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군인 - 가장 슬픈 이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5
포드 매덕스 포드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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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소설이 왜 유명하고 필독서가 됐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소설 이야기는 쌔고 쌨다. 부제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라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훌륭한 군인>(문예출판사, 2013)을 완독하고 난 직후의 내 생생한 감정이다.)

 

자녀가 없는 두 커플이 만나 9년 동안 그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래서 그것이 소설의 소재라면 거의가 커플의 한 쪽 여자와 다른 쪽 커플의 한 쪽 남자가 바람이 나거나, 아니면 쌍쌍이 바람이 나거나. 뭐 그 중의 하나다.

 

줄리언 반즈의 작품 중에서도 두 커플이 바람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고,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여타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한 소재 중 단연 으뜸이다.

 

그런데 타이틀이 훌륭한 군인’. 커플 간 불륜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고, 책 표지에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20세기 최소의 소설이며 영어로 쓰인 최고의 프랑스 소설이라 찬사 받은 작품!"이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읽기 시작했다.

 

, 그런대로 읽을 만은 했다. 근데 주제가 너무 맥빠지는 얘기고 식상한 얘기라 책을 덮고 이 소설의 의의와 가치를 곱씹어 봤다. 결론은 옛날에나 통용되는 문학성이라는 거. 그리고 더 중요한 작가의 숨기지 않는 오리엔탈리즘에 냉소를 금치못했다.

 

저자인 포드 매덕스 포드는 1870년대 사람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그는 대영제국의 그러니까 빅토리아 후기 시대의 문화적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상류층 문화와 종교생활이 어떻게 데카당스적 라이프스타일로 수렴되는지 캐릭터에 생생히 녹아있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는 원동력이었다. 식상하고 뻔한 내용을 아주 훌륭하게 포장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다. 그 시대상을 인물들에 수렴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작가적 능력이다. 문학성을 담보하는 지표 중 하나랄까.

 

그래서 이 작품을 번역한 손영미는 빅토리아조 후기에서 1차 대전까지의 사회상을 화려하고 정교한 표면 아래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소설이다. 또한 한 번 읽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장면들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베가시킨다.”라고 상찬했다.

 

번역자만 그런 게 아니고 영미 쪽 평론들도 대체로 찬사 일색이다. 그리고 권위있는 문학지나 대학에서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다. 진부한 내용의 소설이 이만한 가치를 받을 만한지 의구심이 정도로 필독서 리스트는 찬란하기 그지없다. 아래 추천 목록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영어 소설 100

<옵서버>지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100

영국 가디언지 선정, 필독 소설 1000

하버드 대학 필독서 100

미국 대학위원회 SAT 추천 도서

피트 박스울, 죽기 전에 읽어야할 1001권의 책

랜덤하우스 선정 20세기 영문소설 100

칼리지 보드 추천 고등학생 필독도서 100

 

무려 하버드 대 필독서 100선에 선정되어 있는 것도 모자라 칼리지 보드 추천 그교생 필독서 100선에 포함되어 있다. 이 식상하고 진부한 불륜 이야기가 말이다. 아무리 그 시대상을 작품에 생생히 반영했다하더라도 그 중심 주제가 불륜인데 고교생 필독서라니 이건 너무하다싶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이리도 높게 평가한 건 영미쪽 시선이 많이 반영된 듯하다. 제국주의를 지나 냉전체제를 이어오며 영미 상류층에 이보다 더 판타스틱한 문학적 데카당스는 없을 듯해서다. 이 시절(187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자본주의는 맹위를 떨쳤으니,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던 때였다.

 

그래서 이 작품의 화자 존 다우얼(억만장자쯤 되는)은 사랑 없이 돈으로 마음에 든 여자를 산 다음 영국으로 이주한다. 거기서(정확히는 독일 온천) 비슷한 부류의 에쉬버넘 부부를 만나 9년 동안 친분을 쌓는데, 이 친분의 세월이 슬픈 이야기라는 거다.

 

슬픈 이야기의 요체는 이렇다. 다우얼의 아내 플로렌스가 자신을 속이고 에드워드와 붙어먹었다는 사실을, 에드워드가 죽은 후 그의 아내 레오노라에게 그 진실의 전모를 전해 듣는 것이다. 이걸 다우얼의 입을 빌려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달하는 내용.

