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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타이틀에 착각이 들어간 시리즈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읽었다는 착각>(EBS BOOKS, 2022)를 구매했다. 헌데, 이거 읽은 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해력관련 책인 것을,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착각에 관계된 책 중 내 의도를 완벽히 빗겨간 책이다.

 

교환 하려다가 그냥 읽기로 했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나저나 요즘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책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 심하다. 재작년부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본 영화나 드라마 리스트를 보면 너무 생소할 때가 있다.

 

읽었던 책 중에서는 <소립자>, <푸코의 추>, <정체성> 등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특히 에코의 에세이 책들이 그렇다.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대중의 슈퍼맨> 등을 펼쳐 몇 페이지 읽었는데, 읽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새로운 책 같다.



 






영상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심각하다. 하도 잘 잊혀져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즉시 제목을 적어 놓고 평점을 매겨 놓는다. 이 리스트가 200개를 넘어가니 제목 자체가 생소한 게 너무 많은 거다. 예컨대 이런 거. [조디악 ★★★★, 블랙 아일랜드 ★★]

 

제목만 보면 내가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뒤에 별로 평점을 남겨놔서 이걸 봤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다시 보면 봤다는 생각이 나겠지만 제목만 보고서는 이걸 봤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후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수월해 져서 하루에 3-4편을 보니, 당연히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제목을 기록해 놓지 못한 영화들의 경우 줄거리와 주제가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 연관된 영화를 기록할 때 여간 곤혼스러운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본 한국 영화 <원더랜드>의 경우, 분명히 올 초에 비슷한 미국영화를 넷플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죽기 직전에 기억(젊은 시절)을 서버에 저장해 놓아 평생 그 공간에서 지낸다는 설정이었고, <원더랜드>가 그 영화의 아류라는 걸 알았는데, 정작 그 영화 제목이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이런 현상이 정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듯. 책은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구매한 줄 몰라 또 구매한 책이 꽤 된다. 같은 책이 3권이 나왔을 때는 너무 허탈하다. 이제 나도 치매인가? ‘나 이제 노인으로 가는 거야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읽는 인생이고, 보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읽은 적이 없는 착각본 적이 없는 착각속에서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이게 언제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때를 맞이해야 하는 시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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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9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건 저도 그래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나는데 그걸 어느 드라마에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죠. 책도 그렇고.
저는 꽤 오래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 세월이 한참 흘러 엇,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죠. 설혹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읽었다는 기억만하지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책이든 영화는 몇 번 거듭해서 봐야할 것 같긴한데
그러면 다른 걸 못 보게되니 그것도 쉽진 않죠?
그런데 착각은 왜 모으시는지?

yamoo 2024-11-19 17:52   좋아요 1 | URL
와우~!! 스텔라님은 오래 전부터 리스트 만들어 관리해 오셨군요! 책은 리뷰를 써 놓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리뷰 쓰지 않는 책들은 10여 년이 지나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는 듯해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제목만으로는 2-3년 전에 본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착각 시리즈를 모으는 이유가...책 3권을 샀는데 ‘착각‘이 들어가는 책을 모으게 되더라구요. -의해 시리즈도 그렇게 모았구요...~~에 관하여..라는 책들도 그렇게 모으게 됐으요..^^;;
 













얼마 전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 예상했던 작가가 아니라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뭐, 노벨상이 언제 예상대로 수상작을 배출했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다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 단편 1개 읽고 그냥 덮었기에. 당시 내 느낌에는 소재의 참신성은 좋았지만 그걸 천착해 들어가는 깊이가 좀 부족해 보였다.


처음 <채식주의자>를 읽고나서(소설집 <채식주의자>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3작품이 수록되어 있음) 주위에 한강 소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공통된 점이 아이디어와 문체는 좋으나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였다.


물론 당시 지인들과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 소설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기에, 자연스럽게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지인들은 한강 작가 주요 저작들을 다 읽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들 역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꽤 의외라는 의견을 피력했었더랬다. 뭐,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계에 어필할 수 없다는 건 번역 장벽 때문이라는 오랜 통설(?)이 작용한 까닭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소식은 놀라웠다.


헌데 이건 내가 이전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영국 번역가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이 번역이 없었더라면 한강 작가는 절대 맨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할 수 없었을 거다. 이건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로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해 세계시장에 내놓은 실적에서 증명됐다고 본다.


주요 세계문학상 후보에 오른 우리나라 소설 해당 번역작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불어로 번역되어 프랑스에 내놓았지만 반응이 미미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누가 번역했는지 잘 모르지만 데보라 씨만큼 작가 지향적 번역가가 아니었겠지)


단 하나의 예외가 데보라 쓰미쓰 씨가 번연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다. 영국 토박이가 자신이 한국어를 배워 영어로 이 작품을 번역했기에 심사위원들에게 한강 작가의 그 독특한 문체가 부커상 심사위원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이런 문체와 서사를 영어본으로 본적이 없었기에 그 새로움에 큰 점수가 주어졌다고 사료된다.


이를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다수 영어본으로 번역됐다. 데보라 쓰미쓰 씨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데보라 씨는 자신의 번역회사를 새운 모양이다. 여기서 한강 작가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한 듯하다. 영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로 한강 작품을 번역해서 영국 문단에 내놓으 거.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이 공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노벨상 심사위원들 손에 이 영어판본이 들려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한강 작가만 이런 행운을 누렸기에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판단된다. 그 새로움에 맨부커 심사위원들이 느꼈던 그 강렬함을 노벨상 심사위원들도 느꼈을 거란 얘기다. 


어쨌거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번역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시금석을 보여준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 아무계 씨의 발언, 즉 한국 문학은 아직 노벨상 깜이 아니라는 거는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빈말임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도 이젠 노벨 문학상 근처에 가 있다는 반증. 근데 이 요체가 번역이라는 점. 이젠 더이상 번역이 창작이 아니라는 편견을 버릴 때다. 그리고 해당 언어를 전공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작품을 해당 언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해당 언어의 국민이 우리 작품을 자기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펼쳐야 할 때다. 


우리나라 사람이 평가하는 것과 외국이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를 수 있으니까. 드라마만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별로인 작품이 해외에서 대박난 작품들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문학도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문학의 성과라기 보다는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걸!!


