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무와 배추는 달다

야채가 달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어릴 때 야채에서 단맛이 나온다는 걸 아는 아이가 있을까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오는 것 그리고 국물에 야채의 단맛이 슴슴하게 배어있다는 걸 아는 건 세월의 선물이다.

단 그 시간 야채를 계속 먹어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먹지 않은 음식이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깊어진 맛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지금은 배추와 무를 많이 먹어도 된다.

이 시기 김장을 했던 건 가장 맛있을 때 가장 오래 보존하는 요리법이 김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배추국을 끓일 때 그동안은  육수를 먼저 내고 된장을 풀고 생배추를 넣어서 끓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끓이다 보면 배추의 단맛이 국물에 배어나온다고 믿었다.

새로운 방법을 알았는데 배추와 무에 약간의 간을 한 후 중간불로 뭉근히 가열하면 야채에서 채수가 나왔다. 야채가 타는 것이 아니라 수분이 나와 채수가 고였다

거기 물을 더해 된장을 풀고 국을 끓인다. 

이미 익어서 달아진 야채에 간을 하는 것이다.

사실 아직은 두가지 맛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다만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배추를 썰 때도 칼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닌 크게 쪼개서 찢어내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 채소든 뭐든 쇠가 많이 닿는 건 좋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추국을 끓이고  무 나물을 하고 배추 나물을 할 것이다. 

간을 세게 해서 겉절이를 하면 흰 밥에 비벼 먹기도 좋겠지만  가끔은 슴슴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입맛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다.

어릴 때 배추로 만든 음식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배추전, 배추 겉절이 식초를 많이 넣은 배추 생채, 배추국과 배추 나물 

외가집에서 먹었던 간장배이스로  익힌 배추 나물이 생각나는데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엄마도 해 주었는데 외가집에서 먹었던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방 둥근 상에서 남녀가 나뉘어서 (그래봐야 할아버지와 그 나머지 식구들) 밥을 먹을 때 늘 있었던 반찬  물컹해진 배추 식감과  초콜렛 색으로 간이 배인 길게 찢어놓은 배추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한 번 시도를 해봤지만 영 그맛이 아니었다.


외가집 음식에서 생각나는 건  늘 청어를 먹던 외할아버지. 유난히 가시가 많은 생선이어서 아이들은 쉽게 젓가락을 댈 수 없는 그 생선

외할아버지 상에 올라갔다가 남으면 다시 가족 상으로 내려왔던 그 청어 살이 잘 부서지고 가시가 많은  생선 

연근전  연근을 구멍이 숭숭나게 가로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길게 잘라서  반죽을 뭍여 지져 놓는다. 뜨거울때 먹으면 한 입 베어 물때 마다 길게 실이 늘어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했다. 

연근전과 배추전은 외가집 제사상에는 늘 올라갔던 음식이었다. 제사상을 기억못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던 외숙모의 모습은 기억난다.

안방  부엌과 연결된 문 앞에서 전기 프라이팬을 늘어놓고 전을 부치던 모습 그리고 창에서 내리는 햇살을 기억한다.

아마 내가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조금은 심심하고 편안해서 그들의 노동에 대한 감각은 모르고 마냥 평화로운 풍경을 기억한다.


친가에서의 기억은 추운날 부엌과 마당에 펼쳐진 음식하는 풍경이다. 

친가는 시골집이었다. 마루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부엌으로 가야했고 부엌도 불을 때고 큰 가마솥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좁은 부엌때문에 제사나 큰 일이 있을 때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도구를 꺼내와서 음식을 하는 풍경을 기억한다.

솥뚜껑에 기름칠을 하고 전을 지져내고 고기를 볶는 것 

여자 어른들은 모두가 바빠 보여서 낯선 그 곳에서 나는 계속 갈 곳을 모른 채 방황한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해도 낯설기는 방이 더 그렇다. 사촌들도 낯설고 어른들도 어렵다.

