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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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은 코메디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고민도 생각도 맥락도없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의 앞뒤가 안맞는 행동들은 분노보다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런데 그런 우스꽝스런 행위들이 힘을 얻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혐오하게 한다는게 섬뜩하다.

양성평등이 옳은 명제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은 양성으로 나뉘고 그 두 성이 서로 평등한건 당연히 옳다고만 생각했다.
양성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사이에 다앙한 성들이 있었다.
일반적 다수가 가진 성기와 성적취향만으로 기준을 삼으면 배제되고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성들이 많아진다는걸 몰랐다.
평등이란건 결국 양팔저울이다
균형이 맞지않은 양팔저울은 한쪽이 올라가고 동시에 다른 한쪽이 내려와야 평등한 균형이 된다.
현실의 남성 평등에서 여성쪽의 추는 올라가기위해 즉 남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남성쪽의 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균형을 맞춘 저울은 한쪽이 이그러처버린 이상한 모양새로 서로 마주한다
평등이란 어떤 기준에 다른쪽이 맞춰가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닮아가며 동시에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해야한다.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그들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어떤 평등도 이그러진 저울이다.

나도 제주 모 검사장의 사건을 바바리맨 사건으로. 변태짓으로만 생각했다.그런 나의 규정에 어떤 불공정함 편견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 의미로 두번째글은 내게 내려진가장 세찬 도끼질이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가지 양성만 존재하며 그 이외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더라도 비정상이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글에 동의하든 아니든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알게 해준 도끼질이었다,

 

세번째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서 여러번 읽었다,

사실 한번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잗을도 있었고 그래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에서 미성년자 규정 연령을 내려야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조금 헷갈렸다, 내가 예 아니오 라는 테두리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은 나중에 깨닫는다,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는 성인들의 기사를 볼때 마다 불쾌하기 짝이 없고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비해 터무니없는 형량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이때 대상 미성년자의 나이를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몇살이 되었건 나이 많은 어른들의 요구는 그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권력이고 강제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동의하에 행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 동의가 과연  단어 그대로 동의인지 동의할수 밖에 없는 강제인지를 살펴야하는데 법은 너무 헐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또다시 성인의 미성년자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와 미성년자와 미성년자 사이의 강간 혹은 합의된 성관계의 문제가 있고  성인 여성의 미성년자 남학생에 대한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등등 사안에따라 생각해야할 방향이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보호되어야 할 딸의 순결이 아니라 개인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라는접근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다,

다른 모든 권리는 상한선이 높으면서 성행위에 대한 결정만은 그 상한선이 겨우 13세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나아가 그렇게 어린 아직도 애기티가 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성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네번째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사실 잘 알지 못하다가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번번히 거론되면서 흘려들은 게 전부였다,

당신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발끈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

누군가의 행동은 당연한 반응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반응은 공겨기고 있을 수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미러링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고 일그러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는 ,,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관념일 뿐이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억압과 차별에 대해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못알아먹는 사람이 셍각외로 너무 많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없어서 고도의 블랙유머나 해학을 알아먹지 못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어긋나면 모든 것이 잘못된 일이고 틀린일이다,

 

두고두고 자주 들춰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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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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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한다, 그 책이 통과한 후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늘 제자리이고 그 모양 그 꼴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왜? 늘 질문을 하며 읽었어야 했다,

늘 비슷한 책들 내 취향에 맞는 내가 소화시킬만한 양념이 듬뿍들어가고 연하게 숙성시겨서 입에 맞게 잘 잘라놓은  책들만 읽었다,

물론 사이사이 나름 독서근력이 필요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냥 읽었을 뿐이엇다,

읽는 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었고 몸이 떨리는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하는 쨍한 두통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예전의 나였다,

처음 어딘가에 잘못끼워진 단추가 분명히 하나가 있는데 쓱 보기에 아무렇지 않고 멀쩡해보여서 그냥 계속 단추를 채워나갔는데 순간 마지막 구멍이 하나 남거나 단추가 하나 남은 꼴이었다,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열심히 알게 되고 느꼈고 배웠는데 나는 여전히 나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아이들에게 혹은 덜렁대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 쉽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하고 예측을 해서 행동하라 그래서 실수를 줄여라  아니 없애라.. 뭐 그런 의미겠지만

