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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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아아아... 아~아. 아! 쉽게 가려다 망했다. 결국 내가 읽고 내가 쓸 일이다. 가끔 얻어걸리는 단락도 있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난 어휘력을 원했는데 개인의 에피소드가 더 많다. 얕은 수를 쓸려던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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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
조영주 지음 / KONG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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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 전혀 알지 못한 새로운 책을 알게 되고 제주도에 간다면 작은 책방들을 다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정도. 블로그에 있는 글로 읽어도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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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라우라 비스뵈크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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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차별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게 되는 과정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사회가 주입하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이 내 생각이며 내 근거라고 믿는다.

사실 나는 내 생각을 내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

세상에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 숫자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을 선택하고 자기가 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충동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현대적인 생활방식이다.

스스로 원하고 스스로 책임지면서 사회적인 명성까지 얻어야 한다? 이건 개인에게 실로 대단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만연하고 그 성공의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시대다

뭔가 제대로 하지 모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다는 것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제재하는 것도 아닌데 너는 왜 못하니?

실패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시스템이나 사회적인 책임은 빠지고 모든 결과를 개인이 책임져야 할 때 개인은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좋다고 덜컥 덤벼들 수 없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도전도 줄어든다. 안전한 것과 할 수 있는 것 지금 가장 손에 쉽게 쥘 수 있는 것만 볼 수 밖에 없다.

우울증은 규율과 죄가 아닌 책임과 자발성에 기초한 질병이라고 에랭베르는 말했다

규율이 지배했던 사회에서는 복종이 사람을 지치게 했다면 현재 모두가 열정을 가져라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내는 성과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뭔든 할 수 있다. 무한 긍정과 지지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실패했다는 것은 개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잘못했다는 결과만 도출된다.

빽빽하게 다이어리를 채우고 sns로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를 드러내고 광고해야 하고 또 그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시대다. 나를 스스로 광고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몰아붙여 할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과정이 계속된다. 잠자리에 들 때면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남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뿌듯함은 혼자한 헛짓일 뿐이고 또 그런 사람들을 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가 루저이고 한심하다고 자책하며 나는 뭔가 하며 잠을 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몇 성공한 소수자들이 거봐라 좋아하는 것 열정을 가지고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으냐? 너도 조금만 더 해봐라. 잘 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이러게 부질없는 희망을 뿌리고 있다. 비눗방울처럼 아름답게 둥둥 떠다니지만 결국 내 손에 잡히면 터지고 말 것들을

느려서도 안된다. 머뭇거려서도 안된다. 주저하지 마라. 일단 질러라

그리고 책임은 오롯이 너가 져라

누구와 상의할 수 없고 누구에게 내 문제를 보여줄 수도 없다. 모두가 친구이며 동시에 경쟁자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을)좋아하라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그 일이 내일이다.

 

*젠더

폭력은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남성 특유의 길이다. 폭력의 한 종류는 내적 고통의 외적 표현이다. 가령 소속되고 싶은 갈망이 채워지지 못해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 사회의 기대와 규범은 남성들에게 특정한 감정만 허용한다. 분노와 화는 공동체남성 구성원들에게 용인되고 기대되는 정서적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여성성 이미지에 따르면 여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폭력은 복수의 한 형태다. 남성들을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것을 되찾기 위해서도 폭력을 사용한다. 권력을 과시하고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회게 남성에게 거는 기대이며 남성은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연약함과 공감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특성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 인간의 특성을 외면하라고 배운다.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약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남성다움이라고 말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 건 어린 아이 때뿐이다. 자라면서 여자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배우고 학습 당한다.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슬픔과 절망을 억누르다보면 나중에 아예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도 없다. 아픔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은 약한존재가 하는 짓이락 생각하고 손가락질 하다보면 결국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남의 마음도 아파할 수 없게 된다.

 

남성적인 것이 사회의 기본값이라고 배운 여자들도 감정적인 것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다. 여자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면 안되는 것 적어도 사회생활을 할 때 공적인 자리에서는 드러내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 남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 우선되면서 내 안의여성적인 것 아니 사실은 인간적인 것들을 누르게 된다. 참아내고 견디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남의 감정을 무시하고 모른 척 하는 것 그렇게 남자들과 같아지는 것 그것이 이성적인 인간의 태도라고 배우면 결국 타인의 공감이라는 것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퇴화될 수 밖에 없다.

사회는 그걸 원한다.

