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내가 살아온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 개인전의 제목을 세계는 나의 아비투스다라고 정한 것은 내가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축적해온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그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오래된 문서와 인쇄물, 책의 일부, 화폐, 문자와 광고 이미지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소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접하고 지나온 것들의 흔적이며, 나에게 내면화된 세계의 파편이다. 나는 이 파편들을 화면 위에 다시 배열하고 겹쳐 놓으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그것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세계가 기억과 습관을 통해 변형된 내면의 풍경에 가깝다.

 

특히 아비투스 콜라주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붙였는가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였다. 오래된 종이 위에 이미지가 겹쳐지고, 문자가 일부 가려지며,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처음에는 각각의 이미지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화면 안에서 그것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잘려지고, 중첩되고, 가려지고, 다시 드러나면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하나의 구조라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억은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며, 어떤 것은 다른 기억 위에 포개진다. 현재의 경험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해석하고, 이미 지나간 시간은 현재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는다. 내가 화면 위에 파편을 쌓아 올리는 행위는 결국 이러한 기억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었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나에게 단순히 사회적 환경이 남긴 습관이나 성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세계를 보고 선택하고 배열하는 하나의 감각적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화면에 남기는가,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고 어떤 것을 지우는가, 무엇을 겹치게 하고 무엇을 비워두는가 역시 내가 축적해온 시간과 경험의 결과다.

 

지난해의 세계는 나의 아비투스다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작업에 대한 하나의 출사표였다. 나는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내 안에 축적된 방식 자체를 화면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때 시작된 질문은 이후 작업에서 점차 이미지의 문제를 넘어 구조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지금의 작업에서 내가 말하는 구조역시 결국 그 아비투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남긴 흔적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충돌하고, 겹쳐지면서 하나의 화면을 이루듯이, 나의 작업 역시 그렇게 축적되어 왔다.

 

그러므로 지난해의 아비투스 콜라주는 끝난 작업이 아니라 지금의 작업이 시작된 자리다. 내가 남기는 모든 작품은 결국 내가 살아온 세계가 나에게 남긴 흔적이며, 동시에 그 흔적을 다시 바라보고 재구성한 나 자신의 기록이다. 세계가 나의 아비투스라면, 내가 만드는 화면 역시 나의 아비투스가 된다.



[덧] 개인전 포스터가 나왔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 쉬지 않고 달렸네요. 올해는 8월 개인전 이후 9월 이후 초대전이 한 번 더 잡혀 있습니다. 올해는 제 조형언어를 발견한 기념비적인 해입니다. 그래서 올 개인전과 도록은 제게 무척 중요한 사안이 됐네요. 모처럼 근황을 전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최근 읽고 있는 유익한 현대미술사 책이 있어 부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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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2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대단하시네요.개인전이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6-08-13 11: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단할 정도는 아닙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어요~~ㅎㅎ

cyrus 2026-08-1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월 28일에 하루 연차 신청했어요. 그날 저녁 독서 모임이 있어서 연차 신청을 한 건데, 마침, 잘됐네요. 개인전 보러 서울에 가야겠군요. ^^

2026-08-13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 모임에서 무대 인사 영화를 예매하여 19일 영화 <HOPE>를 볼 수 있었다. 예고편을 보고 무척 기대를 했었는데, 영화 개봉이후 평이 갈리고 평점이 낮아 기대가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봤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매우 재밌게 봤다. 2시간 30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재밌었다. 물론 개연성과 핍진성이 매우 떨어지는 건 사실이고, 조인성은 죽어도 너댓번은 죽어야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심히 거슬렸다.


마지막 외계인이 성경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걸 들먹이는 장면에서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크리처물이이라서 그런가 어디서 본 듯한 연출과 크리처의 모습이 진격의 거인과 너무 흡사해서 진격의 거인 실사판을 보는 듯하기도 했다.


사건의 개연성은 말해서 뭣하랴. 하지만 이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달리는 장면은(크리처의 속도를 보면 단번에 잡혀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의 속도를 계속 크리처가 못따라 잡는 것도 도드라진 결함) 뭔가 속도감을 주고 몰입감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너무 계속되어 피로도가 쌓인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재밌었다.


