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략)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영감을 기닫리고 지적 자극을 위해 벤야민을 읽고 벤야민을 읽다보면 마르크스가 궁금해지고 마르크스를 공부하려면 자본론을 펴야하고.... 무능력에서 출발하면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일단 써봐야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지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좋은지를 볼 수 있다, 글쓰기의 초기과정은 '질''보다 '양'이다,

 

                  -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덮는 것은 일기다, 글쓰기가 아니다, 비밀이 한 사람에게라도 발언할 때 생겨나는 것이듯 글쓰기라는 것에는 어짜피 '공적; 글쓰기라는 괄호가 쳐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곧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 해석당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고 다그치듯 말할 수도 없다, 몸에 들러붙은 그것이 쉬이 떨어진다면 왜 고민이겠는가 고통이란 원래 사회적 의미망에서 생겨난다, 타인의 시선이 감옥이 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중략)

 

또 한가지 명심할 것은 '과도한 주인공 의식'을 글쓰기에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 문제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기고  '색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볼 만큼 부지런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자신의 현아에 가려 남의 일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의 개방 수위를 고민하다보면 자기 몰입이 어렵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ㅇ르 쓰기 어렵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만약 누군가 자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가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 고통쓰기 혼란과 초과의 자리 -

 

 

나는 성폭력 피해 경험자의 글쓰기를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노동자의 심정을 자본가가 장애인의 집장을 비장애인이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성애자가 대신 말할 수 없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시킬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고통 성폭력의 피해자의 고통을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아픔을 나누고 의미를 발견하면서 ' 피해자의 언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자기 고통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해질 때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사람 곁에 사람 자신의 복받치는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사실파악과 증거를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편들어주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질문을 만들어보았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느냐? 이것은 자신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기다리고 들어줄 수 있느냐? 물음을 바꾸었을 때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자는 누구나 약자다 -

 

 

'과제의 결과물이 지금 없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뭘 쓸까 고민하고 썼다 지우고 하는 과정이 있었을 테니 그것도 소중한 게 아닐까요"

그 분의 혜안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용감하게 글을 쓰면 쓴 대로 못 써내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무언의 글로 우리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받았다, 각자의 글ㅇ르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내고 눈물 훌리면서도 낭독을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는 말은 밖으로 나오려 하고 고통은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남의 이야기는 자기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같은 성폭력 피해자로 만났지만 그 안에서도 차이는 존재했다, 그래도 저마다 상황의 특수함 사건의 각별함 실존의 절실함을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피해 경험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얻게 된 것, 자신의 아픔으로 꽉 찼던 자아에 타인의 아픔을 들여놓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고마운 선물이다, 우리 품은 넓어졌다, 자아가 확장되면 상대적으로 고통은 줄어들게 마련이니 일석이조다,  (중략)

 

우리는 ㄴ책과 사람 그리고 글쓰기라는 이전에는 없던 세 친구가 생겼다, 인생이라는 책에서 한 페이지만 찢어낼 수 없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품고 가야 하는 것 아픈 채로 불편한 대로 안고 같이 살아갈 힘이 길러졌다, 삶이 다소 견딜 만해진 것이다,

 

                                  - 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하기 -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여거지는 시 암송을 통해  '안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그동안 오직 쓸모를챙기기 위해 이루어진 지식의 축적에 물음표를 남겼다, 이것이 문학 평론가 김현이 말한 문학의 쓸모 -없음의 쓸모-있음으로의 이행이 아닐까 잘 알려졌다시피 , 김현은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내 남없이 그렇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의 척도는 물론 화폐다, 내 앎이 내 삶이 교환가치가 있는가 잉여가치를 낳는가 제도 교육은 남보다 교환가치가 있는 인간 곧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육과정이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보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태 로 일상이 굴러간다, 그런데 유용하지 않아서 억압하지도 않는시 이 새디에 쓸모없다고 취급받는 시 언어들의 낯선 조합으로 정신을 교란시키는 시 가장 간호한 물성을 가진 시를 통화하며 학인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을 자각한다,

나는 궁금했다, 시 혹은 시적인 것은 왜 존재를 흔들고 지나가는 걸까

  (중략)

