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아름다운 청소년 19
정승희 지음 / 별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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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건 마주보아야 이겨낼 수 있다.마주보려면 누군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힘이 필요하다. 어릴 적 두려움은 잊기위해 망각속에 감추지만 결국 마주 보아야한다. 한결이도 미라씨도 이젠 용기를 낸다. 서로가 지지하고 믿으니까.
무언가 두려운 아이들에게 권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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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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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양한 관심과 지식과 사고를 확인하며 한 번 쯤 읽어보고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이다.
살면서 불편했던 것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던 것 조금은 게을러지고 조금 삐딱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것들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불편한 것들 생각한 것들 그리고 행동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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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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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할 수 없는 목격자의 진술. 아무도 믿지 않는 사실.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는 상황 심리상담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광장 공포증 환자.흑백 스릴러 영화들, 와인, 약
그리고 의심과 불안
모든 근사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진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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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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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부모는? 
남의 부모다.
가장 좋은 자식은?
남의 자식이다.
말장난같지만 항상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니까

한국의 어느 미래 사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하지 않는다. 출산율은 줄어들고 미래가 어둡다. 국가는 정책을 결정한다.
이제 아이는 나라에서 책임지고 키우겠다.
아이를 낳은 성인들이 아이의 부모가 되어 키우고 싶다면 키워도 좋다.
아이를 낳았으나 키우고 싶지 않다면 국가가 관리하고 양육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13세가 되어 누군가 부모가 되고 싶어하는 커풀이 있다면 면접을 보고 부모가 될 수 있다. 다만 선택은 아이에게 있다.
국가에서 관리되고 양육된 아이들은 13세부터 부모를 찾고 가정으로 들어가 일반 아이들처럼 자랄 수 있다. 만약 19세가 되도록 부모를 찾지 못한다면 국가양육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그 미래에도 나와 다른 타인은 차별받고 별종으로 몰린다. 
어쩌면 왠만한 가정에서보다 더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케어받았던 아이들이 다만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른 타인이 된다.
그러므로 그 전에 모든 아이들은 부모를 찾아야 한다.
부모를 면접하는 것을 페인트라고 한다. 
부모가 되를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로 결정하는 것은 가디의 조언을 받은 아이들이 결정한다.

이제 18세가 된 제뉴301은 더 늦기 전에 부모를 만나야 하지만 부모를 결정하는 일에 늘 시큰둥하고 시니컬하다. 부모가 되기 위해 잘 보이려는 커플의 그 속속이 너무 잘 보이고 어떤 부모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나는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그리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좋은 부모만으로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보통의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없고 자식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흔히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태어나 보니 저 사람이 내 부모인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숙한 존재로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긴 사람에게 부모는 한때 절대적인 존재다. 나의 생명을 책임지고 정서적 물리적 만족감을 채워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은 거부할 수 없고 순종해야 하는 기간동안 부모는 절대적이다. 따뜻한 사랑과 관계를 배우기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불안과 공포를 줄 수도 있다. 어리고 약한 아이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없어 받아들이게 되는 부모의 존재는 대단하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보면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내 아이가 나의 유전자를 닮아 나와 비슷한 성정과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겠지만 나랑 닮았을 뿐이지 나는 아니다. 어떤 아이가 나올지는 부모도 알 수 없다. 태어나면서 처음 만나고 키우면서 알아갈 뿐이다. 
서로가 처처음 알아간다는 것은 미숙하고 실수를 하고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시 돌아보고 다시 안아죽주고 이해햐려는 과정의 반복들이다.
한없이 미워질 수도 있고 너 없으면 이제 못살 거 같은 끈끈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미움움도 사랑도 켜켜이 쌓이면서 관계는 단단해진다.
다만 그 과정을 무탈하게 겪을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이 엉망일 수도 있다


