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니 나는 그동안 독후감을 써왔구나..

뭐 서평이라고 쓴건 아니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도 해본다,

알라딘 서재에는 리뷰가 있는 거지 서평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내성적인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야매로 검사한 애니어그램의 5번 유형은 사교성이 없다, (절대 사회성이 없는게 아니다)

자기 원칙에 엄격하고 감정적인 발산을 자제하며 머리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머리를 쓴다고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바로 연관시키면 곤란하다,

그냥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행동이 굼뜨고 쉽게 지쳐버린다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내가 말을 걸 때만 나에게 다가온다,

먼저 다가와 나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책은 내파 펼쳐 들어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해주지만 필요이상 친근하게 굴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침묵할 뿐이고 나에게 질문하지도 않는다,

책은 가장 좋은 도피처이고 가장  행복한 해방구이다,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멀어지게도 만든다,

잘난척 하느라 책만 보고 사람은 무시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잘나서 책만 보는 사람이 끔찍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구보다 내가 잘나지 않은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그렇게 말한 당사자도 내가 잘나서 책이나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냥 감정적으로 뱉은 말일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외롭지 않고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하고 책을 읽는 동안은 의미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싫지는 않았지만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온 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지쳤다, 그저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울때 느끼는 만족감이 변태처럼 좋았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

한권만으로 불안한 적도 있어서 차려입은 것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가방으로 비스듬한 어깨짓을 한 채 외출하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심지어 업무시간에도 틈틈히 책을 보는게 좋았다,

뭐 그래서 대단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많이 읽었던 아이가 많이 읽는 어른이 된 것 뿐이다,

 

지금 나는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 대신 친구랑 노는게 더 좋고 친구랑 떠드는게 더 좋다면 그걸 해도 된다도 생각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빠져서 하루종일 그 오빠만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도피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 내가 책으로 도망갔듯이 아이가 무언가로 도망치기 위해 열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요샌 너무 안읽어서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책읽기 = 지식이라는 공식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책많이 읽어서 대가리만 기괴하게 커진 괴물보다는

읽지 않아도 원칙을 알고 도리를 아는 게 더 낫다고 믿는다,

 

나는 왜 읽을까

내게 독서는 도피처였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너무 힘들고 불안할때 내 앞에 쌓인 숙제가 너무 많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며칠을 계속 책만 보고 싶다,

책만 보고 또 보다가 어느 순간 기록을 남긴다,

셔평이란건 생각치도 않았다,

그냥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내 감정 내 성찰 정도였다고 할까

책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게 고작이었다,

남들의 서재를 보면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는  글들을 좋아했지만

막상 나는 나에게로 향하는 길 이외에는 알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내 속엔 내가 꽉 들어차서 다른 곳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어도 결국 머리만 커지고 아무것도 아닌 어른인 나는

그렇게 아직도 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왜 읽을까

적어도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픈 사람 악한 사람 대책없는 사람 어이없는 사람 순한 사람 악만 남은 사람  후회하는 사람 불안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

나처럼 대책없이 비관적인 사람,,,,

조금씩 만남을 넓혀가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것도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없다는 걸 배운다,

누구나 옳고 누구나 귀하다,

제각각이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시간을 가지고 그만큼의 관계들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 그들 누구도 뭉뚱거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타인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걸 공감이라고해도 될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입장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쓰담쓰담해주는 것을 배운다,

책속의 누구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속의 누군가를 닮은  내 곁의 누군가를 본다,

이 사람은 그때 그 이야기속의 누군가를 닮았구나

진짜 이런 유형도 있구나 ...

나는 거꾸로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역시 나는 서평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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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7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제가 쓴 글인양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0   좋아요 0 | URL
여기 서재엔 서로 닮은 부분을 가진 분들이 많을거같아요. 그 중 님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아무개 2017-02-07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좋아요 열번 누르고 갑니다 *^^*

푸른희망 2017-02-07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님도 은근 소심하신가요?^^

cyrus 2017-02-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목적이 개개인마다 다르더라도 저는 리뷰, 서평, 독후감을 단순하게 같은 의미로 보고 싶습니다. 세 가지 용어를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릅니다. 굳이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면서까지 리뷰는 어떻고, 독후감은 이런 글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3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을 읽으며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떠올랐어요 딱 서평이라고 할만한.....님의 리뷰를 보면 제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책이 끌리거든요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리라이팅 클래식 5
이혜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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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난 맹자가 아닌

누군가가 소개시켜준 맹자를 만나다.

