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쪽 근무하는데, 이 돈 주고 볼 수 있는게 감사한 수준이였습니다.”]
[“귀멸? 도대체 그런 걸 왜 보는 거야? 애들이나 보는 걸 극장에 가서 꼭 봐야 해?” 이렇게 말하는 남편을 설득해 극장판 무한성편을 보았습니다. 다 보고 나오면서 “다음 편은 언제 나와?”라고 묻더니, 반려견에게 젠이츠의 번개의 호흡 제7형 화뢰신을 시전하네요.]

<귀멸의칼날> 극장판 '무한성편'을 보고 나온 후기 중 가장 인상깊었던 후기를 가져와 봤다. 극장판 <무한성편>은 내가 그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을 봐 왔지만 모든 극장판 애니 중 원탑이었던 작품. <블랙클로버>, <나혼자만레벨업> 등 전투 씬 좋다는 애니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연출력과 음악, 그리고 캐릭터, 비주얼, 사운드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빈말이 아니라 맨 위에 영상 쪽 근무했다는 분의 후기처럼 19,000원(4DX)에 이 정도 영상미를 감상하는 게 정말 감사했다. 휘몰아치는 액션 중에 간간이 들어가 있는 회상 씬은 드라마적 신파이지만 그렇기에 캐릭터가 좀 더 입체감 있고 단단해졌다. 귀멸 시리즈를 안 본 일반인도 충분히 보고 즐길 수 있는 수준.
일반관에서 보고 다음날 아이맥스관에서 재관람했지만 진짜 무한성의 비주얼은 ‘21세기 애니가 구현한 최정점이 이런거구나’라는 체험을 선사해줬다. 아이맥스관에서 무한성이 전후좌우 및 상하로 움직일 때 같이 이동하는 느낌. 돌비로도 관람하고싶게 만든다. 아키라 이후 이런 극장판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애니팬들에겐 축복일듯하다.

이 작품의 백미는 무한성을 표현한 CG와 랜더링에 있다. 수없이 바뀌고 이동하고 변화하는 무한성의 변화무쌍함은 보는 내내 감탄하게 한다. 이 배경 위에서 각 주(기둥)들과 상현들의 액션 작화는 애니메애션이 구현할 수 있는 최정점의 기술을 보여준다. BGM과 함께 보고 있으면 타격감과 쉴새없이 돌아가는 앵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관객을 압도한다.
아카자가 나타나고 수주 기유와 시전하는 전투 장면은 본 작품의 최고 하이라이트. 무한성이 이동하면서 성곽 위에서 인공폭포가 쏟아지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배경으로 현란한 액션 씬과 배경음 그리고 타격 소리는 관객의 몰입도를 최고도로 높인다. 기유가 물의 호흡으로 각 형을 시전할 때마다 나타나는 물결파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러닝타임 155분이 23분처럼 지나간다.
9월 8일 현재 이 영화는 누적 관객 수 5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극장 티켓 값을 터무니 없게 올려놓아 극장 가기가 싫었는데, 이런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극장에서 봐 줄 수 있겠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돈을 주고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내 기억에 10년 도 넘은 거 같다.
헌데 애들이나 본다고 치부하는 애니메이션이 이렇게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영화를 극장에서 3번(일반관, 아맥스, 4DX) 보고 난 후 자문해 봤다. 영상미가 한몫 하긴 했지만, 아마도 그 주제의 진정성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 애니에서는 드물게 ‘인간의 가치’를 전면에 내새워서 그렇지 않을까. 혈귀로 대변되는 ‘비인간성’과 대조적으로 귀살대가 보여주는 찰나적 ‘인간성’ 구도가 극명하게 대립되기 때문일 듯하다.
무잔으로 대표되는 혈귀의 ‘영원한 삶’에 대해 찰나적 인간의 삶이 더 가치 있다는 메시지. ‘가족애’ 나 ‘동료애’ 또는 ‘지키고 싶은 사람’ 등도 의미 있지만, 보다 중요하고 선명한 인간의 가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역사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영원한 삶’이라는 걸 우부야시키의 마지막 말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 더해 선과 악이 모호해지는 지점도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빌런인 혈귀들은 모두 인간적인 아픔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탄지로가 혈귀를 ‘슬픈 존재’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 정점에 아카자가 있다. 아카자가 혈귀가 되는 서사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아카자는 빌런 중 빌런이다. 수 백년 간 혈귀로서 그가 죽인 사람은 실로 엄청나다. 그럼에도 마지막 아카자가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되찾고 인간으로 죽을 수 있는 결말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아카자를 보면 ‘악한(惡漢)은 환경이 만든다’는 것에 수긍이 간다. 그리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해서 아카자가 저지른 악을 탈각시키고 피해자 코스프레 비슷하게 보자는 것도 아니다. 같은 상황이 주어졌을지라도 귀살대의 ‘주’들은 삶을 비관해서 아카자와 같은 혈귀가 되지 않았기에 아카자의 선택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악이 구축하는 세계가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있고,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카자의 서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드라마적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아카자 캐릭터를 보는 재미 또한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라 아니할 수 없겠다. 부제가 ‘아카자의 재래’이니만큼 그 어느 캐릭터보다 입체적이고 감정이입 할 부분이 많다. <무한열차편>에서 쿄주로를 죽인 그 상현3 아카자가 인간 하쿠지로 죽을 수 있을 때 울지 않은 관객은 별로 없었다.
본 극장판 <무한성편>은 총 3부작으로 나올 예정이며 이번 작품이 1편에 해당한다. 3년 걸릴 제작 기간을 애니메이터들을 총 집결하여(타 작품들의 작화담당들을 모두 투입) 기간을 1년 단축했단다. 2편은 2027년, 3편은 2029년 정도에 나온다고 하니, 궁금한 분들은 만화책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본 <무한성편>은 원작 만화 16권 ~ 18권의 내용이다. (끝)
덧
1. <귀멸의 칼날>은 환타지 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다이쇼 시대다. 1910년 전후에서부터 1920년대까지. 일제 강점기에 해당하기에 탄지로를 비롯한 일부 귀살대원들이 당시를 떠올리는 교복(제복)을 입고 있다. 탄지로의 귀고리도 욱일기를 떠올리게 해서 일본 우익을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막상 보면 그런 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 무한이 펼쳐지는 무한성은 3D이고, 캐릭터들의 현란한 액션은 2D이다. 각각 따로 놀지 않고 조화가 되어 음악과 함께 역대급의 비주얼을 선사한다. 기유&탄지로와 아카자의 액션 씬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3. 물의 호흡의 여러 가지 형을 시전할 때 나타나는 물결 모양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를 본 뜬 것이라고 저자가 밝혔다. 어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미감이라 기유가 물의 호흡 형을 전개할 때마다 펼쳐지는 물결이 너무 멋졌다. 귀멸 작가 코토우게 코요하루가 여러 우키요에 화가들의 화풍을 연구해 만화로 표현해 냈다고. 물의 호흡과 해의 호흡을 사용하는 장면들을 작가가 차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