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날 연휴가 시작되었다. 올 해 설은 작년과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다른 점이라면 탁구 대신 미술을 하게 됐다는 점 정도. 물론 올 해 역시 책은 많이 읽지 못할 것만 같은 예감이다. 검증된 작품만을 고르고 골라 읽을 계획이다.


2. 알라딘 서재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일일이 방문해서 글을 읽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다. 그래도 내 서재에 꾸준히 들러주는 알라디너들. 꾸준히 좋은 덧글 나눔해 주는 분들, 모두 감사하다. 올 한 해 모두 건강하시고 건승하시는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빈다!


3. 최근에 잡고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안나 제거스의 <제7의 십자가>와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 모두 끝내주는 책들임을 의심하지 않을 듯하다. 제거스의 책은 아직 초반부인데도 느낌이 좋다. 어빙의 책은 완독하면 별5개를 줄듯..








제거스의 <제7의 십자가>는 중앙일보사판으로 읽고 있다. 아주 옛날에 나온 하드커버 '소련 동구현대문학전집' 중 21권 째 책인데, 한 권짜리라 이걸 읽고 있다.ㅎ



4. 설 명절이라 기념으로 새로운 작품을 그려봤다. 타이틀은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인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 가제로 붙여봤다. 면의 선을 칼같이 직선으로 할까하다가 그만두었다. F3 크기인데, 작은 사이즈를 선택한 건, 연작으로 10여 개 그려 큰 보드에 일렬로 붙여볼 계획이라 그렇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F3), 2023.1)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1-21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22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파엘 2023-01-21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yamoo 2023-01-22 12:19   좋아요 1 | URL
라파엘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3-01-21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아프가 본 세상>1권은 품절이네요.
분권으로 나오면 1권이 가장 먼저 떨어져요.
1권에서 2권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할테니.
아주 확신이 있지 않으면 한 번에 전권을 사지는 안잖아요. 이건 좀 거시기하긴 하죠.
웬만해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기로 유명한 야무님이 이렇게 후한 점수를 주시면
관심이 안 갈 수 없겠네요. ㅎ

역시 인상적이네요. 그린 게 아니라 뭔가를 덧댄 느낌이 있어요.^^

yamoo 2023-01-22 12:22   좋아요 1 | URL
가아프는 최초 성공작이고 이후 나온작품들도 재밌다는군요. 다른 작품들도 좋다니 가아프1권없으면 최신 타 작품 추천드립니더~~

요것도 계속 시리즈로 그릴건데 작품설명도 부가해 봐야겠어여~

새파랑 2023-01-21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지만 그림을 계속 보게 되면서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건지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

yamoo 2023-01-22 12:24   좋아요 1 | URL
이 그림은 연습용으로 그려본 건데 작품용으로 그릴 때에 작품설명도 함께 부가해야 겠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원 2023-01-21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기심을 일으켜 세우는 그림이네요. 부상하는가 하면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요. 시간의 실재성이 추상화가 된다면 추상의 추상인가요.

yamoo 2023-01-22 12:30   좋아요 0 | URL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니, 무척 고무적입니다. 앞으로 그림 올랄때 작품설명을 부가해야겠어요..

시간의 실재성은 좀 독특해요. 시간은 도처에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아지 얺아요. 하지만 시간은 실재합니다. 실재하자만 보아지 얺아요. 이걸 이미지로 구현라는거라 추상적 형상을 갖게 돨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물론 풍경으로도 그릴 수 있지만 추상적작업이 좀더 부합하는 느낌이랄까요..추상의 추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이미지 표현이 추상으로 뒤결되는 거 같아요..^^;;

weekly 2023-01-22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안녕하세요?
무심코 방문했다가(?) 깜짝 놀라게 되어서, 그래서 (아마 블로그 하면서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 봅니다.
아마 전업 작가는 아니신 듯 한데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셨다니 놀랍고 부럽고 하네요.:) 축하드려요. 뭔가 동기를 얻게 되네요.
그리고 예전에 베르그손을 권해주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안읽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제가 고민하는 문제가 시간성이라는 개념이고, 물론 그 관점은 주로 후설, 하이데거 등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베르그손 역시 시간성의 철학자 중 하나인 것으로 제가 얻어듣고 있기 때문에, 드디어 베르그손을 읽어 볼 때가 된 것 같아요.
읽으면서, 혹은 읽고나서 기회가 되면 베르그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좋은 명절 연휴 보내시기를~

