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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식음만 해결하고 짬이 나면 무조건 그림을 그립니다. 최소 20호 대개는 40호 작품을 그리기에 시간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이전에 머릿속에서만 구상했던 이미지들이 그림으로 완성되니, 아주 많이 뿌듯합니다.


아무도 그리지 않는 주제를 그리기 때문에 내가 그리는 비구상 그림이 아마추어적인 게 아닌지 끊임없는 회의감이 듭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나의 주제를 두 개 그려서 전국규모 미술대전에 응모해 봤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응모한 두개 대회 모두 입상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했지만 내 그림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인정을 받은 느낌이라 더 열심히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제 그림 주제는 여기서도 올렸다시피 말할 수 있지만 이미지화 되지 못한 것, 또는 말할 수 없는 것들 입니다.


작품이 쌓이니 태어나서 처음 포트폴리오라는 것도 만들어 봤습니다. 작가노트와 그림설명을 하니 20여 페이지가 훌쩍 넘는군요! 어쨌거나 요즘 아마추어리즘을 넘어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헌데 요즘 전시회를 다니면서 드는 의문점이 있어 페이퍼를 쓰게 됐습니다. 물론 예술에는 정답이란 게 없다는 거,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이상하게도 미술 작가들은 자기 얘기를 주구장창하더군요. 자기의 심리적 상황이나 자기의 애환을 그림에 담습니다.


이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문학 세계와는 많이 달라서 재미가 없다랄까요. 문학에서 자기 얘기하는 소설들 손절한지 오래됐습니다. 기애란을 필두로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전부 자기 얘기. 서사는 없고 심리적 묘사와 아름다운 문체만 넘칩니다.


자기 얘기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화두나 담론을 캐릭터에 녹여내는 작품들이 자기 연민에 빠진 내러티브 작품보다 훨씬 읽을 맛이 나고 소설적 가치도 음미해 볼 수 있는 듯합니다.


뭐, 문학 쪽에서는 이런 평들이 부지불식간에 형성되어, 좋은 작품들을 알아서 잘 읽는데, 회화 쪽은 아직도 자기 얘기하는 작가들이 대세인듯합니다.


독창적인 기법으로 자기 얘기를 하는 것보다 시대가 지향하는 담론들을 자기가 처한 상황에 기반하여 창작활동을 하면 평면 회화의 주제가 다채롭고 깊이가 더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이런 작가층이 있긴 하지만 매우 얇고 공모전에 선정되는 작가들도 어떤 거시적 담론이나 논해질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선호하는 그림을 그리거나(동물이나 식물) 기법에 특화된 창작품을 주로 내놓는 듯합니다. 


요즘 잘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대다수가 환상적인 그림은 보여주지만 어떤 담롣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의식이 없는 작가군이 많아 좀 아쉽습니다. 그림을 보고 '그래,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튀어나옵니다. 


단순하지만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 그림을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 바랍입니다. 


이상 초짜의 현대 젊은 작가들에 대한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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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6-01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전국규모 미술대전에서 입상이요?
그것도 하나도 아닌 두 개나?! 축하해요!!!
정말 대단하심다!
초짜는요? 프로의 스멜이 느껴집니다.ㅎ
문학에 대한 야무님의 생각에 동의하는데 미술계도 그렇군요.
예리하시네요. 한편 걱정도 되구요.
근데 입상하시면 상금과 특전이...? ㅎㅎ
암튼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yamoo 2023-06-02 11:08   좋아요 1 | URL
이게 우연인지 실력인지 계속 전국규모 공모전에 응모해 보려고 합니다~~ㅎㅎ

초짜죠. 프로가 되려면 갈길이 멀어요~~ㅎㅎ

요즘 신진작가들 전시회 그림들을 보면 팝아트 아니면 식물 또는 동물그림이에요. 대기업에서 선정된 작가들은 기법면에서 아주 탁월한 면을 보여주긴 하는데, 자기 얘기라서 좀 거시기 합니다..^^;;

새파랑 2023-06-02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amoo님 역시 대단하시군요. 입상한 그림사진도 첨부해주세요 ~!!
절대 초짜가 아니십니다 ㅋ

자기 애기를 많이 그리는건 아마 자기 애기가 가장 그리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요? ㅋ

yamoo 2023-06-04 18:09   좋아요 1 | URL
나중에 종합적으로 입상작과 그림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초짜여요~~ 이제 발걸음을 뗀 초보 작가입니다. 사실 작가라고하기도 애매하죠. 딱 1작품 작은 사이즈 판매한게 전부이니..

그렇죠. 그게 잴 쉽죠. 근데 제재가 몇년 간의 작가적 천착 끝에 도달한 게자기 얘기라는 게 좀 거시기해요. 근데 이런 작가가 대부분이라는 거에 놀랍니다~~

페크pek0501 2023-06-03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개의 입상을 축하드립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열심히 하면 그런 성과가 있나 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일치! 이것 행운 아닙니까?
저는 잘하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잘하고 싶은 것에 마음이 쏠려 있어요.ㅋㅋ

yamoo 2023-06-04 18: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림으 컬렉팅하다보니 그리고 싶어졌고...기법을 학원에서 몇 달 배우니 그리고 싶은 제재와 주제가 계속 찾아져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게 됩니다. 이게 좀 미친 거 같아요. 밥만 먹고 그림그릴 생각만 한다니까요..ㅎㅎㅎ 물론 책은 가끔 읽습니다. 영화도 넷플 통해 가끔 보구요..ㅎㅎ
계속 잘해서 상도 많이 받고 그림고 많이 팔았으면 좋겠어요!! 음히하~~~
 

요즘 새롭게 컨셉을 정하여 그리고 있는 주제가 있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처음 가제는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였다). 물론 이것도 베르그손 철학에 경도되어 있는 내 기호를 반영한 시리즈다.


철학사에서 시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철학자는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이지 않을까 한다. 학부 철학 개론 시간에 숙제로 부여 받은 최초의 내 페이퍼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의 비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무척 끌렸었고, 아마도 그쪽으로 편향되게 결론을 내렸던 걸로 생각된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언급은 변화로 연결되었고 그런 인식이 막연히 좋았다.


중세철학을 공부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우렐리우스의 책을 읽었지만 이 두 철학자가 '시간'에 대해 말했는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도 못했다!)


그러다가 베르그손 철학을 읽으면서 '시간철학'에 대한 중조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수록된 시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아주 짤막했다!)


그로부터 철학사에서 그 의미를 건져올린 학자들이 대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언급에서 '시간성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헤라클레이토스와 연결짓는 학자들의 탐구정신이 놀라울 뿐..


어쨌든 지속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베르그손부터 시작됐고, 그것을 기억과 물질로 논의를 확장한 학자는 베르그손이 유일했다. 