책을 통해 나는 이제 행동하고 생각하라,... 를 더 믿게 되었다,

자꾸 생각만 하고 계산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나면 행동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계속 불안하고 아직은 아닌거같다는 주저함만 남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사건이 터지고 모든 일이 과정을 넘긴후에 되돌아보고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 그 의미를 찾는 일일 뿐이다, 늘 사후 약방문같은 거고  일 처리후에 남기는 보고서같은 것이다,

물론 미리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정돈된 이론이나 관념은 늘 뒤에 따라오는 거였다.

내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저질러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내게는 필요했다.

늘 준비하고 준비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 챙겨야 할것들의 목록은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끝이 없이 계속될것만 같고 이대로 일단 저지르는 건 누군가 등쳐먹는 일이거나 사기치는 일같다는 스스로의 검열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뭐 그런 말만 되내이면서 계속 생각하고 준비하고 또 생각하고....

배가 덜 찼어도 옴직일 수 있고 부족한 건 하면서 혹은 살면서 채워도 되고 덜 채워진들 어떠하랴 하는 마음을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도록 갖질 못했다,

그런 처지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턱없이 높아서 왠만한 변화나 발전은 변화도 발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보니 늘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고 배고픈 가오나시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끝없이 채워야 할 것들의 목록만 쥐고 있다,

내게 책 읽기는 계속되는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지 이 이상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저자의 독서목록에서 내가 읽었거나 들어본 책은 열손가락을 채 꼽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책이었고 이런 책도 있나? 이런 주제의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무지한 끄덕임만 계속되었다,

몇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고 몇권은 끌리긴 하지만 내가 읽을 거 같지않기도 했고 몇권은 나도 읽었지만 전혀 다른 감상이었고 ... 그랬다,

처음엔 말랑말랑한 문장들도 보여서 뭐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자만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파이이야기> 는 나도 꽤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 좀 더 느낌이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그저 리처드파커와의 이별을 통해 저자의 상실감을 이야기해서 조금 실망이긴 했지만 다른 글들에서 나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참 잘 정리하고 표현했구나 싶은 문장들에 샘도 나고 그랬다,

연재를 했던 글이라 쓸 때의 감정이나  상황등이 제각각일테니 어떤 글은 너무 과잉된 감정이 보이고 어떤 글을 필사를 하고 싶을만큼 완벽하게 좋았다, 아주 잘 쓴 글 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른 거지만 아주 잘 쓴 글..이란 말이 주는 매끈함은 없지만 투박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파도치는 감정들이 모두가 절실하고 솔직했다, 투박할 때도  이게 뭐지 싶게 툭 끝맺음이 있기도 했지만 글은 경험하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나름 자기가 찾은 자기의 답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 되고싶었다,

누구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해내고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억울하고 이게 아닌데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 순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일들이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었다,

부모의 말이라고, 어른의 말이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면서 잔뜩 약이 오른 모양으로 소리만 꽥꽥 지르는게 전부였던게 어린 맘에도 참 창피하고 분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책읽기의 한 시작이 되었던거 같다,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점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모르는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따지기 좋아하던 꼬마는 말없는 사춘기를 지나고 말없는 성인이 되었는데

속에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넘쳤고 그게 한쪽으로는 열등감도 되어허 누군가  몇 마디 하지도 않은 내 말에 딴지를 걸거나 내가 미쳐 표현하지 못한 언어들을 유창하게 드러낼때 바글바글 속만 태웠다, 나 내가 저랬어야 했는데,,.. 저건 내 생각이고 내 언어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몇번을 경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으면서 나는 점점 입을 닫고 책속으로만 들어갔지만

어려운건 이쪽으로 치우고 위험한 건 저쪽으로 치우고 맘에 안드는건 던져놓으면서 내 취향 내 수준에 맞는 독서만 게속이어갔다,

누군가가 권하는 책 누군가가 읽고 좋다는 책을 몰래 아닌척 읽으면서 왜 나는 좋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게 이해가 안되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 정작 책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는 태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책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을 보여주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렇게 제각각 다른 책이 된다, 그걸 나는 몰랐다,

타인이 알아낸 것 타인이 느낀것 타인이 감동한 것을 나도 똑같이 알지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해서 늘 동동거렸다,

저 사람은 저런 책도 읽어내는데,. 나는....