 

이 작품은 외형상 전형적인 불륜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 포드 매덕스 포드는 그 자신과 그가 포함된 계층의 아비투스를 천연덕스럽게 잘도 인물에 구현해 놓았다. 이 소설이 최악인 이유는 포드의 그 유감없이 발휘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작중에서 에드워드 에쉬버넘은 훌륭한 군인으로 그려진다. 키가 크고 금발에 잘생겼으며, 동정심이 많고 감상적이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대대로 내려오는 부와 권력의 상징인 에쉬버넘 가문의 기둥이다. 여자들이 안 좋아 할 수 없는 요소를 다 갖고 있다.

 

그는 손만 뻗으면 여자들을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난봉꾼이 되는 건 아마도 필연적이었을 거다.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여자들에게 그는 항상 휘둘렸다. 잘생기고 튼튼한 육체에 비해 감상적이고 소심한 성격은 늘 그런 여자들에게 먹잇감이 됐다.

 

그런데 그가 사랑했던 순수한(?) 여자들 대부분은 그가 인도에서 주둔했던 때에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이다. 자기 부관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곳에서 20살도 안 된 메이시 메이단을 만나 사랑하여 영국으로 데려와 자살하게 만들고, 더욱이 에쉬버넘 부부의 양녀로 삼은 낸시까지 사랑하게 된다.

 

에드워드의 정부였던 플로렌스를 제외하고 에쉬버넘이 마음이 아플 정도로 사랑했던 여자들은 모두 인도 여자들이거나 하녀들이었다. 그리고 그 성적 대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그녀들이 죽었을 때 에드워드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는 전혀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메이시 메이단이 죽은 이유도 그가 플로렌스에게 그녀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말을 들어서였다.

 

보통 제국주의를 풍자한 만평 중 일부는 제국주의 국가들을 힘있는 군인으로 표현하고 식민지 나라를 여성으로 그려 놓는다. 그래서 제국주의적 착취를 보다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 바로 에쉬버넘 대령이라는 인물을 통해서이다. 그를 통해 작가는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이 소설을 읽고 딱 이 이미지가 떠 올랐다. 물론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제국주의 만평이지만, 인도에서 에드워드는 메이시와 낸시를 저런식으로 대했을 거 같아서..ㅎㅎ))

 

이 소설이 최악인 이유는 작가의 오리엔탈적 인식에 더해 그 윤리적 인식의 박약함에 있다. 아무리 타이틀을 반어적으로 사용했더라도 전편을 흐르는 에드워드 삶의 궤적을 동경하는 듯한 화자 다우얼의 인식을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존 다우얼은 에드워드 에쉬버넘과 9년 간 친분을 쌓으면서 그의 난봉꾼적 기질을 그가 돈이 많고 감상적이어서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고 치부한다. 자기라도 에쉬버넘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서슴없이 결론내린다. 자기 부인하고 바람난 사람에 대한 평가치곤 매우 관대하다.

 

다우얼이 에쉬버넘 부부를 만나 레오노라에게 플로렌스의 악행(?)과 에드워드의 바람기와 낭비벽을 전해들어도 다우얼은 에드워드를 비윤리적인 사람이라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감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약점으로 단정짓는다. 다우얼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여전하다.

 

물론 여과 없이 이러한 불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훌륭한 군인이라는 반어법을 사용하여 당시 시대상을 고발하는 비판적 작품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있다(대부분의 평단이 이런 시각이지 않을까)하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매덕스 포드라는 사람이 가진 계층적 아비투스를 도저히 좋게 봐 줄 수 없다.

 

이와 같은 작품을 청소년 필독 권장도서로 추천한다는 게 참으로 개탄스럽다. 우리가 그만큼 오리엔탈리즘에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져서 그런듯하다. 이보다 좋은 작품들은 널리고 널렸다. 모두가 상찬해 마지않는 작품이지만 나는 별로였다. 단언컨대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을만한데 아직까지 이런 평이 없다는 게 신기할 뿐!()

 

 

[]

1. 며칠 전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를 읽고 보니, J.M. 쿳시가 포드 매덕스 포드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다고. 그래서 그런지 쿳시도 페미니즘 계열에서 좀 비판을 받는 듯하다.

