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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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소설, ‘케이크와 맥주를 읽으며 능수능란하고 용의주도한 글쓰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를 생각했다. 칭찬인 듯 하면서 야유와 조롱이 가득하고, 위트 있고 산뜻하면서도 거기엔 무거움이 있다. 일정한 스토리가 있지만 중간 중간 펼쳐지는 몸의 소설론을 비롯해 작가들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가히 압도적이다. 꼬박 2번을 읽은 이 소설은 톡 쏘는 시원함과 목울대를 넘어가는 보리맛의 묵직함, 기분 좋으면서도 약간 슬프고 씁쓰레한 취기를 주는 맥주를 마신 후의 느낌 같았다.

 

나는 맥주를 좋아해 즐겨 마신다. 그런데 한 번도 케이크와 맥주를 같이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에서 한참 머물렀던 것은 맥주와 케이크에 들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허름한 펍에서 흑맥주 마시기를 좋아하고 그곳에서 여급인 로지를 만나 결혼한다. 영국인의 습성을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맥주는 서민적이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솔직한 세계인데 반해 케이크는 그 반대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도 잠시 생각했다.

 

소설가인 에드워드가 글로 세밀하게 나타낸 맥주의 세계는 그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명성을 얻고 소설이 팔리기 위해서는 우아한 환경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달과 6펜스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주변의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열정만으로 예술가의 삶을 산 사람도 있고, 이 소설의 앨로이 키어처럼 가식적이며 이기적인 세계에서만 머물러도 동시대 작가들 중 로이만큼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확고한 위치를’(p16) 거머쥘 수도 있는 것이다. 서머싯 몸은 이 소설에서 작가들의 세계를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것을 읽으며 독자인 우리들의 책의 선택이 얼마나 편협해질 수 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류 경과 토비 경에게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말하자 토비 경은 묻는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p300, 해설에서]

 

물질적 쾌락삶의 유희를 좇는 사람은 이 소설에서 로지 갠인데, 로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전히 그녀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권위와 관습적인 시각으로의 그녀에 대한 비판은 반대하고, 글 쓰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것에 대한 외로움도 이해하지만, 삶의 유희가 꼭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인 보상이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서머싯 몸 자신인 듯한 윌리 어셴든은 로지의 행동은 그녀의 타고난 성품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앨로이 키어에이미 드리필드라는 경직되고 특별한 것들만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척점으로 로지의 역할이 필요할지 몰라도 여성의 입장에서 로지처럼 행동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에드워드를 떠나기 전 에드워드는 자신의 작가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써낸다. 그런 그에게 로지는 뮤즈의 역할만은 톡톡히 한 것 같다.

 

[그녀는 아주 단순한 여자였어요. 건강하고 천진한 본능을 가진 여자 말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죠. 사랑을 사랑했어요....

 

그럼 그냥 사랑의 행위라고 해 두죠. 천성이 정이 많은 여자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 -p274~275]

 

로지에 대한 평가와 생각은 독자 개인의 몫인 것 같다.

 

작고 정체되어 있는 곳, 여전히 계급사회의 벽이 있고 근엄하고 폐쇄적인 블랙스터블에서 이루어지는 드리필드 부부와 어쎈든의 우정은 금기를 깨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답답하고 고루한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세계는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다.

 

블랙스터블의 한 영지의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 난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젊었을 때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보헤미안으로 산다. 그가 어떻게 작가가 되기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며 살아간다. 에드워드가 죽고 그의 집을 방문한 어셴든은 그의 사진을 보며 남들에게 보이는 에드워드의 얼굴은 가면이라고 한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라 여기는 두 꼭두각시에게 냉소적이고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 유령, -p272]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항상 궁금하다. 끊임없는 창작 속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생명의 잔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내용이 너무 적나라해 사람들은 그것이 현실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지는 나중에 어셴든을 다시 만나 그 내용은 실제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의 비극을 글로 쓸 수 있는 작가들에 진절머리를 낸다. 어셴든은 작가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재가 되어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4~295]

 

, 이놈의 유일한 자유인이여, 빌어먹을 작가들이여!

서머싯 몸은 가차없이 케이크와 맥주에 자신의 자유를 실천한 것 같다.

그것이 또한 여지없이 시원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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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09 16: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는 중만 한달째 ㅎㅎ ㅠㅠ

페넬로페 2021-12-09 18:1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읽고 계시는 책이 워낙 많아 그러실 것 같아요.
저도 많은 책이 심지어 여러 달에 걸쳐져 있어요**

미미 2021-12-09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북플의 소중한 별 페넬로페님 당선축하드려요! 항상 빛나는 글 감사해요^0^*

페넬로페 2021-12-09 18:12   좋아요 4 | URL
미미님, 감사드려요**
제가 여기 북플에서 이렇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있으니 어찌 이곳을 사랑하지 않으리오**
우리 모두 별이라서 좋아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12-09 18:43   좋아요 2 | URL
쎄인트님, 정말 감사드려요**

독서괭 2021-12-09 1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12-09 18:43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12-09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페넬로페 2021-12-09 23:24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항상 감사드려요♡♡

초란공 2021-12-09 2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도 알라딘 서재 메일에서 페넬로페님의 글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12-09 23:25   좋아요 3 | URL
초란공님, 감사드려요.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초란공님의 좋은 글, 기대합니다^^

러블리땡 2021-12-10 0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페넬로페 2021-12-10 02:58   좋아요 2 | URL
러블리땡님,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요즘 책 많이 읽으시던데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희선 2021-12-11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축하합니다 2021년 마지막 달 십이월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밖에 나가기는 좀 안 좋겠지만,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1-12-11 10:43   좋아요 2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밖에 잘 나가지 못하니 책으로 위로 받아 행복합니다**

leepapggot 2022-02-2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이크와 맥주를 읽고 독서토론에서 발제를 해야하는데 책이 넘어가지 않아 한달 이상 끙끙거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제가 무건운 건지, 문장이 무거운 건지, 저의 독해력이 가벼운 건지. 리뷰를 쓰시는 분들이 대단합니다.

페넬로페 2022-02-23 08:42   좋아요 0 | URL
독서토론에서 발제를 하시려면 아무래도 부담이 클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할수록 더 무겁고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독서동아리를 하는데 리더분께서 매번 논제를 만드시는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leepapggot님!
2월인데도 날씨가 추워요~~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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