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국회의원이 국회 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써 최장시간 기록을 세웠다는 뉴스를 봤다. 은수미 의원. 10시간을 넘겼다고.

 

 

네이버 검색 순위 1위를 현직 국회의원 차지하기는 꽤 이례적이다. 그것도 6선, 7선 의원도 아닌 초선 의원이 말이다. 난 이런 국회의원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자체가 좀 신기하다. 개한민국 국회의원은 다 '썅OO'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기에.

 

 

은수미 의원이 국회에서 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동안 진보진영의 호프라고 자체하는 안철수 대선 예비주자께서는 입을 잘못 놀려 여론의 뭇매 세례를 받고 계신 모양이다.

 

 

헌데, 이런 사태를 유발한 건 다름 아닌 테러방지법 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결사적인 수단이란 거. 야당의 입장에 따르면, 여당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목적이 바로 민간인 사찰을 합법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거다.

 

 

흠... 보자, 확실한 건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전보다 테러를 줄일 수 있다는 거다. 테러를 감행할 낌새를 보이기만 하면 잡아서 족치면 되니까. 예컨대 마스크를 쓰고 집회 장소에 나타난 사람이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일단 연행할 수 있다.

 

 

당연하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권 유린보다 테러의 위협에 대한 방지가 훨씬 중요하다. 테러에 의한 피해, 무시무시하니까. 조금 불편해도 테러방지법으로 보다 좋은 개한민국을 만들자!....는게 여당의 논리.

 

 

여당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펴는 건 다음과 같은 전제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난 집회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는 ‘팩트’로부터(이게 과연 팩트인지 의심스럽지만) 공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거다.

 

 

그러니까 ‘테러방지법’을 촉발시킨게 바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마스크를 쓴 사람’ 때문이라는 거다. 자, 이게 왜 ‘정치-언어학적’(이건 내가 붙여본 이름이다) 사기 공작 행위인지 지금부터 쬐~~금 고찰해 보겠다.

 

 

흠, 이건 ‘이달의 발견’이 아닌 ‘올해의 발견’ 쯤 되는 거 같다.

 

 

 

 

우리말에서 형용사구를 비롯한 수식 구는 종종 문장으로 치환할 수 있다. 예컨대 ‘앞발이 짧은 토끼’하면 ‘토끼는 앞발이 짧다.’로 나타낼 수 있다. 의미는 같지만 형태는 다르다는 거.

 

 

그런데, 의미가 같지 않은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보자.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실업자’, ‘방약무도한 대통령’, ‘부패한 기업총수’ 등은 매우 구체적이다. 왜냐하면 어렵지 않게 이런 존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실업자’의 경우, 저번에 인천 공항 테러 협박범으로 잡힌 용의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 대학원 출신인 30대 가장이 취업이 안 돼 사회에 불만을 품었다고.

 

 

‘방약무도한 대통령’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통과. ‘부패한 기업총수’ 역시 모 기업의 총수가 떠오른다. 회사 돈을 빼돌려 철창신세를 진 아무개 말이다.

 

 

위의 어구들은 정말 이런 존재를 쉽게 확정짓는 표현이다. 그런데 ‘실업자는 사회에 불만을 품는다’, ‘대통령은 방약무도하다’, ‘기업총수는 부패하다’라고 변환해 보자. 이들은 모두 일반화된 문장으로, 논리학의 대당사각형에서 ‘A’ 명제 형식(‘모든 X는 K이다’)을 띤다.

 

 

이처럼 형용사구가 문장이 되면, 그 상황의 사례가 일반화된다. 그래서 사례를 훨씬 더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제의 타당성이나 건전성의 충족 여부가 아니다. 대상의 존재를 포함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있다.

 

 

이를 ‘절반의 진실’이라고 명명한다나 뭐라나.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면, 다시 말해 단 하나의 사례라도 증명가능하면 진실이라는 거다.

 

 

‘절반의 진실’, 이를 가공하는 기교가 뛰어날수록 대중을 현혹하기 쉽다. 광고와 통계 그리고 정치와 언론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교도’를 보자. 이를 일반화하면 ‘이슬람교도는 테러를 자행한다’이다. 그래서 일부 국가는(예컨대 미국) 이슬람교도이면 입국이 거부되거나 검문검색이 훨씬 더 강화한다.

