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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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상황을 본다.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자기 생각이 전부는 아니다. 가까운 사람의 말들 의견들을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든다.

내 생각이나 주장이 순도 100퍼센트의 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이나 맥락들이 모여서 내 생각이 된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가오리는 자살이라는 경찰과 엄마의 말을 믿었다. 아빠가 왜 자살을 했을까? 엄마가 힘들게 했을까? 그럼 나는 아빠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힘든 순간 위로가 되었던 이웃은 누구였을까? 허무하게 살해당한 그 소녀였을까? 그 소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우울하고 폐쇄적인 그 오빠였을까

엄마의 자랑이었고 희망이던 피아니스트가 꿈이던 언니가 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은 모두 언니가 외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고 믿기 시작했다. 엄마가 먼저 시작했으나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동의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현실을 바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 마주치는 시선이 두렵고 나를 위협하는 것, 안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마주 보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알지 못한다고 살아가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고 들은대로 믿으며 내가 아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오해하거나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사는동안 어디선가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스나미처럼 몰아치는 것이 없더라도 자꾸 이상한 기시감이 들 수도 있고 불편한 감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모르고 살아가며 편안했을 미히로는 가오리를 만나면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고향의 살인사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어쩌면 이 사건으로 괜찮은 시나리오를 쓰면 조금 유명해지고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함으로 시작했으나 사건에 다가갈 수록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들은 대로 알고 있는대로의 상황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사라를 보게 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동안 찾아해맸던 답이 툭 튀어나온다.

가오리는 사실을 바로 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일어난 일 그리고 그 사실에 더해진 사람의 감정을 입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알고 나면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해 안전함을 느낀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아는 상황, 내가 아는 사실은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알 수 없는 상황은 언제 나를 공격할지 알 수 없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

한 발 더 나아가 진짜를 보고 싶을까 그럴리 없다고 덮어버리고 내가 아는 것만 붙잡고 살아야 할까

무엇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좋고 나쁨보다 더 우선인 것이 내가 안전한가 불안한가의 문제일 수 있다.


살인사건에 대한 사실들이 하나하나 들어나면서 두 사람이 가졌던 과거 기억들 그리고 감정들의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모두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죽은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던 부분이 있다.


미히로는 사건에 다가가면서 언니의 사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지만 중요한 건 언니 사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누구에게 마음이 있었고 어떤 진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언니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알던 언니, 부모님이 말했던 친척이나 이웃이 알던 언니가 아니라 언니그 자체에 다가간다. 

불안하고 감사하고 초조하고 행복했던 언니를 만나면서 언니를 이해하게 된다. 

들은대로 본대로가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어쩌면 객관적이라는 것은 그냥 나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일것이다.

모두에게 객관적인 어떤  합리적이 상황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입장 나의 위치가 아는 다른 것들을 모두 각각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객관이고 객관 역시 다양하게 존재했다.

미히로는 언니를 이해했고  가오리는 내 기억을 정확하게 맞춰가면서 동시에 자살했던 아빠를 새롭게 만나게 된다.

자살이 아니었고 아름다운 일몰을 보려다 발을 헛디뎠다는 것

언제나 내일을 기다리고 새로운 계획을 하고 행복하려고 했던 아빠를 알게 된 것


알아간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모두 알고 싶고 직면하고 싶어 애쓰고 있을 수 있다.

나의 노력이 타인에게 잘 보이지 않은 것처럼 타인의 노력도 나에게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조금 성장하고 변화하는 건 결국 잘 보는 것이다.

내게 보여주는 것, 내가 보려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시선과 위치가 필요하다.

해가 지면 하루가 마감된다.

그러나 어제가 마무리 되어야 내일이 시작된다.

일몰이 다른 시작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잘 마무리하는 것

잘 보는 것

그리고 잘 시작하는 것 

사는 건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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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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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치료를 하려면

- 가족의 환경을 이해할 것

- 가족의 장점, 미덕 회복력의 신호 등을 알아차릴 것

-가족중 누가 변화를 원하는가

- 발달에 따른 변화에 대해 알기 (연령에 따를 특징 변화 등을 설명할 수 있을 것)

- 가족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가?

(강한 사람, 희생양, 문제가 있는 사람, 악역, 농담을 하는 사람등 그 역할이 정해져 있나)

가족이 세상에 숨기는 비밀

가족들이 서로 숨기는 비밀

가족들이 자신에게 숨기는 비밀 이 있는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비밀은 권력에 관한 문제이다. 고립시키고 파괴하고 신뢰를 깬다.

