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하는 목표점은 높으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점은 낮다,

그래서 뭘하든 엄격할 수 밖에 없고 양에 찰 수도 없고 늘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늘 부족한 존재이고 잘 하는 것이 없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순간이다,

그냥 저지른다는 건  삶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얽어매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꾸자꾸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내가 아는 것 할 줄 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가 못하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한 안달이 심하다,

그러 주제에 무기력하고 게으르기까지 하다,

스스로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한,,,,

그게 나다,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이전에 나를 먼저 이해하고 공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왜 목표점이 어이없이 놓은지 그 배후를 파고 들고 싶지 않다,

지금 이순간 내가 어떻다는 걸 알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찬찬이 보면 잘하는 것도 많고 매력도 많고 꽤 괜찮은 편이라고...

더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늘 검열하고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머리를 불필요하게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보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는 일도 괜찮다,

이것저것 준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모든 사람을 이해해 줄 필요도 없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도 없다,

나는 괜찮지 않고 짜증난다고 할 수도 잆고  이만하면 괜찮은거 아니냐고 뻣대도 뭐 상관없다,

의외로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나를 다시 생각하기로 했고

책을 읽었다,

 

 

흔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

불가능이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등등 말도 안되는 구호들이 가능한 이유는 정신력이면 뭐든 가능하다고 믿는 어리석음때문이다

조금 더 노력하라거나

정신력으로  버티라거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는 등등....

그러고 보면 명수옹이 말이 현명하다

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고 애쓰다 보면 골병만 든다는 것....

 

결국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몸이 정신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뭐가 뭐를 지배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표현 말고 더 우선적으로 역동을 일으키는 것이 결국은 몸이고 그 몸이 건강하고 건전해야 정신도 함께 움직이는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이먹고  드는 생각이다,

 

김중혁의 새로운 에세이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은 명사 그것도 추상명사가 아니라 그냥 동사일 뿐이다,

정신이 가끔 개뿔이고 몸을 움직이고 흘러가고 가끔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을만큼 혹독하게 학대하기도 하고 마냥 늘어지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

 

작가는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 느끼는 것 움직이는 것들을 주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이야기보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야기더 마음에 든다, 이야기 속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게 좋다,

 

인간들은 결국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스스로를 상실해가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몸은 소멸의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전광판인 셈이다,

 

                                                             41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47

 

 

철학자 칼 포퍼는 ' 사람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다, 그것은 무 ㄴ제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 들으라고 한 말 같은데 칼 포퍼 아저씨 이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구요 뭄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지면서까지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야만 하는 겁니까?

                                                                                                  56

 

 

예술의 작동원리와 가상현실 상자의 작동원릭 다르지 않다, 예술은 거울이 되어 현실을 되비쳐준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고통스러워 잊으려고 했던 것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늘 거기에 숨어 있던 것들을 보여준다, 진통제나 마약으로 통증을 이겨낼 수 없다, 우리가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한다,

                                                                                         65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다, 눈에 보이는 걸 믿는다,   114

 

 

상대방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결핍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불필요한 질투가 생겨나고 결핍을 비난하면서 재능을 애써 무시하려 할 때 무시무시한 편견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결핍이 뒤에서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를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 우리를 합리화하기위해서 상대방의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아닐까 천재 바보 사이코  등신 장애인 그런 이름들로 뭔가를 슬쩍 가리는 것은 아닐까 ' 솔직히 말해서 '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솔직하게 않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닐까

솔직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알아채는 법도 배워야 한다,

                                                                                           140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하늘 높이 던진 야구공 같은 존재들이다, 끝도 없이 높이 아주 높이 하늘로 올라가다 어느 순간 정점에서 잠시 머물곤 곧장 아래로 추락한다,

 

                                                                                        167

 

우리의 시간은 몇시 몇분 몇초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지만 반복되는 숫자로는 우리의 삶을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이 순환되는 24시간속에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함께 공유하는 두 사람의 시간은 낯선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간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져야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견뎌온 시간을 짐작해야한다, 어려운 일이다,

                                 190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책과 다른 결심을 한다,

그래 건강해져야겠다,

기력이 약하니 무기력하고 게을러지고 괜히 목표만 높게 잡아서 좌절만 해대는 거야,,

일단 건강하게 운동부터 해야지...

