 현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일어난 일을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실현된 것으로 여긴다(3-p.605~606)’고 해석한다.



 











로베르트 무질의 저자 최성욱은 울리히는 현대인의 비실체성불안정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항상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그에게 자아는 고정되고 확실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그에게 자아란 매우 잠정적이고 가변적이다. 이처럼 주체가 더 이상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고 판명된다면, 이것과 연관된 불변의 특성도 더 이상 주체에게 부여할 수 없다. 무질에게 실체의 상실은 곧 특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p.198

 

울리히의 정체성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울리히의 특성은 이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데 그것은 외부 환경은 언제나 변하며, 이의 영향을 받는 울리히의 특성 역시 항상 변화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따라서 그에게 한 가지 고정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p.206]

 

작가 무질에 의해 특성이란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특성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특성은 보통 주어진 것이고 울리히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특성 있는 남자는 언제나 그 세계를 확고히 지키려고 한다. 특성은 변화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시대와 세계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만이라면 사람들은 또 하나의 거대한 특성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은 변화를 받아들이되 지향점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 지향점의 이해가 아직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지나치게 울리히가 정의한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가진 특성을 아무데서나 남발한다. 부담스럽다. 주어지고 선동된 특성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특성 없는 남자 2(비슷비슷한 일이 일어나다)에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평행운동이 소요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요제프 황제 제위 70주년을 기념하고 오스트리아의 찬란한 정신을 도모하고자 한 애국대운동은 여러 반발에 부딪히고 각 특성을 가진 군중들은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현장에서 각기 다른 의지를 가진 개인들은 한순간에 단일한 의지의 군중(2, p.466)’으로 변한다. 평소에 절제와 신중함을 가진 사람이라도 군중이 되면 극단으로 밀고 가는 재주가 생긴다. 흥분하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을 가진 이들이 조종하는 것에 저항 없이 동조한다. 보이지 않은 특성은 그들을 움직여 쉽게 자신들의 특성을 전파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가장 내적 저항이 작은 점들이다. 그들이 직접 지르기보다 그들의 선동으로 더 많이 나오는 외침, 그들의 손에 들어간 돌멩이, 그들이 폭발시키는 감정, 이것들이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서로의 흥분을 상승시킨 다른 사람들이 미친 듯이 그 길을 밀고 나아간다. 그들은 주위의 행위에 반은 강요로, 반은 해방으로 느껴지는 집단적 성격을 부여한다.

-2, p. 466]

 

지하철에서나, 동네 공원, 산책길에서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큰 소리로 듣는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선동과 지시로, 그것을 절체절명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군중 심리가 무섭다. 울리히의 특성 없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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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누군가에게 뭘 권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반면에 뭔가에 꽂히면 악을 쓰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릅니다. 불편한 사람은 이를 선동질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 선동 속에도 엄연한 진실이 있다는 거죠. 무관심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6   좋아요 0 | URL
네, 쉽게 권하지 못하는게 맞습니다. 특히 책은 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책 마다 각자 읽는 방식이나 해석이 다 달라서요.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무관심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아요.

Falstaff 2025-12-13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십니다. ㅋㅋㅋ
저 다니는 도서관에서는 한 남자가 복도에서 이 책을 들고 걸으면서 몇날며칠 동안 읽더라고요. 며칠 후 개가실에서 책 구경을 해보니 책 세 권이 전부 등이 꺾여 너덜너덜.... ㅋㅋㅋ 도서관 빌런이었습니다. 그이는, 아니, 딱 그이 혼자 책 다 읽었을 겁니다. 저는 안병률 선생 번역으로 읽었는데, 그냥 활자만 읽어서 아무 생각 없습니다.

페넬로페 2025-12-13 10:59   좋아요 1 | URL
도서관의 빌런들 많지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책에 문장도 따라 적고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읽고 있어요. 3권 읽다보니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겠더라고요. 안병률 번역자의 번역은 어떤가요?