유교라고 하면 늘 공자가 떠오르지만 맹자의  유교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

 

 

그는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파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을 염려하는 능력이다, 함께 느끼는 능력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르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맹자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과 우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한가지 일이다,

 

 

유학이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준 윤리이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학은 또한 정치이론이다, 개인의 선한 삶이 모두의 선한 삶으로 이끈다는 윤리 정치 이론이다,

서양에서 수입된 근대의 정치는 윤리와 분리된 것이다, 물론 정치인의 직업윤리는 묻지만 정치인의 자질로 전인격적 고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보수주의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전통은 유학이고 맹자일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먼저 자각한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장 포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였다,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사랑을 가장 폭넓게  실행하기 위한 길이엇을 뿐이다, 이기적이기 십상인 권력자들을 다루는 것은 그의 또다른 과제였다

 

                                                               머리말에서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도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살을 버리고 도의를  택할것이다, ........... 만일 사람들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삶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란을 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느 ㄴ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진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잃지 않았을 뿐이다,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 (공경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의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이다,

 

 

이 사단의 마음 말고맹자는 또 다른 중요한 마음의 작용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얻는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착한 마음의 싹 즉 본성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것이 이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 생각이란 본성에 대한 생각하는 것일 텐데 본성을 생각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맹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되지" 하고 순간 엇나갈 숭 ㅣㅆ는 자신에 대해 제동을 걸고 반성하는 마음이 이 마음에 해당되리라 생각한다,  

 

 

측은지심의 마음 즉 사랑은 자극에 의해 자라는 감정이다, 그르므로 채어나면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면서 형성한 부모와의 유대감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르므로 아이가 자신의 측은지심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난가 점점 많느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수는 없다, 부무 자식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다, 그 사랑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며 그 사랑을 핵으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퍼져 나간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언대이고 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 측은지심을 키우는 첫번 째 장은 그 가족이다 부모이고 형제이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형제 사이의 애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옳고 그름의기준이라든지 원망이나 노여움의 감정이 그것을 이길 수 없다,  

 

 

맹자는 사상가이면서 어쩌면 심리학자이다,

초기 애착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볼비가 그 안에 있고

초기 애착이 잘 형성되면 욕구가 안정되고 나아가 사회성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맹자에게서 볼 수 있다니

결국 초기 양육자 결국 엄마를 비롯한 가족간의 사랑이 모든 인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타고난 것이라 무턱대로 억누르거나 없는 척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고난 인의에지와 함께 타고난 오감의 욕구도 자연스럽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므로 스스로 원리에 의해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타고난 선함을 인간의 노력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그 길로 가지 않으며 마음을 놓아 버리고서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사람이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르는구나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쇨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하며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진실에 대해 항상 깨어있으려는 의지 옳은 것을 실천해야한다는 의지를 갖는일이 맹자가 말하는 '일 삼음"일 것이다, 또한 그긋이 내 몸과 마음을 전일하게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강행해서도 안 된다,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은 있더라도 몸은 그릏게 안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스스로 하나가 되는 지점에 이르도록 서로를 키우는 과정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 마음의 올바름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것이 어떤 위협을 동반하는 일일지라도 나는 흔들림 없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내 감정 내 몸 내 정신이라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배우고 반복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해내는 것도 아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 감정도 내것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남에게 적당하게 피해지주 않고 보이는 것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

이것은 심리학책에서 본 것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인의에지의 싹이다, 내게 와 닿는 타인의 인의에지는 나의 싹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본성을 어느 정도 키웠느냐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본질적응로 너와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는 같다, 누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맹자의 생각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가 같다면 문제는 자신의 인의에지가 부족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누구나 타고 나는 선함의 싹을 어떻게 인의예지로 키워나갈것인가는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고

그가 처한 상황화 교육에도 좌우된다, 내가 가진 본성의 선함은 결국 타고난것인 동시에 키워나가야하는 것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맹자가 대답햇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지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림 없이 따르실 것이다,

 

 

 

덕을 존중하고 정의를 즐기며 등용되는가 여부에는 초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비는 공궁한 상황에 처해도 정의를 잃지 않으며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곤궁해도 정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는 자족할 수 있고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도록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다, 곤궁한 상황에서는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천하 사람들과 함께 선을 실천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의 싹을 얻어 태어나고 스스로 결단과 노력을 통해 그것을 키워나간다고 보았다, 그 선한 싹은 서로를 알아가는 공감의 능력이지만 그저 싹일 뿐이니 계속 키워나갸야 하느 ㄴ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것도 선한 싹을 키워나가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란 타고난 선함이 아니고 키워나가야 하는 선함이라고 할때

