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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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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에 관련된 소설을 좋아한다그 이유는 내가 베르그손 사상(특히 <물질과 기억>)에 경도되어 있기에 그렇다기억에 관련된 소설은 무척 많다그중에서도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나 알랭 로그브리예의 <되풀이정도의 작품들은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인상 깊다라 함은 내 취향에 부합한다는 말과도 같다.

 

물론 줄리언 반즈의 기억의 파노라마’ 작품 세트도 재밌게 읽었다특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1페이지에 나오는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라는 문장은 이 소재의 모든 작품 해석의 치트키라 할 수 있다기억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해설 틀이기에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여기 기억을 소재로 하는 또 하나의 작품 <오래된 빛>이 있다노벨 문학상 후보에 언제나 회자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존 밴빌의 장편소설알라딘 소설 장인 뽈님이 별 다섯 개를 준 불후의 명작 중 하나그래서 무조건 읽어야 할 리스트에 포함하여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대실망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설 분야인  누보로망 계열과 비슷한 전개로 나를 당혹케 했다작가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사랑의 무의미함?' 아니면 '사랑과 상실?' 또는 '기억의 속임수에 대한 섬세한 탐구?' 뭐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작가가 이 작품을 왜 썼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역자의 해설을 보면 이 소설이 앨릭스와 캐스 클리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라나그래서 의미는 있겠다 싶다하지만 전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만 읽으니 궁금증만 증폭되고줄거리와 관계없는 외부 풍경 묘사나 행동 하나하나를 지리할 정도로 늘어뜨려 묘사하는 스타일은 질린다. 알랭 로그브리예의 <질투>을 연상시킨다.

 

나는 이런 작품을 정말 싫어한다재미가 정말 없기 때문욘 포세만큼은 지루하지 않지만 그래도 읽기가 고역이다뒤에 뭔가가 있겠지’ 하며 던져 놓은 떡밥 때문에 꾸역꾸역 읽는 정도이런 류의 소설이 문체는 좋다고 하는데아포리즘과 같은 멋진 문장은 만나볼 수 없다진짜 줄 친 부분이 단 한 줄도 없다.

 

사실 소설 초반부를 읽고 매우 느낌이 좋았다이 책을 추천하는 분들도 대부분 좋다고 하고알라딘 평점이 무려 9.2라서 기대가 정말 컸다. <타타르인의 사막>과 같은 기대를 갖고 봤다더군다나 소설의 첫 부분은 너무도 매력적으로 시작해서 몰입도가 컸다. 초반부 읽고 나도 여기저기 추천을 해댔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p13)

 

15살 소년과 35살 유부녀의 육체적 사랑 놀음(불완전한 기억). 이것은 볼만했다전체 플롯에서 뭔가 상징적 메타포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고현실의 인물과 영화적 서사(주인공이 출연하는 영화)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여기에 주인공 알랙시 딸 캐스의 죽음과 영화 주인공(알랙시가 연기하는 인물인물과의 어떤 관계가 그려져 과거 알랙시의 왜곡된 사랑이 어떻게 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작가가 어떻게 플롯의 구조를 짤지 계속 기대하면서 봤는데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실망감은 커졌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이건 중간에 덮었어야 했다.

 

15세 때 미시즈 그레이와의 짧은 사랑, 딸 캐스의 죽음 그리고 돈 데번포트와의 영화 이야기가 완전히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과거의 이상한 사랑은 현실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딸은 도대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다알랙시는 딸이 죽은 곳으로 왜 데번포트과 같이 갔을까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미시즈 그레이와 벌였던 15세 알랙시의 기억은 미시즈 그레이의 딸에 의해 왜곡된 기억으로 밝혀졌지만 그 왜곡이 사건을 전복시키지도 딸의 죽음을 밝혀주는 메타포로도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독자는 그런 것을 기대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내가 전작을 읽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아니 읽었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소설 속 장치들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여야겠지해설을 읽으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이런 재미없는 작품을 두 권을 더 읽느니 차라리 읽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을 읽고 쓸쓸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정말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독자들일 거다윌리엄 트레버 작품을 보면 쓸쓸한 아름다움이 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는데이 소설은 정말 그런 느낌이 아니다흐릿한 안개 속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이마를 땅에 찢는 그런 느낌이다.

 

이제 그는 백만 — 십억 — 일조— 마일을 거쳐 우리에게 도달하는 은하의 오래된 빛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가 말했다. “여기이 테이블에서도 내 눈의 이미지라는 빛이 선생님 눈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아주 작은 시간극소량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걸립니다따라서 어디를 보든어디에서나우리는 과거를 보고 있는 겁니다.” (p254)

 

그래과거를 봐서 어쩌라고?! 과거의 사랑과 상실이 쓸쓸한 삶의 현재를 구축한다는 이 진부한 주제를 아름답게 포장해도 내용이 없다면(심리 그 자체가 내용이라면) 공허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든 생각이다.

 

 

총평 정말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다.