음...

이게 책이랑 무슨 상관인지 이 페이퍼랑 무슨 상관인지 몰라도 뜬금없이 건강론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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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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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이 책을 권하주고 싶습니다,

책이 작고 예뻐서 그리고 쉽게 읽혀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조근조근하지만 힘있는 말투에 다양한 생활근접한 예들이  쉽게 다가옵니다,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국끓여먹는거냐고'

그렇게 꼭 전투적으로 남자 여자를 구분해서 피곤하게 살아야하는 거냐고

여자들은 참 별나다고

좋은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선량한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가만히 선물하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란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그냥 함께 사는 사람들이 어떤 기준을 정해 차별받지 않고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기준을 성별로 본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그냥 인권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단순한 인권안에서도 젠더의 문제가 있고 인종의 문제가 있고 계급의 문제가 있습니다,

각각의 문제는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성격도 가집니다,

뭉뚱거려서 인권... (물론 인권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이라고만 해버리면

그 안의 많은 세심하고 다른 문제들이 묻혀버리는 일이니까요

각각의 문제가 갖는 특수성 그리고 성격을 존중하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더 생각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생각하자는 거라고 믿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문제를 겪는다는 건 남성들에게도 편한 일만은 아닙니다,

색이 다를 뿐 여성에게 가해지는 편견만큼 남성들도 스스로 편견에 갇히는 모양새일테니까요

 

무심하게 넘기거나 생각지 않고 습관적으로 했던 말들 행동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기회가 이책을 통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아,,, 이런 면이 있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가 되는 거요...

문제란 생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달라지지 않지요

의식하고 생각하고 자꾸자꾸 곱씹어보는 일 그걸 피곤하게 생각하지말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한 번 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른 페미니즘 도서로 이어지면 더 좋겠습니다,

 

길게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책만 권하고 싶었는데 말이 많아지네요..

꽤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도 많이 하게 합니다,

그게 좋은 책이지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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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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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살아계시는 그 긴 시간동안 그는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었고 당연하게 내 아버지였고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아무런 의심없는 당연함은 그의 부재를 더욱 낯설게 했다,

사실 부녀간이라고 해도 정다운 관계가 아니었고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고 바쁜 대한민국 아버지의 전형이었다, 오래 앓기도 했고 임종 전에는 어떤 징후가 잇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올해를 넘기지 못할지도....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는 의외로 다른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준비를 했지만 막상 닥친 임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어쩌면 언제나 당연하게.. 라고 여긴 탓에 뭐든 나중으로 미룬 탓에 어떤 것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채 맞이한  이별이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한 것도 한참 후였다,

어.. 이게 뭘까 싶게 죄책감이 들었고 억울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내 자식을 돌보고 일상을 살고 웃고 사람도 만나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무섭다는 느낌이 선뜩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애증의 관계

두 사람은 그런 관계일 것이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면 이혼해야지 하는 마음을 살았다고 그런 와중에도 정도 들었고 한 팀으로서 나누어야 할 의리와 함께 해치워야 할 일들이 있었고 동지애와  증오심 가족간의 신뢰  미움 등등이 이리저리 묘하게 섞인 마음이 어쩌면 두 사람을 단단하게 이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툭 하고 그 관계가 끊어지고 이제는 미워하거나 의지해야할 때로는 지긋지긋했던 상대가 사라지고 난 뒤의 엄마에게도 미안한 마음 그동안 고마운 마음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40년넘게 함께 한 부부가  스토리가 많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끊없이 실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엄마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하고 듣는 일이 상대방에게 나를 공개하고 서로 나누고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이 확장하는 관계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나는