지금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시간의 현재성은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되기에 베르그손을 거듭 읽었던 듯하다.


특히 <물질과 기억>은 8회독 정도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1장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진다. 1장만 10회독 이상은 한 듯한데,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머리의 우둔함을 탓하지 ㅇ낳을 수 없다.)


베르그손에 대한 환기를 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그림의 주제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로 그린 그림 두 점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순수의 전조'보다 훨씬 좋다고 하셔서 바로 낙점됐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 F3, 2023)


또 다른 하나를 꼽자면, 아주 오래 전에 서재 친구인 위클리 님에게 베르그손의 책을 권해드렸는데, 지금에서야 위클리님이 <물질과 기억>을 읽고 있다고 해서이다.


다시금 <물질과 기억>을 들춰봐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좀더 섬세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 더 읽어야 할 듯해서다. 후설의 시간 개념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없이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덧]

1. 위 그림은 처음으로 컨셉을 잡을 때 F3 캔버스에 연습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호응이 매우 좋아 같은 크기로 20여 개 정도 그릴 예정이고 이걸 100호 크기의 판넬에 붙여 100호로 만들 예정이다.ㅎㅎ

2. 영국으로 건너갈 그림은 7S호 정도 된다. 35*35센티. 원래는 '순수의 전조' 2작품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여분의 두 점을 더 갖고 오라고 해서 설 연휴에 부랴부랴 그린 건데 그 두 점이 낙점이 됐다. 

3. 그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사가 있다는 걸 첨 알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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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23-02-03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 전시회에 참가하시는건가요? 축하드려요.:) 런던 근처면 저도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과 기억>은 급하게 일독을 끝냈고 이제 다시 차분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1장의 유기체론적 관점에서의 지각 개념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진작 읽었어야 한다고 자책하고 있답니다.
실은 베르그손을 펴들기 직전에 후설의 <시간 의식>을 읽고 있었습니다. 후설이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고, 즉 제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베르그손으로 갈아 탄 셈입니다.
이 둘(하이데거까지 셋?)을 어느 정도 일관된 관점에서 읽어내자는 것이 당장의 독서의 목표입니다.
그 한 측면으로 시간의 현재성, 예컨대 과거의 기억을 지금 현재에 떠올리는 행위 등등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길을 걷다 연속되는 낯익은 풍경에 놀라 댓글을 달아봅니다.:)

추). 윽, 런던에서 하시는군요. 꼭 찾아가보겠습니다!

yamoo 2023-02-03 11:24   좋아요 0 | URL
이번 전시는 꽤 큰걸로 알고 있습니다. 런던 근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2곳에서 진행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1장을 읽을 때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여 고생했는데, 4회독 넘어서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만, 세부 논의에서 여전히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번역상의 문제가 매우 크다고 느꼈어요. 번역도 겨우 읽을 정도여서 반복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후설의 시간개념은 의식의 지향성과 과년되어 있는 듯보입니다. 한길사판 시간의식을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만...후설의 철학은 매우 관념적이고 정적인 느낌이라 시간을 접근하는 방식이 베르그손과 너무 다릅니다. 오히려 하이데거와 접점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저는 후설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 보았기에 그의 시간에 대한 개념도 베르그손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의식을 다시 정독해 봐야 보다 명확한 지점을 알 수 있을듯해요..^^

감사합니다~~

weekly 2023-02-03 18:37   좋아요 0 | URL
전시회 일정 공개되면 전시 장소와 기간 알려주세요. 꼭 가서 관람하고 오겠습니다. (런던 갤러리면 그래도 런던 근처이지 않을까요?:))

말씀대로 후설의 시간 개념은 지향성 개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의식> 편집자의 글에서 하이데거가 직접 지적한 바이기도 하고, 다른 연구서에서 하이데거 본인이 직접 탐구를 수행하기도 한 바와 같이요. 저도 바로 이 지향성 개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첨언하면, 위 연구자들이 만약 베르그손을 읽었다면, 그 속에서 분명히 지향성 개념을 발굴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층위는 다르지만, 그리고 후설에서는 아직 애매한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위 철학자들은 말하자면 비-표상론적 관점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들로 성격지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 20세기 중반, ‘잊힌 철학자’라고 하면 베르그손(1859~1941)을 꼽는다. 들뢰즈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기 전까지 베르그손은 유럽에서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베르그손의 낙관적 철학관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 효용성을 잃었다고 간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 21세기 초반에 출간된 철학사 책들은 대부분 베르그손을 중요 철학자로 다루고 있다. 물론 미국 학자들이 출간한 철학사 책 일부에는 베르그손이 빠져 있지만, 유럽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에는 거의가 베르그손을 포함하고 있다.

 

더군다나, 들뢰즈로 인해 베르그손의 철학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문화를 다루는 영역에서 베르그손에 대한 연구는 꽤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베르그손은 더 이상 잊혀진 철학자가 아니다. 이건 확실하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고, 알라딘 마을에서도 베르그손의 주저를 읽은 분들이 꽤 되니까.

 

 

그럼 현재, 한국 지식계에서 (최고의 철학자로 회자되다가) 완벽히 ‘잊힌 철학자’는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지 산타야나(1863~1952) 이외에는 생각나는 철학자가 없다. 스페인을 제외하고 유럽 철학자들에게도 산타야나는 거의 무시된 존재였다.

 

 

 

 

20세기 후반기 이후, 유럽에서 출간된 <서양철학사>책들 중 산타야나를 다룬 철학사 책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지명도 높은 철학사 스테디셀러 몇 권에도 산타야나는 빠져있다. 휠스베르그의 <서양철학사>, 렘브레히트의 <서양철학사>, 슈퇴르니히의 <세계철학사>, 러셀의 <서양철학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 등 철학사 책을 펼쳐 산타야나를 찾아보라. 찾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산타야나는 미국철학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는 186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지만, 10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았다.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에서 50세까지 가르쳤다. 생의 후반기에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학문적 활동은 모두 미국에서 이루어졌기에, 그는 미국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가 하버드대에서 철학 강의를 할 때만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산타야나 저서가 간간히 번역되었던 걸로 안다(헌책방에서 두어 번인가 봤다). 그러다가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지식계에서 산타야나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철학자를 소개하는 개론서들에서도 산타야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보통 ‘현대철학’이라고 하면, 구조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논리실증주의와 분석철학, 해석학, 생의 철학 등을 들 수 있는데, 산타야나는 이런 현대 철학 사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상을 전개했다. 더군다나 그는 시로 그의 사상을 즐겨 표현했다.

 

한 마디로 그는 꽤 독특한 철학자였다. 철학사가인 윌리엄 사하키안은 그의 책 <서양철학사>에서 산타야나를 비판적 실재론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곧 그 사상의 독특함 때문에 다음과 같이 부가하기도 했다.