평가가 너무 극과 극이라 이 영화 보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만큼 형편없지는 않다. 장면 하나하나는 나름대로 잘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충분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돌비 시스템에서 보면 확실히 재미가 보장되니, 꼭 돌비로 보길 강추드린다.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소득은 뭐니 뭐니 해도 조인성의 실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 진짜 얼굴 작고 잘생겼다. 조인성을 1미터 정도에서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건 커다란 소득. 내 앞의 여성분은 조인성과 같이 사진을 찍어 남기기까지 했다. 객석을 돌면서 배우들이 인사하는 건 좀 이례적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영화 재밌다. 너무 기대에 차서 디테일 하게 보기 보다 한 편의 재미있는 오락영화 본다고 생각하면 돈 아깝지는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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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22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영화 초기 마을의 끈적한 긴장감과 추격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yamoo 2026-07-23 12:57   좋아요 0 | URL
이걸 재미없다고 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영화가 재밌다는 건지...판타지 영화는 장르에 맞게 그냥 보면 되는데, 뭔 그렇게도 비판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본 한국 영화 중 재미 면에서는 그냥 원탑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6-07-23 1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관람 하셨네요. 조인성 님의 팬이 많지요.
이제 저는 2시간 30분간 같은 자리에 앉아 시청한다는 게 쉽지 않네요. 힘들어요.
연극을 보러 가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 좋더라고요.^^

yamoo 2026-07-23 12:59   좋아요 1 | URL
저도 2시간이 넘어가는 영화는 좀처럼 집중하기 힘들어요. 그치만 호프는 지루할 틈이 없어요..ㅎㅎ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근데 페크님 정말 올만이시네요..^^

얄리얄리 2026-07-27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정말 오래 지났었는데, <왕사남>을 영화관에서 보았고 이것도 보려 합니다. 1년에 두 번 영화관 가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올해 또 갈지는..). 날씨도 덥고 요즘 복잡한 일도 있어서 이런 영화 보면서 잠시 머리식히며 쉬는 것으로 대만족입니다.

yamoo 2026-07-27 18:50   좋아요 0 | URL
얄리얄리님 올만입니다!

잠시 머리 식히기에는 금상첨화인 영화입니다. 이만한 영화 없숩니다!ㅎㅎ
꼭 돌비로 보셔요~~~
 

다가오는 8월, 개인전 준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6월 들어 단 1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모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8월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을 5월 초까지 단 한 점도 제작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다가 5월 첫 주부터 작업하기 시작하여 6월 초까지 대략 1달 동안 20여 점을 완성했다. 100호부터 10호까지. 진짜 미친듯이 작업했다. 


이렇게 작업할 수 있었던 건 갑자기 '돈오점수'와 같은 깨달음이 있고 난 후였다. 올 초부터 4월말까지 내가 지금까지 습작했던 400여점을 매일 보면서 장단점을 분석했다. 


그러다가 5월 초 어느 순간 내가 습작한 모든 작업 결과물들의 공통적인 조형적 특징이 보였다. 화면은 다 달랐지만 본질적 행위는 똑같았다! 그걸 확인한 후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는지 깨달았고, 내 조형의 근간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이후 작업은 급물쌀을 탔고, 이전에 개별적인 화면은 다채로우면서도 깊이있게 변했다. 이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작업을 안할 수가 없었다. 지난 작품들을 꺼내 새롭게 부가한 작품에서 화면의 다른 차원이 열렸다.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서도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올해 작품이 쌓이면 확실히 뭐라도 되겠지..라는 기대감이 있다. 


어쨌거나 8월 개인전 이후에는 조금 여유가 생길듯하다. 이제 어느 정도 개인전 할 작품도 확보했으니 조금씩 책을 읽어야 겠다. 한 달 내 잡고 있던 책이 고흐에 관한 책인데, 낼이면 완독할 듯하다. 