각자 느낌은 각자의 것이므로 흘러넘치게 해서 타인이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깔끔하게 정리하기를 바라는 것

사회는 점점 각자도생이다.

 

*이주

우리의 공감은 반드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숫자와 관련 있지 않다. 우리의 공감은 오히려 개인에게서 솟구친다. 자기를 그 사건이나 사람에 대입하면서 공감을 한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숫자는 냉정하고 감정이 없다.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공감한다. 내가 알던 아이가 주거문제로 고통을 받거나 내 아이의 친구 혹은 어제까지 내 이웃이거나 내가 잘 알던 사람의 고통은 쉽게 공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알고 있으면 타인이 아니고 타인이 아니면 공감이 훨씬 더 쉽다(반대로 어떤 갈등이 생길 때 의심할 여지 없이 알던 사람 알고 있는 사람을 선한 쪽에 세우기도 한다. 그가 그럴 리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 안다, 이때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 반경 안에서 내가 인지하고 있으면 그만일 때도 있다.)

 

취약함을 가질수록 공감은 쉽다. 함께 해도 방해가 되거나 해롭지 않다고 판단 될 때 우리는 타인을 받아들인다.

나를 위해 싸워줄 몇 사람이 있고 슬픈 얼굴의 아이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유리하다. 정서적 충돌이 일어나는 건 받아들임에 매우 편리하고 이롭다. 혹은 정반대로 영웅적인 행동도 이롭다.

 

이주 자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문제는 이주를 불러온 상황이다.그것이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되는가를 따지는 것 그리고 이주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선의 문제다.

새로 건너온 사람들의 가치는 경제시스템 내부의 생산성으로 평가된다. 국가는 성과가 뛰어난 이주민에게는 문을 활짝 연다. 반대로 인도주의차원의 이주나 가족동반이주 등에는 빗장을 건다.

사회주류계층의 불안이 이주민 타인을 배척한다. ‘가난뱅이 백인의 사고방식이다. 내 몫을 빼앗아 가는 존재로 본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남성들은 시스템의 문제보다 여성이 자기 몫을 빼앗는다고 여기는 것처럼 이주민들이 노동영역을의 결혼기회를 빼앗고 주인인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여기고 차별하고 제재한다. 나보다 당연히 계급이 낮아야 할 존재들이 나를 위협할 때는 공포와 함께 불쾌감과 폭력까지 동반된다. 그들은 없어져야할 존재이고 위험한 존재가 된다. 문명이거나 상류층이 아닌 타인은 야만이며 하류층이며 노예일 뿐이다.

 

*빈부격차

자발적 실업자와 비자발적 실업자

많은 실업자들은 자신은 다른 실업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황 탓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남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는다.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킨다. 조직이 될 수 없다. 개인의 문제가 되고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 되어버린다. 연대와 품위 그리고 공감의 자리에는 경제적 이해타산이 차지한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집단에게 권리를 빼앗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상징적 폭력: 일상에서 일어나며 건강한 인간이성에게는 당연히 보이는 권력과 지배의 현상을 말함. 조용하고 잠재의식적이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이 폭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멸시의 연출방식을 통해 상징적인 차원에서 빈곤이 고착화된다.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여러 가지 장치들 언론 방송 소문이나 잘못된 가치관들 가난하면 게으르다. 뚱뚱한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한다. 실업급여생활자는 사회 기생충이다. 등등

루저와 위너 성과를 내는 자와 성과를 거부하는 자. 두 가지 계급뿐이다. 낙인찍히는 계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연대적 행동을 방해한다. 남과 선을 긋는다면 나는 그 남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차별과 구분은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과 결속을 해친다. 구분과 멸시가 우선시되면 사회 불이익은 정치적 참여가 아닌 도덕적 분노를 낳을 뿐이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중산층의 두려움, 자기 특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정치 언론 경제의 편 가르기식 언어는 유용한 자와 유용하지 않은 자 돈을 버는 사람과 실업급여를 받는 자 사이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강화한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갈까 두려워함과 동시에 그 선을 넘어올 누군가를 경계하고 미워한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자유롭게 시간을 결정하고 시간을 낼 수 있다. 더 효율적이며 내가 자유와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경계가 모호해지면 일의 연속선상에서 삶이 반복될 수 있다. 편리한 기기들의 도움은 우리로 하여금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상사에게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어 자유를 속박당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이면을 가진다.탈경계화는 소통의 자유로움과 무한한 가능과 함께 어디서 언제든 공사를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범죄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도 범인이 어느 사회 계층에 속하느냐에 ᄄᆞ라서 도덕적 평 확장하고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나가와 형량은 달라진다.

