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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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슬픔 그 너머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 덩어리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우리는 판단을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나의 경험, 나의 감정 그리고 나의 입장이다.

공평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말 역시 나의 주관이 듬뿍 든 단어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폿된 값으로 계산을 뽑아내는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 역시 그 안에 고도로 복잡한 알고리즘이 있고 그대로 아웃풋을 뽑아낼 뿐이다.

우리에게 들어온 장면들, 말들, 표정들 역시 우리 속에 있는 나만의 독특한 알고리즘을 통해 그 값을 뽑아낼 뿐이다.

결국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가에 따라 그 모습은 각각 다르게 기억된다.

어쩌면 세상에 진실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주인공 최현수는 비현실적이다.

어떤 경험이 그 아이의 짧은 삶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학교를 가지 않거나 가도 주변에서 서성이며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고 경계하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다.

현실감이 없다는 건 얼토당토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얼토당토 않은 말이 맞다.

그 아이는 으레 어른들이 그 나이에 해야한다고 하는 행동이나 표정이 아니다.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신경쓰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담임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냥 에둘러서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물이다.

그 아이가 생각하는 부모 역시 부모답지 않다. 그러나 부모를 바라보는 현수의 시선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냥 그런 부모가 그렇게 있을 뿐이다.

마음이 아픈 엄마와 여기저기 일정한 직업없이 떠도는 아빠

그리고 센터와 학교를 오가지만 어디에서 성실하게 다니는 것 같지 않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먹은 것을 다 개워내고 누군가 다가오기를 꺼리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경계하지 않고 어이없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 틈을 묘하게 알아차리고 선생님과 수민이 끼어들고 개가 끼어든다.

그리고 하나하나 현수의 상황이 밝혀진다.

어느 여름 떠난 가족여행, 바닷가 호텔 부모님의 짧은 일탈의 시간 (일탈도 아니다. 어느 정도 자란 자녀가 있다면 부부만의 짧은 시간은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그또래 남자 아이, 활발하고 에너지가 많은 여동생

그 조합이 하필이면 가장 운이 없는 일을 겪었고 기억은 오래도록 그 가족안에 머문다.

어쩌면 일어난 일을 그대로 덮어버림으로서 기억은 오래동안 그 형체를 아무도 알지못하면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로 가족을 덮어버렸다.

쉽게 남의 말을 하는 사람들

어리석었던 초등수사

주변의 기이하게 심한 관심과 말들 말들

한 가족이 망가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떤 고난이 닥쳤고 그 고난을 용기있게 마주하고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이 덧대어지고 그리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가고 그 위로 흘러내리면서 가족은 서서히 망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러게 왜 그랬대. 좀 조심하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위로의 말도 공감의 말도 가족들에게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기이하고 얼토당토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접촉과 대화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현수는 자신의 동생을 다시 기억하고 타인의 입을 통해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의외로 세상에는 아직 따뜻하게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의 일을 내 일인양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움을 주려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역시 얼토당토않고 기이한 일처럼 보인다.

왜 남의 일에 이렇게나.....

그렇게 어쩌면 세상은 그만큼의 슬픔과 그만큼의 기쁨 그만큼의 고통과 그만큼의 위로를 모두 경험해야 무시하 퀘스트를 마치고 떠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마주하고 그 상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것으로 가족들은 한 고비를 넘겼다.

이제 세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라고 마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혜진이가 불쑥 올라오고 우울감이 깊어지고 방황이 어지러이 휘몰아칠 것이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겼다면 두 번째 고비는 조금은 넘을 만할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하고 살아볼 만하다.

세상에는 나쁜 놈의 수만큼 좋은 사람의 수가 있다.

세상은 울고 화내고 고통스러운만큼 즐겁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순간도 있다.

다만 그 기회가 내게 잘 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위치에서 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음을 안다.

알지만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것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감정들과 많은 상황들과 많은 관계들이 있음을

그래서 나 역시 그 많은 것들 중 하나라는 생각

가끔 그 생각이 나를 찌르지만 그 생각이 나를 살게 한다.