yamoo 2023-01-24 23:17   좋아요 0 | URL
위클리님의 댓글을 제 서재에서 볼 수 있다니...놀랍습니다! ㅎㅎ

오래 전에 제가 베르그손의 책을 권해드린 적이 있었죠. 후설의 사간 개념과는 다르지만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쪽의 논문도 몇편 있었습니다만...그 시작점이 너무 다른철학자들이라 두 철학자의 시간에 대한 논의를 비교하는 자체가 매우 좋은 공부꺼리라 생각합니다. 위클리님이 베르그손의 책을 읽으시면 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으실 수 있을거라 확산합니다! 베르그손의 시론부터 읽어보시길 강추드려요~~

마저요..저는 전업작가라 할 수 없죠. 다른 직업이 있으니...근데 회사에서 그림동호회에 가입하여 정식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있어여~
물감과 붓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고 원하는 효과를 배우기 위해 과정을 듣는 것이고 원래부터 하던 작업이 언어택스트에서 이미지로 바뀐거 뿐이에요. 미술이라는 매체가 좀더 직관적으로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체를 갈아탄 거 뿐인데...캔버스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색이라 전업작가 흉내를 내고 있는 거 뿐이애요..^^;;

weekly 2023-01-25 19:13   좋아요 1 | URL
헤헤, 이미 <물질과 기억>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론은 이 책을 끝내고 읽어야겠네요. 암튼 감사드립니다.

˝전업 작가는 아니신 듯 한데...˝는 좀 부정확한 표현이었네요. ˝제 기억에 직업이 작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라는 뜻이었습니다. 더 면밀하게 보자면 ˝전업 작가˝ 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곧 작가가 정의되는 곳일 테니까 말입니다.

저도 제 아내가 미학 쪽에 관심이 많아서, 요즘 향연이나 파이드로스부터 시작해서, 서양 미학 고전들을 함께 읽고 있고, 또 모작이긴 하지만 (프린트가 아닌) 꽤 큰 홋수의 그림을 구매하기도 했고 해서 야무님의 활동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하네요. 종종 뵈요~

페크pek0501 2023-01-2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 제목이 멋지군요!!!
나날이 진보하십니다. 좋은 감상 하고 갑니다.^^

yamoo 2023-01-30 17: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새로운 컨셉을 또 완성했으니, 새작품으로 찾아뵙겠어요!ㅎㅎ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라는 책이 2021년 알라딘 올해의 책이 될 정도로 핫했던 책이었던가?! 정말 몰랐다. 작가도 몰랐고, 아예 관심도 없었을 책이다.


그런데, 책 표지!! 책 검색하다가 책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랜트 해프너의 그림이 표지그림을 떡~ 하니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이 작가를 알아 표지 그림으로 하게 됐는지 참의로 의외다. 그랜트 해프너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작가인데(물론 알 사람에게는 유명한 화가지만!) 말이다.


작년인가, 우연히 추상풍경 작품들을 외국사이트에서 검색하다가 프레드 잉그람스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 화가 중 한명이 됐다. 나만 좋아하는 작가인줄 알았는데...표지그림으로 채택될 정도라니?!


어쨌거나 흥미롭다. 평생 롱아일랜드를 벗어나지 않은 작가가 한국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 책표지를 장식할 정도니~


그랜트 해프너의 그림들을 처음 봤을 때 그 강렬한 색채와 운동성 있는 구도에 정신을 빼앗겼다. 정말 탐이 났고,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었지만, 운송료와 가격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그림은 정말 작가적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화풍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거의 모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볼만한 80년대의 풍경을 추상적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데, 색감과 운동성을 통해 감상자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한다.


작가는 언제든지 가능하면 아침부터 밤까지의 시간동안 미묘하면서도 기념비적인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화폭에 옮겨놓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고도 신념있는 작가인듯하다.


주로 목재 패널에 아크릴, 마커, 연필, 페인트 펜을 사용하여 롱아일랜드의 전깃줄 있는 도로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그랜트의 그림에 빠져보는 것도 감상자로서는 드문 경험일 것.