참고로, 2020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후 재독한 짧은 단상을 부가한다. 당시 채식주의자만 읽고 덮었기에 리뷰를 쓰지 않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군은 나와 맞지 않아 그 불평을 좀 부가해 놓는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 이 작품이 육체에 대한 것임을 대번 알 수 있다. 고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타자성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한다.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어떤 삶을 지향하는 것일까? 식물이 된다는 건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이런 문제 의식을 스케치만하다가 끝낸 느낌이다. 문체만 좋고 내러티브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에게 철학적인 논증이나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타자성을 극복하는지 그것이 식물이 된다는 거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라면 비중있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게 없는 캐릭터 스케치는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2020, 어느 겨울날)


[덧] 

1. 참고로 노벨상이라고 다 재밌고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욘 포세 후기로 남긴 바 있다. 한강은 포세 포다는 훨씬 낫지만 사실 여전히 내겐 재미 없는 작가인건 변함 없다. 

2.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실망스러움을 느낄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항상 그렇게 쓴다고. 문제의식을 통한 주제의 천착은 하지 않는 작가라는 걸.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인데...나와 맞지 않는 작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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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4-11-02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몇 사람 모여서 결정하는 상보다는 수백년간의 독자들의 평가로 그 작품성을 인정 받는 것이죠 .참고로 똘스토이도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잖아요 ㅎ

yamoo 2024-11-04 17:24   좋아요 1 | URL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도 출중한 작가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죠. 사람이 모여 결정하는 문학상...이거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성향이 절대적이라 운빨이라 하겠습니다. 그 위대한 도스토옙스키도 아니었지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모두 1900년 이전 사람으로 노벨상 자체를 수상할 수 없었지요. 1901년에 1회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문학상이니..

stella.K 2024-11-0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한강이 번역자에게 적지 않은 상금을 나눴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당연하겠죠.
<채식주의자>는 호불호가 있는 것 같더군요. 저는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받은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원래 노벨문학상이
재밌는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수여한 적이 있나요? 그냥 누가 받았나 보다하는 거죠 뭐.

yamoo 2024-11-04 17:27   좋아요 1 | URL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은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반반씩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호불호가 있는 작품이란 걸 들었지만...전 아주 안좋았습니다.
저도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거에 대해 기뻤지만 그게 한강이라서...한강의 영역본이 훌륭해서 탔기에(여러 요소가 있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11-0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가 덜한 것이 채식주의자, 라고 알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 를 읽고 울었다는 독자는 많더라고요. 5.18을 다룬 소설 중 최고로 찬사 받았음.
작가 한 사람만의 힘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기보다 다음의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걸로 짐작됩니다.
1) 말씀하신 번역의 문제
2)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 : 이런 배경이 없었어도 심사위원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에 주목하여 꼼꼼히 읽었을지 의문이 듦.
3) 한강 작가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한국 작품들의 영향 : 이 토양 없이 오늘날의 수상은 없었을 걸로 생각. 그러므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대한민국의 쾌거!!!

yamoo 2024-11-04 17: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쾌거, 맞고요..
저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결정적 계기로 데보라 쓰미쓰 씨의 번역을 꼽습니다.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과 그밖의 한국 작품들의 해외 번역본들은 부차적이라고봅니다. 작년 재작년 한류 열풍과 케이팝 그리고 한국 작품들의 해외 판본은 꾸준했죠. 단 하나의 예외는 데보라 쓰미쓰 씨 같은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택해서 번역했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데보라 씨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나 전문 번역가가 번역했으면 절대 부커나 노벨상 후보에도 못올랐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그 판본과 데보라씨가 번역한 한강 작품이 노벨상 선정 위원들에게 읽혀질 수 있었기에 수상은 가능했다고 보여지는데...이걸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주객이 전도된거 같아 이에 대해서 밝혀 보고자 쓴 페이퍼 였습니다~

yamoo 2024-11-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쾌거는 맞지만, 이를 계기로 번역도 창작의 일환으로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우리 문학의 쾌거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말은 바로 하자. 순전히 데보라 쓰미쓰 씨의 영어 판본 때문에 수상의 영예가 있었던 거다. 그가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나 전문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번역했다면, 수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데보라 씨만큼 번역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창작하는 정도로) 우리나라에 없다시피하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을 제발 창작으로 인정해 주자. 이게 진정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아닐까.

박균호 2024-11-04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똘스토이는 191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yamoo 2024-11-06 16:04   좋아요 0 | URL
음....그렇군요.

이환한 2024-11-19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혁신상 수상자가 갖는, 노벨상 수상의 의의에 대한 글을 요즘 많이 보게됩니다. 대체로 노벨재단이 밝힌, 이러이러한 이유로 선정했다 라는 가이드라인 제시에 순응할 뿐 반항한 흔적이 안 보여요. 심지어 몰라뵈었다고 반성하는 글도 있더군요(교수님아, 교수님아...).
님은 번역 덕분이라고 적었네요. 교보에 가서 스쳐 지나는데 ‘깊게 읽기‘가 보였어요. ‘얕으면 그런 안내서, 깊으면 해설서‘, 이렇게 되는 건지 모르지만 순간 빵 터졌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에 죽비를 내리는 님의 글은 소중하군요.
죽고싶지만 재밌는 책은 찾고싶어요. 못 써도 의미있는 작품이나, 잘 쓴 좋은 문학작품을 찾는 독자사람으로서 제 견해는 이러합니다, 마이도 썼네, 그러나 그 집 벨란 아바이는 못 뛰어넘었군, 이런 사이트에 와서 습작기간을 좀 가지면 좋을 텐데...
사랑하는 밥딜런이 아직 살아있어 좋습니다. 담배를 뽀꼼뽀꼼 피워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헤헤거리는 유튜브를 가끔 보며, 낭만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음번에는 노벨측이 댓글에 상을 수여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네요.그것이야말로 노벨이 제시해나가고 있는 힘,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아이겠나요.

이환한 2024-11-19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웨덴 대사관 앞의 시위, 불온서적이니 자녀들이 못 보게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학부형들, 선풍기 발언, 역사왜곡이라 얼척없는 소리 해대는 우리의 애타는 이웃들, 상이 주는 우월감에 갑자기 기쁜 사람들, 하느님의 참된 종이고자 하는 어린양하는 3춘, 이런 이유들은 정작 노벨상 후에 생겨난, 노벨상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들이 되었죠.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므로 이제 정당성이 획득되었어요.
가슴 아픈 것은, 책 안의 주인공들과 가족 등 관련자들입니다. 상처는 치유되지도 않는데 한을 풀었어,이제됐어 이제됐어, 이러시니까요...

