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리라이팅 클래식 5
이혜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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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난 맹자가 아닌

누군가가 소개시켜준 맹자를 만나다.

유교라고 하면 늘 공자가 떠오르지만 맹자의  유교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

 

 

그는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파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을 염려하는 능력이다, 함께 느끼는 능력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르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맹자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과 우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한가지 일이다,

 

 

유학이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준 윤리이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학은 또한 정치이론이다, 개인의 선한 삶이 모두의 선한 삶으로 이끈다는 윤리 정치 이론이다,

서양에서 수입된 근대의 정치는 윤리와 분리된 것이다, 물론 정치인의 직업윤리는 묻지만 정치인의 자질로 전인격적 고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보수주의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전통은 유학이고 맹자일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먼저 자각한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장 포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였다,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사랑을 가장 폭넓게  실행하기 위한 길이엇을 뿐이다, 이기적이기 십상인 권력자들을 다루는 것은 그의 또다른 과제였다

 

                                                               머리말에서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도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살을 버리고 도의를  택할것이다, ........... 만일 사람들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삶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란을 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느 ㄴ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진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잃지 않았을 뿐이다,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 (공경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의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이다,

 

 

이 사단의 마음 말고맹자는 또 다른 중요한 마음의 작용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얻는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착한 마음의 싹 즉 본성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것이 이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 생각이란 본성에 대한 생각하는 것일 텐데 본성을 생각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맹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되지" 하고 순간 엇나갈 숭 ㅣㅆ는 자신에 대해 제동을 걸고 반성하는 마음이 이 마음에 해당되리라 생각한다,  

 

 

측은지심의 마음 즉 사랑은 자극에 의해 자라는 감정이다, 그르므로 채어나면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면서 형성한 부모와의 유대감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르므로 아이가 자신의 측은지심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난가 점점 많느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수는 없다, 부무 자식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다, 그 사랑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며 그 사랑을 핵으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퍼져 나간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언대이고 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 측은지심을 키우는 첫번 째 장은 그 가족이다 부모이고 형제이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형제 사이의 애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옳고 그름의기준이라든지 원망이나 노여움의 감정이 그것을 이길 수 없다,  

 

 

맹자는 사상가이면서 어쩌면 심리학자이다,

초기 애착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볼비가 그 안에 있고

초기 애착이 잘 형성되면 욕구가 안정되고 나아가 사회성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맹자에게서 볼 수 있다니

결국 초기 양육자 결국 엄마를 비롯한 가족간의 사랑이 모든 인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타고난 것이라 무턱대로 억누르거나 없는 척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고난 인의에지와 함께 타고난 오감의 욕구도 자연스럽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므로 스스로 원리에 의해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타고난 선함을 인간의 노력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그 길로 가지 않으며 마음을 놓아 버리고서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사람이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르는구나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쇨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하며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진실에 대해 항상 깨어있으려는 의지 옳은 것을 실천해야한다는 의지를 갖는일이 맹자가 말하는 '일 삼음"일 것이다, 또한 그긋이 내 몸과 마음을 전일하게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강행해서도 안 된다,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은 있더라도 몸은 그릏게 안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스스로 하나가 되는 지점에 이르도록 서로를 키우는 과정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 마음의 올바름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것이 어떤 위협을 동반하는 일일지라도 나는 흔들림 없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내 감정 내 몸 내 정신이라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배우고 반복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해내는 것도 아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 감정도 내것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남에게 적당하게 피해지주 않고 보이는 것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

이것은 심리학책에서 본 것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인의에지의 싹이다, 내게 와 닿는 타인의 인의에지는 나의 싹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본성을 어느 정도 키웠느냐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본질적응로 너와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는 같다, 누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맹자의 생각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가 같다면 문제는 자신의 인의에지가 부족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누구나 타고 나는 선함의 싹을 어떻게 인의예지로 키워나갈것인가는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고

그가 처한 상황화 교육에도 좌우된다, 내가 가진 본성의 선함은 결국 타고난것인 동시에 키워나가야하는 것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맹자가 대답햇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지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림 없이 따르실 것이다,

 

 

 

덕을 존중하고 정의를 즐기며 등용되는가 여부에는 초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비는 공궁한 상황에 처해도 정의를 잃지 않으며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곤궁해도 정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는 자족할 수 있고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도록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다, 곤궁한 상황에서는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천하 사람들과 함께 선을 실천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의 싹을 얻어 태어나고 스스로 결단과 노력을 통해 그것을 키워나간다고 보았다, 그 선한 싹은 서로를 알아가는 공감의 능력이지만 그저 싹일 뿐이니 계속 키워나갸야 하느 ㄴ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것도 선한 싹을 키워나가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란 타고난 선함이 아니고 키워나가야 하는 선함이라고 할때

맹자는 인간의 의지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더 말하고 있는게 아니었을까

 

이것이 저자가 소개해주는 맹자의 이야기다,

내가 직접 맹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난 맹자는 활달하고 유쾌하며 단호하다. 공자의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세상의 질서가 혼란으로 덮인 시대에 맹자는  그 욕망가특한 인간이 그래도 선한 싹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제후와도 관계하지 못하고 관직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맹자는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본게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군가 스스로 노력해서 선함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식견으로 맹자가  생각하는 정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도덕적인 군주라면 마땅히 실패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나?

그정도 흠이 없는 사람이 있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원만하게  두루뭉실 안일하게 지도자를 생각해왔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대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당연히 타인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으니 완전하지 않은 삶에  완전하지 않은 질서에 순응한다는 건 다른 말이다

완전하지 않아서 완전함을 추구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겸손해야한다는 게 우선 아닐까

 

나는 완전하지 못하니 완전하과 위대한 누군가 절대자를 기다린다?

그건 착각이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없을거다,

누구든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인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한계를 스스로 알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겸손하고 늘 자기를 돌아보려는 사람 그리고 돌아보는 사람을 원한다,

실수하면 질책도 받아들일 줄 알고 고치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

보수든 진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 아닐까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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