알라딘 마을에서도 그림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니, 이참에 그랜트 해프너라는 미국 화가의 작품도 많이 감상했으면 한다.ㅎㅎ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12-28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림 정말 좋으네요!
특히 첫번째 그림 완전 제 스탈입니다.
오늘도 눈이 호강했습니다. 고맙슴다.^^

yamoo 2022-12-29 09:39   좋아요 1 | URL
그랜트의 그림들은 대체로 환상적이지만 특히나 더 꽂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보통 크기는 30호~50호 사이인데, 크고 색상 밝고 확트인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훨씬 더 보기 좋아요. 네, 저도 첫번째 그림 아주 좋아합니다^^

은하수 2022-12-2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들 우리집 벽에 다 걸고 싶네요
요즘 왜 이리그림에 욕심이 생기는지..
콜렉터들의 맘을 실감합니다
그림 잘 보고 갑니다^^

yamoo 2022-12-29 09: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은하수 님!^^
그림 욕심이 드시는군요~ 가끔 보면 저도 아주 욕심이 나는 작품들이 보입니다만 가격들이 전부 ㅎㄷㄷ하죠..ㅎㅎ
근데, 그랜트의 작품들은 천만원 안쪽인데, 배송비도 좀 비싸 그림의 떡이죠..ㅎㅎ

감사합니다~
 

간만에 산 책에 대한 페이퍼. 다름 아니라 병신같이 같은 책을 두 권 주문해서다. 책을 거의 안 사다가 갑자기 병이 도진거 같다. 1만에 삼십 여 권 이상을 주문한거 같아 자괴감이 심하게 든다.


버려야 할 책도 쌓여 있는데...2주 전에는 회사에 약 50여 권을 기증했고, 또 기증하려고 한다. 기증 대기 책만도 30여 권 이상이다.


우선, 문트 님게서 좋다고 하신 책이 하도 많아서, 리뷰를 보고 주섬주섬 주문하고 있는데, 아~ 씨~~ 우주점 2만원 채우기 시도하다가 우후죽순 거리낌 없이 주문해버리고 도착한 택배 때문에 당황하는 상황이 쌓이니 짜증이 심하게 난다.


급기야 같은 책을 두 권 주문하는 사태 발생...젠장~~


르메트르가 문제의 책이다..저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아후~~<예술의 정신>은 원래 있던 책인데, 상태가 좋은 책이 2천원밖에 안해 그냥 또 샀다. 헌 책은 버려야쥐~~ㅎ


파워스의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이 너무 기대가 된다. 매카시의 <신의 아이>도!! 바람구두님의 책은 신간도 얼른 주문할 예정이다.ㅎ








그리고 버릴 책. 이거 외에 30여 권이 더 대기중...


율리 체 작가는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작가다. 특히 <어떤 소송>. 읽다가 덮기를 몇 번했는지 모른다. 이거 외에 두 작품 더 있는데, 그것도 처분할 예정이다. 민음사 <콜레라시대의 사랑>은 1권이 생뚱맞게 달랑있다. 니체 도덕의 계보도 같은 책이 있어 처분~ 나머지는 필요없는 책이라 기증 코너로 슝슝~~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2-12-17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터에 책을 기증할 곳이 있나봐요. 그말은 일터에 도서관이 있다는 뜻이죠? 좋은 일터네요. 저도 아주 가끔 샀던 책을 다시 주문하기도 합니다. 책장을 뒤지다가 이런 책이 있었나? 언제 샀지? 이러기도 하구요. 저도 책정리를 좀 해야하는데, 자꾸 책을 사모으기만 하네요.

yamoo 2022-12-19 14:28   좋아요 0 | URL
네...다행히도 있어서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필요없는 책 위주로 추려서 가져가는 것도 일이네요..ㅎㅎ

계속, 이런 책도 있었나??라는 놀라움의 연속..ㅎㅎ

책 사고 쳐박아 두니, 나중엔 어떤 책을 샀는지 까맣게 모르는 책도 많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2-12-17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저도 같은 책을 또 주문하니 알라딘께서 주문한 적이 있다는 멘트를 뜨게 하여
취소한 적이 있소이다. 그래서 저는 한 서점에서만 주문해야만 해, 라고 생각해요. 중복 주문은 알려 주거든요. 여러 서점에서 구매하면 아마 중복 구매가 많을 듯합니다.^^

stella.K 2022-12-18 10:35   좋아요 2 | URL
엇, 그런 알라딘에 그런 기능이 있었나요?
저는 중복주문 안 해 봐서요.ㅋㅋ
솔직히 왕년에 중복주문 좀 해 봤다해야 책을 진짜 읽는 사람 아닐까요?
야무님 자책을 좀 심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중복주문하면 소원이 없겠네.ㅋㅋㅋㅋ
(이러다 말이 씨 될라..ㅠ)

