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먼저 보았다.

어두운 상영관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지금 2019년 은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삶도 반짝반짝 빛날 때가 있을까요?" 은희는 영지샘에게 물었다.

답은 없없지만 아마  영지샘이면 말없이 웃어주었을 것이다. 빛난다. 빛나지 않는다는 말로 단정지울 수 없는 것이 삶이므로 ,  우리의 삶은 별이 아니다.

아니 모든 별이 빛나지 않은 것이므로 별이어도 상관없다.

은희는 지금 빛나게 살고 있을까?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빛나고 있다고 믿더라도 그렇게 보지 않은 타인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저 미미하게 여기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테고 부러워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그냥 내 삶은 이어질 뿐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삶은 계속될 수 있다.

은희는 빛나든 아니든 어쨌든 손가락을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첫 장면에서 은희가 계속 대문을 두드리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심부름을 보내놓고 모두가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 이상 집에 아무도 없을 수가 없다.

적어도 급하게 대파를 사러 보낸 엄마라도 있어야 한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두렵다. 그럴리가 절대 절대 없지만 가족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졌을 수도 있다. 불가능한 상상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마음 그것이 불안이고 두려움이다.

그리고 은희는 다시 대문을 본다. 우리집이 아니다

여태 남의 집을 두드리고 화를 내고 애를 쓰고 있었다.

멋적고  창피하고 동시에 다행이다

한 층을  올라서 은희는 무사히 집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랜 기억이 있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시장에 갔다.

엄마는 어린 남동생을 업고 있었고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시장은 늘 같은 곳이지만 늘 새롭다

구경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다.

그러나 젊고 바쁜 엄마는 등에 있는 아이가 무겁고 짐하나 들어줄 수 없는  어린 딸도 버겁고 점점 무거워지는 찬거리도 힘겹다. 돌아가봐야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그냥 어서 들어가서 등에 있는 아이라도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집은 굳이 어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어디 움직일 것도 아니고 늘 살고 있는 그 공간보다는 여기 시끌거리는 시장이 더 흥미롭다.

장을 보고 사람들이 둘러선 곳에 구경을 간다. 무얼 팔았을 것이고 그 전에 뭔가 공연같은 걸로 사람을 끌어모았을 것이다. 시시하고 유치한 무언가가 벌어지고 아이는 궁금하고 보고싶다.

엄마가 행여 먼저 가버릴까봐 아이는 포대기 끈을 꽉 쥐고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빠져든다.

한번 뒤를 돌아보면 엄마는 그대로 서 있다. 다행이다.

다시 구경에 빠진다

재미있어서 너무  다음이 궁금하기도해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포대기끈은 절대 놓지않는다

아니 놓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순간 돌아보니 엄마가 없다

내가 잡고 있는 끈은 어떤 할머니 치마끈이었다.

언제 바뀌었을까? 아이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그 할머니가 친할머니였거나 친척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냥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

아이는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따지지 않았다

왜  혼자 두고 갔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도 왜 먼저 갔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이제 다 보고 왔냐는 듯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고 어른이 된 아이는 기억한다.

그냥 물어서는 안되는 거라고 따져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물어보거나 따지면서 발버둥을 치며 찡얼거린다면 엄마는 다시는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그렇게 나를 놓아버리고 멀리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 같다.

오히려 엄마가 뭘 그리 오래 보고 왔냐고 꾸중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도리어 안심했던 쓸쓸한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은 어쩌면 조작일 수 있다

나는 찡얼거렸을 수도 있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에 엄마가 나에게 먼저 간다고 말하고 갔을 수도 있고

가자고 등을 밀었는데  내가 고집을 피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이건 내게 박힌 기억은 그냥 내가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서워서 못따졌다는 것뿐이다.

나는 버려질까 두려웠던 걸까?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은희를 보며 그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돌아보면 별거 아닌데 그 순간 왈칵 두려움이 덮치는 순간  그게 뭔지 나는 안다.

아닐거라고 굳게 믿지만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

나중에 멋적고 싱겁고  그러면서도 왠지 슬퍼져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나는 첫 장면에서 공황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은희는 늘 누군가와 닿고 싶어 했다.