 

 

 

 

그는 형이상학적 유물론, 플라톤적 실재론 및 무신론과 손잡고 자연주의**를 받아들였다. (중략) 그는 인식론적 이원론에 관해서는 비판적 실재론자들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크게 의존하여 자기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전개했다. (사하키안, p375 ~ 37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야나가 하버드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890년 ~ 1912년 사이에 그는 미국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은(무려 5권의 대작이다) 그를 퍼스-제임스-듀이(프래그머티즘을 정초한 3인의 철학자)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올려놓았다.

 

리엄 바렛(프린스턴대)과 헨리 에이킨(하버드대)에 의해 편집된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Random House, 1962)만 봐도 산타야나는 퍼스, 제임스, 듀이 바로 다음에 다루어지고, 그 분량도 이들 3명의 철학자보다 많이 할애돼 있다. 물론 편집자 중 한 사람(헨리 에이킨)이 하버드대 교수이긴 했지만, 1960년대까지 산타야나는 하버드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는 총4권인데, 산타야나는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에 조지 산타야나의 책들(또는 그와 관련된 책들)이 간간히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타야나가 쓴 책으로는 <이성의 탄생>이 1974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되었고, 1980년대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에 산타야나 철학이 소개 되었다. (현재는 인터넷에서 산타야나의 저작을 검색하기 쉽지 않다.)

 

(1974년 현대신서에서 내놓은 <Berth of reason & other essay>의 한국어 번역본 <이성의 탄생>)

 

 

개인적으로는 산타야나 철학을 몰턴 화이트가 집필한 <20세기의 철학자들>(1991, 서광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하버드에서 공부했던 일부 우리나라 학자들이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산타야나를 언급하여 관심이 동했기 때문. 1990년대 후반, 도올 김용옥이 KBS에서 노자 강의를 할 때, 도올은 산타야나를 미국 최고의 철학자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으면서 철학자 산타야나를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었다. 듀란트의 책을 읽을 무렵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빠져 지냈기 때문에, 단순히 미국에 산타야나라는 철학자가 있다는 정도만 아는 수준에 그쳤다. 주저인 <이성의 생활>이나 <미의 감각>은 찾아봤지만 번역본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없다!)

 

 

 

 

 

 

 

 

 

 

 

 

 

 

그리고는 산타야나를 완전히 잊었다. 그러다가 영미 현대철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잊었던 철학자 산타야나가 다시 내 앞에 출현한 것이다. 현대 미국 철학자들이 쓴 철학사 책에서 간간히 눈에 띄었고, 결정적으로는 1974년에 번역된 <이성의 탄생>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산타야나의 에세이들 중에서 대중적이고 자전적인 작품만을 골라 편집한 것이기에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어디인가?! 산타야나가 직접 쓴 그의 사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위에 언급했듯이 <이성의 탄생>은 자전적인 에세이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가 어디에 주로 관심을 쏟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데, 자기 철학을 자기가 평가한 부분이 재밌다. 제3부 철학적 에세이에 1953년에 쓴 ‘3인의 미국철학자’가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 산타야나는 자신을 존 듀이와 윌리엄 제임스 다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를 최고의 철학자로 간주했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은 후, 분명한 사실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산타야나가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다는 거다. 아무도 산타야나 철학을 재조명하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현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산타야나로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도서관에서 산타야나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는다. 

 

어떻게 산타야나는 우리 지식계에서 완전히 ‘잊힌 철학자’가 됐을까? 정말 신기하다. 산타야나를 소개한 이전의 책들을 보니, 산타야나는 우리나라 철학자 박이문과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철학자였던 거 같다. 산타야나의 저작은 거의가 시와 에세이다. 그것도 자연주의 계열이니 한국에서 인기가 있을 턱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래 들어 한국 학자에 의해 퍼스-제임스-듀이에 대한 연구서가 나온 걸 보니, 언젠가는 산타야나의 연구서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세창 명저 산책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중..) 

 

[조지 산타야나의 저작들]

<미의 감각>(1896)

<시와 종교의 해석>(1901)

<이성의 생활>(상식, 사회, 종교, 예술, 과학에 있어서의 이성. 전5권)

<세 명의 철학적 시인>(1910)

<이론의 선풍>(1913)

<독일철학에 있어서의 이기주의>(1916)

<미국의 성격과 견해>(1921)

<영국에서의 독백>(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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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실재론 :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은 각각 물질적 대상과 심적 상태(또는 관념)라는 표상 이론

**자연주의 : 자연을 실재의 전체로 인정하는 이론. 이 견해는 우주가 초자연적 원인이나 통제 없이 자기 충족적이며, 과학에 의해 주어지는 세계 해석은 실재에 대한 유일하고 충분한 설명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자연주의는 엄격한 유물론을 ‘삶과 사상’과 같은 실재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다. (S.오너&T.헌트, p322)

 

 

 

 

[덧]

이 페이퍼는 거의 주관적인 인상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세세히 검토하지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산타야나 저서가 번역된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알고 계신 분은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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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냐나... 처음 듣는 철학자 이름이군요. 어깨 너머 그래도 이름은 들어봄직도 한데, 서당개 3년동안 한번도 못들어봤습니다.

yamoo 2016-08-11 18:22   좋아요 0 | URL
철학전공자들 상당수도 잘 모르더라구요~ 제가 아는 설대 철학 전공 석사 출신만 5명이 넘는데, 이들 모두 제가 산타야나에 대해 물으니 `산타야나가 누구??`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ㅎㅎ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 맨 끝 부분에 소략적으로 나와 있으니 혹시 궁금하시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슥 보셔도 될 듯합니다^^

분명히 미국에서 현대철학자로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인데, 우리나라에 너무 안 알려진게 희한합니다..ㅎ

cyrus 2016-08-11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아주 좋습니다.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글이 많아야 합니다. 알라딘이나 네이버 책 데이터베이스에 검색되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요.

yamoo 2016-08-11 18: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 잊힌 저자가 쓴 책들의 존재를 꾸준히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당~~ㅎ 진짜 알라딘만 검색이 되지 않은 책이 넘 많습니다. 정말 동감합니다~^^

cyrus 2016-08-11 20:40   좋아요 0 | URL
요즘 곰발님이 밀고 있는(?) 멘트를 따라하겠습니다.