저한테 버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저도 책이 산더미라
차마 그 말이 안 나오네요.ㅠ

yamoo 2022-12-19 14:30   좋아요 2 | URL
이건 아마도 낱권씩 구매하는 와중에 중고샵 검색에서 좀더 산 책을 찾가다 그냥 주문했던거 같습니다..ㅎㅎ
물론 알라딘에서 구매하면 중복 주문은 알려주는데, 이게 개인샵이다보니 그런 메시지가 없었나봐요..ㅎㅎ

scott 2022-12-17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이 쌓아 올리신 책들 제목들 이어 붙여 읽어 보니 한 해 일어 났던 일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

yamoo 2022-12-19 14:31   좋아요 0 | URL
책탑의 제목들을 이어붙일 생각은 전혀 못해봤는데, 스코트님 때문에 훑어봤지만 따로국밥이라 별로 제겐 의미가 없었네요...ㅎㅎㅎ

근데, 저도 앞으로 책탑 쌓으면 책 제목 이어붙이는 시도를 해봐야 겠으요~~

골드문트 2022-12-17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아시다시피 야무 님하고 저하고 약간 좋아하는 핀트가 달라요. 다른 게 지극히 정상이기도 하고요!!!! 흑흑.....
예를 들어, 저는 율리 체, 무지 좋아한답니다. ㅋㅋㅋㅋㅋ <잠수 한계 시간>, <새해> 같은 거 독특하잖아요? 그냥 제가 읽기에 그랬다는 겁니다. ^^;;;

yamoo 2022-12-19 14:33   좋아요 1 | URL
약간 핀트가 다른 작품이 있더라구요. 저도 인정합니다. 그게 10에 2-3권 정도라 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요..ㅎㅎ
일단 율리체 다른 작품들을 좀더 집중해서 읽어봐야 겠어요~~

율리체를 좋아하시는군요! 전 아무리 읽으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뚝뚝 끊기는 맛이 영~~ 요즘 키냐르도 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어요...ㅎㅎㅎ

transient-guest 2022-12-22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과 아마존은 중복주문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가끔 저도 있는 책을 다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에 책을 기증할 곳이 있다는 건 참 좋습니다. 저는 제가 다 갖고 있어요. 버릴 책은 다른 사람에게도 줄 필요가 없는 수준의 책들이라서 사무실 옮길 때 다 버렸어요.

yamoo 2022-12-23 17:02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구매하면 구매한 내역이 있기에 중복구매 여부를 알 수 있지만, 중고샵에서 거의 동시에 구매를 한 거 같아요...그래서 것두, 하나는 예스24 중고매장에서 구매하고 하나는 알라딘 중고샙에서 구매해서 중복주문 메시지가 안떴을 거에요..^^;;

맞아요.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없는 수준의 책들...이런 걸 버려야합니다. 아니면 기증할 곳에 기증하던지요..ㅎㅎ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 <눈먼자들의 도시> P40

 

 

꽤 오랜 전 인듯하다. 김사과 작가의 귀신 싯나락 까먹는 논증을 보고 여기 페이퍼를 쓴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근데, 또 다른 한 작가에 의해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게 됐다. 이번에는 김애란 작가다.

 

사실, 김사과의 경우 내게는 듣보잡 작가였는데, 김애란은 내게도 아주 익숙한 작가다. 그 모든 문학상이란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현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기수 아닌가. 나는 단편 하나 읽고 나와 맞지 않는 작가라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은 작가지만, 김애란에 대한 평단의 기대와 대중적 인기는 실로 크다.

 

나같은 넘이 지껄인다고 뭐하나 달라질 것도 없는 그런 위대한(?) 작가다. 근데, 시론이랍시고 쓴 글은 정말 함량미달인 듯 보인다. <눈먼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라는 작가 모음 시론집인데, 그 첫 에세이가 바로 김애란의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다. 인용된 부분은 바로 여기 실려 있다.

 

인용된 첫 두 줄,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라는 건, 하나마나 한 소리다.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가 되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라는 아는 사실이다. 나이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거대한 착각이 아니라는 말도 유비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뻔한 얘기다.