부모의 권위를 지지할 것 (무조건 자상한 것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쨋는 것이다.)

미안해요라는 말을 자주 할 것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유용한 표현이다.

가족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아차리고 표현하게 할 것.

 

 

비유들

손가락이 베이면 피가 나죠. 당신은 피를 싫어할 수 있지만 피가 나는 것은 건강한 신체가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전과목에서 a를 받고도 낙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입니다.

우리는 버팀으로서 버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정 연령이 지나고 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오만이다. 과거 복잡한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기를 권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자신만의 슬픔이 있따. 그러다고 해서 그 슬픔이 자신의 의무로부터 달아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 많은 주제들을 건드렸습니다. 결과는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안지만 우리는 이제 앞으로 나아갔고 이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 상담을 마무리하며 상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이 시간이 나의 삶에서 필요했는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돌아가서 문득 어떤 말이 자꾸 생각날 수도 있다. 마무리는 중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서 세상을 살아가는 뻐을 배워야 합니다. - 힘이 들어도 삶은 계속된다. 시간은 우리가 넘어졌다고 멈춰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그냥 털고 다시 시작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 역시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별 일 아니구나 라고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문제라도 게다가 최악의 상황이 된다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다른 누구와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문제 그 자체입니다. 문제를잃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오랫동안 보아온 내 부모의 삶이 그다지 닮고싶지 않습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고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배우자를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 우리 부모같은 사람만 피하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고를 때 신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나의 배우자는 나의 부모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나는 배우자에게서 내 부모를 봅니다. 피하고 싶었던 그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우리 부모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사실 잘 모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안에서는 안보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말을 해도 바꾸지 않는 바로 그 모습은 바로 내 부모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혹은 내 부모구나 하고 내가 먼저 알아타릴 수 있고 후회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나의 상대가 나의 부모모습일까요? 그렇다면 처음 나는 왜 몰랐을까요? 사실 배우자와 부모는 다릅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 한 가정에 여섯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각각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기질이나 습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 등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좋을 때는 내가 그런 모습을 억제할 수 있고 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등상황이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너무 힘들 때 나는 가장 오랫동안 보고 겪어서 익숙한 그 행동과 말을 합니다.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하게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늘 그모양 그꼴이지 언제 정신차릴래? 등등 나도 모르게 비슷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상대가 화가 났다싶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되려 내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내 부모처럼 행동하면 그에 대한 대응 역시 비슷합니다.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반응은 크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로 인해 내 배우자가 내 부모처럼 반응하고 그 반응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고민에 빠집니다. 바뀌겠다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뀔리는 없지요. 내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서 내가 바뀌지 않으면 비슷한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워하지만 가장 익숙한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느끼는 불안보다 아는 근심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친근함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도전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합니다. 아니까 대처할 수 있고 나는 잘 할 수 있다는 오만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는 것에 다시 넘어집니다. 알고 있지만 나 역시 내가 아는 방식만 사용하니까요. 아는 상대에게 내가 다르게 반응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텐데 나 역시 같은 방식을 씁니다. 그것만 알아서 그것이 가장 옳다고 믿어서입니다. 결국 사람이 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변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건 아니면 좋겠습니다.

 

안전한 황무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이 자내 가운데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해와 용납의 차이 이해할 수 있지만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상담자의 가치관이 일에 영향을 준다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 가지 충립이 되어서도 안된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일 수 있다.

연민은 냉철한 머리와 함께 할 때 유용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스토리를 찾고 바꾸는 일 내 삶의 이야기 거리를 모으고 긍정적으로 변경해 볼 것 모든 스토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상담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본다는 건 아니다. 내가 준비해야할 것들은 철저하게 준비해야한다.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것들과 조건들을 완벽하게 숙지한다.

사람의 일들이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을 할 때도 있지만 일단 매뉴얼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상황에서 적용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론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이론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와 잘 맞는 이론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인간중심과 실존주의 상담을 좋아한다. 잘하는 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문제는 문제를 가진 사람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기도 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나는 완전무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수하면 만회하면 된다. 삶은 길지만 유한하기에 내 실수나 실패에 집중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냥 넘어가는 것도 삶에서는 한 방법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냥 지나갔다. 그 때문에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지금에 있다. 지금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나는 나도 못고치고 변화시키기 어렵다. 하물며 타인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리고 그 타인의 변화가 무엇인지 내가 재대로 알 수 있을까

그저 내가 정해놓은 문제와 정상 안에서 내담자가 문제에서 정상에 가까워지면 변했다고 좋아졌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늘 맥락안에 있고 상황은 모두가 다르다.