이환한 2024-11-1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중요한 말씀을 안 드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천기술이 가장 높이 받들려야 합니다. 있는 거에 더해서 뭘 하는 게 쉽겠나요, 맨 땅에 헤딩이 쉽겠나요.
제 지론은 글 쓸 사람은 학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란도 그 이유죠. 원천기술을 못 만드는 영국박사는 그 이후의 것은 뛰어날 수 밖에 없어요. 박사에 교수를 하면 과학적 글쓰기를 하는 게 뇌에 단련되어 문학작품은 발로 쓴 것 처럼 보입니다. 님은 그것이 보인 것이고요. 그치만 재밌는 게 ‘박사자‘들이 뭐를 잘 쓰나면 상 후기나 선언문이나 집회후기는 잘 쓴단 말이죠. 그래서 그것이 그들의 문학적 역량처럼 보이게 되죠.
지금 현재 떠받들려지는 우리문학의 원천기술은 번역이 쉬운 것에 달려들어 마케팅의 성공을 꾀하는 번역노력파와 우주의 신비한 기운이 닿은 결과가 아닐런지요. 원혼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고, 좋은 작품을 썼거나 쓰고 있을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희망을 주는 점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야무님이야 책을 많이 읽고 어느 정도의 안목이 있지요. 그러나 아직 제대로된 독서에 입문하지 못했거나 무독가들은 이번 기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노 저을 때 물이 들어와야 하니, 폄훼만 하기보다 눈을 그들에도 좀 맞춰주시고, 너무 먼 사람이 되기보다 그들 동포들과도 함께 걸을 생각도 의무적으로 좀 하셔야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이 최고 잘 쓰는 사람입니다. 허나, 개인적 상처를 못 뛰어넘어 상이 쪼매 어렵네요. 죽으면 아부지, 산 동안 이문열, 만나고 싶은 사람 한 명씩을 꼽으라면 그렇습니다. 사과를 하고 위로를 하고 싶어요. 우리 역사의 슬픔을 우리는 이런 해법으로 서로 풀어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으니까요.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했던 김수영.
중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다시 토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와집이 뭔 죄가 있다고 불 태우노, 비열하고 비겁한 인간들아 아- 들이 뭘 보고 배우겠노, 중동이 네타냐전과 후로 나뉘듯이, 파괴자들은 목적을 위해 악을 가르치는 자들이므로 안돼안돼, 하며 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인부들이 얼매나 죽을 고새을 했는데 어예 그랠 수가 있노, 더러운 기왓장도 나무도 파괴자보다는 더 깊은 영혼일텐데...
이상으로 이이상상은 십 억짜리 댓글을 달아보았습니다. 정작 노벨상 수상이 되면 의견이 분분해질 것도 같군요.n분의 1을 할 지, 댓글 단 자에게 돌아갈지 댓글을 달도록 한 원글을 쓴 자일지, 그 때 되어 생각하고요. 머리를 썼더니 머리가 조금 아프네요.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일단 돈 생각은 나중에...^^‘‘
 

내 주위 지인들은 40대가 됐는데도 결혼에 생각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50 넘으신 지인(물론 여자)은 아직도 여러 문화적 관람에 재미를 느끼며 저축 없이 아낌없이 삽니다. 저축을 왜 안하냐고 물으면, 저축 따위는 나와 상관없다 말합니다.

 

보통 비슷한 부류가 모인다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위 지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입니다. 능력도 있고 주관도 뚜렷하죠. 그래서 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 생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통계에서도 미혼 인구가 아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니, 대다수가 결혼을 안하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안하고 싶은 사람보다 그 비율이 많은 듯합니다. 결혼을 못해 미혼인 인구가 상당하다는 건데, 이 상황은 개인적으로 참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결혼은 안하고 싶어 미혼인 건 상당히 건전한데, 결혼을 하고 싶은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한다는 건 충실한 삶이 아닌 듯해서입니다.

 

건너 건너 아는 분(아버지 친구의 자녀)이 결혼을 하려나 봅니다. 여자 분인데 38살입니다. 능력이 출중하여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신변이 안정되자 결혼을 하고 싶어 합니다.

 

헌데 나이가 많다고 소개팅이나 선이 없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결정사에 가입하여 거금을 내고 남자를 만나고 왔는데 그냥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답니다. 이 분은 키도 크고(171) 날씬하며 메이크업을 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도 볼 수 있는 동안의 외모를 가졌다네요.

 

젊었을 때 미모가 출중하여 인기가 좋았다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 연애 보다는 학업에 가치를 두는 뭐 그런 여자였던 듯합니다. 욕심도 많은 일종의 알파걸 부류였는데, 미모가 폭발할 때는 결혼에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8살에 결혼을 하려고 보니 결혼시장이란 곳은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어서 충격을 심하게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자기는 결혼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네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에게 여쭈어 봤습니다. 나온 남자의 스펙.

 

그랬더니 결정사에서 매칭해준 남자가 43살의 잘나가는 대기업 직장인이랍니다. 머리가 벗겨진 168인 일반적인 40대 남성.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첨엔 6살 차이가 많다고 느끼는 건 내가 남자라서 그런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벗겨졌다는 사실에서 왜 여자분이 충격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아저씨 스타일로 여자분을 만났던듯합니다. 자기보다 6살 많은 남자가 키도 작고 스타일도 없으니 자기가 매우 평가절하됐다고 느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비슷한 조건으로 검색을 해 보니 이러한 결정사 사례는 차고도 넘쳤습니다. 검색하다가 보니 결혼시장의 아포리즘과 같은 말이 보이더군요.

 

결정사에서 나오는 상대가 대략적으로 자신의 레벨이다. 결정사는 바보가 아니다.”

 

검색된 모든 글을 읽으며 내린 결론이 결혼시장이란 곳은 매우 냉정한 곳이고, 여기의 갑은 결정사란 곳임을 알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 결정사의 잣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개인적으로 결혼을 결정사를 통해 하는 걸 매우 바보같은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결혼이 하고 싶으면 노력을 통해 자기가 쟁취해야지 외부적인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면 사람을 알 수 없기에(포장된 인격만을 만나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떠나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한 가지 매우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왜 모든 여자들은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조건의 남자를 찾지?’라는 의문. 남녀평등,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시장은 전근대적인 모습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능력이 더 출중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으면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겁니다.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 출세하는 그림이 왜 작금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21세기 인데 말입니다.