이제 제뉴처럼 커버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릴적 서운했던 경험을 이야기 할 때가 있다. 그때 엄마가 동생만 원하는 걸 들어줘서 너무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웠다는 이야기
사실 나는 공주 드레스가 갖고 싶었는데 엄마는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마술사 망또를 사줬다는 이야기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 그려진  그 원피스가 정말 진저리치게 싫었다는 이야기 
그때는 어려서 몰라서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과 외로움 두려움을 들을 때면 당혹스럽다.
나는 잘 해주려고 했었는데
나름 너무 여성적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 중성적인 캐릭터를 심어주고 싶었고 
비싸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골라주고 싶었던 것 뿐인데 
아이는 그런 내 선택을 너무 싫어했었다고 한다. 10년도 훨씬 지나서
그 때 아이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믿은 나름의 양육태도도 있었을테고 뭔가 정칮치적으로 옳음을 실천한다는 뿌듯함이나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여겨 아이의 의사를 쉽게 잊었던 것들이 있었겠지만 나로서는 사소한 부분이었는데
아이에게는 그게 외롭고 쓸쓸하고 인정받받지 못하는 기분으로 남아있다.
그게 아닌데
의도와 다다르게 닿는 이런 정서적인 부분도 비일비재한 게 부모와 자식이다.
좋은 것 바른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섭이 되고 강요가 되고 일방적인 지시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상처를 주고 받는다.
제뉴의 이야기  그리고 하나와 해오름의 이야기 가디인 박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모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생각한다. 생각할 수록 그건 쉬운일이 아니라고 자꾸 도망가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뿌듯함 만큼 늘어가는 건 미안한 마음이다.
잘 해줘도 미안하고 무심해도 미안하고  아이가 의젓하면 너무 빨리 눈치를 보게 만드나 싶어 미안하고 아이이답게 이기적이고  무심하면 내가 잘못된 모델이 된 게 아닐까 또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서운하다는 말만 자꾸 꽃혀서 미안하고 돌아보 스스로 한심하고 짜증나서 다시 그 부정적인 감정을 전해버린다.
부모도 참 힘든데

책이 아쉬운 것은 다들 너무 생각이 많고 착하다는 것
누구하나 삐뚤어지거나 순간이라도 악한 마음을 품은 인물이 없고 다들 순하고 생각이 많고 반듯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
부모를 면접하고 선택하는 시스템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왜 이렇게 공공드라마같은 분위기로 풀어버렸을까? 작가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너무 고민이 많았던게 아닐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5세 전에 아이가 주는 즐거움이  나중에 미운 7살을 지나 사춘기가 와서 지랄지랄을 할때의 증오를 다 상쇄해준다는데 그리고 내 경우도 그러한데
그런 이쁜 기간동안 잘 모아놓은 기쁨도 없이 그리고 함께 미운 기간동안 애증을 쏟아붓는 처절함도 없이 이제 어느정도 대화가 되고 적당히 가리고 적당히 맞추주는 능글맞은 17세의 자식이 생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건 정말 하나와 제뉴의 말대로 부모 자식의관계라기보다는 그냥 친구같은 게 아닐까 싶다. 
미워서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골백번 들더라도 잠들었을 때, 아기때 그 무방비의 천진함이 여전히 남은 얼굴을 보면서 모든 걸 싹 지워버리는 그런 기분 
뭐 이 얼굴 하나면 되지 않나 싶은 마음
이전의 모든 악전고투를 다 잊어버리는 그 망각같은 것들
그게 그래도 부족한 내가 20년동안 부모노릇을 하게 만드는 힘이었는데 
힘든 건 쉽게 잊고 좋은 건 오래오래 나 편하게 편집해서 기억하게 되는 마법
그것이 부모를 부모로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묘약이다
그런 것 없이 어느 순간 각성해서 부모와 자식이 되는 일.. 그건 
참  생각햅해볼 문제다.

좋은 소재였고 아이디어였는데
캐릭터들이 이렇게 재미가 없다니. 
그냥 부모교육지침서로 흘러가버린 게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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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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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외출이었다

사실 내키지 않았다 태어난지 8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집에 남겨두고 엄마라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죄책감도 들고 이런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 엄마는 사람이 아닌가? 임신과 출산을 겪는동안 그리고 8주간의 육아동안 내가 나 답게 살아본 적이 있던가? 아니 나 답게는 고사하고 사람처럼 살아본 적은 있던가?