오랜 독서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누군가를 따라하고 흉내내고 질투하면서 보냈었다,

차라리 누군가 한 사람읨 모텔을 놓고 따라하는 책읽기라도 했더라면 나았을까 싶게

마음만 급해서 이사람 저사람 마구잡이로 흉내내고 따라하다가 제풀이 지치곤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선명해지는 건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것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그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내가 아는 것이며 그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내 것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했다,  책이 누군가 타인에게 다다르는 길과 나에게 다다르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하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만났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 내 감정 내가 했던 실수나  결과은 오롯이 내것이어서 그런 단하나의 내가 만나는 책은 또 다른 단하나의 타인이 만나는 책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나름 괜찮게 책을 읽어왔던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내 방식으로 읽었던 것이고 그걸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안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게 그걸 말해줬다,

계속 너의 방식으로 읽어라 대신 너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라,,

읽을수록 불안하다는 건 읽을수록 겸손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마음이다,,)

읽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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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북플에 접속하면 관심 있는 책들을 많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 취향과 거리가 멀고, 읽으려고 해도 다른 책에 눈길 가느라 읽지 못합니다. 선호하는 취향에 맞는 책을 읽을 때가 마음 편합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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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모든 비문이 다 등장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읽습니다. 처음엔 이런 실수는 안하지 하고 큰소리치며 읽다가 점점 넘겨갈수록 예문들을 보며 이것도 꼭 고쳐야하나싶은 맘도 들었는데 소리내어 읽어보니 알겠습니다. 멋부린 비문임주는 어색함과 반듯하고 단순한문장의 익숙함의 차이?
글을 쓸 때 사실 내글 전체적 맥락이 이상한지 괜찮은지만 생각했지 내 문장은 간과했네요. 그 문장하나하나가 모여 글의 맥락이 되고 주제가 되는것인데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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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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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위치한 계급과 경제력 학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조건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이해하는 범위내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타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배워서 되는 일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나도 넓은 세상의 아주 사소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지하고,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꾸 되물어보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기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판단이나 조언없이 그저 들리는대로 들어주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자꾸 개입하고 싶은 나 자신을 눌러야 하면서 그 마음에 이입하고 동시에 다시 나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게 하는 힘 그게 필요하다,

 

가정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는다,

폭력에 노출되어 계속 반복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그 되풀이되는 폭력에 익숙해진다고 생각했고  왜 여성들이 그 지옥같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가를 의아해했을 뿐이다,

나 역시 어쩌면 세상에서 운 좋게 양지만을 밟아 오면서 모든 세상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 유사 남성일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양한 연령과 학력 계급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다,

여러 사례에서 피해 여성들은 다양하다

단순하게 학력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여려움이 있는 여성들이 주로 폭력에 시달릴 거라는 편견

적어도 배웠고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여성이라면 폭력에서 벗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남편의 문제( 외도나 폭력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에서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떠도는 말인데 남편의 연봉이 얼마 이상이라면 그냥 참고 살아라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라는 거다.,

세상은 이혼녀에게 더 각박하고 험난한 곳이라는 말도 늘 곁들여진다,

물론 그런 조언이 시도때도 없이 맞고 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왠만하면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그놈이 그놈이고 세상은 혼자 사는 그것도 다시 혼자 살게 되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쉽게 보거나 실패한 인생으로 보는 게 전부이므로 새로운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그게 꼭 현실적인 조언인마냥 돌아다닌다,

 