2. 포드 매덕스 포드는 서구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달랑 <훌륭한 군인> 하나만 번역된 듯하다. 그 어떤 다른 작품도 발견하기 어렵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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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8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독서 100선, 을 오래전부터 불신했어요. 이걸 정하는 사람들이 완독하지 않고 정했을 거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책을 필독서로 선정해서 말이죠. 그다음부턴 내가 읽고 좋았던 것만 남에게 추천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악행과 불륜이 들어가면 저는 재밌던데... ㅋ 님의 리뷰를 읽어 봐도 재밌을 것으로 느껴집니다. 점수는 짜게 주셨지만요...ㅋㅋ

yamoo 2023-05-19 09:37   좋아요 1 | URL
저도 필독서 100선 별로 신뢰하진 않습니다만..
타임지 선정 100선, 하버드 필독서 100선..뭐, 이런 추천리스트는 독서 활동 실체를 떠나 세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심지어 비밀독서단 선정 책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양서에 비해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죠. 유진 오닐의 밤의로의 긴 여로가 뭐가 그리 대단한지 지금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물론 톨스토이의 부활같은 책들은 정말 충분히 그 위대함에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만...그렇지 않은 책들 때문에 불신이 쌓인다는..^^;;

악행과 불륜...프롯이 재미있고 드라마틱하게 짜인 소설이라면 확실히 재밌다고 느낍니다. 가독성도 뛰어나고...근데 포드의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확실히 읽어보셔야 알 거에요~~그런 면에서 페크님은 이 책을 한 번은 일독하셔야할 듯합니다..ㅎㅎ
 
파울리나 1880 대산세계문학총서 112
피에르 장 주브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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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을 읽을 때, 처음에 느낌이 별로라고 느끼면 바로 손절해야 매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초반부, 즉 50여 페이지를 읽고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대체로 그렇다. 예외는 문장이 아주 유려하거나 가독성이 좋게 편집된 작품인데, 이 소설은 후자에 속했다.

 

더군다나 피에르 장 주브라는 프랑스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작가다. 오래 전 일본에서 건너온 세계문학 전집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작가였고, 최근에 민음사나 을유문화사 등 새롭게 단장한 세계문학전집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작가였다.

 

그런데 문지의 대산세계문학 총서 112권에 장 주부의 <파울리나 1880>(문학과지성사,2012)이 출간된 거다. 이건 아마도 대산세계문학 시리즈라서 가능한 듯하다. 이 총서에는 정말 희귀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목록을 보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어쨌거나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이 무척 지루했다. 흡입력 있는 사건이랄 게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타이틀에서 보듯이 파울리나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소개하기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인물 전기 형식의 소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대체로 그 주제가 사랑으로 수렴되는데, 작가마다 사랑의 서사가 다른 것은 뭐 상식에 속하는 편이다. 신파로 끝나거나 아님 사랑의 쟁취로 끝나거나. 이도저도 아닌 제3의 선택으로 끝나거나. 뭐 사랑했던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뭐 그런 얘기.

 

이 소설 역시 위에서 분류한 3가지 중 하나로 귀결된다(하지만 여 주인공은 안 죽는). 뻔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 즉 형식적 미학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매우 짧은 118개의 장과 상대적으로 매우 긴 마지막 11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은 다시 프롤로그 격인 푸른 방(1~2)’과 에필로그 격인 햇빛에서(119)’를 제외하고 토라노(3~32)’, ‘1870~1876(33~62)’, ‘성모 방문(63~92)’, ‘검푸른 천사(93~118)’ 4개의 부로 묶여 파울리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물론 그녀와 미켈레 백작의 사랑이야기도.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지역의 영주인 주세페 판돌리니 가의 딸이 매우 아름답게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딸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가졌다. 아버지와 오빠의 시기와 감시 속에서도 몰래 유부남이자 아버지 친구인 백작을 사랑하게 된다.

