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KBS스페셜 ‘청년 탈출, 꿈을 찾아서’를 시청했다. 이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한국은 정말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거.

 

 

올 해 5월 말인가, 공중판 방송에서 네덜란드 이민 가족을 조명한 다큐를 방영했었다. 요점은 여유를 찾고 싶어 이민을 결심했다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한국은 과도한 경쟁과 근무조건으로 가족과 같이 지낼 여유가 없다고. 말미에 다큐 주인공 부부는 말했다. “물론 타향살이가 힘들지만, 5시 이후에 여유가 있는 삶,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도 소득은 배로 벌 수 있는 나라를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어제 본 ‘KBS스페셜’은 이의 청년 버전 쯤 된다. 헬조선을 탈출한 20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현재 알바 최저 시급은 6470원. 학자금 대출받아 학교를 다니고, 알바 뛰어 대출금을 갚아도, 살아갈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한 달 풀타임으로 알바를 뛰어도 100만원이 안 되고, 이 돈으로 학업과 생활을 해 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저축은 언감생심이고, 미래를 그려볼 수조차 없다니, 이게 무슨 OECD 회원국의 삶이란 말인가.

 

 

헌데, 한국을 탈출하여 주요 선진국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거 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이 희망이 없는 ‘무력감’이었다고 전한다.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는 무한 루프 속에서 내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버러지 같은 존재가 되어 간다는 것이 무섭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택배 알바조차도 떨어지는 삶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니, 이들의 고충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택배 알바에 그리 높은 스펙을 가진자들이 지원한다는 자체가 매우 이상하다고. 미친 사회 맞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여 '네가 잘 못하고 있어서다, 네가 문제다.'라는 게 결정타였다고.

 

 

다큐를 보면, 해외에서 알바를 하는 이들이라고 삶의 패턴이 한국에 있었을 때와 달라지지는 않았다. 호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식당과 호텔 정리 알바를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노동 강도는 한국보다 세지 않지만, 임금은 거의 두 배 이상을 받는다. 야근 수당을 꼼꼼히 챙겨 받고, 늦게 귀가 시 교통비도 지급받는다. 휴식은 법적으로 기본. 이들은 알바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저축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용접공의 대우를 눈으로 확인한 32세의 한 청년은 그 길로 용접을 배워 캐나다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용접 보조로 일을 한지 5년 만에 해당 자격증을 2개나 따고, 능력으로 인정받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청년의 연봉은 7천 만원. 캐나다인 용접 매니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 캐나다는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직무와 능력으로 사람을 대우하기 때문에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성공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선진국이라는 호주, 캐나다, 일본. 비록 자본주의 사회였지만 한국 청년들이 ‘행복’이라고 느끼고 삶의 ‘희망’을 발견한 곳이다. 결코 편하다고 볼 수 없는 기술직이거나 비정규직이었지만, 이들은 여유 있는 삶이 좋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 나라에 머물겠다고 다짐한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은 열심히 살아도 그 대가가 정당히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라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나라라고.

 

 

헬조선이라는 말이야 언론과 책에서 많이 듣고 알았지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20대에게 생생한 말을 전해 들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 그들이 한국을 향해 ‘애처로운 나라’라고 했을 때,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바로 정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 나라의 청년들이 나라를 등지고 해외로 떠나간다. 두뇌유출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기성세대가 될 그들이 한국을 ‘애처로운 나라’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인구절벽을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성장률이 마이너스 상황을 기록할 시기가 확실히 도래한단다. 이 와중에 나라 경제의 근간을 부양할 20-30대 층들이 해외취업과 이민으로 한국을 등지고 있다. 엑소더스 헬조선이다. 이 추세가 10년만 지속되어도 우리는 그리스 사태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기성세대의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하고 한국을 탈출하는 청년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자신의 꿈을 찾아 스스로 개척하는 길까지 ‘비겁하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가 그래도 굴러간다면, 그게 고작 몇 년을 버티겠는가? 수많은 비리와 갑질 위에 서 있는 나라. 머리가 텅 빈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인사와 정책을 마음대로 획책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 창조의 희망이 있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뭐, 정치에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있는 기본 제도만 제대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거다. 세금 걷으면 투명하게 쓴 거 공개하고, 현장을 체험한 후 정책을 기획하고, 퇴근 후 근무지시 하지 말고, 야근 하지 말고, 야근 하면 수당 제대로 주고, 직무 능력으로 역량 평가하고, 생활에 맞는 임금을 지불하면, 최소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은 되지 않을까. (근로기준법만 제대로 준수하라고!)

 

 

이명박근혜 10년 치적의 결과가 ‘헬조선이요, 국민이 꿈을 찾아 그 헬조선을 탈출’하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새누리 빠 아니면 외국인일 듯. 이제 1년 남았다. 대통령을 잘 못 뽑으면 국민 생활이 어떻게 파탄나는지 우리가 똑똑히 보고 있다. 우리가 아직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기본이 바로 서는 정치뿐이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구조적 모순점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정치가 제대로만 작동하면 우리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BS 자본주의 다큐가 책으로 묶였다.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가’를 잘 파헤친 다큐였다.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본질적 문제점에 대한 얘기였다. ‘KBS 스페셜’ <청년 탈출>의 경우에는 여기에 정책의 부재가 더해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듯. 내게는 청년 실업 문제가 ‘세월호 사태’의 경제 버전으로 읽힌다. 정부가 젊은 층의 얘기를 현장에서만 파악했더라도 현재와 같은 ‘공황적 엑소더스 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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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16-08-26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ㅠㅠ..

yamoo 2016-08-27 17:37   좋아요 0 | URL
우끼 님 반갑습니다!^^ 청년 이시라면 홧팅 하십시요!

[그장소] 2016-08-27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동치미 국물 들이켠듯 덜덜덜 ~~^^

yamoo 2016-08-27 17:38   좋아요 1 | URL
이거 재방 시청 가능하시다면 봐 보세요. 진짜 뚜껑 열립니다. 청년들에 대한 정부 정책은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과 똑같아 보입니다~

[그장소] 2016-08-27 17:40   좋아요 0 | URL
찾아봐야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고무마 10000개 물 없이 먹는 기분입니다..

yamoo 2016-08-27 17:39   좋아요 0 | URL
표현이 참 곰발 님스럽습니다! 이런 창의적 표현이라뉘!!^^

시이소오 2016-08-2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접 배우고싶네요 ^^

yamoo 2016-08-27 17:39   좋아요 0 | URL
저도 용접 배우고 싶어, 동생에게 말하니 나이제한이 있답니다..ㅜㅜ

stella.K 2016-08-27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외국의 알바 사례를 접하면 좀 놀랄 것 같아요.
헬조선에 찌들어 사느라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당황하지는 않을지...

오늘 아침 SBS 시사 프로 봤는데 30대 기혼자들이 서울을 떠난다더군요.
기혼자들이 자기 자녀를 데리고 서울에서 전세살이하는 거 지옥이라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그나마 위로가 되더군요.
사람이 일단 사는데 걱정이 없어야지 2년마다 전세값은 얼마나 오르나
어디로 가야하나 얼마나 스트레스겠어요.
그래놓고 인구감소나 걱정하는 탁상행정이나 하고 앉았고...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진짜 인구가 더 감소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봐요.ㅠ

yamoo 2016-08-27 17:43   좋아요 0 | URL
20대는 알바로 해외 취업....30대는 이민으로 탈출....대세가 그렇다네요. 30대 이민이 급증하고 있답니다. 기술만 있으면, 해당 나라의 외국어만 할 줄 알면 대우가 꽤 좋다네요..