정의감을 불러내려면 인격화된 피해자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범죄 희생자라고 개인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피해를 호소하는 개인이 있으면 그것은 명백한 범죄다. 대중은 그런 사건에 더 분노하고 관심을 쏟고 자신의 주관적 안전에 더 신경을 쓴다.

상류사회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개별적으로 확인이 불간으하다. 전국으로 파고들고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히는 범죄지만 개별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뿌린대로 거둔다. 세상은 정의롭고 안전하다. 나만 제대로 행동하면 공정한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끔찍하고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야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정의로운 규칙이 있다.

나쁜 일은 불운의 탓이거나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잘못된 행동탓이다. 피해를 당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회적 특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위가 낮고 소수인 사람들보다 더 공평한 세상 가설을 믿는다. 가진 지위와 힘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공정한 세상 가설을 더 믿는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게 더 안심이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다. 개인의 문제로 불행이 생기므로 불행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굳이 세상을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다만 조심할 뿐이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며 탓이다. 그들의 상황을 우리가 개선할 필요는 없다. 이 세계관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견고하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을 떨어뜨린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그럴만한 사람이고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일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성범죄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여서은 범죄 피해자로 이름붙여지고 그 모든 원인을 피해자에게 묻는다 그리고 피해자의 행실을 따지고 운없는 한 남성인간의 미래를 걱정한다.

젠더 의식에 맞는 건물설계와 도시계획

어두운 곳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곳을 나쁜 곳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언어의 사용방식은 사고를 구성한다.

마틴이 리사를 성폭행했다. 행위를 한 주체가 드러난다.

리사가 마틴에게 성폭행 당했다. 당한 행위가 더 크게 도드라진다.

리사가 성폭행 당했다. 누가 했는가는 사라졌고 리사만 남는다.

리사는 성폭행 피해자이다. 마틴의 행동이 리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리사가 왜 성폭행을 당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왜라는 질문이 가해자 마틴이 아닌 피해자 리사에게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는 질문을 마틴에게로 돌려야 한다

범죄를 가장 확실히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비

소비결정은 사회적 지위의 표식이다.

소비는 사회 불평등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구매행위와 소비 습관과 소비자의 사회적 위치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비와 여가를 통해 경제적 차이가 상징적으로 번역디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과시의 목적으로 소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겨기 비싸서 대중이 구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잘 팔리는 물품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상품을 비사다는 이유로 소비한다.

소비는 소속감을 드러낸다. 신분의 한측면이며 내가 그 신분에 소속되었음을 보여준다. 한정판, 래플 제도 등 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같은 무리가 되고 동질성을 갖게 한다. 제품은 신분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며 그것을 가졌다는 것은 남부럽지 않은 인맥을 가졌다는 것이고 그들과 같은 집단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개인의 결정은 없다. 그 뒤에는 그 결정을 부추기는 상업의 힘과 문화의 압력이 있다.

유기농 등 환경을 생각하는 좋은 소비라는 것 모유 수유라는 아이를 위한 모성같은 것들은 도덕적인 정언명령이며 시민 가치의 상징이 되었다. 동시에 계급의 우월함을 표현하고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모두가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가격도 비싸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은 계급에서만 누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엄마에게 주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소비다.

직접 기른 야채를 먹고 직접 빵을 굽고 페스트푸드를 멀리하는 것

가난한 사람은 그럴 시간도 돈도 없다.

지속가능성 우리의 일상적인 구매 실천이 윤리적 소비 결정의기회로 상품화 된다. 양심적이고 착한 소비라는 것도 하나의 마케팅의 결과다. 계속 새로운 자극을 주어 이미 없는 게 없는 사람드에게 이번에는 친환경 제품 착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은 지구를 구한다는 개인의 목적과 기업매출이라는 두가지를 다 달성시킨다.

관건은 포장과 라벨이다.

유기농 비건 채식음식 공정무역상품 등등 그것은 도덕심을 부추기는 새로운 포장이고 라벨이다.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은 먼저 그럴 능력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남들보다 도덕적인 인성을 갖추자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내가 버린 쓰레기와 내가다. 그건 도시 빈민들에게 간다. 그리고 그들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누릴 여력이 없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무지하다?