책읽는나무 2025-12-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성 없음의 특성이로군요.
특성 없는 남자는 항상 전이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특성이 너무 강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하겠고…음…심오합니다.
그래도 벌써 2권!
올 해는 페넬로페 님과 함께 하는 특성 없는 남자로군요.^^

페넬로페 2025-12-13 11:03   좋아요 1 | URL
특성이란 단어를 삼 개월동안 계속 생각할줄은 미처 몰랐어요 ㅎㅎ
어렵지만 무질의 시도가 조금은 이해되고 있어요.
책나무님, 이 책 소장하고 계시니 같이 읽으시죠🙂

책읽는나무 2025-12-14 13:09   좋아요 1 | URL
실은 아직 3권 다 못 갖추고 2권만 들고 있어요. 페넬로페 님의 리뷰를 다 읽고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만…어려울까봐 자신이 없네요.^^˝
아직은 재밌는 책?에 자꾸 손길이 먼저 가네요.

yamoo 2025-12-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펠넬로페 님 특성없는 남자 리뷰 보고 저도 읽고 있습니다! 밴빌의 <오래된 빛>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 작품, 완전 제 취향 저격인 작품이었네요!! 저는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도 가독성은 떨어졌지만 그 특유의 작가적 관념을 읽는 게 좋았는데, 무질은 훨씬 순화된 맛이 있네요. 지금 1권 딱 중간 까지 읽었는데, 이 소설은 오스트리아의 세기말 적 풍경을 캐릭터에 잘 형상화시킨 작품인 듯해요. 세기말의 불안정성을 캐릭터로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주인공 울리히고 작가는 특성없는 남자라는 성격을 부여했죠. 저는 소설에서 시대성을 캐릭터에 잘 담아내는 작품을 선호하는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는 원탑이란 느낌이 팍 들고 있습니다. 아직 초반부 읽고 있지만 무질이 왜 서양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겠더군요. 무질은 줄리언 반스가 오래 전에 말한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끼도 잘 잡고 관념적 유희도 덤으로 엊어줍니다. <생도 퇴를리스의 혼란>은 재미없어 읽다 덮었는데 특성없는 남자 다 읽고 다시 들춰봐야 겠어요. 제겐 <특성없는 남자>가 올해의 발견 쯤 됩니다! ㅎㅎ 펠넬로페 님 리뷰 못봤으면 읽을 엄두를 못냈을 텐데...여튼 감사합니다!!ㅎㅎ(책은 진작에 사 두었었어요..ㅎㅎ)

페넬로페 2025-12-13 11:08   좋아요 0 | URL
yamoo님, 저와 같은 책 읽고 계신다니 너무 반가워요. <특성 없는 남자>를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질이 한 문장 한 문장을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가 다 좋습니다. 다만 이것을 제가 아직 다 연결시키지 못해 꼭 재독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줄리언 반스의 말이 실감되네요.
조만간 저도 <오래된 빛> 읽어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12-29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기 어렵고 재미없기로 유명한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페넬로페님 리뷰 보니 은근 흥미롭네요?! 특성이 없다는 게 그런 뜻이군요. 고정된 특성을 거부한다.. 흥미롭습니다. 남편분의 질문에 저렇게 정돈된 답변을 하시는 페넬로페님도 멋져요..!

페넬로페 2025-12-29 17:05   좋아요 1 | URL
어렵고 재미는 없는데~~
작가 무질이 심혈을 기울여 문장 하나하나를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건 확실해요. 문장도 좋고 비유도 좋아요.
근데 작가가 너무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해 그것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갖춘 독자가 적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ㅎㅎ
한번쯤은 읽어도 좋을 듯 합니다.