 

파울리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 몸에 성()과 욕()이라는 상반되는 두 힘에 끌리게 된다. 그래서 마치 두 인물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마음은 유부남을 사랑하며 육체적 쾌락을 갈구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이게 명백한 죄라는 사실에 너무도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수녀원에 가서 마음을 정화해 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수녀원을 나온 후 연인 생각에, 백작이 사랑했던 자신의 사진을 그에게 보내 다시 만나게 되고, 격정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나서 권총으로 백작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형을 받아 살다가 풀려난다는 게 주된 얘기다. 요즘 잘나가는 막장 드라마나 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줄거리.

 

118장에 파울리나 판돌피니의 생애가 요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게 이 소설의 줄거리라 봐도 무방하다. 이 작품은 결국 파울리나의 생애가 핵심이기 때문.

 

1849614일 밀라노에서 출생. 마리오 수세페 판돌피니와 그 아내 루치아 카롤리나의 막내딸.

독신, 무직.

1877년부터 1879년까지 만토바의 성모 방문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로 지냄.

1880828일 피렌체에서 정부(情夫)인 미켈레 칸타리니 백장을 살해함.

1881412일 자로 피렌체 법정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음. 토리노의 감옥에서 형을 살다가 1891615일 사면됨. (p242)

 

사실 표면적으로는 별것도 없는 진부한 사랑 얘기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의 형식미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래 피에르 장 주부는 시인으로 출발했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의 시에 심취하여 문인들과 함께 <황금 띠>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첫 시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인 출신이 소설을 쓰면 어떤 작품이 산출되는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산문이 매우 시적이고, 4부의 성모 방문편은 아예 기도문을 빙자한 시를 대놓고 시전한다. 심지어 65장은 한 문장이다. “나는 은총을 잃고 전락했지만 행복하다.”

 

이 뻔한 작품을 끝가지 읽을 수 있었던 동력은 이와 같은 짧은 장의 매력 때문이다. 짧으면 1문장 많으면 3페이지를 넘지 않는 장들은 매우 함축적인 문장들과 압축적 서사 전개로 파울리나의 삶을 끝까지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보통 여성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전기적 성향의 소설들은 여주인공이 대개가 빼어난 미인이다. 그 옆에는 항상 돈 많고 잘생기고 부러울 게 없는 백마 탄 남자가 연인으로 등장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주인공도 클리셰. (헌데 책 표지의 그림 여인은 내 생각에 정말 짜증나게 안 생겼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작품은 3류 연애소설에 그쳤을 거다. 이 작품이 이런 진부함을 가볍게 뛰어 넘는 건 두 가지 요소 때문이지 않을까. 하나는 위에서 밝혔다시피 형식미이고, 다른 하다는 캐릭터의 성격이다. 주인공인 파울리나가 가진 그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작가는 무의식의 심연을 통해 들여다보기를 시도한다.

 

물론 아르투어 슈니츨러처럼 정신분석적 메타포를 능수능란하게 작품에 녹여내지는 못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무의식의 심연을 심리적 초조함으로 형상화하지도 않았다. 단지 투박하지만 내면의 그 상반된 두 힘의 이동을 서사를 통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죄의식과 쾌락적 성향, 즉 성적인 성향과 종교적인 성향이 아주 팽팽하여 분열적 성향을 자주 보여준다. 이는 투박하지만 정신분석적으로 인물을 분석할 여지를 주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3류 통속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연대를 참작하면 충분한 작가적 역량이지 않을까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매우 상징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7장에서 파울리나는 토라노 영지에 있는 새끼염소를 매우 사랑했다. 헌데 파울리나를 좋아하지 않던 농부는 다른 염소들을 죽일 때 그 염소도 같이 죽이겠다고 했다. 염소를 구할 시간이 없었던 파울리나는 직접 염소를 죽였다.

 

그녀는 축사로 들어갔다. 염소를 죽이라고, 죽이라고, 하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중략) 그녀는 칼이 염소의 목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고 그녀의 손은 뜨거운 피로 물들었다. 얼어붙은 듯 그대로 서 있는 그녀의 눈빛은 끔찍할 정도로 공허했고, 오직 가녀린 아랫입술만 파르르 떨렸다.” (p26)

 

이 장면은 113장에서 그대로 차용된다. 염소는 미켈레 백작으로 치환되어 있다. 칼이 염소에 목에 파고든 것처럼 총은 백작의 목을 관통했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고, 얼어붙은 듯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겁에 질리고 절규한다. 파울리나는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면 대상을 멸함으로써 자기 사랑을 완성하는 성향을 가졌다. 정신분석적 접근이 놓칠 수 없는 인물이다.