 

 

모든 이슬람교도가 테러를 자행하지는 않을 거다. 이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미국 테러의 주범이 이슬람교도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진짜?!)

 

 

이 단순한 증명이 ‘절반의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와 언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무언가 ‘트라우마’가 있는 사회에서 ‘절반의 진실’이 횡행하는 것 같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번 필리버트터 사태에서 이를 명확히 알게 해 주었으니.

 

 

형용사구나 수식어구가 일반화된 문장으로 변할 때 ‘어떤 의미’가 내포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까지 이를 간과해 왔다니!

 

 

어쨌거나 은폐되고 가공된 진실을 보는 눈은 필요하겠다. 고로, ‘테러방지법’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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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2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집에 녹음 시설 갖추고 해적 방송 함 해보려고 대본 만들어서
한 시간 정도 모의방송진행한 적 있는데...
이거 정말 힘들더군요..
앉아서 해도 진땀 나고 목이 갈라지고 하는데.. 서서..
그뿐입니까. 방해 공작도 있고..
대단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yamoo 2016-02-27 20:50   좋아요 0 | URL
네, 그러믄입쇼! 이런 분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게 신기합니다! 아닌 걸 아닌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의원...이런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면 좋겠네요~^^

해적 방송을 진행해 봤다는 곰발 님, 대단합니다! 시도가 중요하죠, 시도가! 그런 발상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역시 곰발 님은 예사롭지 않아요, 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1 15:06   좋아요 0 | URL
제 목소리 듣고 좌절했습니다. 혀 짧은 목소리에 코맹맹이 소리 듣고 기겁해서
당장 포기했슴돠.. 아, 진짜 녹음된내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그렇게 끔찍한 건지 몰랐슴돠..

stella.K 2016-02-2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글은 참...!^^
저는 1시간 서 있는 것도 힘든데 10시간을 서 있다니!
어셈블리란 드라마에서 정재영이 10시간 동안 필리버스터하는데
전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지 했거든요.
지금은 친일파들이 아직 득세하는 것 같아도
저런 걸 보면 언젠가 판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yamoo 2016-02-27 20:52   좋아요 0 | URL
어셈블리도 보셨군요! 근데, 거기서 정재영이 10시간 필리버스터 했나요? 흠...그 여파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겠네요..ㅎ

돌아오는 선거에서 물가리를 확실히 해야 하는데.....그게 참 거시기 해서뤼..

근데, 왜 첫문장은 짜르셨나욤~? 궁금하게스뤼..^^;;

transient-guest 2016-03-0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테러방지법이지 사실 공안사찰용이라는 건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죠. 이건 오가작통보다 더 한 것이 예전 같으면 밀고시키고, 미행하면서 감시하던 것을 이제는 앉아서 하겠다는 거잖아요. 정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듯한 절망적인 시대입니다.

yamoo 2016-03-01 12:33   좋아요 0 | URL
근데, 개한민국에선 그 상식이 통할 기미가 없는 듯합니다. 부모님에게 이런 논조로 말씀드렸다가 넌 왜 사상이 좌파냐며 나무라시더군요. 우리 부모 세대를 어찌 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 변화는 없어 보입니다. 정말 말씀하신대로 절망적인 시대 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동시대에 태어나서 행운이라는 말을 한 적이 많다. 그 만큼 그의 책들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른편 '내 인생의 책' 5권에 속하는 작품을 내 주신 분. 그런 그가 오늘 타계했다. ㅠㅠ

 

에코의 책을 읽으면서 전복적 웃음의 미학이 뭔지 깨달았다. TV에 나와서 대담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웃기던지...학자의 권위를 벗어던진 친근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여전히 유쾌히 웃으면서 능청스런 표정을 짓는 에코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앞으로 에코의 신간은 기대할 수 없겠지...슬프다. 선생의 소설을 더 이상 만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선생의 전집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새물결에서 나온 에세이는 모두 읽어 봤다. <칸트와 오리너구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거대한 철학적 화두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신기는 에코 선생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읽어야 할 선생의 책들이 아직도 쌓여 있다. 한권 한권 읽을 때 마다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사실 내가 토마스 아퀴나스와 찰스 샌더스 퍼스의 저작을 구해서 읽어 본 것도 에코 선생 때문이다. 선생의 학문적 베이스를 형성해 준 선배 학자들이라 급 관심이 생겼기에. 급기야는 이탈리아어를 배워볼 까도 생각했으니까..