[덧] 소설을 읽고 좋다고 하는 건 매우 주관적이다. 내게는 좋은데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인게 이 주관성의 특성이다. 헌데 내가 읽고 좋아 추천했는데 다른 이들도 좋다고 하면 더욱이 그 수가 많으면 주관의 객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나는 좀 이 부분이 항상 신기하다. 그렇다라도 누구나 좋아할 수는 없다. 다른 이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가 별로인 작품은 항상 출현한다. <오래된 빛>은 내게 바로 그런 소설이다. 추천받은 작품들은 대체로 좋다. 하지만 완벽한 예외도 있다. 그래서 개인의 특수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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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08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저는 이런 심리를 이미지화하는 소설을 싫어하는 듯합니다. 아니 극혐하는 쪽이 맞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건과 갈등 대신 인물의 심리를 지루하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소설은 정말 적응하기 힘듭니다. 철학적 성찰도 없는 건 덤...밴빌의 추리소설은 어떨지..

페크pek0501 2025-11-21 11:56   좋아요 1 | URL
저는, 남들이 다 좋다는 소설인데 나는 별로인 경우 내가 뭐 잘못 읽었나, 뭔가 놓쳤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야무 님은 훌륭하십니다. 소신을 갖고 주관적인 느낌을 쓰는 자세, 배우고 갑니다.^^

yamoo 2025-11-24 10:50   좋아요 1 | URL
옛날에는 저도 페크님처럼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걍 내 취향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다 좋은데 나만 싫다는 리뷰는...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사람들의 찜찜한 생각을 날려주는 순기능도 있는 거 같기에...이런 리뷰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알라딘에서는 책을 좀 부정적으로 보는 리뷰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저는 그런 리류가 훨씬 좋은데 말입니다..ㅎㅎ
 
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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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지인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해 줬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는데, 나도 좋아할 거라면서 강력히 권했다. 무슨 책이냐니까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 2023)이라고. 언론에서 톨스토이 문학상받은 작가 인터뷰를 본 적이 생각났다. ‘, 그 책이었군! 나도 읽어 봐야지라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잊혔다.

 

읽을 책은 어떻게든 읽나 보다. 지인이 강력히 추천해 준 책이 그때 언론에서 봤던 작가의 책이라니. 김주혜 작가.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프린스턴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는데, 문학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듯하다. 데뷔 단편이 <보디랭귀지>이고, 여러 매체에 단편 소설과 수필, 비평 등을 기고했다고. 본 작품은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다.

 

데뷔작을 문학상으로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작가로서 쌓인 경력(에세이, 수필, 단편)이 탄탄해서 이루어 낸 성과인 듯싶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집필하는 데만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썼다고 책 안쪽 작가 소개에 적혀 있다. 읽어 보니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었다.

 

그래서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라는 광고 카피가 탄생한 듯.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로 미국에서 공전의 인기를 얻었으니, 본작도 그 인기에 편승하려는 듯한 인상이다. 책을 덮고 나니 재밌기는 한데 청소년 문학을 읽은 느낌이 강했다. 이 책의 최고 강점은 빠른 가독성에 있다. 603페이지가 바람처럼 넘어간다.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장점은 여기까지. 단점이 너무도 도드라진다.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기대 이하였다. 전에 읽었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와 너무 흡사했다. 재미는 있는데 문학적 형상화가 떨어지는 뭐 그런 거. 어디선가 봤던 드라마 장면들의 짜깁기. 한 마디로 클리셰 범벅인 작품. 통속 드라마 한 편 본 느낌.

 

, 그래도 이런 면은 봐 줄 수 있다.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용서가 안 되는 건 작가가 팩트체크를 하지 않고 소설을 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엄연히 1918년부터 1965년까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담는 게 역사소설의 미덕. 아무리 허구라도 역사적인 사실조차 틀리게 쓰면 작품의 무게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헌데 본 작품은 시대의 팩트체크가 거의 안 되어 있다. 작가가 미국인이라지만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한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집필했다면, 그것도 우리의 아픈 근대사라면 철저히 고증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주혜는 자신이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역사적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그녀에게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했던 듯.

 

역사적 팩트 체크가 얼마나 허술한지 언급하기에 앞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작품의 주제다. 도대체 김주혜는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타이틀을 작은 땅의 야수들로 지었다면 야수들이 나와야 한다. 문학은 상징성이 중요하기에 야수가 그 호랑이는 아닐 것이다. 호랑이처럼 용맹스런 그런 인물들을 기대한단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본 소설에서 아무리 뒤져도 야수들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본 소설의 주인공은 안옥희이다. 소설의 남주와 연애만 했던 옥희가 야수들일 수는 없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야수들로 상징되려면 독립운동에 가담해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인물들 쯤 되어야 한다. 클리셰 범벅이인 소설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이 소설에서 그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찾으라면 남정호나 이명보 정도밖에 없다. 이들이 야수들이라고?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그나마 본 작품에서 야수들에 근접한 인물들이긴 하지만 야수라고 하기엔 비중도 작고 소심한 인물들이다. 은실과 단이가 기생 시절 3.1운동에 참가했다고 해서 야수가 될 턱이 없다. 이들은 혼자 조용하게 살았던 기생이다.