 

, 여러 얘기를 장황하게 하긴 했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소설은 아닌 듯하다. 재미 면에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듯하다. 다만, 소설의 형식미를 주로 보는 분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보면 더할나위 없는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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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5-1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 3개라니! 작가가 이 사실을 알면 섭하겠어요.ㅋㅋ
어쨌든 읽어 볼만은 하겠어요.^^

yamoo 2023-05-12 06:41   좋아요 1 | URL
작가는 아주 오래 전 사람이라 뭐, ..ㅎㅎ
아마 유미주의나 탐미주의 계열 좋아하는 분들이면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이 계열 좋아하는 사람이 좀 드물고, 이 소설은 가독성은 좋은데 진부한 면이 많아 인기가 많이 없을 듯합니다..ㅎㅎ

그나저나 휴대폰으로 댓글 달기는 조심스럽네요. 댓글이 안 달려서 어제와 그제 날려먹은게 많아요..ㅜㅜ

페크pek0501 2023-05-1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책이라면 흥미로울 듯합니다. 심리학, 인간 이해, 정신세계 등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검색해 보겠습니다.^^

yamoo 2023-05-13 09:00   좋아요 0 | URL
페크 님,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소설이긴 합니다만..
정신분석학을 디테일하게 살려 작품속에 녹여내진 못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살던 당시는 정신분석학이 태동하던 시기라서 감안하시고 보면 좋을 듯한데...어쨌거나 정신분석학을 소설에 반영한 초창기 작품군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절묘하게 작품속에 녹여낸 슈니츨러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지긴 합니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장 주브 보다는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품들을 강추드립니다!!
 
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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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그대여, 무척 긴 글이 될 거요.”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기 위해 선택한 이 문장은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했습니다.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대작을 만났다라는 느낌이었고,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 고전적 소설 한 편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편지 형식의 고백체 소설은 아주 오랜 만인데, 그냥 한 통의 편지를 94페이지에 담았습니다. 장이나 절과 같은 소설의 형식은 찾아 볼 수 없고, 그냥 아주 긴, 사연을 담은 편지 한 통입니다.

 

편지 내용은 동성애자인 남편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게 자기변명이 아니라, 한때의 경솔한 약속에 대한 사죄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는 글이지만 문장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력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나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1인칭 화자가 삶을 반추하며 말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특히 주인공이 말하는 방식에 반해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범할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이내 우리의 행동은 징후로서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음을 깨달았소. 우리의 타고난 기질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거요.”

 

처음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 다르게 깨달아지고, 이를 통해 판단으로 나아가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은 글을 읽는 내내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합니다. 하오체 문장은 고전적이지만 화자의 고백에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미를 줍니다.

 

그리고 다음 부분을 읽게 되었을 때 줄을 치고 별표를 하며 3-4번 반복해 읽었습니다. 평소 내 생각과 너무도 일치하는데, 멋진 문장들로 화자가 말해주니 감동이 배가 되었습니다. 베그르손을 깊이 연구한 철학자가 생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좀 길게 인용해 봤습니다.

 

삶은 그냥 삶이오. 삶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저주요. 우리는 사는 거요, 모니크.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삶을, 우리가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과거 전체에 의해 결정된 삶, 아주 작은 것으로도 미래 전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요. 자기의 삶. 오로지 그 자신만의 것인, 두 번 있지 않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했는지 단 한 순간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 말이오. 삶 전체에 관한 이 말들은 삶의 매 순간에 대해서도 똑같소. 타인은 그저 우리가 있고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볼 뿐이오.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삶이 이러저러하다는 데 놀라면서도, 그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오. 우리의 삶을 심판할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그 삶에 속해 있소. 삶을 향한 찬양도 비난도 삶의 일부인 거요. 삶은 언제나 삶을 비출 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 각자에게 세상은 오로지 우리 삶에 와 땋을 때에만 존재하는 거요. 그리고 삶을 이루는 요소들은 분리될 수 없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본능들과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본능들은 결국 같은 곳에서 나왔소. 그중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도 함께 바뀔 수밖에 없지. 말은 이제,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에, 모니크, 더 이상 그 누구한테도 적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오. 어떻게 과학적인 용어 하나가 하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이오. 하나의 사실조차 설명할 수 없으면서. 그저 가리킬 뿐이지. 늘 비슷하게 가리키는데, 그런데도 다른 삶 속에 있는 것 같은 사실일 수 없고, 하나의 삶 속에 있을 때조차도 아마도 같은 사실일 수 없다오.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하오. 해명하기 쉽고, 어쩌면 당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 해도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은 그대로 남는다오. (pp32-33)