가족과 닿고 친구와 닿고 누군가 다정한 단짝을 만들고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닿고 그리고 영지선생님을 존경하고 닿고 싶어했다.

아이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서 떨어져나갈것을 두려워한다.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은 타인과 관계를 맻는 것이다.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가지는  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일 

그게 살아가는 목표가 된다.

인정받기 위해 공부하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하고  무조건 튀려고 하고 센척 하고 자기의 약함을 숨기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그런다. 인정받고 싶어서 연결되고 싶어서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게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아이들은 그저 놀고 먹고 자고 단순하다고 믿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뭘 알겠어하지만  아이들도 나름 치열하게 애써야 한다.  다만 어른들은 자기들도 그랬다는 걸 잊었거나 잊은 척 하거나 할 뿐이다

 

은희의 가족이 유달리 콩가루인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름 단단하고 화목한 편이다.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하고 어머니는 묵묵하게 제 역할을 견딘다. 강남에 살면서 학교를 떨어져서 강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언니가  집안의 유일한 문제아인것은  그만큼 문제 없는 괜찮은 가족이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가족끼리의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폭언들, 무시와 강압이 그냥 당연했고 손위 오빠가 여동생에게 손을 대는 건 그냥 아이들사이의 다툼의 한 가지일 뿐이다. 오빠 밥은 당연히 동생이 챙겨야 하고 아버지의 말은 법이다 어머니는 그냥 모른 척하고 견디고 외로울 뿐이라. 딸 아이들의 빈 마음을 다  마져주기에도 힘겹다. 굳이 가족끼리 대화하지 않아도 함께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화목한 우리집을 그려낼 수 있다. 대화는 일방으로 흐로고 침묵은 긍정이고 착한 자녀의 표본이다.

 

학교에서선생님들의 무지한 폭언도그냥그냥 일반적이다

날나리가  되지않고 대학을 가야 당연한 학생이다.남자친구를 사귀고 노래방을 가는 것은 날나리가 하는 일이고 공개적으로 날라리를  적어내라는 폭력이 발생한다. 당연하게

어른들의 잣대대로 아이들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공부를 못하고 잠이나 자고 남자를 만나는 친구는 당연히 날라리고 커서 파출부나 할 아이라고 어른처럼 믿으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공포감으로 나와 그 아이를 구분한다 그건 어른들이 바라는 교육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 중에도 은희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감자전을 먹을 수도 있고 언니와 은밀하게 교감도 나눈다. 오빠의 폭력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견뎌야 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것이 있다

학교에서는 왕따일지라도함께 트림벌린을 뛰고 학원을 가고 콜라텍을 갈 지숙이 있고 나름 자기를 예뻐하는 남자친구도 있다. 다만 모든 관계가 단단하지 않을 뿐이다

언니는 더 중요한 바깥 관계가 있고 어마는 늘 바쁘거나 힘들다.

순간의 두려움으로 친구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고 어른들의 편견으로  남자친구가 없어질 수도 있다 나를 좋아하던 누군가가 계절이 바뀌어서 마음이 바뀌어서 나를 멀리하는것도 일상일 수있다

화면속에서 은희는 지숙이나 남자친구 자기를 좋아하는 후배와 한 화면에 나오지만

은희가  가장 말갛고 편안한 자기 얼굴을 갖는 순간은 혼자 있는순간이다

혼자 병원을 가고 혼자 시술을 받고 혼자 입원을 하고 혼자 걷고 돌아오는 순간들 말이다

그 혼자일때도 누군가와 닿고 싶지만 의외로 편안하기도 하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없이  그냥 은희 그 자체의 얼굴이면  된다

은희는  혼자를 잘 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열다섯의 은희는 모를 것이다.

자기가 혼자 잘 해내고 있다는 걸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여기는 건 슬프지만 괜찮기도 하다.

아직 어린 은희는 그걸 다행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게 영원할 수 없겠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그리고 명지 선생님.

은희를 알아봐주고 말을 들어주고 눈을 맞춰주고 뭐라고 충고하지 않아도 은희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던 사람 그 사람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못하거나 가늘고 위태롭게 이어져오던 은희가 단단하게 매듭을 묶고 머무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내가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는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고 내 말을 들어주었던 사람이다.