코가 빨개지도록 마당을 서성이면 간혼 엄마가 불러서 볶은 고기나 막 지져낸 전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그때도 지금도 이상했던 건 그렇게 종종거리며 바쁜 여자들과 달리 남자 어른들은 방안에서 너무나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 

그때 기억나는 건 엄마가 시집가서 돼지고기를 처음 먹었는데 (그럴리가 ) 김치랑 막 볶아낸 그 고기가 참 맛있더라 

식재료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대량으로 해서인지 그 게 참 맛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사실 나는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숙모가 솜씨가 좋아 김치나 음식이 맛갈난다고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어디에도 내가 낄 틈이 없고 서성거리게 되는 것 그래서 음식도 상홛도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일까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과 함께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 함꼐한다.

누구와 먹었나, 언제 먹었나 어디서 먹었나 그때 나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그때 풍경은 어떠한가 

맛은 미각만이 아니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맛으로 남는다.

돈가스를 쓸면서 쟁반도 함께 썰어버릴만큼 긴장했던 첫 데이트

엄청나게 혼나고  억지로 쥐어주는 수저를 내팽겨치기엔 미안하고 무서워서 한 술 뜬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어서 내 생각과 달리 한그릇을 다 비워버린 초등학교 시절

무서운 기름속에 퐁당 빠진 도넛 반죽이 떠오르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그 순간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반죽을 빚는 그 기억들

밤에 혼자 끓여먹는 라면

누군가를 위해 애써 차려냈던 수육과 잡채들 


좋아하는 음식은 결국 좋아하는 시간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때 좋았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는 건

슴슴하고 무던한 삶이 가장 어렵고 가장 간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변하는 입맛은 조금씩 알아가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 반성과 감사함이 섞여 있다.


내일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이야기 할까

그건 또 내가 살아야 할 시간들이 알려줄 것이다.

입맛을 잃는다는 건 삶에 대한 의욕을 내려놓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맛있는 것들이 많고 내가 모르는 맛들이 있을거라는 기대 

그것은 아직은 살아볼만하다는 기대 그것과 같은 말


좋아하는 음식이 계속 바뀌고 좋아하는 순간이 계속 바뀌면서 그렇게  내 삶이 채워진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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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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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삶은 노력과 분투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미래는 모험이라기보다 수용에 가까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삶이 어떤 식으로든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계획하지도 준비하지도 않은 말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그녀는 이 수업에 대한 자신의 비밀스러운 열망을 알아차렸다. 국문과 학생들의 대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던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겼던 이 강의에 대한 간절함을 깨닫게 된 거였다.

 

그곳의 책들은 아동 열람실의 그것들과는 달랐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상냥하게 악수를 청하는 듯한 책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책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 책을 꺼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의 도서관 첫 인상은 학교에 교실 하나크기의 도서관조차 없는 신설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도서관이었다. 의외로 도서관은 많이 낡고 나이 들어보였다. 전공서적자체가 오래된 자료들이어서일 수 있지만 낡은 종이냄새가 나는 공간이 첫인상이었다

만지면 바스러질것같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넘겨야 하는 책들

조심해서 모셔야 하는 교수님같은 엄격함과 신중함을 요구하는 듯한 )

 

 

부모의 삶은 그녀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여백으로 가득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편하거나 풍족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삶은 에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척하고 투쟁하고 쟁취하는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은 삶이 내주는 과제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했다. 평생 그악스럽고 억센 것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모습은 그런 태도 덕분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모르는 채로 시작하는 법이지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업무에 서툴렀다는 사실도, 무엇인가를 배우는 과정이었으나 석주는 자신이 무엇을 배우는 지 알지 못했다. 매 순간 장민재가 자신의 자질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염려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석주는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 그녀의 자질은 역량은 그저 하나의 가능성에 머물러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시절을 떠올렸을 때 석주의 기억속에 어떤 절실함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막막함과 고단함 속에서 뭔가를 쓰던 그 시간은 석주에게 인내심을 가르쳤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분별력을 주었다. 그녀는 잠깐 작가를 꿈꾸었지만 그것이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정말 그런 삶을 원하는지 고민해보진 못했다.