한 쪽 귀를 열어놓고 들어오는 이야기를 다른 귀로 다시 내보내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도닥이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서로를 나누지는 못했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와 모녀관계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애도하면서 동시에 애도하는 누군가가 피곤해지고 피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솔닛과는 다른 이유지만 나도 엄마를 피하고 싶었다,

늘 반복되는 이야기도 지겨웠고 그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아서 더 힘들었고

누군가의 고생담들   내 삶으로 책을 쓴다면 수십권이 나온다는 그 시대 여자들의 보편적인 이야기 그리고 은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어쩌면 이런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점점 멍해지고 아프고 피하고 싶지만

그렇게 내 감정을 드러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또 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아무런 감동도 없이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맞장구치면서 듣는 딸을 보는 것도 큰 고역일 수도 있겠다,

그냥 내 속을 뱉아내듯이 이야기를 쏟아놓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맞장구 치고  눈 맞추며 들어준다면 더 어색하고 못할 거 같아 차라리 무심하고 아무런 영혼없는 대꾸가 편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자위한다,

 

엄마를 무언가를 말하면서 자기 신세타령이상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살아온 삶이 딸에게 이어지기를 이해받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건 나도 알았다, 그리고 이해했고 삶을 알아갔지만 그래서?

그 다음이 막막하다,

엄마를 감히 위로하거나 괜찮다고 하기가 참 막연했다,

어깨를 토닥여주고 삶이란 그런 거라고... 다들 진창인 줄 알고 디디게 되는 것이고 빠져들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주어야 하나 싶으면서

그건 또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 하는 마음에 주저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끊어내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주는 인내심은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딴 곳에 멍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는 건 몰랐다,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흘려들을 뿐이다,

내 마음에 닿는 것은 받아들이고 닿지 않으면 굳이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물러나는 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관계 맻음이라는 것이 서툴러서 그랬다,

들을 수는있지만 대꾸하는 건 어렵고

늘 상대에게 꼭 맞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정답 강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다

엄마와도 그렇다. 정확하고  바른 답을 찾아 위로하고 공감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초조감과 강박이 집중을 방해하고 듣기를 거부했던 거 같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 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 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심장마비로 말을 잃어버린 노인. 처형앞에 선 젊은이 국경을 넘는 여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어린아이처럼 오직 책에서만 접해 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혹은 나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옆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p13

 

 

 

세상이 크다는 사실은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댱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 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 내는 광활함이다,.

 

                                                                      p53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  당신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자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술가가 되게 하는 어떤 작업이다, 늘 무언가가 되어 가는 이 끝없는 과정은 당신이 종말을 맞이할 때 미로소 끝나며 심지어 그 후에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는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아라는 작은 우주와 그 자아가 반향을 이르키는 더 작은 큰 세계의 작은 신이 된다, <프랑켄슈타인> 이 동화라면 그건 바보같은 짓을 벌이던 와중에 죽어가는 낯선 이를 구한 혹은 그 낯선 이의 이야기 덕분에 구원을 얻은 월턴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허영심 가득한 고독 그 실수에서 깨우침을 얻은 월턴은 죽음같은 극자방과 영광을 쫒던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온대 지역으로 동료애와 생존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올 준비를 한다, 월턴의 짦은 이야기가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고 그 책 전체에 메리 셀리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P 85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ㄷ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게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P100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P151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씩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말하는 이야기들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 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는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싥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 다음엔 마치 그 곹통이 자신의 것인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를 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P158

 

 

 

나는 앤을 아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꼬처럼 지고 있다고 적었다.