 

이런 글....처음 쓴다. 아무개 작가 타계..하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봐 왔는데....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작가가 죽었다는 소식에 울적해 져 나도 이런 페이퍼를 쓰고 있다. 선생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지금까지 읽어 왔던 에코의 작품들과 소장하고 있는 에코의 책들....책 사진을 찍으려니 채기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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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2-2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은 좀 더 사셔도 되는데 생각 보다 일찍 타계하신 것 같아 아쉬워요.
전 읽은 게 없지만...

yamoo 2016-02-20 22:5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좀 더 사시지...3년만 더 사시다 가시지...ㅜㅜ

아, 스텔라 님은 아직 에코 작품을 읽은 게 없으시군요...동화도 썼으니 동화라도 한 권 읽어보심이..^^;;

cyrus 2016-02-21 13:40   좋아요 0 | URL
에코 옹이 흡연을 줄였다면 더 오랫동안 정정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비로그인 2016-02-2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의 이름,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

yamoo 2016-02-20 22:52   좋아요 1 | URL
<장미의 이름>은 에코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로 올려준 명작이지요~
전 2번 읽고, 영화를 2번 봤습니다만,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 같습니다. 3번째 볼 땐 또 어떤 의미를 찾을지 기대가 되네요^^

전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도 봤어요. 근데, 이 책 안 보고 소설만 보는 게 더 좋은 거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이름 읽으며 뿅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야, 진짜 끝내준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아쉽네요..

yamoo 2016-02-21 23:24   좋아요 0 | URL
아, 진짜 프라하의 묘지가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 될 줄은 몰랐네요..
저도 진짜 아쉽습니다~ 하..
 
셔츠 매뉴얼 - 남자의 패션: 기본부터 완성까지
태인영 지음, 안웅철 사진 / 안나푸르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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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매뉴얼>(안나푸르나, 2015). 작년 여름에 반디 서점에서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이다. 가격에 비해 두깨가 하도 얇아(189쪽)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가 잊힌 책이다. 근데 저번주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 보았다.

 

 아, 근데 이거 구매해서 읽었으면 심하게 자책할 뻔 했다. 책이 부실해도 이만저만 부실한 게 아니라는 거. 15,800원이면 다른 책을 사서 보는 게 10배 낫다. 이 책은 매우 부실하다.

 

도대체 저자가 왜 이런 책을 냈는지 심히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저자는 외국어 고교 출신(불어 전공)에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정외과를 전공하고나서 94년부터 방송 진행과 방송 출연을 해 오고 있단다. 국제 행사 전문 MC, 국제협상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고.

 

그냥 세계를 누비면서 협상 전문가로서의 이력이나 넓힐 일이지, 이런 책은 왜 냈나 싶다. 남성 패션, 그것도 '기본에서 완성'까지 안내해 준다는 사람이 책을 쓰면서 공부한자 하지 않고 자기 느낌대로만 내용을 채우면 뭐 하자는 건지. 남성 패션이 그렇게도 만만한 모양이다.

 

저자는 패션관련 업계에 있어본 적도 없고, 패션 관련 전공을 하지도 않았다. 미술 전공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나와 국제협상 이력을 가진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남성 패션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닌 거다. 이력에서 한 눈에 드러난다.(책 날개에 이력이 나와 있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남성 패션을 코칭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외한이 이런 책을 쓰려면 적어도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야 기본은 간다. 더군다나 여자는 남성복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입어 볼 계획도 없지 않나.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아가지고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하는데, 내가 볼 땐 아마추어의 어설픈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남자에게 자기가 입히고 싶은 옷을 입히려고 습작한 스타일 연습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남성복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조언하는 코디는 모래사장에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 책 어디에도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왜냐,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셔츠는 남성 비즈니스 웨어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든 사람은 누구나 기대한다. 이 책이 캐주얼 웨어에 대한 안내가 아니라 비즈니스 웨어에 대한 안내서가 되리란 것을.

