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요 평론가가 말했다죠. '희대의 노래'라고.
무려 30년도 훌쩍 뛰어넘은 1979년 곡입니다. 오래됐지요. 하지만 '윤시내'하면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겁니다. 1980년대 후반, 돌연 TV가요프로 그램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윤시내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였습니다.
지금은 잊혀져 버린 가수지요. 하지만 윤시내 씨는 자신이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아직도 열정적으로 라이브 무대에 서서 지난 곡들과 신곡들을 선보이고 있답니다. 새 음반도 낸다고 하더이다. 지난 2014년 '7080콘서트' 무대에도 섰었죠. 이제는 나이 때문에 젊은 시절처럼 고음 처리가 잘 안 되는 듯하여 좀 안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겐 '윤시내' 하면, '이상한(?)' 가수라는 선입견이 많이 작용합니다. 그도그럴것이 어릴 때 보는 이 가수의 모습은 굉장히 기괴했거든요. 가창력은 뛰어난 거 같은데, 아방한 옷차림은 약간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으으~'하는 추임새는 뭐랄까 약간 무당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어린 느낌에요.ㅎㅎ
근데, 요새 80-90년대 가요를 들으면서 윤시내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됐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당시 윤시내가 무대에서 보여줬던 포퍼먼스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습니다.
유투브로 '가요톱10'이나 당시 강변가요제 등의 동영상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게 있습니다. 그 많은 기라성 같은 가수 중에서 윤시내에 필적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가수는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이선희, 조용필, 나훈아...이런 가수와는 완전히 뭔가가 달랐지요. 대표곡 <열애>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니 한 번 들어 보시죠.
이동원, 장혜리, 양수경, 신해철, 남궁옥분, 김학래, 이현우, 김승덕, 신승훈, 이승철, 이선희, 조용필 등등 80년대 가요톱텐을 수놓은 1위곡들이나 강변가요제 인기곡 위주로...그러니까 80년대를 대표했던 곡들을 들으면서 윤시내의 <열애>를 같이 들었죠.
들으면서 참으로 이 당시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곡마다 가수 개개인의 고유한 음색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이때가 진정 한국 가요의 르네상스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요즘 노래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더군요~ '7080콘서트'가 인기 있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거였습니다. (나만 몰랐나...--;;)
어쨌든....여러 가수 중 듣게된 윤시내의 <열애>. 뭐랄까, 비주얼부터 완전히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다른 가수들과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건 뭐, 가사의 의미를 목소리와 몸으로 표현하는 듯. 어떤 분들은 윤시내가 노래에 혼을 담든다고 하던데, 빈말이 아님을 느낍니다. 제가 어렸을 때 윤시내 씨를 무당같다고 느낀 바로 그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니, 소름이 돋네요~
요즘 명곡 리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윤시내 씨의 이 곡이 후배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다는 것도 유투부에서 확인했습니다. 남자 가수든 여자 가수든 전부 윤시내 씨에 못미치더군요. 이선희 씨가 24살에 이 곡을 부른 영상이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낫더군요. 하지만 가사의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열창에 지나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 24살에 이 노래를 소화했다는 자체가 대단하긴 했지요.
<열애>는 사연있는 노래 입니다. 이 가사, 다시 한번 전문을 인용해 봅니다.
열애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리
우우우~~~~
이 가사의 사연인 즉슨 이렇습니다. 이 시는 부산 MBC 음악PD 배경모 씨가 암투명 중에 쓴 것입니다.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는 아내의 모습이 안스럽고 고마워서 이 시를 쓰게 됐답니다. 아내의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서 말이지요. 절절한 내용에 아내 분이 울었다지요. 헌데 남편인 배경모 씨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미망인은 이 시를 남편의 절친이었던 작곡가 최종혁 씨에게 보냈고, 최종혁은 이 시에다가 드라마틱한 곡을 붙입니다. 노래 <열애>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고, 운명적으로 윤시내 씨가 부르게 됩니다.
이 곡은 1979년 TBC 국제가요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이 곡은 본선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가수 '윤시내'를 전국에 알리게 됩니다. <열애>는 매우 드라마틱한 곡이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주는 사랑의 고백이라 그 사랑의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힘든 곡이죠. 이러저런 사랑이 아니라 '이 생명 다하도록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사랑'이니 말입니다.
감정을 절제할 때 절제하고 폭발할 때 제대로 폭발해 주는 클라이 막스. 곡의 기서결이 아주 잘 짜여져 구조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이런 곡들은 주로 고딕 메탈에서나 들을 수 있는데 말이죠. 우리 가요에서 윤시내의 <열애>이전에는 이런 곡이 전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 기억에요.
이 완성도 높은 가사와 곡은 윤시내의 독특하고 아방한 퍼포먼스를 만나 '불멸이 곡'이 됩니다. 윤시내 씨의 음색과 퍼포먼스가 화룡점정이 되었던 것이죠. 반복해서 들어도 79년도 노래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 가요계가 윤시내라는 가수를 가졌다는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희 씨나 전영록 씨 못지 않은 가수인데,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가수 같아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습니다. 새롭게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가수인데 말이죠.
(참고로, 윤시내 씨는 80년부터 84년까지 5년 연속으로 MBC10대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잠적했지요.)
수상 경력(위키 피디아)
[덧]
일명 AOR이라는 노래를 찾아 미친듯이 듣다보니, 윤시내가 그저 그런 가수가 아닌 거 같아 페이퍼까지 쓰게 됐네요. 아우라가 있는 가수는 많지 않은데 말이죠. 윤시내의 <열애>는 참으로 대단한 곡인거 같습니다. 네, 정말 반복해 들어도 그렇네요.^^;;
응팔 ost와 함께 흘러간 노래를 들으니 책도 장만해 놔야 할 거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