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국회의원이 국회 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써 최장시간 기록을 세웠다는 뉴스를 봤다. 은수미 의원. 10시간을 넘겼다고.
네이버 검색 순위 1위를 현직 국회의원 차지하기는 꽤 이례적이다. 그것도 6선, 7선 의원도 아닌 초선 의원이 말이다. 난 이런 국회의원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자체가 좀 신기하다. 개한민국 국회의원은 다 '썅OO'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기에.
은수미 의원이 국회에서 홀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동안 진보진영의 호프라고 자체하는 안철수 대선 예비주자께서는 입을 잘못 놀려 여론의 뭇매 세례를 받고 계신 모양이다.
헌데, 이런 사태를 유발한 건 다름 아닌 테러방지법 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의 결사적인 수단이란 거. 야당의 입장에 따르면, 여당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목적이 바로 민간인 사찰을 합법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는 거다.
흠... 보자, 확실한 건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전보다 테러를 줄일 수 있다는 거다. 테러를 감행할 낌새를 보이기만 하면 잡아서 족치면 되니까. 예컨대 마스크를 쓰고 집회 장소에 나타난 사람이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일단 연행할 수 있다.
당연하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권 유린보다 테러의 위협에 대한 방지가 훨씬 중요하다. 테러에 의한 피해, 무시무시하니까. 조금 불편해도 테러방지법으로 보다 좋은 개한민국을 만들자!....는게 여당의 논리.
여당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펴는 건 다음과 같은 전제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난 집회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는 ‘팩트’로부터(이게 과연 팩트인지 의심스럽지만) 공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거다.
그러니까 ‘테러방지법’을 촉발시킨게 바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마스크를 쓴 사람’ 때문이라는 거다. 자, 이게 왜 ‘정치-언어학적’(이건 내가 붙여본 이름이다) 사기 공작 행위인지 지금부터 쬐~~금 고찰해 보겠다.
흠, 이건 ‘이달의 발견’이 아닌 ‘올해의 발견’ 쯤 되는 거 같다.
우리말에서 형용사구를 비롯한 수식 구는 종종 문장으로 치환할 수 있다. 예컨대 ‘앞발이 짧은 토끼’하면 ‘토끼는 앞발이 짧다.’로 나타낼 수 있다. 의미는 같지만 형태는 다르다는 거.
그런데, 의미가 같지 않은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보자.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실업자’, ‘방약무도한 대통령’, ‘부패한 기업총수’ 등은 매우 구체적이다. 왜냐하면 어렵지 않게 이런 존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실업자’의 경우, 저번에 인천 공항 테러 협박범으로 잡힌 용의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 대학원 출신인 30대 가장이 취업이 안 돼 사회에 불만을 품었다고.
‘방약무도한 대통령’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통과. ‘부패한 기업총수’ 역시 모 기업의 총수가 떠오른다. 회사 돈을 빼돌려 철창신세를 진 아무개 말이다.
위의 어구들은 정말 이런 존재를 쉽게 확정짓는 표현이다. 그런데 ‘실업자는 사회에 불만을 품는다’, ‘대통령은 방약무도하다’, ‘기업총수는 부패하다’라고 변환해 보자. 이들은 모두 일반화된 문장으로, 논리학의 대당사각형에서 ‘A’ 명제 형식(‘모든 X는 K이다’)을 띤다.
이처럼 형용사구가 문장이 되면, 그 상황의 사례가 일반화된다. 그래서 사례를 훨씬 더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제의 타당성이나 건전성의 충족 여부가 아니다. 대상의 존재를 포함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있다.
이를 ‘절반의 진실’이라고 명명한다나 뭐라나.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면, 다시 말해 단 하나의 사례라도 증명가능하면 진실이라는 거다.
‘절반의 진실’, 이를 가공하는 기교가 뛰어날수록 대중을 현혹하기 쉽다. 광고와 통계 그리고 정치와 언론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반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교도’를 보자. 이를 일반화하면 ‘이슬람교도는 테러를 자행한다’이다. 그래서 일부 국가는(예컨대 미국) 이슬람교도이면 입국이 거부되거나 검문검색이 훨씬 더 강화한다.
모든 이슬람교도가 테러를 자행하지는 않을 거다. 이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미국 테러의 주범이 이슬람교도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진짜?!)
이 단순한 증명이 ‘절반의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와 언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무언가 ‘트라우마’가 있는 사회에서 ‘절반의 진실’이 횡행하는 것 같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번 필리버트터 사태에서 이를 명확히 알게 해 주었으니.
형용사구나 수식어구가 일반화된 문장으로 변할 때 ‘어떤 의미’가 내포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까지 이를 간과해 왔다니!
어쨌거나 은폐되고 가공된 진실을 보는 눈은 필요하겠다. 고로, ‘테러방지법’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