 

얼마전 아이에게 들었다.

인터넷에  개인주의자 검사를 하는 문항이 있는데 그걸 보니 자기는 지독한 개인주의자란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없고  남의 감정을 잘 알기 히들고 오래 관계가 지속되면 피곤해지고  혼자가 더 편하다는 것  통화보다는 톡이나 문자기 더 편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남의 감정에 쉽게 개입하지도 않고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개인주의자란다.

그런데 요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위 문항에 나도 다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위 문항에 맞는 사람을 쿨하다고 멋지다고 하지 않나?

먼저 다가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냥  다가 오지 말라 나도 다가가지않겠다며 자기 바운더리를 지키고 맞춰주는 것 그게 예의고 멋진 일이 된다.

한때는 우리 모두가은희였으나 이젠 적당히 멋지고 피곤한 개인주의자들이 된다.

외롭긴 해도 덜 위험하고 덜 해롭다.

은희가 자라 스무살이 되면 멋지지만 쓸쓸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될까?

영지 선생님처럼 쓸쓸하지만 따뜻한 이웃이 될까

어쩌면 이 둘은 같은 타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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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더 큰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었을까?

안나가 가진 큰 비밀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건 그녀에게 큰 비밀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수치심이다. 글을 모르는 그는 글을 아는 이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푹 빠진다.

마이클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는 행위는 그녀의 수치심을 감출 수 있고 스스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 마이클이 책이야기를 해 줄 때  그리고 사랑에 들떠서 안나를 바라볼 때 자기의 비밀을 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렇지 않았을것이다.

수용소에서도 어린 소녀들을 불러 다정하게 대하며 책을 읽어주게 했고 마이클도 그녀에게는 어린 아이였다. 그녀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절대 자신의 문맹을 들키지 않을 상대들에게 말이다. 그렇게 안나는 자기의 비밀을 꼭꼭 숨기길 원했다.

글을 읽지 못해 사무직으로 승진도 하지 않았다. 수용소로 가기전 지멘스에서도 아마 승진이 두려워 이직을 했을 것이다.글을 읽지 못해 자기가 서명한 서류가 무엇인지 알 지못하면서도  문맹임을 밝혀서 스스로의 범죄를 낮출 생각보다 차라리 죄를 모두 자기가 뒤집어쓰는 쪽을 택한다.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죽음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수치였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을 뒤늦게 법정참관을 한 마이클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안나는 글은 알지 못하지만 참 완벽한 감시원이었다.

수용자를 감시해야한다는 자신의 업무를 고지식하게 철저하게 지킨다.

자기의 신념이 타인에게 어떤 폭력으로 가해지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수감자를 감시해야하고 그들이 절대 소용시설 밖으로 나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면 안되는 것이 그녀가 해야할 모든 것이다. 가스실로 가야할 사람을 골라내라고 하면 스스로의 기준으로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들을 골라냈고 새로 오는 수용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가스실로 가야한다는 당위성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명령받은 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겐 전부였고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맹이어서였을까 스스로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았다.

내가 글을 알지 못한다는 수치심이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통제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걸까?

법정에서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행동을 구술한다. 어떤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치장도 없이 말이다.

굳이 악의 보편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나가 잘 보여줬다.

오랜 감옥생활에서도 안나는 스스로의 죄를 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 그들의 명령이 당위성만을 생각하며 그냥 그 속에서 견디고만 살았을 것이다.그런 안나에게 마이클의 녹음이 도착하고 책을 읽고 글을 읽게 되면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마이클을 만나면서 그녀는 자기의 진짜 수치심과 마주하지 않았을까?

글을 모른다는 건 수치감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아무 생각없이 아무 감정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그 명령에 당위성을 주며 따랐다는  사실이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별 거 아닌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죄를 만들고 죄책감을 알게 된 안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안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이클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가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 더 큰 다른 것이었다는 것 그것을 마주 하고서 말이다.

 

마이클은 ...

열다섯살 소년에게 안나의 존재와 안나와의 관계는 큰 충격이고 영향을 준다.