 

물론 외국 결혼시장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대체로 스펙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 비율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은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는 외국인들만 보아도 여자가 남자를 벌어 먹이는 사례가 상당히 있으니까요.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서 훨씬 더 남자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유럽 여자들의 상당수는 자기가 능력이 더 나으면 자기가 남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 결혼시장의 구조가요. 저는 뭐 결혼에 일말의 관심도 없기에 이런 세상이 참 신기합니다. 남녀평등과 성인지가 제도화된 시점에서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여성들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82년생 김지영>이 공전의 히트를 쳤겠지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직도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사는 듯합니다. 이건 뭐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자들 중 능력이 출중하고 경제력이 높은 분들 역시 자기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몇 자 적어봤습니다.


 

<>

사실 이 글을 쓴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친구 분 사례에서 여자38세 맞선 남이 43세였다는 걸 직장에서 밥먹으며 얘기 했는데, 여자 동료들이 모두 남자 나이가 많다고 타박을 하기에 이상해서 써봤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얘기를 꺼낸 건데,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었습니다. 하하~

그래서 평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좀 논의를 확대해 봤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도 저는 전혀 공감을 할 수 없었는데, 이게 내가 생물학적인 남자라서 어쩔 수 없는 인식의 한계를 갖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식이 아직도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지를 명확히 갈음할 수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21세기, 결혼시장의 전근대적 인식은 무엇을 반영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덧글로 깨우쳐 주실 분을 찾는 게 이 페이퍼의 궁극의 목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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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08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남자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고가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얼마 전 김창욱 리부트 보니까 남자가 여자 보다 수입이 적은 것에
자존심 상해하더라구요. 대부분의 여자들도 자신 보다 수입이 적은 배우자를
신경 쓰이거나 싫어하죠. 데이트 비용도 지금은 반반씩 부담하기도 한다지만
대체로 아직도 남자가 부담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좋아하면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38의 나이에 43이면 많은 것도 아닌데 많다고 생각한다니
아무래도 상대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마음에 들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죠.

얼마 전, 결정사에서 딸과 함께 온 어느 엄마에게 매칭을 위해
원하는 사윗감을 대라고 했더니 무조건 가수 김호중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충격 먹었습니다.
뭐 일부러 컨셉은 그렇게 잡았을 거 같긴한데 딸이 원하는 건 안중에도 없고.


yamoo 2023-11-09 09:5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자38에 남자43이면 수용가능한 연령대인데...
이게 그렇게나 말도 안되는 매칭인지 좀 거시기 합니다..^^;;

우리나라 결혼시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근대적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한데..결혼 당사자들 역시 이런 문화에 아주 잘 적응이 된 듯합니다..ㅎㅎ

2023-11-11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3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11-15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19세기의 사고를 접하는 경우가 저는 많습니다. 여성이라서일까요?
2) 여성 나이가 많으면 왜 점수가 많이 깎여야 하는지도 의문. 동갑끼리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3) 저의 개인적인 의견 : 남성의 스펙이 여성보다 월등해야 한다는 사고도 깰 깨가 됐죠.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집을 잘 가면(신랑의 스펙이나 집안이 좋은 경우를 말함) 신부가 고달퍼요. 좀 어려운 데로 시집 가면 신부가 대우 받으며 살 수 있음.
반대로 남성이 장가를 잘 가면 처가집에 기죽어 살아야 하고, 어려운 집안으로 장가 가면 대우를 받아요. 그래서 저는 딸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좋은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해요. 고달퍼서요. 차라리 대우 받는 집안과 사돈 맺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봐요.

yamoo 2023-11-15 16:36   좋아요 2 | URL
1) 결혼시장에서 당사자가 되면 확실히 보수적이 되는 듯합니다. 뭐 저는 당사자가 될 일이 없기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 아마도 출산 때문에 그런듯합니다.
3) 물론 결혼에서 무게 추가 기울어지는 쪽..그니까 가벼운 쪽이 을이 되어 대우받지 못하는 건 있긴 합니다만...그게 조건을 우선 보는 결혼이 그럴 확률이 매우 높고 그런 경우가 아니면 고달픈 삶은 별로 없을 듯해요..^^;;

2023-11-17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11-17 17:4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외국인 만나는 편이 훨씬 낫지요..
독신남이 능력 외모 키가 출중한데 나이가 많으면 또 탈락..
3-4가지 조건이 and로 연결되어 있어 찾기가 정말 어려운데, 우리나라 결혼시장은 그런 조건 매칭이 전제되는지라...답이 없는듯한데...결정사를 통한 결혼이 있긴 있어 신기하긴 합니다..ㅎㅎ
 

안 보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 2004)가 굴러 떨어졌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일본 국사 교과서 파동이 날 때 즈음 일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바로 위에 이형구의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까치, 1991)이 있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듯하다.

 

단군과 고조선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송호정의 주장을 담은 책이 <단군, 만들어진 신화>인데, 앞부분을 조금 보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국내 고조선 박사학위 1호라는 양반의 글이 주장만 있지 논증이 없었기에. 읽다가 어의가 없어 덮었다. 좀 더 논증적인 고조선 관련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조선관련 책들을 찾았다. 역사 책 더미 어딘가에 분명히 몇 권 있었을 거다. 내 기억에 이덕일 저서 몇 권하고 고대사학 매국 어쩌고 하는 책을 분명히 사두었었다. 30여 분 가량 찾았나 보. 통사하고 고려 관련 책들과 함께 고조선 관련 책을 찾았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도서출판 말, 2018)와 김상태의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책보세, 2013).


 






도대체 내가 왜 리지린의 책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몰랐는데, 갑자기 5년 전 지인이 동북아 고조선 연구 최고의 책이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덕일의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는 책도 찾았다. 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단 김상태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제대로 짚었다.

 

김상태의 책은 바로 송호정과 그 무리들(이병도-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의 책들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다. 김상태의 책을 읽은 최고의 소득은 바로 윤내현이라는 고조선 전문가의 발견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학자였는데, 김상태의 책을 통해 윤내현이 얼마나 위대한 학자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한국 고대사와 그역적들>이라는 책은 저자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고 하도 빡이 쳐서 이기백과 송호정을 비롯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윤내현이 이들에게 당한 학문적 숙청을 김상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윤내현을 대신해서, 윤내현의 이론을 통해 허접한 주류 고대사학계(서울대 라인)를 맹렬히 공격하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상태의 책을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올라온다. 도무지 고대 사학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이론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게 발굴된 학자의 신선한 이론을 무시하고 비방하며 왕따를 시키는 행태가 꼭 양아치의 짓거리와 닮아 있기에, 도저히 학자들이 세계가 아닌 것처럼 여겨져서다.