마힐 2026-01-0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지난 한해 좋은 글 읽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6-01-02 08:34   좋아요 1 | URL
마힐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고전을 읽을 때 내가 자주 고민에 빠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책이 써진 시대의 특성만을 고려해 읽을 것인가, 아니면 현대적 관점을 조금이라도 들이밀 것인가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은 그것이 어느 시대의 것이든 그 의미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매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에 들어가는, 1592년경 초연된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같은 작품이 내게 고민을 던져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번역가와 평론가는 이 작품이 역설적이며 극적인 반전과 풍자가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러한 해석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본극 안에서 공연되는 극중극이다. 본극은 극중극보다 더 짧아 서극으로도 불린다. 영주는 술주정뱅이인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가짜 영주로 만들어 슬라이를 골탕 먹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하인들을 내세워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처음에 슬라이는 자신이 영주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모두가 슬라이를 영주라고 하며 받들어 모시기에 점점 자신이 영주라고 믿어버린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슬라이 앞에서 희극배우들이 공연하는 극이다.

 

파도바의 갑부인 뱁티스타에게는 두 딸이 있다. 맏딸인 말괄량이인 캐서리나와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둘째딸인 비앵카이다. 캐서리나가 왜 말괄량이가 되었는지는 독자들이 추측해야만 한다. 하여튼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에게는 구혼자가 없고, 둘째딸인 비앵카에만 구혼자가 몰린다. 뱁티스타는 둘째딸의 구혼자들에게 큰딸의 구혼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절대 비앵카도 결혼시키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캐서리나는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과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은 당연히 이해받지 못하고 고립된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독자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살아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한 몫 챙기는 것으로만 여기는 무례한 남자인 페트루키오를 거부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신랑간의 계약으로만 성립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페트루키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방식은 유치하고 웃기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끔찍하게 계산된 폭력이 있다. 캐서리나는 결혼을 거부하지만, 페트루키오는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며, 이상한 복장으로 결혼식에 늦게 와서 행패를 부린다. 잠을 재우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마치 짐승을 길들이듯 변덕스럽게 캐서리나를 대한다. 사육사가 되어 아내를 잡는다. 캐서리나는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 페트루키오의 말을 듣는 척 한다. 페트루키오가 해를 달이라고 우기면 그냥 달이라고 인정해버린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듣는 척 하는 것일까? 길들여지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은 그런 척하기 쉽지 않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셰익스피어는 52장의 캐서리나의 말을 통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의 역설과 가부장제를 조롱하고 비판(옮긴이 해설)’할지 모르지만, 이 연극을 통해 아무생각 없이 웃어넘기는 그 당시의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저 페트루키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을지? 대다수는 캐서리나가 그에게 길들여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도전하는 셰익스피어 5대 희극5편의 셰익스피어 희극을 잘 설명해놓은 책이다. 각 작품마다 내용의 중요구절을 원문과 함께 인용해 극의 흐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에 대한 평가와 거기에 담긴 의미, 인문학적 해석이 들어있다. 박용남 저자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셰익스피어시대의 가부장주의 문화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이 들어 있다(p.178)’고 말한다. 이 극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캐서리나의 행동은 약자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현실적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과연 그럴까? 여전히 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타리나는 정말로 말괄량이인가? 말괄량이란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이 거칠고 여자답지 않은 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당시 영국에서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잔소리가 심한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말괄량이(shrew)’라는 단어는 꾸짖다(scold)’와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한마디로 여성의 언어(잔소리)는 통제되고 교정되어야 할 죄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말에 복종하고 잠잠하라는 의미다. 여성의 말 없는 조용함이 미덕으로 간주된 것도 그 이유다.카타리나같이 가부장적인 사회규범에서 어긋나는 여성들은 말괄량이로 낙인직혔다. -p192~193’]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마지막에 죽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될 뿐이다. 희극 역시 극의 내용은 폭력적이며 사람을 기만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개인적 결함과 욕망, 운명으로 인해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이 훨씬 더 설득적일 수 있다. 풍자와 해학, 웃음으로 이루어진 희극적 내용에 더 지독한 인간의 애환과 씁쓸함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보텀은 희극적 해피엔딩 속에서도 지극히 비극적인 쓸쓸함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슬라이 역시 마찬가지다. 신이나 기득권자에 의한 한 순간의 장난과 속임수에 불행해 질, 모두가 폭소를 터트릴 찰나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인간의 단면을 희극은 여지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 평범한 인간들의 삶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허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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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10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분홍책이다! ㅋㅋ 저도 오늘 분홍책 리뷰 썼는데 괜히 반갑 ㅋㅋㅋㅋㅋ
으아 저 <말골량이 길들이기> 진짜 싫어해요. 이 작품 말고도 말씀하신 부분 등 시대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이 있어서 저는 그토록 다들 찬양하는 셰익스피어…. 그냥 그렇더라고요. 흠..