 

                                                               P 187

 

 

그러나 진정 놀라운 점은 실을 잣는 이들이  모두 아직 형태가 없는 덩어리르 ㄹ앞에 놓고 거기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고기잡는 그물이나 잠옷같은 세상을 담을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실 잣는 이는 형태가 없는 것에서 형태를, 조각들로부터 연속된 것을 , 흩어진 사건들에서 서사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야기꾼은 또한 실을 잣는 이 혹은 천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준다. 그긋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같은 발자국은 남기는 일이다.

 

                                                    P 195 

 

 

지진은 오랜 시간 쌓여 온 긴장이 낳은 결과이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커지던 그 긴장이 쌓이는 과정은 볼 수 없다. 긴장은 오직 그것이 터져 나올 때만 볼 수 있다, 아픈 사람과 노인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 광경이 우리 안에 쌓이고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의 삶이 바뀐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 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게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ㅈ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거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P159

 

 

 먼 거리르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이고 다른 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 그 문장도 실처럼 풀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낸 선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P278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 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서 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다, 이 듣는다는 행위 말이다, 이는 당신이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당신의 고유한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반응 할 수 있게 당신의 우주에서 그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읭 ㅣㄹ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를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구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P 286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사실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직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SUNGMOME)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 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던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한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ㅁ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룽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커다란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와도 겹치지 않은 자기만의 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세계..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나와 겹치는 세게만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타인을 공감한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게는 모르는 까닭에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생각도 안하면서 그저 내가 아는 것을 이해함으로서 공감한다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닐까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이 결국 아주 개미허리만큼의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동동거리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잘 안다고 믿어버리고 나랑 닮았다고 믿어버림으로서 그저 내가 아는 세계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는 엄마를 그렇게 판단하고 엄마도 나를 그렇게 판단할 지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일 뿐이다,

책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자꾸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족좁은 인간이고 얼마나 편협하고 얼마나 생각만 많은 사람인가

내가 이해하는 타인은 내가 보는 만큼일 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면서도 겨우 손톱만큼만 나를 확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

세상은 넓은데 나는 그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눈을 돌리지도 귀를 다른 곳으로 기울이지도 않은 채.....

 

 

책은 그냥 툭 끝맺음을 한다

솔닛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그것이 때로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고 나기 주장이 되기도 한다, 뭐가 다르랴만....

감정이입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가 이어주는 관계에 대해 그래서 사람이 섬으로 고독해지지 않고 서로 연결될 수있음을 말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 누군가를 돌보고 마주 보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어두워지지 않은 밤과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은한 노~ 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일거라고 결심하게 된 래프팅의 제안  수술 어머니의 치매 그런 경험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야기는 어떤 주제도 교훈도 주지 않고 그냥 시작하고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마무리 된다,

강이 흘러 바다로 간들 그게 끝일까?

삶이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그게 끝일까

(저자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듯이 윤회라는 것도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우리 엄마의 관계도 둘 중 하나가 이 세상에 없다고 끝이 될까

어떤 이후의 시간도 우리 둘은 여전히 모녀일것이고 서로 생각할 것이고 그리고 그때 너무 늦게 깨달으며 후회하겠지만 그렇게 또 누군가는 살아가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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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권리 - 어떻게 나 같은 놈한테 책을 주냐고
박영숙 지음 / 알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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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의 자유 번영 그리고 발전은 인간의 기본적 가치이다, 이러한 것들은 정보를 갖춘 시민들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건설적인 참여와 민주주의의 발전은 지식과 사상 문화 그리고 정보에 대한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접근뿐 아니라 만족스러운 교육에 달려있다................ 공공 도서관은 이용자가 모든 종류의지식과  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역의 정보센터다 공공 도서관의 서비스는 연령 인종 성별 종교 국적 언어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균등한 접근 원칙에 입각하여 제공된다,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  에서... 