 

본 소설의 중심은 옥희와 한철 그리고 정호의 삼각관계다. 이들이 젊은 시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시간과 함께 그려지는 게 전부다. 그 시대가 1918~ 1965년 까지일 뿐. 주인공들의 사랑은 시대의 아픔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 그냥 로맨스 드라마 클리셰의 정석일 뿐. 야수? 투쟁? 이런 건 이 소설에서 그냥 시대물의 양념일 뿐이다.

 

그렇기에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타이틀은 본 소설에 어울리지 않다. <경성 스캔들> 정도가 가장 적절한 타이틀일 수 있다. 그래야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다. 헌데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모든 것이 엊박자가 생기며 소설의 개연성과 핍진성은 개나 줘버리는 상황이 도래하는 거.

 

한철과 옥희는 보는 순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고, 성수와 단이 역시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 때문에 서로의 몸을 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배신을 때려도 만나면 눈에 불꽃이 튀니, 사랑의 빌드업 같은 건 시간 낭비다. 한철을 사무치게 사랑하면서도 정호는 내 인생의 마지막 소중한 친구라는 낯간지러운 대사도 그래서 가능하다.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에서나 볼만한 로맨스 구조. ‘나라를 위한 투쟁을 그린 작품’(광고 카피)이라고? 이런 광고를 보고 호도한다고 한다지? ‘야수나라 위한 투쟁은 그럴싸한 유비이자 상징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적 클리셰는 그렇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용은 클리셰 투성인데 문학적 클리셰는 정면으로 배척하는 꼴이다. 연애소설을 투쟁소설로 명명하면 안 되는 거다.

 

중간을 지나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것은 작가가 이 책에서 얼마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는지 좀 헤아려보고 싶었기에 그렇다. 일단 김주혜는 1910년대부터 계속해서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한국인은 1945년 해방이 된 후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정한 이후에나 등장하는 단어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정체성은 조선인이었다.

 

작가는 계속해서 본문에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단 한 곳에서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월향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전쟁 동안(대동아 전쟁) ‘조선과 미국 사이의 서신 왕래가 끊겼기에라는 부분. 1945년 장에 나와 있다. ‘한국인이라고 일관성 있게 표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도 한국 동물들’(p476)이란다. 1918년 장에서 땅은 조선 땅인데 김주혜는 여기서도 한국 땅’(p129).

 

작가가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역사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위에 언급한 한국 땅1918년 장에 나온다. 그 뒤 장도 1918년이다. 근데 작가가 129쪽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은 산미증식계획(1920~1936)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1918년 일본에서 일본 민중이 쌀 도매가격 담합에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의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서 시행한 정책이 산미증식계획이다.

 

작가는 작가적 역량(상상력?)으로 1918년 일본의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쌀 수탈 정책을 1918년에 수행케 했던 거다. 이러한 역사적 혼동은 전국연합진선협회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466쪽에 그 문제의 진선연합이 나온다. 전국연합진선협회는 19399월에 결성되어 이념적 노선과 대립이 심화된 가운데 19404월에 해체된다.

 

헌데 작가는 1941년에 이명보가 진선협회 동지들과 회합하느라 늦게 귀가했단다. “그 중에 명보는 전국연합진선협회 소속 동지들과 회합을 하느라 늦게 귀가했다. 연합진선은 나라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기치 아래 실로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지닌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는 기구였다.” (p466) 작가의 친절한 부가 설명은 그래서 어설프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혼동은 계속된다. 483쪽에 프랑스 조계가 등장한다. "임시정부가 있는 프랑스 조계" 프랑스 조계는 1944년 장에 등장한다. 프랑스 조계는 1937년 중일전쟁으로 없어졌는데 1944년 작가적 상상으로 다시 등장한다. 판타지 소설이면 그려려니 하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적 배경은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암묵적 전제다.

 

이러한 함량 미달 소설이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외국이라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인가? 재미있고 역사적 배경이 <파친코>와 비슷하니, 더욱이 한국 문화도 핫하니 그래서 상을 준 것인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용두사미 형식의 연애물이라 기대가 과했나 보다. 아쉬운 책이다. ()

 

 

 

1.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초반부 범과 사냥꾼 얘기에 확 빠졌다. 타이틀과 잘 들어맞아 기대했는데, 결국엔 용두사미 로맨스물이라 실망이 컸다. 더군다나 에필로그의 '해녀'는 뭔지. 생뚱맞게 해녀라니. 앞에서 암시나 복선이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진짜 갑툭튀다. 에필로그는 없는게 낫다.

2. 이 책을 <파친코>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 이민진 작가에게 실례되는 짓이다. 절대 그러지 말기를! 대좌가 갑자기 소좌로 바뀐 부분과 같은 사소한 오류가 책 도처에 있다. 팩트체크도 제대로 안된 소설인데 왜 그렇게 상찬받는 작품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개연성과 핍진성 그리고 상징성도 떨어지는 로맨스 시대극인데 말이다.