이달의 마이페이퍼로 선정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8 12:09   좋아요 0 | URL
문제는 제가 임의대로 선정한 것은 단 한번도 당선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말씀에 동의 페이퍼에서 정말 알고싶은 것은 숨겨진 책을 소개하는 페이퍼.. 제일 짜증나는 것은 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날마다 점심에 뭐 먹었다고 날마다 보고하는 글... 짜증 존나 남..


yamoo 2016-08-11 20:33   좋아요 0 | URL
곰발 님이 `짜증 존나 난다`는 그런 페이퍼가 있지요...곰발 님 덧글 읽으면서 웃음이 멈추지 않네요...ㅋㅋㅋㅋ
 

하나!

 

시이소님 페이퍼를 보면, 정말 한 달에 30권을 넘어 40권을 넘게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리뷰를 쓰면서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시이소님 자신은 누구나 백수면 그리 읽는다고 하시지만, 그런 가열찬 독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실감할 뿐이다.

 

하, 난 지난 달에 몇 권이나 읽었나? 이것 저것 여러 권 집적거려 봤지만, 완독한 책은 6권을 갓 넘겼을 뿐이다. 근데, 이건 순전히 명저 번역을 엉터리로 한 역자들 때문이다. 이들 불량 역자들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져, 책을 집어 던지고 다른 판본을 집어드는 지럴을 지속했에. 썅 소리가 절로 난다! 

 

특히 지만지고 출판사의 책들은 비싸기는 우질나게 비싼데, 번역은 별루다. 개중에 최악의 책을 만나면, 진짜 뚜껑이 열려버린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는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번역본이 지만지고 본밖에 없는데, 가격 대비 번역의 불량이 매우 심하다. 대형 서점에서 서서 봤기에 망정이지 일단 구매했다면 화가 정말 많이 났을 거 같다.

 

이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책 시장의 유통 구조가 참으로 요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책 값 비싸며 번역이 매우 안 좋은 출판사가 한길사다.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책들은 나름 진짜 그레이트한 책들인데, 번역은 정말 형편없다. 2만원 이상 나가는 책들은 그야말로 고급 장정에 책을 소장하고 싶게 한다.

 

하지만 페이지를 열면 번역기 돌린 듯한 문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불량 번역 제품은 교환도 환불도 안 된다. 번역이 안 좋아 서점에 환불하러 가면, 읽은 흔적 때문에 안 된다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번역이 불량인지 아닌지 알아 내기 힘든데, 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불량품을 양산한 출판사와 저자는 항상 면제부를 받고 있는 모양새. 진짜 천불나는 상황이다.

 

내가 읽어본 한길사 그레이트 북스 번역본들은 불량 번역이 대부분이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키에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 등은 읽다가 집어던지다가를 반복했던 책들이다. 특히나 <의미의 논리>와 <관념의 모험>은 진짜 심했다. 이런 번역본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 나라의 지식 수준을 알려주는 척도이기에.

 

 

 

 

 

 

 

헌데 독서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별로 제기하지 않는 듯하다. 난 이게 정말 이상하고 궁금하다. 불량 번역본이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데, 리콜하는 출판사는 없고, 그 불량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둘!

 

시이소오 님 페이퍼를 보다가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다름이 아니라 사이토 다카시가 조언하는 바를 이전부터 행하고 있었기 때문.

 

이 책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작은 책장을 만들어라    

 

흐흐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을 여기저기에다가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지막 궁극의 리스트는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들 책들을 제외하고는 점점 솎아 내어 처분할 계획이다.

 

  [내 궁극의 리스트]

 (이 사진의 책들 이외에 비트겐슈타인의 책들은 10여 권이 더 있다. 다른 책꽂이의 아래 칸에 있어 현재로서는 손이 닿지 않늗다. 여튼, 이 베르그손과 비트겐슈타인 원저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읽을 예정임)

 

 

셋!

 

오늘로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문학과 지성사, 2013)를 완독했다. 책이 얇고 작아서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곤했다. 구입하기는 지난 3월엔가 한 듯한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라 그냥 출판사의 네임 밸류만 믿고 구입한 경우인데,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곤했다.

 

하지만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란의 카프카'란 책 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끝까지 책을 잡고 있었던 거다. 염병할, '염세주의 미학의 절정'은 무슨 얼어죽을 찬사란 말인가.

 

그냥 찌질이가 아주 괴기하게 헛소리만하다가, 40페이지 정도에 끝나버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내용을, 174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그 기이한 힘이라니! 뭐, 중간 중간 끝내주게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들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배수아 씨가 번역을 하여 우리 작품 읽는 것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무시못할 장점)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와 좀 유사한 면이 있어, 계속 읽어갈 동력은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너무도 심하게 의식의 흐름(망상) 쪽으로 경도된 듯하여 실망이 컸다.

 

 

 

 

물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 모르고 덥석 책을 잡은 내 잘못이 크겠지. 자칭 실재론자인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할 리가 없잖은가.

 

그나마 위안인 것이, 이 책과 함께 읽고 있었던 베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 동안 버닝할 태세를 마쳤기 때문이다. 아, 어찌 모든 문장들이 그리도 줄을 치고 음미하게 하는지, 참으로 읽는 맛이 난다는 말이지. 빌어먹을 부엉이, 것두 <눈먼 부엉이> 따위가 시간을 갉아 먹게 하다니.

 

아, 물론 작가 지망생에게는 <눈먼 부엉이>가 매력적일 수 있다. 환상문학과 유미주의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절대적인 추앙을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뭐, 난 '부엉이'보단 '불안'같은 작품이 100배 좋다. 그나저나, 다음부턴 절대로 책 표지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넷!

 

처분할 책들이 쌓이고 있다. 예전같으면 악착같이 소장할 책들인데, 이제는 미련없이 처분을 하려고 한다. 공간, 내겐 더 중요한 책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발품 팔아가며 모은 책들인데... 아쉽긴 하다. 그치만 내겐, 현재...공간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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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이 몇 권을 읽든 적게 읽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저도 권수에 집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책 읽을 마음도, 글 쓸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

지만지 출판사 쪽에 일하는 분이 제가 독서모임을 통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진짜 그 분 때문에 지만지 출판사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고리키 단편선집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 책에도 불량 책이 많이 있을 거예요. ㅠㅠ

yamoo 2016-06-03 10:56   좋아요 0 | URL
상대방의 몇 권을 읽는지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기이할 정도로 많이 읽고 리뷰 쓰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이건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는...감내하는 수밖에요..

뭐, 책 값 비싸도 비싼 만큼 퀄러티를 보여준다면 불평을 좀 덜하겠습니다만...책 값은 일반 책의 2배 이상을 받고도 불량품을 양산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심각하다 하겠습니다..ㅎ

시이소오 2016-06-0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탐구가 가장 탐나네요^^

yamoo 2016-06-03 10:58   좋아요 0 | URL
흠, 고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네요! 시이소오 님두 고진을 좋아하시는군요! 뭐, 고진은 우리나라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랄까....전 그런 느낌이 들곤 합니다만..ㅎ

stella.K 2016-06-0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기 이석원의 책이 보이는군요.
그때 제가 읽지 마시라고 적극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베르그손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시는 분은 절대 못 읽을 책이죠. 암요...ㅠ
이제 절대로 야무님 앞에서 무슨 책 괜찮다고 절대 말 안할 꼬예요.