 

 

도서관이 일상에 뭔가를 불러일으키는 힘은 자발성에 있었다, 가르치려고 드는 대신 책과 사람을 만나 스스로 배우는 힘을 믿고 존중하는 것, 평가나 경쟁대신 지적 호기심으로 배움의 동기를 찾도록 북돋우는 것 , 정해진 교과과정이 아니라 일상적인 만남과 소통이 배움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느티나무에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면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역할이다,

자발성은 그야말로 도서관의 방식이었다, 도서관에는 온 세상을 담은 책들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저 누군가 골라서 펼치고 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킬 뿐이다, 강의 계획에 따라 읽어야 하는 교재처럼 순서가 정해져 있지도 않고 필독 목록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학년에 따라 단게를 나누고 시험을 보는 교과서가 아니니 어떤 책을 읽어도 좋고 읽다가 말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읽고 나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과제로 주 어지지도 않는다, 학력 나이 가치관 어ㄸ너 기준으로차별을 두거나 평가하지 않기때문에 100명이면 100가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신 전공도 하는 일도 관심사도 다른 다향한 사람들이 오가며 만나고 어울릴 수 있으니 뜻밖의 배움과 소통의 기회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 기회들이 서로 맞물려 다향한 형태의 배움 고동체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넘쳐난다,

(중략)

 

도서관은 단지 배움의 기회를 확장하는 곳일 분 아니라 배움의 방식과 내용도 학교와는 달랐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아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 자율적인 학습을 이어간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정해진 교실에서 교수학습계획에 따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소해 보일만큼 일상적이고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배움이 이뤄진다, 스스로 배우고 서로에게 배우며 얼마든지 다양한 배움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 집단 지성의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조건이다,

 

       P 276-277

 

도서관을 찾는 일 책을 읽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그것을 자본으로 바꿀 수도 없고 어떤 경쟁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일 수도 있다,

책을 읽어서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 그래서 나의 세계과 확장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정량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내가 얼마나 깊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읽은 양만큼 넓어지고 깊어지는 게 아니다,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인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읽지 않아도 혼자 스스로 깊고 넓어지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자격증을 부여받는 일도 아니고 어떤 과정을 진행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써가며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는 시간에 그저 읽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런 무가치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나는 무언가를 읽기전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적어도 그건 맞다

더 옳은 존재인지 더 가치있는 존재인지는 제각각의 문제이지만 분명히 나는 예전과 다르다,

어쩌면 그건 체념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도 무던히도 읽어내려갔다,

그저 남은 시간을 어쩔 줄 몰라하며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그저 도서관에서 책들을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꾸역꾸역읽었다,

외로워서 읽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모임도 없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저 도서관에 가서 내가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 있는 소설이나 읽다가 집어치워도 그만인 인문학 사회과학을 읽고 그래도 실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었던 요리책을 읽고 만화책을 읽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읽었던 책이 참 많지만 나는 변했는가

물론 변했다, 조금은 똑똑해졌고 어디가서 아는 척 할 수 있는 뻔뻔스러움도 생겼지만 내가 과연 깊어지고 넓어졌는지 아니 넓어는 졌지만 깊어는 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꾸역꾸역 읽으면서 느낀 건 결국 책을 읽는 행위도 하나의 도피일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고 내 앞에 놓인 내 삶은 내가 몸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많이 읽어서 머리만 비대해진 그 순간 나는 내 몸을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중이지만 적어도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내고 누군가를 책임지고 반복되는 밥하고 치우는 일 청소하는 일 아이를 맞이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 책을 읽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 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함께 놀 친구가 없고 외롭고 외로워서 책을 읽었지만 어느순간 누군가 타인과 함께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서 책을 잊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많이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몸으로 놀고 몸으롤 부딪치고 갈등하고 상처받으면서 어떤 책에도 없는 경험을 하고 오히려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받을 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책읽기가 어쩌면 무료해서 심심해서 해야하는 무의미할 수 있는  일인데

요즘은 그것조차 정량화되고 경쟁이 붙고 평가가 되었다,

학교마다 필독서가 있고 읽어야 할 책들은 쌓여가고

꾸역꾸역 숙제처럼 읽고 읽고 나면 무언가를 남겨야하고 그것이 비교과 활동으로 남겨야하고 상장으로 남고 과제로 남는다,

책을 읽으면 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다

개뿔갘은 소리..