 

석주는 자신이 글쓰기를 포기한 까닭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좀처럼 따라주지 않은 행운에서, 바쁜 회사생활에서 찾았다. 그것이 실은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한 건 긴 시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미진한 애정을 꿰뚫어 본 듯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을 우회적으로 나무라는 듯한 그의 말은 석주의 가슴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그 말이 훗날 자신의 마음을 돌려세울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판권면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단단히 잠가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것은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는 놀라움만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이 멀리 치워두었던 마음.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한 마음, 그러니까 어떻게 해도 떨쳐지지 않은 이상한 이끌림이었다.

 

수월하지 않았다. 어떤 단어는 과해보였고 어떤 문장은 인색하게 느껴졌다. 단정한 표현은 건방지다는 오해를 살 것 같았고 후한 평가는 나태하든 인상을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보고서를 올리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훝날 미흡한 것투성이었던 그 첫 미팅을 떠올릴 때마다 석주는 자신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세삼스럽게 여겨졌다. 모든 면에서 어리숙했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떤 부족함은 끝까지 남았다. 오래도록 그녀는 그 첫 미팅에서 부족했던 점을 만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경험이 쌓여도 능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랬다. 그것은 늘 처음처럼 어려웠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원호가 석주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녀는 그 활기가 느슨함으로, 방만함으로 번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그 무렵엔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업무를 챙겼기 때문에 석주는 어느때 보다 일에 몰두한 사람처럼 보였다.

 

석주는 오기서가 그 일에서 어떤 성취를 느꼈는지 어떤 좌절을 견뎠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구부정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골똘하게 읽는 모습이 전부였다. 어쩌면 그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무엇,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일은 인간적인 동시에 기계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많은 이의 시간과 마음이 모여 완성되는 작업이면서 순서와 방식에 따라 한 단계씩 이뤄지는 체계적인 공정이기도 했다.

 

거의 매일 독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지금껏 진지하게 독자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만든 책이므로 성패가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했는지도 그동안 자신이 만든 책들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이 뒤따랐다.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독자들의 내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고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하나를 고르는 과정은 쉽지 않고 이후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나를 고르는 일은 나머지를 모두 외면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석주는 나중에 알았다. 그 시절 원호와 나눴던 것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데서 오는 희열이었음을, 계획할 수 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있으나 예상을 비껴난 형태로 완성되는, 두 사람은 그런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세계에 매료된 닮은 꼴의 서로를 단번에 알아본 거였다.

 

사랑은 극적이기보다 안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그건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캐묻는 법이 없었다. 그런 무던함이 좋았다.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을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고요.

 

자책할 거 없어요. 석주씨 탓은 아니니까 그냥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거죠. 자기를 못살게 구는 거 그거 안 좋은 겁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글을 탐독하는데 삶의 대부분을 허비한 사람, 매일 뭔가를 읽고 또 읽고 다시 읽느라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진짜 삶에는 한없이 서투른 사람 사람들의 평가속에서 석주는 자신이 기획에도 섭외에도 능하지 못한 반쪽짜리 편집자임을, 성실하지만 얼마간 무능하고 진지하지만 구태의연한 직장인임을 모르지 않았다.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석주는 늘 했다. 아따금 부담감으로 압박감으로 돌변하곤 하던 그 기대를 놓은 적은 없었다. 그녀는 현실이 아니라 허구를 탐독하고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래서 일상을 돌보는데 서툴렀고 힘껏 붙잡아야 할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은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누군가의 삶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별다른 감동이나 드라마가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생을 완성해 나가는 것

완성이라는 말을 쓰기도 뭣하다면 그렇게 쌓여서 삶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하자

시간이 쌓이고 나이를 먹어도 서투른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익숙해질만하면 나오는 실수와 오류로 인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삶의 주요한 요소에는 노동이 있다.

사람은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존재이기도 하고 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일이란 삶의 중요한 한 줄기이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로 보낸다.

그 일은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증명하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일을 선택할 때 온전히 이 일이 나에게 맞다고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 일이 나에게 적합할까. 내가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두려움은 설레임이기도 하고 낙관적인 희망일 때도 있다.

