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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ㅣ 소설Q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평점 :
지난 여름 아주 뜨거웠던 94년의 여름만은 못하지만 지독히도 뜨거웠던 그 여름 시부의 병수발을 들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학으로 홀홀단신 상경해서 일가를 이루고 아내가 죽은 후 혼자 아들을 박사까지 만든 시부
‘로맨스 그레이’의 현신이라고까지 불리던 정많고 젊잖은 시부였다.
나는 남편과 교대로 시부를 간병한다.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알던 시부라면 힘들지 않다. 나를 딸같은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딸처럼 대하지 않았는가 나도 딸인 듯 그를 보살피면 된다.
그러나 증상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두 사람의 힘으로 감당이 되지않고 일상에 자꾸 균열이 생긴다. 휘청거리고 남편과의 관계마저 건조하게 꺼끌거리는 낌새를 보이자 간병인을 쓰기로 한다.
하루 8만원 큰 돈이지만 최저시급을 놓고 계산해보면 당사자에게는 큰돈이 아니다.
그러나 그 8만원으로 나는 시간을 샀다. 그 시간조차 온전히 내가 가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집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시부의 섬망증상이 나타나면서 일상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죄를 짓지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
평소에 느낀 어떤 찜찜함이 훅하니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부는 평소 쓰지 않던 욕설을 하고 억지를 부지고 간병인을 마구 대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고 민망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병자니까 지금 제정신이 아닌 섬망상태니까 그렇다. 그러게 이해하려고 하지만 찝찝하고 억울하고 이건 아닌데 싶다. 그러나 콕 찦어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시부의 기억속에 있던 자두를 먹으며 고모를 기억하고 고모가 병문안을 온다.
애매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병자에 대한 연민과 간병하는 사람들에 대한 치하 입에 발린 무책임한 말들이 오가는데 순간 시부가 깊이 감추어둔, 제정신에는 절대 꺼내지 않을 속마음을 드러낸다.
‘저 애가 우리집에 시집와서 지금껀 뭐 한 일이 있나? 박사님과 결혼하면서 열쇠 세 개를 해왔나? 애를 낳았나? 저 애 때문에 우리 집 귀한 손이 끊겼’
섬망의 순간에도 내가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은 정확히 짚어낸다. 가장 약한 부분 가장 나를 두려워하는 그 부분을 사정없이 쪼아댄다. 그리고 간병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을 한다.
“도둑년”
모두가 불편한 상황 난감한 상황이다.
그냥 니가 어떻게 좀 해봐라. 니가 참아봐라.. 말을 다르지만 뉘앙스는 다르지 않다.
해결하라는 것 책임지라는 것 더러운 일 치사하고 불편한 일들은 니가 하라는 무언의 몸짓과 손짓들
남편은 방관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따로 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부끄러운 짓거리를 해대면서 아무렇지 않고 그 옆에서 그 짓을 고스란히 보고 당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 따로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역할구분되어진 것을 가족공동체라고 여긴다.
호통치는 사람이 있고 말리는 사람이 있고 방관하는 사람이 있고 당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타인보다 가족안에서 제각각 맡은 역할들이 있고 틀림이 없이 항상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고 익숙한 촌극이다.
역할이 바뀌면 그럴 수 없이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호통치는 사람이 당하는 건 당연히 불편하지만 당하던 사람이 방관하거나 말리던 사람이 당하거나 어쨌거나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냥 당하는게 낫고 모르쇠하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하고 모두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래야 상황이 빨리 종료될테니까
결국 그 사단이 나고 남편은 간병인을 그만두게 한다.
표면적인 건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다거나 그런 일이 있으니 못할 거라는 배려있는 이유겠지만 사실 노여움이다. 그 상황을 드러나게 한 노여움 감추고 싶던 장면이 공개된 분노와 치욕이다. 그건 고스란히 아내에게 향하는 것이지만 애꿏은 간병인을 자른다.
아버지는 간병인을 아내로 착각했다. 그래고 순간 본심을 드러내고 적의를 표현했다.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쌍욕까지 시전했다.
아버지의 화를 돋운 건 영옥씨다. 그 앞에서 얼쩡거리며 아내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은 아내다.
아내에게 화를 낼 수 없음을 누구보다 남편이 잘 알고 있다. 그건 공정하지 않고 어처구니 없음에 영옥씨를 자른다.