시집은 나의 변화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때는 도저히 감각의 주파수가 안 맞던 시가 계절이 바뀌고 나면 읽힐 때가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 책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사이 나는 살았고 뭐라도 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혹은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제쳐두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 사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살겠다는 이상한 다짐이다, 그 해 여름 나를 밀어내던 시가 이듬해 겨울에 조금씩 스며들고 문장들이 마음에 감겨오면 그 기쁨은 무척 크다,

 

                                                      -쓸모 -없음의 시적 체험 -

 

 

합평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읽는 사람은 불쾌감없이 자신을 부그러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듣는 삶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말하는 깋술을 익힌다, 합평은 그렇게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서로의 말을 참조하는 공론의 장으로 기능했다,  (중략)

나는 이것을 역지사지의 신체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의 자리에 자기 몸을 들여놓아 보는 상상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관점 하나 바꾸기도 얼마나 어려운가 관성적 사고와 법칙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을 촉구하는 어떤 강력한 긴장이 합평 시간에 자연스레 조성된다, 세상에 알려진 유명 작가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만큼이나 학인들이 쓴 글 서툰 글을 읽고 서로에게 최초의 독자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도 값진 독서 체험이다,

 

                                - 합평 역지사지의 신체 변용 -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가 '구조주의'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 자유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 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제도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슬프게도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상식 통념이라고 부르는 가치 체계는 워낙 당대의 것일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어떻게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 지 알려고 해야한다,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상식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 tv에서 커트된 무수한 삶을 감히 알려고 하는 자가 작가이다,

 

(중략)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마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때로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의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일상의 평균치만을 관성적으로 고집하며 살아가는 순치된 개인을 길러낸다, 하지만 평군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율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개여야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느 ㄴ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그럿을 촉발해야한다,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차이를 보편적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글이 생명력을 갖는다, 내가 쓴 글이 숨 막히는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 위안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막을 옥토를 만들 물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왜라고 묻는 글 자신을 다양한 존재로 개방하도록 등 떠미는 글 도덕 위에서 춤추도록 깨달음의 오르가즘을 선사하는 글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신체가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  자명한 것에 물음 던지기 -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창작자의 임무이다, 창작 분야 종사자중 '대체 가능한 존재;는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아니어도 남이 할 수 있으면 그건 누구나 할 수있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어야 한다, 박완서의 글은 김훈이 흉내낼 수 없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것을 삼갔을 뿐이다"라고 했다, 내가 글응ㄹ 쓸 때 꼭 염두에 두는 말이고 학인들에게도 자주 당부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이다,

 

                                -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 

 

 

좋은 글에는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 있다, 나는 왜 언제부터 그 일을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갖게 되었는지 일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일에 대한 환상이 어떤 지점에서 깨졌는지 이 일을 계속 할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느낌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더 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업 그게 문제의식이다, 우선은 나를 향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 말이다,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돋는가? 꽃들이 피거나 폐허가 되거나 돌이 굴러와 뿌리를 내리거나 할 거싱다, 관찰하면 신비롭다, 살면서 무수히 겪게 되는 별의별 일들 소소하든 대수롭지 않든 그것을 통화한 시체는 변화를 겪는다, 이같은 잀강의 풍경과 생각과 느낌이 별처럼 은은히 차오른 글은 구체적인 한 사람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럴 때 그 글이 다른 이의 경험이나 감정과 겹치고 공감을 낳는다,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았던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 아니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두려워서 아니면 막막해서 마처 들쳐보지 못한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 살뜰히 드러내주면 덩달아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 다른 무음표가 된다, 내게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안의 사유를 낳는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 사유하기 -

 

 

한 사람의 독특한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가늠한다, 직업과 취향 인생관을 파악한다, 긍정적으로 사는지 부정적으로 사는지를 단어와 말투로 짐작한다, 그러니 어떤 단어를 주로 쓰는지 욕설을 자주하는지 간결한 화법을 좋ㅇ하는지 말끝마다 부연 설명을 붙이는지 심지어 문법적으로 수동형을 좋아하는지 능동형을 좋아하는지 사투리를 쓰는지 말끝을 흐리는지 그대로 전하는게 좋다, 또한 무의식적인 몸짓과 행동마저도 성격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말을 하면서 헛기침을 해대는지 어렷이 걸을 때 앞서 걷는지 뒤로 쳐지는지 아시다시피나  사실 가령 같이 자주 사용하는 말버릇이 있는지 그러한 디테일을 살피면서 글의 생생함을 더할 수 있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유쾌한 농담에서 진지한 토론까지 하나도 놓칠게 없다,