불안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마음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여가기도 하고 이직을 통해 젼혀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우스개 소리처럼 일이 어려운게 아니라 관계가 어렵다고 하는 말도 있다.

일이란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 일에 관심과 애정을 쏟고 처음에는 비슷하게 흉내내다가 조금씩 내 스타일대로 변형하며 내 방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일이란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람과의 관계 역시 일의 일부가 된다.

현재 직업이 그 사람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만들어 간다.

꼼꼼함을 요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 후천적으로 세심하고 꼼꼼함이 발달하기도 하고

사람을 자주 만나다 보면 사회적인 페르소나를 몇 개 더 가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 중에 읽고 또 읽고 행간에 없는 의미마저도 알아차려야 하는 편집자의 일을 책은 그리고 있다.

단순하고 서성이는 마음이 주인공을 통해 그려진다.

그러나 그의 일이 삶은 절대 단순하다거나 주저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껼국 멀리서 보면 보이는 그 삶의 무늬를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 무늬가 각자 다르게 그려지겠지만 제각가가 모두 아름다울 것이다.

 

(사족일하는 여성에게 결혼이란 늘 그렇듯 결혼이란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제도이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줄이고 집에는 여자가 있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그 무한반복되는 제도 안으로 누가 감히 용기있게 들어갈 수 있을까 원호 역시 그 되돌이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였다는 것

남자들조차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거절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혼을 그냥 어른들에게는 인사정도만 하고 알아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좋겠다. )


사족2) ai시대에 읽는 행위가 그리고 쓰는 행위가 꾸준하고 묵묵한 인간의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 가치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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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을 본다는 것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보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여기 두 삶이 있다.

컬럼비아에서 40마일 떨어진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에게 태어난 스토너는 어느날 부모의 권유로 미주리 대학 농과에 입학한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워 졸엄 후 돌아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보기를 희망한 부모는 기꺼이 아들을 대학을 보냈다. 스토너는 대학에서 이방인이었고 낯선 사람이었으나 문학을 만나면서 대학에 깊이 빠진다. 아니 문학에 눈을 뜨면서 배우는 즐거움, 읽고 쓰는 기쁨을 알게 된다. 문학으로 전과를 하고 전쟁동안 참전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미주리 대학 강사가 되고 종신보장 교수가 된다.

그 사이 스토너는 이디스를 만나 첫눈에 빠져 성급한 결혼을 하고 딸 그레이스를 갖는다.

결혼생활은 행복했다고 할 수 없다.

이디스는 첫 만남과 달리 예민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스토너에게는 그랬다.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게 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배우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이디스는 스토너에게 늘 걸림돌이었다. 조금의 행복도 용납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토너는 그 또한 견뎌낸다.

학교에서는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사람인 스토너는 어느 순간 그의 가치를 알아본 학생들로 인해 학문의 기쁨 가르치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것도 길지 않다.

학교내 정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고 그의 곧고 고지식한 학문에 대한 사랑과 성품은 학교내에서 어쩔 수 없이 타자로 밀려난다.

스토너의 삶은 성공적이었을까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모두 삶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살아가는가

내 삶이 어떻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가

스토너는 말년에 자신의 질문에 기꺼이 대답할 수 있었다.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 삶이란 그런대로 괜찮았다. 내가 기대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함께 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누렸던 시간을 돌아보며 기꺼이 눈을 감는다.

그의 삶은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를 했고 교수가 되었지만 조교수에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했고 괜찮은 저술을 남기지도 학생들 기억에 남는 존경받는 교수도 아니었다. 고지식하고 괴팍하고 깐깐한 그래서 질문이 많고 조금은 피곤한 사람

결혼생활 역시 행복하지 않다. 이디스는 전혀 스토너를 이해하거나 살피지 않았고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에서도 어깃장을 놓았다. 집에서도 쉴 곳이 없는 스토너는 서재도 빼앗기고 거실에 자고 심지어 유리로 된 온실에서 책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인생 중후반기에 만난 캐서린과의 짧은 사랑은 주변의 견제와 시선으로 마무리 된다.