 

김상태의 저서들을 이전에 이미 읽어서 그가 어떤 책을 주로 쓰는지 이미 알고 있었긴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비판의 수위는 김상태의 저서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논증이 약간 미비한 지점도 있긴 하지만 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이덕일 등을 비판하는 저자의 공격 수위는 비판서들 중 단연 발군이라 하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일독해 보면 좋겠다. 정말 재밌고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점과 어떤 게 진실에 근접한 이론인지 이 책을 읽어보면 대충 가닥이 잡힌다. 그리고 고조선에 대해 진실을 파해쳐 보고 싶은 사람들은 윤내현의 저서들을 구입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고조선과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제한 국가였고, 유물과 사료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가 이 페이퍼를 쓴 목적은 김상태가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에서 윤내현을 21세기의 신채호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독보적이고 위대하다! 김상태의 책을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윤내현의 책을 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페이퍼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나같이 잘 몰랐던 분들에게 윤내현의 저서들과 그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2013) 한국 고대사학계가 고조선에 대해서 쓴 논문은 대략 19쪽 분량밖에 안된다. 정식 학술 논문으로 말이다.

 

그런데 윤내현 한 사람은 그의 첫 논문인 <기자신고>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지는 고조선 연구서가 자그마치 약 2000페이지를 넘는다. 19vs 2000, 어디가 밀도가 높고 치밀한 논증구조를 보여주는지 중학생이 봐도 알아본다. (기자신고는 한국고대사신론에 한 장으로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옅은 평범한 대중은 전혀 모른다. 19쪽을 쓴 주류 고대사학계가 통설의 위치를 차지하고 2000쪽이 재야사학(엄연히 단국대 학장을 하고 있었던 교수를!)을 대표하는 이설이 된지가 오래다. 이를 바로 잡아야할 주체가 바로 우리 대중이다. 김상태의 바람도 이와 마찬가지. 그래서 여기 윤내현의 주저들을 김상태의 서평으로 소개하는 바이다.

 

윤내현이 어떤 일을 했기에 40년간이나 요지부동이던 주류 고대사학계가 변했는가. 답은 하나다. 윤내현이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고 1983년 제출한 <기자신고>라는 놀라운 논문 때문이다. 이 논문은 중국 고대국가시대, 북경 근처 중국 동북지방 역사(기자조선으로 알려진 고조선 지역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윤내현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중략) 평소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해온 것으로 유명한 윤내현의 모든 학문적 역량이 결집된 성과, 바로 이것이 <기자신고>.” (189-190)

 

윤내현은 <기자신고>를 발표하고 내심 기대에 차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논의가 많아 공동연구하자고 제의가 많이 들어올 둘 알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학계에서는 통설을 뒤집는 논문이 나오면 그 반향이 커서 그 논문을 검증해 보거나 논의를 확대시키기 위해 공동연구를 하는 경향이 많다.

 

헌데 한국 고대사학계는 달랐다. 윤내현은 대중을 위한 <한국고대사> 책 말미에 이에 대해 토로했다. 원로 학자에게 논물 발표장에서 심한 욕을 들었고, 후배 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며 학계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고. 아무리 치밀한 논문을 써도 거들떠도 안 봤다는 거고, 엄연히 단국대 학과장을 하고 있는 강단사학자를 재야사학자로 낙인찍었다.

 

윤내현은 이를 통해 깨달았다. 공동연구는 먼나라 일이라는 걸. 그래서 이 막대한 작업을 그 스스로 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신고>의 핵심내용이 기자조선이라는 곳이 고조선의 작은 변방이었고 기자조선이 위만에게 멸망당한 곳도 바로 변방의 그 지역이기에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국가들, 즉 부여, 옥저, 동예 등과 같은 열국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지역에 있었던 걸 증명해야 하기에 그렇다.

 

이후(학계로부터 무시당한 이후) 윤내현은 혼자서 나머지 연구를 완성하기로 작정하고 수십 년에 걸쳐, 서기전 2000년 이전의 고조선 시기부터 서기 300년에 이르는 한국 고대사 전체를 재구성했다.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 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진 그의 작업은 경이 그 자체다. 이런 인물과 저술은 차후 30년 간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신채호 이후 리지린이 등장하기까지 30년이 걸렸으며, 리지린 이후 윤내현이 나오기까지 또 30년이 필요했으니, 남북한 통틀어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오려면 다시 30년이 지나야 될 것이다.” (190-191)

 

여기서 김상태는 윤내현의 연구를 신채호와 리지린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의 3 거두로 윤내현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 평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더 강조된다.

 

윤내현은 이러한 대고조선의 필연성을 거대하고 완벽한 학문체계로 완성했다. 불세출의 거인 신채호의 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폭포처럼 격렬한 리지린의 계곡을 지나 윤내현은 대고조선의 평온하고도 광활한 호수를 이루었다. 이것은 그의 대표 3부작으로 연결되는데 규모 또한 엄청나다. <한국고대사신론> 412, <고조선 연구> 904, <한국열국사연구> 734쪽 등의 저서인데 도합 2000쪽이 넘는다. 학술적 활자체로 인쇄된 책이라 이 책들을 소설책 정도의 활자 크기로 다시 출간한다면 분량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334)

 

헌데 이 책들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김상태에 따르면 지극한 상식 위에 이론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논증은 상식으로부터 시작할 때 매우 강력하다는 걸 나는 이미 베르그손의 저작들에서 느껴봤기에 김상태가 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저작들을 얼마나 상식적으로 구성했는가를 말해준다. 정말로 강력한 이론은 상식의 치밀성에 있다는 것이다. 윤내현이 이렇게 한 이유의 절반은 대중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학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간결한 상식의 누적이야말로 견고한 이론의 최고 무기임을 웅변한다. 그의 저작에는 현학적 비약이라는 게 없다. 기질이 신채호나 리지린과 달라 격한 감정이나 문체의 유별난 윤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독자를 자극한는 법이 없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지루함이 없는 천일야화에 육박한다. 빈틈없는 학술논문임에도 그렇다.” (336)

 

나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이 명저가 된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한영우의 <우리역사>를 보면 치밀한 통사가 중학교 2학년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게 평이한 서술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서적의 밀도를 잃지 않고 있다. 윤내현의 저작들도 바로 이러하다는 것이다.