이제 다시 책을 읽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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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24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전 준비하시느라고 서재에 자주 오지 않으셨군요.8월 개인전이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6-06-24 17: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

댄스는 맨홀 2026-07-04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달동안 그렇게 작업이 가능하세요?? yamoo님 정말 대단하세요. 건강 조심하시고 개인전 멋지게 성공하시길 바랄께요.

yamoo 2026-07-06 09:52   좋아요 0 | URL
하다보니 그렇게 되더이다. 진짜 미친듯이 작업했더니 어느새 19점이 완성돼 있었습니다..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좀 놀랐다는..^^;; 4월까지 올해 전시작 헌 점도 그리지 못해 압박감이 상당했는데...작업의 근본 언어를 발견한 순간 작업이 급물살을 탄 느낌입니다..ㅎㅎ
 

우연히 올해 발표된 사루비아 선정작가 4인 중 박다솜 작가 작품을 봤다. 종이의 물성을 실험하면서 꿈을 불러와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하는 작품들. 89년생. 이화여대 미대 학부 및 대학원 출신. 22년 금호영아티스트 선정작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품들이지만 화면이 외국 작가들에서 많이 봤던 거. 저게 동시대 회화의 담론이라니. 스페이스 사루비아에 급실망했다. 대안 공간에서 볼만한 회화가 아니랄까.




나는 대안공간(사루비아, 루프 등)이 국전 보다 더 동시대적이라서 회화도 회화의 본질을 건드리거나 과감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가들을 선정하는 줄 알았는데, 대안 공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인상이 짙다. 24년도 루프 공간에서 봤던 회화는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시도는 그럴듯했고 이런 시도도 가능 하구나 하는 걸 느꼈다.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업. 동시대 회화가 건들여 볼 수 있는 가능성. 당시 이해할 수 없고 내용과 형식이 정합적이지 않았지만 그 불편함이 의외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대안 공간 다운 전시였다.



 

근데 2026년 사루비아는 너무 안전지향인듯해서 실망이 컸다. 이랜드나 태평양에서 공모하는 것과 다를게 뭐지? 라는 느낌. 그래서 원래 대안 공간 이란 곳에서 가지는 일종의 선입견. 즉 대안공간에서 선정되는 작가란 이야, 진짜 회화에서 미친넘이 나왔구나. 이런 시도를 하다니. 매우 전복적이네라는 생각이 드는 작가들이 선정되는 공간인 줄 알았다는 말씀. 뭐랄까 박다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내가 루프에서 봤던 날 것과는 심하게 대비되는 화면이었다. 그래서 학맥에 의해 정교하게 위치지워진 작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박다솜 작가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게, 제도권(대학)에서 동시대 회화를 하면 정교하게 조율된 화면이 된다는 거. 한국미술계의 생리겠지. 평론가와 큐레이터가 지향하는 바가 딱 박다솜의 회화를 보면서 느껴진다랄까. 날것이 아니라 세현되게 포장된 느낌이 강하다. 문법 안에서 변주라는 느낌. 감각은 세련됐지만 위험성은 관리되어 있고 제도 내부에서 충분히 해석 가능하며 낯설지만 불편하지는 않은 방향. 이게 요즘 동시대 미술을 지향하는 한국의 시선인듯하다.

 



한국은 왜 현 시점에서 이 이미지가 한국 동시대 회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한 걸까? 종이물성 실험은 이미 회화에서 끝났고, 페미니즘--꿈 주제 역시 비엔날레의 복재에 지나지 않는다. 왜 지금 박다솜의 회화가 한국의 동시대 회화의 첨병인가? 대안 공간의 게이트 키퍼들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2000년에서 2010년대 영미 유럽 30대 회화들 보면 확실히 화면에서 말하는 바가 강력했다. 특히 추상은 화면이 매력적이고 다층적이며 어떻게 이런 화면을 구축했지! 하는 놀라움을 줬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도록을 봐도 역시 매력적이다) 이에 비하면 박다솜 작가의 화면은 나쁘게 말하면 유아틱하고 좋게 말하면 감성회화처럼 보인다. 한국의 대안공간들은 시간을 거꾸로 가는 듯하다.