 

현수는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엄마 아빠가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들도 있다.

마음은 가득하지만 마주하기 두렵고 겁이 많은 어른도 있고 어쩔줄을 몰라하는 어른들도 있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나 역시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리고 그 고통을 애써 아닌 척 하는 어른들이 있다.

현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어떤 어른이 되든 나 혼자 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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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정 허균 - 화왕계 살인 사건
현찬양 지음 / 래빗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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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인물들로 채우는 것 그것이 읽는 즐거움이다. 익숙함 속에서 발견하는 낯설음은  매력적이다. 입맛돌게 하는 음식들의 묘사도 사건 못지않게  흥미롭다. 두리뭉실 넓게 훓고 지나가는 허균의 시선안에  무엇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도돌이표처럼 다시 떠나는 세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기다려진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허균도 여인 재영도 그리고 작은년이도

서로 엇갈린 시선이 부딪치고 모여들면서 사건은 실마리를 찾고 관계는 깊어진다.

상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이 참 부럽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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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아이들 - 소년, 사회, 죄에 대한 아홉 가지 이야기
이근아.김정화.진선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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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관계가 중요하고 남자 아이들은 권력이 중요하다.

힘을 상징하는 것이 지금은 돈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많다.

남자들은 결국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한다.

성폭력 성매애 성 매매 알선 사기 대부업 약물 등 모두가 돈과 관련있다.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

사행성 오락이나 도박 역시 그렇다.

여자 아이들도 돈을 좋아하고 돈을 벌고 싶어한다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커보이게 하는 건 돈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여자들은 자신의 성을 파는 일로 연결된다.

조건만남을 하고 성매매를 하고 위험한 일로 빠진다.

그 일이 나쁘고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내가 안한다고 하면 내가 만날 친구가 없다.

내가 안전하게, 즐겁게 만나는 친구들이 이 무리들인데 이 아이들에게서 튕겨나면 나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것.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여자 아이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다.

집을 나와서 그룹홈을 하고 그 속에서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나를 돌봐준 오빠가 나를 성폭행하더라도 그건 사랑이라고 내가 돌아갈 곳이 그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관계가 예속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걸 알지만 그 관계를 끊어내면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결국 그 속에서 맴돈다.

좀 더 약하고 좀 더 만만한 아이들이 매매로 뛰어들고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아이들은 매매를 알선하고 망을 보고 도망을 간다.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것

그게 돈도 되지 않고 나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그건 관계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안전한 집 그리고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갈망한다.

함께 어울리는 아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엄마도 필요하다.

나를 무조건 받아주는 엄마 그 엄마가 그립다.

엄마는 그 역할을 알지만 무조건 이라는 건 너무 어렵고 힘들다.

나 역시 누군가가 무조건 받아주었던 기억이 없으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실 무조건적인 수용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함께 해야하는 관계에서 (부부나 부모자식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조건이다.

가장 단점이 잘 보이고 고칠 것들 투성인 관계에서 그런 모든 결점에 눈을 감는 것

그럼에도 너를 사랑해 라는 마음

그 마음이 참 어렵다.

 

세상에 무섭고 마주하기 싫고 사람같지 않은 사람

그들만 따로 빼고 살 수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간다.

운이 좋아 오늘도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운이 좋아 안전하게 잠이 든다.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결국 모두가 고민해야할 일이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쉽지만

그 문제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다.

그냥 골라내고 우리끼리

가장 쉬운 방법

그러나 가장 해서는 안되는 방법

 

아이들 이야기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책으로 엮어낸 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런게 나도 세상을 배운다.

내가 사는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함께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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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다 읽은 책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끝을 봐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중간을 건너뛰고 결말을 보고 책장을 덮을 때도 있다. 

세번을 시도했으나 결국 다 못읽은 책은 <밀크맨>  책 제본이 다르지 않음에도 내게는 글 간격이 너무 촙촘하고 줄 간격도 너무 좁다는 인상을 남겼다.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상황들을 적어가며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보다 의식의 흐름이 더 많았다.