 

김상태가 자신의 이 책에서 윤내현의 저작들을 극찬해마지 않아 나 또한 윤내현의 책을을 안 살수 없었다. 과장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3권을 모두 주문해서 그 대표작인 <기자신고>10여 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정말 김상태가 왜 그렇게 윤내현을 상찬해 마지 않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머지 저서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것이다. 사실 이 3권만 읽으면 고조선의 실체가 꽉 잡힐 듯하다. 교과서의 어느 부분이 부실한지 주류 고대사학계가 어떤 맹점을 갖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확실한 도구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이 책들보다 더 자세한 고조선에 관한 연구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 후 주류 고대사학계의 저작들을 읽어 보고 비교 판단해 보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책들을 읽으면 밝혀질 거다. 고조선과 단군이 과연 만들어진 신화인지 윤내현의 저작들을 읽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정설이 될 거니까.

 

 

 

.

1. 윤내현의 주저 3권과 저서들을 모두 꼼꼼히 읽는 데에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김상태가 직접 읽고 내린 판단이니, 각자 3권만 읽으면 1년도 안 걸린다는 얘기다. 1년의 장벽이 현재 주류 고대사학계가 거짓으로 활개치고 다니는 현실이라니, 어여 읽어보고 그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활동이지 않나 생각한다.

2. 만일 한 나라의 역사의 뿌리를 증명하는 학문적 검증에서 1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고 2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할 때, 1설은 자신의 역사를 축소하는 증거고 2설은 자신의 역사를 확대하는 역사적 증명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 나라 학계는 어떤 학설을 정초시켜야할까? 어려운 질문일까? 당연히 2설이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 나라가 이상한 나라다. 그런데 2설의 증거가 1설의 10배라면? 당연히 2설이 통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헌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1설의 통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2설은 재야설로 치부되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정말 이상한 학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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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9-26 1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요즘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읽고 있던 차에 yamoo님의 페이퍼가 더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

yamoo 2023-09-27 09:24   좋아요 2 | URL
오~~ 한국고대사신론 읽고 계시군요!!
저도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 이런 학자가 있는 줄 미처 몰랐네요. 책이 쉽고 매우 밀도가 높습니다. 정말 경이로운 학술서입니다!

얄라알라 2023-09-29 14:26   좋아요 1 | URL
역시나!!! 전 이 페이퍼 읽는 중간 중간, 겨울호랑이님과 거리의 화가님의 댓글이 달렸거나 달리겠구나...이 생각했는데!!!

˝학문적 숙청....˝ 씁쓸하지만, 또 지금 올려주신 글에서처럼 묵묵하게 학자의 정도를 걷는 분의 세계를 알아주고 옹호하는 동료 학자들이 있고 yamoo님처럼 마음 열린 독자분들이 계시니 씁쓸함을 중화해봅니다

감은빛 2023-09-27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운 글이네요. 책 3권을 읽기 위해 1년이라.
야무님의 글이 재미있어서 저도 기회가 되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판에 1년이 걸린다는 얘기를 보자마자,
바로 마음 속에서 지웠습니다.
저는 그냥 야무님 글로만 이해할게요.

yamoo 2023-09-27 12:59   좋아요 1 | URL
책3권 읽기는 1년이 안걸리구요...윤내현 주요 저서와 논문들을 모두 읽는데 1년 정도 걸리는 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윤내현 주저 3권은 이 책들만 파면 1달에 1권 3회독은 거뜬할 거 같아요. 3달이면 공부로써 충분합니다~~

weekly 2023-10-03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채호의 책도 읽었고, 관련된 세미나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사학과를 가고 싶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역사학에서 마음이 멀어지게 된 것은, 우연히 뉴스에서, (아마도) 유고슬라비아에서 (아마도) 만이천년 전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각 국가나 민족이 저마다 자신들의 역사의 장구함을 주장하는 식으로라면 역사학은 보편성을 지탱하기가 무척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생각에는요...

그때 든 생각 또 하나는 사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윤내현은 (제 기억에) 하버드 옌칭에서 복사한 수십 박스에 달하는 한국 고대사 관련 복사물들을 거의 잃어버렸다고 했었습니다. 그 사료들을 다시 찾았을까요? 그때 생각에, 일단 사료들이 검증되고 확립되어야 진지한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윤내현은 사료를 갖고 있고, 혹은 갖고 있었고, 국내 학자들은 뻔한 사료 몇 가지만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윤내현에게 진지하게 반론이나 동의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입니다. 윤내현이 참조할 수 있었던 사료들이 관련 연구자들에게 공유되고 검증되고 확립되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제가 방청했던 관련 발표회의 한 풍경:
-윤내현, ˝...에 이렇게 저렇게 기록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방청석에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노인 1):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 어? 거기에 그런 기록이 있어?˝
-그옆의 노인 2): ˝있어, 있어.˝
나: (속으로 생각) 고대사는 참조할 수 있는 사료가 무척 제한적인 것 같구나...)

yamoo 2023-10-04 06:46   좋아요 0 | URL
위클리 님 오랜 만입니다! 아, 논문 발표 학회에도 계셨었군요!
윤내현 교수가 당시 그 자료들을 잃어버렸고 다시 찾지 못했나봅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공유할 수 없었구요.
하지만 윤내현 교수의 제자인 복기대 교수 이하 인하대 교수팀이 한국고대사 분야를 계속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려의 북계>라는 책을 통해서 보더라도 고려와 거란의 국경은 산해관 부근이 맞고 이는 통일신라의 강역 또한 만주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엔칭의 자료가 그 무엇이든 금사 요사 등에서 고려 국경지역을 명확히 언급함에도불구하고 우리학계는 요지부동이라는 점이 매우 이상했습니다. 금사 요사는 믿을 게 못된다. 삼국사기 일부 기록은 믿을 게 못된다. 환단고기는 위서다 등등 그런데 성삼제라는 분의 <고조선>을 읽어보면 윤내현의 엔칭 자료를 안 봐도 현재 나와 있는 자료를 종합해도 고대사학계 주류 논거보다 훨씬 더 많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사료가 넘칩니다만, 이상하게도 연구를 안하고 있는 게 신기할 뿐이죠.

고대사는 연구할 수 있는 사료와 자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유물은 꾸준히 출토되고 있어요. 방사성동위원소 판별로 청동시시대 뮤물이 이미 BC1000년을 넘겼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주류사학계는 이런 것에는 아예 언급이 없어요. 심지어 만주 지역의 비파형 동검은 BC2천~3천년 겅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복식사 연구 자료의 유물 분포도 개략 윤내현의 고조선 강역과 겹칩니다. 이런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주류사학계는 연구 자체를 안해요. 이것이 매우 이상하다는 사실이에요.