3. 작가가 페미니스트여서 그런지 본 책에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를 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의 대화에서 둘 다 로 표기하니 헷갈려서 계속 이상했다. 천연덕스럽게 여주가 순응적 여성관을 대변하는 클리셰인데 라는 표기가 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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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9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책인데 확 종지부를 찍어주십니다. 역사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틀리면 안되죠. 그것도 산미증시계획같은 큰 덩어리를 저렇게 쓰는건 실수가 아니라 기본적인 고증을 안했다는건데 무책임한 짓이에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yamoo 2025-09-19 11:17   좋아요 1 | URL
역사적 고증이 안된 역사소설인데 상찬받는 게 좀 과하다는 인상입니다. 작가가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드라마를 많이 본 것이 틀림없음) 드라마적 장면을 상기하는 글쓰기라 재미은 있는데, 통속 드라마와 별반 다를게 없더라구요. 그냥 재밌는 드라마 한 편 본 느낌입니다. 미스터 션사인은 여기다 대면 아주 양반입니다. <파친코>도 이 소설보단 좋습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한데, 드라마로 만들면 연출가에 따라 엄청나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을 거란 예상이 들깁합니다. 어쨌든 소설이라는 면에서 보면 그저 그런 작품인데 톨스토이 문학상이라는 후광효과가 엄청났던 거 같아요. 여튼 상찬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닌 듯합니다.

카스피 2025-09-19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어느 평론가가 메이지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에는 작가가 오로지 연필 한자루로 써 내려간 작품이 있고 트럭 한대분의 자료를 수집해 쓴 작품(두 작가 모두 일본을 대표하는 문호라고 함)이 있다고 하더군요.실제 작가에 따라서 역사소설을 쓰면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팔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대충의 역사 지식만을 가지고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써 내려가는 작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아마 김주혜 작가는 후자 였나 봅니다.
게다가 김주혜 작가는 한인 3세인 한국계 미국인이기에 아무래도 이민 1세대나 1.5세대와 달리 국내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할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계 미국인의 시각과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의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아무래도 한국인의 역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어설픈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지네요.
작은 땅의 야수들은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니 우리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조상이 한국인인 미국인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크게 화를 낸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 이런 작품이 톨스토이 상을 수상했냐고 의문을 제기하셨는데 아무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인들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그건 우리가 외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같지요),요즘 한창 트렌들인 한류의 본 고장인 과거의 한국을 로맨틱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들어서 그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야무님의 말 대로라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1918~65년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소설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yamoo 2025-09-22 10:39   좋아요 0 | URL
<파친코>와 많이 비교되서요. <파친코>는 이정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소설 이렇게 쓰면 욕 오지게 먹어요. 김훈 <남한산성>에 역사적 년도를 틀리게 적었다고...역사적 선후 사실을 틀리게 적었다면 욕 엄청 먹었을 겁니다. 김주혜가 미국인이라서 뭐 그렇다고 쳐도 우리나라 고증이 미흡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도 아니고 근현대사면 자료도 넘쳐요. 이게 역사판타지라면 이런 비판도 안했을 겁니다. ㅎㅎ
뭐, 작가가 여기 나오는 건 모두 작가가 지어낸 허구라는 것만 알려줘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텐데 말이죠..^^
 
그니까 미술 작가가 뭐냐면 - 그림 그리기부터 전시, 작품 판매까지 미술계에서 아트 작가로 살아가는 법
이계진 지음 / 더디퍼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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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미술작가가 뭐냐면>(더디퍼런스, 2024)이란 책을 읽었다. 나도 초보 작가 나부랭이이기 때문에 미술작가에 대한 안내서는 눈에 띄는 즉시 구입하여 읽는다.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인 이계진은 30대 초반의 신진 작가이다. 이 책 역시 미술작가의 저작이기에 누구나 미술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시작한다. 왜 그런지 몰라도 작가들(특히 미술!)은 누구나 미술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미술작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책인데, 이거 괜히 사서 읽었다. 서점에서 넉넉잡고 3시간이면 초보 작가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책이다. 그냥 블로그에서 A4 4장 정도로 깔끔하게 초보 작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면 됐지, 이런 책은 왜 냈다 싶다. 다 읽고 돈이 정말 아까웠다.

 

책 겉표지 안내대로 이 책은 그림 그리기부터 전시, 작품 판매까지 안내되어 있긴 한데, 매우 피상적이다. 미술계에서 아트(art) 작가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는 책치고는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 단체전이나 개인전 한 번 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면 건질 게 별로 없는 안내서다. 정말 이제 막 전시를 한번 해 볼까하는 사람이 보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7장까지 구성되어 있는데, 1-2장까지는 미술의 기초, 즉 자기가 미대 입시 준비했던 이력에 대한 내용(미술 기초는 중요하다!)이고, 3-4장은 그리는 방법과 그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 안내이다. 미술작가가 되기 위한 기초 안내 정보. 이런 내용은 유튜브만 봐도 얼추 알 수 있다. 미술 기본기에 대한 정보와 그림 감상법에 대한 정보는 이 책의 내용보다 좋은 유튜브 영상이 널렸다.