맹자는 인간의 의지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더 말하고 있는게 아니었을까

 

이것이 저자가 소개해주는 맹자의 이야기다,

내가 직접 맹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난 맹자는 활달하고 유쾌하며 단호하다. 공자의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세상의 질서가 혼란으로 덮인 시대에 맹자는  그 욕망가특한 인간이 그래도 선한 싹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제후와도 관계하지 못하고 관직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맹자는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본게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군가 스스로 노력해서 선함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식견으로 맹자가  생각하는 정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도덕적인 군주라면 마땅히 실패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나?

그정도 흠이 없는 사람이 있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원만하게  두루뭉실 안일하게 지도자를 생각해왔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대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당연히 타인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으니 완전하지 않은 삶에  완전하지 않은 질서에 순응한다는 건 다른 말이다

완전하지 않아서 완전함을 추구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겸손해야한다는 게 우선 아닐까

 

나는 완전하지 못하니 완전하과 위대한 누군가 절대자를 기다린다?

그건 착각이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없을거다,

누구든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인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한계를 스스로 알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겸손하고 늘 자기를 돌아보려는 사람 그리고 돌아보는 사람을 원한다,

실수하면 질책도 받아들일 줄 알고 고치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

보수든 진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 아닐까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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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에니어그램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5번 유형이었다,

그냥 간단한 검사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에니어그램을 공부하신 분께 두 차례 강의를 듣고 다시 검사하니 내 유형이 아리송했었다,

에니어그램도  mbti.처럼 성격유형을 알아보는 검사로 쉽게 접근했었는데

공부하신 분의 열강을 들으면서 솔깃하다가도

결국은 꼭 사람을 그렇게 유형별로 나눌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란 언제나 어떤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면도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대충 넘어갔는데

 

이 책을 빌려서 한 번 제대로 알아보자 하다가

결국 중간도 못가고 일단 덮었다,

여러가지 문항을 보면서 점검을 해보면 내가 아닌 성격은 확실하게 아닌데 맞다 싶은 건 이렇게 보니 이것도 맞고 저렇게 보니 저것도 맞고 알 수가 없다,

읽다보니 1번 유형도 보이고 3번 유형도 보이고 4번 유형도 보이다가 이젠 5번은 전혀 아닌것도 같고...

어쩌면 내가 갖고 싶은 성격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원하는 성격으로 살려고 가면을 쓰다가 그렇게 굳어버린 면도 있지 않나 생각도 하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뿌옇게 된다,

공부가 짧아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삐딱한 마음에 꼭 이렇게 사람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거다

그떄 강희하신 분도 성격이라는 것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딸다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꼭 이렇게 검사를 해야하나?

요새는 진로지도에도 에니어브램이나 MBTI 가 이용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길을 찾는데 작은 도움은 되게지만 딱 그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이런 검사도 어떤 용한 점쟁이한테 사주를 풀이하고 점괘를 얻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생기는 장벽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내 삶에 딱 정확한 정답을 달라는  억지를 부리느라

모든게 못마땅한걸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역시 리어왕의 이말이 어떤 검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이다,

이런 멋진 말을 정말이지 구리고 구린 누군가가 자기 소설 표제로 써버렸다는게 몹시 괘씸하지만,,,

나로서는 에니어그래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소설속의 인물을 만나는게 더 편하게 느껴지니

역시 공부 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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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을때마다 유형이 바뀌어서 나중엔 2~3개 빼고 다 해당되는것 같아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리더라구요. 차라리 애니어그램보단 별자리가 더 정확한것 같아요 ㅎ

존재혁명 2020-06-1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심리로 접근해서 그래요. 영성심리로 접근해야 이해가 되어집니다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현 시국이 어수선하다,

  텔레비젼에서는 무얼 상상하든 그 이하가 터져나오고

  이젠 어떤 일이 벌어지건 놀랍지도 않고 점점 자극에 무뎌간다

 "아직은 여자가 대통령을 할 때가 아니지 . 여자는 아직 한참 멀었어"

 '여자라서 그렇지 뭐"

 이건 주요 논점이 아니다,

제 딴엔 농담이라고 했을 거다,

 그냥 웃고 넘기자고 한 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말에 웃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웃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까?