 

더군다나,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다. 그러면 적어도 책의 2/3는 셔츠 관련 내용으로 채우고 수트 코디와 엑세서리는 부차적으로 언급해야 책의 균형이 맞다. 헌데, 이 책은 셔츠에 관련된 내용이 50페이지도 안 된다. 189페이지 중에서 말이다.

 

나머지는 타이, 팬츠, 수트, 코트, 캐주얼, 악세사리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그냥 느낌의 나열이다.) 그냥 남성 패션에 대한 토탈 안내서 인듯한데, 왜 타이틀을 저따위로 붙였는지 모르겠다.

 

셔츠에 관한 내용도 별로 전문적이지 않다. 셔츠 카라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고, 커프스 종류도 7가지가 넘는데, 이 책에서는 달랑 카라 3개와 커프스 2개만 언급했다.

 

셔츠 각 부분의 명칭도 없고, 하이엔드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도 없다. 목 둘레와 팔길이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은 남자들에게 맞춤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과 특장점을 비교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정보, 물론 없다. 그냥 여성 잡지책에 나오는 수준에다 자기 기호를 더하여 내용을 구성한 게 전부다.

 

남성 클래식 스타일에서 수트 라펠의 넓이와 셔츠 카라의 조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트를 입은 인상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얼굴이 큰 사람과 마른 사람에 따라 조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다.

 

그런데, 이런 건 애교로 봐주고 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저자가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뭔지 모른다는 거다.  이는 코디로 제시한 스타일 사진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보면 화사하고 밝고 예쁘다. 데이트 룩이면 금상 첨화인 스타일이다. 매우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비즈니스 웨어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다. 유행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기에 펑크 룩과 같은 안티-패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그 이유는 수트가 전투복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 자체가 보수적이고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들의 군복 이미지를 떠올리면 쉽다!)

 

그래서 비즈니스 웨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색상을 추천해야 한다. 절대로 핑크색 셔츠나 노란색 치노 팬츠를 권하면 안 된다. 비즈니스 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데이트 룩을 추천한다는 건 TPO에 맞지 않는 스타일이다.

 

뭐, 요즘은 비즈니스 캐주얼이 대세라 이런 차림새가 대세인줄 아는 모양인데, 이도 기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전통적인 클래식 복장의 기본(트렌드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준수하면서 약간의 포인트를 주는 선에서 그쳐야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남성복의 대세인양 호도하지 말자.

 

이 책은 여기에 그쳤으면 저자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렇거니 하고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서술 내용의 부실함은 책의 함량 미달로 이어져 저자를 불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책의 내용을 잠깐만 소개해 보겠다. 영국산 원단을 설명한 내용이다.

 

 

"영국산 원단은 힘있고 뻣뻣하지만 체형을 보완해 주고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양복을 맞춘다면 영국산 원단에 도전해 봅시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느끼다가도 몸을 바로 잡는 느낌을 받으면 그 마력에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p105)

 

여자 스타일리스트들이 남성 스타일을 안내하는 책에서도 종종 보는 내용이다. 남자가 전투복으로써 양복을 맞출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살피는 것이 원단이다. 영국산 원단이면 원단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런 걸 취급하지 않는다. 그냥 '영국산 원단'이면 끝이다.

 

영국산 원단이 힘있고 뻣뻣한 것은 차고 습한 영국의 기후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따뜻하고 내구성이 강한 원단을 생산한다. 대표적으로 허더스필드 클로쓰와 찰스 클레이튼 그리고 도멜 회사에서 생산되는 무게 250~350그램 정도의 원단이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춘 좋은 원단이다.

 

하지만 단점은 이 원단이 겨울용으로만 적합하다는 거다. 가을과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입을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이테리 원단인 에르메네 질도 제냐나 우리나라 제일모직의 슐레인 급 원단으로 양복을 맞춰야 한다.

 

양복에서 가장 중요한 원단에 대한 정보가 쏙 빠진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더군나다 그것이 맞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공허한 내용은 계속된다.