우리나라...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헬조선 상황을 계속 죽을때까지 겪어야하지 않나...하는 우려가 듭니다. 진정한 사회개혁을 일으키는 정권 창출이 되어야 합니다..그리스 사태와 같은 공황상태가 오기 전에요..

페크pek0501 2016-08-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생기는 나라가 되기를...

yamoo 2016-09-01 22:17   좋아요 0 | URL
바뀌지 않으면 끝인거 같아요. 정치가 바뀌기를 희망해 봅니다~~^^

transient-guest 2016-09-02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선진국의 인구절벽은 기정사실이고 미국의 경우 이민으로 이를 상당히 많이 해소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트럼프 같은 놈들에게 놀아나기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이 지금의 미국으로 남아있게 된다면 이민으로 인한 인구증가 덕분일 겁니다. 우수인력도 많이 들어오지만, 기초노동력 인구를 확보하고 이는 세금을 낼 수 있고, 구매력이 있는 인구증가의 측면에서 적어도 미국은 유럽보다더 훨씬 더 외래이민자에게 개방된 사회입니다. 프랑스의 리버럴리즘에 반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유럽을 칭찬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국만큼 비주류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국가도 드물죠.

벌써 십 수년전에도 택시기사님들하고 얘기해보면 한국은 참 살기 힘든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루에 14시간씩 일해도 밥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이 말이죠...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살면 이곳에선 뭐라도 하고 살 수 있어요. 또 돈없다고, 힘없다고, 덜 배웠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게 사회보편의 통념이라서 한국에서 겪는 이상한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지금의 한국은 모든 가치관이 무너지고, 뒤죽박죽이 된 무질서한 사회에서 정글같은 경쟁만 90%들이 무한반복하고 싸우고, 그 위에 10%가 군림하는 형태라서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향후 5-10년 간의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아요. 정치개혁이 일어나도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확장되지 않는 한 어렵다고 생각해요. 갑갑합니다.

yamoo 2016-09-03 18:1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좋은 두뇌의 지속적인 미국 이민이 미국을 계속 부강하게 했던 거 같습니다. 비주류의 정치참여가 미국만큼 활발한 국가도 별로 없지요. 시민이 의원을 만나기가 한국보다 10배는 쉬운 나라이니까요..ㅎ

지금은 십 수년 전보다 훨씬 안 좋습니다. 혹시 조만간 한국 나오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피부로 느끼실 듯...정말 전반적인 사회의식 수준이 높아지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듯합니다. 국민 개돼지 발언은...어느 정도 사실이니까요..하~ 저도 갑갑하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6-09-04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멀리서 보면 신기하고 가까이서 보면 이상한 곳 같아요. 언젠가 저의 모친께서 남긴 말이 딱 들어맞아요.
되는 거 하나도 없고, 안되는 것도 하나도 없는 나라다, 한국은.
야무 님의 글이 참 좋아요.

yamoo 2016-09-11 12:19   좋아요 0 | URL
우왕~ 쟌느 님이시당~~^^
모친 께서 하신 말씀이 참 인상깊어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알라딘에서 쟌느 님의 페이퍼를 좀 많이 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ㅎ 고양이들 사진글 말구, 예전에 가끔 올려주시던 리뷰 비슷한 예전 글...많이 그립네요~
 

검색무력화 도서(7)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루이스.A. 코저 / 방근태 역, 태창문화사, 1980 / (2,200원)

 

 

 

책소개

 

원저 명 <Men of Ideas; A Sociologist's View>은 1980년대 미국 사회학계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Lewis A.Coser 교수가 지식인 문제를 역사사회학적 방법으로 분석·고찰한 괄목할만한 역저다. 오늘날과 같이 지식이나 정보의 비중이 급속히 높아가는 정보사회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코저 교수는 18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대지식인의 원형을 찾고 이러한 과점에서 지식인이 차지하는 위치와 기능을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다.

 

 

차례

 

서문 / 13

제1부 지적 생활의 사회적 환경 / 23

제1장 서론 / 24

제2장 프랑스의 로코코 살롱 / 32

제3장 18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 / 43

제4장 왕립 학사원과 근대과학의 발흥 / 50

제5장 18세기 영국의 저술업 / 57

제6장 저술의 상품화 / 71

제7장 19세기 영국의 평론지

제8장 관제 제도 / 101

제9장 정치 당파 / 115

제10장 보헤미안 문사의 사회 / 124

제11장 동인지 / 137

 

제2부 지식인과 권력의 장 / 149

제12장 서론 / 150

제13장 권력의 자리에 앉은 지식인 / 152

제14장 지식인으로 인한 권력의 붕괴 / 182

제15장 권력의 합법화와 지식인 / 202

제16장 지식인의 권력 비판

제3부 현대 미국의 지식인 / 235

제17장 서론 / 236

제18장 현재의 상황과 전망 / 239

제19장 독립 불기의 지식인 / 252

제20장 대학의 지식인 / 268

제21장 워싱턴의 지식인 / 285

제22장 대중문화 산업의 지식인 / 297

제23장 요약 / 311

 

역자의 말 / 327

 

 

 

 

 

야무의 간단평

 

사회학자들은 자기 이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기 색깔이 완연히 담긴 책을 출간하기 시작하는데, 그 신호탄이 대체로 ‘지식인 론’에 관한 책인 듯하다. 에세이와 논문의 중간 형태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기에. 이전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 등을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면 말구^^;;)

 

코저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역시 내 생각이 터무니없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코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1956년 출간된 <사회적 갈등의 기능>이지만, 코저의 저서 목록 중 역저라고 칭할 수 있는 책은 이 책이라고 코저 전공자들이 전하기 때문. 사회학 이론에 새로운 접근방법을 취했던 1963년 작 <문학을 통한 사회학>의 기본 뼈대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라는데).

 

(코저 저서 중에서 <문학을 통한 사회학>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사회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문학작품 속에서 사회학 기본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적용하는 방식을 택해서 였다.)

 

사실 이게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점이기도 한데, 이를 부연하면 이렇다. 19세기 후반 미국 사회학계(소위 베블런과 쿨리 등을 주축으로 한 구조적 개혁론자와 샘너, 기든스 등을 중심으로 한 부분적 개혁론자 등)는 순수 이론적 방향보다는 개혁적인 방향으로 그 관심을 쏟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코저 역시 사회에 불만스런 점이 많았다. 그래서 독일 출신답게 형식 사회학의 창시자인 게오르그 짐멜이나 지식 사회학의 중요 학자였던 칼 만하임의 이론적 틀로 무장하여, 좀 더 일반적이고 문학적 함축성을 띤 비판적인 시각을 띠게 된 것.

 

코저는 이 책에서 이를 심화시킨다. 그는 지식인 중에서 주로 문인들의 역사가 현대 미국의 지식인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하면서, 오늘의 지식인의 본성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규명하고 한다.