 

 치사하게 나가자면 할말이 없지 않다, 아니 쌓여있다,

 김모시기가 우모시기가 악독하고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남자가 그렇지 뭐... 남자라서 그래

남자가 정치를 하면서 잘 된게 뭐가 있어?

라고 하지는 않는다,

함께 촛불을 들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화를 내다가도

무심하게 나오는 한마디에  분노의 표적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좌절한다,

 

 

 

#  "어떤 흑인은 우리 사회에서 '흑인은 이러저러해야한다'는 문화적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면 온갖 종류의 문제가 불거진다, 그 남자나 그 여자의 진짜 흑인다움 여부가 심판대에 오른다, 우리는 흑인스러워야 하지만 너무 흑인스러우면 안되고 너무 말 많고 시끄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부르주아를 따라해서도 안된다, 흑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온갖 종류의 선입견이 있고 이 선입견들 또한 자꾸 변한다,"

 

위 단락에서 '흑인'을 '여자'로 바꾸어도 하등 이상할 것없는 문장들이다,

여자다워야 한다는 것

여자에 대해 기대하는 것

여자라는 대상

딸 아내 며느리 동료 친구 후배 선배  뭐가 되었던 여자라서 기대되는 것은 남자보다 쪼금 더 많다, 남자니까 기대되고 당연시 되는 것 보다 여자니까 이러이러해야한다는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입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든다,

자고로 여자라는  건..... 블라블라,,

제각각 다른 기대 제각각 다른 기준앞에서 여자들은 몹시 당혹스럽다,

남자라면 응당,,, 이것도 없지는 않지만 당혹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라서 응당 이러이러해야하는 것들은 눌러지고 만져지고 맞춰져야 하는 것들뿐이다,

정상의 기준은 너무 좁고

이상한 여자  파렴치한 여자  부도덕한 여자 나대는 여자 무시해도 그만인 여자

부담스러운 여자  껄끄러운 여자는 너무 많다,

그것도 제각각의 기준에 따라

 

# 사실 책속의 모든 에피들이 다 좋은 것 아니었다,

어쩌면 저자가 너무 흥분해서 중언부언하고 있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고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어쩌면 조리있게 이론적으로 매끈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어서 남같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부족하고 많이 흔들리고 때때로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기본적으로 남녀는 평등해야하고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즘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 위에서 여자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다,

길거리에서, 익숙한 학교나 회사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여자들에게는 모두 위험한 공간이다

동시에 그 모든 공간에서 위험을 느끼고 불안해 하는 여자들은 이상한 존재다

이렇게 안전하고 익숙하고 잘 아는 곳이 잘 아는 사람들을 위험하다고 경계하는 것이 또 남자들을 타인들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지적받는다,

여자들이 느끼는 본능적인 불안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구나 싶으니 씁쓸하다,

 

 

# 페미니즘 이외 인종문제도 잘 읽었다,

  여성뿐 아니라 누구든 소외받는 이가 있는 것은 부당하다,

  나만 피해자라는 생각이상으로 내 주변의 누군가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다시 돌리게 된다,

  또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도 어딘가에서는 차별받는 존재지만 또 어딘가에서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묶여서 누군가를 배척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영웅을 찾아서> 와  <미국인 테러리스트와 흑인청년 두 프로필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깊은 공감을 주었다,

 

#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편들이 그렇다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삶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떤 반박도 없을 만큼 완벽해야한다

  여자다운 옷차림이나 말투 를 지양한다

  모든 일은 분담해야하고 여자라고 더 희생하고 더 많이 일하는 것을 거절해야한다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다,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나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짐을 떠맞기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고

  지금 상황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적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샬라라 한 차림을 원하지만 이젠 어울리지 않은 체형과 나이가 되었다, 슬프게도

   에휴 까짓거 내가 하고 말지 하고 내가 일을 다 해치울 때가 있고  그게 편할 때가 있다,

  매우 자주 이기적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고 모른 척 여자인 걸 내세울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까

 이중적인 가식일 뿐일까

  록산 페이는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남자 여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함께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것 그 명제를 기억하고 늘 행동하기전 생각한다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 이 책의 좋은 점은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페미니즘 책들을 보는 이유는 알고 싶어서이다,

  이론적으로 알고 싶고 더 잘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움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늘 누군가에게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면 너무 주눅드는 일이다,

  모르니까 내가 아는 게 없어서 낮추고 배우는 것이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지만

  가끔 과부하가 걸리면 (내 능력치에 비해 많은 것이 들어오면) 그대로 포기하고 싶어진다,

  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어떡할거야?