아니다 계속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만 나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화자에게 갇혀서 무기력했다.

결국 읽다가 다시 반납하고 읽다가 반납하기를 세번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올해의 책이라고 하지만 나는 스무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그리고 읽다가 이 저자는 자기 자랑만 하는구나

끝없이 수다를 떨거나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으면 책을 읽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즘>은 재미가 있다.

페미니즘 역사를 알기에도 좋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들  조금은 곁가지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중반이상을 읽은 지금 이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이렇게 이런 상황이었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면이 있고 저 사람은 저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 현재 내가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기 2026년을 앞둔 한국에서  중산층에서 사회취약게층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일을 그만두면 무얼하며 살아야 할지가 고민이 되는

내가 이전 서구 페미니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때 열심히 모으고 읽은 관련 서적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현실에 맞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들 나름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내가 지금 여유가 없다.

가끔은 끝까지 우직하게 읽는 것보다 책장을 덮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우직하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시간낭비를 했구나 싶은 책들도 있다.

그 책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게 그 책이 들어올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책의 문제가 아닌 독자의 문제다. 

책은 필요에 따라 읽기도 하지만 여유있을 때 즐기기 좋은 놀이이기도 하다.

한없은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동안 가장 즐겁고 유익한 것을 하고 싶다는 건 당연하다.

읽어서 즐거운 책 그러나 남는 감동이 있거나 무언가 내가 깨어지는 깨달음을 갖는 책 물론 그 깨달음이 삶의 영역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책장을 넘기고 덮는 순간은 내가 조금 자랐다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는 책을 원한다.

고르고 골라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런 남는 것들이 없다면 차라리 드라마를 보는게 더 나았을까 잠을 자는게 더 나았을까 후회가 오기 마련이다.

한때 나도 책장의 마지막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중간에 책을 덮어도 괜찮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책을 전부 읽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칠 때가 있다. 그 구절이 책 전체의 주제가 아니고 그냥 스치는 문장일지라도 그 문장은 비로소 내것이 되었다.

그 때는 나도 양심이 있으니 그 책을 다 읽었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책에서 문장을 수집했다고 생각한다.

단편 소설집도 다 읽지 못할 때가 있다. 열개 중에 일곱개를 읽고 좋았어도 괜찮았다. 이제는 한편이어도 상관이 없다.

작가가 모든 글을 고르게 잘 쓸 수도 없겠지만 

독자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늘 감동적이고 호의직으로 대할 수 없다.

독자 역시 그 글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작가의 책이 독자의  읽는 행위로 비로소 마무리가 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때 독자의 마음, 상황들이 글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다시 읽은 최은영이 이전만큼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작가에게 있지 않다. 다시 읽었을 때의 나는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한계로 자신을 밀어가며 글을 쓴다고 믿으며 좋아했던 황정은이 버겁게 느껴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내가 주변 경계가 느슨하고 여유가 있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상황에서 읽은 책들과 무언가 위안을 바라고 답을 원할 때 읽는 책들은 확실히 다르다.

내가 어떤 독서 취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취향이 널뛰듯이 오가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누구라고 말하기 힘든 것은 나의 상황들이 안정적이고 한결같이 않음에 있다


책은 잘못이 없다. (가끔 잘못한 책들도 없지 않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물론 내가 너무 힘들때는 책을 펴지 않는다.

적어도 책을 편다는 것은 내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가끔 나는 도피하듯이 책을 펼칠때도 있었다. 

지금 해야할 일들이 있음에도 아직 시간이 있어 라는 마음으로 나를  안심시키면서 책을 펴고 책 속으로 도망친다.

어쩌면 책을 많이 읽은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책속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아이는 어른들이 내버려 두었고 칭찬을 했고 책을 읽는 시간은 내가 현실을 잊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 안도감 안정감을 나는 아직 기억하는 모양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결정하고 나면 잘 못되어도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댓가를 내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되는 건 낫다. 나의 어떤 결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주변 사람이 함께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것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결국 내가 가진 것들을 내가 지켜내야 한다는 안달들이 나를 자꾸 어떤 결정들에서 도망가게 만든다.