페넬로페 2025-11-10 20:48   좋아요 0 | URL
저는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그냥 코믹극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내용일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셰익스피어가 영어를 잘 사용해서 칭송받는 것 같은데
원문으로 읽을 능력이 안되니 그저 번역문으로 열 받았습니다.
지만지의 이 책 번역은 더 억센 느낌이 들었어요 ㅠㅠ

독서괭 2025-11-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지만지책 읽으셨군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으로 안 읽어보고 대충 줄거리만 알았는데 극중극인 줄은 몰랐네요;; 셰익스피어 작품 중 제일 별로일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11-10 21:18   좋아요 1 | URL
내용이 정말 황당했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풍자나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요 ㅠㅠ
그 당시 남자들이 엄청 좋아했을 희극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5-11-10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병모 작가의 <절창>소설에도 셰익스피어 희극 몇 작품 잠깐씩 언급되어 요즘 관심이 좀 가고 있어요.
주로 <한여름 밤의 꿈>작품 언급이 많긴 했었는데 어떤 대목들의 비판은 아마도 <말괄량이 길들이기>였었나, 싶기도 하네요.
인어 공주 동화 내용도 있기도 했었구요.
저는 아직 셰익스피어 작품을 자세하게 읽어보진 못했네요.
읽게 된다면 답답하겠단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5-11-11 00:07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는 셰익스피어 희극을 어떻게 소설에 인용했는지 엄청 궁금해요.
저는 희극보다는 셰익스피어 비극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절절하고도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 읽으시려면 비극부터 시작하시길요^^

페크pek0501 2025-11-1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었는데 명언 같은 멘트가 좋아 셰익스피어 명언집, 이라는 책까지 샀더랬죠.ㅋ
저는 난생처음 도전하는 ~~4대 비극을 샀는데 재밌어요.

페넬로페 2025-11-11 13:3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희극보다는 비극을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박용남 저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희극은 비극보다는 생소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꼬마요정 2025-11-1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싫어요!! 토마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뭔가 결말이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시대상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저는 <템페스트>랑 <십이야>가 좋아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5-11-12 00:1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대다수 희극 작품의 과정과 결말에 뭔가 약간씩 기분 나쁜 요소가 들어 있더라고요. 거기에 다양한 의미와 풍자가 들어 있더라도 읽기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특히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제일 그랬어요.토마스 하디의 작품의 내용도 궁금합니다. <템페스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이라 그런지 저도 좋았습니다^^

yamoo 2025-11-21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 고민이 있죠. 책 덕후들은 아마도 대개는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는 1인..그걸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정도면 독서내공이 쌓인 고수인 것이죠...쉽게 말해서 남들이 다좋다고하고 평론가도 좋다고 하는데 아는 싫은 작품이 있는데 그걸 싫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 말이죠...ㅎㅎ 뭐..그렇다구요..^^;; 어쨌거나 저은 이런 리뷰가 좋아요!ㅎㅎ

페넬로페 2025-11-21 08:40   좋아요 0 | URL
독서에 고전의 비율이 많아 웬만하면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며 읽는 편인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도무지 그렇게 되지가 않았어요.
원서로 읽으면 그런 뉘앙스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정이 너무 아니더라고요.
매번 책읽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