 

이를 통해 코저는 사회 주류에 완전히 흡수되는 지식인(쉽게 말해서 정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학자군)과 이와는 거리를 두는 지식인(비판적 지식인)의 대립을 지양하고, ‘있어야 할 지식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지식인 상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의 저자 루이스 코저에 대해 :

 

우리나라에서 루이스 코저는 <사회사상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주저는 1956년 버나드 로젠버그와 함께 집필한 사회학 교과서 <사회적 갈등의 기능(The functions of Social Conflict)>과 1963년 사회학 이론에 새로운 접근방법을 취한 <문학을 통한 사회학(Sociology Through Literature)>이다. 그리고 <지식인이란 무엇인가(Men of Ideas; A Sociologist's View)>.

 

루이스 코저는 1913년 독일 베를린 출신으로, 1935년 ~ 1938년 까지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배운 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50년부터 2년 동안 콜롬비아 대학의 사회학 연구원으로 종사했고, 그 동안 로머트 머튼의 영향을 받아 사회체계의 기능 분석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구상하여, 이후 <사회적 갈등의 기능>을 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으로 코저는 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미국에 알릴 수 있었고, 미국 사회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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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헌책방 가면 출간한 지 얼마 안 되는 책보다는 아예 절판된 책 위주로 사게 되더군요. 출간한지 얼마 안 된 책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 말이죠.. 그런점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은 좀 아쉽더군요. 대부분 출간된지 얼마 안 된 헌책들이잖습니까..

yamoo 2016-08-23 11:55   좋아요 0 | URL
헌데 요즘 헌책방들은 절판된 책은 검색해서 가격을 아주 높게 부르더이다...그래서 헌책방은 맨날 가는데만 가게 된다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경우에는 요즘 부쩍 가격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절판된 책은 가격이 무지 착해 고르는 재미가 있지요..ㅎㅎ 정말 잘 골라야 한다능~

cyrus 2016-08-2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 코저의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책의 제목에 `갈등`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어요. 저자의 활동을 몰라서 책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

yamoo 2016-08-23 11:57   좋아요 0 | URL
에구야, 그 코저의 주저를 놓치셨군요! 담번엔 꼭 건지시길...중고서점에서 코저의 저서들이 눈에 띄면 무조건 건지세요~

저는 유명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잘 몰라 감춰져 있는 문학작품들을 그대로 지나친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사실..ㅎㅎㅎ

루쉰P 2016-08-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옵 ㅋ 읽고 싶어라 ㅋ 예전에 헌책방 일 할때 책이 하도 많으니 좋은 책이라 해도 지나치기 일쑤였어요 ㅋ
그나저나 알라딘 무력화라니 ㅋㅋㅋ 뭔가 혁명가 같아요 ㅋ

yamoo 2016-08-23 11:59   좋아요 0 | URL
헐~ 헌책방에서도 일하셨군요!

혁명가....ㅋㅋ 그런 뜻이 아니구...알라딘에서 검색하면 검색 안되는 책들을 주로 모아 놓는 곳이라서뤼.....작명이 잘 됐나 시펐는데....혁명가 같다니...그래도 실패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ㅋㅋ
 

어느 순간부터 신간을 거의 사지 않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신간 구매는 올재 클래식이 발매될 때만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구매합니다. 알라딘 중고서점뿐만 아니라 황학동, 낙성대, 신림, 천호 등 시간 날 때마다 중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책이 탑으로 쌓이고, 그 중에서 걸출한 책들을 골라왔다는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친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고 할 것입니다. 누렇게 뜬 책들을 보고 히죽히죽 웃거나 더러운 책을 스담스담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요. 하지만 책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하는 행동에 충분히 공감을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수집가는 수집가를 알아보죠.   

 

책이 쌓이니, 당장 읽지는 못해도(지금은 베르그손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읽을 만한 걸출한 책들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이런 책들이 왜 지속적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대부분 절판되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계속 출간되는 책이 있지요. 복잔 되는 책도 있습니다.) 좋은 책인데 말이죠. 다시 재판되면(절판된 책들) 장정을 갈아입고 매우 비싼 가격을 몸에 달고 나올 거 같습니다. 이미 검증되고 있는 현상.       

 

이 페이퍼는 이런 책들에 대한 소개 내지 ‘자랑질’ 정도가 되겠습니다. 읽은 지 오래 되었고, 스담스담했던 책이라 자랑질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본격적으로 다시 읽는 건 올 겨울이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뭐, 신간 마실은 서점에서 둘러보고 혹하는 책들을 즉시 살 수 있지만, 절판된 걸출한 책들은 당장 구할 수 없는 그 희소성에 가치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다시 들춰봐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들입니다. 보통 2000년대 초반 출간 됐거나 10년 전에 나온 책들 중 다시 간행되는 책들이 있습니다만, 내용 변화 없이 가격만 올리는 경향이 있어 좀 거시기 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가, 중고서점에서 눈에 띠어 구매하게 된 책이 대부분. 혹시 중고서점에서 아래 책들이 보이걸랑 냉큼 구입하시면 좋겠습니다!

 

 

<세계문학비평 용어사전>, 이명섭 편저, 을유문화사, 1998

용어사전류는 어느 정도 레벨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할 책이다. 요즘 문학용어 사전들이 꽤 많이 번역‧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책이 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이 아닐까 한다. 갖고 있는 문학용어사전 책이 몇 권 있는데, 대부분 하드커버에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기 때문에 좀 비싸다. 2만 원을 가뿐히 넘는 책이 대부분. 하지만 이 책은 정가가 12000원밖에 안 한다. 최고디! 두깨는 여타 문학용어사전과 비슷한 정도. 물론 편자가 외국 저자 책을 번역하고, 여기다가 임의적으로 용어를 추가하여 짜깁기 비슷한 책이 됐지만, 내용 자체는 꽤 좋다. 문학용어 사전 한 권 사 놓을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반드시 건져야할 아이템이라 하겠다. 중고서점에서 건지면, 5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어,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책이다. (알라딘은 책 이미지를 확보하라! 사진찍어 올려야 하다뉘!)

 

 

 

<20대 경제생활 첫걸음>, 양석조 & 김신욱, 북스토리, 2010

흠, 이 책으로 말할 거 같으면, 자신이 실물 경제에 대해 잼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 둬야할 경제 실용 지침서다. 특히 자신이 직장인이라면, 거기다가 경제에 문외한이라면 이 책보다 더 유익한 책은 없을 듯. 사회 초년생인 20대에 타겟을 맞춘 책이지만, 경제를 잘 모르는 30, 40대가 봐도 무방한, 아주 강력한 책이다. 세금(세금 적게 내는 방법), 보험(줄줄 세는 내 보험료), 연말정산, 부동산(임대체 계약에서 부동산 매매까지), 주식, 회계(회계 장부를 보고 작성하는 법), 어음, 수표 등 회사생활과 일상 경제생활에서 모르면 손해 보는 알짜 정보가 아주 옹골차게 들어찬 책!

 

 

 

 

<복식의 역사>, 블랑쉬 페인, 까치, 1997

복식사 책을 꽤 많이 들춰 봤지만, 이 책만큼 알찬 책은 드물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20세기까지 복식의 역사를 밀도 높게 알려주는 일종의 교과서. 하지만 일반 교과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근데 하도 분량이 많아(글자가 깨알같이 작게 편집되어 있다) 읽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삽화도 상당수 들어가 있다! 최대한 많은 내용을 한 권에 담으려고 노력한 듯(그만큼 알찬 내용이 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다른 복식사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기본적인 의류 도식이 부록으로 대거 첨부되어 있다는 점. 거지같은 편집에 비해 가독성은 좋은 편인데, 도판과 그림이 모두 흑백이라 그게 매우 아쉽다. 이 책이 올 컬로로 재단장해서 나오면 아마도 5만원은 가뿐이 넘을 듯하다.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 문학동네, 2007

커트 보네거트가 절필을 선언한 이후 발간한 에세이집. 방송인이자 작가인 스터즈 터클이 이 책이 출간되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네거트가 약속을 깨뜨리게 해 주셔서.”라고 말했다니, 영미 문학계에서 보네거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 준다. 보네거트 하면 신랄한 풍자와 품격 있는 유머 그리고 날쌘 재치로 유명한데, 이 책을 펴서 한 페이지만 읽어 보아도 보네커트에게 회자되는 저 명성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네거트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 에세이집은 정말 최고다! 이걸 이렇게나 늦게 만나다니...