 

 

인터부이가 될 수 있는 사람과  못되는 사람의 구분은 자기 표현의 능력이 아니었따, 사회적 관계의 여부다, 보이는 존재인가  보이지 않은 존재인가  관계의 끈이 없으면 자기를 규정할 수도 없고 존재가 드러날 수도 없다, 백 세 어르신에게 반찬봉사를 다니던 한 사람이 어른신의 누워 있는 등을 보고 삶을 읽어내고 번역했듯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보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느낀다, 가장 큰 가난은 관계의 빈곤이다, 관계가 줄어들면 자아도 쪼그라들고 관계가 끊어지면 자아도 사라진다,

 

 

                    -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

 

 

책을 사야하나 잠시 고민한다,

무심하게 읽다가 순간순간 멈추는 지점이 점점 많아졌다,

빌려온 책에 줄을 그을 수도 없고 포스트 잇을 붙일 수도 없다,

그저 기록할 수 밖에....

 

글쓰기가 자기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건 충분히 알 고 있었다,

자기의 내면을 직시하고 응시하는 것 그건 어떤 힘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을 용기라고 할 수도 있고 솔직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기의 감정과 내면 생각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어떤  감찰자도 없이 솔직히 드러낼 수 있을 때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간다,

내가 가진 것이 상처라는 걸 안다는 것 그리고 마주보고 드러낼 줄 아는 것

그게 결국은 치유의 전부이다,

그 과정에 읽기 말하기 쓰기가 있다,

글이 두서없고 너무 허황될만큼 추상적이고 몽롱해지는 건 자기를 드러낼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드러낼 자기가 없다는 변명속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뭘 써야 할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과도 통한다,

얼마를 살아왔건 살아온 시간에는 제각각의 무늬가 있다,

그 무늬를 손가락으로 그려보고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직시할 수 있는 힘다,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글이었다,

모든 글은 사람에 대한 게 아니었던가

풀이든 돌멩이든 동물이든 하늘이든 심지어 기계나 상점이라도

그것이 사람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쓰는 것이기에,,,,

 

글쓰기로 나를 표현할 줄 알게 되면

다음은 타인을 들여다 봐야 한다,

타인의 글 타인의 말 타인의 아이기

그것이 나를 퐉장하는 일이고 나를 조금은 다르게 만드는 일이다,

 

읽고 말하고 쓰는 일,,

그건 결국 살아있다는 것이고 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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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북플이 합평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때로 자신이 왜 느긋할 수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기본값을 싸그리 무시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유배반적이기까지 합니다, 핼조선이라는 과격한 단어 대신 온건한 말을 쓰자는 말에는 격하게 반발했던 이도 동시에 다른 상황에서는  '아니 좋게 대화로 풀어야지 뭘 그렇게 화를 내?'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온건한 헛소리는 겉보기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평화로워서 문제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쓴느 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힘을 가지고 있는 편에 섰기 때문에 소리지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p 80

 

 

상황은 비슷합니다, 자식과 교수으ㅟ 말 자체에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가저의 평화 청년의 패기라는 가치는 아름답고 이때 분노하는 사람들이 좋게 넘어가면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누군가가 좋게 넘어가자 며 분노하는 이들을 온화하게 타이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분노할 필요가 없는 기듣권이기 때문일뿐입니다,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독권이 설파하는 아름다운 의도는 무의미하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좀 깨닫고 예쁜 헛소리는 넣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의도는 좋고 아름다울지언정 기득권의맥락에서만 가능한 많은 말이 별 여과 없이 매체에 실리고 또 한 번 파급력을 갖습니다, 문제없어 보이거나 듣기 좋은 말이 오히려 위험한 이유는 이겁니다,   (중략)   그러나 학식있고 교양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성찰 없이 뱉는 말은 말 자체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나아가 바람직한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불균형에 히을 실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건 청년들이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바람직한 의도의 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말은 왜 '아프면 환자자 뭔 청춘이냐'는 빈정거림을 낳았던가요?  