 

이런 류의 책, 그러니까 신진 작가가 예비 미술작가에게 자기의 경험을 알려주는 내용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중요한 정보가 이 책에는 빠져있다. 즉 초보 작가가 어떻게 창작하고(주제와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고), 공모전이나 레지던시에 어떻게 하면 선발되는지 그 생생한 경험담이 빠져있다는 말씀. 물론 전시계획서를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 책에는 대관 전시와 공모 전시 그리고 개인전을 열기 위한 과정을 알려주긴 하지만 공모 작가 선정 방법이나 레지던시 선정 방법의 노하우 정보가 통째로 빠져있다.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 개인전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비용을 보조해 주는 협회에 어떻게 준비해야 선정되는지가 빠져있다는 말. 그냥 어디서 지원금 준다더라는 정보가 전부다.

 

물론 저자는 무료로 개인전을 할 수 있는 공모전이나 개인전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 주는 미술 단체에 선정된 이력이 꽤 된다. 그렇다면 어디 어디서 이런 공모전이 있고 이런 보조금을 주는 단체가 있는데, 여기에 선정되려면 이러이러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왜 빠뜨렸을까?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도 새새하게 나열하면서 왜 가장 중요한 선정 노하우는 왜 쓰지 않았을까? (정말 괘씸한 부분이다)

 

핵심 노하우가 없는 안내서는 읽으나 마나 한 책이다. 한마디로 돈을 벌 수 있는 자게서에서 자기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핵심만 쏙 빼고 나머지 부가적인 것들만 열거해서 자신의 출판이력만 추가하는 꼴과 다를 게 없는 책이다. 창작의 길을 걷는 예비 작가들에게 건네는 실질적이고 유용한 이야기라고? 이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로 리뷰를 남긴다.

 

 

1. 이 책이 궁금하면 서점에서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되겠다. 2장의 마지막 절과 3, 4장만 읽으면 왕초보 작가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절대 구입하지 마시라!

2.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정보'는 아트허브나 네오룩에 올라온 정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 이제 막 시작하는 작가로, 경력 10년 도 안된 신진작가가 이런 책을 쓴다는 자체가 놀랍다. 신진작가로서 자기보다 더 초보인 작가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 이런 책을 썼다고 한다면, 위에서 내가 언급한 대로 자신이 선정되어 뭔가 지원을 받은 이력이 있다면 어떻게 선정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이 적시되어야 자기가 말한 바있는 책 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텐데, 왜 정작 그 중요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쏙 빼놨는지 의문이다. 대외비인가? 그렇다면 이런 책은 왜 썼을까? 자기 경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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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8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작가라고 하셔서 미술에 대한 감상이나 평론글을 쓰는 ㄴ방법을 알려주는 책인줄 알았더니 화가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네요.미대 출신이야 굳이 읽어 볼 필요가 없겠지만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책인것 같은데 야무님 글을 보니 좀 허술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yamoo 2025-04-18 10:12   좋아요 0 | URL
미술작가는 어떤 일을 하는가...에대한 책인데...그냥 개인전과 단체전 등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매우 피상적이고 개인전을 하면 돈이 많이 들기에 지원금을 타서 개인전을 해야 작가 이력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그 지원금을 타는 공모에 선정작가가 되는 방법이 아예 빠져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에요. 자기는 선정작가가 된 이력이 찬란한데 그걸 알려주지 않아서 좀 빡쳤다는...ㅎㅎ

은지 2025-04-18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굳었네요 감사합니다

yamoo 2025-04-21 10:5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
정하윤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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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적인 한국 현대미술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 보통 미술사를 소개하는 책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예술 사조의 변천사, 다른 하나는 작가별 통사. 후자가 미술사를 스케치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어느 작가를 선별하더라도 항상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기에.

 

왜 하필 그 작가인가?’ 작은 물음이 아니다. 시대사를 정리하다 보면 아주 소수의 몇 명으로 추려진단다. 내 얘기가 아니라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가 한 말이다. 중요한 건 이 작가들이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에 의해 선별된 작가들이라는 거.

 

이 기시감. 즉 역사는 그것을 서술하는 주체의 시각이 절대적이라는 거.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선택된 사건만 역사서에 담긴다는 사실. ‘왜 이 사건은 중요한데 잊혀진거지?’ ‘일상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등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서 미시사(微時史)라는 분야가 생겨났는지도)

 

하지만 미술사를 작가별로 스케치한다고 할 때 이 비판은 좀처럼 피해갈 수 없다. 왜 그따위로 작가를 선별하여 미술사를 구성했느냐(왜 이 작가는 빠졌냐)는 타박. 특히 한국 미술사, 그것도 현대미술사를 정리하여 개론적으로 보여준다고 선정한 작가라면 이 비판의 십자포화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현대미술이라는 분야가 그 역사가 일천하기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선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도 1977년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100인의 리스트가 있고, 2009년에 한국미술평론가 협회에서 발간한 한국 현대미술가 100인의 리스트가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시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미술가의 범위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얼추 1910~1990년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범위라 생각한다. 그래서 위 두 리스트에서 함께 다루어진 작가라면 충분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현대미술을 스케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커튼콜 현대미술>(은행나무, 2019)은 현대미술 사학자 정하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스케치이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 30인을 다루었다. 여기 수록된 작가 대부분은 이미 일부 평론가가 출간한 작가론 저작에 포함된 작가들이다. (중복된 작가가 꽤 된다.)

