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전이 끝나고 쉬고 있는 중입니다. 갤러리 관장님이 두 달 정도는 무조건 쉬어야한다고, 일절 작업을 하지 말라고 해서 책 보며, 드라마 보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진짜 늦으막히 개인전을 하다 보니, 여러 상념들이 교차합니다. 개인전은 정말 중요한 행사구나 하는 생각이 참석해 주신 지인들을 보며 새삼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해주시는 분들.
개중에는 신선한 자극을 받으신분들도 계셨습니다. 자신도 이런 개인전을 열고 싶다고. 타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더 열심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시간이 어떻게 나서 이런 작품활동을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전 그냥 창작하고 싶어서, 그리고 싶어서 작업을 했는데,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지인분들이 예상외로 많이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그림이 팔리기까지 했으니! 개인적으로는 그림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응원의 차원에서 구매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림을 사주신 것보다 더 고마운 것이 제 전시를 보시고 리뷰를 써 주신 분이 무려 3분이나 계셨다는 거! 개인전을 보고 그 개인전 리뷰를 써주는 감상자들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모임에서 와서 리뷰를 남겨 주셨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그분들의 리뷰를 여기에 갈무리 해 놓습니다.
A님 리뷰(현직 미술 작가이신 분)
“쿠르트 슈비터스는 버려진 파편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았다. 전쟁과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그의 아비투스는,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로 변환됐다. 그의 ‘메르츠’는 해체와 재구성 속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이 시대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야무님의 콜라주는 그의 작품의 영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삶의 잔해를 모아 다시 짜 맞추는 행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했고, 그 정체성은 또다시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고민과 철학이 표현되었다. 광고지의 부분, 오래된 책의 일부, 인쇄된표지판 조각, 인쇄된 돈, 이름을 잃은 글자들…
그는 그것들을 모아, 세계가 부여한 가치와 체계를 조용히 해체한다. 그의 손끝에서 한 장의 평평한 평면 위에 새로운 질서를 향해 흘러간다. 그 해체한 파편들은 작가의 아비투스 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동시에 작업에 몰두하며 행복해 했을 그의 모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안에는 집중이 주는 깊은 가치와, 창조의 순간이 안겨주는 순전하고 만족한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추상화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나 역시 한때는 추상 작업을 했지만, 끝없는 고민과 작품에 대한 책임감 속에서 점점 구상으로 옮겨갔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마치 작가로서의 의무인 듯 느껴졌다. 추상 작업의 회피적 감정, 불안,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연의 결과와 그 우연이 안겨주는 감상의 자유. 나는 언젠가 다시 추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채 집에서 이 글을 쓴다.
M님 리뷰
안국역 전시관에 도착해 하얀 벽에 걸린 빼곡한 작품들을 보고
와~ 경력 많으신 중견작가님이시구나(그러나 나중에 야무님의 이력을 듣고 더욱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세 되었죠)
그분의 예술 철학을 경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아비투스’!
후기자본주의에서 아비투스를 축적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 텍스트, 화폐, 태어난 곳(지도) 이 3가지를 테마로 하여 다양한 아름다운 색감의 작품들을 창작하셨더라구요.
알고 보니 야무님은 2022년부터 부캐로 화가의 길을 걷고 계셨어요. 취미로 배운지 1년만에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해 급기야 국전에 입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신!
현대미술에서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잘 설명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철학을 전공하신 다독가이면서 직접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제작해 입으실 정도의 미적 감각이 있으신 야무님이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지역의 다양한 문자, 자본주의가 무르익은 1960년대 미국의 흥미로운 광고 포스터, 전세계 화폐 도안, 세계 각국의 지도 등 주제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자료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리가 그림 속 소재를 가리키며 의미를 물으면 막힘없이 대답해 주시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작가님의 설명을 직접 들으니 더더욱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되더라구요.
야무님의 작품을 구입하시고 작가의 꾸준한 활동과 성장을 응원하시는 ㅇㅇ님의 모습에서 언어,화폐,지역의 삼요소가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과정을 뚜렷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J님 리뷰
이 책 저 책 읽다보면 입에 딱 붙지 않는 단어들이 좀 있는데 예를 들면 '테세우스의 배' 'uncanny valley' '루빈의 항아리' 등 개념적 단어들은 몇 번을 기억해야 어렴풋이 잔상이 남는 단어가 되더라구요.
아비투스(Habitus)도 그 단어 중 하나였는데 아비투스는 “몸에 밴 문화적 습관"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야무님의 작품들이 이 단어를 주제로 형상화되어서 살짝 어떤 의미로 풀어나가셨을까 궁금했었습니다.
야무님 설명을 조금 듣고 이해가 살짝 ~^^
한줄로 줄이면 '글 /화폐 / 장소 로 야무님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의미를 담으신 걸로 이해' 가 되었네요. 심오한 생각을 너무 단순하게 정리했나요? ^^;;; 죄송!!
개인적 느낌은 그림들은 섬세한 작업과 독창적인 콜라쥬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화면 속 세밀한 표현이 관람객을 작품에 갇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가볍게 접근해 보면 군데군데 숨겨진 월리를 찾듯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였어요. 1926년산 메캘란 위스키 이스라엘 화폐 50년대 광고 일러스터 이미지 등 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찾는 시간도 엄청나셨을 것 같은데 3~4개월만에 저 많은 작품을 다 만드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림 중에 '나의 문화적 취향이 내가 속한 계급을 말해준다' 라는 글이 작품에 콜라쥬되어 있어서 잠깐 생각에 빠져버렸습니다. 사실 이 문구때문에 그림에 온전히 빠지질 못했어요.
나의 계급은 어느 수준일까? 문화적 취향에 계급이 있는 걸까? 어떤 취향이 더 높은 계급을 만드는건가?등등 머리속에 온갖 상상의 나뭇가지가 자라나며 온전히 그림을 즐기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ㅜㅜ 글쟁이 출신이라 그런지 작품 내내 저 문구에 꽂혀서 ㅎㅎ 계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알러지도 있구요~^^
제게 이 리뷰만큼 큰 상도 없을 듯합니다. 초보 작가의 전시를 보고 이런 리뷰를 3분이나 써주셨다니!! 이 서재 공간을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부가적으로 화분도 많이 주셨고, 먹거리도 많이 주셔서 전시를 끝내고 한 주 동안은 먹거리 걱정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개인전은 제게 너무 과분했던 거 같아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덧]
무조건 쉬고 있는 중이라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몽테뉴의 <좋은 죽음에 관하여>. 내용은 매우 좋은데 가독성은 심하게 떨어진다. 왜 그럴까? 비문도 별로 없는데...참 신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