                                                                                    p 83

 

물론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이르는 결말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값이 여성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쪽에 맞추어져 있을 경우 다른 선택지를 확보하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청년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독려하는 팔자 좋은 태도를 취하기 이전에 청년의 열정에만 기대게 된 현 상황의 문제점을 개선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사랑으로 포용하고 이해하기를 강요받아온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미명으로 포장된 사랑이 아니라 설득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자유입니다.

여성에게는 상대를 이해시키거나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지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정말로 미미합니다, 눈치없다는 소리가 듣기 싫다면 성대결이 아닌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기 전에 여성의 선택지를 사실상 박탈하고 인내와 수용응ㄹ 여성의 당연한 속성인 양 착취해온 현실부터 직시해야합니다, 여성에게 실제로 어떤 선택지가 있으며 각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얼마만큼 실현 가능한지에 집중해야 그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p 86

 

 

당신을 오독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그때의 어조는 당연히 온화해야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면 당신은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받아들여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얻기위해 목소리를 냈을 뿐 당신에게 상대를 설득할 의무는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야할 의무는 더더욱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내킬 때에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이가 너무도 많은 상황이기에 상대가 당신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음을 다욱 강조하게됩니다, 

 

                                              p87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소란한 이유는 '여성혐오범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것이냐 묻지마 범죄라는 기존의 이름을 쓸것이냐로 주장이 양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이름인 묻지마 범죄는 살인처럼 태초부터 있었을 것 같은 죄명과느 ㄴ달리 생겨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입니다, 찾아보니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처음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역시 이름은 필요에 의해 임의적으로 생겨납니다,

 

 

이름이 생기면 부를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실질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낱낱이 흩어진 경험을 한데 모음으로써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 가시화되므로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할 단초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름이 없어서 사건마저 지워졌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름이 생기더라도 그 이름을 붙이는 기준은 게속 논란이 될 것이고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만사가 단번에 해결되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혐오범죄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사건이 없다머 개별 사례를 부정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분명히 뭔가를 모르고 있거나 잘못알고 있는게 분명한데

입이 딱 막힐때가 있다,

머리가 순간 정지되고 모든 것이 얼음 ! 이 되어버리는 상황

순간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올라오기시작하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감정싸움으로 심지어는 개싸움으로 번질거같은 위기감

 

상대는 실실 웃으며 여유를 갖기시작하는데

나혼자 바짝 약이 올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

저 말을 확 받아서 뭐라도 치고 나가고 싶은데 머리속은 하얗고

 

"저러는거 보면 남자한테 완전히 채였나봐"

" 그러다가 시집 못간다"

"남자들 보라고 입고 다니는거지 봐달라는데 봐줘야지"

" 너무 똑똑한 여자도 피곤하다"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남자도 살기 피곤한 세상이야 여자들만 그런거 아니야"

"여자가 대통령이 되니까 이모양이지"

"

등등등

 

그 중에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이

"좋은게 좋은거 아니야?"

누구한테? 무엇이? 왜? 어떻게? 얼만큼? 좋은지

단지 너한테만 좋은거?

웃기고 있네...

그런데 이런건 전혀 이성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상대를 당혹하게 하지도 못한다,

좋은거.. 좋지

근데 그게 누구한테 얼마나 좋은건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본적은 있는지?

누군가가 좋기 위해서 세상의 가정의 직장의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하는게 당연한거? 

그저 만사 아무렇지 않고 무탈하기만 하면 그 밑에서 어떤 지지고 볶는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거?

떠들고 따지고 반박하고 행동하는거 그거 다  시끄럽고 별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방에 일축해버리는 일?

그것들 앞에서 푸들도 아닌데 늘 부들부들거리기만 하고 에베베하다가 말았던 슬픈 기억....

이겨도 찜찜하고 지면 더 억울한 기분,,

 

사실 책 속의 모든 메뉴얼이 다 와닿는건 아니다.