 

 

 

 

 

<퍼스의 미완성 체계>, 정해창, 청계, 2005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 베르그손, 후설 등의 공통점은 아마도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 철학자라는 사실. 여기에 찰스 샌더스 퍼스를 올려놓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 있는 철학자다. 철학보다는 기호학에서 더 많이 연구되는 학자인데, 그만큼 퍼스의 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우리 학계에 별로 없기 때문일 거다. 어쨌든, 미국에서(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라고 평가받는 문제의 철학자다. 사실 미국에서 철학은 건국초기부터 ‘독창’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뭘 하든 영국의 따라지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퍼스로부터 미국은 사상사에서 한 획을 긋는 철학사조를 태동하게 된다. 그게 바로 프래그머티즘. 퍼스는 프래그머티즘을 잉태시킨 시조다. 철학사 어떤 책을 펴도 미국철학은 프래그머티즘이고 이는 퍼스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미국 철학의 ‘숨겨진 영웅’ 퍼스를 일대기부터 시작하여 중요 사상에 이르기까지 알기 쉽게 훑어 주는 고마운 책이다. 퍼스 입문서로 민음사에서 출간된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10)이 유명한데, 정해창 교수의 이 책이 훨씬 더 쉽고 퍼스의 체계를 넓게 조감할 수 있다. 퍼스의 사상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장엄한 불교 경전의 세계>, 김정빈, 책이있는마을, 2005

아주 옛날, 고려원이 망했을 때 김정빈의 ‘만화로 보는 불교이야기’ 5권을 구하지 못해 땅을 치고 후회한 적이 있다. 오, 근데 고려원이 망한 후 판권이 ‘책이있는마을’로 넘어갔다 보다. ‘책이있는마을’에서 출간된 김정빈의 ‘만화로 보는 불교이야기’ 5권 세트는 배판도 커지고 편집도 산뜻해(2색 인쇄)져서 보기 시원시원하다. 내용은 고려원판과 똑같다. 이 책은 불교이야기 시리즈 중 마지막 권으로 불교 경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만화로 된 불교 입문서 중 황금가지에서 나온 ‘만화로 보는 불교’ 시리즈와 더불어 그 체계와 내용이 매우 탁월한 교양 불교 만화다. <장엄한 불교 경전의 세계>에는 불교의 주요 경전들이 모두 다루어진다. 아함경, 법구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 핵심 경전을 아주 간결하게 스케치한다. 다소 깊이는 부족하지만, 교양으로 읽어두기 그만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교양서로도 부족함이 없는 멋진 책이다~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발견들>, 에드워드 스파이어, 범양사출판부, 1998

범양사라는 출판사가 있다. 주로 과학 교양서를 주로 출간하던 출판사인데, 이곳에서 총서 시리즈로 기획한 책들이 있다. 범양사 '신과학 총서'.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간된 이 총서는 실로 1급 이론서를 포함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외국 석학의 과학 교양서를 잘도 선별하여 출간해 왔다. 내가 소장한 책만도 한 10여권 이상 되는데, 정말 걸출한 과학책이 많다. 아서 케슬러의 <야누스>를 비롯하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 레더만의 <쿼크에서 코스모스까지>, 부어스틴의 <발견자들 1,2,3>, 브로노프스키의 <인간등정의 발자취> 등등. 프리초프 카프라의 주저(<현대문명과 동양사상>,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들도 범양사 이 총서에 들어있던 책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듯하다. 어찌됐건, 표지는 안타까울 정도로 궁하지만, 내용은 매우 빼어나다. 이 시리즈 대부분이 일정 정도의 퀄리티를 갖고 있어, 총서 명만으로 구매해도 기본은 한다. 스파이어의 이 책 역시 뉴턴 이후 물리학에서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여섯 분야의 발전(파동이론, 장이론, 통계물리학, 양자론,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들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상당히 난해한 이론들이지만, 일반인들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 밀도 있지만 쉬운 물리학사 책을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책.

 

 

 

 

<에로틱한 발>, 윌리엄 A.로시, 그린비, 2002

원제는 <The Sex Life of the Foot and Shoe>. 타이틀 밑에 부제로 ‘발과 신발의 풍속사’를 달았는데, 그냥 부제를 책 타이틀로 달았으면 좋았을 책. 문화사(풍속사)로 분류할 수 있는 책들은 대체로 읽어두면 유익하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신체의 가장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발에 관한 성풍속 자료가 예상외로 많다는 거. 무엇보다 저자가 성풍속 자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무게감 있는 학문적 내용에 재미와 유머가 깨알같이 섞여 있다. 그래서 책 읽는 맛이 그만. 이 책을 읽으면 여자들이 왜 실용적이고 발이 편한 신발을 신기보다 불편하지만 섹시한 구두에 발을 우겨넣고 있는지, 문화사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아내나 여자 친구가 발 아프다고 하면서 하이힐을 신는다고 타박하지 않게 됨.) 발에 관한 전문가(저자 로시는 발치료 전문의)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절대 흘려들을 수 없다. 패션과 건강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발과 신발. 이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이라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구두, 그 취향과 우아함의 역사>(작가정신, 2005)와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

 

 

 

 

<한국전통사회의 정신문화구조양상>, 정종화, 고려대출판부, 1995

이거, 아주 걸출한 책이다. 혹시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보신다면 닥치고 구매하시길! 부제가 ‘속담을 통해 본 가치관의 비교문화적 접근’. 저자인 정종화 교수는 영문과 교수이다. 영문과 교수가 한국적 가치관의 실체를 찾고자 우리나라 속담을 모아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한국적 성격이 어떻게 형성됐고, 남녀 관계와 기타 인간관계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모두 속담을 통해 보여준다. 영문과 교수인 만큼 영어 속담과 우리 속담과의 비교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차이로 귀결된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책과 같이 보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특히 부록으로 정리된 ‘우리 속담’, ‘외국 속담(원어 그대로 실려 있음)’과 이를 번역한 ‘외국 속담 번역’은 [간이 속담 사전]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해당 페이지를 찾으면 용례와 의미를 빠르게 찾을 수 있으니까. 정말 희귀한 학술서다!(학술서인데 재밌기까지 함) 가격적인 면에서도 대박. 정가가 8500원밖에 안 해, 4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다. 이 책이 재간되면 아마도 2만원은 가뿐히 넘지 않을까. (다른 인터넷 서점에는 이미지가 있는데, 왜 알라딘에는 없을까?!)