 

책에 설명되어 있는 3가지 수트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다. 브리티쉬 스타일과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을 보자.

 

브리티쉬 스타일

"전형적인 군복에서 모티프를 따온 수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몸을 반듯하게 세워주는 느낌의 딱딱함과 불편해 보이리만큼 꽂꽂한 등선을 자랑합니다. 그냥 딱딱한 갑옷이에요. 불편해 보이지만 단단한 가슴과 바른 자세로 자신감을 부각시키는 스타일이죠. 수탉이 울기 전에 가슴을 부풀리는 상상해 보세요. 깃이 넓고 재킷 좌우를 깊게 겹치고 두 줄로 버튼을 나란히 단 더블 브레스트 수트도 떠오릅니다."

 

프렌치 스타일

긴 설명 안 하겠습니다. 지리적으로 영국과 이탈리아 중간쯤에 있는 만큼, 스타일도 중간쯤이라고 해 두죠. (p107)

 

수트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어깨와 허리 그리고 포켓과 벤트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저자가 남자의 수트에 대해 문외함임을 나타낸다. 수탉 운운 하는 지점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난다. 많은 설명을 한답시고 했지만 브리티쉬 스타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주고 있지 않다.

 

브리티쉬 스타일의 특징을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4가지만 언급하면 된다. '군복을 연상시키는 각진 어깨', 타이트하게 피트되어 긴장감이 느껴지는 허리', '체인지 포켓과 슬랫 포켓', '사이드 벤트' 정도면 끝.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그냥 빵 터졌다. 모르면 공부라도 하고 책을 쓰던가. 사진 이미지를 서술한 부분을 잘 보면 알겠지만, 절반 이상이 주관적인 느낌의 나열이다. 참으로 함량 미달이다.

 

할 말이 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을 듯싶다. 너무 길어지고 이 정도만 언급해도 이 책에 대한 촌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 고민이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볼까 우려하여 좀 장황하게 썼다. 뭐, 자유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느니 차라리 <맨즈웨어 도그>(RHK, 2015)를 추천드린다. 캐주얼에서 전투복까지 이미지만으로도 어떻게 입을 지 충분한 가이드가 된다.

 

<셔츠 매뉴얼>은 지금까지 내가 본 남성 스타일 안내서 중에서 최악으로 꼽는 몇 권의 책 속에 속한다. 절대 사서 보시지 마시라! 별 하나라도 준 건 안웅철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 이미지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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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하층민들 이름 짓기인가 봅니다. 젠장할, 저는 만박이군요..만박..--;;

근데, 아는 분 왈, 자긴 쌍년이라고..ㅋㅋㅋ

 

사극 보면, 돌쇠, 삼식, 삼단 등의 이름을 심심찮게 들어 왔는데...아무렇게나 짓는 게 아니라 원칙이 있었군요!

 

근데, 좀 뉘앙스가 거시기 하네요...아무리 하층민이라지만, 쌍년이 뭡니까..쌍년이..--;; 다른 이름들도 모두 후져 보입니다만..ㅎ

 

개한민국에 사는 현재 우리들도 조선시대 하층민으로 태어나면 전부 저런 이름을 가졌겠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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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알라딘 한국명 닉네임은 쌍포입니다.

yamoo 2016-02-19 18:27   좋아요 0 | URL
생일을 알것 같네욤^^

만화애니비평 2016-02-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이름도 못갖다니!

yamoo 2016-02-19 18:27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요~ㅎ 한글 경시가 이름에도 투영되어 있네욤..ㅎ

페크pek0501 2016-02-1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인들 사이에서 분위기 깨는 이름이 많았겠군요. ㅋ

yamoo 2016-02-19 18:30   좋아요 0 | URL
개똥이와 쌍년이..ㅎ 쌍놈과 개년이..ㅋㅋㅋ 어우~ 무지 많은 조합이 나올 듯해요..ㅎㅎ

