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세한 균열'

 

작품들으르 읽으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미지는 작은 실금들이 이어진 균열이었다.

 

<길들여 지지  않은 딷>의 루마와 아버지

<지옥-천국>의 엄마의 Ekef ghr은 엄마와 흐라납 삼촌 그리고 데보라

<머물지 않은 땅>의 매건과 아밋 부부

<그저 좋은 사람>의 수드하와 라훌 남매

<아무도 모르는 일>에서의 폴과 생과 파룩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서

<헤마와 코쉭>에서의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에서

그들은 조금씩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동안 믿어왔던  익숙한 내 면에서 균열을 느낀다.

알이 깨어져야 그 속에서 나올 수 있다

알 속이 마냥 따뜻하고 안락해서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균열은 무언가를 깨는 것인 동시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분열된 세포들이 성장을 이룬다.

부모의 손을 놓는 순간의 불안고 공포를 이겨내야만 내 세상을 만들수 있고

내 아이는 성장할 수 있다

균열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는 동시에 모든 것이 시작할 수 밖에 없는 토양이 된다.

 

 

아버지는 나이를 먹고 은퇴를 했고 이제 더이상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 동시에 자신을 돌봐야 할 가족도 없다. 그건 자유롭고 동시에 고독하다.

그리고 이전 가족에 둘러 쌓여 있을 일도 없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잔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그렇게 분리되어 이제 어쩌면 행복하다.

루마는 여느 자녀처럼 부모에게 반항하고 거부하는 성장기를 지났고 이제 그 부모의 나이가 되어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부모 부양이 의무인 민족적인 정서에서 많이 갈등한다.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게 아닐까. 저렇게 홀로 두어도 될까?

아버지  생각이 맞다.

이제 루마가 아버지가 필요하다. 어른에게도 어느 순간 나를 끌어주고 기댈 수 있는 다른 어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 루마가 그렇다. 너의 선택이 옳다고 말해주고 옆에서 거들어주고 조금 대신 해줄 수도 있는 사람이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필요하다.

균열을 가지고 분리되었으나 아직 분리되지 못한 루마가 오히려 더 불안하다.

아버지는 이제 충분히 혼자서 하나로 완성되었다.

 

낯선 땅에서 아무도 없는 상황

그 곳에서 자기와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의 습관을 잘 알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도 일종의 연애감정이 아닐까.나에게 의지하는 프라납이 어쩌면 엄마에게는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사람이고 희망이고 사랑이다.

책임은 있지만 애정이 없는 아버지보다 옆에서 칭얼거리며 말을 들어주고 눈을 맞추어주고 함께 시간을 시시껄렁하게 보내는 사람이 더 소중하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프라납에게 기울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어린 딸이 이해하긴 힘들다. 촌스럽고 부끄럽고 남에게 내어보이고 싶지 않은 엄마의 투박하고 낯선 x통제는 벗어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삼촌의 연인 데보라에게 더 끌리는 게 당연하다.

엄마와의 인연은 그렇게 끊어버리고 싶고 데보라와는 무엇이든 연결되고 싶은 마음

엄마에 대햔 배신은 아닌데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을테니 하는 마음도 있을테고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딸에게 데보라는 참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데보라의 등장으로 프라납도 잃고 딸도 잃게 생겼다.

균열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가져가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어느 가을 석양앞에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오래오래 서 있던 엄마의 마음은 그 지속되는 삶이 지긋지긋하면서 동시에 다행이지 않았을까

그런 모순된 마음이 드는 때도 있는 법이니까

 

장녀들은 다 그럴까

부모에게 순종하고 동시에 동생들에게 책임을 느끼는 존재일까

나는 장녀가 아니어서 첫째가 아니어서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옳은 행동만 선택하는 언니가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다. 저러지 않아도 되는데... 저러지 않아도 엄마나 아빠가 기절하진 않는데...

동시에 미움도 가지고 있었다. 늘 자기가 옳은 역할을 해버려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쁜 동생이 되어버리게 만드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렇게 착한 언니인데 그렇게 책임감있는 누나인데 왜 그 누나를 언니를 속상하게 만드냐고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을 때 난 늘 억울했었다.

누가 그렇게 착하게 굴라고 한 적도 없고 우리 때문에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라고 한 적도 없고

엄마대신이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혼자 안달하고 혼자 애태우면서 나만 나쁜 사람을 만들까?

다 자기 만족일 뿐인데 나는 하나도 고맙지 않은데 왜 저러고 살까?

그 마음을 나이 먹어 이해가 되지만 반갑지 않은 건 여전하다.

착하기만 한 사람. 뭔가 책임을 느끼고 하려는 사람들이 고맙지만 동시에 참 버겁다.

수르하의 마음도 알지만 어쩐면 라훌의 마음을 더 알거 같다.

물론 수드라 때문에 라훌이 알콜 중독이 된 것도 아니고 대학을 그만 둔것도 아니다.