 

60년대 아스거 욘이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그림에 낙서를 한 행위가 한국의 현재 대안공간의 시선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강력한듯하다. 60년대 그런 시도를 했는데말이지. 폰타나는 캔버스를 찢기까지했는데, 그에 비해 26년 한국의 대안공간 사루비아는 너무 안전지향적인 듯하다. 2-3년 전 비엔날레 주제가 여전히 대안공간까지 점유한 느낌. 페미니즘-몸에 대한 주제가 아직까지 한국 동시대회화에서 강력한 걸 보면, 한국은 참 미술에서는 담론을 선언하는 위치에 있지는 못한 듯하다. 올해 사루비아 선정 작가 보고 느낀 내 실망의 본체다.

 

비교 대상으로 영국의 핫한 동시대 작가 자데이 파도주티미 작품들을 함께 올려본다. (20년 전시 모습) 대학원 졸업(20년, 당시 25세)하고 몇 번 전시회를 했는데, 작품들을 사려고 줄을 섰다는 20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다. 박다솜 작가의 계열과 비슷한 반추상에 선을 사용하는 면까지 비슷하지만, 화면의 에너지가 다르다. 평면에서 자기 언어를 끝까지 밀어붙임 느낌이 강하다. 내가 박다솜 작가의 작품이 유아틱하다고 느낀 지점이다. 전달되는 에너지 면에서 너무 확연한 차이가 난다. 안전한 동시대 회화는 이 정도가 대안공간에서 볼만한 화면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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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문고 <공산당선언>(책세상, 2007)10여 년 만에 다시 읽었다. 예전에 읽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번역이 진짜 어렵게 되어 있다. 박종철출판사 전집 1권을 다시 찾으려 해도 어디 있는지 몰라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읽었다.

 

2018년 리커버판도 봤지만, 번역은 07년판과 대동소이했고 줄 간격만 늘려 페이지 수만 26쪽 늘렸다. 가격도 5900원에서 9900원으로 대폭 올렸다. 번역은 수정 증보하지 않았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은 본문이 288페이지(07년판)로 끝난다. 그럼에도 3번을 읽어야 했다. 그 이유는 본문 첫 페이지, 그 유명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첫 2~3페이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뢰를 밟는듯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역자 이진우는 한국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한국어 문장 자체를 독일어 문장 쓰듯이 쓰기 때문. 역자 자신이 쓰고 있는 한국어 문장 자체가 매우 난삽하다. 역자 해제를 보면서 이를 여실히 느꼈다.

 

"현재 사회의 자궁 속에서 새로운 사회 관계의 물질적 실존 조건이 자라나기 전에는 결코 그 사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민 사회의 자궁 속에서 발전된 생산력은 이 사회의 모순과 대립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동시에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포스트모던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정치경제학 비판은 주어진 현실 속에 이미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이 함축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을 섣불리 이상으로 재단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의 모순과 철저하게 대립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태도,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 정신이다." (152)

 

역자 해제 6장에 나온 부분이다. ‘~’, ‘~을 매우 남발하고 있다. 누가 유학파 교수 출신 아니랄까 봐.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으로 썼다면 <공산당선언> 책세상 문고본은 이보다 훨씬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웠을 거다.

 

본문 번역문으로 넘어가면 진짜 짜증 나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일단 몇 문장들만 보자. 이 책이 읽기 어려운 것은 난삽한 번역 문장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본다.

 

"사회가 총생산력을 사용하고 교통수단이나 생산품을 교환하고 분배하는 권한을 사유 자본가들의 손에서 빼앗아 기존의 수단들과 전체 사회의 욕구에서 도출되는 계획에 따라 관리함으로써, 무엇보다 특히 현재 대규모 산업의 경영과 연관된 모든 나쁜 결과가 제거된다." (80)

 

처음 읽을 때 이게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헤맸다. 그도 그럴것이 위 문장에는 주어가 없기 때문. 전형적인 비문. 첨엔 잘 모른다. 이해가 안 돼 몇번 읽어야 왜 잘 이해가 안 돼는지 밝혀진다. 정말 고약하지 않은가. 한번 읽어 끝낼 문장을 난삽한 번역 때문에 몇 번을 읽고 있으니. 여러 번 읽으라는 심보인가?