늘 잠은 모자랐고 모유를 짜느라 가슴은 쥐어뜯어질것처럼 고통스럽고 내 아기만 발달과정에서 뒤쳐지는게 아닌가 싶고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건 죄스러운 마음만 갖게 한다 아이에게 눈을 떼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임신기간에 쪘던 살도 빼야 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도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출산 이전의 자기 커리어로 돌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나만 바라보는 어리고 여리고 애틋한 생명체를 떼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가 싶으면서도 이렇게 육아에 발목잡혀 내 인생이 그냥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꼴을 겪고 싶지도 않다.

아이를 열달을 품으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출산의 고통을 겪고 양육을 하면서  무얼하든 죄스럽고 미안하고 짠한 감정만 남는다.아기때문에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지만 오롯이  그 정서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힘들고 애쓰고 참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양육이었다.

 

뉴욕 브로클린에 사는 엄마들도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마놀라블라닉을 신고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또각또각 걸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더라도 엄마가 되는 순간  늘어지고  젖냄새를 풍기는 셔츠를 입고 고무질 바지를  허리 근처에 고정시키고  이것저것 쓸어담은 기저귀 가방을 한 쪽에 매고 아기를 안고 혹은 유모차를 밀며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그건 어디나 똑같다.

5월맘들도 그렇게 8주를 보냈고 애썼고 그리고 딱 한 번 일탈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그냥  엄마가 아니라  아니 엄마이지만 그냥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엄마로 밤에 외출을 하고 술을 한 잔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날 밤  싱글맘 위니의 아기가 유괴되고 엄마들의 비밀이 밝혀지고 삶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나 결국 엄마들은 강하다고 ... (이 말은 정말 싫지만) 하고 싶었던지 무능력한 경찰대신 엄마들이 사건을 파헤친다. 아기를 잃었다는 고통을 그들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아기를 누가 데려갔는지 그유괴가 어떻게 된건지보다 사건을 따라가는 세 엄마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다.콜레트와 넬과 프랜시의 집착과 광기까지 보이는사건에 대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흔하지않은  남성 가정주부 토큰의 스토리까지

남의 일 같지 않은 비보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기를 찾기 위해  고전분투 하고 또 제각각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겨우 9주 지난 아기들은 아직도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도 있고 같은 부모인 아빠가 있지만 아빠에게 아기를 맡긴다는 것은 옳은 일 같지 않다. 그냥 도와주는 것 이상 믿을 수도 없고 책임을 나눌 수도 없다. 오롯이 육아는 엄마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눈아래 다크 서클과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부 처짐이나 곤두서는 신경을 누르고 일터로 돌아가지만 믿을 만한 주부가 없는 여자들은 일터에서는 아이가 눈에 밟히고 집에서는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이 자꾸 걸린다.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미안하고 두렵고 힘들지만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다

엄마들은 그렇게 점점 어깨에 진 짐의 무게를 늘려갈 뿐이다.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고 모두가 행복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5월맘 모임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책은 끝이 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들의 아이는 이제 겨우 1살이 되었을 뿐인데.

그냥 한숨돌리고 조금 육아에 익숙해진 것 뿐 아직도 삶은 길고 지루하고 두렵게 남아있을테니까

 

늘 궁금하다.

내가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중임에도 늘 의문이다

왜 엄마들은 아이들 옆에서 종종거리고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 하면서도 모멸감과 죄책감을 벗어날 수 없고 아빠들은 어느 한 순간 내 기분이 좋을 때 한번 선심쓰듯 베푸는 육아에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찬사를 보내기만 할까?

그러지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심코 저절로 드는 그 감정은 어디서 오는걸까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현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퍼펙트 마더라는말...

어느 경지에  이른다면 완벽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완벽함을 찬양하는 동시에 완벽할 수 없는 대다수의 엄마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단어 이며 정의인 이 말이 왜 father에게는 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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