그건 라훌의 선택이고 그의 책임이다.

조금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수드라보다는 차라리 부모의 어정쩡한 자존심과 자식에 대한 두려움이 더컸을 것이다. 자꾸 수드하가 자기랑 몰래 술을 마셨던 그 순간을 후회할때 그때를 되돌리고 싶어할때 그건 아니라고 그런 마음이 라훌을 더 외롭게 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잘 하고 싶어 애쓰는 순간 관게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국적이 조금안 방만한 생의 연애를 지켜보는 폴은 어떤 마음일까?

폴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금이 가는게 아니라 그읜  내부에서 균열을 느낀다.

생을 알게 되고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그의 연애에 조금씩 개입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속에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이전의 폴이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헤마와 코왹의 이야기는 어쩌면 참 상투적이고 어딘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거 같지만 그래서 통속적으로 마음을 흔든다.

어릴 적 첫사랑. 두근 거리는 감정 숭상하는 마음

멋진 타인에게 끌리면서 내 가족이 구질구질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마음

붏편하고 속상하면서 동시에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하고  이어

어머니를 잃고 제대로 애도의 기간을 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 놓은 채 나이 먹은 소년의 이야기. 아버지와는 멀어지고 그 아버지의 재혼이 낯설고 싫지만 그걸 싫어한다고 표현하기엔 이제 성장했고 아버지가 이해되어버리는 묘한 감정들

소년의 애도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집착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니라 이젠 스스로 풀어내야 할 숙제가 된다.

그리고 다시 만난 두 사람 , 짧은 시간 불같은 연애 그리고 각자 제자리로

그러나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딴 이야기지만 어릴적 전학을 5번을 했다.

익숙할만하면 떠나야 했던 경험들이 어쩌면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쪽이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일찍 알게 해줬다. 그냥 친절하고 상냥할 수 있는 무심함 그게 나와 타인의 관계였다.

시시콜콜 집안 일을 나누고 비밀을 나누며 단짝을 만드는 일은 영 서툴렀다.

내가 누군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색하고 누군가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도 불편했다.쿨하다고 스스로 믿었지만 그건 쿨 한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겠다는 비겁함이고 나를 지키려는 방어였다. 늘 좋은 사람이었고 언제나 감정의 기복없이 이성적이고 잔잔한 사람이지만 참 알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누구랑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그냥 배경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계속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어디서든 타인이어야 한다는 게 외롭고 슬펐지만 그걸 누구에게 말 할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늘 잘 적응하고 아무일도 없는 그래서 조금은 무심해져도 괜찮은 아이였으니까

 

아이를 키우며 왠만해선 전학이나 이사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이미 형성된 관계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쩌면 아이가 힘들었을 것보다 내가 더 힘들어서 혼자 끙끙댔던 거 같다.

길게 이어진 아이의 친구문제와 왕따문제를 겪으며 그게 아닐 지 모르는데 나는 나의 이사결정을 원망했고 모든게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요즘 아이들은 굳이 뿌리를 이식한 경험이 없이도 조금씩 혼자가 익숙하고 개인적인 경향이 강해서인지 우리 아이들도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문화와 터전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사람들 그렇게 미세하게 균열되는 관계를 그린다. 가족끼리 형제끼리 부부끼리 그리고 내 속의 나에게 미세하게 실금들이 생기고 그 실금들이 서로 만나 더 길어지고 깊어지며 흔들리고 갈라지지만 결국을 그렇게 계속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들이다.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고

남이 나같지 않다는 외로움을 느끼며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도 그 균열을 받아들이고 기다리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는다.

관계란 유기적이어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지속적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관계는 매말라서 박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관계가 아니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언젠가 누구든 잊혀지고 잊고 그렇게 산다.

관계의 균열이 불행만은 아니다.

균열과 절망 그리고 세상의 끝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균열을 통해 성장하고 더 단단해진다.

 

 

예전 영화 <말아톤>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 영화는 내가 내 아이의 손을 언제 놓아야 하는가 에 대한 영화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비단 내 아이만이 아니다.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동시에 그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계속 손을 잡고 있다면 든든하고 불안하지 않겠지만 한 손이 잡힌 상태 혹은 누군가를 잡은 상태로는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살아가는데는 자유로운 두 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땀에 끈적이는 손이 불쾌할 수도 있고 서로 잡은 손을 언제 놓아야 할지 서로 타이밍을 만주지 못해 눈치만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잡은 손은 언젠가 놓아야 한다.

초원이가 걱정하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달리는 순간

엄마가 결승점에서 혼자 달려올 초원이를 믿고 기다리는 순간

이런 균열이 관계를 더 단단히 만들고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꽤 좋은 소설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9-07-2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등학교 때 전학을 한 다섯 번은 한 것 같습니다..ㅎㅎ

푸른희망 2019-07-23 07:02   좋아요 0 | URL
님도 옮겨심기가 많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