 

하지만 미술사가가 집필한 책이 개인 선호도에 치우치고 객관적 평론이 아닌 인상비평으로 흐른다면 그 책에 대해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커튼콜 현대미술>은 미술사가의 작가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입문서이지만 엄연히 작가론에 해당한다.)

 

정하윤은 한국현대미술의 시대를 4분 한다. 20세기 초, 해방 직후, 1970년대, 1980년대 이후로. 그리고 각 시대에 대응하는 작가들을 7~8인으로 선별하여 대략 6-12페이지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표작인 도판을 제외하면 평론은 대략 A4 1~2장 사이 분량이다.

 

문제는 정하윤이 작가와 그림을 분석하는 태도에 있다. 그림에 대한 추측성 인상비평이 많다. 첫 장부터 나오는데, 고희동의 자화상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림에 대한 분석적 비평이 아니라 추측성 서술은(p17)은 비평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런 추측성 서술과 인상비평은 책 도처에 있다.)

 

더군다나 개인의 선호는 어찌나 그렇게 심하게 반영하는지 모르겠다. 이승택을 다룬 부분을 보면, 정말 미술사가가 작가를 이런 식으로 평해도 되는지 고소를 금치 못한다. “이승택의 작품은 짱이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생각을!!, 작품을 보면 넋을 잃을 정도다.”(pp177-178) 읽어 보시라. 저자의 두 페이지를 압축한 글이니.

 

이런 인상비평은 책 전반에 걸쳐 있다. 논증이 필요 없는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동기를 평한 부분을 보자.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어떤가요? 아톰과 미키마우스는 각각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이지만, ‘아토마우스는 이동기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형상입니다.” (p.223)

 

이동기 작가의 작품을 팝 아트라 단정하지 말라는 소제목하에 예술=창조라는 말로 아토마우스를 평가하고 있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아토마우스가 이동기 작가가 예술적으로 창작한 작품이란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런데 팝 아트라 단정하지 말라. 아토마우스 캐릭터를 보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캐릭터와 본질적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형상이 다를 뿐이지 전형적인 팝 아트다. 저자가 팝 아트라고 단정하지 말라는 논거가 창조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동기가 작품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그 자체에 있는 거고 그게 바로 팝 아트의 중심이자 작품 창작 활동의 근거다. 레퍼런스가 아닌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변형이나 합성 또는 패러디가 불가피하다. 그게 창작 활동 본질이기에 저자의 논거는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러한 저자의 논조는 책 초반 김관호를 논한 부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작품 창조를 뭔가 처음 고안한(예컨대 절대주의 창시자 말레비치) 것뿐만 아니라 그걸 수용한 작품도 아류가 아닌 창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창작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레퍼런스가 아닌 창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원작을 변형한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선배 작가 AB를 믹스한다 든지, 아니면 내게 영향을 미친 작가 그림을 내식으로 변형하는 게 창작 활동의 근본이다. 내식으로 변형이 없으면 그건 레퍼런스일 뿐이다.

 

하지만 이건 그 계열의 일부 작품일 뿐이다. 진정한 회화의 창작물(=창조)은 독창성에 있고, 이건 그 사조를 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달려있다. 절대주의에서 말레비치, 팝 아트에서 앤디 워홀 정도가 아니면 미술에서 창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창작 활동창조를 혼동하는 듯.

 

그런데 서세옥은 논한 부분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저자는 확실히 작품의 창조가 뭔지 알고 있다.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라는 개념만 존재하던 1959년에, 몇 개의 점을 찍어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p113)

 

이 대목을 보면 작품의 창조가 뭔지 대번 알 수 있다. 전통과 규칙을 넘어선 실험 정신에 입각한 이전에 없던 형상의 창작.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창조의 본질일 거다. 그래서 서세옥을 본질에 집중한 화가라고 저자가 평한 거. 이런 것이 창작 활동으로서의 창조물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ab를 조합하여 그 장점만을 형상화한 작품이 창조가 아님은 당연하다. 한 사조라는 계열에 포섭되는 따라지 작품이다. 물론 작가의 창작품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동기의 아토마우스가 창조물이라는 건 저자의 서세옥 논의를 따를 때 결코 창조라 할 수 없을 거다. 저자는 이런 이율배반적 논의를 반성적 사유 없이 작품 분석에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책의 4부에 민중미술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저자는 오윤과 신학철을 선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중미술은 엘리트 미술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말하면서(이 부분이 저자가 민중미술을 보는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오윤과 신학철의 말을 언급하고 있다.