근거가 희박하고 많이 주관적이고 반박당할 여지도 많다

그러나

내가 설명할 필요가 없지

모르는 건 너희 잘못이니까

그 좋은 머리 어디다 쓰겠니 미리미리 공부좀 하지

이렇게 속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으니까 그걸 알아줘서 고맙다

 

어쩌면 시비든 건성이든 이렇게 물어보고 질문해오는 이들이 그나마 나은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틀린건가?

세상엔 아직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가 가부장적이라는 것 이사회가 아직은 자신들이 기득권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채 그때보다 전에보다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것에만 더 골골하는 족속이 아직도 많다,

 

 

이 책의 장점은 딱 페미니즘을 논할 때 뿐 아니라

어떤 분야건 갑의 입장에서 꼰대의 입장에서 가르치려고 들고 바뀌고 싶어하지 않고

나대고 떠드는 것들이 너무 싫은 누군가를 대할 때도 좋은 메뉴얼이 될 것이다,

 

앞에서는 어버버하며 얼음이 되었다가 집에 돌아와서 양치질하는 순간 대꾸했어야 할 말이 떠올라서 혼자 머리를 찧으며 방방 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시길,,

그렇다고 나아질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읽는동안은 통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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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12-2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님의 책 추천 방법은 완전 매력적이십니다.
‘그렇다고 나아질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읽는동안은 통쾌합니다,‘라니,
저도 읽는동안의 ‘사이다‘를 위하여~^^

푸른희망 2016-12-21 14: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사실 책을 많이 읽는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나 어떤 가치가 있나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저 머리만 커지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읽는동안의 즐거움이나 통쾌함도 포기할 수 없거든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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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주 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래되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의미는 이랬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말  오늘도 무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집 밖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곳인지 아니까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다시 집 밖을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말고는 할게 없더라구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미취학 그것도 기저귀를 달고 있거나 막 떼었거나 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

집 밖에 두려우면 얼마나 두렵고 학교가 힘들면 저 혼자 힘들까 싶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왕따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거 같고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학교가 위험하다는 표현은 듣기 거북했다,

너무 애를 감싸는게 아니야?

내 애를 위해 내 아이 내 가족을 제외한 모두를 나쁜 편으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정의감도 들었다,

 

#  2

 

아이를 키우면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우스개소리로 하고 혹은 심각하게 알게 되는 것이

내 아이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있는 곳에서 행동하는 것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특히 엄마는 그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어야 한다

라는 아주 모순된 두 문장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를 믿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심해서도 안된다,

그건 늘 모순이지만 진실이었다,

 

 

#  3

 

몇번 썼던 적이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심각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들이 순진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정의롭게 흘러가고 어른들 말을 잘 듣고 쉽게 반성하는 건 동화나 영화속의 이야기일뿐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로 말갛게 거짓말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입히고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편안하게 무탈하게 견디는 공간과 시간은 누군가는 어렵고 힘들게 견디기도 한다, 같은 대상 같은 공간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가 힘들었을 때 너무 좋은 엄마처럼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거웠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내 아이가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문제를 크게 만든다고도 생각했고

아이들의 문제는 누군가가 가해자고 누군가가 피해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는 부분도 있어서 우리아기가 전적으로 피해만 보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

나 스스로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위축되기도 했다,

솔직히 그런 아이가 부끄럽기도 했고 왜 남들처럼 무탈하게 살아주지 않는지 표나지 않게 원망도 했고 아이때문에 내가 움츠려 드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도 했다,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아 한다는 걸 알지만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았지만

내가 힘들고 내가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한 적도 많았다,

말하지 않으면 더 묻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들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는데 싶기도 했고

어쩌다 아이가 보여주는 밝은 모습이나 학교 생활을 재미나게 들려줄 때는 그래 이렇게 괜찮은 걸 괜히 걱정했구나 스스로 다독이면서 이게 원래 모습이라고만 믿고 싶었따

어쨌든 나의 태도는 두려워서 무능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머리 큰 자식 문제를 부모가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모른 척하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이 순간만 잘 모면하길 바랬던 것이 내 솔직한 태도였다,

 

 

#  4

 

지금도 아이는 친구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떨 때는 친구랑 어떻게 지냈는지 막 조잘거리다가도 어떨 땐 친구가 없어 외톨이라고 했다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다가

다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치받으면 또 자기가 친구도 없고 힘든데 왜 집에서도 가만두지 않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화를 내고 말하지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고 자주 배가 아프고 편두통이 나는 것이 사춘기 아이의 특징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우울증의 한 특징이라는 걸 이 책을 읽기전에 어디서 보긴 했다,

아 저게 다 우울증이구나...