그 도피처가 나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 

책을 뒤적이고 찾아보고 서점에서 서성이는 일

그건 내가 지금 도피하고 있다는 것이고 지금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을 결정해야하는지 나도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 펼친 책들은 내게 위로가 되었나 

현실을 잊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 선택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지만 어딘가 잘 차곡차곡 모여 있다가 다른 시간 다른 문제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기로 한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책들을 다시 뒤적이며 읽고 기록을 남기고 책을 정리하는 중이다.

오래 가지고 있었던 책들 

절대 정리하지 말아야 겠다는 책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만큼 좋지 않았다.

그건 역시 책의 잘못이 아니다.

정리가 우선인 내 머리에는 모든 책들이 이미 정리 대상이며 결국 그 마음을 책을 읽을 수 밖에

많은 책들을 정리했고 또 그만큼의 책들이 남았다.

다시 관심이 가는 작가들이 생겼고 이제는 사 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책에 대한 나의 마지막 목표는 나의 도서목록 50권을 갖는 것

그리고 세상의 모든 책을 읽지 못하고 끝날거라는 초조감을 느꼈언 어느 시절과 다르게

모든 것을 읽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것이다.


여전히 책으로 도피할 것이고

내 마음에 따라 책들이 널뛰듯이 좋았다 싫었다 하겠지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내 마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변할지라도 그 마음에 따라 좋은 걸 찾아가고 싶다.


여전히 못다 읽은 책들은 늘어갈테고 

또 읽은 책들 밑줄 그은 책들도 늘어날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그게 나인 셈이다.

내가 읽은 것들 내가 생각한 것들이 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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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무와 배추는 달다

야채가 달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어릴 때 야채에서 단맛이 나온다는 걸 아는 아이가 있을까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오는 것 그리고 국물에 야채의 단맛이 슴슴하게 배어있다는 걸 아는 건 세월의 선물이다.

단 그 시간 야채를 계속 먹어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먹지 않은 음식이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깊어진 맛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지금은 배추와 무를 많이 먹어도 된다.

이 시기 김장을 했던 건 가장 맛있을 때 가장 오래 보존하는 요리법이 김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배추국을 끓일 때 그동안은  육수를 먼저 내고 된장을 풀고 생배추를 넣어서 끓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끓이다 보면 배추의 단맛이 국물에 배어나온다고 믿었다.

새로운 방법을 알았는데 배추와 무에 약간의 간을 한 후 중간불로 뭉근히 가열하면 야채에서 채수가 나왔다. 야채가 타는 것이 아니라 수분이 나와 채수가 고였다

거기 물을 더해 된장을 풀고 국을 끓인다. 

이미 익어서 달아진 야채에 간을 하는 것이다.

사실 아직은 두가지 맛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다만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배추를 썰 때도 칼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닌 크게 쪼개서 찢어내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 채소든 뭐든 쇠가 많이 닿는 건 좋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추국을 끓이고  무 나물을 하고 배추 나물을 할 것이다. 

간을 세게 해서 겉절이를 하면 흰 밥에 비벼 먹기도 좋겠지만  가끔은 슴슴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입맛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다.

어릴 때 배추로 만든 음식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배추전, 배추 겉절이 식초를 많이 넣은 배추 생채, 배추국과 배추 나물 

외가집에서 먹었던 간장배이스로  익힌 배추 나물이 생각나는데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엄마도 해 주었는데 외가집에서 먹었던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방 둥근 상에서 남녀가 나뉘어서 (그래봐야 할아버지와 그 나머지 식구들) 밥을 먹을 때 늘 있었던 반찬  물컹해진 배추 식감과  초콜렛 색으로 간이 배인 길게 찢어놓은 배추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한 번 시도를 해봤지만 영 그맛이 아니었다.