어쩌면 소심해서 내 앞에 놓인 길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

미련하게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사람

그가 과연 행복하긴 했을까 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디스와 이혼을 했더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캐서린과 떠났더라면

적어도 이디스에게 화를 내며 그레이스를 보호했더라면

영문과 학장을 탐냈더라면

교수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느 정도 타협을 했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을까

죽음앞에서 후회보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꺼이 대답할 수 있는 스토너는

작가의 말대로 그대로 영웅이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는 문장은 스토너의 부모님뿐 아니라 본인도 그러하다.

참아낸 결과 무엇이 남았나

견뎌낸 결과 그는 누구인가.

스토너에게서 평범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본다.

인내가 깊어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지속하는 그 마음의 깊이를 나는 모르지만

그 길이 나쁘지 않았다는 그의 마지막 미소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을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만 아는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삶의 이면을 꿋꿋하게 살아낸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여기 한국의 홍석주 편집자가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채 대학 학과를 선택하고 배우는 학생이 있다. 쓴다는 일에 끌리지만 내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소심하게 망설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는 늘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국문과 전공 수업에 청강을 요청하고 해내는 일

출판사에서 일을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버티며 필사를 해가며 배워나가는 일

해도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 접대하는 일, 남의 글을 읽으며 그 글을 평가하고 참삭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내가 이 일을 잘 한다. 좋아한다는 생각없이 맡은 일을 계속 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석주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버티고 해내는 동안 사람은 성장한다.

시간의 힘일 수도 있고 개인의 인내의 힘일 수도 있다.

그녀 역시 다른 길은 보지 않고 편집에서 즐거움을 찾고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키워나간다.

일상과 사랑보다 우선한 책에 대한 사랑 작가에 대한 헌신은 어쩌면 삶의 어떤 순간 내가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맞는 길을 가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서술 되지 않았지만 편집인 홍석주가 아닌 인간 홍석주에게는 그런 고민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나 자책은 없다.

스스로 오늘 못하면 내일 다시 하면 되고 잠을 줄이고 하고 내 시간을 줄여서 일을 하면 된다. 그 가치를 누가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보완하면서 나아간다.

그렇게 일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돌아보니 어느새 온전히 나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그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예전 스토너를 읽으며 아버지의 삶을 대비해 보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 도시에서의 공부 그리고 약간의 성공과 묵묵함

나이든 아버지를 돌아보면 그가 삶을 즐긴 것이 아니라 견뎌냈다는 말을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다른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내 앞에 놓인 역할이 아닌 다른 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다 버리고 나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아니 그의 삶에 나의 즐거움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삶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최선이 있을 테고 나는 지금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 차선 역시 묵묵히 견디고 살아왔다면 그 역시 최선일 것이다.

차선을 최선처럼 살아내는 삶 그게 내가 본 아버지의 삶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최선을 꿈꾸면서 차선을 살아가고 그 차선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 원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할 수 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

나의 최선은 무엇일지 궁금해하고 찾아보지만 지금 가고 있는 차선 역시 포기 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스토너도 홍석주도 자심의 삶이 꿈꾸었던 삶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선택들을 하면서 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있을거야 라는 꿈만 꾸지 않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되는 것

그리고 즐거움과 가치를 발견한다.

 

성공한 화려한 삶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끈기있게 해내고 있는 삶들이 가장 존경스럽다.

그걸 두 책은 말해준다.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에게도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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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기 만만한 곳은 서점이나 도서관이었다.

아이쇼핑을 한다고 하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게속 걸어다녀했다.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상품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고 

주머니가 묵직해서 무얼 샀다더라도 우울할 때 산 것들은 늘 후회로 남았다

물건을 구경하는 것 만져보고 즐기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마음이 더 가난해지고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가는 게 실시간 느껴졌다.


카페는 특히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클수록 괜찮긴 했다.

멋진 풍경이 없고 인테리어가 없지만 사람이 돗대기 시장처럼 많으면 괜찮았다.