변한다. 좋아졌다라는 건 결국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편안해기질 원할 뿐이고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거나 힘들게 하는 일만 아니면 된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아서 다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계속 나아갈 뿐이라면 괜찮다고 믿는다.

이 책은 상담에 임하는 내 어꺠의 짐을 가볍게 한다. 짐을 없애지는 않았다.

그냥 짐을 견딜만하게 해줬다.

공감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도 내려놓기로 한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상담자가 모든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 상다자도 사람이어서 자신의 가치관이 있고 편견도 있다. 그걸 인정하고 상대를 만날 뿐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반문하는 것

질문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 흥미는 상대를 좀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편안하게 자기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문제가 있따고 누구나 상담자를 찾지 않는다.

상담자를 찾아와 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 역시 대단한 용기다.

나를 마주하겠다고 그 순간 용기를 낸 것이다.

그것은 시작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다시 마음이 닫히고 이건 아니야 라는 마음으로 도망치거나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또 언젠가 다시 비슷하게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한 번 해 봤으니까.

나 역시 여러번 실수하고 실패하는 상담을 할 것이고

내가 만족한 상담이 내담자도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잘 되면 내담자가 개떡같은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혼자 잘 헤쳐나갔기 때문이다.

잘 못 되었다면 우린 너무 달랐거나 내담자에게 여유가 없었다거나 또 여려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지나가는 누구든 막지도 잡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오래 머물 수 있게 열심히 준비는 해야겠지

가만 있다는 것과 머물러 있는 건 다를 것이다.

 

좋은 슈퍼비전은 이런 것이거다.

내가 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일

작가의 대상 수잔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꽤 좋은 상담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이런 슈퍼바이저를 알고 있다니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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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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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 에세이는  또 다른 독서로 나를 이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이 많아진다. 몰랐던 작가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외국어를 배울까 생각을 한다. 내 세상이 넓어졌다.

한권 한권 책이 흥미롭다.

책을 읽다 멈추고 정보를 찾는다.

또 다른 작품은 뭐가 있을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작가가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나는 정말 작은 세계에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폴란드의 작가들이 , 칠레의 작가가 

가까운 일본에 이렇게 괜찮은 시인이 있었는지 몰랐다.

몰랐던 게 부끄럽지만 이제 아니까 다행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 고민의 시작점이 제각각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서 

그 과정이 다를 뿐 어쩌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우리의 범위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쓰고 남긴다. 그리고 읽는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겨놓는다는 것,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고 동시에 또다른 세계를 소개하는 것


읽기 잘 했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인간은 실패하려고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설명할 때만, 그리고 설명해준 것만 아는 사람은 설명자에 예속된 존재이다. 혼자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배울 수 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수 있다. 좋은 교사는 유식한 자가 아니라 해방된 자를 만드는 교사이다


그는 학생이 주의를 기울여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학생의말에 경청하기 위해서 곁에 머물 뿐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예술가의 ‘해방하는 수업‘이라고 부른다. 평등이 필요한 것은 시인과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독자들이 제삼자의설명 없이도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것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시인 자신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사물과 직접 만나며 배운 것을 작품으로 썼듯이 말이다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우리는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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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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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 편안해질거예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어요

그런 말이 이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도 전혀 변한게 없어요

그냥 내가 미친년일뿐이더라구요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고 또 시작이다. 또 지랄이다 라는 반응 이제 나도 지쳤습니다.

말하기는 늘 듣기와 짝궁이 될때 그 가치가 있다. 


말을 듣는다는 건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내 생각이 끼어들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하고 내 생각은 그냥 덮어두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도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친족성폭력 3부작을 읽었다.

굳이 푹력피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쩌면 여성이라면 한번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자꾸 돌아보고 뒤적이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꽤 힘을 가진 사람이거나  무지한 사람이거나...

윤희나 유정이나 그 내담자나...

모두 자기를 뒤적이면서 자기안의 분노를 어쩔 줄 몰라한다.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읽는 내 마음일 수도 있다.


말을 하거나 드러내거나 표현하는 건 중요하다.

결국 나만 내 일을 정의 내리고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일 뿐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하는 것도 적극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세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알려고 애쓸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고 

잘 했다고...