 

정말 놀랍지 않나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 작품을 발표한 때가 20대였습니다. 그것도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는 데뷔작에서 말이죠. 20대 여성 작가가 중년의 남성 화자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이 정도까지 설파할 수 있다는 데에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책에는 <은총의 일격>도 수록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알렉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 인용된 부분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다른 모든 문장은 이 부분을 위한 사족같이 여겨졌으니까요. 정말 끝내주는 책이라 아니할 수 없고, 작가 유르스나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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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26 14: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평을 받는 작품은 궁금해서 안읽을수가 없더라구요 ㅋ 저 읽어보겠습니다~!!

yamoo 2023-04-26 19:3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일독한 후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합니다. 리뷰로 남겨주시면 얼른 가서 탐독하겠습니다..ㅎㅎ

정말 대단한 데뷔작입니다!

페크pek0501 2023-05-01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추하신다니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검색해 봐야징... 후다닥!!!)

yamoo 2023-05-02 10:12   좋아요 0 | URL
이 책, 페크 님께서 읽으시면 어떠실지...
전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강추해 드립니다~ 일독하시면 아주아주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 2023-05-01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력합니다.

yamoo 2023-05-02 10:1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두 일독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되풀이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현대소설에서 누보 로망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알랭 로브그리예의 유작 <되풀이>(북폴리오, 2003)를 읽었다. 문학 사조에서 누보 로망이라 하면, 내겐 재미가 더럽게 없는 소설로 분류된다. 이건 뭐 편견이긴 하지만, '누보 로망' 하면, 전통적 소설의 형식을 배격하기에 인칭, 서사적 맥락, 주제 등이 전혀 없거나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난해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누보 로망 어쩌구 하면 나는 아얘 쳐다도 안 봤다. 교과서에서는 반소설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매우 난해한 작품만 나열되어 있어 별로 땡기지 않았다. 내게 소설의 미덕은 재미난 이야기라서 그것 자체가 없는 작품은 나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랭 로브그리예는 그 사조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작가였기에 읽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질투>(민음사, 2003)를 살짝 봤는데, 그 한 시퀀스를 묘사해 내는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지는 않지만 컬렉션 해 온 작품들 중 르 클레지오, 로제 그르니에의 작품들과 같이 구매한 작품이 <되풀이>였다. 제목도 참 맘에 들지 않았지만, 로브그리예라서 그냥 컬렉션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있는 책을 주섬주섬 옮기다가(물론 책이 너무 많아 버릴 책을 선별하기 위해서) <되풀이>의 첫장을 펼쳤는데, 보통 헌사가 쓰인 제일 첫 페이지에서 키에르케고의 <반복>의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용한 부분이다.

 


되풀이와 되새김은 동일하지만 서로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되새기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 따라서 뒤쪽을 향한 반복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되풀이는 앞쪽을 향한 되새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쇠렌 키에르케고, <되풀이>

 


인용한 책은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이었지만, 로브그리예는 되풀이로 번역하여 문장을 인용했다.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을 읽었지만, 인용된 문장이 그 책에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반복을 되풀이와 되새김으로 나눈 키에르케고의 탁견에 깊은 인상을 받아 로브그리예를 읽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질투>와는 차원이 다른 뭔가가 잡아끌었고, 첩보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시작되는 <되풀이>는 나의 구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난 첩보 소설 매니아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과 불가해한 사건들은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넘기게 해 줬다. 불가사이한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었지만.