근데 이 페이퍼를 보니 야무님 때문에 우리나라 번역 수준이 언젠간 좋아질 거란 믿음이
마구마구 생깁니다.
자꾸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야 그 분야가 좋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안하면 지네들이 잘하는 줄 안다니까요.^^

yamoo 2016-06-03 11:01   좋아요 0 | URL
네...저 책을 처분하려고욤..ㅋ 읽기 다 읽었습니다만...강위석이나 고종석 작가의 에세이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읽기 힘들더군요. 말리셨어도 책이 엄청 인기 있어 한 번쯤 봤었을 겁니다요..ㅋㅋ

그래두 극찬하는 책들 중에서 그런 평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있기 땜시, 그런 판단은 자제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걍 줄기차게 계속 까댈라구욤...ㅋㅋ 그럼 언젠가는 좋아지겠죵~ㅎ

수이 2016-06-0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비평사_ 바흐찐_ 탐나는걸요. :)

yamoo 2016-06-03 11:04   좋아요 0 | URL
헐~ 야나 님 은근 문학 비평집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첨엔 이들 프랑스 비평에 관한 책들과 철학서들을 마구 사들였지만,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의 번역들이라 전부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것이 저기 있는 책들과 아직 손이 미치지 않은 곳에 있는 20여 권의 책들....

속이 쓰립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의 70% 정도는 베란다에 박스로 저장해서 쌓아놓고 있습니다. 이게 시바... 뭔짓인지.. 지금까지 책 절반 넘게 버린 것 같은데.. 결론은 집이 넓어야 한다는 점. 뼈저리게 느낌닙니다. 저도 시이소이님 보면서 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1독 1페이퍼라... 쉬운 열정이아님..
저보십시오. 리뷰는 쓰지 않고엄한 소리만 하고... 또 읽은 책의 90%는 리뷰를 안쓰고 있습니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반복한다는 것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듬.. 일단 술을 안 마셔야 함.. 전 틀렸어요. 알콜중독자가 아닌가 의심을 슬슬 할 때가 되었씁니다.

yamoo 2016-06-03 11:08   좋아요 0 | URL
책은 버리기 보단 처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낫더이다~ 버리면 그냥 쓰레기가 되지만, 이걸 누구에게 주면, 또는 기부를 하면 나름 어떤 가치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 보다야 훨씬 낫습니다..ㅎㅎ

시이소오 님은 정말 특화된 분입니다. 그런 분 따라가려다가는 그냥 한 방에 휙~ 갈거 같더군요..ㅎ

뭐, 곰발 님이야 리뷰보다야 그 엄한 소리가 더 쫄깃하니깐요..ㅎ 그거 기다리는 분들 알라딘에서 많지 않습니까..

흠, 근데, 일단 저도 금주 하시는 거에 한 표!ㅎ

감은빛 2016-06-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번역 문제는 출판계에서 아주 고질적이고, 만연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 이슈가 있는데,
하나는 번역자가 원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직역위주로 번역을 했고,
편집자 역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혹은 대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만 하다고 판단하고)
여러가지 이유(주로 출간 일정에 쫓겨)로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출간하는 거죠.

두번째는 번역자와 편집자가 번역투의 문장,
우리말 어순이 아닌 원문의 어순으로 나열한 문장 등 난해한 글을 두고
문제를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게 올바른 번역이라고 느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와 주로 계약하는 번역자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 출판사의 책은 계속 엉망일 확률이 높습니다.

번역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재미있는 사례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스티브잡스 전기 번역 오류 지적에서부터 파생한 번역배틀입니다.
이덕하라는 분과 노승영 번역가의 배틀이었는데,
진행과정만 지켜보고 정작 결과를 알지 못해 궁금하네요.
두번째는 한참 출판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새움 출판사에서 낸 까뮈의 [이방인] 번역본 논란입니다.
출판사 대표가 번역자로 밝혀지고,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 사건이요.

개인적으로 저도 출판사에 있을 때,
번역본 교정교열 작업을 세 번 했습니다.
세 번 모두 번역 경험이 거의 없는 분
(이건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이었죠.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어이없는 단어나 문장이 많았습니다.
평소 다른 원고 작업에 비해 서너배 이상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챕터는 아예 글 자체를 제가 다시 쓴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번역투에 비문이었으니까요.)
이런 경우 글은 제가 다시 썼지만, 번역자는 그래도 그 사람이니까,
책 정보에 번역자 이름이 실리지만, 제 이름은 판권 페이지에 작게 들어가지요. ㅠㅠ

한번은 도저히 글에 손을 댈 수 없을만큼 엉망이어서,
번역료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아예 그 원고를 버리고,
새로 다른 번역자에게 번역을 의뢰한 적도 있습니다.

번역 문제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뭐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yamoo 2016-06-03 11:11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비사가 있었다뉘!! 얼추 예상은 했지만 실상을 들으니 참으로 참담하군요. 말씀하신대로라면, 좋은 번역본이 나올 가능성은 당분간은 요원하다는 건데...아, 이거 이슈화해야 되는 거 아닌지...

어쨌거나, 알고 싶은 점을 정확히 알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다음번 페이퍼 쓸 때 참고하도록 하겠슴다!

감은빛 2016-06-0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좋아하는 책들을 꽂은 책장 만들기라 좋네요!
저는 지금 책장 정리를 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나서,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셋!
저는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입니다.
재밌는 다른 책도 많은데,
재미도 없는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요.
그래도 배수아 작가의 번역이라니 어떤 책인지 궁금하네요.

넷!
가라타니 고진의 탐구가 눈에 띄네요! ^^

yamoo 2016-06-03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원래는 읽히지 않는 책은 던져버리는 건데....거참, 맛깔난 문장이란게 거, 무시못하는 듯해요. 꾸역꾸역 읽게 된다는...

역시 고진은 알라딘 통네에서 인문학계의 하루키인거 같습니다. 많이들 좋아하시는 거 같다눈^^

루쉰P 2016-06-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ㅋ 책을 쌓아놓고 있는 걸 보니 너무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고 출판이고 전 우리나라 출판계에 별로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아요. ㅋ 정말 읽고 싶은 작가들의 번역이 너무나 안 되어 있다는 게 좀 속상하거든요. 일본은 번역이라는 것이 무지갛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체계가 없어요...