외가집 음식에서 생각나는 건  늘 청어를 먹던 외할아버지. 유난히 가시가 많은 생선이어서 아이들은 쉽게 젓가락을 댈 수 없는 그 생선

외할아버지 상에 올라갔다가 남으면 다시 가족 상으로 내려왔던 그 청어 살이 잘 부서지고 가시가 많은  생선 

연근전  연근을 구멍이 숭숭나게 가로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길게 잘라서  반죽을 뭍여 지져 놓는다. 뜨거울때 먹으면 한 입 베어 물때 마다 길게 실이 늘어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했다. 

연근전과 배추전은 외가집 제사상에는 늘 올라갔던 음식이었다. 제사상을 기억못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던 외숙모의 모습은 기억난다.

안방  부엌과 연결된 문 앞에서 전기 프라이팬을 늘어놓고 전을 부치던 모습 그리고 창에서 내리는 햇살을 기억한다.

아마 내가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조금은 심심하고 편안해서 그들의 노동에 대한 감각은 모르고 마냥 평화로운 풍경을 기억한다.


친가에서의 기억은 추운날 부엌과 마당에 펼쳐진 음식하는 풍경이다. 

친가는 시골집이었다. 마루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부엌으로 가야했고 부엌도 불을 때고 큰 가마솥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좁은 부엌때문에 제사나 큰 일이 있을 때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도구를 꺼내와서 음식을 하는 풍경을 기억한다.

솥뚜껑에 기름칠을 하고 전을 지져내고 고기를 볶는 것 

여자 어른들은 모두가 바빠 보여서 낯선 그 곳에서 나는 계속 갈 곳을 모른 채 방황한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해도 낯설기는 방이 더 그렇다. 사촌들도 낯설고 어른들도 어렵다.

코가 빨개지도록 마당을 서성이면 간혼 엄마가 불러서 볶은 고기나 막 지져낸 전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그때도 지금도 이상했던 건 그렇게 종종거리며 바쁜 여자들과 달리 남자 어른들은 방안에서 너무나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그때 기억나는 건 엄마가 시집가서 돼지고기를 처음 먹었는데 (그럴리가 ) 김치랑 막 볶아낸 그 고기가 참 맛있더라 

식재료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대량으로 해서인지 그 게 참 맛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사실 나는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숙모가 솜씨가 좋아 김치나 음식이 맛갈난다고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어디에도 내가 낄 틈이 없고 서성거리게 되는 것 그래서 음식도 상홛도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일까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과 함께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 함꼐한다.

누구와 먹었나, 언제 먹었나 어디서 먹었나 그때 나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그때 풍경은 어떠한가 

맛은 미각만이 아니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맛으로 남는다.

돈가스를 쓸면서 쟁반도 함께 썰어버릴만큼 긴장했던 첫 데이트

엄청나게 혼나고  억지로 쥐어주는 수저를 내팽겨치기엔 미안하고 무서워서 한 술 뜬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어서 내 생각과 달리 한그릇을 다 비워버린 초등학교 시절

무서운 기름속에 퐁당 빠진 도넛 반죽이 떠오르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그 순간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반죽을 빚는 그 기억들

밤에 혼자 끓여먹는 라면

누군가를 위해 애써 차려냈던 수육과 잡채들 


좋아하는 음식은 결국 좋아하는 시간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때 좋았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는 건

슴슴하고 무던한 삶이 가장 어렵고 가장 간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변하는 입맛은 조금씩 알아가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 반성과 감사함이 섞여 있다.


내일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이야기 할까

그건 또 내가 살아야 할 시간들이 알려줄 것이다.

입맛을 잃는다는 건 삶에 대한 의욕을 내려놓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맛있는 것들이 많고 내가 모르는 맛들이 있을거라는 기대 

그것은 아직은 살아볼만하다는 기대 그것과 같은 말


좋아하는 음식이 계속 바뀌고 좋아하는 순간이 계속 바뀌면서 그렇게  내 삶이 채워진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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