내가 사랑한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상대가 말도 없이 떠나고 그리고 훗날 우연히 만난 그녀의 더 큰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마이클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 내 곁을 쉽게 떠날 수 있을 것이고 크다란 비밀을 나몰래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

믿음에 대한 배신과 함께  마이클과 그가 속한 사회가 가진 신념에 전혀 맞지 않는 안나를 보며 또 다시 실망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져 혼자만 알게 된 안나의 비밀을 안나를 위해서? 아니면 안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국 혼자 안고 입을 다물어버린 행동까지 더해지면서 그 역시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한 때 사랑했던  시간과 기억으로 각각 죄책감을 안고 간다.

사랑이 죄책감을 붚풀린다.

마이클은 죄책감이 책을 녹음해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알게 된 안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안나가 조금 더 일찍 자기의 진짜 수치와 죄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생을 허비하며 마감했을까?

사랑에 대한 배신이 죄책감을 만들과 그리고 삶을 다른 방향으로 쿨꼬를 돌리기도 한다.

 

그저 19금의 격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라고만 보기엔 뭐랄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가진 신념이 신념인지 모른다.

그저 타인이 가진 신념을 비판하고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혹은 신념과 현실은 다르다며 나의 타협을 인정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생각이 없다고 그저 현실에 맞춘다고 믿었던 나의 말과 행동도 결국은 내가 가진 신념이고 틀이라는 걸 나만 모른다.

 

다시 책을 읽어 봐야 겠다.

 

 

 

사랑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 그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왠지 뭉클해진다.

그 사람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다시 볼 일이 없게 되어 그때의 열정은 이제 두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쓸쓸하게 남겨져 있거나 그마저 없거나 할테지만

가끔 아주 오랜 후에 되돌아 보는 미쳤거나  격정적이었을 그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안달하고 애태웠나 알 수 없으면서도 그 감정이 슬프다.

그렇게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렇게 미치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경주마처럼 오직 눈앞에 그 사람만 보였던 그 시간이 부질없다 싶게 쓸쓸하면서도

그것 마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외롭고 슬프고 삭막할까 생각한다.

엣사랑은 그것이 무엇이건 다 조금씩 상투적이며 유치하고 속물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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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9-06-27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이자 책이었습니다. 나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치나 친일은 단죄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푸른희망 2019-06-27 22:31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토니는 개인 토니였다.

말이 지나치게 많고 멀리 보지도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욱하는 성미를 가진 토니

다정한 남편이고 가장이며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토니

그 시대를 사는백인 남성이면 가질 법한 편견과 차별을 악의 없이 지니고 있는 남자

설리는  그냥 흑인이다,

성공한 음악가이고 교육 수준이 높아 교양있고 우아하지만 혼자 미국 남부 투어를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그냥 흑인이다,

물론 영화흐름에 따라  설리도 자기가 가진 껍데기를 벗어가지만 주로 성장하고 변하는 건 토니다

그러니까 심하게 가자미 눈으로 본다면 토니라는 인물이 긴 여행을 통해 자기가 가진 편견과 차별을 반성하고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

토니는 그런 주인공으로 적당하다.

한계를 많이 가졌지만 적당히 정의롭고 귀엽고 호감있는 인물이라 관객은 쉽게 그에게 이입되고 그의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당연히 둘 중 더 주인공이라면 토니였을까

 

그러나 눈길을 잡는 건 설리다

우아하고 세련된 동작과 말투를 가졌고 자기 능력을 인정한 부유한 백인들의 초대로 남부로 연주 투어를 떠나지만 늘 긴장하고 무표정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인물이다

그의 말과 표정 행동은 편견과 차별이 일상이고 당연한 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방어벽일 수 있고

그렇게 적응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 도드라지지 않는 것의 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어땠을까?

그의 이야기는 영화내내 단편적인 그의 대사로만 전해진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것

러시아 음악학교  최초의 흑인 학생이었다는 것

남동생이 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결혼을 했지만 현재는 혼자라는 것

간혹 그의 말속에 그의 삶이 드러나지만 그저 단편적인 문장으로 보여질 뿐이다.