아이가 우울질이 큰 성향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고 본인도 인지하고 있으니 더 크게 번지지는 않을거라고 몰라서 대처못하는 상황은 없을거라고.. 그리고 누구나 조금씩의 우울한 기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나도 설마 우리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아이들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버릇없다고 종종 생각될 만큼 솔직하게 감정이나 욕구를 드러내니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고 나를 위안하고 있었다,

가끔은 살얼음 위를 지나는 것처럼 불안해서 이러다 내 명에 내가 못살겠다 여기다가도

이정도이기만 해도 감사다하다는 나날들이 번갈아 온냉탕처럼 지나가면

서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과 살고 있다,

 

 

#  5

 

우스개로 넘기기엔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한 아버지가 작고 여린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학교에서 맞고 다니진 않은지 혹시 덩치 큰 녀석들이 내 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은지 아버지는 늘 아들을 염려하고 관심을 가졌다, 혹시 누군가가 괴롭히지 않은지 때리지는 않은지 늘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염려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부모호출이 왔다,

아버지는 아 내 아들이 누군가에게 맞았구나 큰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학교로 달려갔더니

세상에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고 또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한탄 하는 아비에게 아들이 그랬단다,

아버지는 내가 누군가에게 맞고 다니는지 괴롭힘을 당하는지만 물었지 내가 누군가를 때렸냐고 누구를 괴롭혔냐고는 한번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답할게 없었다고....

누구나 부모라면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 전전긍긍하지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염려를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평범하고 그래도 잘 컸다고 믿는 내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학교폭력 실태나 사례를 볼 때도 피해를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만 눈여겨 보고 일반 저잣거리에 떠도는 가싶에도 누구가가 피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만 소문처럼 떠돌 뿐이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그 부모도 똑같고 그렇게 키웠으니 그런 자식이 나왔다고 그러게 철석처럼 믿으면서 나는 나쁜 부모가 아니니 내 자식이 나쁜 자식일리 없다고 믿는다,

 

 

#  6

 

어릴 적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기억에 가장 어릴 적 죽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아이였고 내가 잃어버린 우산만 5개가 넘어가서 늘 그 문제로 혼나곤 했는데 드디어 6개째 우산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면 혼날 게 뻔하고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어쩌면 우산분실은 핑계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언가로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모든게 그 모든 괴로움은 내탓이었고 나만 없으면 다 괜찮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굳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했던거 같다

그 때 나를 살린건 나의 소심함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자니 떨어지는 순간이 두려웠고 칼로 자해하지니 그 고통이 끔찍했다, 목을 매달까 했지만 숨막히는 순간의 고통이 느껴져서 싫었다,, 결국 어떤 방법도 무서워서 그냥 엄마에게 야단맞는게 가장 덜 아프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야단을 맞았는지 어땠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때 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오래오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그때도 그 이후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도 내가 그랬다는 걸 절대 모른다,

나 역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이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죽는것 보다 더 싫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에게는 잘 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런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마음  알아봐도 소용없을거라는 마음이 뒤섞여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더 웃고 더 활발했던 걱 타았다,

결국 그렇다 책에도 나오지 만 속이려 들려면 누군든 속일 수 있다,

다만 모든 사건 이후 결국 그때 그런 행동이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그때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숨겨왔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른바 '완벽한 아이들" 이야기가 무척 많아서 놀랐다, 과학박람회에서 상을 받고 육상대회 메달도 휩쓸고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뚜렷한 징후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성적이 떨어지고 성생활이나 약물에 탐닉하고 위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워낙 빛나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능력이 탁월한 만큼 부모가 가지들의 끔찍한 고통을 보지 못하게 숨기는 일도 잘 했다.,

 

 

 