또 하나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간혹 이혼을 고민하면서

아직 경제적 자립도 힘드니 아이는 두고 나오면 어떨까 하는 고민글에

빠지지 않고 붙는 댓글이 이것이다,

얼마나 독하면 자식도 버리고 나오려고 하느냐

돈이 없어도 파출부를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렇게 악마같은 남편이 자식인들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줄 아느냐 아이를 버리고 나오느니 차라리 참고 살아라

 

결혼한 여자는 이미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다,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며 딸일 뿐이다,

남들은 참고 사는데 그걸 못참고 뛰쳐나오려고 하느냐

아이 생각하지도 않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냐

시부모는 언젠가 늙고 죽는다, 조금만 버텨라

친정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느냐

어떤 선택이든 그 곳에 나는 없다, 주위의 눈만 바글바글 존재하고 책임없는 훈수들만 존재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 중에는 아이만 다 키우면 다 혼인시키고 나면 이혼하겠다고 결심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있을 거다 많이...)

결국 아이에게 결손가정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 오롯한 자식에 대한 책임을 여자는 짊어지고 있다,

학령기 아이를 애비없는 자식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애미없는 자식)

사춘가 아이가 혹시나 남들고 다른 부족한 가정형편으로 삐뚤어질까봐

행여 취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혼인에서  손가락질 받거나  꺼려지게 될까봐

나아가서는 혼인 후에는 사돈보기 남사스럽고

이미 살아온거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라고 그럴까 하는 마음에

결국 모든 선택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만하면 나쁘지 않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세상이 바뀌어 여성상위시대라고들 했다,

알파걸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남녀공학의 남학생은 여학생들을 위해 깔아준다고들 하고 여성의 대학진학율이 높아지고 상위 성적을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사법고시등등에서 여성 합격율이 높아지고  있다, 교실에서도 여자애들은 만만하지 않다, 일단 말싸움에서 남자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은 논리와 표현력과 단결력까지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주먹이 날아가면 결국 폭력을 택한 남자아이는 야단을 맞는다,

부모들은 말한다, 여자애가 남자애를 자꾸 살살긁어대니까 그런거라고

결국 남자애들이란 단순하니 감정이 앞서서 때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결국 매를 벌는 짓을 하고는 여우같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때린 너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말로 놀렸거나 다그친 너도 잘한게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다,

여자는 대꾸하거나 말대답을 하거나 논리를 앞세우며 남자에게 대척하는 순간 나대는게 되고 매를 버는 일이 된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아들들에게 딸들가 상대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나대는 여자애들이랑 사귀지 말라고 하고 여자에게 나서지 말라고 하고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족속이라고  말하고 여자보다 성욕이 강한 존재이니 그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살랑거리지 말라고 하고... 남자는 남자는  어찌어찌해서 여자가 조심해야한다,

결국 당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조심해야할 일들뿐이다,

그러게 조심했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을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느냐고 안그래도 상처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에게 또다시 소금을 확 뿌리는 꼴이다,

 

그런 모든 일들은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는 그대로 다시 재현될 뿐이다,

니가 살림을 하지 않았고 게을렀고 내 말에 대꾸했고 무시했고 나보다 돈을 잘 벌고 나보다 더 배경이 좋으니 맞아도 된다고.. 그렇게 합리화된다,

 

 

책에서 가장 무릎을 치는 부분은 가족은 사회의 영역이 아니고 사적인 영역이라는 말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문맥 가족이란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라는 명제 그게 참 무서운 거였다,

가정  즉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로서의 존재이지 사회는 아니다,

가족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이고  그곳은 가부장적인 힘을 가진 남성 가장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격영역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알력이나 갈등은 그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사회에서 개입해야 할 곳은 아니다,

그저 사생활이라는 말로 외면받는 치외법권지역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를 맞아도 그건 부부사이의 일이고 부부싸움이란 타인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영역일 뿐이다,

누구나 알지만 눈을 감는다, 가족은 타인의 성역이고 사사로운 일이므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서로 에티켓이되어버린다,

 

