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이해>의 인물 간 계층 위계를 단적으로 나타낸 포스터. 박미경(금수저, 대리)-하상수(강남 8학군 출신, 계장)-안수영(고졸, 텔러 계약직)-정종현(청원경찰, 파견업체 비정규직). 은행이라는 동일한 공간 안에서 이 4명의 위계는 극명하게 갈린다. 정규직 직원과 비정규직 직원으로. 은행을 벗어나면 자본에 따라 상류-중류-중하-하류로 계층적 위계가 뚜렷해진다. 이들이 만나 사랑을 하면서도 이들은 아비투스에 따라 자격지심이 발동하고 이것이 그들의 행태를 결정하게 된다.]
배우 금새록 때문에 본 드라마가 있다. <열혈사제>에 나온 금새록을 보고 그녀가 나온 모든 드라마를 찾아 보고 싶어서 고른 첫 드라마. 여기서 금새록은 <열혈사제>에서 보여준 배역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차기작을 더 궁금하게 하기 충분했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에서 매력이 터졌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주인공 커플에 쌍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멈추고 보기를 반복했다. 이런 드라마인 줄 상상도 못했다. ‘사랑의 이해’라고 해서 달달한 로맨스물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이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여기 두 쌍의 커플이 있다. 하상수(유연석)-박미경(금새록), 안수영(문가영)-정종현(정가람). 이 네 명의 인물들은 은행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얽히며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는 게 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그 과정은 심리적 복잡함이 얽혀 있어 좀처럼 간단하게 시청할 수 없게 하는 드라마다.
느린 전개와 캐릭터들의 답답한 행위들은 이 드라마의 최대 결점이자 장점. 그만큼 드라마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8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 말은 사랑의 감정을 각 캐릭터가 온전히 드러내야 하는 드라마라는 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하상수 역을 맡은 유연석과 안수영 역을 맡은 문가영의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심리적 기저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캐릭터의 감정선은 핵심 요체였다.
이 드라마를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4명의 배역을 아주 훌륭히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상수의 우유부단함, 박미경의 애절함, 안수영의 위선, 정종현의 찌질함 등 각 캐릭터들은 그 감정선이 보여줄 수 있는 복잡 미묘한 표현들을 다 보여줬다. 그래서 욕을 하면서도 시청을 할 수밖에.
참으로 묘한 드라마다. 시나리오는 망작인데, 캐릭터와 연출이 그나마 드라마를 살렸다. 조연급들의 연기 구멍도 거의 없다. 특히 주연급 조연이었던 소경필 역의 문태유가 인상적이었다. 음악도 좋았고 연기와 대사도 좋았다. 오직 시나리오만 최악이었다. 안수영과 하상수를 잇는 플롯이 최악이었다는 거.
30줄에 접어들어서도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서로 도망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세대의 사랑법은 저런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10화를 넘어가면서 하상수가 박미경에게 이별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저런 쌍넘의 오소리같은 자식!’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왔다.
근데, 이건 안수영이 하는 짓거리에 대하면 애교 수준이다. 그녀는 하상수와 정종현을 정리하고자 소경필하고 호텔에서 잤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그리고 그걸 소경필로 하여금 녹음하게 해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썼는데, 진짜 쓰레기 같은 짓거리다. 수영은 항상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극단적인 선택(극단적 도피)을 하며 그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은 정말 피곤하다. 아니 위험한 인물이다. 단지 문가영이라는 배우로 인해 예쁘게 포장된 것 뿐. 이런 사람의 실체를 매일 대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피폐해 지기 마련. 연애 시장에서 가장 피해야할 성격형이다. 더군다나 가정이 가난하고 모났다면 그 피해의식은 가공할만하다. 이걸 가리기 위해 아주 두꺼운 가면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그것이 친절함과 거절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로 나타난다.
사실 안수영과 같은 성격형은 많은 남자들이 쉽게 빠지는 유형이다. 여기에 미모가 받쳐주면 성실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가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안상수처럼 말이다. (이런 걸 알고 드라마를 봐도 욕 나오는 건 마찬가지. 그만큼 연기가 독보적이었다!)
그에 비해 박미경은 어떤가? 현실의 모든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유형이다. 미모 좋아, 스타일 좋아, 인성 좋아, 말 이쁘게 해, 애교도 있어, 뭐 하나 여자로서 빠지는 게 없다. 거기다 금수저다! 현실에서 이런 여자가 좋다고 직진해 오면 이 사랑을 거절하는 게 바보다. 절대 스스로 거절할 수가 없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급인데 말이다.
헌데 이 사랑을 하상수는 가뿐히 차버린다. 자기 첫사랑의 블랙홀에 빠져 진정한 사람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근데 그것이 ‘자격지심’이라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하상수는 상대에게 배려라는 게 전혀 없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해서 그걸 표출하고야 만다. 20대의 첫사랑이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이에 반해 박미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상수를 배려했다. 부모님에게 하상수가 헤어지자고 한 걸 애써 덮고 자기가 상황이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말하고, 마지막에 상수 차에서 안녕이라고 말할 때도 감정을 절제하며 최대한 배려해서 좋은 기억만을 말하고 헤어진다. 은행에서도 상수의 궁색함을 대변해 주는, 배려가 몸에 밴 여자다. 여러모로 하상수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여러 이야기를 주절거려 봤지만, 간단히 이 드라마를 요약하면 'MZ 세대의 사랑 방식'이라 촌평하고 싶다. 요즘 30대는 이러한 연애를 하는 구나 하는. 욕하면서 끝까지 봤지만 그래도 의미를 발견할 수는 있었다. 4명의 주인공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자격지심’이다. 드라마는 이 자격지심을 인물들의 기억과 행위 그리고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자격지심’은 70-80년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좀더 복잡한 듯.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가 ‘자격지심’으로 표출된 듯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온전히 아비투스를 드러내는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지난 70~80년대 사랑은 신분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에 있던 사랑, 우리는 이를 낭만이라 칭한다.
헌데 21세기 MZ 세대의 사랑은 이런 게 전혀 없고 사랑은 숭고함을 잃었다. 아비투스에 갖혀 사랑은 자격지심이라는 부산물을 생성해 냈다. 이전 새대에게도 있었던 감정이지만 단순한 부산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부산물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랑을 아비투스에 갖히게 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제 심리적 기제인 감정이다.
드라마는 이 감정의 기제를 4인물을 통해 감각적으로 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이해(利害)를 통해 상황을 이해(理解)해 보려고 노력한다. 관계가 끝난 시점에서 돌아보는 이 ‘이해’의 헤아림이 이 드라마에서 의도하는 오늘의 사랑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끝)
[덧]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찾아 읽을 생각을 깡그리 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