오거서 2016-02-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은 차마 입에 담기가 … ^^;

yamoo 2016-02-19 18: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 분위기 깨는 이름의 조합이 너무도 많이 나오는 거 같습니다..^^;;

stella.K 2016-02-19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거 음력인가요. 양력인가요?
음력이든 양력이든 다 마음에 안 드는군요.
쌍년은 격음화로 알고 보면 상련은 아니었을까요?ㅋㅋ

yamoo 2016-02-19 18:32   좋아요 0 | URL
음력이든 양력이든 차이는 없겠지요..날짜에 일대일 대응되는 글자가 있기 땜시...날짜가 달라지믄, 그나마 안 좋은 이름이 바뀌겠지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한자 이름은 대부분 양반이었죠. 이런 추세는 물고기 이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모양이 괴상한 물고기는 전부 우리말... 좀 잘생긴 물고기는 죄다 한자어..
숭어도 한자어 조합이잖습니까. 그에 반해 이상하게 생긴 아귀(물첨벙) 꼴뚜기 이런 거는 죄다 우리말 조합입니다..

yamoo 2016-02-19 18:33   좋아요 0 | URL
정음이라 해서 한글을 천대하는 분위기가 사물의 이름 짓기에도 많이 반영돼서 그런 가 봅니다..ㅎ

지니 2016-02-2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쌍년과 쌍놈이 이름이 였다니 ^^;;
저는 쇠냥 이네요 ㅎㅎ

yamoo 2016-02-20 22:54   좋아요 1 | URL
분위기 깨는 무수한 이름의 조합이 만들어 집니다...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이 수두룩 해요.. 개이름 같은 것두 있구..ㅎㅎ

쇠냥 이시군요^^;; 헛, 생일 지나신지 얼마 안돼신다능~ㅎ
 

착시 현상에 대한 유명한 사진이라네요~

 

근데, 정말 기막히다는!

 

난, 정말 뭘 본 거지??

 

여러분은 이 사진에서 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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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1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개가 보입니다. 컵과 Y, 그리고 @@ ^^.

yamoo 2016-02-18 01: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거꾸로..--;;

지금행복하자 2016-02-1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보이는 것이 그것이 아니길 바래봅니다.
컵만 보겠습니다.

yamoo 2016-02-18 01:36   좋아요 0 | URL
네~ 컵만 놓여 있는 거죠..^^;;

아침에혹은저녁에☔ 2016-02-1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분이 아닌 전체를?

yamoo 2016-02-18 01:37   좋아요 0 | URL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고, 전체 아닌 부분을 볼 수도 있어요. 어떤 걸 먼저 보느냐만 다르죠~~ㅎ

stella.K 2016-02-1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긴 뭡니까? 저기다 마티니 부어 마시면 되겠구만.
막걸리 부어 마셔도 뽀대는 나더라구요.
야무님은 점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신가 봐요.ㅋㅋ3=3=33

yamoo 2016-02-18 01:37   좋아요 0 | URL
네...마티니 잔 하나 놓여있어요..ㅎㅎ 근데, 전체를 보면, 새로운 게 보인단 말이죠~~~ㅋㅋ

cyrus 2016-02-1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인잔에 술이 있었으면 19금 착시 사진이 나올 뻔 했어요. 저는 와인잔이 보였는데, 제 안에 있는 음란마귀는 자꾸 여성의 삼각주로 보라고 부추깁니다. ^^;;

yamoo 2016-02-18 01:38   좋아요 0 | URL
음란 마귀...ㅋㅋㅋㅋ 아주 올 만에 들어보는 단어 입니다..ㅎㅎ
근데, 그렇게도 보인다는 게 이 사진의 묘미죠..ㅋ

transient-guest 2016-02-18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 하나만 보이는 걸 보면 역시 근시안인듯..-0_0-ㅎㅎㅎ

yamoo 2016-02-18 20:21   좋아요 0 | URL
헛! 그렇군요. 하나만 보인단 말이쥐요~

흠....사람마다 다른 가 봅니다..ㅎ

페크pek0501 2016-02-1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은 이 사진에서 뭘 보셨나요?˝

... 예술을 보고 갑니다.


yamoo 2016-02-20 14:46   좋아요 0 | URL
역시 페크님은 보는 눈이 다르시군요!
그래요...이런 사진 작품...예술입니다. 예술!

[그장소] 2016-03-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틈 ㅡ 사이로 빛 ㅡ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