사학계 이론은 특히 고대사는 유물이 발견되면 학설이 뒤집어 지는 일이 다반사인데...유렵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제가 설정해 놓은 통일신라-고려의 강역을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문화사는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강역은 그대로네요..^^;;

weekly 2023-10-04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야무님의 코멘트에 코멘트를 달 능력은 안될 거 같구요...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국민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 혹은 민족들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관심 하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역사는 실증적이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예컨대, 고려와 거란의 국경이 산해관 부근이라는 주장은 매우 복잡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럼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는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 세종이 점령해나간 북방 땅의 위치는 어디였나? 산해관 국경 부근에서 살았을 고려인은 지금의 한민족의 일부인가, 아니면 통칭 만주의 소수 민족 중 고려 정부에 복속한 사람들인가? 고려와 거란의 국경이 산해관 부근이라는 것은 일시적이었는가, 아니면 지속성을 갖고 있었는가? 고려가 산해관 부근까지 행정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등등. (단순히 문헌들을 가지고 지명을 추론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신채호의 작업은, 제 기억에, 이 수준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윤내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예를 들어 중국의 한나라가 북방으로 팽창할 때, 한나라는 북방의 숲을 불태우고 농지로 만들었으며 한족 농민들을 그곳에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고, 기존에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더 북방으로 쫒아냈습니다. 세종이 그랬고, 푸친이 그럴려고 하는 것처럼요. 다른 한편, 고전 그리스 시대에 그리스어를 쓰는 도시 국가가 이탈리아나 터키에도 산재해 있었다고, 그리스가 이탈리아나 터키 땅을 아우르는 제국이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 고려 시대에 산해관에 고려인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더라도, 산해관까지를 고려의 국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민족 사학(이렇게 일컬어지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에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yamoo 2023-10-05 07:03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사관은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지점을 좁히는 과정..그래야 역사의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믿는 1인입니다. 민족사학, 실증사학을 떠나 지금은 역사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죠. 그렇다면...사료와 위성사진 그리고 유물로부터 역사연구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조선사 편수회에서 그어 놓은 우리 강역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연구를 통해서 학설을 뒤집는게 학계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학계는 이런 일들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까 김상태와 같은 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봐요. 위클리님의 제기하신 문제제기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100년 전의 사실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데 500년 전 하물며 청동기시대라면 유추와 논증을 통해 사실에 근접해 나가야 합니다. 논쟁은 불가피하구요. 그렇게해서 학설이 정립되는데, 이상하게 고대사는 이러한 과정이 전무해요. 연구해 봐야할 증거들이 넘치는데 왜 연구하지 않을까요? 패수가 대동강이라는 부동의 위치비정은 일본학자가 그렇게 본다는 한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어떤 논증도 없이요. 지금 패수가 북한에 있는 대동강이나 청천강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쳐요. 강역을 넓히고 민족 운운...저는 그런거에 관심이 1도 없어요. 단지 왜 차고도 넘치는 증거가 학계에서 무시되느냐...저는 이게 이상했던 거고, 이런 걸 문제제기 했던 것이에요.

고려가 산해관 부근에 국경을 인접했다는 건 유물이 말해주고 있어요. 행정력을 검증하는 단계는 그 이후라고 생각해요. 강역의 고증은 문헌과 유물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1차적으로요. 이게 실증사학의 근간이지요. 유물의 검증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뒷받침 되겠지요.삼국유사가 변조됐다고 하면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두가 있음에도 주류사학계는 연구를 안해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저는 이런 논증없는 주류사학계가 이상해서 김상태의와 윤내현의 저서들을 통해 주류사학계를 비판해 보고자 함이었어요. 민족운운 했던 건,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를 공유하는 넓은 지역이었다는 설이 있고 한반도 내 작은 지역이었다는 설이 있다면 1설의 증거가 5개 2설의 증거가 2개라면 우리는 1설이 다수설 내지 통설이 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인거고, 양보해서 1설이 2개 2설이 4개라도 1설을 계속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지점을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제 의도가 무엇인지 위클리님에게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weekly 2023-10-05 16:19   좋아요 0 | URL
잘 알아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오는데, 어젯밤에 그 친구에게 윤내현 교수님의 ˝한국 고대사 신론˝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책을 많이 내셨고 ˝고조선 연구˝라는 묵직한 연구서도 내신 것 같은데, 상하권 가격 역시 너무 묵직해서, 고대사 신론이나 다시 읽어 볼 생각입니다.

포스트 주제와 별개로, 그리고 조선사 편수회 출신 이병도 카르텔 운운 등과 별개로, 평소 한국의 국학계(역사, 회화사, 문화재 관련 등등)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스승이 세운 학설에 대해 신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반대 압박이 너무 심하다던지(˝오주석이 사랑한 그림들˝에 적나라한 예가 있듯이...), 한국의 그림들에 대해 신토불이니, 나는 우리 그림이 좋아, 좋은 걸 어떡해, 왜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지, 투의 허망한 미학(?)에, ˝독자˝로서 좌절감을 느낀 적이 많았더랬습니다.
이제 시대가 좀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혹 한국 전통 미술이나 예술, 더 넓게는 동양 예술론 등에 대한 괜찮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오는 친구에게 한 권 더 부탁해 보려고요.:))

yamoo 2023-10-05 17:55   좋아요 0 | URL
오~~한국고대사신론을 주문하셨군요! 저도 지금 읽고 있어요! 정말 쉽게잘 써 있긴 한데...역사학게에서의 논증이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매우 정치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정독하고 있어요~~^^ 고조선 연구와 열국사 연구도 모두 구입했어요~~^^

그건 그렇고...흠..아주 고난도의 책추천을 부탁하셨네요..^^;;
말씀하신 동양화나 한국화화계의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비판서는 없어요. 그도그럴것이 한국화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와 있는 책도 별로 없어요. 예전에 일본인이 쓴 동양예술론이라는 두툼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오래되서 구할 수가 없구요. 그래도 한국의 보수 미술게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분은 있어요. 윤범모 교수라고...현재는 은퇴했지만 이분의 한국미술론과 한국미술에 삼가 고함이라는 책은 국내 보수주의 화단을 비판한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닌가해요. 그리고 오래 전에 나온 <우리그림 비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한국화의 비평의 부재에 대핸 메타비평서인데, 아주 드문 책이에요. 헌책으로 구할 수 있을 듯해요. 제가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읽은 책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요즘 작가들 사이에서 한국화나 동양화난 죽었다는 게 대세인데...이에 걸맞는 책이 거의 없어요. 왜 그런지 도통 모르겠다는..^^;; 개인적으로 추천드릴 수 있는 건 윤범모 교수의 책 두 권입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좀 거시기 합니다~~^^

참고로 한국미술계는 거의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최근 신진작가들은 미술대전으로 등단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등단을 한다고 해요. 고인물인 늙은 교수들의 평가를 아예 받고 싶지 않다네요..^^;;

weekly 2023-10-05 18:33   좋아요 0 | URL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에 검색해 보고 주문할지 결정해야겠네요.