 

 

 

 

<지명으로 보는 세계사>, 21세기연구회, 시공사, 2002

이 책을 읽고 21세기연구회가 펴낸 역사서를 모두 소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명으로 알아가는 역사 지식이 매우 쏠쏠하다. “지명은 도로 한쪽에 세워진 단순한 표지판이 아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도 자신만의 역사가 살아 숨쉬듯 그 곳에는 수천 년 인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명은 전쟁과 민족의 대이동, 대항해가 만든 장대한 역사의 대사전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지명에 얽힌 역사적 이력과 그 의미를 아는 재미는 이 책을 읽는 사람만의 몫일 게다. 미국의 시카고는 ‘야생 양파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아프리카의 국가 짐바브웨는 ‘커다란 돌집들’을 의미한단다. 고대의 석조 유적, 대 짐바브웨에서 따왔다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의미도 소개돼 있다. “제주도의 ‘제’는 ‘물을 건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주’라는 행정구역의 단위를 붙여 고려왕조는 ‘바다 저편에 있는 주’라는 지리적 감각에서 제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p120) 제주도가 고려시대에 붙여졌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저런 의미가 있는 줄을 몰랐다. 전 세계 주요 나라와 도시 그리고 강, 바다, 산맥, 민족 등등 그 명칭에 내포된 역사와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는 그만이다. 읽고 나면 세계 지리와 세계 역사에 대해 막 아는 척 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유익한 책.

 

 

 

 

<사이언스 퍼스트>, 로버트 E. 아들러, 생각의나무, 2003

고대에서 현대까지 최초의 발견을 이루어낸 35명의 과학자를 다룬 과학사 책. 기원전 6세기 탈레스에서부터 20세기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까지 지난 2600년 동안의 멋진 과학적 사건들과 발견들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과학 교양서. 저자는 과학사 전문 저술가다. 과학자가 아닌, 네이처지에 기고하는 출판물 전문 저술가이기에, 이런 책은 이론의 깊이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밀도 높은 과학 전문 이론서는 이해하기 너무 버겁다. 그래서 핵심 과학자와 그들의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이런 책이 인기 있는 건 당연한 일. 쉽게 과학사를 정리할 수 있으니까. 물론 빠진 간극은 어찌 할 수 없다. 보통 밀도 있는 과학사 책은 시대순으로 과학자 10여 명이나 10여 개의 주요 과학 원리들을 다룬다. (보통 도서관에서 확인해 보니 그렇더이다.) 400페이지 내외. 이런 책들은 읽기 쪼금 빡빡하다. 그에 비해 <청소년을 위한 과학자 이야기>(신원, 2002)같은 책은 30명의 과학자를 다루지만, 매우 쉽다. 대상이 청소년을 위한 과학사이기에. <사이언스 퍼스트>는 밀도 높은 이론서와 청소년용 과학책의 딱 중간 정도 수준인 듯. 과학 교양서로는 아주 그만인 책이다. 보통 과학자를 다룬 과학사 책은 아주 유명한 과학자들로만 채워진다. 뉴튼, 갈릴레오, 패러데이, 돌턴, 코페르니쿠스, 멘델, 왓슨, 케플러, 허블, 아인슈타인, 괴델, 라부아지에, 다윈, 플랑크 등의 학자 가운데 저자가 10여 명을 선별한다. 대체로 그렇다(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꺼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생소한 과학자가 꽤 많이 등장한다. 레우 키포스(우주는 원자와 공간으로 구성된다), 아리스타르코스(잊혀진 태양중심이론), 이븐 알하이삼(시각의 비밀), 안토니 반 레벤후크(미생물 탐험가), 험프리 데이비(웃음가스), 레이먼드 다트, 바바라 매클린턴, 디디에 퀼로즈, 키스 캠벨 등등. 과학사에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 학자들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 책과 함께 <과학의 열쇠>(교양인, 2006)을 함께 읽으면, 과학사가 손에 꽉 잡히지 않을까 한다.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만, 황금가지, 2002

버만의 논의대로라면, 미국은 얼마 가지 않아 초강대국의 힘을 잃을 거다. 원제는 <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이고, 부제는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버만은 로마 제국의 몰락으로부터 미국의 운명을 예견한다. 저자는 로마의 멸망을 몇 가지로 제시하는데,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정신의 타락과 지식의 몰락’ 등이 그것이다. 버만은 이런 요인들이 미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소비주의의 만연으로 일반교양 문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그 예로 미국 엘리트 층의 처참한 교양 수준을 알린다. 버만은 1999년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제이 리노가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리노는 당시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포함되었다면서, 8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중 가장 충격적인 질문만 거들떠보겠다. [문5. 숫자 3의 제곱은 무엇입니까? 한 학생은 27이라 답했고, 다른 학생은 6이라 답했다. / 문6. 물이 끓는 온도는? 학생 중 섭씨 46도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 문7. 지구가 자신의 축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리노가 받은 두 가지 답변은 광년과 24개의 축. / 문8. 지구에는 달이 몇 개 있는가? 질문 받은 학생은 2,3년 전 천문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A학점을 받았지만 모르겠다고.] 1/5과 1/2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모르는 학생도 많았단다. 글을 왜 읽느냐고 되묻는 학생들도 있었다니! 이로부터 버만은 미국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는데, 타치바나 다카시가 일본 청년을 진단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와 그 내용이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 여튼 이 책은 아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흥미진진하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라면 얼른 데리고 오시길! 알라딘 중고서점에 자주 출몰하고 있으니까~

 

 

 

 

<대중매체의 기호학>, 박정순, 나남출판, 1997

기호학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고자 책을 찾다 보면 죄다 어려운 책들만 보인다. 뭐가 개론서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 일단 번역본은 번역 자체의 장벽 때문에 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한길 크세주 총서 중 한권인 <기호학사>가 나름의 쉬운 입문서 구실을 한다지만, 그래도 번역서라 조금은 짜증이 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가 쓴 기호학 입문서를 찾아 다녔지만 계속 허탕을 쳤다. 논문 모음을 제외하고, 한 학자가 단행본으로 출간한 ‘기호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하는 책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번역서와 논문 모음집을 제외하고 쉽게 정리된 '기호학 입문'서는 검색조차 안 된다. 헌데, 아주 우연히 대학 교과서 코너를 두리번거리다가 박정순 교수의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신문방송학 코너에 있는 책이라 손에 쥐기 쉽지 않았는데, 책을 열어보니 알고 싶던 내용들이 죄다 들어있던 거!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서론과 1, 2장은 안 봐도 무방. 커뮤니케이션 접근방법과 모델에 대한 내용이기에 없는 셈 쳐도 된다. 3장부터 알고 싶은 기호학 일반 이론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대학원생들과 미디어 전문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기호학 개론서로 딱이다. 일반 기호학의 기초 개념들을 소개하고, 이 개념들이 텍스트 분석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소개하는 내용이기 때문. 3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은 정말 기호학 입문에 대한 알찬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호학이 뭔지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 한 권이면 한 방에 정리될 거임. 개인적으로는 기호학 이해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기호학으로의 초대>같은 책이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이전 판 이미지도 올려주시길!)