 

뒤따라오는 문장이 정말 한심하다. 김애란은 이걸 말하기 위해 거대한 착각운운한 듯 보인다. 이 문장 역시 거대한 착각을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됐기에 그렇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보면 김애란도 어떤 편견에 사로잡힌 듯 보이다.

 

인간은 원래 태어난 대로 살아간다. 종교적으로나 실존적으로 아주 커다란 깨달음을 얻지 않는 이상 생긴 대로 살다가는 게 자연스럽다. 아니, 좀 더 생각해보면 인간이 나아진다는 자체도 매우 모호하다.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아진다는 건 매우 모순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인간적으로 나아져도 생태적으로는 전혀 나아진 게 아닐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건 우스꽝스런 복음이며, 이게 잘못된 망상이라는 건 아주 널리 밝혀져서 논할 가치조차도 없는, 지극히 상식이 된지 오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김애란은 지금 수사적 논증을 통해 아니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거다. 이게 고3 논술 문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논증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가장 심각한 건 일리치의 말을 인용하기 직전의 두 문장이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가만히 놔두면 더 좋아지는 인간들이 있기는 있다. 그래서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진다.’는 명제는 참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전형적인 명제다.

 

근데 김애란은 여기서 더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 내는 비약을 멋지게 실행한다.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단다. 지금까지 역사가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 좋게 흘러왔나? 진보의 과점에서 보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하나? 이 논증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망상에 픽션을 가미하면 이런 논증이 가능한가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니다. 사관은 순환할지 모르지만 인류의 시간은 그냥 일직선으로 쭉 흐를 수밖에 없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시간은 미래를 관통해 간다. 미래가 과거로 바뀌는 순간이 현재이고 인간은 그걸 어떻게 할 수조차 없다.

 

설탕물을 먹으려면 설탕이 녹는 시간을 기다려야하듯이 시간은 흐름이요, 역사 역시 기다림의 축적이다.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는 건 헛소리다. 진보적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김애란은 역사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매우 작위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김애란은 일리치의 주장을 가져오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부가한 것인데, 앞 두문장은 하나마나 한 소리이며 뒤의 문장들은 논리적 비약을 통한 전형적인 개소리일 뿐, 일리치의 주장은 생뚱맞게 허공을 울릴 뿐이다. 황당한 무려력을 보여주는 논증이라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12-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야무님은 독서 스펙트럼이 역시 넓으십니다.
언제 또 저런 책을 읽으시고...
저도 김애란 소설 거 뭐더라. ...무슨 인생...? 영화화된 거
그거 하나 읽고 땡쳤습니다.
그 소설이 그렇게 대단한가 싶어 거의 비판적으로 리뷰를 했고
좋아요도 엄청 많이 받고 (제 생애 그렇게 많이 좋아요를 받아 보기는 그때가 처음...?)
이달의 당선작도 되고 했는데 그래도 워낙 인기 소설이라 결국 묻히더군요.
김애란은 이제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 소설 영화화 됐을 때 와, 영화가 훨 낫구나 좀 이해가 가더군요.
송혜교, 강동원이 받혀 준 덕도 있고.
김애란이 무려 그런 작가입니다. ㅋㅋ

yamoo 2022-12-14 09:14   좋아요 1 | URL
두근두근 내인생...아닌가요??ㅎㅎ
저두 그거 읽고 더 이상 안 읽는데요...
그 소설이 뭐가 좋은지 저는 정말 몰겠더라구요~ 자기얘기만 줄창해대는..

왤케 상이란 상은 전부 다 타는지 몰겠습니다. 미스터리한 작가에요~
그만큼 우리나라 문학판이 매우 고여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김연수가 한소리했던거 같구요..

김애란의 이 시론도 역시 통창력이나 혜안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ㅎㅎ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책을 구매했다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인데예스24 중고매장에 눈에 띈 김에 그냥 샀다. <바닷가에서>. 얼마나 대단한 서사가 담겨 있길래 그렇게 회자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다아주 읽어야 할 책이 쌓이고 쌓였지만.