토맘스 조이너 박사는 심라학자이자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사람으로서 꼼꼼한 자료조사는 물론 공감과 개인적 관점이 담긴 아름다운 책을 쓴다, 세걔의 원이 겹쳐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되는 조이너 박사의 자살 이론이 이 분야를 새로이 정의했다,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했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 (나는 혼자야) 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 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거야) 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 위험에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번째와 두번째 심리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몇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였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명을 살려주었습니다,

 

                         피터 레먼 박사의 이메일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에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느 ㄴ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공부를 할수록 딜런에게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것들을 배워나간다,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되나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 딜런에게 집중하고 캐묻고 다그쳤더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밀착했더라면 조핬을 것이다,

이런 후회를 하지만 딜런이 파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뚜렷한 징조는 전혀 없었다,

 

 

모든일이 지나고 나면 명확하게 보인다,

저자 수 클리볼드도 컬럼바인 사건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계속 딜런을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생각하면서 조각들을 맞추어간다,

그때 그런 행동이 징후였을까 그때 나는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그때 그렇지 않았떠라면 혹은 그랬더라면 그때 그 아이의 행동을 그냥 사춘기의 특징이라고 넘기지 말았더라면 뒤늦게 모든 것이 뿌엏게나마 보이고 모든 것이 회한이었다,

 

자기 자식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관심이 없는 부모가 있을까

수 클리볼드도 그렇다,

책을 보면 그녀도 최선을 다했다,

딜런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모의 모습도 있겠지만 누구나 그만큼 하고 누구나 그만큼 무지하고 무심하다, 내가 그때 다가갔더라면 내가 그때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었더라면 하는 회한속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빈공간에 내 이야기로 채우지 말고 가만히 옆에 있어줄걸. 이라는 거였다,

나역시 그렇다,

내 아이가 잘못될까봐 손가락질은 당하지 말하야지 무시당하거나 잘못 컸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어쩌면 대화의 70퍼센트는 잔소리인지도 모르고 타이르고 가르치고 주입하는데 보냈던거같다, 아이가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는 것

그 당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고 내키지 않은 마음이 있고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을 수도 있고

죽기보다 하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모든 걸 해야하고 좋게 보여야 한다는 걸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주입하면서

사실 나는 내 아이가 잘 컸다는 것으로 내가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거 같다,

어쩌면 수 클리볼드도 그런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동동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모습이 내 자부심이기도 한 법이ㅏ,

 

아이는 잘 못된 부모탓이 아니고 총기 사용의 문제 왕따문제 사춘기 감정의 문제 뇌건강의 문제(이 책에서는 정실질환이 아니라 뇌건강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복합적이었다, 어는 것 하나가 원인이가고 당위성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문제이며 동시에 모든것이 문제가 아닐 수 도 있는 일이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볼 때 명확한 대답이 나오면 모두가 편하다,

부모의 방치나 폭력이라고 나오면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니까 하고 안심하고

학교 폭력이나 왕따라고 하면 내 아이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 아이의 피해만 살펴보게 되고

불안한 사회 경쟁의 심화라고 나오면 사회탓 시대탓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대상을 정해 화풀이를 하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안도해버리는 일

그것은 아니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인이며 동시에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한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것 그때읙 정서와 뇌건강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우리가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

더 크게 확장해서 사람이 누군가 타인을 이해하고 완전히 안다는 것

그건 불가능 한 일일것이다,

내 자식이라 가장 가까워서 늘 함꼐 하니까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속기 쉽고 속이기 쉬운 존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철석같이 믿으며 전혀 의심하지 않은 그 절대성의 틈을 비집어 틈은 내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아니었을까

무조건적인 믿음 그리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동시에 갖는일 ..

그것이 관계에 대처하는  어쩔 수 없는 자세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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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결점은 곧 부모의 결점,
자식의 좋은 점은 곧 부모의 좋은 점

대부분 부모가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저희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이 생각에 너무 집착하면 자식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은 점만 보려고 합니다. 자식이 결점이 곧 부모의 결점에서 비롯한 일로 받아들이니까요. 제가 부모가 되지 않아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결국 부모를 닮지요 보웬의 다세대 전수과정 이론이 괜한게 아니거든요 자기를 닮아서 애틋하다가 밉다가해서 마음이 더 복잡할지두요^^

hnine 2016-12-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더 잘하고 못하고는 그야말로는 번호 붙이자면 5번이나 6번쯤 순서에 있을까요? 그보다 더 신경써야하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에 비하면 저는 공부와 성적은 한참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라서요.
내가 보는 아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은 고개 끄덕여지면서도 또 한편 마음이 서늘해지네요.
저자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만 아무튼 자식 키우는 엄마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자식 얘기라고 흘려듣게 되지도 않고요.