안전지대 안에서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관심

우리 사회의 가치 시스템은 외향성의 이상에 젖어있다. 행복하려면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고 자의식이 넘쳐야 하며 매사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삶을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고 최대한 자신을 잘 홍보할 수 있는 능력은 노동시장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런 상항 탓에 내향적인 사람들이 겪는 불안 심리는 심리적 문제로 포장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낯선 사람과 말 섞기가 불안하면 그건 대인공포즈이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작아지는 느낌이 들면 그건 자신감 결여이고 스스로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면 그건 열등감이다.

네트워크만큼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고 타인의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많은 곳도 없다. 사람들은 가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더 밝히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제일 강력한 브랜드는 너 자신이다 따위의 조언을 남발한다. 디지털 인기로 다시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설사 상업적인 이익이 없다고 해도 자기 연출만으로도 상당히 달콤하다.

그러나 디지털 관심이라는 이 새로운 화폐를 얻기 위한 경쟁은 고단하고 힘들다. 정보의 도구 만남의 플랫폼 소통과 인정의 수단으로 탄생한 디지털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실제의자아를 넘어서고 심지어 그것을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침몰하고 낙오되어 아무도 모르는 인간이 될 수도 있으며 멸시와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빅브라더가 없어서 슬프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속박당하고 싶은 위험한 충동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만큼 비참하고 외로운 일은 없다 네트워크 속에서는.

 

*정치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함과 명확한 방향을 바라는 우리의 욕망이 있다. 고정관념이 그러하듯이 적개심도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 이 무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 동시에 나는 남들과 다르고 싶다. 그들과 같이 엮이고 싶지 않다.

사람은 그렇다.

내가 원하는 무리에 끼고 싶은 동시에 나보다 약하고 열등한 무리에는 절대 끼고 싶지 않다. 그렇게 타인이 되어 배재되고 싶지 않다.

차별은 그렇다.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내가 차별당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차별한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떨어지면 세상 모두를 잃는다는 절망감에 차별한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는걸 결사적으로 막기위해 다른 이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따돌린다.

불안에서 내 자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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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언니 -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시리즈 32
원도 지음 / 제철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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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경찰학교에서 만난 언니들 학창시절 선망했던 언니 시험준비를 하던 학원가에서 만난 언니 그리고 피를 나눈 친언니 등등 여러 언니들을 이야기한다.

그 언니들에게 받았던 공감과 위로를 이야기한다.

가자미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내가 가장 바닥을 기어다니는 존재일 뿐이라는 바닥을 치는 자존감으로 살아갈 때 언니들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서울이 얼마나 넓은지 그래서 가 볼 곳이 얼마나 많은지 계획없는 여행이 얼마나 알찰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어도 나중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등 언니들을 통해 배운다. 언니들이 마냥 부럽고 샘나지만 든든하고 힘이 된다. 때로는 부끄러워 버리고 싶던 언니도 내게 힘이 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언니의 삶의 어느 순간 탁하고 모두 받아들여지는 순간의 기적도 체험한다. 그리고 엄마의 언니 내게는 든든하고 어렵고 싫은 엄마지만 언니 앞에서 마냥 어린애가 되는 엄마와 그 엄마를 다독이는 늙고 기운빠진 그러나 여전히 독기가 남아 오히려 마음 든든한 늙은 언니 이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도 동생들에게 좋은 언니가 되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낸다.

저자가 아직 좋은 언니가 되지는 못했다지만 그가 경험한 언니와 다른 결의 좋은 언니가 될 것이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업전선에서 만난 얼굴을 알지 못하는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안타까운 많은 언니들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편안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언니들을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언니 노릇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제약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자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으로 이어지며 저자가 말한 언니들과의 관계는 여성들의 든든한 연대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 연대가 확대되어 괜찮은 오빠 괜찮은 동기들로 확장되기를

언니들과의 언니들의 연대가 작고 사소한 균열로 깨지지 않기를

 

저자의 문장은 투박하지만 진심이 있다. 그래서 늘 책장을 놓을 수 없었다.

읽고 나면 세련된 문장도 아니고 비문도 많이 보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한 사람이다.

다음 책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더 세련되지 않아도 지금의 진심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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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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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산다는 건 적어도 내가 나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

내 감정을 아닌 척 하는 것,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척 하는 것 자꾸 척척 하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헷갈린다. 내가 원래 감정이 없었던 거 같고 내가 원래 다정한 사람이라는 착가에 빠지고 내가 쿨하고 꽤나 멋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믿음의 뒷면은 썩어가고 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는게 나를 점점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 닮고 싶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내 몸을 끼워 맞추거나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아서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못견딜 걸 알아서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최면을 걸고 산다.