새로 남자 간병인이 왔다. 그는 그가 고치지 않은 사투리가 권력임을 안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를 이해해야한다는 오만에 사투리를 마구 써댄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는 선생님이다.
온갖 일들을 도맡았던 영옥씨와는 달리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힘이 있다.
그리고 시부는 당연하게 그 힘을 알아보고 그 힘에 복종한다.
그리고 그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순간 시부는 요의를 느낀다. 참을 수 없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시부는 며느리에게 의지해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노출한다.
이제 나는 남자도 아니다. 부끄러움이 머리까지 돌아내려오는 순간 시부는 분노한다.
감히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다니
부끄러움은 가부장의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부분을 들킨 가부장은 가장 약한 며느리에게 분노한다. 죽어라 죽어
같은 사건을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용서하라 용서하는 것은 별일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익숙한 복종이다. 그러나 잊지 않겠다.
시부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들에게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서 남편은 엉뚱한 곳에서 용서를 구하며 울부짖는다.
나는 어이가 없다.
우리라고 굳게 맺어진 동맹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들은 언제는 내가 ‘우리’에 속했다가 어떨 때는 선 밖으로 밀쳐낸다.
공고한 그들의 동맹에 내가 낄 수 없다. 우리는 규칙을 정하고 뭔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 윤리와 그러해야하는 당위를 정한다. 그리고 그들의 규칙은 언제나 내게 강요되면서 내가 그 규칙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우리’가 된다. 어떤 희생 어떤 돌봄 어떤 뒤치다꺼리를 할 내가 우리속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무를 그들 마음에 들지 않은 형태로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나는 ‘우리’가 아니다.
권력은 호의를 베푼다.
상대의 취향이나 기호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의도가 호의라면 그냥 호의인 것이다.
상대의 배려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익숙하고 편리한 상황은 당연하다. 불편하게 하는 것 상대가 당연히 배려하지 않는 순간 그건 나에 대한 도전이다.
홀어머니의 외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어머니에게 인사시켜드리며 말한다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많으셨어요? 이제 어머니는 호강할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어머닌 힘든 일 다 내려놓으시고 호강만 하셔요’
어머니의 그 호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동안 어머니의 고생을 알았던 독신 아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유부남 아들은 호강시킬 수 있다는 건 무슨 의미가 될까
어머니긔 고생은 아들을 향했는데 어머니는 그 댓가를 며느리에게 요구한다.
너도 가족이 되었으니 당연한거 아니냐고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그리고 며느리는 가족인데 당연히... 라는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가족이다. 화목하고 비둘기집같은 우리가족
텍스트를 너무 사랑해서 번역이 갈팡지팡하는 역자
너무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꼬이는 해석
비단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너무 잘 하고 싶어서 내 능력 이상으로 애를 쓰거나 노력하면 모든 게 꼬인다.
과장된 것은 어딘가 허술할 수 밖에 없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혼자만 애써서 될일도 아니다.
사람의 관계란 적당이 모르고 넘어갈 때도 있고 모른 척 할 때도 있고 몰라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상대를 다 알겠다 다 해주겠다는 건 오만이다.
상대도 나에게 다 해줄 수 없다.
신도 그렇게는 못한다.
가부장제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 집 안방에만 있지 않고 현관에도 있고 이웃과 우리집 사이 엘리베이트를 기다리는 공간에도 있다. 버스 안에도 있고 사무실로 향하는 번화가에도 있다.
그건 예의이기도 하고 질서이기도 하고 상식일 때도 있다.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가족끼리 돕고 살아야 하고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내가 조금 참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행위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여린 부분에 모든 것이 집중해 있다.
어쩌면 시부가 암이 아니었다면 섬망이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가장 어두운 인간의 바닥이 그렇게 가장 약하고 두려운 순간 불쑥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섬광은 주변의 방관자들도 더 선명하게 비춰준다.
모두 함께 조용히 모른 척 그렇게 넘어간다. 그게 편리하고 안전하고 익숙하니까
그렇게 지금 당신 옆에도 가부장제가 있다.
아마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그 형태로 말이다.
나는 가족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
갖다 버리고 싶고 그냥 씻어서 빡빡 문지르고 싶고
그러면서 나도 그냥 ‘행복한 우리 집’처럼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고 싶기도 하고
복잡한 관계다 세상에서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