베르그송이라 ㅋ 저도 정말 열심히 읽었던 사람인데 ㅋ 서재에 꼽힌 그 책이 눈에 띄네요 ㅋ <불안의 책>이 그렇게 좋나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 항상 불안해서 말이죠 ㅋ

yamoo 2016-06-03 11:14   좋아요 0 | URL
어이구! 이게 뉘 십니까! 루쉰님 아니십니까! 도체 어디계시다가 나타나셨는지..

무쟈게 반갑습니다. 이제 서재활동 하시는 건지요~

루쉰 님 리뷰 읽었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그려~^^

oren 2016-06-0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그송이 쓴 책들뿐만 아니라, 베르그송에 관한 책들도 많은 게 흥미롭네요. 오래전에 저도 눈으로 구경만 했던 삼성출판사의 책등에 박힌『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제목도 여기서 다시 보니 정말 반갑네요. 저는 그 책이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의 영어번역판 제목인줄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답니다.

그나저나 번역에 관한 yamoo 님의 거듭된 문제 제기를 접하고 보니, 우리나라의 열악한 사정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좀 더 나아지려나 싶은 암담한 생각도 좀 드네요. 원저자의 뛰어난 걸작품을 졸지에 졸작으로 만드는 건 `일종의 배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 * *

젠장맞을, 대체 왜 그런단 말인가? 저자가 gehen이라고 했으면 왜 `가다`라고 하지 않는가? 역자 선생들이여, 제발 우리를 함부로 주물러 대지 마시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yamoo 2016-06-03 11:21   좋아요 0 | URL
네,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눈에 띄는 대로 데려오고 있습니다.ㅎ 요즘 보니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들도 대거 출판되고 있는데...10년 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 불과 몇년 사이에 전공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인가 봅니다.

헌데, 베르그손은 아직까지 좀 감감합니다. 앞으로 비트겐슈타인에 관찬 책만큼 베르그손에 관한 책들도 쏟아졌음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주저 번억본이 타출판사에서 제대로 나와줬음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시론을 보고서 알았어요. 시론이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걸...근데, 미국 원서도 시간과 자유의지라고 타이틀을 단 책드이 대부분인거같아요~

감은빛 님이 댓글을 보니 더 암담합니다. 이런 불량품 번역 관행이 아주 굳어진 거 같아서요. 단기간에 고쳐지긴 매우 힘든 구조인 듯합니다.

배신을 하도 당하다 보니, 분노를 넘어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이 좀더 각성을 했으면하고, 소비자들의 어떤 운동 비슷한 걸 해서 이 나쁜 관행을 타파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라의 지식 척도가 아주 밑바닥이니, 이건 정부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듯한데....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그리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듯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에 인용된 말이 참 재미나네요^^

transient-guest 2016-06-0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읽는 건 그래도 쉬운데, 리뷰를 잘 쓰는 것이 어렵네요.ㅎㅎ 전 쉬운 책을 위주로 보면 좀 빨리 많이 읽고, 고전은 아무래도 더딘 편입니다. 번역문제는 심각한데요, 한길그레이트도 그랬다니 놀랍니다. 책값도 비싸고 제본도 훌륭해서 소장하고픈 시리즈인데 말이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제겐 읽는 게 너무 힘듭니다. 특히 소설의 경우 처음 십여 페이지에서 완독 여부가 결정되는 거 같아요..ㅜㅜ

인문 및 고전 번역서는 개같은 번역 때문에 가독률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얇은 책도 몇 일이 걸리니..--;;

리뷰 잘 쓰기 힘들죠..^^;; 누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는..ㅎ

한길 그레이트 북스...이거 좋은 번역, 아주 손으로 꼽습니다. 100권도 넘게 발간됐는데, 거의 쓰레기 번역이 대부분인거 같아요. 골라서 읽는 책마다 그러니....시리즈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 2016-06-0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이소오님이 부럽습니다ㅠㅠ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책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네요ㅠ

yamoo 2016-06-08 14:51   좋아요 0 | URL
직장생활은 독서 생활을 방해하는 쥐약 쯤 되지욤..ㅎㅎ
그래두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읽는 분들 보면, 대단합니다~

보슬비 2016-07-0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5월에 60권 읽었어요. 하지만 반은 만화예요.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리뷰도 잘 안쓰고, 독서일기는 밀리고.......... ^^;;

yamoo 2016-06-08 14:52   좋아요 0 | URL
헉! 만화책이라두 그렇지....오우~ 능력자 이십니다. 영어 원서도 달마다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거 같은데...

뭐, 리뷰 쓰는 거야 누구나 다 밀리고 있는 상황이니 .. ^^;;

BackAttack 2016-06-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직업이 책에 관련된 일을 하십니까??
뭐 이렇게 책이 많아요?

yamoo 2016-06-21 13:2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ㅎ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 계속 책을 사재기 하나 봅니다..ㅎㅎ

이 알라딘 동네에서 저는 아주 미미한 존재입니다만..^^;; 책이 많은 분들에 대하면 암것두 아니지요~ㅎ

BackAttack 2016-06-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씨는 출판업이나 도서관쪽 일도 아닌데 이렇게 책을 많이 가진 것 보면 결론은 딱하나입니다. 부자이십입니다...전 집이 좁아서 놔둘때가 없어서 못사는데.ㅎㅎ 즐독하세요.

yamoo 2016-06-22 10:11   좋아요 0 | URL
ㅎㅎ 재밌는 추론을 하셨네욤^^ 물론 그런 생각이 일반적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월급을 타면 거의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이 많은 거고, 전혀 부자가 아니라서 공간 때문에 책을 처분하고 있습니다..ㅎ 임제어록님이 저보다 부자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감히 추정해 봅니다~^^

BackAttack 2016-06-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독서를 사랑하는 진짜 애독인이네요.좋네요. 특히 비트겐슈타인과 베르그송 책이 눈에 띄네요. 저도 중관불교와 비트겐슈타인, 유식불교와 베르그송을 연관지어서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두 서양 철학자를 좋아하시니 반갑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 어렵던데.. 전 포기.... 비트겐 책 이렇게 많은 분은 처음 봅니다. 사람들 대부분 비트겐 한 권 읽다 포기하는 바람에 다들 한 권만 가지고 있던데..ㅋㅋㅋㅋ

BackAttack 2016-06-22 13:19   좋아요 2 | URL
힌트드릴께요..무조건 비트겐슈타인 저서를 한방에 다 사세요.그럼 그 돈이 아까워서 입문서 해설서 몇권사고 ....그러다보면 비트겐슈타인 책이 많아져요.ㅎㅎ

양철나무꾼 2016-07-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이게 얼마만이래여?(버선발로 호들갑 중~^^)
잘 지내신 겝니까?