숨어있기 딱 좋았고 내가 멍 때리든 핸드폰을 하든 책을 보든 무언가 할 거리만 있으면 커피 한잔 값으로 오래오래 있기 좋았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해보여서 심통이 났다.

함꼐 여서 부러웠고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질투가 났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 늘 빨리 매운 맛이 땡겼다. 그렇다고 케잌까지 먹기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은 그런 면에서 숨어있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어른들은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 책을 읽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건 무언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여긴다. 책을 읽는 아이는 그냥 두어도  괜찮았다. 믿을 만 했고 그럴만 했다.

그걸 일찍 알아버린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숨어있다는 행위의 동의어였다.

책을 읽는 아이는 어른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에 아 책을 읽고 있군 기특한 녀석 

정도의 관심이 가지만 그 다음은 그냥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된다.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이 무언지 관심이 없을 떄도 있고 관심이 있지만 자기가 아는 책이거나 읽을 만 하다 싶으면 떄로는 수준이상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아쭈~ 라는 마음과 함께 그냥 넘기면서 잊어버린다.

책이란 그런 거였다. 나에는 

숨어있기 좋은 매개

도서관이나 서점에도 사람이 많을 때가 있지만 모두가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다.

모두가 좋아서 사랑해서 미칠 것 같고 지금 이순간 돈자랑을 하고 싶은 사람도 서점이나 도서관이 오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히 허영기가 있거나 적당히 돈이 있거나 없거나 적당히 행복하거나 외롭거나 

그리고 누구도 같은 공간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을 예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혹은 서점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구겨진다. 온 몸의 관절을 꺽고  전신의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어서 한구석에 최소한으로 구겨져 있다. 그렇게 구겨져 있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나를 최대한 구기고 한없는 우울에, 까닭 모를  비참함에 한참 절여져 있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읽고 문장들을 읽고 단어들을 발음해 보면서 

저쪽 창에서 햇살이 길게 뻗어 올 때 까지

때로는 해가 기울어 찬기가 느껴질 때까지 

그냥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구겨넣고 돌돌 말아서 웅크리고 있다.

책 뒤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가끔은 울어도 괜찮았다.

사람들은 책이 무지 슬픈가? 아니면 갱년기인가? 눈물이 많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소리가 없는 말들이 들리지 않는 대화들이 가끔 위로가 될 때가 이다.

지금 나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해내는 문장을 만나면 묘하게 안심될 때도 있다.

그렇게 나를 구기고 접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팽겨두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구겨놓았던 관절들을 하나하나 펴고 쭈글쭈글 접어두었던 피부를 탁탁 털어서 펴본다.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접은 선들 규겨졌던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괜찮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만한 힘은 생겼다.

세상이 바뀐 것도 없고 내가 더 나아진 것도 없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조언이 있다는 건 순 뻥이다.

책 속엔 글자가 있고 문장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충고가 있고 논란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냥 그런 글을 읽고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읽었다.

때로는 내  마음 같았고 당신 마음같아서 아하 하는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그 깨닮음도  감각들도 함께 덮었다. 


가끔 나자신을 한껏 구겨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읽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냥 탁 ㄷㅍ어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도서관 또는 서점을 간 것이 아니다.

나의 우울에 깊이 빠져 있기 위해서 간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 책 속에서 잠시 헤매다가  한 귀퉁이에 나를 구겨놓으면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마음

그게 나에게 필요했다.

그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이 될지라도 

때로는 무용한 것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읽는 인간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위대하지 않고 똑똑하지 않고 그냥 그런  속물적인 사람일 쭌이다. 

독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많은 이야기를 채워넣었고 때로는 잘난척 할 수 있는 지식이 많아졌고 그리고 위로받고 싶은 숨겨진 마음을 혼자 해결해야하는 외로움이 많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나는 좋아하는 장소는? 이라는 질문에 쉽게 서점 혹은 도서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어디 뭔 외국의 멋진 도시들 멋진 풍경들을 이야기 하거나  유투브에서 보았던 소도시들 골목길을 이야기 한다.