일단 말을 하고 내 말을 믿을 것이다. 


말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고

더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걸 또 배운다. 


다른 단편들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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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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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스 피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떄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순간 의심스러웠으니까.

글을 몰라서 살인을 한다고? 

읽어간면서 점차 납득이 갔따.

사실 묨사된 위시스 피티먼은 끔찍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커버데일 일가를 죽이기 전까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임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문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나의 방식으로 그가 살아야 한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이해의 기준이 내가 될 때 사람은 선한 의도를 가진 이기주의자가된다 

의도가 좋았으나. 타인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아니 적당하다라기 보다 타인에게 가혹하다.


피치먼이 선한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약한 인간이다.

약한 사람이란 자기의 약점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애쓰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읽을 줄 몰라요. 

그 한마디는 순간의 수치심을 가져올 수도 있고 일정 기간 무시를 당할 수도 있지만 주변의 선한 사람들에 의해 내가 변화될 수도 있는 시작인데 

피치먼은 그걸 몰랐다.


커버데일 일가 역시 책을 많이 읽고 지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피치먼에게 가혹했다.

그들의 지나친 다정함과 오지랍이 그녀에게 두려움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움켜쥔 사람과 

타인에게 허물없이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

두 사람이 부칮치는 순간  갈등은 끔찍하게 커지고 터져버린다.

거기에 조앤의 망상이 더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문맹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커버먼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두려운 비밀을 지닌 사람의 서늘한 기운도 알 것 같다.


그리고 타인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고 자기 세계로 들이려는 커버데일 일가의 다정함도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 동안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묘하게 불편했다.

이미 내가 박힌 돌이었고 굴러온 돌인 그가 불편했다. 

물론 처음엔 잘 지내보려고 했고 많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 역시 커버데일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좀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가르치려고 했었고 도와준다는  뜻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도무지 에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 발끈하고 이유없이 화를 내고 남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본인이 받아들이는대로 판단하는 그와 잘 지내기는 어려웠다.

사소한 일에 (그것 역시 내 기준에) 파르르 하는 모습에 질렸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지. 말을 길게 하지 말아야지 였다.

어쩌면 그가 보기에 나는 별 거 아닌데도 아는 척하고 자기를 통제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들었던 재수없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당한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서로 괜찮은 척 지냈고 다정하게 헤어졌다.

가끔  같은 공간에서 섬처럼 외롭게  공허한 시선으로 앉아 있는 그를 볼 떄가 있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집요할만큼 열심히 했던 그였지만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절은 절대 알려고 들지 않았는데 그런 얄미운 모습뒤에는 외롭고 공허한 얼굴이 있었다.

내가 이래도 되나 라는 자책이 들면서도 나도 역시 더 이상 그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판단했다.

그는 나랑 다르구나

나이 먹어 굳이 다른 사람과 알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피치먼이 열심히 광을 내고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 묘사를 보면서 

자신의 일에 애를 써서 노력하고 완수하려는 그의 모습이 겹친다.

(물론 그는 문맹이 아니고 감정도 있어서 웃기도 하고 타인에게 질문도 하고 관심도 있었ㄷ.)

그러나 자기 일이 아닌 건 절대 아는 척 하지 않는 것, 자기 경계를 확실하게 긋고 불편해하는 모습에서도 커버먼이 겹친다면 너무 지나쳤을까


누군가는 이 책이 문맹의 가지는 두려움과 공격성과 함께  지식인이 가지는 자만과 어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에서 타인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물론 커버먼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다고 대답을 제대로 했을리는 없다.

가족둘은 충분히 물어보고 의향을 알고 싶어했고 이해하고 싶어했다.

다만 자기방어가 강했던 그가 모든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것.

나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내 기준에 벗어나는 순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

그런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자주가는 사이트에서 어떤 질문을 보았다

착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전에는 순종적이고 양보하고 순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까

사람들의 답변을 읽다가  아.. 하는 답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착한 사람이고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하는)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동의한다.

착하다 나쁘다의 기준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된  가치판단일 뿐이다.

어제 착한 사람이 오늘 나쁜 사람이 되고 너에게 좋은 사람이 나에게 나쁜 사람일 수 있다.


문맹에 대한 깊은 고찰보다는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대해서

쉽게 내 기준으로 선 악을 나누는 각자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이 가고 내가 조금 편해진 건 있다.

그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더 이상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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