그는 철저하게 타자였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다만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가지고 누구나 그의 연주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사실 그의 연주를 듣고 칭송하고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그 당시 상류층의 속물적인 취향일지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설리에게는 그렇게 환호하면서도 막상 무대에서 나려온 평범한 흑인 설리에게는 단호하게 차별과 멸시를 보낸다

함께 화장실을 쓸 수 없고 함께 식당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아무 호텔에서나 묶을 수도 없다.

설리는 그 모든 현실을 견디고 받아들인다.

욱하는 우리의 주인공 토니는 자기도 차별을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로 설리를 대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거짓말과 위협으로 상황을 모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설리는 고마워하기 보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가만 있으라고 한다.

늘 말은 연주 일정을 다 마쳐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영화에서 설리는 흑인이지만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먹은 적이 없고 흑인 재즈나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여행도중 마주친 흑인 일꾼들은 같은 흑인이면서 백인에게 시중을 받는 잘 차려입은 설리를 낯설게 바라본다

흑인이면서 흑인 일 수도 없고 더우기 백인 일수도 없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설리

백인에게 칭송받지만 그건 조명이 켜진 무대 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뿐이고

흑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다

그가 늘 받아들이고 참아내며 끝내 우아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견뎌낸다는 것을 본다.그저 그렇게 견뎌낼 뿐이다.

변화를 위한 위대한 용기라고... 동료 연주가는 남부 음악 투어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만 설리의 용기있는 한걸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도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이렇게 재즈가 아닌 클래식을 연주하는 흑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가장 위험한 저 아래 남부 지방을 돌며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투어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

그것이 설리에게는 견뎌내고 지탱해주는 삶의 어떤 정수였을까

우아한 말투 행동 표정이 세상을 향해 곤두세운 가시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기를 무장해야만 편견과 차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그저 생존이상의 존재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

왕좌같은 우스꽝스럽던 그의 집 그의 의자들처럼 기이하지만

 그의 재능과 예의와 고상한 행동들이 그가 가진 갑옷이고 무기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필요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거절을 받아들이는 행위

그건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해 잊지 말아야할 필요 사항이었다.

아무리 명성과 재능을 가졌어도  설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는 흑인이라는 위치였고 그 분명한 한계를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실수나 판단 착오없이 튀지 않게 살아야 하는 거였다. 모험이나 튀는 행위는 금물이다.

 

 

오스카가 사랑한 영화답게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토니와 설리는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며 설리의 도움으로  토니는 사랑스럽고 멋진 편지를 아내에게 보낼 수 있게 되고 위기에 처한 설리는 당연히 토니의 기지로 이겨낸다.

토니는 편견을 깨고 설리는 자기를 둘러싼 껍질을 조금씩 깬다.

그리고 마지막 따뜻하고 근사한 토니의 크리스마스 모임에 설리가 찾아온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리고 그 다음 설리는?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하는 친구를 만났다고  자기가 너무 긴장하고 애쓰며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건 없다.

크리스마스 만찬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는 법이다

설리는 여전히 흑인이고 음악가이며  연주 여행을 다닐 것이다.

그 시대의 차별과 편견은 여전할 것이며 어쩌면 조금은 그 관습에 소극적인 저항을 하겠지만 크게 문제를 만들거나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미세하게 노력하겠지만 견디고 참는 시간이 더 길것이다

 

견디는 것에 익숙하고 자기 감정을 눌러가며 주변 분위기를 맞춰주는 사람은 적어도 무시당하지 않을만큼의 성공이 필요하다

쉽게 쓰러지거나 지쳐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긴 시간을 벼텨내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소비하지 않기 위해

작은 성공 명성 지적인 능력 자존감이 정말 필요하다.

설리를 보며 나는 속물스럽지만 그런 생각을 내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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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기키 기린은 늘 좋은 모습만 보이는 인간형이 아니다.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뒤에 장난기가 숨어있고 그 장난기에 악의가 가득할 때도 있다.

위악을 떨거나 의뭉스럽게 아닌 척 착한 척 하는 얼굴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맨얼굴을 버림으로 더 뜨악하고 섬뜻한 무언가를 드러낼 때가 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무심하게 레이스를 뜨면서  장남의 기일마다 찾아오는 구출된 아이를 계속 찾아오게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그 아이도 충분히 죄책감을 맛봐야 한다는 말과 겨우 일년에 한번 여기 오는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엄마의 모습은 앞에서 계속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시중들며 챙기던 엄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아니 똑같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정성스럽게 레이스를 뜨는 그 모습 그대로 본심을 드러내는 말을 감추지 않고 뱉어내버리는 모습이 더 대비된다.