 


책을 덮고 로브그리예와 누보 로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누보 로망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 작품은 로브그리예가 20년의 침묵을 깨고 근 80의 나이(2001년)에 선보인 작품이란다. 만년의 유작이 된 작품이 흥미진진한 추리기법과 첩보소설의 형식을 띠었다는 거에 놀랐고, 가독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왜 타이틀을 <되풀이>라 명명했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무릅을 쳤다.

 


<되풀이>는 표면적 의미가 반복이지만 불어에서는 짜깁기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불가해한 사건들과 분열된 인물(이 작품의 주된 인물은 분열 증상을 보인다)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단편적이고 이상한 사건들은 분열된 인물이 불연속적인 시간을 지나며 일으킨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을 다시 맞추는 행위, 그게 바로 <되풀이(짜깁기)>였다.

 


이 소설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시간 순으로 목차가 짜여있지만 시간 순대로 읽으면서 첫째 날을 다시 읽고 둘째 날을 지나 다섯째 날까지 날짜를 한 번 에 쭉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돌려 읽고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다. 궁금해서. 이 인물이 그 인물인지, 시간 대가 어제인지 오늘인지 계속 되풀이하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궁금증이 지속됐기에.

 


결국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면서(전형적인 메뵈우스의 띠 구조는 아니다!)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 어떤 이미지를 띠는지 그려볼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불가해한 사건과 알 수 없는 기억의 부재 그리고 의식의 혼돈은 삶의 부조리그 자체였다. 그래서 <되풀이>를 짧고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런 리뷰를 남기게 한 감명깊은 다음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거기에 동일자인 동시에 타자, 질서의 파괴자이자 수호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현존인 동시에 여행객인 누군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와 깥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우아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미 뱉어진 옛 낱말들은 늘 똑같은 낡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며 반복된다. 세기에서 세기로 전해지는, 한 번 더 되풀이된, 그리고 영원히 새로운 이야기를……” (p212)

 

 

[]

0. 이 리뷰가 <되풀이>의 알라딘 첫 리뷰라는 사실!

1. 이 작품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의 모호성과 주체의 분열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 십분 공감한다.

2. 여기에도 질리도록 세세한 묘사가 넘쳐난다.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세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퀀스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3.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작품의 근간에 흐른다. 뿐만 아니라 소아 성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 신선했다.

4. 여아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가 <롤리타>를 가볍에 압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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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3-03-2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보로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 질투를 읽다가 던져버린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네요!

yamoo 2023-03-28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질투를 읽다가 던졌습니다. 치밀한 묘사 때문에 각인된 작가인데, 고민하다가 읽었습니다. 전 되풀이가 꽤 인상깊어서 질투를 다시 읽어야 할 듯합니다!ㅎㅎ 흥미로운 작가의 재발견이었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27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질툰가 뭐 하나 읽다 중고샵에 넘겼나 그랬는데
이렇게 쓰시니 읽어보고 싶은데 품절이란 게 잘된 건지 못된 건지 모르겠네요.ㅋ

yamoo 2023-03-28 07:41   좋아요 2 | URL
보통 질투를 읽으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렇습니다...ㅎㅎ 읽다가 덮죠..ㅎㅎ
근데 되풀이는 많이 달랐고 읽을만했고 꽤 인상깊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절판이라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책을 읽고나서 알았네요..--;;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 본업도 있고, 부캐도 있고 자기만의 방
최재원 지음, 김현주 그림 / 휴머니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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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N잡러가 대세인가 보다.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매경,2021)의 성공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을 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서 그런가 보다. 쉽게 생각해도 인기 유튜버만 되어도 직장을 다닐 필요없이 유투브 제작에만 몰빵해도 수천만원의 수익이 생기니 말이다.


그래서 비슷한 부류의 책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한승현의 책보다 나은 책은 못봤다. 거의가 내용없는 자기 커리어 쌓기로 내놓은 책들인거 같아서다. 특히 최재원의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휴머니스트, 2020)는 이런 부류의 책들 중 최악이었다.