 

 

 

 

<역사를 보는 눈>, 호리고메 요조, 개마고원, 1998

역사철학에 대한 가장 유명한 책은 아마도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일 게다. 헌데 번역으로 인해 읽기 쪼금 힘든 게 사실. 이 책을 추천해 줬다가 어렵다는 평을 하도 많이 들은지라, 이제는 좀 조심스럽다. 책과 별로 친하지 않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역사철학 분야는 읽어 줘야 한다. 관점을 넓히기 위해서도 필요하니까. 역사철학 분야는 유명한 책이 꽤 된다.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이나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 에릭 홉스봄의 혁명 3부작 등. 읽으면 매우 유익하다. 역사를 보는 자신만의 눈을 형성할 수 있기에. 하지만 읽기 만만치 않다. 호리고메 요조의 <역사를 보는 눈>은 이 모든 난관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책이다. 부제가 ‘역사를 알고, 역사를 배우려는 교양인의 필독서’인 만큼,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역사철학 입문서 구실을 한다. 이 책에는 ‘역사의 주관성과 객관성’, ‘역사의 시대구분’의 중요성, ‘역사의 필연과 우연’, ‘역사와 자연과학(역사는 과학인가)’, ‘역사와 역사관’ 등 아주 굵직굵직한 역사철학의 주요 주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읽으면 바로바로 머리에 꽂힐 정도로 쉽다. 저자가 그만큼 내공이 아주 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250페이지도 안 되지만 역사철학의 주요 주제는 거의 훑을 수 있는 아주 알찬 책. 개정판도 있는데, 구판을 사는 게 유리하다. 내용이 거의 똑같기에. 중고서점에서는 3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으니, 완전 대박이다~(이전 판본 이미지는 왜 없는 거지??)

 

 

 

 

<세계의 종교 이야기>, 폴 발타 외, 미래M&B, 2007

보통 ‘종교 이야기’를 다룬 책을 펼치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다다. 뭐, 종교도 서양 중심이니, 이해는 한다. 근데, 위 3종교를 다룬 책들이 너무 많다. 타이틀이 ‘세계 종교’여도 매한가지. 헌데 이 책은 진짜 세계의 모든 종교를 다루고 있다. 더군다나 사전식이라 전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한 내용을 적게나마 모두 맛볼 수 있다. 컬러풀한 그림과 사진 그리고 지도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책의 편집 디자인 역시 빼어나다. 주제와 내용 그리고 그림과 지도가 3-4페이지(많게는 6페이지) 안에서 완결되기에 가독성이 아주 좋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이외에도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부두교 등 현재 예식이 거행되는 모든 종교를 다 담고 있다.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 이전의 신화와 샤머니즘의 세계도 알차게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용의 체계성이 매우 빼어나다.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인 신과 신자, 기도와 제례, 봉헌과 계율, 신비주의 등 보편적 종교 주제를 책 앞에 배치했다. 그 다음 고대부터 현재까지 각 종교, 민족 그리고 지역별로 신앙의 기원과 체계, 교리, 제례 등을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앞부분이 종교사의 총론 격이라면, 뒷부분은 각론 격이라 할 수 있겠다. 고고학 자료에 기초한 탄탄한 구성과 동작 하나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은 삽화들은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종교사 개론 책으로 이 책만큼 쉽고 체계가 잡힌 책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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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8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문학비평 용어사전을 책 표지로 봐선 쌍팔년에 나온 것 같아요. 요즘 출간연도가 오래된 책을 소개하는 글을 많이 보기 힘들어요. 제가 아는 분 같은 경우 블로그 활동이 뜸해져서 정보를 많이 얻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야무님이 글을 남겨주시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

yamoo 2016-08-20 21:46   좋아요 0 | URL
흠, 그럼 `알라딘 검색 무력화 도서` 게시판을 활성화 시켜야 겠습니다. 출간 년도가 오래 되어 검색도 안되는 책이 알라딘엔 너무 많아서요....심지어 예스와 교보에도 있는 책 정보가 알라딘에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이런 책에 대한 정보는 별로 인기가 없는지라...쿨럭~

그래두 열심히 활성화 해 보겠어요! 불끈~~!!

고양이라디오 2016-08-1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이렇게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시다니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개해주셔서 감당이 안됩니다ㅠㅋ

yamoo 2016-08-20 21:47   좋아요 1 | URL
헐~~~감사합니다!
좋은 책이라 생각되시면 차근차근, 생각날 때 한 권씩 보시면 될 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이 진정한 페이퍼입니다. 이달의당선으로 추천합니다.
신간보다는 잊혀진 좋은 책을 소개하는 페이퍼가 저는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다만, 절판된 책이 많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지명으로 보는 세계사 정말 가지고 싶네요...

yamoo 2016-08-20 21:50   좋아요 0 | URL
감솨 합니다! 곰발님~

잊힌 책에 대한 소개를 꾸준히 해야 겠습니다. 물론 절판된 책이 대부분일 거라...쫌 헛불 켤 수 있는 페이퍼(읽는 분들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지라..--;;)가 될 수 있는 공산이 커서 우려는 있습니다. 그래두 꾸준히 올려봐야 겠슴돠!ㅎ

지명으로보는 세계사....이거 중고서점에 눈에 띄면 얼른 구하세요. 재밌고, 유익합니다!^^

릴케 현상 2016-08-1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세계비평문학용어사전은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장도서 중 하나예요 서재결혼식을 통해^^ 저도 자주 뒤적이는 책이 되었죠 반갑습니다

yamoo 2016-08-20 21:5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일요일의마음 님! 반갑습니다^^

오, 이명섭 편저자의 위 책을 사랑하는 분이 있다니, 신기합니다! 서재결혼식을 통해 일요일의마음 님도 자주 뒤적이는 책이 되셨다니!! 좋은 책인건 분명하군요!ㅎ 제가 한 건 한 기분이에요^^

stella.K 2016-08-1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아~! 커트 보네거트 외엔 하나도 모르겠네요.
저 <에로틱한 발> 눈에 들어오네요.
가끔 예쁜 발이 있긴 하죠. 그런데 에로틱까지는 글쎄요...
암튼 읽어보고 싶네요.^^

yamoo 2016-08-20 21:53   좋아요 0 | URL
흠...모를 수 있습니다. 출간된지 오래된 책들이니까요.
문화사에 관계된 책들은 좋은 책들이 널려있는 거 같은데, 모두 소리소문 없이 절판되고 있는 듯해요.

어쨌거나 `에로틱한 발`과 `구두, 그 취향의 역사`는 강추드립니다!^^
 

보통 20세기 중반, ‘잊힌 철학자’라고 하면 베르그손(1859~1941)을 꼽는다. 들뢰즈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전까지 베르그손은 유럽에서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베르그손의 낙관적 철학관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 효용성을 잃었다고 간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 21세기 초반에 출간된 철학사 책들은 대부분 베르그손을 중요 철학자로 다루고 있다. 물론 미국 학자들이 출간한 철학사 책 일부에는 베르그손이 빠져 있지만, 유럽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에는 거의가 베르그손을 포함하고 있다.

 

더군다나, 들뢰즈로 인해 베르그손의 철학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문화를 다루는 영역에서 베르그손에 대한 연구는 꽤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베르그손은 더 이상 잊혀진 철학자가 아니다. 이건 확실하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고, 알라딘 마을에서도 베르그손의 주저를 읽은 분들이 꽤 되니까.

 

 

그럼 현재, 한국 지식계에서 (최고의 철학자로 회자되다가) 완벽히 ‘잊힌 철학자’는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지 산타야나(1863~1952) 이외에는 생각나는 철학자가 없다. 스페인을 제외하고 유럽 철학자들에게도 산타야나는 거의 무시된 존재였다.