서점과 도서관은 내게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다.

자기를 구겨야 하는 곳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그냥 거기조차 가지 못하면 내가 숨을 쉬기 어려워서 이러나 머리에 꽃을 꽂게 될까봐 두려워서

허위허위 찾아가는 곳이다.

그냥 나의  뭐라고 해야할까

그저 숨구멍이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살것 같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독서라는 것

서점이나 도서관을 자주 가는 사람에 대해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참 길게도 썼다. 


사족)

그건 그렇고  저 구병모이 신작은 사야할까 도서관에서 빌려야 할까 

구병모으미 작품들은 구석에 구겨져서 책장을 넘길 때 참 많이  도움이 되었드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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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 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폭력을 말하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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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지

나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구속하고 폭력을 쓰고 나를 억압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고립시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을거야

나라고 별 수 없을거야

그게 저 사람의 진심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을 거고

늘 저러는 사람이 아니라고 좋은 기억들을 헤집어 꺼내서 늘어놓으려고 할거야

누구에게도 자존심때문에, 믿어줄 것 같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야

너같은 여자가. 똑똑한 여자가, 친구도 많고 사회생활도 하는 여자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꼴을 당하고 참고 있냐는 말들 눈빛들  침묵들을 나도 견디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나도 다르지 않을거야


나는 가해자는 되지 못하겠지만 다시 한번 상처를 입히는 이차 가해자는 될 수 있겠지

왜 저러고 살까

저런 남자를 고르는 기준이 뭐였지? 눈이 저렇게 낮다고?

왜 도망가질 않아?

왜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지?

그러니까 늦은 밤 술에 취한 행동이나  난감한 옷차림은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물론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보니까 뻔한 남자인데 왜 질질 끌려다녔을까

그럴 수 있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절대 저럴 리 없지

피해자가 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야


결국에는 다시 돌고 돌아서 세상의 통념과  구조적인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아직도 이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

여자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이라는 것들이 여전히 불균형하고  이만하면 남녀 평등이 아니냐는 말이  무수리에서 이만큼 올라왔으면 된 거 아니야? 더 이상 뭘 바라는거지? 라는 적선하듯 그냥 하찮은 존재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가 이제 조금 아주 미묘하게 반대쪽으로 기울어졌을 뿐인데도

호들갑을 떨면서 이젠 남녀 평등이 아니고 여성상위라고 부르짖는 사람들

남성에 의한 여성의 폭력에 대한 어떤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통계가 없으니 그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모르고 사는 것이 당연하고

피해자를 모으면 여느 참사 못지 않은 수가 있을텐데 모든 사건이 모든 피해가 개별화 되고 특수한  아주 나쁜 어떤 인간의 행동일 뿐이라는 생각들이 모여서

여전히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과 살인과 통제가  투명해지고 

개별적인 문제가 된다.


통계가 모여서 실체가 드러나고 

그에 맞는 대책이 세워지고 법이 생기고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가정의 회복이나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피해자 개개인의 회복이며

그 회복을 위해 강력한 처벌들이 필요하다

심신미약이어서 앞날이 창창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에 욱하는 심정이어서

상대가 잘못해서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술을 먹어서  뭘 몰라서 

그런 단세포같은 이유가 절대 통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지원체계고 투명하게 모두가 알고 적용할 수 있기를


갈길이 멀다.

그러나 방향이 명확한데 왜 자꾸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그렇게 큰 일이 아니어서 라고 생각하는 머리들 때문에?

지구의 절반이 고통받는 폭력앞에서 우리는 계속 바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겠다.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당신이 피해자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주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별 일 아니라서 할수록 더 심각하고 복합적인 일이다.


헤어지다 죽거나

대들다가 맞거나

관계를 거부해서 목을 졸리거나

대출을 받아주지 않아서 흉기를 드는 그런 상황이 

엄벌에 처해지기를

아니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기를

그가 나와 다르지 않다고 당연히 생각하기를...


참 오랫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폭력이 지치게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소리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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