 

오윤은 추상미술은 엘리트 미술이라고 비판합니다. (중략)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미술이 중요하고, 단색화와 같은 추상미술은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p198-199) “신학철은 민중이 주가 되는 미술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할 수 있다.”(p204)

 

저자는 민중미술을 통해 엘리트 미술을 극복할 수 있고 민중이 주가 되는 미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민중이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따라 이 미술 분야는 사장될 수도 있고 재평가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민중의 범주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도외시한 채 엘리트 미술의 대안으로 민중미술의 의의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중가요와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분야다. 당시 민주화 물결에서 미술도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시대상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미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대학교 주변의 가투가 없어진 걸 보면 민중미술도 한 시기의 유행이었던 거다. 물론 민중가요는 노동쟁의 때 종종 들리지만, 민중미술을 하고있는 작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시대가 변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80년대 민중은 독재에 눌려 지내던 국민을 부르던 일종의 구호였다. 시대가 만들어낸 대중의 다른 표현이다. 이걸 2020년대로 끌어와 엘리트 미술을 극복할 미술 분야로 상정한 것 자체가 무리수.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엘리트 미술이고 대중과 유리되어 온 게 미술사였다.

 

단순히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난해한 현대미술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민중미술을 접근하면 민중미술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시대성을 희석시키게 된다. 또한 민중미술을 우리의 주체성 있는 미술로 자리매김하기에는 그 연속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민중미술을 다루려면 시대의 한계와 그 특수성을 감안하여 민중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해야 그나마 이 분야가 나아갈 방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저자는 우리 미술의 주체성 확보를 위해 민중미술을 새롭게 인식하자는 식인데, 너무 소박한 인식인 듯하다.

 

객관성이 부족한 30인의 인상비평을 보니, 저자가 시대성을 대표한다고 본 작가가 결국에는 저자의 관심 작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 이건 어쩔 수 없는 작가론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앞에서도 밝혔지만, 정작 박생광, 박고석, 권진규, 권옥연, 변종하, 이숙자, 이왈종 등이 빠져 있어 작가의 선택에 있어 아쉬움이 많다.

 

지금까지 책에 대한 불만만 얘기한 거 같아 좀 거시기하지만,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이다. 한국 미술 초보자에게 작가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림을 보고 대하는 감상 포인트는 유용하니까. 더군다나 대표작 74점의 도판은 확실한 장점이지 않을까. 여튼 한국 현대미술 입문자에겐 좋은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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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03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미술에 거의 문외한인 저는 읽을만한 것 같습니다. 들어 본 이름이 3분의 1이고 첨 듣는 이름이 나머지인데 가격도 싸네요. 미술책 거의 싼게 없는데.

yamoo 2024-12-04 14:4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이 책, 단점도 뚜렸한 책이지만, 최대 장점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 무척 쉽게 서술되어 있다는 거에요. 문외한이라도 30명의 작품과 설명을 보면 왜 중요한 작가인지 감을 잡을 수 있어요. 입문자들에게 최고의 입문서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입문자들 10이면 10이 하는 말..^^

나머지 1/3도 차차 알아가면 됩니다..ㅎㅎ

맞아요,. 이 책이 현대미술 책 칙고는 무척 싼 편이죠. 컬러 인쇄임에도 불구하고..ㅎㅎ 그래도 종이질이 일반적이라 도판의 선명함은 많이 떨어집니다~
 
[세트] 바람의 그림자 1~2 - 전2권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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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성이 자자했던 <바람의 그림자>(문학과 지성사, 2005)를 드디어 읽었다이 책을 구입 한 게 2018년 정도였을 거다하도 여기저기 재밌다는 찬사가 들려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헌데 2023년 11월에야 완독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재밌다고 구입해 놓고 아직까지 읽지 못했던 책이 <바람의 그림자이외에도 여러 권이니 말해서 뭐하랴어쨌거나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를 너무도 재미없게 읽어서 차기작은 무조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맞다. <바람의 그림자>는 정말 줄거리의 흡입력이 대단했다내가 가진 판본은 오래 전에 구입한 거라 1,2권으로 분권된 <문학과 지성사>판이다출퇴근 시에만 읽어 좀 오래 걸렸지만 출퇴근의 거리를 잊게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헌데 내가 이 재미난 책에 별 한 개를 뺀 것은(정확히는 별3개 반번역가 정동섭의 번역이 별로였기 때문딱 읽을 수준으로 번역했는데군데군데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게 번역한 문장들 때문에 여러 번 페이지를 되돌려 읽어야 했다.

 

판본이 이제는 문학동네로 넘어간 듯 보여문지판 <바람의 그림자번역 투덜거림은 그냥 접는게 상책이지 않을까 한다문동판을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출판사를 갈아탄 만큼 이전 번역의 단점을 잘 커버했거니 하며 넘어간다.