 

 

 

 

20세기 후반기 이후, 유럽에서 출간된 <서양철학사>책들 중 산타야나를 다룬 철학사 책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지명도 높은 철학사 스테디셀러 몇 권에도 산타야나는 빠져있다. 휠스베르그의 <서양철학사>, 렘브레히트의 <서양철학사>, 슈퇴르니히의 <세계철학사>, 러셀의 <서양철학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 등 철학사 책을 펼쳐 산타야나를 찾아보라. 찾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산타야나는 미국철학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는 186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지만, 10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았다.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에서 50세까지 가르쳤다. 생의 후반기에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학문적 활동은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는 미국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가 하버드대에서 철학 강의를 할 때만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산타야나 저서가 간간히 번역되었던 걸로 안다(헌책방에서 두어 번인가 봤다). 그러다가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지식계에서 산타야나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철학자를 소개하는 개론서들에서도 산타야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보통 ‘현대철학’이라고 하면, 구조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논리실증주의와 분석철학, 해석학, 생의 철학 등을 들 수 있는데, 산타야나는 이런 현대 철학 사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상을 전개했다. 더군다나 그는 시로 그의 사상을 즐겨 표현했다.

 

한 마디로 그는 꽤 독특한 철학자였다. 철학사가인 윌리엄 사하키안은 그의 책 <서양철학사>에서 산타야나를 비판적 실재론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곧 그 사상의 독특함 때문에 다음과 같이 부가하기도 했다.

 

 

 

 

그는 형이상학적 유물론, 플라톤적 실재론 및 무신론과 손잡고 자연주의**를 받아들였다. (중략) 그는 인식론적 이원론에 관해서는 비판적 실재론자들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크게 의존하여 자기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전개했다. (사하키안, p375 ~ 37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야나가 하버드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890년 ~ 1912년 사이에 그는 미국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은(무려 5권의 대작이다) 그를 퍼스-제임스-듀이(프래그머티즘을 정초한 3인의 철학자)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올려놓았다.

 

리엄 바렛(프린스턴대)과 헨리 에이킨(하버드대)에 의해 편집된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Random House, 1962)만 봐도 산타야나는 퍼스, 제임스, 듀이 바로 다음에 다루어지고, 그 분량도 이들 3명의 철학자보다 많이 할애돼 있다. 물론 편집자 중 한 사람(헨리 에이킨)이 하버드대 교수이긴 했지만, 1960년대까지 산타야나는 하버드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는 총4권인데, 산타야나는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에 조지 산타야나의 책들(또는 그와 관련된 책들)이 간간히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타야나가 쓴 책으로는 <이성의 탄생>이 1974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되었고, 1980년대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에 산타야나 철학이 소개 되었다. (현재는 인터넷에서 산타야나의 저작을 검색하기 쉽지 않다.)

 

(1974년 현대신서에서 내놓은 <Berth of reason & other essay>의 한국어 번역본 <이성의 탄생>)

 

 

개인적으로는 산타야나 철학을 몰턴 화이트가 집필한 <20세기의 철학자들>(1991, 서광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하버드에서 공부했던 일부 우리나라 학자들이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산타야나를 언급하여 관심이 동했기 때문. 1990년대 후반, 도올 김용옥이 KBS에서 노자 강의를 할 때, 도올은 산타야나를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으면서 철학자 산타야나를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었다. 듀란트의 책을 읽을 무렵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빠져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미국에 산타야나라는 철학자가 있다는 정도만 아는 수준에 그쳤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이나 <미의 감각>은 찾아봤지만 번역본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없다!)

 

 

 

 

 

 

 

 

 

 

 

 

 

 

그리고는 산타야나를 완전히 잊었다. 그러다가 영미 현대철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잊었던 철학자 산타야나가 다시 내 앞에 출현한 것이다. 현대 미국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 책에서 간간히 눈에 띄었고, 결정적으로는 1974년에 번역된 <이성의 탄생>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산타야나의 에세이들 중에서 대중적이고 자전적인 작품만을 골라 편집한 것이기에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어디인가?! 산타야나가 직접 쓴 그의 사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위에 언급했듯이 <이성의 탄생>은 자전적인 에세이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가 어디에 주로 관심을 쏟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데, 자기 철학을 자기가 평가한 부분이 재밌다. 제3부 철학적 에세이에 1953년에 쓴 ‘3인의 미국철학자’가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 산타야나는 자신을 존 듀이와 윌리엄 제임스 다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를 최고의 철학자로 간주했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후, 분명한 사실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산타야나가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다는 거다. 아무도 산타야나 철학을 재조명하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현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산타야나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도서관에서 산타야나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는다. 

 

어떻게 산타야나는 우리 지식계에서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을까? 정말 신기하다. 산타야나를 소개한 이전의 책들을 보니, 산타야나는 우리나라 철학자 박이문과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철학자였던 거 같다. 산타야나의 저작은 거의가 시와 에세이다. 그것도 자연주의 계열이니 한국에서 인기가 있을 턱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래 들어 한국 학자에 의해 퍼스-제임스-듀이에 대한 연구서가 나온 걸 보니, 언젠가는 산타야나의 연구서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세창 명저 산책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중..) 

 

[조지 산타야나의 저작들]

<미의 감각>(1896)

<시와 종교의 해석>(1901)

<이성의 생활>(상식, 사회, 종교, 예술, 과학에 있어서의 이성. 전5권)

<세 명의 철학적 시인>(1910)

<이론의 선풍>(1913)

<독일철학에 있어서의 이기주의>(1916)

<미국의 성격과 견해>(1921)

<영국에서의 독백>(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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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실재론 :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은 각각 물질적 대상과 심적 상태(또는 관념)라는 표상 이론

**자연주의 : 자연을 실재의 전체로 인정하는 이론. 이 견해는 우주가 초자연적 원인이나 통제 없이 자기 충족적이며, 과학에 의해 주어지는 세계 해석은 실재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설명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자연주의는 엄격한 유물론을 ‘삶과 사상’과 같은 실재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다. (S.오너&T.헌트, p322)

 

 

 

 

[덧]

이 페이퍼는 거의 주관적인 인상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세세히 검토하지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산타야나 저서가 번역된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 계신 분은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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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냐나... 처음 듣는 철학자 이름이군요. 어깨 너머 그래도 이름은 들어봄직도 한데, 서당개 3년동안 한번도 못들어봤습니다.

yamoo 2016-08-11 18:22   좋아요 0 | URL
철학전공자들 상당수도 잘 모르더라구요~ 제가 아는 설대 철학 전공 석사 출신만 5명이 넘는데, 이들 모두 제가 산타야나에 대해 물으니 `산타야나가 누구??`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ㅎㅎ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 맨 끝 부분에 소략적으로 나와 있으니 혹시 궁금하시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슥 보셔도 될 듯합니다^^

분명히 미국에서 현대철학자로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인데, 우리나라에 너무 안 알려진게 희한합니다..ㅎ

cyrus 2016-08-11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아주 좋습니다.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글이 많아야 합니다. 알라딘이나 네이버 책 데이터베이스에 검색되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요.

yamoo 2016-08-11 18: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꾸준히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당~~ㅎ 진짜 알라딘만 검색이 되지 않은 책이 넘 많습니다. 정말 동감합니다~^^

cyrus 2016-08-11 20:40   좋아요 0 | URL
요즘 곰발님이 밀고 있는(?) 멘트를 따라하겠습니다.

