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herion - Lemuria / Sirius B
데리온(Therion) 노래 / 드림온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세리온에 의해서 고대 문명사가 장엄한 대 오페라 서사시로 재탄생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이집트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향수를 음악으로 복원하는 세리온의 불멸의 컨셉 앨범 Remuria! 그 어떤 수식어로도 이 앨범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앨범에 대해서 왈가왈가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개인적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사운드를 직접 귀로 체험하라는 말밖에~ 그래도 몇자 끄적여 그 감동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잡아보자한다.
앨범이 특이하게 SiriusB와 Remuria 두 장으로 발매되었다. 2004년에 나온 것을 나는 최근에야 구하게 되었는데, 전에는 이런 계열의 음악이 있는지조차 모를 때였다.
올 겨울, 우연찮게 블로그에서 2007년 헝가리 미슈콜츠 국제 락 페스티벌 공연을 보게 됐다. 엄청난 사운드를 들려주는 뮤지션이 바로 Theorion이었다. 이것이 바로 쎄리온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정말 그들이 하는 음악은 락과 메탈의 경계를 횡단하여, 클래식 그것도 오페라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었다.
쎄리온은 그냥 그런 메탈 밴드가 아니었다. 밴드의 주축 멤버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락과 메탈, 그리고 클래식과 오페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매번 발표하는 그들의 앨범은 매우 체계적이고 정제된 음악을 들려준다.
세리온의 공연에는 반드시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단이 가세하는데, 밴드의 주축인 크리스토퍼 요한손과 토마스 칼슨이 곡을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4명의 밴드 멤버, 완편된 오케스트라, 4명의 클래식 솔리스트 그리고 2인에서 4인의 락 보컬리스트들은 분리와 종합의 원칙에 맞춰 곡을 표현해 낸다.
곡의 처음은 소프라노나 테너 솔로로 시작하고 중반이후 솔리스트들의 중창과 합창단의 코러스가 이어지면서 곡의 내용과 느낌을 전개한다. (라이브 공연무대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비슷한 음악을 들려주는 다른 뮤지션들(해거드나 라크리모사 등)과 달리 이들은 연주보다는 보컬의 비중이 커서 락오페라적 특징을 보여준다. 앨범에 함께 들어있는 사진과 가사를 보면 영락없이 장대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과 같다.
이제, 앨범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전체적으로 봤을 때, <SiriusB>는 싱글 위주의 완성도 높은 곡들로 채워져 있고, <Remuria>는 에픽적 요소가 부각되어 있다. 두 장의 앨범이 합본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자켓도 다르고 음악적 색깔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로 느껴진다! (리뷰는 레무리아만 다루도록 하겠다~)
<Remuria>부터 들었는데,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쎄리온의 이전 앨범에 비해서 사운드가 그리 강한 것은 아니지만 공격적인 곡들이 눈에 띈다. 1번과 3번 트랙이 그렇다. 강한 기타 리프가 특징인 곡들인데, 오랜만에 크리스토퍼의 거친 그로울링을 들을 수 있어 무척 반가운 곡이었다.
1번 트랙은 강한 기타 리프와 함께 소프라노와 테너의 중창으로 시작된다. 코러스 부분에서 크리스토퍼의 그로울링을 들을 수 있다. 이 트랙은 타이폰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타이폰 말이다. 어깨에는 용의 머리가 100개 나고 무릎 밑은 몸을 서린 독사의 형체를 한 타이폰이 신들이 창조한 왕국의 사원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공격적 리프에 맞는 그로울링이 반드시 필요했다. 강하지만 수려한 멜로디 내에서 클래식 파트의 중창과 그로울링의 대비는 곡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2번 트랙은 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으로 들은 곡이다. 한 사람에 대한 어떤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용인것 같은데 가사 자체가 비유와 비약이 심해서 좀 난해하다. 약간 아라비아 풍의 사운드도 간간히 들리는데, 멜로디 라인은 이 앨범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기타 연주 부분이 매우 훌륭했다. 한 가지 신선했던 점은 남녀 혼성 합창이 끝나고 매츠 레빈의 솔로가 이어지는 부분이다. 보통은 거꾸로 해야 하는데, 코러스를 매츠 레빈 솔로로 들으니 색다른 맛이었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스크리밍까지~! 전체적으로는 1번 트랙처럼 공격적인 리프를 많이 사용하는 곡이지만 몽환적이고 신비적인 느낌도 있어, 아마도 예언을 담은 메시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3, 4번은 독특하게 구성된 에픽 트랙이다. 4-5세기 경(게르만족이 이동하는 시대), 고딕 종족의 로마제국 침공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역사적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사운드에 담아 빼어나게 전달하는 곡이다. 고딕 종족의 왕 버릭은 그들의 무리를 모아서 당시의 기독교 제국인 로마를 침공한다. 용맹한 이교도인 고딕 종족이 세 대의 배에 나누어 타고 바다를 건너는 동안 기독교 제국은 공포에 떤다는 내용이다. 고딕 종족은 이를 성전(聖戰)으로 묘사하며 진군가를 부르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음악적 환타지로 장대하게 펼쳐진다. 4번 트랙은 결국 이 성전에서 고딕 종족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찬가이다. 짧지만 긴밀하고도 압축적인 곡의 구성이 장대한 서사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멋진 트랙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쎄리온 음반을 통틀어서 가장 인상 깊은 에픽 서사라 생각한다.