가족폭력방지법이라는 것조차 매맞는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폭력으로 깨어진 가족을 어떻게든 다시 끼워맞추어서 행복하고 화목한 사회의 기본구성으로 되돌리는 것뿐이다,

여성의 고통을 드려다 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 와중에 여성들 또한 가족을 꺠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게 결국 여성의 역할로 완성되는 기괴한 구성이다보니

여성이 가족에서  도망치거나 독립해버린 순간 그것은 가족이 아니게  된다,

온간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가고 모든 비난은 여성이 감당한다,

아직 어린 혹은 예민한 아이들을 위해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남편을 위해

남들에게 우세스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그러진 자존심때문에 그저 모든 문제를 끌어 안고 가려고 하고 그 러기 위해 택하는 선택은 모든 것이 내탓이다,,, 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애교가 있지 않아서 내가 게을러서 내가 그때 한눈을 팔아서

저 사람은 순간 욱해서 너무 화가 나서 자존심에 기스가 나서,

그렇게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고 어쨌든 금이 간 가정을 부둥켜 안는다,

그 날카롭게 깨어진 모서리에 가슴을 베이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내 폭력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들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두 정치적이고 권력문제라고 본다면 폭력을 당연할 수도 있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신뢰로운 관게여야할 부부사이에도 권력이 존재해서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왜 부부사이의 폭력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아니라고 다들 믿어버리는 것이가가 문제이다,

아내 폭력이 사회속으로 나와서 이것은 더이상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할 때  불편해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 역시 불편하고 힘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내가 글로 배운 세상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 알게되는 도끼로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일이었다,

 

안서니 부라운의 <돼지책>에서 돌아온 엄마는 변한 아버지와 아들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평안하게 가정일을 분담이 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시 구타속으로 돌아가고 가족을 버린 모진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게되고 그녀를 믿지 못해 화가 난 남편의 행동에는 정당성을 얻게 되고 그녀는 점점 더 의무감만 늘어갈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 그녀조차 이혼녀라는 이름으로 쉬운 여자라는  편견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책이 나온지도 꽤 되지만  지금껏 변한 것은 여전히 없다,

념편의 폭력은 가정사이고 여자의 반응은 계획적인 범죄가 되고 

가정의 행복은 여전히 사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은 차라리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읽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일이다,

꺠닫고 실천하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몰랐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런 저속한 짐승같은 남편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남성들도 자기를 무얼 모르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스스로 누리고 있는 평온과 행복 뒤에 누군가의 눈물이 있는건 아닌지 누군가의 억울함이 숨은 건 아니지 말이다,

 

책이 도끼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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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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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맘에 든다,

일단 두께가 부담이 없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펼쳐 읽기 편하며 어디든 펼쳐지는 부분에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나의 책읽기 단계는 어디쯤일까

적어도 초급은 지났다고 할 수 있고 중급도 조금 지나지 않았을까 하고 과감하게 생각한다

고급이라고 하기엔 아직 독서력이 단단하지 않고 어려운 책은 조금씩 피하고 있는 중이니까

중급이긴한테 조금 연차가 된 중급? (이게 무슨 말인지,,,,)

한때 ebs 초금 영어회화를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왠만하게 초급은 넘어가도 될 상황이라고 판단했지만 중급은 초급보다 조금 더 어려운게 아니라 많이 어려워보였다,  한달 중급을 듣다가 다시 초급으로 계속했다,

뭐 영어라는게 언어니까 초급만 열심히 해도 문제 없지 않냐고 스스로 중급을 신포도로 만들면서

그 단계를 넘기질 못했다,

무언가를 배울때도 사실 시작은 잘 하는데 어는 순간 한 과정을 넘어가는 순간에 늘 머뭇한다,

충분히 자기 능력을 믿고 저질러야 하는데 그게 늘 힘들다,

누구나 10을 모두 가지고 앞으로 나가지는 않아요 4 밖에 없어도 10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10은 아니어도 5 6  7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라고 충고도 들었지만