물론 앞 장면에서 남편 흉보거나 아닌 척 재혼한 며느리에게 직언을 해버리거나 아들에게 은근히 걱정하는 모습등등은 그저 푸근하고 모든 걸 받아주는 엄마가 아니라 속물적이고 내 자식이 우선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아프게 해서라도 내가 위안을 받아야 겠다는 그 말이 가장 냉정하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도 태연히 다정하게 손자에게 인사를 하고 잠자리를 챙기고 떠나는 아들 내외를 배웅하고 아쉬워한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의 엄마도 그렇다.

아들이 기왕이면 출세해서 엄마에게 척척 용돈을 주고 위신을 세워주고 어디에서든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전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에는 아쉬움 속상함 그래서 은연중에 표현해버리는 태도들이 담겨있다.

여기에서 자식들 역시 그런 엄마가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긴다.

속으로 쌓이는 상처나 앙금이야 없지 않겠지만 우리 엄마는 늘 저래왔던 사람... 이라는 태도가 아들에서도 딸에서도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더 편하게 엄마를 대하고 이것저것 부탁하고 심지어 몰래 집안을 뒤져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사람이고 단점을 드러내고 욕심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라 자식들도 그냥 그런게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가족사이에 늘 예의를 차리고 긴장하고 있는 건 이혼한 며느리다. 어쩔 수 없이 태풍때문에 전 시어머니 집에서 하루를 묶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지만 그동안 익숙했던 관계의 사람들이고 이제 알만큼 아는 터라 보아넘기고 적당히 무시하고 맞장구쳐주며 하루를 넘기려고 한다.

그런 며느리의 속내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이번 기회에 아들 며느리가 합쳐지면 좋겠고 덜 떨어지고 어딘가 아픈 손가락인 아들을 며느리가 책임져 주면 좋겠고 그 핑계김에 손자를 자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남들 보기에도 이혼하고 말도 안되는 사립탐정노릇이나 하는 것보다 번듯한 가족이 있고 뭐리도 하고 있는게 더 보이기도 덜 창피스럽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극속의 기키 기린 역시 그런 마음을 손톰 만큼도 숨길 생각이 없다.

노골적으로 더 큰집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하고 누구나 아들은 용돈을 얼마를 주고 하는 말을 아들앞에서 하니까

 

<앙>에서는 그래도 수더분하고 겸손하다.

여기서는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시어머니도 아닌 그저 슬픈 과거를 가진 한 개인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그 역할을 기키 키린이 함으로써 인물은 더 풍성해진다.

아픔은 있고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인물이지만 유머도 있고 직설적인 화법도 여전히 구사하며 더 다양한 인물이 된다.

그저 참고 인내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눙치는 유머도 할 줄 알고 사람 속을 모르는 척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팥들을 아기처럼 보살피고 말도 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어느 가족>에서 기키 기린은 너무 늙어버려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틀니를 빼고 연기해서 더 나이 들어 보였고 말년에 암으로 고생했다고 하니 그 여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가족으로 삼고 낡고 오래된 집에서 다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

돌아가시 할아버지가 남긴 연금을 타고 다른 가족이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오는 돈을 같이 쓰고 보살핌을 받고 집에 들어온 누구든 내치지 않는다.

영화 중반에 보면 아마 바람을 피워 재혼한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 자식에게까지 찾아가 그야 말로 말 그대로 삥을 뜯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죽은 영감의 기일이라는 이유로 남의 집에 가서 염치 없이 향을 올리고 대접하는 케잌을 야무지게 모두 먹어치우는 모습 그리고 배웅하며 내미는 돈봉투까지 사양없이 받아 챙기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냥 그렇게 늘 해왔던 사람처럼 모든 것이 물흐르듯 하다.

 

이 배우를 처음 어느 영화에서 봤는지 모르겠다.