 

유원은  화재의 불길 속에서 언니가 젖은 이불에 둘둘말아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던져 살아남은 아이다.

우연히도 그 곳에 있던 아저씨가 아이를 받아서 자기 정강이뼈가 으스러져 다시는 바로 걷지 못할 상황임을 느끼면서 받아낸 아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불 아이가 유원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주목받고 모두에게 위로를 받고 모두에게 격려를 받으며 한마디씩 받은 덕담을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언니 몫까지 잘 살아야지

 새로 태어난 인생인데

 정말 운이 좋은 아이야

 두 사람의 희생으로 얻은 목숨인데 너는 그렇게 살면 안되지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고 모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일은 저주다.

오로라공주가 왜 백년동안 잠만 잤겠는가. 모두의 축복을 욕심내던 부모때문이다. 모두의 축복을 욕심내다보니 단 한명을 배제시켰고 그 한명의 저주가 결국 ... (뭔 말이 하고 싶을까?)

나는 잘 살아야 하고 누구보다 씩씩해야하고 모두의 관심은 당연하고 나의 일상은 그들이 원할 때 언제든 공개되어야 하며 나는 언니 몫까지 살아야 하고 나를 통해 언니를 바라보고 언니를 찾는 타자들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런 존재이므로

 

유원은 아마 18년을 그렇게 살았다.

고마우면서 동시에 지독하게 미운 언니 미운 아저씨가 매년 잊지않고 그 사건을 상기시키고 나를 통과해도 견뎌야 한다. 그들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으므로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밝게 지낸다.

친구가 없지만 그렇다고 왕따도 아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 뿐이다. 사귀는 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유원은 유원이 아니니까

그는 예정이기도 하고 아저씨이기도 하고 모둑 기억하고 상상하는 살아남은 이불아기일뿐이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당연히 유원이 자기를 찾아낸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내가 더 멋지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이런 꼬라지가 나라고 인정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그대로 내보인다. 당연하다. 18세는 모든 걸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가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다 괜찮다고 상처를 받아들이고 나쁜 마음은 이제 잊고 새 살을 살라고 한다.

그런데 잊어야할 나쁜 마음이 내겐 정말 생명줄같은 것이고 그들이 바라는 새로운 삶 좋은 마음이라는게 나를 아프게 찌르는 가시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나는 생명줄을 잡고 가시를 제거해야한다.

나는 그가 감사하지만 이면에 밉다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자판으로 말을 덧붙이는 사람들이 싫다. 그 무책임함이라니 구역질나게 역겹다.

그런마음 괜찮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그 아이의 가족이었다.

너무 미워서 그가 나에게 가했던 폭력들이 너무 아파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반드시 꼭 그를 죽이고 말거라고 매일 생각한다고 했다. 어떻게 죽일까 그런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했다.

그런 생각에 내가 지금 해야할 숙제를 못하기도 하고 시험을 망치기도 하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정신이 몽롱해진다고도한다. 그런 마음을 먹는 내가 너무 이상한 괴물같다고도 하는데 그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아이가 정말 정신이상이었을까?

자기도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상상처럼 킬러를 사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더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그마음도  나는 안다.

 

모두가 그 아이를 걱정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이라도 마음껏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피범벅이 되도록  패륜이라 할만큼 악하고 독하게 극단까지 가다보면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절대 그런 마음을 극단으로 몰아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조언들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무심하게 다정하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마음이 드는 거 당연해요. 나라도 그럴거 같아요  정말 무심하지만 사실 진심이 가득담긴 이 위험한 말이 그에게 힘이 되기도 했을까?

다른 날 아이가 많이 밝아져 있었다.

물론 그 사이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도 받고 잠도 잘 자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좋은 전문가의 손길덕분일 것이다. 아마 거의 대부분은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내가 무심하지만 정말 공감해서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던진 그럴 수도 있지 죽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지.. 했던 그 말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00000001%정도는??

 

유원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지만 그냥 그렇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게 참 좋은 방법이고 유일한 방법인데

게다가 모두가 아는 방법인데 그걸 직접 행하는 건 참 어렵다.

나도 그렇다.

 

이 책은 미워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미워할 수 없는 너무 착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그 미운 상대가 짠해보여서 나자신에 너무 화가 난다고 했던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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