너무 오래 적조하셨다고 하려고 보니,
저와 비껴 가셨을뿐 뜨문뜨문 글은 올리셨네요.

책에 대해서 뭐라고 코멘트 하고 싶지만,
여전히...제겐 범접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연히 들렀다가,
언제던가 더운 여름 날 드셨다던 복숭아맛 아이스 티가 생각나 몇 자 끄적여 봅니다.

참, 책은 나왔나요?
광고 하시면, 사 읽겠습니다~ㅅ!

yamoo 2016-07-31 11:33   좋아요 0 | URL
양철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럭저럭 지냅니다. 잘 지내면 오죽 좋겠습니까?!ㅎ

뭐, 적조했다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양철 님의 리뷰는 올리시는 글 마다 보는 편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는 책만 읽으시는 거 같아 댓글달기가 좀 거시기 했습니다. 몇 번 쌓이니, `적조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거 같습니다.ㅎ

책은 나왔지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아 광고하지 않았슴다~ 좀더 좋은 책을 쓴 다음 광고하겠어요!ㅎ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고 반갑네요~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드디어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연일 우리문학의 힘을 세계가 알아줬다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떤다.

 

 

 

 

급기야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인터뷰도 실렸다. 소설가로서 딸의 수상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한승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학동네, 민음사 등 큰 출판사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한국문학이 자랄 수 있었다. .... 우리 세대 때는 좋은 번역가를 만나지 못했지만 ... 이제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정부에서도 힘을 기울여 번역자를 양성하고 이번에 좋은 번역자를 만나서 햇빛을 보게 된 듯하다.”

 

 

 

나는 창비, 문지, 문동, 민음사 등 큰 출판사들이 작가를 지원해서 이번에 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수상이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정부의 지원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서 수상작을 낸 사례가 아니지 않는가?

 

 

뉘앙스를 보면, 한국에서 좋은 번역을 지원받아 작품이 햇빛을 보게 된 것처럼 읽혀진다. 이런 걸 아마도 ‘호도한다’고 표현한다지?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요 작품들이 꾸준히 불어나 영어 또는 독일어로 번역되어 해당 국가에 소개되고 있는 줄 안다. 그 최초가 내가 기억하기론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었던 걸로 안다. 프랑스에 최초로 번역된 우리나라 현대 작가의 작품이라고.

 

 

 

 

아쉽게도 <생의 이면>은 프랑스 콩쿠르상 아니, 매디치상이나 르노도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내가 꼽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작품은 세계에서 경쟁력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선정된 걸로 봐서는 우리 문학의 경쟁력이 아예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결국은 번역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그 나라 토박이가 우리말을 배워 영어로 제대로 옮겨야 우리문학이 갖는 힘이 제대로 전달된다는 사실 말이다. 이를 이번 부커상 수상 사례로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순전히 이번 맨부커상 수상의 공로를 데보라 스미스에게 돌리고 싶다. 아무리 우리나라 작품이 좋다고 한들, 번역이 그 작품에 베인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면 밋밋할 수밖에 없다. 줄거리가 아무리 재밌더라도 문학성은 떨어질 수밖에.

 

 

시나 소설이나 문학작품은 작품 속에 내재된 그 강렬하고 독창적인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그 작품의 성공의 시금석이기에 그렇다.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는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턴킨의 심사평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가리켜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하고 독창적이다. .... 이 치밀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책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며 꿈에까지 나올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스미스의 번역은 매 순간 아름다움과 공포가 묘하게 섞인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턴킨 심사위원장이 말하는 ‘강렬’, ‘독창’, ‘치밀’, ‘정교’, ‘충격’, ‘아름다움과 공포가 매 순간 묘하게 섞인’ 등의 표현 속에는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공동 수상을 정례화 했는지도..)

 

 

한강 작가가 쓰고자 했던 느낌을 스미스 씨가 영어로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대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한강 작가와 동등하게 공동 수상하며 상금을 반씩 나눠가졌다.

 

 

번역가의 위상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번역을 창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풍경이다. 만일 한국문학번역원이 이 <채식주의자>를 번역했으면 아마도 부커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지 않았을까.

 

 

더 놀라운 것은 번역자인 스미스 씨가 한국어를 배운지 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스미스 씨는 지난 3월 우리나라 한 언론 매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번역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가가 되고 싶어 번역가가 됐다고.

 

 

당시 그는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적 감수성"이라며 문맥에 맞는 두 음절 형용사를 찾으려 며칠간 머리를 쥐어짠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과연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스미스 씨처럼 “문맥에 맞는 두 음절의 형용사를 위해 며칠간 머리를 쥐어짠‘ 경험을 얼마나 경험하고 번역을 했는지 묻고 싶다.

 

 

왜냐하면 서양의 명저들이 한국어 번역본으로 재단장하고 나올 때마다 ‘값비싼 쓰레기’로 둔갑해 버리는 기이한 경험을 매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 덴마크 최대 문필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키에르케고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유럽 제1의 작가라고 평가받는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등은 모조리 한국어로 읽을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한 명저 번역본들이다.

 

 

 

 

 

 

 

 

 

 

내가 최근 들어 읽은 알베르토 바스케스 피게로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리 모두 잘못이다>(책세상, 2005). 이 책은 정말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번역이면서, 작가가 의도했던 신랄한 풍자와 유머가 거세되어 버린 채 한국어 판본이 됐다. (물론 이 작품은 위에 열거한 작품과는 격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나름 읽을 만한 세계문학 작품 중 하나이다.)

 

 

역자는 정구석 씨인데, 번역이 얼마나 유치하고 조잡한지 한 대목만 소개해 보겠다. 내가 읽어왔던 다른 세계문학 작품 역시 여기서 오십보백보다.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비참함을 줄이는 데 자신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하길 원한다면, 부유층이 테러 행위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지금의 부당함을 추방하는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할 때, 모든 것은 조화를 잃게 되는 것이요.” p422

 

 

완전 번역투의 한국어 문장이다. 우리말의 결을 살리고 작가가 의도한 느낌을 제대로 살리는 번역은 저따위 식의 문장으로 나열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냥 우리나라 작가 소설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저런 문장을 만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헌데, 이건 매우 귀여운 수준(?)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한 번씩은 들어본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번역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게 어떻게 좋은 번역의 모범이라고 상찬 받고 있는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나도 3-4번 읽고 나서야 번역이 개판 5분 전이라는 걸 알았다.)