  그냥 생긴대로 살래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해?

 그렇게 고집피우고 드러눕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록산 게이는 가르치지 않았따,

 그냥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털어놓는다,

  사실 모든 글들이 다 좋지는 않다,

 나도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경험을 했고 이런 짓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 라고 자신있게 드러내는 글들이 좋았다,

 어쩌면 어려워서 두려워서 나는 저기 속할 수도 없을거야 하고 지레 겁먹는 사람들에게

 너도 나도 다르지 않다고

우리도 함께 일 수 있다고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다,

 페미니즘이 어렵지 않다,

 그냥 삶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다,

모두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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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 백인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습니다. 록산 게이가 이 책에서 지적한대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성 차별의 원인을 이분법적인 남녀 차이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인종, 계급 등의 다른 변수를 보지 못합니다. 여성 차별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관점의 페미니즘을 꾸준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른희망 2017-01-06 11:50   좋아요 1 | URL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심리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 대한민국 대표 마음주치의 열 명의 따뜻한 상담실
경향신문 기획, 권혜경 외 강연 / 해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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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심리학 책을 읽을 때면 늘 누군가를 생각하며 읽었다,

누군가 타인을 분석하고 헤집고 지적질 해대며 읽었다면

이 책은 오롯이 그 대상을 나를 두고 읽었다,

나도 참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아직도 내 속의 어린아이는 징징대고 있고 또 한편에서 나는 징징대는 꼴을 못보고 있고

내 감정을 나도 자꾸 속이면서 남에게는 지적질하고 있고

누군가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어쩌면 이제 조금 자라서 남이 아닌 나를 들여다 보는 걸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10명의 정신과의사 심리학자가 각각 마음을 만져주는 글을 썼다,

다들 조금씩 저서를 읽었던 분들도 있고 이름을 들었던 분도 있고 처음인 분들도 있고,...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많이 읽어서 일까

내용은 뻔하다,

사실 안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가가 중요한게 아니겠는가?

 

상담을 한다거나

아파서 병원을 가야한다거나

하다못해 학원을 선택할 때도

그 사람의 명성이나  능력보다 중요한것이 나와의 합이다,

얼마나 나와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천하에 없을 명의거나  일타 강사라고 하더라도

나하고 수준이 안맞거나 서로 합이 맞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그저 상가 귀퉁이 간판없는 보습학원이라도 내 아이와 맞고 격려해주며 키워주는 선생님이 더 낫다는 걸 이젠 안다,

 

책을 통해 열명의 전문가를 만난 뒤 내게 필요한 선생님이 누군가 알게 되었다는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작은 성과다,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이지만

 

정헤신 박사는 글이 따뜻하다,

이전에 다른 저서를 읽었는데 쉽게 읽히고 읽는 동안 위로받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읽고 금방 잊어버린다는 게 그의 한계인지 나의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주로 이야기하는 공감이라는게 글에서 팍팍 느껴진다,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읽었던 권헤경의 <감정조절>을 참 좋게 읽었다,

빌려 읽은 책인데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너무 오래전에...)

이 책에서도 앞의 저서와 내용이 많이 겹쳤다,

주제가 같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싶었고 그래서 다시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감정이라는게 내것이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거 같다,

화가 나고 기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일들이 그저 순간 화라락 지나가지만 하거나 그저 꾹꾹 눌러 담아지기만 했던 것인데 그걸 꺼내서 가만히 눈을 맞춰보라는 거다,

나에 대해 내 감정에 대해...

책을 읽으면 알고 있지만 엉켜있던 것들이 하나하나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

 

누구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저자라면 나랑은 안맞겠구나 싶은 분들도 있고

아는 건 많은데 참 안 와닿는다는 분들도 있고

뭐 개인적인 의견이다,

올해는 <나>만 많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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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전에 다른 이웃님의 서재에 심리학 관련 책 리뷰를 읽었어요. 그 글을 보면서 심리학 책들 대부분은 내용이 흔하고 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심리학 책을 많이 읽지 않아요. 어쩌다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 삶에 적용되기 어려운 내용을 만날 때가 있어요. 책으로 고민을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