늘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서 늘 나를 채워내지 않은 채 단계를 넘어가거나 남앞에 선다는 건 일종의 사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책읽기에 대한 책 리뷰를 써야하는데,, 자꾸 옆으로 이야기가 세고 있다,

이 책에서 책 읽기에 대한  충고들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다,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실 책읽기에 어떤 정해진 모범 담안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수가 인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있다,

좋아하는 책부터 읽고 조금 어려운 책도 도전하고 다양하게 읽도록 해서 지식이나 정서상의 편중을 피해야 한다든가,,

 

책에도 나오지만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세상에 내가 아는 건 얼마나 적은 부분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고 내가 모르는 작가도 많고 내가 모르는 분야도 많다는 걸 알아가는 것 결국 나는 이 우주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겸손함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양가적 감정인지 몰라도 조금만 읽어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를 인간은 읽는 인간이기만 해서 읽을 수록 점점 움츠려 들기도 하고 어쩌다 이러아러하지 않을까요 하고 언급했다가 와` 하는 눈빛들을 보는 순간 아! 실수~~ 하는 감정이 훅 하고 들어온다

읽는 건 잘하는데 그걸 안다고 드러내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읽었다고 아는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동시에 읽어도 모른다는 건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야기한다,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펼져야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움츠려드는 이유

내가 모른다는 걸 자꾸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게... 좋은 걸까? 좋지 않을까?

 

책을 읽어 겸손해진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알게 된 지식이라면 지식   정서라면 정서 자기성철이라면 성찰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니까 내가 알게 된 것 깨닫게 된것이 당연히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이정도도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누군가를 대할때 한없이 가혹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모를까? 하는 답답함을 느끼는게

항상 기준에 내가 되어버려서일것이다,

사람에 따라 어떤 부분은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월등하기도 하다,

누구나 균형있는 게 아닐 것이다,

어느 부분은 넘치지만 어느부분은 모자라는 것이 사람일진데

늘 나는 내가 가진 부분을 기준으로 넘치는 사람에게는 와~ 하며 기가 죽고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아니 이럴수가 ~ 하며 놀라고 화가 난다,

책을 읽어도 인간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이

적어도 몰라서 잘못하는 일들을 줄이는데는 도움되었으면 한다,

남의 감정을 몰라서 남의 상황을 몰라서 타인이라고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상황들

그래서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줄여나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서 모든 사람에게 적확한 대응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면서 아 이런 감정도 있겠구나 이런 상황도 있는거구나 알아가면서

그럴 때 내가 조심하고 도움은 아니더라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알아서 남주는 건 아니어도 알아서 남에게 상처 입히는 것만은 아니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책에서도 함께 읽는 모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오래 독서모임을 했지만  책에 대한 지식이나 그런 것을 더 많이 얻은 것은 아니다,

자꾸 삼천포로 빠져서 짜증나는 순간도 많았고

내가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누군가가 단정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의 욱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경험도 했고 너무 시시한 책을 선책하는 것이 한숨도 쉬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느끼는것 생각하는게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의 상황이나 성장과정 성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는 걸 늘 지나고 나서 꺠닫는다,

그렇게 꺠닫고도 다음 시간에 가면 또 열을 받고 짜증을 참고 잘난척을 누르지 못한다,

그리고 지나고 또 깨닫지만.. 늘 되풀이다,

그래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나 스스로 위안을 한다,

 

어떤 책이 내게 왔으르 때도 나의 상황에 따라 그 책이 다르게 읽히듯이

서로 다른 타인들이 같은 책을 읽는다고 같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끔찍하지 않을까

 

나는 아마  앞으로도 책을 계속 읽을 것이고

조금 변화되기도 하고 전혀 바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터무니 없이 너그러워질 수도 있고 찌질하고 통속적으로 질투하고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앞으로 두걸음 뒤로 한걸음 해가며 조금씩은 나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죽을 무렵에는 그래도 태어났을 무렵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되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책 읽는 거라는 건 변함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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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의 진짜 목적은 ‘뒷풀이’입니다. 사실 뒷풀이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독서모임에 출석했어요. 뒷풀이 시간에도 책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