 

 

베르그손 전문가라고 공히 회자되는 송수영 씨가 베르그손의 주저에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한 대목만 소개해 본다. <창조적 진화>(아카넷, 2009)

 

 

 

 

 

모든 일이 진행되는 양상은 마치 생명적 형태들을 통해 진화하는 힘은 제한된 힘이어서 자연적이거나 선천적인 인식의 영역에서 하나는 인식의 외연과 관련되고 또 하나는 내포와 관련되는 두 종류의 한정 사이에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전자의 경우 인식은 풍부하고 충만할 수 있지만 그것은 특정한 대상으로 한정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인식은 대상을 제한하지 않지만 그것은 질료 없는 형식일 뿐이어서 아무것도 더 이상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호 함축하고 있던 두 경향들은 성장하기 위해 분리되어야 했다. 그것들은, 각각 자신의 쪽에서, 행운을 찾으러 세계로 나갔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본능과 지석에 도달했다. (p229)

 

 

 

줄친 부분은 모두 비문들이다. 나머지 문장들도 매우 어색하다. 이후 연결되는 단락들을 보면 대명사 ‘그것’을 수없이 남발하고 있다.

 

 

이 책이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 중 하나가 ‘문장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정말 베르그손이 저런 식으로 프랑스 문장을 섰을까. 송수영 씨가 쓴 단행본들을 봐도, 저런 식의 문장 전개는 거의 볼 수 없다.

 

 

번역을 창작이 아닌 단순한 ‘해석 작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발견되는 문장들이다. <창조적 진화>에는 저거 보다 심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대학원생에게 초벌 번역을 시키고 이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듯한 문장들이 도처에 지뢰처럼 흩어져 있다.

 

 

번역서를 읽고 참담하여 영어 원서를 구입해서 해당 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한국어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고 명확했다.

 

 

한 나라의 지식을 재는 척도 중 하나가 ‘번역’이다. 그 중요한 번역을 우리나라는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전공자에게만 맡기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전공자가 전문가라는 이상한 논리로 석사 학위만 받으면 번역에 뛰어든다. 이런 미친 짓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른건 아닌지. 뭐, 우리나라는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니까.

 

 

특히나 문학이나 인문서 번역에서 전문가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저질 번역서가 판을 치고, ‘고전은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낙인이 찍혔는지 모르겠다.

 

 

이번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우리 문화에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우리문학이 스미스 씨를 만난 건 그래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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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형출판사가 문인을 돕는다는 지적은 금시초문이군요.
한국 소설의 금자탑이라고 하는 김승옥은 생활에 곤란을 겪고있다는 소릴 들었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설 손창섭은 일본에서 쓸쓸히 죽어갔고
80년대 최고의 시인인 최승자는 굶어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무슨 대형출판사의 지원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3대 출판사는 돈이 될 만한 작가에게 투자할 뿐..

yamoo 2016-05-18 22: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금시초문 이었어요..ㅎㅎ
김승옥 씨는 절필하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럴거에요~
손창섭과 최승자 씨는 그런 생활 고를 겪고 있군요!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돈 될만한 곳에만 투자하지, 지원같은 거 잘 안하는 업체라는 거...ㅎ

cyrus 2016-05-1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 씨 인터뷰 내용이 저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꼭 ‘큰 출판사’들 덕분에 한국문학이 자란 건 아니잖아요. 국내 번역가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yamoo 2016-05-18 22:03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 인터뷰가 좀 와전된 거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자기 딸 책을 많이 읽히고 문단에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선심성 멘트일 수도 있구요. 좀 거시기한 발언 이었습니다.

저는 국낸 번역가가 제대로 양성되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거. 거기서 나온 외국번역서에 대한 기사도 못봤다눈..--;;

transient-guest 2016-05-1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참 중요합니다. 저도 좋은 외국작품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종이쓰레기가 되는 걸 많이 봤거든요. 저도 이번 수상은 작품성 외에도 번역자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고, 여기에 금세기 들어 많이 늘어난 한국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랄까, 이런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한승원 작가의 말씀은 좀 이상하네요...특히 대형출판사가 작가를 지원한다는 얘긴 금시초문입니다..번역가도 문학인으로 대접을 받아야하고, 업체의 공동번역이 아닌 전문가가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이름난 분들도 꽤 있는데, 요즘의 신간들은 종종 업체번역이 많아서 그런지 일관성도 떨어지고, 번역자 특유의 캐릭터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yamoo 2016-05-19 13:3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종이 쓰레기가 어떻게 비싼 문화상품으로 팔리고 있는지 분노하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번역가도 작가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 뿐만 아니라 명저 번역도 반드시 번역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이상한 문장들을 치유받은 다음에 출간하는 문화가 정립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업체 번역...정말 짜증나는 일이죠. 업체가 성횡할수록 번역이 창작이라는 말은 허울 뿐이 안되겠죠. 하루 빨리 번역가를 전문가로 대접해 줘야 하겠습니다!

stella.K 2016-05-1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무님 서슬 시퍼런 글은 정말...!
제가 번역하시는 분을 알고 있는데 그분도 만나면 나름 고충을 털어놓곤 하더군요.
작가 보다 못한 대접에 별로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만두지 못하고 매번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 나라는 작가도 대접 못 받는데나란데 번역가는 더 더욱 택도 없죠.
알고 보면 번역가도 불쌍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양성하고 키워줘야 하는데 뭐하는지 모르겠슴다.

한승원은 제가 좋아하는 작간데 처음엔 그저 겸손 떠느라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안 좋으네요.
우리나라는 참 그게 안 변해요. 잘 나가는 사람이나 회사 들먹이는 거.
우등생 박수 쳐주기 뭐 이런 거 말입니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이러는 거 보면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위화감 조장한다고.
알라딘 당선작 뽑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열 받네요. 흐~ㅋ

yamoo 2016-05-19 13:38   좋아요 0 | URL
번역 정말 힘들더군요. 저도 학부 과제로 1권하고, 군에서 3권 정도 번역을 했는데, 진짜 인내심을 시험하는 고된 일이더군요. 더군다나 우리말 실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좌절감만 안겨준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번역 작업을 단순한 해석 작업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가 정말 짜증납니다. 그러니 쓰레기 번역이 도처에 널린 거겠지요. 이 사회의 지적 풍토가 부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번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한 우리는 계속 지식의 식민 국가로 살아가야 할 듯합니다.

일본이 메이지시대 때 번역한 토마스의 <신학대전>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번역조차 안 돼 있는 현실...

정말 열 받는 상황이죠~ㅎ

북인더갭 2021-02-0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위에 언급하신 <특성 없는 남자>를 출간한 북인더갭입니다.
뒤늦게 이 글을 보았는데 저희 번역서에 관해 <한국어로 읽을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한>이라는 표현을 쓰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이 번역본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어로 읽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닌 것 같고, 만약 그랬다면 독자들이 먼저 알았을 텐데, 책이 나온 지 7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독자들이 찾아주고 계십니다. 혹시 이전 판본을 두고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은 아닌지 싶어서 조심스레 출판사의 의견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