 

사실 번역이 짜증난 건 사실인데이거와 거의 비등하게 좋지 않았던 게 플롯의 문제였다개연성이 너무 없었다페르민의 출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작가가 페르민의 과거 행적을 뭉겐 상태에서 보여주는 페르민의 행보는 거의 신급이다거의 모르는 게 없을 정도.

 

또한 푸메로의 보조형사 팔라시오스가 뜬금없이 다니엘을 동정하며 그를 돕는다자기는 다니엘의 친구라고이 뜬금포는 도대체 뭔지급기야 팔라시오스는 자기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기까지 한다작품을 읽으면 팔라시오스가 다니엘을 왜 돕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그 흔한 암시와 복선도 없다!

 

가장 짜증을 유발하는 플롯은 베아와 다니엘의 연인 맺기둘이 연인이 되는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다작가는 두 번의 관계로 임신까지 만드는데이는 카락스와 페넬로페의 연인관계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짠 구성이다너무 어설퍼서 작가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던 부분이다.

 

사실 플롯의 문제는 도처에 있다이 작품은 액자형식의 소설로과거 이야기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인물들 간의 관계가 미스터리의 주축이라는 거확실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그럼에도 중간을 넘어 얘가 혹시 걔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면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급기야 2권을 넘어 읽으면서도 혹시 얘와 걔가 배다른 형제아니아닐 거야그러면 삼류막장 소설인데그래도 전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문학작품인데 설마라는 우려도 현실이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이 사실을 확인한 순간 맥이 빠지며 이 작품의 문학성에 심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래도 작가는 서사의 재미 포인트를 정확히 구사할 줄 알았다실망하고 의구심이 들 때면 어김없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건과 떡밥으로 이를 무마시켰으니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작품은 장점과 단점이 아주 뚜렷하다그래도 단점이 아주 도드라지지는 않는다엄청난 줄거리의 흡입력으로 인해 단점은 어느 정도는 상쇄가 된다이 기묘함이는 작가 자체가 가지는 특성에서 기인하는 듯하다태생 상 한계가 아닐까.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아동 및 청소년 문학가로 출발하여 명성을 얻었다본작 <바람의 그림자>는 그가 처음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선 보인 데뷔작이다그래서 복선을 깔고 떡밥을 회수하는 능력이 노벨상 레벨의 작가와 비교하여 많이 딸리는 느낌. (그래도 포세 보다는 낫다!)

 

사폰은 종종 인물의 심리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곤 하는데이게 작위적이며 좀 유치한 감이 없지 않다. “밖은 눈이 심하게 내리며 … 눈은 문관심한 듯 겁 많은 내 눈물을 가져가버렸고 나는 천천히 눈가루의 새벽 속으로 멀어져 갔다.” (341)

 

그 타원형의 큰 홀은 대형 유리창 너머에서 무너지듯 내리는 눈발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의해 상처 난 그늘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352인용된 부분에서 보듯이 작가는 인물이 상심할 만한 사건을 겪은 후 혼자 있는 시간에 심리적 상황을 기후 상황을 빗대어 자주 표현하고 있다.

 

하도 자주 등장하여 후반부에는 좀 질리는 감이 없지 않다인물의 성격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습작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이러한 인물의 심리는 좀더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문학성을 담보하는 것인데작가는 이러한 면이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352쪽의 문장은 참으로 거시기 하다번역 문장 불평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물론 이 작품이 장르 소설의 범주에 속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 되는데읽다가 보면 짜증을 유발하는 부분이 주기적으로 튀어나온다.(장르 출판사가 아닌 문지다!)

 

그럼에도 그가 창조하는 캐릭터와 사건의 구성은 아주 매력적이다이는 흡입력 있는 서사의 구조 속에서 큰 빛을 발하여(미스터리 스릴러물의 가장 큰 매력책장을 부지런히 넘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물론 짜증스러움과 함께특이하다재미와 짜증의 두 쌍두마차가


[덧]

1. 내가 읽은 건 문지판. 문학과 지성사판 합본 이미지가 없기에 문동판 합본 이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2. 읽은 사람들은 이미 다 읽은 책인데, 책을 지금에서야 읽어 뒷북아닌 뒷북이 됐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한 상찬이 수두룩해서 이런 리뷰도 있어야 구색이 맞추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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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20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밥을 회수하는 능력이 노벨상 레벨의 작가와 비쿄하여 많이 딸리는 느낌. ㅎㅎㅎ
저는 장르소설에 아직 은혜를 못 받은지라 내가 싫으면 말지 하는 쪽인데 분석을 잘 하시네요. 이책 바깥에 내놔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되네요. ㅋ

yamoo 2023-11-20 18:22   좋아요 1 | URL
청소년 문학의 향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비유와 암시가 거의 없는 작품이랄 수 있겠습니다.

한번 읽고 바깥에 내놓아도 무방한 책..저는 그리 판단됩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밀란쿤데라의 작품을 읽으면 제가 말하고 있는 지점을 바로 알 수 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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