푸른희망 2016-12-13 17:28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답이 없는 일이라 늘 어렵지요

머리로 아는것도 몸으로는 영 움직이지않은것도 많구요
 
소중한 경험 - 김형경 독서 성장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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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엔 작가의 책을 완독하지 못 했다
누군가가 좋았다고 권해주었지만 늘 피했었다
ㅊ걱이 내게 오는 인연이 있긴 한가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소중한 경험이다
독서치유에대한 그동안의 공부가 정리되는 경험도 되었고
나롤 되돌아 봐야 겠다는 시작도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늘 눌렀던거 같다
이성적이고 조곤조곤 소심하게 따지는 성격이라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 불편했었다
책일기는 늘 각성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받아든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요사이 그래도 많이 말랑해졌다고 믿지만 아직 길은 멀다
읽기를 통해 공감하고 나를 보게되는건 이제 가능하다
조금 더 들어갈 필요는 있겠지만

권할만한 좋은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맞지않고 불편해서 눈길도 주지 않던 책이 내게 들어왔음이 놀랍지만 소중한 경험이라고 해두자
지금 이 순간 이 책이 필요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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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난 뒤에 알라딘 서재/북플에 글을 남기는 일도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푸른희망 2016-11-22 13: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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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고나니 공부가 하고싶다.

말랑말랑하고 코믹한 표지처럼 이야기는 심각하지 않게 흘러가지만  신간센을 타고 간사이에서 도쿄까지 다니며 공부하는 저자 하루카 요코의 3년은 처절하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무어라 반박할 수 없어 억울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

나도 안다,

살아가면서 이게 내가 나쁜게 아닐까 왜 나는 맴사가 걸리고 억울할까

그런 생각은 지금 어떤 여성도 한번은 해보지 않았을까

나만 참으며 다 편해지는데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고 화를 내며 분위기를 망치면 안되는데

가정에서 모성응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그리고 모임의 꽃으로

여자는 그냥 그들이 보고싶은 모습으로만 살아야하고 원하는 바대로 모양을 억지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그렇게 드러내면 나만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되는 상황

그게 21세기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여성학을 접했다,

이런 학문도 있구나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젠더, 모성 성차별 사회에서 씌워진 이미지

여러 이론가들 논문들 저서들....

현실에서 적용되는 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론이었고 너무 과격한거 아니야 싶은 면도 있었고 강의실 시험 리포트에서는 여성학은 언제나 옳았지만  강의실에서 나서는 순간은 모든게 그저 이론일 뽄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졸업하고 20년간 많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많이 잊고 살았다,

굳이 여성학으로 무장하고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 세우고 살지 않아야 편하다는 걸알았고

그래도 억울할때는 뿔을 내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좋은게 좋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억울한건 여전했고.....

 

그때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억울한 마음이 하루카 요코를 통해 다시 본다,

그녀는 용감하게 3시간의 신간센 통학까지 하며 공부를 시작한다,

내게는 낯설지만 무섭고 대단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외계어같은 학문의 세계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견디고 도전한다,

이렇게 심각하게 낯설진 않았지만 그때 내가 여성학을 접할 때가 떠오른다,

그러나 난 단 두과목의 수강으로 끝이 났지만 저자는 3년을 버키고 아직 계속된다,

 

공부를 하고 지식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어떤 진리를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면서 하루카 요코는 성장한다,.

그리고 싸움을 잘 하는 법을 정말 배운다,

 

나도 정말 싸움을 잘 하는 우아한 여성이 되고 싶다...

사실 소심하고 부들부들 떨기부터 해서 머릿속이 새하애 지는 내가 싸울 일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게 큰 소망이지만,,,,

어짜피 싸울 일이 있다면 잘 싸우고 싶다

그래서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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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제가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여성학 강의를 수강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