(요즘 런던 등 곳곳에 우후죽순격으로(?) 한국 주점, 한국 슈퍼 등등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류가 대단하긴 해요! 더 욕심 나는 건, 그 스펙트럼이 좀 넓었으면 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한국의 미학에 대한 읽을만한, 영어로 된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 등등...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가 어느 정도 단계에 다다르면 그런 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젊은 세대에서 그런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준적인 서구 미학을 소화한 후에야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이니만큼 어렵기도 할 것이고요. 비서구권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욕심 사항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터키의 어느 박물관에 갔을 때,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유적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아직 이런 거 정리할 여력이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이란 이런 여력들을 확보하고,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다하네요...-.-)
 

요즘 새롭게 컨셉을 정하여 그리고 있는 주제가 있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처음 가제는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였다). 물론 이것도 베르그손 철학에 경도되어 있는 내 기호를 반영한 시리즈다.


철학사에서 시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철학자는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이지 않을까 한다. 학부 철학 개론 시간에 숙제로 부여 받은 최초의 내 페이퍼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의 비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무척 끌렸었고, 아마도 그쪽으로 편향되게 결론을 내렸던 걸로 생각된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언급은 변화로 연결되었고 그런 인식이 막연히 좋았다.


중세철학을 공부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우렐리우스의 책을 읽었지만 이 두 철학자가 '시간'에 대해 말했는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도 못했다!)


그러다가 베르그손 철학을 읽으면서 '시간철학'에 대한 중조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수록된 시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아주 짤막했다!)


그로부터 철학사에서 그 의미를 건져올린 학자들이 대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언급에서 '시간성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헤라클레이토스와 연결짓는 학자들의 탐구정신이 놀라울 뿐..


어쨌든 지속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베르그손부터 시작됐고, 그것을 기억과 물질로 논의를 확장한 학자는 베르그손이 유일했다. 


지금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시간의 현재성은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되기에 베르그손을 거듭 읽었던 듯하다.


특히 <물질과 기억>은 8회독 정도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1장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진다. 1장만 10회독 이상은 한 듯한데,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머리의 우둔함을 탓하지 ㅇ낳을 수 없다.)


베르그손에 대한 환기를 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그림의 주제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로 그린 그림 두 점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순수의 전조'보다 훨씬 좋다고 하셔서 바로 낙점됐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 F3, 2023)


또 다른 하나를 꼽자면, 아주 오래 전에 서재 친구인 위클리 님에게 베르그손의 책을 권해드렸는데, 지금에서야 위클리님이 <물질과 기억>을 읽고 있다고 해서이다.


다시금 <물질과 기억>을 들춰봐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좀더 섬세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 더 읽어야 할 듯해서다. 후설의 시간 개념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없이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덧]

1. 위 그림은 처음으로 컨셉을 잡을 때 F3 캔버스에 연습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호응이 매우 좋아 같은 크기로 20여 개 정도 그릴 예정이고 이걸 100호 크기의 판넬에 붙여 100호로 만들 예정이다.ㅎㅎ

2. 영국으로 건너갈 그림은 7S호 정도 된다. 35*35센티. 원래는 '순수의 전조' 2작품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여분의 두 점을 더 갖고 오라고 해서 설 연휴에 부랴부랴 그린 건데 그 두 점이 낙점이 됐다. 

3. 그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사가 있다는 걸 첨 알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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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23-02-03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 전시회에 참가하시는건가요? 축하드려요.:) 런던 근처면 저도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과 기억>은 급하게 일독을 끝냈고 이제 다시 차분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1장의 유기체론적 관점에서의 지각 개념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진작 읽었어야 한다고 자책하고 있답니다.
실은 베르그손을 펴들기 직전에 후설의 <시간 의식>을 읽고 있었습니다. 후설이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고, 즉 제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베르그손으로 갈아 탄 셈입니다.
이 둘(하이데거까지 셋?)을 어느 정도 일관된 관점에서 읽어내자는 것이 당장의 독서의 목표입니다.
그 한 측면으로 시간의 현재성, 예컨대 과거의 기억을 지금 현재에 떠올리는 행위 등등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길을 걷다 연속되는 낯익은 풍경에 놀라 댓글을 달아봅니다.:)

추). 윽, 런던에서 하시는군요. 꼭 찾아가보겠습니다!

yamoo 2023-02-03 11:24   좋아요 0 | URL
이번 전시는 꽤 큰걸로 알고 있습니다. 런던 근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2곳에서 진행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1장을 읽을 때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여 고생했는데, 4회독 넘어서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만, 세부 논의에서 여전히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번역상의 문제가 매우 크다고 느꼈어요. 번역도 겨우 읽을 정도여서 반복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후설의 시간개념은 의식의 지향성과 과년되어 있는 듯보입니다. 한길사판 시간의식을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만...후설의 철학은 매우 관념적이고 정적인 느낌이라 시간을 접근하는 방식이 베르그손과 너무 다릅니다. 오히려 하이데거와 접점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저는 후설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 보았기에 그의 시간에 대한 개념도 베르그손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의식을 다시 정독해 봐야 보다 명확한 지점을 알 수 있을듯해요..^^

감사합니다~~

weekly 2023-02-03 18:37   좋아요 0 | URL
전시회 일정 공개되면 전시 장소와 기간 알려주세요. 꼭 가서 관람하고 오겠습니다. (런던 갤러리면 그래도 런던 근처이지 않을까요?:))

말씀대로 후설의 시간 개념은 지향성 개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의식> 편집자의 글에서 하이데거가 직접 지적한 바이기도 하고, 다른 연구서에서 하이데거 본인이 직접 탐구를 수행하기도 한 바와 같이요. 저도 바로 이 지향성 개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첨언하면, 위 연구자들이 만약 베르그손을 읽었다면, 그 속에서 분명히 지향성 개념을 발굴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층위는 다르지만, 그리고 후설에서는 아직 애매한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위 철학자들은 말하자면 비-표상론적 관점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들로 성격지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