 

읽기 전에 리뷰나 좀 검색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알라딘에 접속하여 리뷰와 페이퍼를 읽어 가는 중에 스코트 님의 페이퍼를 보게 됐다거기 실려 있는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


 

'한국 문학은 배타적이에요. 배운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창작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한국어 원어민만 작품을 쓰고, 그 원어민은 또 다 같은 민족이고. 그래서 완전한 타자가 들어올 때 언어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한국 작가 중에 영어로 쓰는 사람도 나올 테고요. 그때가 오면 한국 작가가 한국 문학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문학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지겠죠. 주제에 대한 과도한 집중도 그런 폐쇄성에서 나와요. 문학의 도구, 용기(用器)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오직 주제만 보는 거죠. 문예지에서도 언어 예술의 관점에서 문학을 논의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영화에서 감독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 장면을 왜 그렇게 찍었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기술적 문제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고 끊임없이 관객들과 대화를 하면서 창작자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해 나가거든요. 그런데 한국 문학에서는 그런 기회가 드물어요. 플롯, 캐릭터보다 왜 썼느냐, 세계관은 왜 이러냐, 왜 이런 주제를 택했느냐를 작가의 개인사와 연결 지어 논의하죠.'

                                     -2010년 김연수 작가 인터뷰 중에서

 

김연수 작가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한국에 거주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서 한국 문단에 등단 시키게 하는 꿈이 있다는 말을 수 년 전 부터 해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작가는 제주도 문학관에 초청을 받아 작품을 집필하면서 한 편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도 창작 공간을 들어 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을 넌지시 해왔다.

만약 김연수 작가의 꿈이 실현 된다면 다른 국가 출신에 다른 언어를 사용했던 외국인이 한국의 주요 문학상 을 수상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한국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 출간 될 것이다.

과연 그런 날이 오게 될까?               -scott님 페이퍼 중에서

 

김연수의 위 인터뷰 중 앞 5문장을 다시 한 번 보자.


한국 문학은 배타적이에요. 배운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창작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한국어 원어민만 작품을 쓰고, 그 원어민은 또 다 같은 민족이고. 그래서 완전한 타자가 들어올 때 언어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한국 작가 중에 영어로 쓰는 사람도 나올 테고요. 그때가 오면 한국 작가가 한국 문학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너무도 신선한(?) 이 주장. 다른 사람도 아닌 김연수다. 김연수가 이런 말을?! 그래서 다시 읽고 또 읽어 봤다. 읽을수록 해괴한 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런 페이퍼를 쓰는지도.. 


몇 줄 읽지 않았지만, 김연수는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사는 듯 보여서다. 한국문학이 배타적인 이유가 한국어로만 작품을 써서 그렇다는 논리인데, 도대체 이런 논증을 김연수에게서 본다는 게 정말 의외였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배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중세문학으로부터 축적된 그 지역 언어공동체로부터 자생적으로 태어난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배타성이 강한 문학일수록 타 문화에서 접해 볼 수 없는 신선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수밖에 없다.


아니, 언어 자체가 그렇다. 노벨문학상과 여타 상을 수여하는 걸 봐도 그렇다. ‘영어로 쓰여진 작품 중운운 하는 수상작 기준이 그렇다. 물론 영어는 거의 공용어가 되다시피 했지만.

 

일문학도 그렇고, 아프리카 문학도 그럴 것이다. 꼭 다른 언어로 작품을 써야할 이유가 도대체 뭘까? 물론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량 유통되고 향유된다. 


20세기까지는 한국의 문화적 역량이 크지 않아 한국 내에서만 즉 한국인이나 한국동포만 작가로 활동할수밖에 없었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를 배워서 프랑스 작가가 되고 그 작가의 작품을 프랑스인들이 읽는...뭐가 문제가 될까.


물론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영어나 타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영어 이외에 공용어를 채택하는 국가들이 꽤 되니까. 나라로 나뉘어져도 언어생활을 공유하는 민족 개념이 가미되면 언어적인 면이 크게 부각된다. 나라 의미가 많이 희석된다. 구 유고가 그런 나라였다.  


문학에서 배타성은 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 배타적 속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적 특색이란 것이 약해질 수 있다.언어나 문화를 모르면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아예 몰라 향유할 수 없다. 이걸 배타성이라고 볼 사람이 어느 정도 될까.

 


그런데 김연수는 아닌 거 같다. 김연수의 논리는 타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가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로 작품활동을 해야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아예 미국 시민권을 받고 미국에서 작품을 영어로 발표한 사람은 제외될 거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한강이 영어로 쓴 게 아니라 한글을 아는 영국인이 번역했기에 김연수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의 작품도 여기에 해당 안된다. 그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작품을 쓴 게 아니라 영어로 썼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문화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제외된다. 당연하다. 배운 일본어로 일본에서 작품활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운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창작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김연수가 지적하고자 한 의도는 명확하다.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로 작품을 창작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거다. 이게 그의 배타성의 주된 근거다.