이달의 마이페이퍼로 선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8 12:09   좋아요 0 | URL
문제는 제가 임의대로 선정한 것은 단 한번도 당선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말씀에 동의 페이퍼에서 정말 알고싶은 것은 숨겨진 책을 소개하는 페이퍼.. 제일 짜증나는 것은 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날마다 점심에 뭐 먹었다고 날마다 보고하는 글... 짜증 존나 남..


yamoo 2016-08-11 20:33   좋아요 0 | URL
곰발 님이 `짜증 존나 난다`는 그런 페이퍼가 있지요...곰발 님 덧글 읽으면서 웃음이 멈추지 않네요...ㅋㅋㅋㅋ
 

알라딘 검색 무력화 도서 (6)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한 <강대국의 비밀>이 책으로 묶였는데, 타이틀이 <강자의 조건>(MID, 2014)이다. 이 책은 분류하자면 역사서(세계사)다. 헌데,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동명 타이틀의 책 <강자의 조건>은 위 책과는 성격이 아주 판이하다. 알라딘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아 [알라딘 검색 무력화 도서]에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강자의 조건>, 고노 모리히로 저, 동국출판사, 1981

 

 

 

[책소개]

 

항우와 유방, 토요토미와 도쿠가와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기라성같은 강자들. 그들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보여주는 ‘강자의 조건’

 

 

아무리 용병(用兵)에 뛰어나도, 감정에 흐르기 쉬운 인간은 병력을 통솔할 자격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발휘되지 못하면, 좋은 상품을 창고 속에 쳐 박아 놓은 것과 같다.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을 찾아야 한다.

 

 

재능과 인격은 별개의 것. 재능만 보고 부하를 발탁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재능만 있고 인격을 못 갖춘 자는 자기를 키워준 상관의 발등을 언제 찍을지 모르는 일.

 

 

중국 고사와 우화 그리고 일본의 역사 기록에서 발췌한 인간 관리와 자기계발의 보고(寶庫)! 평생토록 약자로 빌빌거리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

 

 

무한경쟁시대, 기업과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불멸의 고전에서 배우는 강자의 조건! 손에 들면 단숨에 독파하는 경탄할 만한 저서이다.

 

 

 

차례

강자의 기본적 심성 ……………………………… 9

진정한 강자 ……………………………………… 29

역경일수록 과감하라 …………………………… 60

싸움을 멀리하라 …………………………………68

출세하는 자의 논리 ………………………………74

바람을 피하는 지혜 ………………………………93

상급자의 조건 ……………………………………107

상급자와의 인간관계 ……………………………119

역량있는 인간 ……………………………………131

조직을 뭄직이는 강자의 조건 …………………145

신념에 산다 …………………………………… 177

기회를 포착하는 눈 …………………………… 189

역경을 견디는 인간 …………………………… 199

위기를 극복하는 결단 ………………………… 211

최후의 카드 …………………………………… 239

 

 

 

 

[야무의 간단 리뷰]

 

이 책은 일종의 자기계발서다. 직장인들을 위한 리더십을 함양할 목적으로 저술된 책. 헌데 일반적인 자계서와는 격이 다르다.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현실적이고 처세적인 지점이 아주 명확하여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대부분의 리더십 사례들이 중국의 고사와 우화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동양 고전 산책 쯤 된다. 제자백가 철학에서부터 시작해 항우와 유방 그리고 손자와 사마천에 이르기까지 주요 동양 고전 속 영웅들의 ‘리더십의 조건’을 배울 수 있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 젊은이가 벼슬자리를 얻어 임지를 향해 떠나려 할 때 전송나온 친구가 말했다.

“벼슬자리에서 일하려면 무엇이건 참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나.”

젊은이가 명심하겠다는 눈짓을 보내자 전송 나온 친구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무엇이건 참아야 하네.”

“그래 알고 있어.”

한참 있다가 친구는

“몇 번이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또 한번 다그치다시피 했을 때도 젊은이는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비만, 네 번째에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하자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자네는 날 놀리고 있는겐가!” 참으라, 참으라, 몇 번째인가!“

이렇게 되자 친구는 어두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보게나, 인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았을 거네. 기껏 네 번 말했을 뿐인데 자네는 못참고 만게 아닌가?”

 

 

이것은 중국의 우화로, 참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요즘도 인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걸핏하면 화를 내고 비탄에 빠지는 등 순간의 감정에 눌려 ‘인내’라는 두 글자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p11)

 

 

책은 이렇게 고사나 우화를 보여주고 저자가 짤막하게 그에 대한 코멘트를 부가하는 식으로 돼 있다. 제일 처음 나오는 ‘인내가 얼마나 어려운가’의 사례로부터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지 확인할 수 있고, 이는 책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마지막 사례는 그 유명한 ‘읍참마속’의 사례다. ‘최우의 카드-비정의 논리’속에 들어있다. 마속의 사례를 소개한 다음 이어지는 송나라 명신 왕단 사례로 대미를 장식한다.

 

 

왕단의 사례는 마속의 사례보다 덜 알려진 고사인데, 두 사례 모두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비정한 덕목을 갖추어야 함을 알려준다.

 

송나라 왕단이 비방의 벼슬을 하고 있을 때 강도살인죄로 젊은이가 체포되어 왔다. 이 젊은이는 전에 왕단의 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하인의 아들로 왕단과는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자란적도 있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하인이 죽은 뒤 젊은이는 여기저기 유랑하다가 배가 고파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왕단은 고민한다. 범인이 어릴 적의 친구요, 생명의 은인이다. 개인적인 심정으로 처형할 수가 없고 도망쳐버렸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몸으로 법을 짓밟고 질서를 파괴해서는 선량한 백성들에게 얼굴을 들 면목을 잃는다. 법질서를 지켜달라고 외칠 자격을 상실한다. 왕단은 결심한 다음 감옥으로 범인을 찾아 최고의 식사를 제공하고 함께 운다. 범인은 처형되었다.

 

 

왕단은 사사로운 정을 배제한 명재상으로 유명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벼슬을 지냈다. 뛰어난 리더로서의 면모가 여실하다. 비정할 때는 비정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통솔하는 입장에 있는 자는 대의를 위해, 사회를 위해 법과 질서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함을 지켜야 한다. (pp245-246)

 

 

 절판이라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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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기개발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책은 좀 좋아라 하죠.
절판이라니 아쉽네요.
복간이 되면 좋을텐데...

yamoo 2016-08-10 21:36   좋아요 0 | URL
자계서 중 이런 류의 책이 종종 있어요. 처세술을 다룬 책들 중 고사성어 인용이 아니라 중국 고전에서 조직인에 유용할 부분을 편집하여 직장인의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책들이 있죠. 이런 책들 중 <강자의 조건>은 갑인 듯합니다. 저도 복간되기를 바라는 책 중 하나에요^^

2016-08-08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0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8-09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가 가네요. 리더로서 많은 자질을 갖출 수는 있지만, 비정함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인 부분도 있고, 나아가서 자신도 언제나 그 `비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서 오는 자기관리와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할 듯 합니다. 다시 나오면 좋겠네요.

yamoo 2016-08-10 21:41   좋아요 0 | URL
이런 류의 책들이 처세를 다룬 책들이 많이 보이는데, 잘 찾아보면 비슷한 책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아직 없었습니다. 저도 이런 류의책들이 좀 많이 간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죠...자신에게 은혜를 준 사람들을 내쳐야 하는 그런 비정한 상황이 도래할 때...그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고, 자신의 위치가 그 비정함을 요구할 때..인간으로서 가장 힘든거 같습니다. 그래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