 

이런 문장들이 도처에 있다. 문장들을 더 보시겠다. (하나하나 지적하기 힘들다. 그냥 비문의 사례로 참고하고 보시길. 제발 이런 문장으로 번역하지 말자!)

 

"현대적 시민의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 다른 계급들에 대한 한 계급의 착취에 기반을 둔 생산품의 제조와 획득의 최종적인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34)

 

"물질적 생산물의 공산주의적 취득 및 생산 방식을 향해 쏟아지는 모든 비난은 마찬가지로 정신적 생산물의 취득과 생산으로 확대되었다." (37)

 

"게다가 이른바 공산주의자들의 공식적인 부인 공유제에 우리의 부르주아들이 고결한 도덕심에서 경악하는 것보다 더 우스운 것은 없다." (39)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비판의 반동적 성격을 거의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권하에서 붉은 사회 질서 전체를 공중으로 날려버릴 하나의 계급이 발전했다는 점이 바로 부르주아에 대한 그들의 주요 비난이 될 정도다." (46)

 

"그들은 노동자들에게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적 대립에 대해 가능한 한 명확한 의식을 이끌어 내는 일을 한시도 중단하지 않았다. 이는 독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지배권과 함께 반드시 도입할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을 동일한 수의 무기들로 부르주아지에게 겨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며, 독일에서 반동 계급들을 타도한 후 곧바로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59)

 

'적대적 대립에 대해 가능한 한 명확한 의식을 이끌어내는 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적대적 대립자체가 명확한 의식이 수반됨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대립이 적대적일 수 있을까?

 

이런 걸 곰곰 생각하다간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게 된다. 번역을 창작물로 봐 주지 않기에 이런 모호하고 잘못된 문장들이 넘쳐난다. 같은 내용을 두세 번 읽어야 한다. 보통의 교양인이면 당연하다. 이해가 잘 안되는 문장이기에.

 

이걸 한 번에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역자와 같은 독일 유학파로 한국어를 독일어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일 터. 한국인이면 처음 읽어 이해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저런 문장들을 어떻게 한국 산문 읽듯 술술 읽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이 책이 어렵다고만 말하지 왜 어려운지 그 실체를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고전 사회철학서라는 아우라에 교묘히 가려져 있기에 그렇겠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본문 내용이 난해한 게 아니라 역자가 난삽하게 번역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이 책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 노동자에게 읽히게 할 목적으로 쓰인 선언서다. 마르크스가 읽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게 썼기 만무하지 않을까. 전 세계 번역본인 러시아, 영어, 프랑스어 번역본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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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4-2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박사가 문학자가 아니니 한국인이 읽기 쉽게 번역을 할 순 없겠지요.아무래도 이런 류의 책들은 독자들이 어렵게 읽어야 역자들이 지적 우월감을 느낄수 있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일반인들도 쉽게 일고 이해할 수 있는 공산당 선언에는 어떤 출파사 본이 있는지 궁금해 집니다.

yamoo 2026-04-22 09:12   좋아요 1 | URL
네, 물론 철학박사는 문학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논문 쓰고 학생 리포트 지도할때 항상 말하지요. 문장같지도 않은문장을 쓰지 말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저런 문장들로 논문쓰고 번역하지요.

현재 공당산선언 판본 중 그나마 가장 읽기 수월한 판본은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전집1권에 수록된 번역본입니다. 약 20여 페이지 정도 분량인데 정말 빽빽합니다. 이걸 책세상 문고본은 100여 페이지로 늘렸지요. ㅎㅎ

살리에르 2026-04-22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산당 선언이 이렇게 어려운 내용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내용과 관련 없이 정말 개떡같이 쓴 글이에요. 아니 글만 한글이고 내용은 어디 안드로메다 언어인 것 마냥 뭔 소린지 모르겠네요.

yamoo 2026-04-23 09:48   좋아요 1 | URL
여실히 느끼셨군요.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보면 어렵다는 걸 별로 못홨고, 번역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리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는데, 함께 읽은 분들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높아 저도 왜 그런지 자세히 읽어본 끝에 번역이 개같이 해 놔서 무슨 소린지 모르는 내용이 많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리콜되어야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