책읽기를 독려하는 일이 이제는 직업일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속물엄마라 아이가 책을 좀 더 읽기를 바라게 되고 기왕이면 괜찮다는 책을 읽고 뭔가를 남기고 있는지 닥달하게 되고 책이라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논술을 보냈다가 점점 기왕이면 성적으로 연관되기를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다,

한때는 그냥 취미란에 쓰던 독서가 이젠 필수가 되고 필사적으로 해야하는 무엇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인문학을 읽자 고전을 읽자

아이를 위한 고전 학생을 위한 인문학 성인을 위한 평생교육 등드

하나의 교양으로 세상을 살아하는 또하나의 스펙으로 책읽기가 바뀐 세상이다,

무가치하게 읽어내고 시간을 죽이려고 살아남으려고 읽었던 책들이 이젠 어떤 가치를 가지고 그래서 좋은 책 나쁜 책이 나눠지고 읽어야할 책과 읽지 말아야 책도 나뉘어 졌다,

 

책읽기가 사람을 바꿀 수 있지만 그게 짠~~하고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건 아니다,

꾸준히 오래오래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의미없어 보이고 부질없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위로받고 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읽는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책과 사람을 함께 만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생각만하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내 주장을 할 수 없는 막막할때 그래서 점점 속물로 닮아가고 있을 때 이책을 만난건 참 귀한 인연이다,

책을 그렇게 읽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재미있으면 되고 읽고 싶을 때 읽어도 되고 읽다가 나가 눌아도 되고 읽다가 졸아도 되고 한참을 잊어도 된다고 하지만 꾸준히 기다려주고 생각은 하고 행동은 하자고 저자가 말해준다,

참 반갑고 귀한 책이다,

이전 저서인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보다 더 깊어지고 사회적이다,

도서관이란 곳이 책을 빌리고 읽는 아주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공감하고 함께 무언가를 공모하는 즐겁고 유쾌하고 떠들썩한 공간임을 보여주는 저자가 반갑다,

책읽기가 내신이나 성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무언가를 나도 곰곰히 더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도서관이 조금은 더 웅성거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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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가서 직접 책을 보면서 고르는 습관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책이 좋아질 거예요. 이번 달부터 공공도서관 대출권수가 1인당 10권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많이 빌릴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저처럼 새 책 안 사고 도서관 책만 빌려 읽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요. ㅎㅎㅎ
 
내 편이 되어줄래? - 십 대들의 관계 맺기와 감정조절을 위한 따뜻한 심리학 교실
노미애 지음 / 팜파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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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한 한달은 살얼음이었다,

힘든 초등을 어쨌든 무사히 졸업하고 같은 초등을 졸업한 모두가 함께 진학한 학교가 아닌 모교에서 스무명 정도만 진학하게 된 중학교에 배정을 받으면서 반은 안도하고 반은 불안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반 또 낯선 곳에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낄까 하는 불안이 반,,,,

아이는  4 5 6학년을 나름 힘들게 보냈다,

튀고 싶고 잘 하고 싶은 욕심이 과하기도 했고 오해도 있었고  집단이 움직이는 힘에 결국 어떤 저항도 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도움없이 혼자 문제를 씩씩하게 해결해 냈던 것이 스스로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중학교...