5번 트랙은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데, 왜 이곡으로 타이틀을 정했는지 충분히 공감하는 트랙이다. 그만큼 앨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아름답고도 애절한 선율이 깊은 내면을 어루만지는 서정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레무리아는 고대에 찬란히 빛났던 지혜의 도시였다. 그런데 그들의 망각에 의해 아틀란티스와 뮤 대륙처럼 바다에 삼켜졌다. 크리스토퍼 존슨과 피터 칼슨은 이 찬란했던 고대 도시의 위대함을 서정적이고 매혹적인 음악으로 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몽환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헤비함을 잃지 않는 사운드와 알토 솔리스트의 보컬은 매혹적인 가사를 절묘하게 담아낸다. 가사의 상징성은 고대 도시의 가치와 인간 내면의 가치가 충분히 유비될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어, 듣고 있으면 가슴 한끝이 아련해진다. 찬연히 빛났다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레무리아처럼 지난 날 자신이 가졌던 꿈과 희망이 세월이라는 풍파에 가라앉았음을 상기하게 된다. 듣고 있으면 내 속에 잃어버린 레무리아를 찾고 싶어진다.
6번 트랙 역시 헤비한 사운드 이면에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과 혼성 합창단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곡이다. 고대 마야 문명의 예언을 담고 있는데, 코러스에 스페인어로 번역된 가사까지 곁들여 있다. 트랙의 타이틀인 QUETZALCOATL이 뭔지 하도 궁금해서 가사를 유심히 봤다. 분위기상 어떤 전설상의 짐승인 것 같다. 이 곡의 내용도 참 독특하다. 어디서 이런 소재를 가져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느 날 마야 달력의 동지가 되면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린단다. QUETZALCOATL을 타고 당신은 또 다른 어느날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는 염소자리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2012년에 이르게 된다. 마야의 예언은 성취될 것이라는...그런 내용. 얼마 전 개봉한 영화 <2012>도 마야의 예언에 힌트를 얻은 것이라 한다. <2012>영화에 이 화려하고 웅장한 QUETZALCOATL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7번 트랙의 타이틀은 스웨덴신비주의철학의 꿈.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세레나데 풍의 멜로디가 로맨틴하고 신비스런 느낌을 한껏 드러낸다. 특히 코러스 부분이 압권이다. 남자 보컬이 섬세하게 한 소절을 부른 후 바로 여성 합창단이 받쳐 부르는데, 너무나도 감미롭다. 부드러운 멜로디라인에 기타리프 그리고 혼성 보컬의 어울어짐이 마음을 달래준다.
이어지는 8번과 9번 트랙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쎄리온의 음악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대번 쎄리온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싱글들이다. 헤비함 사운드 속에 서정성을 극대화시키는 소프라노 보컬과 합창단의 코러스는 지극히 체계적이고 정제된 면을 들려준다. 이 두 곡의 가사도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8번 특랙은 서사적이고 심미적인 면이 부각되고, 9번 트랙은 이교도적이고 주술적면이 두드러진다. 각각 그리스 신화와 구약을 모티브로 삼은 가사인데, 듣고 있으면 섬세함과 강렬함의 조화로부터 오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
마지막 트랙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내용을 노래하고 있는데, 독일어로 씌어져 있어 해독이 불가능하다. 쎄리온이 발표하는 음반을 보면 항상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언어로 가사를 쓴다는 것이다.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라틴어와 그리스어까지 차용하고 있다. 내용도 온통 고대문명/종교를 기반으로 한 신화와 전설로 구성한다. 이러한 쎄리온의 음악적 기조는 이 앨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1번 트랙부터 마지막 10번 트랙까지 이 기조에서 벗어나는 곡은 단 하나도 없다.
10번 트랙은 강한 기타 리프와 장중한 심포닉한 면이 잘 어울리는 멋진 곡이다. 무엇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저음의 베이스 솔리스트 보컬을 들을 수 있는 트랙이다. 베이스 보컬로 인해 곡의 장엄함이 한껏 부각되어 프로메테우스의 내면적 고뇌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10개의 트랙을 듣고 있으면 락음악을 듣고 있는게 아니라 환타지 오페라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04년 <레무리아>에 바쳐진 각종 찬사가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쎄리온의 음악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클래식에 대한 깊은 이해,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청중을 사로잡는 체계적이고 정제된 곡의 구성력, 다양한 음색 그리고 신화와 전설을 재해석하는 이야기들로 펼쳐지는 <레무리아>. 10곡은 그야말로 쎄리온의 면모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심포니 락오페라의 회랑이다. 고딕의 서정성, 데쓰의 부루털함, 말러 교향곡의 웅장함, 라흐마니노프의 깊고 장중한 분위기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까지!
이 앨범을 듣고 나면 다른 어떤 음반도 당분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쎄리온이 전해주는 쓰나미 같은 음악의 감동을 느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