아 <도쿄 타워>에서도 생활력 강하고 자식을 친구처럼 대하는 그래서 오히려 자식이 더 어려워하는 어머니로 나온다.

늘 보면 인자해서 뭐든 양보하고 희생할 것 처럼 생긴 할머니가 은근히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누군가를 골리고 나서 짐짓 시치미를 뗀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아닌 척 하거나 쉿 하며 함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가 않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 같은 일들, 차마 남의 눈 때문에 체면때문에 못한 일들을 태연하게 해치우며 어깨를 으쓱해버리는 모습이 의외로 후련하고 시원하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연기를 볼 수가 없다.

 

느긋한 하루 <어느 가족>을 보면서  영화의 내용에도 빠져 들었지만

이제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은근 유쾌하고 따뜻한 그 인물을 만나지 못한다는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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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글렌클로즈를 위한 글렌 클로즈의 영화

단순한 플롯과 구성을 꽉 채운건 그녀의 연기와 표정이었다.

 

남편이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새벽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누구나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느낄 만큼 서로에게 다정하고 여전히 서로가 필요하고 심지어 섹시하기깍지한 관계 . 완벽하게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뛸듯이 기뻐하지만 한편 씁쓸한 표정이 언뜻 언뜻 들어난다.

그동안 도와준 아내를 언급하며 감사하는 자리에서도 조안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무조건 좋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는 길 틈틈히 과거가 플래시백 되는데

결국 남편의 그 모든 작품은 조안의 것이었다.

재능이 없는 교수였던 남편 대신 재능있는 조안이 글을 고치고 손대면서 발표한 모든 작품이 연달아 인기를 얻고 명성을 얻으며 어쩌면 두 부부의 공동작품으로 그러나 세상은 철저하게 남편의 작품으로 그 모든 것을 평가한다.

시대의 이유로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목록을 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그래서 조안도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재능 없는 남편이 한 무리의 영리해 보이는 여학생들앞에서 당당하게 하는 말이 그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조안을 글을 썼지만 작가가 아니었다.

시대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어느 부분은 그녀의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을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고

누가 쓰던 작품이 완성되고 성공한다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박한 마음이 커다란 명성과 부와 명예로 돌아왔다.

철저하게 조안은 뒤로 숨고 남편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일을 조금씩 알아가며 뒤를 캐는 전기작가에게 조안은 마음이 흔들린다.

여태 나이 먹어가며 여전히 자기가 손이 가지 않으면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편을 챙겨야 하는 것

아이들도 돌보지 못하고 서재에 박혀 썼던 글들은 남편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남편은 작품과 주인공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남긴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모든 주부가 아내가 한 번은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갔나?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왔을까?

스웨덴 왕에게 자신의 역할이 '킹 메이커'라고 말을 하지만 

남편이 수상소감으로 다시 자기를 언급하며 영혼의 단짝이니 영감의 원천이니 하는 말에 그만 모든 감정이 올라온다.

이전에 조안은 남편에게 절대 수상 소감에서 자기를 언급하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를 했었다.

누군가의 내조자로 빛 뒤에 숨은 어둠이기는 싫었을까?

아니면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에서 나는 제외되고 잊히는 것이 영 꺼림칙했을까

그저 조력자로 내조자로 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부부는 평생 처음으로 충돌하고 돌이키지 못할 지점까지 갈라서지만

그 순간 남편은 사망한다.

가장 명예로운 순간, 가장 절정에서 가장 뒤통수를 치며 이제 조안은 죽은 노벨문학상 작가의 남은 가족이 된다. 죽어버린 작가의 아내로 남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안은 전기작가에게 남편의 일을 더 이상 떠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은 거짓이며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노트를 집어드는데.

 

그녀는 그 노트에 이제 자기의 글을 써가기 시작할까

아니면 그냥 빈 노트로 두고 작가의 아내로 살아갈까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답을 찾을 수도 없다.

영화내내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플롯에서도 다양하게 빛나며 의미를 응축하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겨우 눈빛으로 모든 감정이 오가고 영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아니면 누가 표현할까

마지막 비행기안에서 그녀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집에 돌아가면 아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모르겠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 선택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기를 빈다.

더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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