왜냐? 이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실천 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반은 '준비'에 할당되어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는 식이다. 중고교생 대상이라면 뭐 그럴 수 있다. 근데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인 생업전선에서 마음 가짐에 대한 장황한 서술은 그냥 지면 채우기용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된 업을 가진 사람이 부업, 즉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N잡러를 꿈꾸는 사람들은 실제 주된 업 외에 부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아서가 문데다. 그래서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타겟을 아무 준비 없는 평범한 직장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은 있을지언정 전혀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주위에 널렸다). 물론 찾아 보기는 한다. 그런 사람을 위해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하려면 책의 1/5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의 청소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자계서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을 주구장창 나열한다. 책의 반이 그런식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건 습관의 문제이고 개인 의지의 영역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언급과 그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준비를 하면 실천방안이 나와야하는데, 그 실천 방안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의 3장은(stage3)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오는 단계인데, 목차를 보자.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시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공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사람

기록X기록


이건 뭐, 실천을 하는데 시간, 공간, 사람을 믿자니 믿음이 가지 않는 콘테츠다. 이런 류의 책은 실천 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인데, 그 핵심이 뭔가를 믿는 거다. '상황을 믿자 : 시간'의 절이 시작되는 90 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막상 사이드 포르젝트를 시작했으나, 금세 불꽃이 꺼지려 합니다. 의지가 매우 굳은 사람들은 시작과 동시에 계획대로 모모을 움직일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자기 비난에 빠지진 말아요. 대신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나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람보다 상황을 믿어보세요. 


나를 더 강하게 묶어둘 상황을 위해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추천합니다. 지그재그 몰입은 본업을 할 땐 본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완전히 집중하는 방식이에요. 하루 중 두 시간이면 두 시간, 일주일 이면 일주일 (중략)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시간을 만듭니다. (p90)



지금 위에 인용한 부분과 같은 내용들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점령하고 있다.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건 어느 비중으로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책에는 이런 구체적인 얘기가 빠져있다. 


기록의 중요성도 하나마나한 얘기다. 내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 다른 부업을 시작한다면 기획을 하고 예산을 구상하며 내 시간 투자를 얼마나 하고 어떻게 내 산물을 팔려고 하는지 꼼꼼히 기록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런 걸 구체적으로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산출물만 있고 이걸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거다.


보통 'N잡러'를 위한 이런 류의 책은 기획에서 수익창출까지 자기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려주는 게 들어 있어야한다. 그래야 구매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책은 구매할 가치가 전혀 없다. 자게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 관련 일을 좋아해서 게스트룸에서 외국인과 수다를 떨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나보다. 그래서 지인의 조언을 따라 유튜브 채널을 열어 수익을 올리게 됐나보다. 그래서 본업 외에 수익을 창출한 기회를 얻어 이런 책도 썼나본데, 도대체 왜 유튜브를 통한 수익창출의 방법이 없는지 의아하다. '기록'을 강조한 장에서 이미 언급됐어야 했는데 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한승현의 책보다도 먼저 출간된 책인데, 저자가 구체적인 사례나 방법이 전무한 책을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내놓은 용기가 정말 가상하다. 자기가 부업을 통해 수익을 낸 방법이 쏙 빠진 책은 믿음이 가지 않는 책이다. 더욱이 하나마나 한 소리로 페이지를 채우는 내용은 함량 미달 그 자체다. 이런 책이 휴머니스트라는 지명도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게 신기할 뿐.



[덧]

1. 나도 내 그림으로 뭔가를 해 보기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런 류의 책을 주섬 주섬 사서 읽는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의 책들은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최재원의 책도 그래서 읽게 됐다.

2.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를 보고 난 후에 몇 권의 책을 사서 보았는데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는 그 와중에 본 책이다. 한승현의 책과 비교해 보니 너무 함량미달인 책이라 구매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기 리뷰로 남겨 놓는다. 이 외에 몇 권의 책이 더 있는데 다른 책들도 대동소이했다. 한승현처럼 구체적으로 뭔가를 제시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부업이 필요하고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승현의 책을 보시라. 최재원의 책은 절대 사지 마시라.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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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3-20 09:31   좋아요 0 | URL
그림도 있고 페이지 수도 많고...그런데 내용이 없고...하나마나한 얘기를 반이 넘는 분량으로 채우고 있는 책은 정말 독자를 우롱하는 책인듯합니다.

이런 류의 책, 그니까 내용없는 책들이 많은데 비판적 리뷰가 알라딘에 별로 없는게 참으로 거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