좀 걸리는 친구들과 함께라서 게다가 적은 수의 학급이라 걱정도 많았지만 어쨌든 잘 출발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네번은 친구 사귀기 힘들다고 징징댄다

한학급 열명 겨우 넘은 여학생들인데 나머지는 모두가 친한데 자기는 친한 친구가 없다고 징징대고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다고  울상이고 친구들의 말에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너무 어색하다고 고민했고 예전처럼 상처를 받을까봐 오해를 받을까봐 무섭다고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천진하게 친구들이랑 지낸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 함께 온탕 냉탕을 드나든다,.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지도 말고 그냥 히죽히죽 웃어주라고.. 말을 잘 들어주라고 조금은 찌질해보이는 게 차라리 낫다는 충고아닌 충고를 하지만 그게 잘 들어가지도 않을 거란 건 나도 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음.... 하고 골랐다,

큰 도움은 안될지 몰라,, 이런 책은 너무 많으니까,....

아이가 잘 볼까? 일단 내가 먼저 봐야겠네

 

결론 부터 말하지만 꽤 좋은 책이다,

어렵지 않다,

각각의 고민사연을 친절하게 대답하고 이론을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적인 과거의 상처와 불안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땐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었다는 것 아마 잘 되라고 하는 마음이 그릇되게 표현된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지금 이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대처에 중점을 둔다,

마음을 만져주고 힘들었겠다고 토닥거려주고  어쩌면 지금의 불안과 상처가 과거 내가 알지못하는 무의식속의 어떤 경험에서 온것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한다,

심리적 이론이니까 알아두면 도움이 될거라고 슬쩍 건들려줄 뿐 누군가 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지나간 상처를 후벼파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말해준다,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하지만 조심스러운 제안이 따뜻하다

 

관계맺기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문제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장 예민하고  여린 아이들은 관계가 중요하다

부모나 가족의 사랑이나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칭찬이나 관심보다 또래 친구와의 관계 그 그룹에 끼느냐 마느냐가 인생 최대의 문제이다,

내 아이도 그랬으니까

끼지 않으면 찐따가 되는 거고 맘에 들지 않아도 혼자보다는 나으니까 기를 쓰고 끼어야 하고

내뜻과 다르게 움직여도 배신은 안되니까 함께 충성을 다해야한다,

사실 조폭이나 중등생들의 무리나 다를게 없다,

빠지는 순간은 배신이고 배반이고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고 찐따가 된다,

 

관계가 목숨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또래들은 비합리적인 사고도 쉽게 갖는다,

타인에 대해서 또는 자기에 대해  ~해야한다는 강한 사고가 박히면서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것이 된다, 같거나 다른 것은 없고 맞거나 틀린 것만 남는다,

그래서 화가 나는데 그 화가 나는 속 감정을 볼 수가 없다,

불안해서 화가 나는지 수치스러워서 화가 나는지 무서워서 공포스러워서 화가 나는지 모른다,

그래서 상대를 투사한다,

방어기제는 내가 살기 위해 적절하게 쓰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그릇되게 미성숙하게 쓰이면 모든 관계가 꼬이기 시 작하고 관계에 끌려다니게 된다,

자기 중심적이고 나르시즘이 최고조에 이르는 청소년기에는 어떤 말도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동시어 어이없는 말이 목숨같은 신념이 된다,

그 아이들에게 자아존중감 자기 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

세상에는 그렇게 제각각 소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니 나처럼 타인도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

거절은 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내 제안이 내 말이 내 행동이 거절당한 것 뿐이라는 이성적인 분리가 필요하다

사실 어른도 어렵다,

작은 일에 쉽게 화가 나고 무시당했나 싶어 부들부들 떨리고 혼자 토라지고 혼자 꽁해지는게 하루에도 몇번이다,

내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불안 이런 갈등 이런 못나고  착각하는 모습은 당연하다

모든 게 당연하다

다만 내 감정을 잘 알아 보는게 중요하고 타인의 말을 잘 알아듣는것

그리고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사서 아이방에 살짝 넣어둬야 겠다,

쉽게 읽히고 제법 많은 사연들이 아이의 경우와 겹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 아이가 별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그 또래의 흔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 내가 먼저 안도한다,

사춘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꽤 쓸만한 육아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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