그의 바람이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로 작품을 쓰는 게 꿈이라고 하니, 그가 주장하는 근거가 어떤 것인지 좀 더 확연히 지지된다. 이게(배운 언어로서의 한국어 창작 작품) 김연수가 주장하는 한국 문학의 배타성의 주된 속성이다. 


처음에 이 주장이 이해가 안 됐던 게 '배운 언어'라는 표현 때문이다. 한국어도 배운다. 어렸을 때. 근데 김연수는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운 것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어를 배워 창작활동을 하는 게 꿈이라니, 그가 말한 '배운 언어'는 제2외국어로써의 한국어라는 의미였다.



배운 언어로써(제2외국어로써)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해야 한국 문학이 배타적이 되지 않는가?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모르겠다. 김연수가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매우 배타적이라는 걸 그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배타적이라는 걸 너무 '언어'로 한정하고 있는 듯해서다. 이민진과 한강은 결론적으로 한국어의 배타성을 벗어났는데, 왜 그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어를 배워 작품을 쓰는 게 꿈이라고 하는 걸까? 배운 언어로서 한국어 작품이 없다는 게 그렇게도 배타적이라는 것일까?

 

도대체 '배타적'이라는 걸 김연수는 어떤 의미로 생각하고 있는걸까? 기본적으로 '배타적'이라는 단어는 배척한다는 의미가 지배적이다. 아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언어를 모르면 배타적일수밖에 없다. 읽을 수도 없고 작품활동을 할 수도 없다. 모르는 언어니까!


그런데, 이런 현상을 두고 배타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배타적이라는 말의 핵심 속성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서로 아는 데 하나를 배척한다는 의미다. 이런 '배타적'이라는 의미를 김연수의 주장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매우 어색하고 해괴한 논리가 되 버린다.


왜냐하면 김연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한데 있기 때문이다.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작품활동을 해서 한국 문단에 이들이 많아 지기를 바라서다. 


다시 말해서 한국 문단에 외국인들도 구성원들로 참여해야 한국문학의 배탕성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때에야 한국작가가 한국 문학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는 거다. 정말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김연수는 배타적인 걸 매우 싫어하나 보다.


물론 배타적이면 세계적이고 개방적이지 않음을 함축한다. 근데 윤동주의 서시를 한번 보자. 한국인만 잘 아는 시다. 그런데 이 시가 한국어(모국어)로 쓰여졌기에 배타적인가


물론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면 배타적(읽을 수 없다!)일 수 있겠지만, 그 정서는 매우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라 생각한다. 단지 잘 알려져있지 않을 뿐이다. 오랜 시절 후진국이었으니까. 


이건 매우 언어적인 현상이다. 김연수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기에 외국에 안 알려져서 배타적이 될수밖에 없게 된다. 김연수는 언어적이 현상을 그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혼동하고 있다. 언어는 배타적일 수 없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배타적일 수 있는 거다. 


근데 뭐, 이런 논의는 접어두고 라도, 세계 속에서 한국어의 위상이 어떤지 잠깐만 생각해도 김연수가 하는 말이 왜 해괴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BTS를 위시해서 한국의 가요와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워 한국 노래를 따라부르고 그 의미 파악에 열을 올린다. BTS가 신곡을 발표하면 유툽상에서 바로 영어로 번역해 올리고,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한국어로 멋진 에세이를 발표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말이다.


신라의 향가까지 외국인들이 즐긴다고 생각해 보자. , 지금과 같은 추세면 그리 먼 시간이 걸릴 거 같지 않다. 근데 만약 그렇게 되어도 김연수의 주장이 타당할 수 있을까?

 

가장 한국적인게 세계적이라는 걸 요즘 우리가 목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김연수는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말을 배워 작품활동을 한 적이 없기에 한국 문학이 배타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한국 문단 자체가  배타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문단은 썩어 빠진 고인물이라고 꽤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서울대라인, 고대라인 하면서 제식구 챙기는 관행은 여전하겠지. 그런 배타성이라면 문제제기도 안했겠다.


김연수가 어떤 문제를 저격하려고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해괴하여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단의 배타성'을 공격하기 위해 '한국 문학'의 '배타성'을 운운한 지점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